2023년 5월 28일 주일 오후
김동민2023-05-28조회 272추천 32
2023년 5월 28일 주일 오후
찬송: 78장, 79장
본문: 창세기 3장 1절 ~ 6절
지식이 인식을 만들고 인식 모든 사물을 상대하게 만듭니다. 지식이란 존재를 하는 것이고 천하에 존재는 수도 없이 많습니다. 하늘과 땅과 바다에 종류별로 많습니다. 사람이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습니다. 만물, 많다고 할 수 있습니다. 사람의 몸은 하나인데 몸에 대한 지식이라고 하면 머리에 대한 지식, 손바닥에 대한 지식 눈썹에 대한 지식 혈관에 대한 지식 다 알 수 있겠습니까. 한 사람의 몸인데 몸 지체 숫자만큼 많고 굉장히 많습니다. 요즘 인사들이 머리카락 의사도 있고 손톱 관리하는 사람도 있고 전부 다 보면 지식들입니다. 나무가 있습니다. 뿌리에 대한 지식 가지에 대한 지식 열매에 대한 지식, 나무 껍질에 대한 지식 나무 안에 들어가면 나무에 물이 있습니다. 그런 액에 대한 지식. 그런 지식이 존재 하나만해도 굉장히 많습니다. 파리의 움직임, 파리의 배설물에 대한 지식, 한도 끝도 없는 것이 이 세상의 지식입니다. 피곤하게 만듭니다.
지식에 대해서 필요한 지식, 옳은 것에 맞지 않은 것은 다 틀린 것이다. 이 세상에 길이 많은데 옳은 것을 다 놔두고 기준 삼아서 다 틀렸다 합니다. 지식도 마찬가지입니다. 꼭 필요한 지식만 머리에 담습니다. 50년 60년 전의 일을 어제처럼 기억하십니다. 사람이 노력한다고 되는 것은 아닌데 힘을 쓰다보면 저절로 됩니다. 요즘에는 오만 것을 다 집어넣습니다. 줄넘기를 학원을 다닌다, 우리는 이해가 안되죠. 그런데 줄넘기 학원에 그렇게 아이들이 많고 많이 보낸다고 합니다. 뭐든지 배워야하고 익혀야하니까, 아는 게 힘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지식의 종류는 한이 없습니다. 필요 없는 지식은 머리에 담지 않는 게 복입니다. 선악과 따먹고 아담과 하와가 이룬 지식은 지식이 아닙니다.
영어 잘하는 사람 들어보면 서툴다고 오만 말이 다 나옵니다. 신앙 생활하는데 필요한 것이 지식입니다. 그런데 이 세상은 지식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이 세상을 살아갈 때 지혜에 필요한 지식은 만들어야합니다. 지혜라는 것은 미래에 대해 아는 것을 지혜라고 합니다. 연세 많은 분들 시골 분들이 학교 공부는 무식한데 자연의 살아가는 지식은 지혜가 있습니다. 9급 공무원들 복사하고 대학 공부가 필요없는 겁니다. 고등학교만 졸업하면 충분히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지식만 그런 것이 아닙니다. 인간의 지식은 별 거 없는 지식인데 학력이 사람을 바꾸고 그렇게 만드는 겁니다. 앞으로 살아갈 때 지혜라고 합니다. 인식이라는 것은 주관입니다. 다른 것이 아니고 자기 자신이 판단 내린 것을 보는 관점입니다. 자기가 보는 시각입니다. 이런 것을 가르켜 인식이라고 합니다. 인식은 지식으로 만들어집니다. 어려운 말 아닙니다. 우리 일상 생활에 다 살아가는 것이고 굉장히 중요한 겁니다. 인식이 잘못돼서 선악과를 따먹고 전 인류를 사망에 빠트리게 되었습니다. 결혼이 무엇이냐, 이런 것을 논리로 따질 것도 없습니다. 결혼에 대해 책을 쓰면 책이 하나 나오고, 부부에 대해서, 가정에 대해서, 자녀에 대해서 쓰면 책이 됩니다. 그게 모인 것이 도서관입니다. 요즘에는 인터넷이 있으니까 검색하면 다 나옵니다. 휴대폰 없을 때 필요한 지식, 전기가 다 없어도 살아남을 수 있는 지식은 알아야합니다. 지식이라는 것이 있고 인식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어떤 특정한 사람이나 사물에 대한 관점, 생각, 이것을 인식이라고 합니다. 인식 그대로 사람을 보게 되고 좋게 보이고, 뭐든지 다 사람과 사물이 모두 다 그렇습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지식은 공부하면 생기는 것이지요. 보는 게 공부고 접하는 게 공부고 듣는 게 공부입니다. 그 지식이 인식을 만드는데 인식이라는 것은 만들어집니다. 어떤 사람과 사물에 대해서 인식을 만드는 겁니다.
굉장히 분리합니다. 믿는 사람은 논리적인 사람이 되었고 이성적인 사람입니다. 떠져야합니다. 지식이란 나와있는 것 중에서 아는 겁니다. 세상 지식은 끝이 없습니다. 만물들의 작용도 한이 없습니다. 작용 하나 하나가 모두 지식입니다. 사람들의 생활에서 나온 것이 세상을 어지럽지 않도록 합니다. 그래서 요즘은 학교를 적게 보내는 것이 지혜롭습니다. 잘 계산하고 해야겠지만 요즘 시대에 학교를 교사 분들에게 죄송할지 모르겠지만 최대한 적게 보내는 것이 지혜로운 방법입니다. 지식과 인식을 기억합시다. 지식으로 만들어지는 것이 인식입니다. 같은 지식을 받아들이고 주관성에 따라 인식을 만들기 때문에, 어떤 사람은 물이 반이나 남았다 하고 어떤 사람은 물이 반 밖에 안 남았다고 합니다. 그게 인식입니다. 보는 인식이 달라지는 겁니다. 태도가 달리집니다. 이런 것을 인식이라고 합니다. 우리 공회 교역자들 옷차림 이거 사람에 따라 정장입고 다니는 거 굉장히 불편합니다. 그래서 세상적으로 배웠다는 사람들은 옷을 대충입고 다닙니다. 아이들 신발 구겨신고 다니는 거, 반 접어서 신는 사람 그러면 진짜 그런 사람이 되어버립니다. 옷을 깨끗하게 입으면 사람이 달라집니다. 일제의 잔재라고 다 없애지만 교복은 입는 것이 좋습니다. 머리도 조심하는 것이 좋고. 초등학교도 교복 입히면 좋습니다. 지금도 사립초등학교는 교복 입힐 걸요. 진짜 좋은 학교는 공부를 제대로 시킵니다. 왜 공교육의 교사들이 그러는지, 그런데 교사가 되고나면 그때부터 실력지 줄어듭니다.
인식이라는 것으로 각각 다르게 생겨지는 것이 인식입니다. 그래서 옷차림 하나가 계속 시켜야합니다. 그래야 몸에 익습니다. 본문 한 번 보시겠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지으신 들짐승 중에 뱀이 가장 간교하더라, 하나님이 지으신 모든 것은 다 선합니다. 다 좋게 지었습니다. 그런데 간교하다는 것은 나쁜 것입니다. 간교하다는 것은 사람과 사람 사이를 이간질 시키는 것입니다. 나쁜 겁니다.
어쨌든 사람 사이는 붙여야합니다. 나쁜 친구 둘이 사귀고 있습니다. 그거 붙여야합니까. 나쁜 친구 둘이서 착한 친구를 괴롭히는데 그거 붙여야합니까.
하나님이 뱀을 지을 때는 간교하지 않았는데 마귀가 뱀에게 들어가서 간교하게 되었습니다. 뱀이 마귀가 뱀을 입고 여자에게 물어 가로되, 하나님이 참으로 너희들에게 정말 그러셨냐. 하나님이 그럴 일이 없는데. 하나님에게 문제가 있다는 말이지요. 목사님 정말요. 어머니가 정말 그래, 그럴 리가 없는데. 그러면서 하나님이 참으로 진짜로, 그럴 리가 없는데. 뭔가 문제가 있다는 겁니다. 그랬다면 문제가 되는 건데. 하나님이 참으로 동산 실과를 먹지 말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붙여서 하와를 끌어들입니다. 뱀이 처음부터 그러면 안 들을 거니까 하와 편을 들어서 동산 모든 나무 실과를 먹지 말라고 하더냐. 동산 모든 나무 실과를 먹어도 되는데 선악과는 먹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고 하셨습니다. 여기서 뱀에게 말려들어서 하나님 말씀을 빼고 더해서, 하나님이 먹지 말라고 그랬으면 그러는 건데, 정말로 모든 실과를 먹지 말라고 하니까 선악과는 먹지 말라고 그랬는데. 먹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 죽을까 하노라 했어 하니까. 뱀이 여자에게 단정짓고 결코 죽지 않는다. 먹어 봐라고 합니다. 단정을 해버립니다. 선악과 먹고 하와가 죽었습니까 안 죽었습니까. 안 죽었지요. 대신 하나님과의 연결이 끊어져 버렸습니다. 마귀라는 것은 숫자가 얼마라고요, 666입니다. 결코 죽지 아니하니라, 너희의 눈이 밝아 하나님같이 된다고 했습니다. 틀린 말이 아닙니다. 선악을 아는 것이 하나님처럼 된다니까 하와는 하나님처럼 전문가 될 줄 알고 선악과를 따버렸습니다. 1절로 가가지고 뱀이 하와 속에 있는 지식을 집어넣었습니다. 인식이 있는 상태에서 그렇게 지식이 되고 인식이 되어있는데 뱀이 꼬아서 하니까 인식이 바뀌어져 버렸습니다. 사람에 대해서 아주 좋은 사람인데 비판적인 말을 이렇게 저렇게 한 다음에 비판적으로 보입니다. 자기 속에 주관이 있고 인식이 있는 것인데 어릴 때부터 바로 잡아야합니다. 바로 잡을 수 있는 사람이 되면 논리적인 대화가 됩니다. 자기 주관을 꺾을 수 있는 사람이 되면 굉장한 사람이 되어집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대개 보면 다 그런 건 아닌데 어떤 것은 욕심이 인식을 바꾸기도 합니다. 욕심을 깨기 전에 그랬습니다. 그 사람은 지식이 욕심이 지식을 넘어서서 싫다고 넘어지게 되었습니다. 모든 것이 다 그렇습니다. 그래서 욕심을 없애버리지 않으면 걸어가기가 어렵습니다. 그래서 뱀의 말을 듣고 보니까 선악과에 대한 인식이 자기도 죽었고 다 죽었습니다. 그래서 사망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어렵지만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모두 그렇게 된 것입니다. 그래야 바른 지식이 들어가고 바른 인식을 만드는 것입니다. 이게 잘못되면 모두 엉망칭찬이 되는 겁니다.
그대로 모든 사람을 상대하게 되고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창세기 3장 말씀을 통해서 꼭 기억합시다. 그에 따라서 모든 사람을 상대하게 됩니다. 각자 자기 속에 들어가서 자기의 생각 인식을 돌아보십시다. 통성으로 기도드리겠습니다.
찬송: 78장, 79장
본문: 창세기 3장 1절 ~ 6절
지식이 인식을 만들고 인식 모든 사물을 상대하게 만듭니다. 지식이란 존재를 하는 것이고 천하에 존재는 수도 없이 많습니다. 하늘과 땅과 바다에 종류별로 많습니다. 사람이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습니다. 만물, 많다고 할 수 있습니다. 사람의 몸은 하나인데 몸에 대한 지식이라고 하면 머리에 대한 지식, 손바닥에 대한 지식 눈썹에 대한 지식 혈관에 대한 지식 다 알 수 있겠습니까. 한 사람의 몸인데 몸 지체 숫자만큼 많고 굉장히 많습니다. 요즘 인사들이 머리카락 의사도 있고 손톱 관리하는 사람도 있고 전부 다 보면 지식들입니다. 나무가 있습니다. 뿌리에 대한 지식 가지에 대한 지식 열매에 대한 지식, 나무 껍질에 대한 지식 나무 안에 들어가면 나무에 물이 있습니다. 그런 액에 대한 지식. 그런 지식이 존재 하나만해도 굉장히 많습니다. 파리의 움직임, 파리의 배설물에 대한 지식, 한도 끝도 없는 것이 이 세상의 지식입니다. 피곤하게 만듭니다.
지식에 대해서 필요한 지식, 옳은 것에 맞지 않은 것은 다 틀린 것이다. 이 세상에 길이 많은데 옳은 것을 다 놔두고 기준 삼아서 다 틀렸다 합니다. 지식도 마찬가지입니다. 꼭 필요한 지식만 머리에 담습니다. 50년 60년 전의 일을 어제처럼 기억하십니다. 사람이 노력한다고 되는 것은 아닌데 힘을 쓰다보면 저절로 됩니다. 요즘에는 오만 것을 다 집어넣습니다. 줄넘기를 학원을 다닌다, 우리는 이해가 안되죠. 그런데 줄넘기 학원에 그렇게 아이들이 많고 많이 보낸다고 합니다. 뭐든지 배워야하고 익혀야하니까, 아는 게 힘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지식의 종류는 한이 없습니다. 필요 없는 지식은 머리에 담지 않는 게 복입니다. 선악과 따먹고 아담과 하와가 이룬 지식은 지식이 아닙니다.
영어 잘하는 사람 들어보면 서툴다고 오만 말이 다 나옵니다. 신앙 생활하는데 필요한 것이 지식입니다. 그런데 이 세상은 지식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이 세상을 살아갈 때 지혜에 필요한 지식은 만들어야합니다. 지혜라는 것은 미래에 대해 아는 것을 지혜라고 합니다. 연세 많은 분들 시골 분들이 학교 공부는 무식한데 자연의 살아가는 지식은 지혜가 있습니다. 9급 공무원들 복사하고 대학 공부가 필요없는 겁니다. 고등학교만 졸업하면 충분히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지식만 그런 것이 아닙니다. 인간의 지식은 별 거 없는 지식인데 학력이 사람을 바꾸고 그렇게 만드는 겁니다. 앞으로 살아갈 때 지혜라고 합니다. 인식이라는 것은 주관입니다. 다른 것이 아니고 자기 자신이 판단 내린 것을 보는 관점입니다. 자기가 보는 시각입니다. 이런 것을 가르켜 인식이라고 합니다. 인식은 지식으로 만들어집니다. 어려운 말 아닙니다. 우리 일상 생활에 다 살아가는 것이고 굉장히 중요한 겁니다. 인식이 잘못돼서 선악과를 따먹고 전 인류를 사망에 빠트리게 되었습니다. 결혼이 무엇이냐, 이런 것을 논리로 따질 것도 없습니다. 결혼에 대해 책을 쓰면 책이 하나 나오고, 부부에 대해서, 가정에 대해서, 자녀에 대해서 쓰면 책이 됩니다. 그게 모인 것이 도서관입니다. 요즘에는 인터넷이 있으니까 검색하면 다 나옵니다. 휴대폰 없을 때 필요한 지식, 전기가 다 없어도 살아남을 수 있는 지식은 알아야합니다. 지식이라는 것이 있고 인식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어떤 특정한 사람이나 사물에 대한 관점, 생각, 이것을 인식이라고 합니다. 인식 그대로 사람을 보게 되고 좋게 보이고, 뭐든지 다 사람과 사물이 모두 다 그렇습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지식은 공부하면 생기는 것이지요. 보는 게 공부고 접하는 게 공부고 듣는 게 공부입니다. 그 지식이 인식을 만드는데 인식이라는 것은 만들어집니다. 어떤 사람과 사물에 대해서 인식을 만드는 겁니다.
굉장히 분리합니다. 믿는 사람은 논리적인 사람이 되었고 이성적인 사람입니다. 떠져야합니다. 지식이란 나와있는 것 중에서 아는 겁니다. 세상 지식은 끝이 없습니다. 만물들의 작용도 한이 없습니다. 작용 하나 하나가 모두 지식입니다. 사람들의 생활에서 나온 것이 세상을 어지럽지 않도록 합니다. 그래서 요즘은 학교를 적게 보내는 것이 지혜롭습니다. 잘 계산하고 해야겠지만 요즘 시대에 학교를 교사 분들에게 죄송할지 모르겠지만 최대한 적게 보내는 것이 지혜로운 방법입니다. 지식과 인식을 기억합시다. 지식으로 만들어지는 것이 인식입니다. 같은 지식을 받아들이고 주관성에 따라 인식을 만들기 때문에, 어떤 사람은 물이 반이나 남았다 하고 어떤 사람은 물이 반 밖에 안 남았다고 합니다. 그게 인식입니다. 보는 인식이 달라지는 겁니다. 태도가 달리집니다. 이런 것을 인식이라고 합니다. 우리 공회 교역자들 옷차림 이거 사람에 따라 정장입고 다니는 거 굉장히 불편합니다. 그래서 세상적으로 배웠다는 사람들은 옷을 대충입고 다닙니다. 아이들 신발 구겨신고 다니는 거, 반 접어서 신는 사람 그러면 진짜 그런 사람이 되어버립니다. 옷을 깨끗하게 입으면 사람이 달라집니다. 일제의 잔재라고 다 없애지만 교복은 입는 것이 좋습니다. 머리도 조심하는 것이 좋고. 초등학교도 교복 입히면 좋습니다. 지금도 사립초등학교는 교복 입힐 걸요. 진짜 좋은 학교는 공부를 제대로 시킵니다. 왜 공교육의 교사들이 그러는지, 그런데 교사가 되고나면 그때부터 실력지 줄어듭니다.
인식이라는 것으로 각각 다르게 생겨지는 것이 인식입니다. 그래서 옷차림 하나가 계속 시켜야합니다. 그래야 몸에 익습니다. 본문 한 번 보시겠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지으신 들짐승 중에 뱀이 가장 간교하더라, 하나님이 지으신 모든 것은 다 선합니다. 다 좋게 지었습니다. 그런데 간교하다는 것은 나쁜 것입니다. 간교하다는 것은 사람과 사람 사이를 이간질 시키는 것입니다. 나쁜 겁니다.
어쨌든 사람 사이는 붙여야합니다. 나쁜 친구 둘이 사귀고 있습니다. 그거 붙여야합니까. 나쁜 친구 둘이서 착한 친구를 괴롭히는데 그거 붙여야합니까.
하나님이 뱀을 지을 때는 간교하지 않았는데 마귀가 뱀에게 들어가서 간교하게 되었습니다. 뱀이 마귀가 뱀을 입고 여자에게 물어 가로되, 하나님이 참으로 너희들에게 정말 그러셨냐. 하나님이 그럴 일이 없는데. 하나님에게 문제가 있다는 말이지요. 목사님 정말요. 어머니가 정말 그래, 그럴 리가 없는데. 그러면서 하나님이 참으로 진짜로, 그럴 리가 없는데. 뭔가 문제가 있다는 겁니다. 그랬다면 문제가 되는 건데. 하나님이 참으로 동산 실과를 먹지 말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붙여서 하와를 끌어들입니다. 뱀이 처음부터 그러면 안 들을 거니까 하와 편을 들어서 동산 모든 나무 실과를 먹지 말라고 하더냐. 동산 모든 나무 실과를 먹어도 되는데 선악과는 먹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고 하셨습니다. 여기서 뱀에게 말려들어서 하나님 말씀을 빼고 더해서, 하나님이 먹지 말라고 그랬으면 그러는 건데, 정말로 모든 실과를 먹지 말라고 하니까 선악과는 먹지 말라고 그랬는데. 먹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 죽을까 하노라 했어 하니까. 뱀이 여자에게 단정짓고 결코 죽지 않는다. 먹어 봐라고 합니다. 단정을 해버립니다. 선악과 먹고 하와가 죽었습니까 안 죽었습니까. 안 죽었지요. 대신 하나님과의 연결이 끊어져 버렸습니다. 마귀라는 것은 숫자가 얼마라고요, 666입니다. 결코 죽지 아니하니라, 너희의 눈이 밝아 하나님같이 된다고 했습니다. 틀린 말이 아닙니다. 선악을 아는 것이 하나님처럼 된다니까 하와는 하나님처럼 전문가 될 줄 알고 선악과를 따버렸습니다. 1절로 가가지고 뱀이 하와 속에 있는 지식을 집어넣었습니다. 인식이 있는 상태에서 그렇게 지식이 되고 인식이 되어있는데 뱀이 꼬아서 하니까 인식이 바뀌어져 버렸습니다. 사람에 대해서 아주 좋은 사람인데 비판적인 말을 이렇게 저렇게 한 다음에 비판적으로 보입니다. 자기 속에 주관이 있고 인식이 있는 것인데 어릴 때부터 바로 잡아야합니다. 바로 잡을 수 있는 사람이 되면 논리적인 대화가 됩니다. 자기 주관을 꺾을 수 있는 사람이 되면 굉장한 사람이 되어집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대개 보면 다 그런 건 아닌데 어떤 것은 욕심이 인식을 바꾸기도 합니다. 욕심을 깨기 전에 그랬습니다. 그 사람은 지식이 욕심이 지식을 넘어서서 싫다고 넘어지게 되었습니다. 모든 것이 다 그렇습니다. 그래서 욕심을 없애버리지 않으면 걸어가기가 어렵습니다. 그래서 뱀의 말을 듣고 보니까 선악과에 대한 인식이 자기도 죽었고 다 죽었습니다. 그래서 사망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어렵지만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모두 그렇게 된 것입니다. 그래야 바른 지식이 들어가고 바른 인식을 만드는 것입니다. 이게 잘못되면 모두 엉망칭찬이 되는 겁니다.
그대로 모든 사람을 상대하게 되고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창세기 3장 말씀을 통해서 꼭 기억합시다. 그에 따라서 모든 사람을 상대하게 됩니다. 각자 자기 속에 들어가서 자기의 생각 인식을 돌아보십시다. 통성으로 기도드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