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4월 23일 주일 오후
김동민2023-04-23조회 293추천 31
2023년 4월 23일 주일 오후
찬송: 18장, 172장
본문: 창세기 47장 9절 ~ 10절
자기가 하루하루 살아가지고 그렇게 보낸 일백삼십년 세월 야곱이 147세인가에 세상을 떠났는데 남은 17년은 좀 평안하게 보냈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130년 정도는 험악하게 보냈습니다. 짧은 세월이 아닙니다. 천년, 900세 산 사람도 있었으니까 시기에 따라 수명이 많이 달랐습니다. 야곱은 철이 들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자기 생애를 돌아보니까 탄식이 많았습니다. 백 목사님께서 80 다 되었을 때 나의 생애는 실패가 많았다고 합니다. 진작도 못합니다. 성자같은 그런 삶을 사시고도 실패가 많았다고 하시니 나 같은 사람은 대체 어떻게 될까. 우리 앞날을 생각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일반적으로 신앙은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닌데 변하는 것이 사랑입니다. 환경에 따라 변하고 세월따라 변하고 자기의 감정 기본이 다 변하는 게 사람입니다. 변하면서 사람이 점점 사람의 모습이 되는데 과정마다 어떻게 변하느냐에 따라서 그런 사람으로 굳어지게 됩니다. 나무도 그렇고 사람의 뼈도 그렇고 모양을 만들면 군대용 철사가 있습니다. 돌돌 감아놓으면 나무 가지가 뱅뱅 돌아갑니다.
그래서 사람의 신앙이라는 것은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서 변하듯이 안 변하는 사람으로 굳어지듯이 신앙도 그렇게 되어야합니다. 남한은 고집 센 남한은 방법이 없습니다. 대책이 없습니다. 완고한 것은 우상에 절하는 것과 같다고 했는데 어린 아이들에게 설득을 하는데 60, 70인 사람들을 가르치겠습니까. 고집에 주관에 찌들어가지고 얼굴에 표가 납니다.
변하는 사람으로 만들어주신 것은 변치 않는 사람으로 만드시기 위해서 변하는 사랑으로 만드신 것입니다. 나이가 많아지면 점점 안 변해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건 일반 상식입니다. 하나님을 향해 가는 것이 신앙이지요. 신앙이라는 것은 성향에 따라 영향을 많이 받습니다. 에서는 태어날 때부터 붉었습니다. 그래서 피가 끓고 혈기가 왕성하고 그게 에서였습니다. 야곱은 태어날 때부터 형의 발꿈치를 잡고 나왔습니다. 못나고 쩨쩨하고 그런데 샘이 나고 치밀하고 정확하고 끈기있고 이게 또 야곱의 장점입니다. 장사하는 사람은 위험을 무릅쓰고 투자도 하고 까먹기도 했고 몇 억 벌기도 하고 그게 장사하는 사람들입니다. 그 사람 성향에 따라 되어집니다. 에서처럼 그렇게 살면 안 맞고 안 변해지고 야곱처럼 살라고 하면 열불이 나서 못 삽니다. 선천적이라고 성향을 그렇게 말하는데 이것까지 넘어서고 바꿔야 하는 것이 신앙이고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이 본토와 친척 아비 집을 떠나라고 했습니다. 그 말씀을 우리에게 가져오면 성향을 바꾸라는 것입니다. 우리 교회도 제가 늘 어떤 분은 통도 크고 임기응변도 있고 본인은 알 겁니다. 그걸 고치면 굉장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좁은 사람은 넓게 되기 참 어렵습니다. 하나님께서 그걸 고치라고 안 맞는 현실을 계속해서 주십니다.
세월과 인생입니다. 믿음의 조상 중에서 험악한 세월을 보낸, 아브라함은 험악한 세월을 보냈다는 표현은 없습니다. 이삭은 하나님의 은혜로 순탄하게 자랐습니다. 번제를 드려라, 아브라함은 좋아가지고 나무를 캤다고 합니다. 네 아들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번제로 드려라. 억장이 무너지겠죠. 도가 지나치시네 그런 생각 안 들겠습니까. 아브라함은 좋아가지고 잠을 못 자고 나무를 캤다고 그럽니다. 이삭에게 짐을 지우다가 불도 있고 나무도 있는데 제물은, 양은 왜 없냐고 하니까 아브라함 심정은 어떻겠습니까. 이삭의 나이가 철없는 나이가 아닙니다. 그런데 이삭은 초월했습니다. 그래서 이삭은 어릴 때 이미 초월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시험하실 것이 없습니다. 평탄한 세월을 보냈습니다. 그것도 성향입니다. 우물을 팔 때도 또 파고 세 번째 파고 그것이 이삭의 신앙입니다. 야곱의 신앙은 그것이 아닙니다. 하나 하나를 따져보면 중심은 달랐습니다. 하나님 아니면 안된다는 것이 이삭 계통이고 다윗의 믿음 계통입니다.
형을 속여서 팥죽 한 그릇 주고 장자의 명분을 팔아먹고 어머니와 작정해서 축복을 빼앗아 간 것이 전부 다 잘못된 것입니다. 그런데 만약 그렇게 하지 않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그 말을 어머니 리브가가 했는지 모르겠습니다. 리브가가 서로가 싸우니까 두 민족이 태어나겠구나 라고 했습니다. 큰 자는 어린 자를 섬기리라 라고 했습니다. 아버지는 알았는데 그래도 장자니까 야곱이 그렇게 꾀를 쓰고 아버지를 속이고 그렇게까지 했어야 할까. 그렇다고 해서 어차피 나한테 올 복이니까 게을러서 나태한 것도 문제입니다. 그래서 야곱의 신앙을 두고 오해하면 안됩니다. 윤리적인 관점에서 형은 양반이고 좋은 사람이고 야곱은 꾀쟁이고 형을 속인 못된 사람입니다. 그런데 에서는 그 좋은 것 중에 하나님이 없었고 야곱은 그런 단점 속에 하나님이 계셨기 때문에 이렇게 된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 신앙 걸음을 놓지 않으려고 노력하니까 별별 일이 다 생깁니다. 사람을 잃어도 갈 길을 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주무시는 게 아닙니다. 피곤해서 눈이 감겨서 그러는 것이 아닙니다. 이 세상을 다 보고 계시고 생각을 하고 느낌을 가지고 판단하시는 분입니다. 복을 줘야겠구나 가져가야겠구나. 야곱의 생애를 한 번 더 돌아보십시다. 야곱이 험악한 세월을 보내게 되었을 때 야곱의 요소입니다. 이런 요소들 때문에 장자 명분, 야곱이 축복 뺏은 것. 이렇게까지 안하고는 다른 길이 없었을까. 사람이 옳은 길을 두고 옳은 판단과 옳은 길을 처리할 때 사람이 하나님께서 손을 떼버린다. 충성을 해야한다.
야곱이 보니까 똑똑하고 신앙이 있으니까 너희한테 내 딸 맡기면 되겠다 해서 7년을 지나고 라반이 라헬만 주면 안된다니까 언니를 먼저 줘버렸습니다. 그리고 7년 더 했습니다. 그렇게 라헬 때문에 14년을 거기서 지냈다고 합니다. 야곱은 라헬에게 콩깍지가 씌였습니다. 야곱은 집착이 심한 사람입니다. 야곱은 자폐기질이 있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그 라헬에게 가는 마음이 130세까지 갔습니다.
형과의 지나친 욕심과 행적 때문에 겁이 나서 도망쳤고 돌아오는 게 겁이 났었고 라헬에 대한 연애가 평생을 힘들게 만들었고 욕심이 없으면 고쳐지기 어렵습니다.
신앙도 좋고 다방면으로 보통이 아닙니다. 실제로 보면 요셉이 장남처럼 기록된 곳이 있습니다. 에스더가 뭐라고 그랬습니까. 죽으면 죽으리라. 그게 포기입니다. 설교록에 포기라는 단어가 참 많이 나옵니다. 포기해야할 건 포기해야지 계속 잡고 있으면 안됩니다. 야곱은 험악한 세월을 보냈습니다. 그 중심이 변치 않았기 때문에 많은 고생을 했습니다. 그래서 세월을 사는 것이고 가인과 아벨, 제사에 대한 것 때문에 세월 속에 가인은 가인이 되어있습니다. 가인이 가인처럼 가인이 되어버렸습니다. 그리 살았다고 합니다. 아벨이랑 같은 세월을 살았는데 아벨이 되어버렸습니다. 두 사람을 세월이, 가인은 가인을 만들었고 아벨은 아벨이 되었는데 하나님께서 주셨습니다. 알리지 않고 심판하지 않습니다. 노아를 통해 전파가 됩니다. 다 전파 됩니다. 120년이 되니까 쓸어버린다는 예고를 하셨는데 하나님의 아들들은 그 말을 듣고도 여전히 먹고 마시고 시집가고 장가가고 했습니다. 세월이라는 것은 모든 사람에게 필요한 건 다 주십니다. 세월 안 받고 시작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문제는 그 세월은 말하자면은 반환이 없는 것이지요. 반환이 없습니다. 이게 세월입니다. 그 세월 속에서 사람이라는 것은 세월을 따라 살면서 자연계시로 용서입니다. 필연입니다. 절대 진리입니다. 그래서 오늘도 이 세상은 세월 따라서 가인과 아벨이 달랐듯이 야셉관 형제들이 달랐듯이 동천, 같은 하늘 아래. 이 동천 아래 80억이 살고 있습니다. 한 세대가 가고 한 세대가 오는데, 80억 인구가 그 많은 사람들의 살아감에 따라서 천차 만별입니다. 우리들의 인생도 돌아볼 때 수 많은 우여곡절이 많아서 그렇습니다. 오늘의 하나님 앞에 담대하진 못해도 그만큼만 되어져도 돌아보면 나름대로 오늘에 내 모습에 부끄럽고 내놓을 것이 없고 자신의 모든 것을 다 뒤집어 놓으실 수 있으십니까? 우리들의 앞날을 바라보고 지난 날 살아온 내 세월이 나를 만든겁니다. 앞날도 내가 나를 만듭니다. 조언을 하고 도와줄찌라도 책임은 마지막에 내가 지는 겁니다.
찬송: 18장, 172장
본문: 창세기 47장 9절 ~ 10절
자기가 하루하루 살아가지고 그렇게 보낸 일백삼십년 세월 야곱이 147세인가에 세상을 떠났는데 남은 17년은 좀 평안하게 보냈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130년 정도는 험악하게 보냈습니다. 짧은 세월이 아닙니다. 천년, 900세 산 사람도 있었으니까 시기에 따라 수명이 많이 달랐습니다. 야곱은 철이 들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자기 생애를 돌아보니까 탄식이 많았습니다. 백 목사님께서 80 다 되었을 때 나의 생애는 실패가 많았다고 합니다. 진작도 못합니다. 성자같은 그런 삶을 사시고도 실패가 많았다고 하시니 나 같은 사람은 대체 어떻게 될까. 우리 앞날을 생각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일반적으로 신앙은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닌데 변하는 것이 사랑입니다. 환경에 따라 변하고 세월따라 변하고 자기의 감정 기본이 다 변하는 게 사람입니다. 변하면서 사람이 점점 사람의 모습이 되는데 과정마다 어떻게 변하느냐에 따라서 그런 사람으로 굳어지게 됩니다. 나무도 그렇고 사람의 뼈도 그렇고 모양을 만들면 군대용 철사가 있습니다. 돌돌 감아놓으면 나무 가지가 뱅뱅 돌아갑니다.
그래서 사람의 신앙이라는 것은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서 변하듯이 안 변하는 사람으로 굳어지듯이 신앙도 그렇게 되어야합니다. 남한은 고집 센 남한은 방법이 없습니다. 대책이 없습니다. 완고한 것은 우상에 절하는 것과 같다고 했는데 어린 아이들에게 설득을 하는데 60, 70인 사람들을 가르치겠습니까. 고집에 주관에 찌들어가지고 얼굴에 표가 납니다.
변하는 사람으로 만들어주신 것은 변치 않는 사람으로 만드시기 위해서 변하는 사랑으로 만드신 것입니다. 나이가 많아지면 점점 안 변해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건 일반 상식입니다. 하나님을 향해 가는 것이 신앙이지요. 신앙이라는 것은 성향에 따라 영향을 많이 받습니다. 에서는 태어날 때부터 붉었습니다. 그래서 피가 끓고 혈기가 왕성하고 그게 에서였습니다. 야곱은 태어날 때부터 형의 발꿈치를 잡고 나왔습니다. 못나고 쩨쩨하고 그런데 샘이 나고 치밀하고 정확하고 끈기있고 이게 또 야곱의 장점입니다. 장사하는 사람은 위험을 무릅쓰고 투자도 하고 까먹기도 했고 몇 억 벌기도 하고 그게 장사하는 사람들입니다. 그 사람 성향에 따라 되어집니다. 에서처럼 그렇게 살면 안 맞고 안 변해지고 야곱처럼 살라고 하면 열불이 나서 못 삽니다. 선천적이라고 성향을 그렇게 말하는데 이것까지 넘어서고 바꿔야 하는 것이 신앙이고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이 본토와 친척 아비 집을 떠나라고 했습니다. 그 말씀을 우리에게 가져오면 성향을 바꾸라는 것입니다. 우리 교회도 제가 늘 어떤 분은 통도 크고 임기응변도 있고 본인은 알 겁니다. 그걸 고치면 굉장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좁은 사람은 넓게 되기 참 어렵습니다. 하나님께서 그걸 고치라고 안 맞는 현실을 계속해서 주십니다.
세월과 인생입니다. 믿음의 조상 중에서 험악한 세월을 보낸, 아브라함은 험악한 세월을 보냈다는 표현은 없습니다. 이삭은 하나님의 은혜로 순탄하게 자랐습니다. 번제를 드려라, 아브라함은 좋아가지고 나무를 캤다고 합니다. 네 아들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번제로 드려라. 억장이 무너지겠죠. 도가 지나치시네 그런 생각 안 들겠습니까. 아브라함은 좋아가지고 잠을 못 자고 나무를 캤다고 그럽니다. 이삭에게 짐을 지우다가 불도 있고 나무도 있는데 제물은, 양은 왜 없냐고 하니까 아브라함 심정은 어떻겠습니까. 이삭의 나이가 철없는 나이가 아닙니다. 그런데 이삭은 초월했습니다. 그래서 이삭은 어릴 때 이미 초월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시험하실 것이 없습니다. 평탄한 세월을 보냈습니다. 그것도 성향입니다. 우물을 팔 때도 또 파고 세 번째 파고 그것이 이삭의 신앙입니다. 야곱의 신앙은 그것이 아닙니다. 하나 하나를 따져보면 중심은 달랐습니다. 하나님 아니면 안된다는 것이 이삭 계통이고 다윗의 믿음 계통입니다.
형을 속여서 팥죽 한 그릇 주고 장자의 명분을 팔아먹고 어머니와 작정해서 축복을 빼앗아 간 것이 전부 다 잘못된 것입니다. 그런데 만약 그렇게 하지 않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그 말을 어머니 리브가가 했는지 모르겠습니다. 리브가가 서로가 싸우니까 두 민족이 태어나겠구나 라고 했습니다. 큰 자는 어린 자를 섬기리라 라고 했습니다. 아버지는 알았는데 그래도 장자니까 야곱이 그렇게 꾀를 쓰고 아버지를 속이고 그렇게까지 했어야 할까. 그렇다고 해서 어차피 나한테 올 복이니까 게을러서 나태한 것도 문제입니다. 그래서 야곱의 신앙을 두고 오해하면 안됩니다. 윤리적인 관점에서 형은 양반이고 좋은 사람이고 야곱은 꾀쟁이고 형을 속인 못된 사람입니다. 그런데 에서는 그 좋은 것 중에 하나님이 없었고 야곱은 그런 단점 속에 하나님이 계셨기 때문에 이렇게 된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 신앙 걸음을 놓지 않으려고 노력하니까 별별 일이 다 생깁니다. 사람을 잃어도 갈 길을 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주무시는 게 아닙니다. 피곤해서 눈이 감겨서 그러는 것이 아닙니다. 이 세상을 다 보고 계시고 생각을 하고 느낌을 가지고 판단하시는 분입니다. 복을 줘야겠구나 가져가야겠구나. 야곱의 생애를 한 번 더 돌아보십시다. 야곱이 험악한 세월을 보내게 되었을 때 야곱의 요소입니다. 이런 요소들 때문에 장자 명분, 야곱이 축복 뺏은 것. 이렇게까지 안하고는 다른 길이 없었을까. 사람이 옳은 길을 두고 옳은 판단과 옳은 길을 처리할 때 사람이 하나님께서 손을 떼버린다. 충성을 해야한다.
야곱이 보니까 똑똑하고 신앙이 있으니까 너희한테 내 딸 맡기면 되겠다 해서 7년을 지나고 라반이 라헬만 주면 안된다니까 언니를 먼저 줘버렸습니다. 그리고 7년 더 했습니다. 그렇게 라헬 때문에 14년을 거기서 지냈다고 합니다. 야곱은 라헬에게 콩깍지가 씌였습니다. 야곱은 집착이 심한 사람입니다. 야곱은 자폐기질이 있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그 라헬에게 가는 마음이 130세까지 갔습니다.
형과의 지나친 욕심과 행적 때문에 겁이 나서 도망쳤고 돌아오는 게 겁이 났었고 라헬에 대한 연애가 평생을 힘들게 만들었고 욕심이 없으면 고쳐지기 어렵습니다.
신앙도 좋고 다방면으로 보통이 아닙니다. 실제로 보면 요셉이 장남처럼 기록된 곳이 있습니다. 에스더가 뭐라고 그랬습니까. 죽으면 죽으리라. 그게 포기입니다. 설교록에 포기라는 단어가 참 많이 나옵니다. 포기해야할 건 포기해야지 계속 잡고 있으면 안됩니다. 야곱은 험악한 세월을 보냈습니다. 그 중심이 변치 않았기 때문에 많은 고생을 했습니다. 그래서 세월을 사는 것이고 가인과 아벨, 제사에 대한 것 때문에 세월 속에 가인은 가인이 되어있습니다. 가인이 가인처럼 가인이 되어버렸습니다. 그리 살았다고 합니다. 아벨이랑 같은 세월을 살았는데 아벨이 되어버렸습니다. 두 사람을 세월이, 가인은 가인을 만들었고 아벨은 아벨이 되었는데 하나님께서 주셨습니다. 알리지 않고 심판하지 않습니다. 노아를 통해 전파가 됩니다. 다 전파 됩니다. 120년이 되니까 쓸어버린다는 예고를 하셨는데 하나님의 아들들은 그 말을 듣고도 여전히 먹고 마시고 시집가고 장가가고 했습니다. 세월이라는 것은 모든 사람에게 필요한 건 다 주십니다. 세월 안 받고 시작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문제는 그 세월은 말하자면은 반환이 없는 것이지요. 반환이 없습니다. 이게 세월입니다. 그 세월 속에서 사람이라는 것은 세월을 따라 살면서 자연계시로 용서입니다. 필연입니다. 절대 진리입니다. 그래서 오늘도 이 세상은 세월 따라서 가인과 아벨이 달랐듯이 야셉관 형제들이 달랐듯이 동천, 같은 하늘 아래. 이 동천 아래 80억이 살고 있습니다. 한 세대가 가고 한 세대가 오는데, 80억 인구가 그 많은 사람들의 살아감에 따라서 천차 만별입니다. 우리들의 인생도 돌아볼 때 수 많은 우여곡절이 많아서 그렇습니다. 오늘의 하나님 앞에 담대하진 못해도 그만큼만 되어져도 돌아보면 나름대로 오늘에 내 모습에 부끄럽고 내놓을 것이 없고 자신의 모든 것을 다 뒤집어 놓으실 수 있으십니까? 우리들의 앞날을 바라보고 지난 날 살아온 내 세월이 나를 만든겁니다. 앞날도 내가 나를 만듭니다. 조언을 하고 도와줄찌라도 책임은 마지막에 내가 지는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