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3월 26일 주일 오후
김동민2023-03-26조회 330추천 29
2023년 3월 26일 주일 오후
찬송: 54장, 100장
본문: 요한복음 3장 16절 ~ 18절
같은 표현이 많이 들어가면 중요하다는 의미도 들어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닙니다. 모두 말씀이 다 중요하지만 사람이 다르기 때문에 거기에 따라서 강조한 것일 수도 있습니다. 많이 기록했으면 그만큼 중요하다는 뜻이고 반복이 많으면 그만큼 중요하다는 뜻입니다. 요한복음은 사도 요한의 기록이고 다른 마태 마가 누가와 다르게 깊은 내용이라 했습니다. 기독교는 염세주의가 아니라고 했습니다. 특히 우리 공회는 일반적으로 상대적으로 하나님을 많이 강조하고 하늘나라를 많이 강조합니다. 세상은 비판적으로 많이 나옵니다. 세상을 사랑하지 말아라 속화되지 말아라 이럽니다. 비판적으로 부정적으로 보는 시각이 있을 수 있습니다. 지금도 그럴 수 있는데 서부교회의 인식은 서부교회만 교회였습니다. 다른 교회는 교회 취급을 하지 않았습니다. 백 목사님은 목사고 다른 목사들은 목사처럼 보이지 않았습니다. 백 목사님 자녀 중에서 목회하신 분이 목사가 되려면 아버지처럼 되어야하는데 그게 힘드니까 목회를 못한다고 했다고 하셨습니다. 장단점이 있습니다. 백 목사님도 목사고 세상에 많은 목사가 있는데 그분들도 대개 목사입니다. 세상에 백목사님만 있으면 되겠습니까. 나무를 가지고 뿌리가 있고 덩치가 있고 가지가 뻗어나가 있는데 나무의 모양을 수형이라고 그럽니다. 어떤 나무도 덩치만 있는 나무는 죽어버립니다. 덩치에서 가지로 뻗어야하고 그래야 나무 같은 나무가 되는 것입니다. 가지는 잎사귀를 피우고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어야합니다. 그래서 우리 공회의 약점이 있습니다. 백 목사님만 목사님이라고 합니다. 묘하게 장로님들은 신앙이 없습니다. 우리 교회 장로님은 신앙이 있습니다. 서부교회도 신앙의 장로님이 있습니다. 그런데 몇 분은 신앙 장로고 몇 분은 간판 장로입니다.
오늘 말씀은 세상이란 인식 속에 부정적으로 있을 수 있습니다. 찬송가 1장 2절은 63년 만에 불렀다는 것이 충격적이었습니다. 역대상에 들어가서 따져보니까 사무엘은 레위 지파였습니다. 그걸 기존 지식이라고 그러고 굉장히 무서운 것입니다. 그래서 선입견 관념이 사람이나 사물을 듣고나서 하는 겁니다. 그래서 먼저 듣는 지식이 중요합니다.
먼저가서 말 전하는 거, 뒤에 가서 말 전하는 거 굉장히 중요합니다. 왕이 죽고 나면 먼저 듣고 잘못 차지하면 역적이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나보다 먼저 온 자는 절도요 강도라고 했습니다, 잘못된 이종교들입니다. 세상을 말하는 것입니다. 세상에 대한 시각이 비판적입니다. 일방적이면 문제가 생기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하나님은 세상을 사랑하셨습니다. 이 세상은 마귀가 만든 세상이 아니라 하나님이 만드신 세상입니다. 이처럼 사랑하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독생자를 주셨습니다. 찬송 58장에 누구든지 저를 믿으면, 예외가 없다고 합니다. 살아생전 마지막에 세상 떠날 때 믿고 떠날 수도 있습니다 반대로 드물게 믿다가 마지막에 부정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유사 그리스도인이나 그런 것이 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누구든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모든 세상 사람은 되어 있습니다. 모든 세상 사람들은 있습니다. 맞는 말입니다.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셨습니다. 세상에 심판하려 하심이 아닙니다. 판단이 끝나면 판사가 두드리면 끝이 나버립니다. 없는 죄도 판사가 있다하면 있는 것이고 있는 죄도 판사가 없다고 하면 없는 것입니다. 그것이 세상 재판입니다. 공정하게 하는 것입니다. 법원에 상징이 뭔지 아시지요. 법원의 상징은 저울입니다. 치우치지 말고 하나님의 법은 지성의 하나님이기 때문에 공평합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심판하려고 하심이 아니라 처벌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에서 구원받게 하려고 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 율법을 가지고 죄를 드러내고 정죄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고 회개 시켜서 구원받게 하려 하시는 것입니다. 믿지 않으면 사망입니다. 이 세상이라는 것을 기억하시고, 오전에 몇 가지로 말씀드렸지요. 세상의 정의라고 할까 세상을 해부해 보니까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닌데 이 세상은 몇 가지로 설명했는지 아시는 분. 첫째 세상이란 우리가 사는 곳입니다. 사람이 사는 공간이 세상입니다. 사람만 있는 게 아니라 많은 생물이 있습니다. 두 번째 하늘과 땅과 바다와 해와 달과 별과 사계절의 역사가 있는 곳이라고 했습니다. 세 번째 육 천년 역사의 흐름입니다. 주님 재림하실 때까지에 시간이 계속 되는 것입니다. 네 번째 물질계의 역사입니다.
시간과 공간과 존재와 역사로 있는 것이 세상입니다. 우리 주변에 만물들이 있고 그 모든 존재들이 활동하는 활동이 있습니다. 크게 말하면 시공간과 존재가 있습니다. 그것이 물질계 세상입니다. 이게 세상입니다. 사람사는 세상입니다. 세상은 이런 것을 인해서 수 많은 일들이 일어났고 일어날 것입니다. 수 많은 존재가 있을 것이고 흐름 속에 있었을 것입니다. 이것을 세상이라고 합니다. 두 번째, 세상이란 교회와의 관계입니다. 교회 밖의 세상입니다. 신앙 세계 바깥입니다. 예배강 바깥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역사와 간섭하는 것을 세상이라고 합니다.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들은 가정이 있습니다. 세상적인 가정입니다. 하나님을 모르는 학교가 있습니다. 하나님이 없는 곳을 가르켜서 세상이라고 합니다. 또 하나 세상은 교회를 관계로 주변 환경, 나를 기준으로 세상이라고 합니다. 가정이 있고 학교가 있고 직장이 있고 사회가 있고 나라가 있습니다. 이런 것을 세상이라고 합니다. 세상이라는 그 안에는 많은 존재가 있습니다. 반드시 활동이 있습니다. 정치, 활동이 있습니다. 역사. 예술, 문화. 문화라는 것은 형체를 가진 것이 아닙니다. 종교란 형체를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무형의 것들에 세상 사람들에게 환장을 합니다. 사람들의 깊이가 얕아졌고 가치가 떨어졌습니다. 깊이있는 그런 곳은 복잡하니까 고개를 다 돌려버립니다. 그림 자체를 예수라고 하지 않습니다. 노래하는 것, 정치란 형체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세상이란 가정이 있습니다. 가족이 있고, 학교, 직장, 사회, 나라가 있습니다. 이런 단체 안에는 사람들이 다 있습니다. 살고 있으면 사람들이 작용을 합니다. 가정 생활은 어떻게 생겼습니까. 생활은 형체를 가진 것이 아닙니다. 학교 교육이란 선생님이 학생을 가르치는 것입니다. 종소리가 어떻게 생겼습니까? 종소리를 그려볼 수 있겠습니까? 종에서 나는 소리를 종소리라고 합니다. 존재란 뭐든 있다는 뜻입니다. 생물은 자체적인 활동이 있고 다른 것이 의해서 한 작용이 이습니다. 이런 것이 계속 일어나는 공간을 세상이라고 합니다. 그 중에서 나와 가까운 세상, 바로 가정, 학교, 교회도 들어갈 수 있습니다. 이웃들, 이런 것을 가까운 세상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교회란 이 세상 속에 있는 것입니다. 세상을 떠나서 교회는 의미가 없고 별 가치가 없습니다. 산 속에 집을 지어놓으면 수도원이지 교회가 아닙니다. 사람들이 모여서 이 세상 속에 있는 것이 교회입니다. 해운대 여름에 해수욕장에 가면 사람들이 많습니다. 참 고약한 소리 경기도 쪽에 보니까 교회가 큰데 카페라는 말 자주 쓰지요. 커피도 팔고 하는 것, 예배당 건물을 카페로 만들었답니다. 그래서 호기심이 발동해서 구경한다고 카페로 변질된 교회를 구경한다고 차가 막혔다고 합니다. 예배당이 교회 운영을 못해서 팔았다고 합니다. 참 복 없는 것이지요. 성경책을 팔아서 돈 버는 사람들, 복이 없습니다. 돈벌이 목적으로 악용했습니다.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라. 등대라는 것은 바다에 있어야합니다. 그래야 바다를 비출 수 있습니다. 등불은 어떨 때 필요한 것입니까. 어두운 곳에 필요한 것입니다. 교회는 빛입니다. 하나님 없는 곳을 암흑이라고 그럽니다. 그곳을 비추는 것이 교회입니다. 겨자씨는 땅 속에 심으셔야합니다. 열매를 맺습니다. 교회는 반드시 세상 속에 있어야합니다. 교회가 세상 속에 있어야 합니다. 믿는 사람이 믿는 사람끼리 학교를 만들고 그런 것은 필요에 따라 할 수 있는데 바람직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중요한 것입니다. 어려운 것이고. 배를 타고 다니면 배는 크게 만들 수 있고 많은 짐을 실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배 타는 사람들은 부자가 많습니다. 그런데 옛날에 어촌에 보면 가난했습니다. 바다는 넓고 그러니까 함대 하나만 있어도 배 안에 비행기를 수십대씩 실고 다니는데 그 배가 침몰하면 의미가 없지요. 다시 말하면 신앙과 세상의 관계가 그만큼 어렵고 조심스럽다는 것입니다.
두 번째로 세상은 천국을 준비하는 곳입니다. 우리의 나라, 우리의 소망입니다. 준비하는 것은 세상에서만 할 수 있습니다. 그 말은 살아있을 때만 가능합니다. 세상을 떠나면 천국 준비는 그날로 끝입니다. 살아있을 때만 세상에서 준비할 수 있는 것이 천국 준비입니다. 세상에 태어나지 않은 사람은 천국 준비도 없다고 할 수 있는 것이지요. 이 세상을 오용하면 정체를 들다보니까 양면을 가지고 있습니다.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거든 마귀입니다.
세상에 두 번째까지 말씀을 드렸습니다. 미혹하는 세상입니다.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도다 이런 말도 있고 미혹하도다 라는 것도 있습니다. 원수가 누구라고요? 집안 식구입니다. 서로 사랑해서 좋아해서 입의 밥을 내어먹을 만큼 그런 관계가 원수가 될 수 있습니다. 나를 기준으로 신앙으로써의 세상이 되는 것입니다. 예배를 잘 드리는데 친구가 집적거리면 세상입니다. 미혹하는 세상입니다. 중학교만 졸업하고 말아야 할 사람이 대학을 졸업하면 그 사람의 신아을 잡아먹어 버립니다. 한 달에 2백만원만 벌면 족합니다. 그 사람이 돈을 300만원 어치 해서 그러면 그 사람의 300만원어치 집을 잡아 먹는 것입니다. 세상 그에게 종이 됩니다. 이긴 자의 종입니다. 믿는 사람은 신앙의 종이 됩니다.
믿는 것이 인생의 참 가치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현실에서 나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들이 살아가야 하는 것을 보고 아, 저것이 내가 살아가야 하는 것이구나 합니다. 저렇게 사는 것이 사람 답구나, 속으로 존경을 합니다. 그게 소원이고 빛입니다.
두 번째 그러면서 세상을 전도합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하나는 떨어져서는안되고 배를 타고 가는데 배가 바다 속에 들어가도 안됩니다. 두 번째, 세상을 사랑치 말아야합니다. 사랑하라 그랬는데 하나님이 사랑을 사랑하라고 그랬는데 무슨 말이냐면 구원하는 게 사랑하는 것이고 세상을 따라가지 말아야합니다. 모두들 세상을 따라가는 것으로 결혼이 안될겁니다. 가장 좋은 결혼 정년기는 스무 살입니다. 꽃은 한참 뜰 때 아름다운데, 제일 예쁠 때입니다. 꽃다운 나이라고 그럽니다. 사람은 별 사람이 없는 건데, 신앙 생활에 유익된 것입니다. 세상을 사랑치 말아야하고 유행을 따라가지 말아야합니다. 그곳에 따라가면 생명 없는 고기는 물결 따라 흘러갑니다. 살아있는 고기는 어떤 일이 있어도 거슬러 올라갑니다. 믿는 사람이 따라가야 하는 것은 생명입니다. 오늘 말씀의 요점은 이 세상에 비판적이고 부정적인 인식을 조화시켜서 미워할 세상이 아니라는 겁니다.
찬송: 54장, 100장
본문: 요한복음 3장 16절 ~ 18절
같은 표현이 많이 들어가면 중요하다는 의미도 들어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닙니다. 모두 말씀이 다 중요하지만 사람이 다르기 때문에 거기에 따라서 강조한 것일 수도 있습니다. 많이 기록했으면 그만큼 중요하다는 뜻이고 반복이 많으면 그만큼 중요하다는 뜻입니다. 요한복음은 사도 요한의 기록이고 다른 마태 마가 누가와 다르게 깊은 내용이라 했습니다. 기독교는 염세주의가 아니라고 했습니다. 특히 우리 공회는 일반적으로 상대적으로 하나님을 많이 강조하고 하늘나라를 많이 강조합니다. 세상은 비판적으로 많이 나옵니다. 세상을 사랑하지 말아라 속화되지 말아라 이럽니다. 비판적으로 부정적으로 보는 시각이 있을 수 있습니다. 지금도 그럴 수 있는데 서부교회의 인식은 서부교회만 교회였습니다. 다른 교회는 교회 취급을 하지 않았습니다. 백 목사님은 목사고 다른 목사들은 목사처럼 보이지 않았습니다. 백 목사님 자녀 중에서 목회하신 분이 목사가 되려면 아버지처럼 되어야하는데 그게 힘드니까 목회를 못한다고 했다고 하셨습니다. 장단점이 있습니다. 백 목사님도 목사고 세상에 많은 목사가 있는데 그분들도 대개 목사입니다. 세상에 백목사님만 있으면 되겠습니까. 나무를 가지고 뿌리가 있고 덩치가 있고 가지가 뻗어나가 있는데 나무의 모양을 수형이라고 그럽니다. 어떤 나무도 덩치만 있는 나무는 죽어버립니다. 덩치에서 가지로 뻗어야하고 그래야 나무 같은 나무가 되는 것입니다. 가지는 잎사귀를 피우고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어야합니다. 그래서 우리 공회의 약점이 있습니다. 백 목사님만 목사님이라고 합니다. 묘하게 장로님들은 신앙이 없습니다. 우리 교회 장로님은 신앙이 있습니다. 서부교회도 신앙의 장로님이 있습니다. 그런데 몇 분은 신앙 장로고 몇 분은 간판 장로입니다.
오늘 말씀은 세상이란 인식 속에 부정적으로 있을 수 있습니다. 찬송가 1장 2절은 63년 만에 불렀다는 것이 충격적이었습니다. 역대상에 들어가서 따져보니까 사무엘은 레위 지파였습니다. 그걸 기존 지식이라고 그러고 굉장히 무서운 것입니다. 그래서 선입견 관념이 사람이나 사물을 듣고나서 하는 겁니다. 그래서 먼저 듣는 지식이 중요합니다.
먼저가서 말 전하는 거, 뒤에 가서 말 전하는 거 굉장히 중요합니다. 왕이 죽고 나면 먼저 듣고 잘못 차지하면 역적이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나보다 먼저 온 자는 절도요 강도라고 했습니다, 잘못된 이종교들입니다. 세상을 말하는 것입니다. 세상에 대한 시각이 비판적입니다. 일방적이면 문제가 생기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하나님은 세상을 사랑하셨습니다. 이 세상은 마귀가 만든 세상이 아니라 하나님이 만드신 세상입니다. 이처럼 사랑하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독생자를 주셨습니다. 찬송 58장에 누구든지 저를 믿으면, 예외가 없다고 합니다. 살아생전 마지막에 세상 떠날 때 믿고 떠날 수도 있습니다 반대로 드물게 믿다가 마지막에 부정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유사 그리스도인이나 그런 것이 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누구든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모든 세상 사람은 되어 있습니다. 모든 세상 사람들은 있습니다. 맞는 말입니다.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셨습니다. 세상에 심판하려 하심이 아닙니다. 판단이 끝나면 판사가 두드리면 끝이 나버립니다. 없는 죄도 판사가 있다하면 있는 것이고 있는 죄도 판사가 없다고 하면 없는 것입니다. 그것이 세상 재판입니다. 공정하게 하는 것입니다. 법원에 상징이 뭔지 아시지요. 법원의 상징은 저울입니다. 치우치지 말고 하나님의 법은 지성의 하나님이기 때문에 공평합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심판하려고 하심이 아니라 처벌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에서 구원받게 하려고 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 율법을 가지고 죄를 드러내고 정죄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고 회개 시켜서 구원받게 하려 하시는 것입니다. 믿지 않으면 사망입니다. 이 세상이라는 것을 기억하시고, 오전에 몇 가지로 말씀드렸지요. 세상의 정의라고 할까 세상을 해부해 보니까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닌데 이 세상은 몇 가지로 설명했는지 아시는 분. 첫째 세상이란 우리가 사는 곳입니다. 사람이 사는 공간이 세상입니다. 사람만 있는 게 아니라 많은 생물이 있습니다. 두 번째 하늘과 땅과 바다와 해와 달과 별과 사계절의 역사가 있는 곳이라고 했습니다. 세 번째 육 천년 역사의 흐름입니다. 주님 재림하실 때까지에 시간이 계속 되는 것입니다. 네 번째 물질계의 역사입니다.
시간과 공간과 존재와 역사로 있는 것이 세상입니다. 우리 주변에 만물들이 있고 그 모든 존재들이 활동하는 활동이 있습니다. 크게 말하면 시공간과 존재가 있습니다. 그것이 물질계 세상입니다. 이게 세상입니다. 사람사는 세상입니다. 세상은 이런 것을 인해서 수 많은 일들이 일어났고 일어날 것입니다. 수 많은 존재가 있을 것이고 흐름 속에 있었을 것입니다. 이것을 세상이라고 합니다. 두 번째, 세상이란 교회와의 관계입니다. 교회 밖의 세상입니다. 신앙 세계 바깥입니다. 예배강 바깥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역사와 간섭하는 것을 세상이라고 합니다.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들은 가정이 있습니다. 세상적인 가정입니다. 하나님을 모르는 학교가 있습니다. 하나님이 없는 곳을 가르켜서 세상이라고 합니다. 또 하나 세상은 교회를 관계로 주변 환경, 나를 기준으로 세상이라고 합니다. 가정이 있고 학교가 있고 직장이 있고 사회가 있고 나라가 있습니다. 이런 것을 세상이라고 합니다. 세상이라는 그 안에는 많은 존재가 있습니다. 반드시 활동이 있습니다. 정치, 활동이 있습니다. 역사. 예술, 문화. 문화라는 것은 형체를 가진 것이 아닙니다. 종교란 형체를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무형의 것들에 세상 사람들에게 환장을 합니다. 사람들의 깊이가 얕아졌고 가치가 떨어졌습니다. 깊이있는 그런 곳은 복잡하니까 고개를 다 돌려버립니다. 그림 자체를 예수라고 하지 않습니다. 노래하는 것, 정치란 형체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세상이란 가정이 있습니다. 가족이 있고, 학교, 직장, 사회, 나라가 있습니다. 이런 단체 안에는 사람들이 다 있습니다. 살고 있으면 사람들이 작용을 합니다. 가정 생활은 어떻게 생겼습니까. 생활은 형체를 가진 것이 아닙니다. 학교 교육이란 선생님이 학생을 가르치는 것입니다. 종소리가 어떻게 생겼습니까? 종소리를 그려볼 수 있겠습니까? 종에서 나는 소리를 종소리라고 합니다. 존재란 뭐든 있다는 뜻입니다. 생물은 자체적인 활동이 있고 다른 것이 의해서 한 작용이 이습니다. 이런 것이 계속 일어나는 공간을 세상이라고 합니다. 그 중에서 나와 가까운 세상, 바로 가정, 학교, 교회도 들어갈 수 있습니다. 이웃들, 이런 것을 가까운 세상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교회란 이 세상 속에 있는 것입니다. 세상을 떠나서 교회는 의미가 없고 별 가치가 없습니다. 산 속에 집을 지어놓으면 수도원이지 교회가 아닙니다. 사람들이 모여서 이 세상 속에 있는 것이 교회입니다. 해운대 여름에 해수욕장에 가면 사람들이 많습니다. 참 고약한 소리 경기도 쪽에 보니까 교회가 큰데 카페라는 말 자주 쓰지요. 커피도 팔고 하는 것, 예배당 건물을 카페로 만들었답니다. 그래서 호기심이 발동해서 구경한다고 카페로 변질된 교회를 구경한다고 차가 막혔다고 합니다. 예배당이 교회 운영을 못해서 팔았다고 합니다. 참 복 없는 것이지요. 성경책을 팔아서 돈 버는 사람들, 복이 없습니다. 돈벌이 목적으로 악용했습니다.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라. 등대라는 것은 바다에 있어야합니다. 그래야 바다를 비출 수 있습니다. 등불은 어떨 때 필요한 것입니까. 어두운 곳에 필요한 것입니다. 교회는 빛입니다. 하나님 없는 곳을 암흑이라고 그럽니다. 그곳을 비추는 것이 교회입니다. 겨자씨는 땅 속에 심으셔야합니다. 열매를 맺습니다. 교회는 반드시 세상 속에 있어야합니다. 교회가 세상 속에 있어야 합니다. 믿는 사람이 믿는 사람끼리 학교를 만들고 그런 것은 필요에 따라 할 수 있는데 바람직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중요한 것입니다. 어려운 것이고. 배를 타고 다니면 배는 크게 만들 수 있고 많은 짐을 실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배 타는 사람들은 부자가 많습니다. 그런데 옛날에 어촌에 보면 가난했습니다. 바다는 넓고 그러니까 함대 하나만 있어도 배 안에 비행기를 수십대씩 실고 다니는데 그 배가 침몰하면 의미가 없지요. 다시 말하면 신앙과 세상의 관계가 그만큼 어렵고 조심스럽다는 것입니다.
두 번째로 세상은 천국을 준비하는 곳입니다. 우리의 나라, 우리의 소망입니다. 준비하는 것은 세상에서만 할 수 있습니다. 그 말은 살아있을 때만 가능합니다. 세상을 떠나면 천국 준비는 그날로 끝입니다. 살아있을 때만 세상에서 준비할 수 있는 것이 천국 준비입니다. 세상에 태어나지 않은 사람은 천국 준비도 없다고 할 수 있는 것이지요. 이 세상을 오용하면 정체를 들다보니까 양면을 가지고 있습니다.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거든 마귀입니다.
세상에 두 번째까지 말씀을 드렸습니다. 미혹하는 세상입니다.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도다 이런 말도 있고 미혹하도다 라는 것도 있습니다. 원수가 누구라고요? 집안 식구입니다. 서로 사랑해서 좋아해서 입의 밥을 내어먹을 만큼 그런 관계가 원수가 될 수 있습니다. 나를 기준으로 신앙으로써의 세상이 되는 것입니다. 예배를 잘 드리는데 친구가 집적거리면 세상입니다. 미혹하는 세상입니다. 중학교만 졸업하고 말아야 할 사람이 대학을 졸업하면 그 사람의 신아을 잡아먹어 버립니다. 한 달에 2백만원만 벌면 족합니다. 그 사람이 돈을 300만원 어치 해서 그러면 그 사람의 300만원어치 집을 잡아 먹는 것입니다. 세상 그에게 종이 됩니다. 이긴 자의 종입니다. 믿는 사람은 신앙의 종이 됩니다.
믿는 것이 인생의 참 가치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현실에서 나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들이 살아가야 하는 것을 보고 아, 저것이 내가 살아가야 하는 것이구나 합니다. 저렇게 사는 것이 사람 답구나, 속으로 존경을 합니다. 그게 소원이고 빛입니다.
두 번째 그러면서 세상을 전도합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하나는 떨어져서는안되고 배를 타고 가는데 배가 바다 속에 들어가도 안됩니다. 두 번째, 세상을 사랑치 말아야합니다. 사랑하라 그랬는데 하나님이 사랑을 사랑하라고 그랬는데 무슨 말이냐면 구원하는 게 사랑하는 것이고 세상을 따라가지 말아야합니다. 모두들 세상을 따라가는 것으로 결혼이 안될겁니다. 가장 좋은 결혼 정년기는 스무 살입니다. 꽃은 한참 뜰 때 아름다운데, 제일 예쁠 때입니다. 꽃다운 나이라고 그럽니다. 사람은 별 사람이 없는 건데, 신앙 생활에 유익된 것입니다. 세상을 사랑치 말아야하고 유행을 따라가지 말아야합니다. 그곳에 따라가면 생명 없는 고기는 물결 따라 흘러갑니다. 살아있는 고기는 어떤 일이 있어도 거슬러 올라갑니다. 믿는 사람이 따라가야 하는 것은 생명입니다. 오늘 말씀의 요점은 이 세상에 비판적이고 부정적인 인식을 조화시켜서 미워할 세상이 아니라는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