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3월 12일 주일 오후
김동민2023-03-12조회 257추천 24
2023년 3월 12일 주일 오후
찬송: 146장, 197장
본문: 요한1서 (장절은 듣지 못함)
누구나 찾기 쉽고 알기 쉬워서 많은 사람들이 넓은 길로 걸어가는데 멸망의 길입니다. 생명으로 인도하는 곳은 좁고 멸망으로 인도하는 길은 넓습니다. 찾기도 어렵고 알기도 어렵습니다. 그래도 거기가 생명길입니다. 고행주의가 아닙니다. 좁은 길은 다른 길입니다. 정로입니다. 정로라는 것은 성경에 맞는 길입니다. 하나님은 진실하신 분이고 진리인데 진리는 참된 이치입니다. 사람이 진실해야 말씀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자신의 사사로운 것을 부인하고 하나님이 말씀을 통해 가르치는 것이 무엇이냐 자신을 중심에 두고 이 세상에 별별 것을 말씀한 자기한테 어두워지가 하는 겁니다. 바른 말씀만 찾아가는 것이 진실입니다. 구원에 대해서는 아마 모르기는 몰라도 세상에 가장 가짜가 많은 게 종교이고 구원의 도입니다. 영생을 말하고 있으니까 사후세계, 한 번만 주신 생애 동안에 기회를 놓치면 기회가 없습니다. 바른 신앙을 걸으면 찾는 것 굉장히 어렵습니다. 쉽지 않습니다. 기계를 만드는 것도 복잡한 기계를 만드는 것은 굉장한 비용이 듭니다. 우주로 로켓을 쏘려면 많은 세월이 걸리고 자본이 필요합니다. 노력과 자본과 인력이 투자가 되어야하는 것이 기계입니다. 어떤 아버지가 자기 아이를 일주일 안에 성경 한 동을 읽히려고 작정했습니다. 그런데 일주일 안에 성경 한 독을 읽으라고 하면 초등학생이 되겠습니까. 그래서 많은 계산과 시험과 대화와 노력을 해보고 되겠다 싶으니까 한 번 해본겁니다. 그래서 아침부터 50분 읽고 10분 쉬고, 그렇게 한 주간 성경 한 독을 읽었다. 일주일안에 성경 한 독 읽는 것이 그렇게 어렵습니다. 일주일 만에 성경 한 독 읽혀보십시오 그게 될지. 한 번 하는게 그렇게 어렵단 말입니다. 신앙생활에 허영이 있으면 신앙생활 못합니다.
오늘날 수 많은 사람들이 믿으면 구원받는다고 합니다. 천주교에서 건진 것은 참 잘했는데 수 많은 사람들을 미혹시켜서 얼마나 많은 사람을 미혹시킨건지 알아야합니다.
모든 물질을 이루고 있는 가장 작은 단위를 원자라고 합니다. 그 원소 안에 크기를 말하자면 2천만 분의 1미리라고 합니다. 그걸 2천만 분의 1미리라고 합니다. 볼펜 점 하나 딱 찍어보시죠. 그 안에 얼마나 많은 게 들어가느냐. 상상을 해 보셔야합니다. 그게 물질의 세계입니다. 정 하나에 수 없이 많은 원자가 들어간다고 합니다.
찬송가 153장 일보 일보 주님으로 함께 동행하고 순간순간 주님과 함께 동행한다고 합니다. 그렇게 들어간 것이 구원입니다. 대충 얼렁뚱땅 찬송하면서 울고 은혜받았습니다 하는 거 아무 가치 없습니다. 감정 기분에서 떠나 말씀에다 굳게 세워. 이것이 바로 깨달은 성도들의 생각입니다. 경험입니다. 미혹을 받으면 마귀의 편이 되어버립니다. 알든지 모르든지 결과적으로 마귀의 편이 되어버립니다. 미혹받은 결과가 그렇게 되어집니다. 허영과 미혹이 있으면 미혹을 받습니다. 따져봐야하는데 따져보지 않으면 조심을 해야겠습니다. 1절 말씀에 사도 요한이 믿음의 자녀에 대해 말씀합니다. 믿음의 자녀를 두고 믿음의 자녀를 만들면 나와 상관없는 사람이 만들어집니다. 원한다고 되는 것은 아니지만 노력을 해야합니다. 오전에는 진리를 생각해봤습니다. 은혜와 평강이 함께하게 되는 그것들은 하나님 아버지께 있고 그것이 누구를 통해 내려옵니까. 하나님 아버지께 있는데 성자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가 된 것입니다. 그리고 거기서부터 진리와 사람을 통해서 우리를 가르칠 때 이름을 말씀이라고 합니다. 말씀으로 천국을 가르치고 하나님의 구원에서 가르치는 것을 말씀이라고 합니다. 그 말씀이 우리에게 명령이 될 때 계명이라고 합니다. 그 계명을 하나님께서 법으로 하실 때 율법이라고, 법률이라고 합니다. 그게 조금 더 갖춰졌을 때 규례라고 합니다. 비유가 좀 어떨지 모르겠지만 물이라는 것이 기체가 되기도하고 액체도 되고 고체도 됩니다. 그렇게 되는 거처럼 어떨 때는 말씀으로 어떨 때는 율법으로 어떨 때는 규례로 됩니다. 진리라는 것은 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모든 은혜와 긍휼과 평강이 하나님 아버지께로부터 구주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내려오는 겁니다. 사랑이란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이시고 그 말은 하나님의 사랑이니까 사랑은 형체가 없는 겁니다. 무인격 존재입니다. 하나님은 사랑이라고 그럴 때 형체가 없는 겁니다. 실체가 없는 건데 인격자 있어야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나타났으니 도성인신으로 나타납니다. 우리에게 보내신 것이 사랑입니다. 진리라는 것은 통로가 같은 것입니다. 통로가 있어야 관이 있어야 내려오는 것처럼 진리를 주신 것은 진리를 통해 받을 수 있는 것이 있습니다. 우리에게 역사하실 때 모두 진리로 오십니다.
계명 속에서 지킬 자기 진리가 있습니다. 진리로 행하는데 자기 진리라고 하면 어렵습니다. 진리대로 행하는 자. 모든 생활을 따져서 생각하는 자. 대충 대충 사는 것이 사는 게 아니라 말씀 속에서 하나님의 가르침을 찾아서 그대로 사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심히 기쁘도다 그리고 5절, 사도 요한이 믿음의 자녀를 때로는 너라고 그랬고 여기는 부녀라고 했습니다. 부녀라는 말은 상당히 조심해야하는 말입니다. 그냥 부른 것이 아니고 조심해서 듣는 표현입니다. 상대방을 부르는 사람을 부를 때 호칭을 조심하는 것이 좋습니다. 부부 사이에서 자기야라는 말 안 쓰시죠. 고쳐야합니다. 오빠 이런 것도 별로 좋지 않습니다. 교회 호칭은 괜찮습니다. 상대방을 존중하는 게 들어있는 겁니다. 호칭을 함부로하면 말이 쉽게 갑니다. 아무리 만만한 사이라도 호칭을 가볍게 하면 위험합니다. 우리는 전도사, 조사를 하면서 20대 초반에 반사하면서 책임자가 있었는데 제 이름을 부릅니다. 그때 제가 서른 살이 되었습니다. 이름을 부릅니다. 제 마음이 어떻겠습니까. 저보다 뛰어난 분입니다. 하지만 그랬을 때 기분이 나빴습니다. 나이가 좀 위에 있고 직책이 높다고 하더라도 호칭을 함부로 하는 것, 백 목사님은 조심하는 겁니다. 사소한 것을 소홀히하면 대형 사고가 나는 것입니다. 작은 것을 소홀히 여기면 큰 문제가 생기는 것입니다. 호칭 하나가 굉장히 중요한 것입니다. 서부 교회 건물에는 못 하나 박는 것도 허락을 받아야합니다. 그만큼 세밀하고 철저한 것입니다. 하나님 역사가 그렇습니다. 허비하지 않는 분입니다. 공기 하나도 헛되이 내리지 않고 헛되이 올리지 않습니다. 점 하나의 크기에 수 많은 원자가 들어간다는데 그것도 살피시는 분입니다. 그래서 사소한 것을 쉽게 생각하면 큰 문제가 생깁니다. 호칭 하나가 중요합니다. 부녀여, 이렇게 하는데 사도 요한의 말씀은 성경이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기록하신 것입니다. 우리보고 이 말씀보고 조심하라고 그렇습니다. 자기 아들 딸 마구잡이로 부르면 상놈이 됩니다. 조심스럽게 높이면 양반이 되고 높은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신앙은 도덕을 넘어서 고차원의 무언가입니다.
부모가 자녀에게 고할 때는 고하는 상황이 달라집니다. 아이가 공부 안하니까 아버지가 아들한테 무슨 부탁을 하겠습니까. 부모가 자녀에게 누굴 위해서 하겠습니까. 자식을 위해서. 오늘의 나는 나고 내일의 나는 내 자식입니다. 그러면 오늘의 나는 나인데 내일의 나는 없는 거죠. 이런 걸 자꾸 위에서 언론에서 방송에서 정치가들이 교육가들이 떠들어야합니다. 귀 속에서 옳은 말을 전파해야합니다. 누가 봐도 이치인 말은 퍼져나가게 되어있습니다. 우리 여기 아이 다섯 낳은 사람 부자라서 낳았습니까. 가치관이 문제인 것이죠. 요즘도 뭐 때문에 안 낳고 취업이 어떻고 그런 소리를 했습니다. 그를 위해서 구하노니 서로 사랑하자. 여기서부터 계속 하는 겁니다. 서로 사랑하자는 말은 별 쓰는 말이 아닙니다. 믿는 사람이면 서로 사랑하자는 말은 깊이 들어가서 모르지만 서로 알고있는 말입니다. 처음부터 우리가 가진 것입니다. 중생된 사람은 사랑을 모를 수가 없습니다. 처음부터 가진 것입니다. 요한 1서 2장 7절에 보면 옛계명이라는 말씀을 하고 새계명이라는 말씀을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지킬 명령을 하셨으니 믿는 사람, 명령을 주셨으니 말씀을 주셨으니 그게 계명이고 순종하는 것이 사랑입니다. 사랑이라는 것은 완전자, 전지전능자만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사랑이란 인격 존재가 최상의 것을 대해주는 것이 사랑이다. 그런데 참사랑이란 상대방을 좋게 행복하게 만들어줘야하는데 하나님만 가질 수 있는 것이 사랑이고 사랑의 종류를 따져보니까 가짜 사랑이 많은데 크게 따지면 인간 사랑, 인간 사랑은 혈육 사랑이 있고 동족 사랑이 있고 이성 사랑이 있는데 가짜 사랑입니다. 계명이란 지켜야할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그 계명 속에 진리와 영광이 있고 계명을 말씀으로 표시하고 진리 안에 영감은 내게 있고 사랑으로 인도하고 안내하는 것이 계명입니다. 고차원의 기독교 도라고 합니다. 서울대 철학과 강의보다 어려울지 모릅니다. 우리가 세상적으로 무식할지는 몰라도 사랑에 대해서는 알아야합니다.
하나님만 할 수 있는 것이 사랑입니다. 세상에 가짜가 많아서 둘입니다. 진짜로 하나님처럼 하는 것이고 인간 사랑은 수도 없이 많습니다. 계명이란 지켜야할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그 말씀 속에 내가 지킬 진리가 있습니다. 그 속에는 말씀 속에 진리가 있습니다. 말씀이 진리인데 이치가, 영감이 있습니다. 그 영감은 우리를 안내하게 합니다. 사활의 대속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쏟아 부은 것을 충족하는 것입니다. 계명이란 우리가 지킬 하나님 명령이 있는데 계명을 지키면 의를 행하게 되고 하나님 화친이 됩니다. 그래서 계명지키는 것이 사랑이고 사활의 대속입니다. 오늘 오후에는 사랑하는데 사도 요한이 사랑하는데 진리와 하나님의 관계 모든 은혜를 받을 수 있는 것을 설명하셨고 4절부터는 참된 기쁨, 이걸 말씀을 하고 호칭을 조심하자고 하셨습니다.
찬송: 146장, 197장
본문: 요한1서 (장절은 듣지 못함)
누구나 찾기 쉽고 알기 쉬워서 많은 사람들이 넓은 길로 걸어가는데 멸망의 길입니다. 생명으로 인도하는 곳은 좁고 멸망으로 인도하는 길은 넓습니다. 찾기도 어렵고 알기도 어렵습니다. 그래도 거기가 생명길입니다. 고행주의가 아닙니다. 좁은 길은 다른 길입니다. 정로입니다. 정로라는 것은 성경에 맞는 길입니다. 하나님은 진실하신 분이고 진리인데 진리는 참된 이치입니다. 사람이 진실해야 말씀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자신의 사사로운 것을 부인하고 하나님이 말씀을 통해 가르치는 것이 무엇이냐 자신을 중심에 두고 이 세상에 별별 것을 말씀한 자기한테 어두워지가 하는 겁니다. 바른 말씀만 찾아가는 것이 진실입니다. 구원에 대해서는 아마 모르기는 몰라도 세상에 가장 가짜가 많은 게 종교이고 구원의 도입니다. 영생을 말하고 있으니까 사후세계, 한 번만 주신 생애 동안에 기회를 놓치면 기회가 없습니다. 바른 신앙을 걸으면 찾는 것 굉장히 어렵습니다. 쉽지 않습니다. 기계를 만드는 것도 복잡한 기계를 만드는 것은 굉장한 비용이 듭니다. 우주로 로켓을 쏘려면 많은 세월이 걸리고 자본이 필요합니다. 노력과 자본과 인력이 투자가 되어야하는 것이 기계입니다. 어떤 아버지가 자기 아이를 일주일 안에 성경 한 동을 읽히려고 작정했습니다. 그런데 일주일 안에 성경 한 독을 읽으라고 하면 초등학생이 되겠습니까. 그래서 많은 계산과 시험과 대화와 노력을 해보고 되겠다 싶으니까 한 번 해본겁니다. 그래서 아침부터 50분 읽고 10분 쉬고, 그렇게 한 주간 성경 한 독을 읽었다. 일주일안에 성경 한 독 읽는 것이 그렇게 어렵습니다. 일주일 만에 성경 한 독 읽혀보십시오 그게 될지. 한 번 하는게 그렇게 어렵단 말입니다. 신앙생활에 허영이 있으면 신앙생활 못합니다.
오늘날 수 많은 사람들이 믿으면 구원받는다고 합니다. 천주교에서 건진 것은 참 잘했는데 수 많은 사람들을 미혹시켜서 얼마나 많은 사람을 미혹시킨건지 알아야합니다.
모든 물질을 이루고 있는 가장 작은 단위를 원자라고 합니다. 그 원소 안에 크기를 말하자면 2천만 분의 1미리라고 합니다. 그걸 2천만 분의 1미리라고 합니다. 볼펜 점 하나 딱 찍어보시죠. 그 안에 얼마나 많은 게 들어가느냐. 상상을 해 보셔야합니다. 그게 물질의 세계입니다. 정 하나에 수 없이 많은 원자가 들어간다고 합니다.
찬송가 153장 일보 일보 주님으로 함께 동행하고 순간순간 주님과 함께 동행한다고 합니다. 그렇게 들어간 것이 구원입니다. 대충 얼렁뚱땅 찬송하면서 울고 은혜받았습니다 하는 거 아무 가치 없습니다. 감정 기분에서 떠나 말씀에다 굳게 세워. 이것이 바로 깨달은 성도들의 생각입니다. 경험입니다. 미혹을 받으면 마귀의 편이 되어버립니다. 알든지 모르든지 결과적으로 마귀의 편이 되어버립니다. 미혹받은 결과가 그렇게 되어집니다. 허영과 미혹이 있으면 미혹을 받습니다. 따져봐야하는데 따져보지 않으면 조심을 해야겠습니다. 1절 말씀에 사도 요한이 믿음의 자녀에 대해 말씀합니다. 믿음의 자녀를 두고 믿음의 자녀를 만들면 나와 상관없는 사람이 만들어집니다. 원한다고 되는 것은 아니지만 노력을 해야합니다. 오전에는 진리를 생각해봤습니다. 은혜와 평강이 함께하게 되는 그것들은 하나님 아버지께 있고 그것이 누구를 통해 내려옵니까. 하나님 아버지께 있는데 성자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가 된 것입니다. 그리고 거기서부터 진리와 사람을 통해서 우리를 가르칠 때 이름을 말씀이라고 합니다. 말씀으로 천국을 가르치고 하나님의 구원에서 가르치는 것을 말씀이라고 합니다. 그 말씀이 우리에게 명령이 될 때 계명이라고 합니다. 그 계명을 하나님께서 법으로 하실 때 율법이라고, 법률이라고 합니다. 그게 조금 더 갖춰졌을 때 규례라고 합니다. 비유가 좀 어떨지 모르겠지만 물이라는 것이 기체가 되기도하고 액체도 되고 고체도 됩니다. 그렇게 되는 거처럼 어떨 때는 말씀으로 어떨 때는 율법으로 어떨 때는 규례로 됩니다. 진리라는 것은 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모든 은혜와 긍휼과 평강이 하나님 아버지께로부터 구주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내려오는 겁니다. 사랑이란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이시고 그 말은 하나님의 사랑이니까 사랑은 형체가 없는 겁니다. 무인격 존재입니다. 하나님은 사랑이라고 그럴 때 형체가 없는 겁니다. 실체가 없는 건데 인격자 있어야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나타났으니 도성인신으로 나타납니다. 우리에게 보내신 것이 사랑입니다. 진리라는 것은 통로가 같은 것입니다. 통로가 있어야 관이 있어야 내려오는 것처럼 진리를 주신 것은 진리를 통해 받을 수 있는 것이 있습니다. 우리에게 역사하실 때 모두 진리로 오십니다.
계명 속에서 지킬 자기 진리가 있습니다. 진리로 행하는데 자기 진리라고 하면 어렵습니다. 진리대로 행하는 자. 모든 생활을 따져서 생각하는 자. 대충 대충 사는 것이 사는 게 아니라 말씀 속에서 하나님의 가르침을 찾아서 그대로 사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심히 기쁘도다 그리고 5절, 사도 요한이 믿음의 자녀를 때로는 너라고 그랬고 여기는 부녀라고 했습니다. 부녀라는 말은 상당히 조심해야하는 말입니다. 그냥 부른 것이 아니고 조심해서 듣는 표현입니다. 상대방을 부르는 사람을 부를 때 호칭을 조심하는 것이 좋습니다. 부부 사이에서 자기야라는 말 안 쓰시죠. 고쳐야합니다. 오빠 이런 것도 별로 좋지 않습니다. 교회 호칭은 괜찮습니다. 상대방을 존중하는 게 들어있는 겁니다. 호칭을 함부로하면 말이 쉽게 갑니다. 아무리 만만한 사이라도 호칭을 가볍게 하면 위험합니다. 우리는 전도사, 조사를 하면서 20대 초반에 반사하면서 책임자가 있었는데 제 이름을 부릅니다. 그때 제가 서른 살이 되었습니다. 이름을 부릅니다. 제 마음이 어떻겠습니까. 저보다 뛰어난 분입니다. 하지만 그랬을 때 기분이 나빴습니다. 나이가 좀 위에 있고 직책이 높다고 하더라도 호칭을 함부로 하는 것, 백 목사님은 조심하는 겁니다. 사소한 것을 소홀히하면 대형 사고가 나는 것입니다. 작은 것을 소홀히 여기면 큰 문제가 생기는 것입니다. 호칭 하나가 굉장히 중요한 것입니다. 서부 교회 건물에는 못 하나 박는 것도 허락을 받아야합니다. 그만큼 세밀하고 철저한 것입니다. 하나님 역사가 그렇습니다. 허비하지 않는 분입니다. 공기 하나도 헛되이 내리지 않고 헛되이 올리지 않습니다. 점 하나의 크기에 수 많은 원자가 들어간다는데 그것도 살피시는 분입니다. 그래서 사소한 것을 쉽게 생각하면 큰 문제가 생깁니다. 호칭 하나가 중요합니다. 부녀여, 이렇게 하는데 사도 요한의 말씀은 성경이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기록하신 것입니다. 우리보고 이 말씀보고 조심하라고 그렇습니다. 자기 아들 딸 마구잡이로 부르면 상놈이 됩니다. 조심스럽게 높이면 양반이 되고 높은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신앙은 도덕을 넘어서 고차원의 무언가입니다.
부모가 자녀에게 고할 때는 고하는 상황이 달라집니다. 아이가 공부 안하니까 아버지가 아들한테 무슨 부탁을 하겠습니까. 부모가 자녀에게 누굴 위해서 하겠습니까. 자식을 위해서. 오늘의 나는 나고 내일의 나는 내 자식입니다. 그러면 오늘의 나는 나인데 내일의 나는 없는 거죠. 이런 걸 자꾸 위에서 언론에서 방송에서 정치가들이 교육가들이 떠들어야합니다. 귀 속에서 옳은 말을 전파해야합니다. 누가 봐도 이치인 말은 퍼져나가게 되어있습니다. 우리 여기 아이 다섯 낳은 사람 부자라서 낳았습니까. 가치관이 문제인 것이죠. 요즘도 뭐 때문에 안 낳고 취업이 어떻고 그런 소리를 했습니다. 그를 위해서 구하노니 서로 사랑하자. 여기서부터 계속 하는 겁니다. 서로 사랑하자는 말은 별 쓰는 말이 아닙니다. 믿는 사람이면 서로 사랑하자는 말은 깊이 들어가서 모르지만 서로 알고있는 말입니다. 처음부터 우리가 가진 것입니다. 중생된 사람은 사랑을 모를 수가 없습니다. 처음부터 가진 것입니다. 요한 1서 2장 7절에 보면 옛계명이라는 말씀을 하고 새계명이라는 말씀을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지킬 명령을 하셨으니 믿는 사람, 명령을 주셨으니 말씀을 주셨으니 그게 계명이고 순종하는 것이 사랑입니다. 사랑이라는 것은 완전자, 전지전능자만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사랑이란 인격 존재가 최상의 것을 대해주는 것이 사랑이다. 그런데 참사랑이란 상대방을 좋게 행복하게 만들어줘야하는데 하나님만 가질 수 있는 것이 사랑이고 사랑의 종류를 따져보니까 가짜 사랑이 많은데 크게 따지면 인간 사랑, 인간 사랑은 혈육 사랑이 있고 동족 사랑이 있고 이성 사랑이 있는데 가짜 사랑입니다. 계명이란 지켜야할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그 계명 속에 진리와 영광이 있고 계명을 말씀으로 표시하고 진리 안에 영감은 내게 있고 사랑으로 인도하고 안내하는 것이 계명입니다. 고차원의 기독교 도라고 합니다. 서울대 철학과 강의보다 어려울지 모릅니다. 우리가 세상적으로 무식할지는 몰라도 사랑에 대해서는 알아야합니다.
하나님만 할 수 있는 것이 사랑입니다. 세상에 가짜가 많아서 둘입니다. 진짜로 하나님처럼 하는 것이고 인간 사랑은 수도 없이 많습니다. 계명이란 지켜야할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그 말씀 속에 내가 지킬 진리가 있습니다. 그 속에는 말씀 속에 진리가 있습니다. 말씀이 진리인데 이치가, 영감이 있습니다. 그 영감은 우리를 안내하게 합니다. 사활의 대속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쏟아 부은 것을 충족하는 것입니다. 계명이란 우리가 지킬 하나님 명령이 있는데 계명을 지키면 의를 행하게 되고 하나님 화친이 됩니다. 그래서 계명지키는 것이 사랑이고 사활의 대속입니다. 오늘 오후에는 사랑하는데 사도 요한이 사랑하는데 진리와 하나님의 관계 모든 은혜를 받을 수 있는 것을 설명하셨고 4절부터는 참된 기쁨, 이걸 말씀을 하고 호칭을 조심하자고 하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