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2월 19일 주일 오후
김동민2023-02-19조회 283추천 52
2023년 2월 19일 주일 오후
찬송: 95장, 110장
본문: 누가복음 16장 1절 ~ 3절
비유라는 것은 실상은 아닌데 그와 비슷한 사물과 상황을 따라가 가르침을 하는 것입니다. 다만 비유는 좀 흐리고 실상은 또렷할 뿐입니다. 전혀 터무니없는 것이 아닙니다. 그럴 수 있고 실제로 있는 그런 것을 다른 상황에서 비슷하게 연결시킵니다. 성경에는 많은 비유가 있습니다. 구약에도 비유가 있고 나옵니다. 자연세계 속에 들어있는 것을 구원도리를 가르치기 위해서 끌어서 설명한 것이 비유입니다. 비유는 실제로 세상에서 있을 수 있는 일들을 실질적으로 가르치기 위해서 인용한 것이 비유라는 것입니다. 성경에 있는 비유는 구원도리를 가르치고 있습니다. 청지기 비유도 이 세상에 많습니다. 청지기라는 것은 부자도 있고 청지기도 있고 청지기가 실제로 한 것일 수도 있습니다. 청지기가 있는데 어떤 부자가 청지기를 둘 수 있습니다. 어떤 청지기가 있습니다. 많은 돈을 주고 썼던지 청지기가 있는데 집사기 때문에 실력있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요셉이 말하자면 보디발 집에 총무가 됐었고 감옥갔을 때 교도소장이 요셉에게 다 맡겼습니다. 교도소에 들어오고 배치하고 모든 것을 요셉에게 맡겼습니다. 왕이 내가 너보다 높은 것이 보좌 뿐이라고 합니다. 요셉이 청지기었고 감옥에서 청지기였고 보디발의 청지기였습니다. 엘리멜렉이 아브라함이 이삭의 아내를 구할 때 종에게 다 맡겼습니다. 며느리 될 사람을 구하라고 하는거면 맡기는 것이지요. 주인을 대신하는 사람입니다. 요즘도 아마 실제 자가도 사정이 돼서 자영업을 해 본 분들은 절절히 느낄 겁니다. 사람이 얼마나 귀한지. 사람이 없으니까 많이 힘든 거지요. 우리 공회의 청년들은 실력은 떨어져도 인정을 받습니다. 특별히 신앙생활 잘하지 않아도 고만고만합니다. 가면 인정을 받습니다. 실력 좀 있는 사람들은 안 놔주려고 합니다. 청지기가 있는데 맡기는 겁니다. 주인의 소유를 허비했습니다. 주인의 소유를 허비한다니까 세 가지를 말씀드렸습니다. 주인을 기준해야합니다. 결정도 모두 주인을 중심에 두고 주인을 위해서 주인의 뜻대로, 대통령의 비서 실장은 대통령의 마음을 가장 잘 아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권력과의 뜻을 바로 해야하니까 주인의 뜻대로 살아야 청지기가 뭔가 하긴 했는데 보니까 주인의 뜻과 안 맞고 다르게 하는 겁니다. 그런 소문이 들렸다는 것이지요. 청지기를 쓸 정도 주인이 되는거면 청지기보다 훨씬 위에 있는 겁니다. 주종 관계는 아무리 자기보다 실력이 있어도 자기가 감당할 수 있는 사람을 종으로 써야하지 안 그러면 바뀌어버립니다. 요셉을 총리로 세운 바로 왕이 보통 사람이 아닙니다. 요셉이라는 사람을 알아본 것도 그렇고 다 그런 것입니다. 청지기가 허비한다는 말을 합니다. 이 말이 어찌되냐 하니까 논리로 갖다대니까 막힌거지요. 주인이 청지기 직분을 빼앗으니 무엇을 할꼬 고민합니다. 사람은 고민이 있어야합니다. 고민없는 사람은 문제가 있습니다. 좋은 게 좋고 잘되겠지 하고 던져놓는 것이 아주 좋지 않은 것입니다. 믿음에서 떠난 근심이 있습니다. 어떤 근심을 믿음에서 떠난 거라고 할까요. 살아가다보면 근심 걱정 많이하잖습니까. 주님도 근심을 했습니다. 고민하다 슬퍼하다 죽을 지경이 됐습니다.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자기가 최종 결정자가 되고 주권자가 된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자기가 하나님이 되는 것입니다. 그때부터 사람의 범위를 넘어선 것입니다. 고민하는 것이 맞는 것입니다. 고민이란 난제를 두고 답을 찾는 것입니다. 답을 고민하는 것입니다. 그런 고민은 답을 찾은 고민입니다. 좋은 겁니다. 고민을 하는데 마지막에 결정까지 자기가 해버리면 그 고민은 믿음에서 떠난 것입니다. 어떤 일에 대해서 동과 서가 있는데 동쪽으로 상황이 되면 좋겠는데 고민해서 답을 찾았는데 결과를 보니 서쪽으로 가야하게 됐습니다. 기도했는데, 일년 동안 기도했는데 1년이 지났는데 아무것도 되지 않습니다. 그렇게 한다고 낙심을 해버리면 죄가 됩니다. 만사 모든 것이 다 그렇습니다. 바울이 찌르는 가시가 있어서 얼마나 불편했으면 바울이 기도했겠습니까. 바울은 그 고통을 낫게해달라고 기도한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 마저 없으면 교만해져서 안 빼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알려주실 때 하늘에서 양심을 통해서 알려주셨습니다. 내게 가시 주신 것은 너무 주신 것이 탁월하니까 이게 없으면 안되겠다 했습니다. 하나님 뜻입니다. 만약에 바울이 세 번 기도했는데 낙심이 안되면 하나님 뜻이 안 맞는 것입니다. 고민해도 답이 안 나오면 현재에서 계속 하면 됩니다. 상황 변화를 하는데 그대로 좀 더 가라는 뜻입니다. 뭐든지 믿는 사람은 무리수를 둬야할 때도 있습니다. 그것이 주로 계명과 이어집니다. 계명을 지키려면 가정에 문제가 생겨지겠고 다니엘이 평소에 기도를 하는데 기도하지 말라고 하니까 사자굴에 들어가서도 기도를 했습니다. 다니엘이 총리가 되니까 유대민족에게 위로가 되고 희망이 됐는데 기도한다고 사자굴에 들어가버리면 그렇게까지 하면서 해야하나 싶습니다. 많이 그랬을 겁니다. 다니엘은 끝까지 했습니다. 그래서 주인이 고민하니까 굉장히 좋은 것이고 연구입니다. 연구, 생각, 살펴보는 것입니다. 이 청지기는 주인의 직분을 빼앗는데 내일이면 다 뺏기는데 날이 밝기 전에 어떻게 해야할까 하면서 고민하니까 낙심하지 않았고 차분하게 길을 찾았습니다. 그것이 성도의 자세입니다. 낙심 낙망 금지 자포자기 금지. 차분하게 앉아서 주신 범위 내에서 길을 찾는 겁니다. 오늘까지는 내가 청지기다. 자기 할 수 있는만큼 빚은 탕감했습니다. 합법적으로 자기가 할 수 있는 범위 안해서 하게 됐습니다. 그렇게 해서 주인이 이 소문을 듣고 이 옳지 않은 청지기가 허비했고 주인의 것인데 이건 법적이라서 처벌 못합니다. 그러면 주인이 옳지 않은 청지기에게 일을 잘 했다고 칭찬했다 했습니다. 이것이 오늘 기록된 말씀이고 이 세대의 아들들이 우리에게 가르친 말씀입니다. 여기 청지기 비유고 실상이 우리들입니다. 예를 들어서 실상을 가르칩니다. 이 세상의 모든 것들은 자연계시입니다. 특별 계시를 가르치려고 자연 계시를 두셨고 이것을 통해 우리에게 가르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집에 청지기입니다. 하나님은 이 세상이 하나님의 집입니다.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우리는 세상의 빛입니다. 빛이란 빛의 근본이라는 말이 아닙니다. 일계명은 낙동강이고 오계명은 낙동강에서 우리 집에 오는 그런 곳입니다. 수도꼭지 같은 것. 땅은 일계명이고 나무뿌리는 오계명입니다. 땅에서 나무가 나는 것입니다. 손발같은 거라고 했습니다. 무슨 말이냐 교회는 몸입니다. 몸은 머리의 기관입니다. 우리는 교회입니다.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우리는 빛의 근본이 아닙니다. 빛의 과정입니다. 교회를 달로 비유해서 달이란 태양빛을 받아서 반사하는 것이 달입니다. 달 자체는 발광하지 못합니다. 교회는 빛의 근본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서 빛을 발하는 것입니다. 청지기란 주인 역할을 대신 받아서 하는 사람입니다. 주인의 모든 것을 청지기가 그 밑에 있는 사람들에게 나타내는 것이 청지기입니다. 요셉의 정책이 바로의 정책이 됐습니다. 그 뒤에 보면 7년 풍년에 곡식 모으는 것, 토지법하고 법들을 만들었는데 모두 바로의 뜻과 맞는 것입니다. 바로는 아주 성공 중에 한 사람입니다. 모세 시대 바로는 폭군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청지기입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의 은혜를 우리를 위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세상이란 정확하게 따지면 교회를 통해 세상을 살아야 정상입니다. 이 깨달음을 가지고 잉 세계를 펼쳐보겠다고 시도하는 사람이 칼빈, 칼빈 유명하지요. 세상을 그렇게 만드니까 쫓겨나기도 하고 했습니다. 과거 이명박 장로님이 서울시를 하나님께 바치겠다고 했습니다. 우리 나라는 서울 시장이 믿는 사람이 많았을 겁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청지기입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목사만 은혜 집안 아닙니다. 그래서 교회 교역자가 목사가 바로 돼고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고 교역자가 하나님의 말씀을 정하고 기도의 은혜로 평안하게 전할 수 있습니다. 가정에서는 가장이 잘 다스리면 가족이 행복하게 되고 청지기가 되는 것입니다. 청지기는 위치인데, 잘 기억할 것은 청지기는 어디까지나 청지기입니다. 청지기 이지만 주인의 것을 잘 살려야합니다. 주인이 아니기 때문에 자기가 가진 전부를 주인의 것이라고 기억을 해야합니다. 선악과는 하나님과 인간의 경계입니다. 모든 것이 아담뜻대로 잊지 말라고 하신 것이 선악과입니다. 죄가 하나님이 되는 것입니다. 선악과를 따 먹은 것은 역적죄입니다. 날로 말하면 주일을 어기면 역적죄입니다.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의 것이다 라는 것입니다. 이걸 어기면 선악과 따먹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마귀가 와서 성전에서 뛰어내려라고 했을 때 예수님이 시험에 들어서 죽는 겁니다. 하나님이 뛰어내리라고 하지 않는데 뛰어내리면 죄가 되는 것입니다. 연보는 많이한다고 좋은 것이 아닙니다. 정확하게 하는 것이 잘 하는 것입니다. 대개 연보를 잘못하면 허영이 들어갈 수 있습니다. 허영은 죄입니다. 청지기된 우리가 기억해야할 것은 나 자체도 사람들이 대개 보면 부모 탓이고 그렇습니다. 백 목사님은 바로 가르쳤습니다. 백 목사님은 실수가 없습니다. 위선이 없습니다. 자기 부모를 욕하는 인간은 나쁜 놈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전부 다 하나님께서 완벽하게 만드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만드신 그것이 가장 좋기 때문에 그렇게 만드는 것입니다. 개인의 자체도 성품도 실력도 환경도 전부 다 그렇게 깨닫고 나서 하나님의 모든 것은 절대자의 절대 역사입니다. 절대적이라는 말은 그렇게 하면 안된다는 것입니다. 사람의 심신의 활동과 세월은 가치가 있는 것입니다. 사람이 살아가는 것은 활동입니다. 활동이라는 것은 굉장히 다양합니다. 살아있는 자체가 활동입니다. 누워서 숨만 쉬고 있어도 활동이고 자고 있어도 활동이고 움직여도 활동입니다. 활동을 하면 시간은 째깍째깍 가는 것입니다. 똑똑한 사람들은 잠은 어디서 충분히 간다고요? 무덤에 가서 실컷 자고 살아있을 때 행동하겠다. 안 자고 싶어도 병들면 자야합니다. 병이 드는 것도 손해입니다. 주인을 중심에 두고 주인을 위해서 주인의 뜻대로 써야하는데 쓰는 중심이 주인이 아니고 자기입니다. 주인의 뜻대로, 앞에서 말씀한대로 주인이 무엇을 원하는지 어떻게 쓰길 원하는지 허비가 안 되는데 허비가 되어지는 겁니다. 사람이 살아가면서 쓰게 됩니다. 그러면 허비가 되던지 잘 되던지 둘 중 하나입니다. 사람의 모든 활동은 없어지는 것이 아니고 영원히 지옥에 불타게 되는 것입니다. 어떤 것은 영원히 부끄럽게 되는 것입니다. 살아가는 것은 없어지지 않습니다. 세월은 멈출 수도 없고 각자에게 주어진 세월을 살게 만드는 것입니다. 잘 썼던지 못 썼던지 필연적으로 됩니다. 나는 오늘까지 허비하지 않도록 노력해야합니다.
찬송: 95장, 110장
본문: 누가복음 16장 1절 ~ 3절
비유라는 것은 실상은 아닌데 그와 비슷한 사물과 상황을 따라가 가르침을 하는 것입니다. 다만 비유는 좀 흐리고 실상은 또렷할 뿐입니다. 전혀 터무니없는 것이 아닙니다. 그럴 수 있고 실제로 있는 그런 것을 다른 상황에서 비슷하게 연결시킵니다. 성경에는 많은 비유가 있습니다. 구약에도 비유가 있고 나옵니다. 자연세계 속에 들어있는 것을 구원도리를 가르치기 위해서 끌어서 설명한 것이 비유입니다. 비유는 실제로 세상에서 있을 수 있는 일들을 실질적으로 가르치기 위해서 인용한 것이 비유라는 것입니다. 성경에 있는 비유는 구원도리를 가르치고 있습니다. 청지기 비유도 이 세상에 많습니다. 청지기라는 것은 부자도 있고 청지기도 있고 청지기가 실제로 한 것일 수도 있습니다. 청지기가 있는데 어떤 부자가 청지기를 둘 수 있습니다. 어떤 청지기가 있습니다. 많은 돈을 주고 썼던지 청지기가 있는데 집사기 때문에 실력있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요셉이 말하자면 보디발 집에 총무가 됐었고 감옥갔을 때 교도소장이 요셉에게 다 맡겼습니다. 교도소에 들어오고 배치하고 모든 것을 요셉에게 맡겼습니다. 왕이 내가 너보다 높은 것이 보좌 뿐이라고 합니다. 요셉이 청지기었고 감옥에서 청지기였고 보디발의 청지기였습니다. 엘리멜렉이 아브라함이 이삭의 아내를 구할 때 종에게 다 맡겼습니다. 며느리 될 사람을 구하라고 하는거면 맡기는 것이지요. 주인을 대신하는 사람입니다. 요즘도 아마 실제 자가도 사정이 돼서 자영업을 해 본 분들은 절절히 느낄 겁니다. 사람이 얼마나 귀한지. 사람이 없으니까 많이 힘든 거지요. 우리 공회의 청년들은 실력은 떨어져도 인정을 받습니다. 특별히 신앙생활 잘하지 않아도 고만고만합니다. 가면 인정을 받습니다. 실력 좀 있는 사람들은 안 놔주려고 합니다. 청지기가 있는데 맡기는 겁니다. 주인의 소유를 허비했습니다. 주인의 소유를 허비한다니까 세 가지를 말씀드렸습니다. 주인을 기준해야합니다. 결정도 모두 주인을 중심에 두고 주인을 위해서 주인의 뜻대로, 대통령의 비서 실장은 대통령의 마음을 가장 잘 아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권력과의 뜻을 바로 해야하니까 주인의 뜻대로 살아야 청지기가 뭔가 하긴 했는데 보니까 주인의 뜻과 안 맞고 다르게 하는 겁니다. 그런 소문이 들렸다는 것이지요. 청지기를 쓸 정도 주인이 되는거면 청지기보다 훨씬 위에 있는 겁니다. 주종 관계는 아무리 자기보다 실력이 있어도 자기가 감당할 수 있는 사람을 종으로 써야하지 안 그러면 바뀌어버립니다. 요셉을 총리로 세운 바로 왕이 보통 사람이 아닙니다. 요셉이라는 사람을 알아본 것도 그렇고 다 그런 것입니다. 청지기가 허비한다는 말을 합니다. 이 말이 어찌되냐 하니까 논리로 갖다대니까 막힌거지요. 주인이 청지기 직분을 빼앗으니 무엇을 할꼬 고민합니다. 사람은 고민이 있어야합니다. 고민없는 사람은 문제가 있습니다. 좋은 게 좋고 잘되겠지 하고 던져놓는 것이 아주 좋지 않은 것입니다. 믿음에서 떠난 근심이 있습니다. 어떤 근심을 믿음에서 떠난 거라고 할까요. 살아가다보면 근심 걱정 많이하잖습니까. 주님도 근심을 했습니다. 고민하다 슬퍼하다 죽을 지경이 됐습니다.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자기가 최종 결정자가 되고 주권자가 된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자기가 하나님이 되는 것입니다. 그때부터 사람의 범위를 넘어선 것입니다. 고민하는 것이 맞는 것입니다. 고민이란 난제를 두고 답을 찾는 것입니다. 답을 고민하는 것입니다. 그런 고민은 답을 찾은 고민입니다. 좋은 겁니다. 고민을 하는데 마지막에 결정까지 자기가 해버리면 그 고민은 믿음에서 떠난 것입니다. 어떤 일에 대해서 동과 서가 있는데 동쪽으로 상황이 되면 좋겠는데 고민해서 답을 찾았는데 결과를 보니 서쪽으로 가야하게 됐습니다. 기도했는데, 일년 동안 기도했는데 1년이 지났는데 아무것도 되지 않습니다. 그렇게 한다고 낙심을 해버리면 죄가 됩니다. 만사 모든 것이 다 그렇습니다. 바울이 찌르는 가시가 있어서 얼마나 불편했으면 바울이 기도했겠습니까. 바울은 그 고통을 낫게해달라고 기도한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 마저 없으면 교만해져서 안 빼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알려주실 때 하늘에서 양심을 통해서 알려주셨습니다. 내게 가시 주신 것은 너무 주신 것이 탁월하니까 이게 없으면 안되겠다 했습니다. 하나님 뜻입니다. 만약에 바울이 세 번 기도했는데 낙심이 안되면 하나님 뜻이 안 맞는 것입니다. 고민해도 답이 안 나오면 현재에서 계속 하면 됩니다. 상황 변화를 하는데 그대로 좀 더 가라는 뜻입니다. 뭐든지 믿는 사람은 무리수를 둬야할 때도 있습니다. 그것이 주로 계명과 이어집니다. 계명을 지키려면 가정에 문제가 생겨지겠고 다니엘이 평소에 기도를 하는데 기도하지 말라고 하니까 사자굴에 들어가서도 기도를 했습니다. 다니엘이 총리가 되니까 유대민족에게 위로가 되고 희망이 됐는데 기도한다고 사자굴에 들어가버리면 그렇게까지 하면서 해야하나 싶습니다. 많이 그랬을 겁니다. 다니엘은 끝까지 했습니다. 그래서 주인이 고민하니까 굉장히 좋은 것이고 연구입니다. 연구, 생각, 살펴보는 것입니다. 이 청지기는 주인의 직분을 빼앗는데 내일이면 다 뺏기는데 날이 밝기 전에 어떻게 해야할까 하면서 고민하니까 낙심하지 않았고 차분하게 길을 찾았습니다. 그것이 성도의 자세입니다. 낙심 낙망 금지 자포자기 금지. 차분하게 앉아서 주신 범위 내에서 길을 찾는 겁니다. 오늘까지는 내가 청지기다. 자기 할 수 있는만큼 빚은 탕감했습니다. 합법적으로 자기가 할 수 있는 범위 안해서 하게 됐습니다. 그렇게 해서 주인이 이 소문을 듣고 이 옳지 않은 청지기가 허비했고 주인의 것인데 이건 법적이라서 처벌 못합니다. 그러면 주인이 옳지 않은 청지기에게 일을 잘 했다고 칭찬했다 했습니다. 이것이 오늘 기록된 말씀이고 이 세대의 아들들이 우리에게 가르친 말씀입니다. 여기 청지기 비유고 실상이 우리들입니다. 예를 들어서 실상을 가르칩니다. 이 세상의 모든 것들은 자연계시입니다. 특별 계시를 가르치려고 자연 계시를 두셨고 이것을 통해 우리에게 가르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집에 청지기입니다. 하나님은 이 세상이 하나님의 집입니다.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우리는 세상의 빛입니다. 빛이란 빛의 근본이라는 말이 아닙니다. 일계명은 낙동강이고 오계명은 낙동강에서 우리 집에 오는 그런 곳입니다. 수도꼭지 같은 것. 땅은 일계명이고 나무뿌리는 오계명입니다. 땅에서 나무가 나는 것입니다. 손발같은 거라고 했습니다. 무슨 말이냐 교회는 몸입니다. 몸은 머리의 기관입니다. 우리는 교회입니다.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우리는 빛의 근본이 아닙니다. 빛의 과정입니다. 교회를 달로 비유해서 달이란 태양빛을 받아서 반사하는 것이 달입니다. 달 자체는 발광하지 못합니다. 교회는 빛의 근본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서 빛을 발하는 것입니다. 청지기란 주인 역할을 대신 받아서 하는 사람입니다. 주인의 모든 것을 청지기가 그 밑에 있는 사람들에게 나타내는 것이 청지기입니다. 요셉의 정책이 바로의 정책이 됐습니다. 그 뒤에 보면 7년 풍년에 곡식 모으는 것, 토지법하고 법들을 만들었는데 모두 바로의 뜻과 맞는 것입니다. 바로는 아주 성공 중에 한 사람입니다. 모세 시대 바로는 폭군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청지기입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의 은혜를 우리를 위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세상이란 정확하게 따지면 교회를 통해 세상을 살아야 정상입니다. 이 깨달음을 가지고 잉 세계를 펼쳐보겠다고 시도하는 사람이 칼빈, 칼빈 유명하지요. 세상을 그렇게 만드니까 쫓겨나기도 하고 했습니다. 과거 이명박 장로님이 서울시를 하나님께 바치겠다고 했습니다. 우리 나라는 서울 시장이 믿는 사람이 많았을 겁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청지기입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목사만 은혜 집안 아닙니다. 그래서 교회 교역자가 목사가 바로 돼고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고 교역자가 하나님의 말씀을 정하고 기도의 은혜로 평안하게 전할 수 있습니다. 가정에서는 가장이 잘 다스리면 가족이 행복하게 되고 청지기가 되는 것입니다. 청지기는 위치인데, 잘 기억할 것은 청지기는 어디까지나 청지기입니다. 청지기 이지만 주인의 것을 잘 살려야합니다. 주인이 아니기 때문에 자기가 가진 전부를 주인의 것이라고 기억을 해야합니다. 선악과는 하나님과 인간의 경계입니다. 모든 것이 아담뜻대로 잊지 말라고 하신 것이 선악과입니다. 죄가 하나님이 되는 것입니다. 선악과를 따 먹은 것은 역적죄입니다. 날로 말하면 주일을 어기면 역적죄입니다.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의 것이다 라는 것입니다. 이걸 어기면 선악과 따먹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마귀가 와서 성전에서 뛰어내려라고 했을 때 예수님이 시험에 들어서 죽는 겁니다. 하나님이 뛰어내리라고 하지 않는데 뛰어내리면 죄가 되는 것입니다. 연보는 많이한다고 좋은 것이 아닙니다. 정확하게 하는 것이 잘 하는 것입니다. 대개 연보를 잘못하면 허영이 들어갈 수 있습니다. 허영은 죄입니다. 청지기된 우리가 기억해야할 것은 나 자체도 사람들이 대개 보면 부모 탓이고 그렇습니다. 백 목사님은 바로 가르쳤습니다. 백 목사님은 실수가 없습니다. 위선이 없습니다. 자기 부모를 욕하는 인간은 나쁜 놈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전부 다 하나님께서 완벽하게 만드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만드신 그것이 가장 좋기 때문에 그렇게 만드는 것입니다. 개인의 자체도 성품도 실력도 환경도 전부 다 그렇게 깨닫고 나서 하나님의 모든 것은 절대자의 절대 역사입니다. 절대적이라는 말은 그렇게 하면 안된다는 것입니다. 사람의 심신의 활동과 세월은 가치가 있는 것입니다. 사람이 살아가는 것은 활동입니다. 활동이라는 것은 굉장히 다양합니다. 살아있는 자체가 활동입니다. 누워서 숨만 쉬고 있어도 활동이고 자고 있어도 활동이고 움직여도 활동입니다. 활동을 하면 시간은 째깍째깍 가는 것입니다. 똑똑한 사람들은 잠은 어디서 충분히 간다고요? 무덤에 가서 실컷 자고 살아있을 때 행동하겠다. 안 자고 싶어도 병들면 자야합니다. 병이 드는 것도 손해입니다. 주인을 중심에 두고 주인을 위해서 주인의 뜻대로 써야하는데 쓰는 중심이 주인이 아니고 자기입니다. 주인의 뜻대로, 앞에서 말씀한대로 주인이 무엇을 원하는지 어떻게 쓰길 원하는지 허비가 안 되는데 허비가 되어지는 겁니다. 사람이 살아가면서 쓰게 됩니다. 그러면 허비가 되던지 잘 되던지 둘 중 하나입니다. 사람의 모든 활동은 없어지는 것이 아니고 영원히 지옥에 불타게 되는 것입니다. 어떤 것은 영원히 부끄럽게 되는 것입니다. 살아가는 것은 없어지지 않습니다. 세월은 멈출 수도 없고 각자에게 주어진 세월을 살게 만드는 것입니다. 잘 썼던지 못 썼던지 필연적으로 됩니다. 나는 오늘까지 허비하지 않도록 노력해야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