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1.17 주후
김동민2021-01-17조회 138추천 29
2021. 01. 17. 주후
본문: 로마서 11장 33절 ~
현실에 피동 되는 것이 사람이고 영향을 받는 것이 사람입니다. 그런데 능동 되어야 할 것에 피동 되는 것이 타락의 시초고 원인입니다.
곱게 자란 공주도 감옥에 집어넣으면 감옥에서 적응하고 삽니다. 나중에는 돼지 먹이도 그런 사람들도 주워 먹게 되어있습니다. 별로 사람은 다른 바가 없습니다.
사람은 극단에 몰아넣으면 별수 없게 되어있습니다. 사람은 현실에 피동 될 수밖에 없습니다. 차 안에는 혼자서 누워서 예배를 드려도 아무도 모릅니다. 가정에는 예배보다가 다른 것도 있고 해서 그쪽으로 눈길이 가게 되어있습니다. 그게 환경입니다.
그래서 예배에 집중하기가 어렵습니다. 지금이 예배에 집중해야 하는 때가 아닌가….
우리는 제대로 예배를 드리지 못한 죄를 회개하면서 열심히 예배에 집중해야 합니다.
현실에 피동 되지 않도록, 장소에 영향받지 말고 예배를 바로 드려야겠다.
길어지는 방역으로 인해서 이렇게 말씀을 드립니다. 여기 계신 분들은 온 교인의 대표 격입니다. 그래서 모두 예배당에 들어오고 싶은데 자제하고 그래서 여기에 들어오는 특권을 가지고 있으니까 감사하는 자세가 필요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지음 받은 도자기가 주인의 마음을 알 수 없듯이 피조물인 우리가 하나님의 마음을 알 수 없습니다. 너무 큰 소리는 사람 귀에 안 들린다고 합니다. 너무 밝고 너무 큰 것도 안 보인다고 합니다. 하나님은 너무너무 크고 높으신 분이기 때문에 그분은 우리가 안 보이고 안 들리고 모르는 겁니다. 요즘은 미국에 세계 여행이 자유로우니까, 알프스의 산 가보셨나요? 못 가보신 분들은 사진으로만 보셨을 겁니다. 저 눈부시게 밝은 태양을 아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하나님은 지음 받은 피조물이 알 수 없는 겁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을 우리에게 알려주셨습니다. 말씀과 성경으로 알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왜 하나님 당신을 우리에게 알려주셨을까.
신비주의적인 말은 쓴다, 세상 사람들은 그런 말을 합니다.
세상은 높고 큰 존재일수록 자기를 숨기려고 합니다. 사람은 아무리 높아도 가까이서 보면 밥을 먹고, 소화를 시키고 변을 보고 양치를 하고 그럽니다. 그러면 일반 사람으로 내려오는 겁니다. 저는 어렸을 때 백 목사님이 신일 줄 알았습니다. 아이들만 남았는데, 우리 집회 한 번 가보자. 그래서 걸어갔습니다. 25리 정도 됩니다. 집회 장소 도착하니까 점심때입니다. 그리고 예배를 드리는데 저분은 사람이 아니라 신이야.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그러다가 가까이서 보게 되었는데, 이분은 특별한 분이라는데 사람이구나. 이게 보이는데 백 목사님은 멀리서 봤는데 그거 가지고 서부 교회 와서 봤는데 느낌이 똑같습니다. 백 목사님은 가까이할수록 더 신비롭습니다. 당신 자체는 다 드러내지 않는데 신비롭게 느껴졌습니다.
안 숨기는데, 다 드러낼수록 점점 더 신비해지고 더 머리가 숙여지는 그게 하나님의 사람들의 성화된 모습입니다. 사도 바울, 베드로, 요한도 그러지 않았을까.
본문에 로마서 11장 33절, ‘깊도다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의 부유함이여’ 깊도다, 크도다, 넓도다, 높도다, 무한하도다. 전부 다 연결이 됩니다. 하나님의 지혜라고 하면 다 연결이 되지요.
하나님의 지혜고 하나님의 지식입니다. 그의 판단은 측량치 못할 것이며, 판단 전에는 살핌이 있고 계산이 있습니다. 그래서 판단합니다. 이 판단은 측량치 못할 것이라. 내 생각은 너희의 생각과 다르고 너희의 뜻과 다르나. 하나님의 생각은 사람의 생각과 다릅니다.
청출어람, 제자가 스승보다 낫다고 합니다. 일반적으로 보면 스승은 스승이고 제자는 제자입니다. 자녀의 마음과 부모의 마음은 다릅니다. 자식에 대한 마음이 형제간의 마음과 부모에 대한 마음과는 다릅니다.
그래서 사람이 잘난 사람이 자기주장, 자기 의견, 자기 고집을 세우고 하나님과 가까운 믿음의 사람들의 말을 안 듣는 것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입니다.
누가 그의 마음을 알았느뇨, 도자기가 도자기 주인의 마음을 모르듯이 알 수가 없습니다. 모든 것이 다 그분의 것인데.
눈물이 죄에서 나오고 그분이 창조주인데, 그분이 주인이신데. 그래서 알고 나면 그분에게 영광을 돌릴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은 어떤 분이냐, 하나님의 속성인데, 큰 소리 내지 말라고 하니까 작은 소리로 해봅시다. 하나님의 속성. 물질로 말하면 그것이 만들어진 바탕과 재료입니다. 물은 뭐로 되어있나, 흙은 뭐로 되어있느냐. 사람은 고급으로 들어가면 뭐냐입니다. 신경세포 조직이 있고, 이걸 걷어내 보니까 뼈가 있고 이걸 갈라내니까 골수가 있습니다.
마음은 안에 있으니까 이성이 있고 양심이 있고 욕심이 있습니다. 마음에서 마음의 작용으로 여러 가지 희로애락이 나옵니다. 하나가 잘못되거나 고장이 나면 그런 작용이 없습니다.
자존이라는 말은 스스로 계신다는 겁니다. 연구하고 생각해보고 타고 들어가야 합니다. 그래야 자기가 자랍니다.
사람은 완전할 수가 없는데, 하나님께 붙들리면서 살면 점점 완전해집니다. 그러면 완전의 작용이 많아지고 완전의 요소가 생기기 시작합니다. 그러면 천국에 들어가는 것이 우리의 구원입니다.
영원 불변성, 변하지 않는 것입니다. 어떤 환경이 몰아쳐도, 추워도 더워도 좋아도 나빠도 그 사람이 변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의 뜻이나 행동이나 생각이나, 변하지 않으려면 일을 개입했는데, 그 일이 변했습니다. 변했다는 말은 무슨 뜻인가요? 잘못되었다는 말이죠.
요셉이 서른 살에 총리가 되었는데, 일찍 한 거 같은데 30년 동안 요셉은 치밀하게 준비한 겁니다. 다윗도 이전에도 양 치면서 생각이었고 전부 계획이고 단계였습니다.
신앙은 대기만성 같은 속성이 있습니다. 안에 많은 것이 함축이 되어있는데, 그게 서서히 드러나면 급속도로 드러납니다. 공부는 처음에 아무리 해도 표가 안 나지만 어느 단계에 올라서면 급속도로 올라간다고 합니다.
우리들의 모든 심신의 활동 작용은 신중해야 합니다.
세월이 가도, 비판과 평가, 처리가 변하지 않고 틀리지 않는 이분이 하나님이고 그분을 닮아가는 게 우리의 구원입니다.
나는 어제는 이렇게 생각했는데, 다음날에는 다르구나, 이건 믿는 사람의 자세가 아닙니다. 고집이 있어야지, 가면 망할 길이어도 가겠다고 하면 큰일 나는 거죠. 늙어도 변하지 않을 수 있는, 후회가 되지 않을 수 있는 그런 취사선택을 해야만 하나님을 닮아가는 우리의 구원이 되는 겁니다.
하나님은 한 분이고 그분으로부터 나온 모든 것이 하나입니다.
인간의 귀함은 한없이 귀합니다. 하나님을 닮아가는 사람은 정말로 귀합니다. 인간이 하나님에게 버림받고, 인간이고 내 인생이고, 길게 봐야하는데, 피조물 안에 빙빙 도니까 알 수 없습니다. 우물 바닥에서 하늘 쳐다보니까 작게 보입니다. 그것이 피조물 인간입니다. 그 범위를 벗어나지 못하는...
아는 만큼 보이고 배짱도 생기고 아는 만큼 사랑할 수도 있고, 참부부라면 아는 만큼 서로 사랑할 수 있어야합니다. 오늘은 로마서 11장 33절로 36절 말씀으로 하나님의 속성을 생각해 보았습니다. 아는 가운데에서 자라는 우리가 되어야겠습니다.
본문: 로마서 11장 33절 ~
현실에 피동 되는 것이 사람이고 영향을 받는 것이 사람입니다. 그런데 능동 되어야 할 것에 피동 되는 것이 타락의 시초고 원인입니다.
곱게 자란 공주도 감옥에 집어넣으면 감옥에서 적응하고 삽니다. 나중에는 돼지 먹이도 그런 사람들도 주워 먹게 되어있습니다. 별로 사람은 다른 바가 없습니다.
사람은 극단에 몰아넣으면 별수 없게 되어있습니다. 사람은 현실에 피동 될 수밖에 없습니다. 차 안에는 혼자서 누워서 예배를 드려도 아무도 모릅니다. 가정에는 예배보다가 다른 것도 있고 해서 그쪽으로 눈길이 가게 되어있습니다. 그게 환경입니다.
그래서 예배에 집중하기가 어렵습니다. 지금이 예배에 집중해야 하는 때가 아닌가….
우리는 제대로 예배를 드리지 못한 죄를 회개하면서 열심히 예배에 집중해야 합니다.
현실에 피동 되지 않도록, 장소에 영향받지 말고 예배를 바로 드려야겠다.
길어지는 방역으로 인해서 이렇게 말씀을 드립니다. 여기 계신 분들은 온 교인의 대표 격입니다. 그래서 모두 예배당에 들어오고 싶은데 자제하고 그래서 여기에 들어오는 특권을 가지고 있으니까 감사하는 자세가 필요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지음 받은 도자기가 주인의 마음을 알 수 없듯이 피조물인 우리가 하나님의 마음을 알 수 없습니다. 너무 큰 소리는 사람 귀에 안 들린다고 합니다. 너무 밝고 너무 큰 것도 안 보인다고 합니다. 하나님은 너무너무 크고 높으신 분이기 때문에 그분은 우리가 안 보이고 안 들리고 모르는 겁니다. 요즘은 미국에 세계 여행이 자유로우니까, 알프스의 산 가보셨나요? 못 가보신 분들은 사진으로만 보셨을 겁니다. 저 눈부시게 밝은 태양을 아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하나님은 지음 받은 피조물이 알 수 없는 겁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을 우리에게 알려주셨습니다. 말씀과 성경으로 알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왜 하나님 당신을 우리에게 알려주셨을까.
신비주의적인 말은 쓴다, 세상 사람들은 그런 말을 합니다.
세상은 높고 큰 존재일수록 자기를 숨기려고 합니다. 사람은 아무리 높아도 가까이서 보면 밥을 먹고, 소화를 시키고 변을 보고 양치를 하고 그럽니다. 그러면 일반 사람으로 내려오는 겁니다. 저는 어렸을 때 백 목사님이 신일 줄 알았습니다. 아이들만 남았는데, 우리 집회 한 번 가보자. 그래서 걸어갔습니다. 25리 정도 됩니다. 집회 장소 도착하니까 점심때입니다. 그리고 예배를 드리는데 저분은 사람이 아니라 신이야.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그러다가 가까이서 보게 되었는데, 이분은 특별한 분이라는데 사람이구나. 이게 보이는데 백 목사님은 멀리서 봤는데 그거 가지고 서부 교회 와서 봤는데 느낌이 똑같습니다. 백 목사님은 가까이할수록 더 신비롭습니다. 당신 자체는 다 드러내지 않는데 신비롭게 느껴졌습니다.
안 숨기는데, 다 드러낼수록 점점 더 신비해지고 더 머리가 숙여지는 그게 하나님의 사람들의 성화된 모습입니다. 사도 바울, 베드로, 요한도 그러지 않았을까.
본문에 로마서 11장 33절, ‘깊도다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의 부유함이여’ 깊도다, 크도다, 넓도다, 높도다, 무한하도다. 전부 다 연결이 됩니다. 하나님의 지혜라고 하면 다 연결이 되지요.
하나님의 지혜고 하나님의 지식입니다. 그의 판단은 측량치 못할 것이며, 판단 전에는 살핌이 있고 계산이 있습니다. 그래서 판단합니다. 이 판단은 측량치 못할 것이라. 내 생각은 너희의 생각과 다르고 너희의 뜻과 다르나. 하나님의 생각은 사람의 생각과 다릅니다.
청출어람, 제자가 스승보다 낫다고 합니다. 일반적으로 보면 스승은 스승이고 제자는 제자입니다. 자녀의 마음과 부모의 마음은 다릅니다. 자식에 대한 마음이 형제간의 마음과 부모에 대한 마음과는 다릅니다.
그래서 사람이 잘난 사람이 자기주장, 자기 의견, 자기 고집을 세우고 하나님과 가까운 믿음의 사람들의 말을 안 듣는 것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입니다.
누가 그의 마음을 알았느뇨, 도자기가 도자기 주인의 마음을 모르듯이 알 수가 없습니다. 모든 것이 다 그분의 것인데.
눈물이 죄에서 나오고 그분이 창조주인데, 그분이 주인이신데. 그래서 알고 나면 그분에게 영광을 돌릴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은 어떤 분이냐, 하나님의 속성인데, 큰 소리 내지 말라고 하니까 작은 소리로 해봅시다. 하나님의 속성. 물질로 말하면 그것이 만들어진 바탕과 재료입니다. 물은 뭐로 되어있나, 흙은 뭐로 되어있느냐. 사람은 고급으로 들어가면 뭐냐입니다. 신경세포 조직이 있고, 이걸 걷어내 보니까 뼈가 있고 이걸 갈라내니까 골수가 있습니다.
마음은 안에 있으니까 이성이 있고 양심이 있고 욕심이 있습니다. 마음에서 마음의 작용으로 여러 가지 희로애락이 나옵니다. 하나가 잘못되거나 고장이 나면 그런 작용이 없습니다.
자존이라는 말은 스스로 계신다는 겁니다. 연구하고 생각해보고 타고 들어가야 합니다. 그래야 자기가 자랍니다.
사람은 완전할 수가 없는데, 하나님께 붙들리면서 살면 점점 완전해집니다. 그러면 완전의 작용이 많아지고 완전의 요소가 생기기 시작합니다. 그러면 천국에 들어가는 것이 우리의 구원입니다.
영원 불변성, 변하지 않는 것입니다. 어떤 환경이 몰아쳐도, 추워도 더워도 좋아도 나빠도 그 사람이 변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의 뜻이나 행동이나 생각이나, 변하지 않으려면 일을 개입했는데, 그 일이 변했습니다. 변했다는 말은 무슨 뜻인가요? 잘못되었다는 말이죠.
요셉이 서른 살에 총리가 되었는데, 일찍 한 거 같은데 30년 동안 요셉은 치밀하게 준비한 겁니다. 다윗도 이전에도 양 치면서 생각이었고 전부 계획이고 단계였습니다.
신앙은 대기만성 같은 속성이 있습니다. 안에 많은 것이 함축이 되어있는데, 그게 서서히 드러나면 급속도로 드러납니다. 공부는 처음에 아무리 해도 표가 안 나지만 어느 단계에 올라서면 급속도로 올라간다고 합니다.
우리들의 모든 심신의 활동 작용은 신중해야 합니다.
세월이 가도, 비판과 평가, 처리가 변하지 않고 틀리지 않는 이분이 하나님이고 그분을 닮아가는 게 우리의 구원입니다.
나는 어제는 이렇게 생각했는데, 다음날에는 다르구나, 이건 믿는 사람의 자세가 아닙니다. 고집이 있어야지, 가면 망할 길이어도 가겠다고 하면 큰일 나는 거죠. 늙어도 변하지 않을 수 있는, 후회가 되지 않을 수 있는 그런 취사선택을 해야만 하나님을 닮아가는 우리의 구원이 되는 겁니다.
하나님은 한 분이고 그분으로부터 나온 모든 것이 하나입니다.
인간의 귀함은 한없이 귀합니다. 하나님을 닮아가는 사람은 정말로 귀합니다. 인간이 하나님에게 버림받고, 인간이고 내 인생이고, 길게 봐야하는데, 피조물 안에 빙빙 도니까 알 수 없습니다. 우물 바닥에서 하늘 쳐다보니까 작게 보입니다. 그것이 피조물 인간입니다. 그 범위를 벗어나지 못하는...
아는 만큼 보이고 배짱도 생기고 아는 만큼 사랑할 수도 있고, 참부부라면 아는 만큼 서로 사랑할 수 있어야합니다. 오늘은 로마서 11장 33절로 36절 말씀으로 하나님의 속성을 생각해 보았습니다. 아는 가운데에서 자라는 우리가 되어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