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12. 27 주후
김동민2020-12-27조회 268추천 31
2020. 12. 27 주후
본문 : 마태복음 1장 18절
예수님이 나실 때 세상은 지극히 고요하고 평범했습니다.
호적을 정리하라고 해서 고향으로 돌아가는 도중에 아이를 낳게 되었는데, 여관이 장소가 부족해서 옛날에 마구간을 얻어서 거기서 낳아서 말구유에 낳게 되었습니다.
주님은 죄가 없으신 분이고 지극히 높으신 귀한 분이신데 하나님 백성들의 죄를 대신 담당하는 죄인의 구주로 오시니까 볼품없는 모습으로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이 세상이 볼 때는 그렇게 오셨고 그렇게 보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아기의 출생이라는 것은 요즘은 우리나라도 모두 아이를 안 낳는 시대가 되어서 출산하지 않지만 올해도 20만 명은 나올 거 같은데, 우리나라에도 많을 때는 100만 명이었고, 줄어들어도 50만 명이었는데, 매일 수백 명의 아기가 태어나는 겁니다. 그 많은 아기 중에 하나로 태어나셨지 유명하게 드러나지 않았습니다.
옛날에 왕자가 태어나면 아주 온 나라가 들썩거렸습니다. 그래서 왕궁에 아이 낳은 왕비라던지, 세자빈이나 그런 사람들은 별도로 아기 낳는 장소를 만들고 호화롭게 합니다. 왕이 아니더라도 좀 유명한 부잣집이 낳으면 그럴 수 있습니다.
그런데 어지간한 사람은 아이 낳아도 조용하게 낳습니다. 가난한 사람은 더더욱 그렇습니다.
요셉은 직업이 목수였고, 미개하고 가난한 직업이었습니다. 지금 우리나라에 어느 도시 한 군데에 아이 낳는다고 우리가 압니까. 아무도 모르는 겁니다.
하늘에 천군 천사가 알려주고 동방의 박사들이 오고 그런 역사가 있었는데 요셉에게 나타난, 마리아에게 나타난 천사, 동방 박사들에게 나타난 별 등이 많은 사람이 알게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온 세상에 박사들이 많은데, 동방의 몇 사람들에게만 별이 보였습니다. 요셉과 마리아는 천사가 직접 나타났습니다. 그런데 세계 그 누구도 그 사실을 안 사람은 없었습니다.
성경을 통해서 우리 구주가 되시고 그런 걸 알게 되고, 기독교의 구주가 되시니까 세계에 퍼져서 알게 되었지 그전까지는 아무도 몰랐습니다.
아무도 모르는 고요한 밤, 거룩한 밤, 어둠에 묻힌 그런 밤이었습니다. 평범하고 일상적인 그런 밤이었는데, 그 내면을 들여다보면, 역사가 뒤집힐만한 일인데도 아무도 몰랐습니다.
은밀한 가운데에 일어났습니다.
다윗이 드러나게 된 것은 골리앗을 쳐 죽였을 때 유명하게 되었습니다. 어느 날 갑자기 혜성처럼 나타나서 그렇게 되었습니다.
어느 날 갑자기 세상에 혜성처럼 나타났답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알기에는 갑자기 혜성처럼 나타났지만, 하나님에게는 목동부터 시작해서 그런 신앙과 실력을 기르고 있었고, 다윗은 스스로 그런 신앙을 길러나가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모르지만, 하나님께서 어떤 사람을 믿음으로 용사로 기르고 계시는지 아무도 모릅니다. 하나님 역사는 은밀한 가운데에 역하고 계신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고요한 그런 밤에 아무도 모르는 그런 상황에서 주님이 나셨는데 왕도 몰랐고 대제사장도 몰랐고 바리새인들도 몰랐고 유대인들도 몰랐습니다.
심지어 시작하고 밝혔는데도 모두가 인정하지 않고 믿지 않았습니다. 원래 사람이라는 것은 그런 것입니다. 닥쳤을 때는 모르는 겁니다.
역사의 인물들이 나타났을 때 그런 위대한 인물들이 될 줄 몰랐습니다.
우리나라의 세종대왕이나 이순신 이런 사람들이. 이순신은 선조가 시기해서 오랜 시간이 지나서 그렇게 되었지. 나라를 구한 영웅인데도 조용했습니다.
사도 바울이 생전에 얼마나 유명했을까. 순교하고 나면 조용했습니다. 그런데 복음이 전파되니까 그렇게 된 겁니다.
주님이 오셨을 때 아주 낮은 분, 가난한 분, 지극히 서민으로 오셨습니다. 아무도 몰랐습니다.
그런데 그런 분이 오셨기 때문에 하나님의 특혜로 알게 된 5대 성도가 있었습니다.
요셉, 이 사람은 바리새인입니다. 신앙이 있는 사람이고 상당히 권위가 있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못 박아 죽인 사람들에게 틀렸다고 한 사람인데, 그 요셉이 예수님이 살아생전에 수많은 사람이 따랐지만, 제자들이 다 도망쳤습니다. 심지어 수제자인 베드로도 세 번이나 부인하고 도망쳤습니다.
그런데 요셉은 예수님의 장례를 치러 드렸습니다. 온 유대인들에게 이단으로 몰리고 십자가에 죽었으니까, 요셉이 가서 시체를 모셔다가 장례를 치렀습니다. 자기를 위해 파 놓은 묘지에다 장례를 치렀습니다.
그런데 신앙에는 휙 던졌는데 되는 그런 것이 아닙니다. 이치에 맞고 논리적이고 합리적입니다.
5대 성도가 주님을 영접한 것은 과정이 있었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냥 보고 어느 날 콕 집어서 “너 마음에 드니까 보낼게” 이런 거 아닙니다.
요셉은 의로운 사람이었습니다. 어떻게 보면 누구나 할 수 있는데 실제로 보면 어렵습니다.
의라는 것은 옳은 것을 따라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계시고 하나님의 뜻입니다.
사람이 자기 현실에, 취사, 사리, 판단, 결정에 많은 선택과 결정을 합니다.
어떻게 하는 것이 옳은 것이냐. 내 욕심, 내 주장, 내 판단이 아니고 하나님이 오실 때 내가 하나님과 가까이 갈 수 있는, 신앙생활에 유익이 될 수 있는 그런 것들을 따져보아야 합니다.
요셉이라는 사람은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마리아가 증언했는데 동거하기 전에 잉태가 되어버렸습니다. 아직 결혼 안 하고 약혼만 했는데 아이가 생겼다. 요셉은 아마 실수했나 보다. 그렇게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해야지 마리아가 다치지 않고 잘 마무리가 될까 생각을 했습니다.
그러다가 꿈에 천사가 나와서 그 말을 그대로 믿었습니다.
세례 요한은 앞에 뱃속에서 영접한 것은 성령의 충만이었고. 잉태된 6개월 아이가 성령에 충만해서 뱃속에서 뛰어놀았다고 했습니다.
자기 역할로 한 것은 자신의 사명을 잘 감당한 것입니다.
선을 잘 지켜서 주님을 드러낸 그 겸손. 그것이 세례 요한의 신앙입니다.
특이한, 특별한 자연의 계시 섭리를 예사롭게 넘기지 않습니다.
수많은 사람이 별을 보았을 텐데, 특이하게 동방의 박사들은 그것을 예사로 넘기지 않았습니다.
무신론이 판을 치니까 특별한 그런 이변이 일어나도 과학적으로 풀려고 합니다. 이 세상에는 현대 과학이 해결하지 못하는 것들이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습니다.
그런 그것 중에서 자연의 섭리 역사로 일어날 때, 종교성이 있으면 이거 보통 일이 아니구나.
그래서 코로나바이러스가 온 세상을 이러고 있을 때 이것을 예사로 생각하면 안 되겠지요.
종교의 자유라는 것은 어떻게 보면 우리나라는 오랜 세월 노예로 살아서 근성이 있어서 확 눌러버리면 종이 돼버리는 그런 게 있지 않나 어떤 사람들은 그런 말도 합니다.
방역은 해야 하지만, 알고 해야 하고 따지고 살펴봐야 합니다. 방역이 중요한가 자유가 중요한가.
어떤 일이 예사롭지 않게 닥치면 그런 평소와 다른 일이 생기면 하나님의 요구가 있는지 살펴보는 게 동방 박사가 별을 보고 그냥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지 않는 그런 면입니다.
그런데 하나의 큰 실수는, 별의 인도를 따라서 예루살렘에 갔는데, 당연히 왕궁에서 날 그것으로 생각했습니다.
예루살렘 왔을 때는 자신의 주관으로 갔습니다. 그래서 수많은 사람이 죽게 된 그 책임이 바로 동방 박사들에게 있습니다.
목자들, 양 틈에 자던 목자들, 자기가 맡은 그 일을 목자들 목동들입니다. 자기 맡긴 사명입니다.
그게 주님을 영접한 신앙이 됐습니다.
자기 맡은 양 떼들의 형편을 살피고 자신의 형편을 살피지 못했습니다.
믿는 사람의 직장 생활은 월급쟁이가 아니라 목동 생활, 목자 생활이 되어야합니다.
누가복음에 보면 시몬과 안나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경건하고 의로웠고, 하나님을 중심하고 위주로 하여서 살았습니다.
그리고 성전 생활, 그것이 시몬이라는 사람의 생활이었습니다.
안나라는 사람은 결혼했는데 남편을 여의고 결혼을 안하고 주야로 금식하면서 주님을 생각했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영접할 주님은 재림의 주님입니다. 우리도 요셉처럼 사람을 아끼는 그런 사람에게 올 것이고, 마리아처럼 세상을 초월하고 자신을 내놓는 그런 사람에게 올 것입니다.
현실마다 찾아오시는 주님을 생각할 때, 이런 것이 쌓여져 그분을 기쁘게 하게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성도들의 생활을 보면 늘 깨어있었습니다. 과정이 준비되어있었기에 뜨는 것입니다.
평소 우리의 생활이 그런 준비 생활이 되도록 힘을 써야하겠습니다.
본문 : 마태복음 1장 18절
예수님이 나실 때 세상은 지극히 고요하고 평범했습니다.
호적을 정리하라고 해서 고향으로 돌아가는 도중에 아이를 낳게 되었는데, 여관이 장소가 부족해서 옛날에 마구간을 얻어서 거기서 낳아서 말구유에 낳게 되었습니다.
주님은 죄가 없으신 분이고 지극히 높으신 귀한 분이신데 하나님 백성들의 죄를 대신 담당하는 죄인의 구주로 오시니까 볼품없는 모습으로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이 세상이 볼 때는 그렇게 오셨고 그렇게 보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아기의 출생이라는 것은 요즘은 우리나라도 모두 아이를 안 낳는 시대가 되어서 출산하지 않지만 올해도 20만 명은 나올 거 같은데, 우리나라에도 많을 때는 100만 명이었고, 줄어들어도 50만 명이었는데, 매일 수백 명의 아기가 태어나는 겁니다. 그 많은 아기 중에 하나로 태어나셨지 유명하게 드러나지 않았습니다.
옛날에 왕자가 태어나면 아주 온 나라가 들썩거렸습니다. 그래서 왕궁에 아이 낳은 왕비라던지, 세자빈이나 그런 사람들은 별도로 아기 낳는 장소를 만들고 호화롭게 합니다. 왕이 아니더라도 좀 유명한 부잣집이 낳으면 그럴 수 있습니다.
그런데 어지간한 사람은 아이 낳아도 조용하게 낳습니다. 가난한 사람은 더더욱 그렇습니다.
요셉은 직업이 목수였고, 미개하고 가난한 직업이었습니다. 지금 우리나라에 어느 도시 한 군데에 아이 낳는다고 우리가 압니까. 아무도 모르는 겁니다.
하늘에 천군 천사가 알려주고 동방의 박사들이 오고 그런 역사가 있었는데 요셉에게 나타난, 마리아에게 나타난 천사, 동방 박사들에게 나타난 별 등이 많은 사람이 알게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온 세상에 박사들이 많은데, 동방의 몇 사람들에게만 별이 보였습니다. 요셉과 마리아는 천사가 직접 나타났습니다. 그런데 세계 그 누구도 그 사실을 안 사람은 없었습니다.
성경을 통해서 우리 구주가 되시고 그런 걸 알게 되고, 기독교의 구주가 되시니까 세계에 퍼져서 알게 되었지 그전까지는 아무도 몰랐습니다.
아무도 모르는 고요한 밤, 거룩한 밤, 어둠에 묻힌 그런 밤이었습니다. 평범하고 일상적인 그런 밤이었는데, 그 내면을 들여다보면, 역사가 뒤집힐만한 일인데도 아무도 몰랐습니다.
은밀한 가운데에 일어났습니다.
다윗이 드러나게 된 것은 골리앗을 쳐 죽였을 때 유명하게 되었습니다. 어느 날 갑자기 혜성처럼 나타나서 그렇게 되었습니다.
어느 날 갑자기 세상에 혜성처럼 나타났답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알기에는 갑자기 혜성처럼 나타났지만, 하나님에게는 목동부터 시작해서 그런 신앙과 실력을 기르고 있었고, 다윗은 스스로 그런 신앙을 길러나가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모르지만, 하나님께서 어떤 사람을 믿음으로 용사로 기르고 계시는지 아무도 모릅니다. 하나님 역사는 은밀한 가운데에 역하고 계신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고요한 그런 밤에 아무도 모르는 그런 상황에서 주님이 나셨는데 왕도 몰랐고 대제사장도 몰랐고 바리새인들도 몰랐고 유대인들도 몰랐습니다.
심지어 시작하고 밝혔는데도 모두가 인정하지 않고 믿지 않았습니다. 원래 사람이라는 것은 그런 것입니다. 닥쳤을 때는 모르는 겁니다.
역사의 인물들이 나타났을 때 그런 위대한 인물들이 될 줄 몰랐습니다.
우리나라의 세종대왕이나 이순신 이런 사람들이. 이순신은 선조가 시기해서 오랜 시간이 지나서 그렇게 되었지. 나라를 구한 영웅인데도 조용했습니다.
사도 바울이 생전에 얼마나 유명했을까. 순교하고 나면 조용했습니다. 그런데 복음이 전파되니까 그렇게 된 겁니다.
주님이 오셨을 때 아주 낮은 분, 가난한 분, 지극히 서민으로 오셨습니다. 아무도 몰랐습니다.
그런데 그런 분이 오셨기 때문에 하나님의 특혜로 알게 된 5대 성도가 있었습니다.
요셉, 이 사람은 바리새인입니다. 신앙이 있는 사람이고 상당히 권위가 있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못 박아 죽인 사람들에게 틀렸다고 한 사람인데, 그 요셉이 예수님이 살아생전에 수많은 사람이 따랐지만, 제자들이 다 도망쳤습니다. 심지어 수제자인 베드로도 세 번이나 부인하고 도망쳤습니다.
그런데 요셉은 예수님의 장례를 치러 드렸습니다. 온 유대인들에게 이단으로 몰리고 십자가에 죽었으니까, 요셉이 가서 시체를 모셔다가 장례를 치렀습니다. 자기를 위해 파 놓은 묘지에다 장례를 치렀습니다.
그런데 신앙에는 휙 던졌는데 되는 그런 것이 아닙니다. 이치에 맞고 논리적이고 합리적입니다.
5대 성도가 주님을 영접한 것은 과정이 있었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냥 보고 어느 날 콕 집어서 “너 마음에 드니까 보낼게” 이런 거 아닙니다.
요셉은 의로운 사람이었습니다. 어떻게 보면 누구나 할 수 있는데 실제로 보면 어렵습니다.
의라는 것은 옳은 것을 따라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계시고 하나님의 뜻입니다.
사람이 자기 현실에, 취사, 사리, 판단, 결정에 많은 선택과 결정을 합니다.
어떻게 하는 것이 옳은 것이냐. 내 욕심, 내 주장, 내 판단이 아니고 하나님이 오실 때 내가 하나님과 가까이 갈 수 있는, 신앙생활에 유익이 될 수 있는 그런 것들을 따져보아야 합니다.
요셉이라는 사람은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마리아가 증언했는데 동거하기 전에 잉태가 되어버렸습니다. 아직 결혼 안 하고 약혼만 했는데 아이가 생겼다. 요셉은 아마 실수했나 보다. 그렇게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해야지 마리아가 다치지 않고 잘 마무리가 될까 생각을 했습니다.
그러다가 꿈에 천사가 나와서 그 말을 그대로 믿었습니다.
세례 요한은 앞에 뱃속에서 영접한 것은 성령의 충만이었고. 잉태된 6개월 아이가 성령에 충만해서 뱃속에서 뛰어놀았다고 했습니다.
자기 역할로 한 것은 자신의 사명을 잘 감당한 것입니다.
선을 잘 지켜서 주님을 드러낸 그 겸손. 그것이 세례 요한의 신앙입니다.
특이한, 특별한 자연의 계시 섭리를 예사롭게 넘기지 않습니다.
수많은 사람이 별을 보았을 텐데, 특이하게 동방의 박사들은 그것을 예사로 넘기지 않았습니다.
무신론이 판을 치니까 특별한 그런 이변이 일어나도 과학적으로 풀려고 합니다. 이 세상에는 현대 과학이 해결하지 못하는 것들이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습니다.
그런 그것 중에서 자연의 섭리 역사로 일어날 때, 종교성이 있으면 이거 보통 일이 아니구나.
그래서 코로나바이러스가 온 세상을 이러고 있을 때 이것을 예사로 생각하면 안 되겠지요.
종교의 자유라는 것은 어떻게 보면 우리나라는 오랜 세월 노예로 살아서 근성이 있어서 확 눌러버리면 종이 돼버리는 그런 게 있지 않나 어떤 사람들은 그런 말도 합니다.
방역은 해야 하지만, 알고 해야 하고 따지고 살펴봐야 합니다. 방역이 중요한가 자유가 중요한가.
어떤 일이 예사롭지 않게 닥치면 그런 평소와 다른 일이 생기면 하나님의 요구가 있는지 살펴보는 게 동방 박사가 별을 보고 그냥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지 않는 그런 면입니다.
그런데 하나의 큰 실수는, 별의 인도를 따라서 예루살렘에 갔는데, 당연히 왕궁에서 날 그것으로 생각했습니다.
예루살렘 왔을 때는 자신의 주관으로 갔습니다. 그래서 수많은 사람이 죽게 된 그 책임이 바로 동방 박사들에게 있습니다.
목자들, 양 틈에 자던 목자들, 자기가 맡은 그 일을 목자들 목동들입니다. 자기 맡긴 사명입니다.
그게 주님을 영접한 신앙이 됐습니다.
자기 맡은 양 떼들의 형편을 살피고 자신의 형편을 살피지 못했습니다.
믿는 사람의 직장 생활은 월급쟁이가 아니라 목동 생활, 목자 생활이 되어야합니다.
누가복음에 보면 시몬과 안나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경건하고 의로웠고, 하나님을 중심하고 위주로 하여서 살았습니다.
그리고 성전 생활, 그것이 시몬이라는 사람의 생활이었습니다.
안나라는 사람은 결혼했는데 남편을 여의고 결혼을 안하고 주야로 금식하면서 주님을 생각했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영접할 주님은 재림의 주님입니다. 우리도 요셉처럼 사람을 아끼는 그런 사람에게 올 것이고, 마리아처럼 세상을 초월하고 자신을 내놓는 그런 사람에게 올 것입니다.
현실마다 찾아오시는 주님을 생각할 때, 이런 것이 쌓여져 그분을 기쁘게 하게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성도들의 생활을 보면 늘 깨어있었습니다. 과정이 준비되어있었기에 뜨는 것입니다.
평소 우리의 생활이 그런 준비 생활이 되도록 힘을 써야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