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5-주후(누17:5-6)
겨자씨 믿음2014-10-06조회 335추천 28
20141005 주후
누가복음 17:5-6
믿음 더해지는 방편 두가지 말씀중에서 겨자씨 믿음 하나만 생각을 해보고 있습니다. 사도들은 예수님에게 직접 부르심을 받고 직접 배운 사람들이 사도들입니다. 몇 사람입니까, 모두? 사도들이 모두 몇 명입니까? 열 두 사도인데, 이 사도는 정해져있고 더 이상 더하지도 않고 빠지지도 않습니다. 열 두 사도. 첫째 누굽니까? 베드로, 안드레, 야고보 요한의 형제 야고보입니다. 또 요한, 빌립, 바돌로매 다른 이름으로는요? 바돌로매를 나다나엘이라 그렇게도 말한답니다. 그다음 도마, 마태, 그다음 또 야고보. 이 야고보는 알패오의 아들이라 그럽니다. 또 다대오, 다대오는 다른 이름으로 유다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습니다. 야고보 아들 유다라 그럽니다, 다대오. 그다음 시몬이 있는데 이 시몬은 셀롯인인가 그런 이름을 가지고 열심당원이라는 그런 뜻을 가진 그런 사람인데 시몬이고, 그다음 열두번째 가룟유다 대신에 사도바울이 들어가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 본문에 말씀하신 사도들 열두 사람이라 하면 여기 누구도 포함됩니까? 가룟유다도 들어가 있는데 이 가룟유다가 사도였지만은 타락해서 변질이 되어졌습니다. 그래서 열 두 사도, 가장 중요한 것은 예수님에게 직접 부르심을 받은 사람 열 두 사람입니다. 그런데 예수님 생전에 모시고 다녔던 사람들은 열 두 사도중에서 열 한사람이고 사도바울은 그 뒤에 주님에게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열 두 사람이고, 일반적으로는 사람들이 제비 뽑아서 세운 맛대아라는 사람도 사도로 넣는 그런 사람도 있다 그러는데 성경은 맛대아보다는 사도바울을 사도로 그렇게 본다고 볼 수 있습니다. 직접 기록은 안되있어도 그리 볼 수 있습니다.
사도라는 이름을 가질때 세가지 권세가 있는데, 첫째는 주님에게 직접 부르심을 받았고 두 번째는 성경을 기록할 권세가 있고 세 번째는 교회를 세울 권세가 있는데 그런데 교회를 세울 권세는 보니까 열 두 사도가 다 곳곳에서 복음을 전하고 있기 때문에 교회를 다 세웠다 볼 수가 있겠고, 성경을 기록한 사도는 많지 않습니다. 마태복음에 마태는 사도 맞지요. 마가복음에 마가는 사도가 아닙니다. 또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을 기록한 누가라는 사람도 사도가 아니고, 누가라는 사람의 원래 직업은 의사라 그러지요. 의원 누가라 그리 말합니다. 그래서 성경 기록한 사람 보면은 베드로, 마태 그다음 사도 요한, 바울 이렇게 네 사람 정도가 성경 기록했고 다른 사람은 성경 기록한 것은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교회는 모두 다 세웠다 그렇게 볼 수 있습니다.
이런 사도들은 주님이 가시고 난 다음 주님에게 배워가지고 예수님의 대속의 모든 역사와 가르침을 직접 모시고 다니면서 보고 듣고 배웠던 그 열 두 사도를 통하여 주님의 모든 실상이 곳곳에 전파되게 된 겁니다, 보이는 면으로. 그리고 그 열 두 사도의 뒤를 이은 사람을 속사도라 그리 말하고 아마 그분이 성경에 나오는 칠십인이 아닌가 싶은데 속사도라 그러고, 그리고 이제 계속해서 퍼져나가서 오늘까지 복음이 전파되어왔기 때문에 우리가 거슬러 올라가면 주님에게 가는데 그 주님에게 가기 바로 전에는 열 두 사도가 있다 그리 볼 수 있고, 그래서 열 두 사도의 가지고 있는 가치관은 오늘 우리들이 배워야 될 가치관과 일단 같은 겁니다. 그래서 사도들이 주님에게 여짜오되 간청하기를 ‘우리에게 믿음을 더하소서’ 했으니까 사도들이 가진 가치관, 주님에게 듣고 오랜 세월 배우고 그들이 깨달아 느낀 것은 이 세상에서 사람이, 더욱이 주님을 따라가는 사람에게 있어서 가장 소중한 것은 무엇보다 무엇보다 가장 소중한 것은 믿음이겠구나 예수님이 가르치신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믿음이다. 그런데 고린도전서 13장에 보니까 믿음과 소망과 사랑은 영원히 있을 것인데 그중에 제일은 사랑이라 그래 되어있죠, 사랑이라. 그런데 사도들은 믿음이 보배다, 그런데 연결시켜보면 사랑과 믿음이란 것은 뗄 수 없는 관계를 가지고 있고 소망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그 셋은 성령과 물과 피라, 이 셋은 합하여 하나라는 이거하고는 좀 다르고 삼위일체 하나님하고 이런거는 다르지만은 그러나 관계적으로 보면 믿음과 소망과 사랑이란 것은 뗄 수 없는 관계로 되있어서 그 셋 중에서 하나만 빠져도 두 개는 소용 없는 것이 되어집니다. 그래서 믿음이 있을때 사랑이 역사할 수 있고, 사랑있는 믿음이라야 되고 소망도 역시 마찬가지고 이렇게 되어있습니다. 그래서 강조하는 것에 따라 다르지만은 사도들의 간구는 믿음이 가장 보배다, 믿음이 제일이다 그래서 우리에게 소망을 주옵소서, 우리에게 사랑을 주옵소서, 우리에게 굳센 의지를 주옵소서 이런걸 구하지 않고 우리에게 믿음을 더하여 주옵소서 그렇게 구했습니다. 기독교는 믿음의 도고, 믿음이 전부라 그리 말할 수 있습니다. 믿음이 무엇인가? 믿음이란 것은, 그 믿음의 역할을 생각해본다면 믿음이란 것은 하나님과 사람 사이를 연결시켜주는 그런 말하자면 이게 중매쟁이라 그러면 인격을 가진 존재라야 되는데 하나님과 우리 사이의 중매쟁이는 누굽니까? 누군가요? 하나님과 우리 성도 사이의 중매쟁이는 예수님이고, 예수님하고 우리 사이의 중매쟁이는 누구겠습니까? 예수님과 우리 사이에 중매쟁이는? 우리 사이라고 하면 좀 그렇습니까? 예수님하고 그 시대 사는 유대인들 사이 중매쟁이는 누구였습니까? 세례요한이였습니다, 세례요한. 믿음이란 것은 이거는 인간의 행위인데, 인간의 심신 행위의 작용 역사인데 그 작용 역사가 바로 하나님과 성도 사이를 연결시켜주는 중매쟁이 역할한다 그리 볼 수 있어서, 중매쟁이 다리입니다, 다리. 이게 없으면 건너갈 수 없듯이 믿음이 없으면 사람은 하나님께 갈 수 없고 하나님은 사람을 맞이할 수가 없는 겁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우리 성도에게 주신 기본적인 은혜가 믿음, 기본적인 믿음이 있고 그 기본 믿음을 길러가는게 우리 건설 믿음인데, 그래서 기본적인 믿음은 하나님이 은혜로 주셔서 하나님을 찾게 하시고 알게 하셔서 택함 받고 중생된 성도는 기본적으로 하나님이 어떻게 됩니까? 믿어지게 되어있고 이 은혜를 선물로 받지 못한 사람은 아무리 노력해도 하나님이 안 믿어지는데, 하나님의 택함 받고 중생된 성도는 선물로 믿음을 주셨기 때문에 그 믿음의 작용으로 하나님이 성경 말씀이 믿어지게 되있습니다, 기본적으로. 결단코 절대 인간의 상식과 이치와 역사와 통계로 믿을 수 없는 신구약 성경에 기록된 수많은 사실들이 하나님의 선물 믿음을 받은 사람들에게는 그 사실이 믿어진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그 믿음을 가지고 그다음, 그 믿음을 종자 삼아서 더욱 더 그 믿음을 길러가는 것이 기본적으로 깨달아 알게된 하나님을 점점 더 알아가는 것이고 하나님께 가까이 가는 것이고 하나님과 연결이 더욱 더 돈독해지는 것이고 그 연결을 통해서 하나님의 모든 은혜는 우리들에게 계속 오게 되고 우리들의 모든 기도는 주님에게 하나님께 전달되게 되고 이렇게 왕래, 상호내조하고 상호왕래하는 이런 것이 믿음이라는 연결 고리를 통해서 되어진다는 겁니다. 이게 믿음의 역할입니다. 맞습니까? 논리적으로 맞습니까? 우리 여반에 어떻습니까? 믿음은 하나님과 성도의 연결고리 중매역할 한다 맞습니까? 제가 설명드린게 논리적으로 이해가 되십니까? 남반엔 어떻습니까? 믿음은 하나님과 성도 사이의 연결고리다. 믿음 없으면 안되는 겁니다. 믿음은 크게 말하면 두 종류가 있습니다. 하나는 기본적인 믿음, 선물로 받은 믿음 그게 있어야 그 위에 건설믿음이 건설이 되어지는 겁니다. 기본 믿음이 있기 때문에 하나님이 믿어지고 성경 말씀이 믿어진다는 것이고 믿어지는 그 믿음을 바탕으로 깔아놓고 그 위에서 그 믿음 생활을 점점 길러나갈 때, 해나갈 때 하나님과 우리 사이는 점점 하나님을 알아가게 되고 가까워지게 되고 관계가 돈독해지게 되고 이 연결이 된 상태로 하나님의 모든 것이 믿음이라는 이 통로를 통해서 우리에게 오고, 우리들의 모든 회개 간구 또 도고 이런 모든 것들 하나님께 갈 수 있게 되고, 물론 그 바탕은 중보자 예수님의 대속이 있고, 예수님의 대속을 근거한 믿음이라는 방편 통로를 통해서 하나님과 우리는 상호교제를 하게 되어진다는 말입니다. 논리가 맞습니까? 그래서 믿음은 중요합니다. 이게 믿음인데, 그런데 그 믿음의 역할이 그러하고 믿음의 실제는 그러면 그런 하나님과 성도 사이에 이런 통로 역할하는 이 믿음이란 것은 그 내면이 내용이 어떤 것인가 하면, 그 믿음은, 믿음이라는 통로를 이걸 분석을 해보면 우리가 배운대로 자세히 말하면 세가진데 일반 상식으로 말하면 두가지로 하나는 성경에 기록된 모든 말씀을 내가 마음으로 인정을 하고, 인정하는 그 말씀대로 내가 몸이 따라가서 순종을 하는, 인정과 행함 순종 이 두가지가 바로 믿음의 알맹이고 믿음의 실제다 하는 겁니다. 이것이 기독교에 있어서 가장 중요하고 그러면 제자들이 이렇게 세밀하게까지 알았는지는 모르겠지만은 어쨌든 분석해보면 이 세가지 이런 것이고, 그래서 우리들이 구할 믿음은 바로 이런 걸 구하는 겁니다. 그런데 첫째 말씀드린 믿음의 역할 이거는 원래 그리 되어있는거니까 우리가 특별히 그냥 상식으로 알면 되는 것이고 믿음이란 것은 성경에 기록된 모든 사실이 내 마음 속에 믿어져야 되고 인정되어야 되니까 믿음을 구한다는 말은 신구약 성경에 기록된 모든 사실이 믿어지게 해주옵소서, 인정이 되게 해주옵소서, 죽은 사람이 살아났다는 사실이 믿어지게 해주옵소서, 인간의 모든 언행심사를 하나님께서 낱낱이 다 기록하고 계신다는 것을 내가 믿게 해주옵소서, 이 땅 위에 사는 동안 하나님께서 인간의 모든 언행심사를 낱낱이 행동록에 기록해놨다가 그리스도의 심판대앞에서 영원한 상벌로 갚아주신다는 그 사실이 믿어지게 해주옵소서, 그러기 때문에 그런 사실이 믿어지기 때문에 이 땅에 사는 우리 모든 마음의 작용과 몸의 움직임 하나하나가 함부로 되지 아니하고 말씀에 입각해서 구별되게 조심스럽게 말씀대로 사는 순종으로 사는 그런 우리 언행심사 생활이 되게 해주옵소서 분석하면 이런 것을 말하자면은 구하는 겁니다. 믿음을 구하는 것. 우리가 믿음의 가치를 깨닫고 믿음을 구하는 우리들이 되어야 되겠습니다. 믿음을 더하여 주옵소서, 특별히 교역자가 교인들 두고 기도할 때 많은 형편이 있지만은 전체를 두고 기도할때는 우리 교인들에게 믿음을 더하여 주옵소서, 또 어떨때는 말씀을 듣는 귀를 열어주시고 깨닫는 마음을 허락해주옵소서 그런 기도를 많이 합니다. 어쨌든 믿음만 바로 가지면 그 다음 것은 크게 문제될 것이 없고 모든게 다 해결이 되어지게 되어있습니다. 사도들이 주님에게 믿음을 구했습니다. 우리도 주님에게 믿음의 가치를 깨닫고 믿음을 구하는 우리가 되야되고 이 가치관을 가질때 우리들이, 가치라는 것은 비교잖습니까? 비교해서 보다 더 어느 것인가? 이 세상에는 사람이 살아가는데 필요한 굉장히 많은 것들이 이 세상에는 있는데, 그 모든 것 중에서 우선 순위가 있습니다. 절대 필수적으로 필요한 것이 있고 선택적으로 필요한 것이 있는데, 필수적인 것은 하나님께서 알아서 우리에게 해주신다는 것이 무엇인가? 너희는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아라. 이것은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고 이 모든 것은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다 알아서 해주신다. 참새 두 마리가 한 앗사리온에 팔리고 들에 핀 백합화가 솔로몬의 모든 영광보다 더 뛰어나지만은 그것 전부 하나님이 피시니까 그리되는건데, 하물며 너희는 구속 받은 성도인데 하나님 아버지 아들들인데 이 세상에서 무엇을 먹을까 입을까 마실까 염려하도록 버려두겠느냐? 그게 뭐냐하면은 사람이 살아가는데 필요한 필수적인 그런 정도, 필수요소들, 이런 걸 하나님께서 책임을 다 지신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예수 믿는 사람이 굶어죽을 걱정할 것 없고 밥 굶을 염려할 것 없는데, 그런데 사람이 현실 부딪히다보면은 어떻게 먹고 살까 의식주 염려를 하는데 참 가끔 한번씩 보면은 믿음 없는 그런 염려를 하게 되지요 사람이. 그게 되고 그다음에 사람이 살아가는데는 그다음으로는 모든게 다 선택적인 것인데 필수적인 것은 하나님께서 알아서 책임지시는 것이고 나머지는 전부 선택인데 그 선택에서 중요하게 사람들에게 작용하는 인적 요소가 하나 있는데 그게 무엇이겠습니까? 사람에게 있는 사람이 살아가는데 필수적인 기본요소를 하나님께서 책임을 다 지시고 나머지는 선택적인 그런 것들인데 그 모든 걸 선택함에 있어서 사람에게 있어서 아주 중요하게 작용하는 마음의 요소가 있으니 그걸 가리켜 뭐라 그럽니까? 말씀의 각도를 좀, 제가 질문 드릴때 좀 어렵지요? 저대로 생각하고 질문드리니까. 이런 선택에 있어서 사람에게 있어 중요하게 작용하는, 제가 선택을 이걸 말씀드리면서 앞에 뭘 말했습니까? 믿음의 가치를 두고 설명 드렸으니까 그러면 좀 연결이 되실란가요? 믿음이란 것과 세상에 많은 것을 두고 가치 비교해서 우선순위 보다 더 가치있는 걸 선택해야 되는데 그 선택에 있어서 중요하게 작용하는 마음의 요소가 있으니 그게 무엇이겠는가 말입니다. 0집사님 아시겠습니까? 양심, 조금 각도가 안 맞는 것 같은데. 무엇이겠습니까? 000? 모르겠어요? 요즘 대답을 잘하더니. 사람이 선택할 때 있어서 좋은 것을 얼마든지 선택하고 할 수 있는데 믿음과 연결시켜 볼때, 믿음을 가져야 되는데 믿음 가지려면 좋은 것을 내놔야 될 때가 많이 있습니다. 따져보니까 믿음이 더 귀한데, 믿음이 더 가치있는데 믿음을 두고 가지고 싶은 것들이 많이 있기 때문에 사람들은 믿음을 버리고 세상에 많은 것들을 선택을 하게 되니 믿음을 버리고 많은 것들을 선택하는 그 마음의 요소를 가리켜서 뭐라고 합니까? 욕심이라 그러지요, 욕심. 그걸 욕심이라 그럽니다. 그래서 인간의 욕심이 굉장히 많은 작용을 하게 되는 겁니다. 그러기 때문에 욕심이 생겨진즉,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그 죄가 장성하면 사망을 낳느니라. 죄가 장성 안해도 죄 자체가 바로 사망인데, 사망을 낳는다 그말은 죄가 자꾸 자라면 그만큼 자기에게 사망이 커지고 많아진다는 그런 의미로 볼 수가 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세상을 살아가다가 믿음이란 것을 두고 모든 것을 다 두고 그러니까 일단 예수 믿는게 최우선이고 기본이고 그다음 두 번째는 우리들이 반드시 먼저 선택해야될 첫째 조건이 예수 믿는 것 신앙자유 양심자유 교회자유 첫째, 그다음 두 번째는 그 예수 믿은 선택을 하고 난다음 그다음 두 번째 우리가, 그거는 절대적인 조건이라 보고 그다음 두 번째 우리가 선택해야 되는 그 신앙 자유 양심 자유 교회 자유 위에서 우리들이 선택해야 되는 많은 것 중에서 또 다시 반드시 선택해야 될 거는 뭡니까? 세상 어떤 것보다도 믿음 생활이라는 겁니다. 믿음생활, 신앙생활 하는 것. 그러니까 자유를 가지고 그다음 그 자유 위에서 내가 할 첫째 것은 믿음생활을 가장 최우선에 두고, 신앙생활을 가장 우선순위에 두고 거기 맞춰서 모든 생활하는 것이 믿는 사람의 생활입니다. 믿음 생활을 중심에 두고 믿음 생활을 바로 할 수 있는 직장생활, 믿음 생활을 바로 할 수 있는 가정 생활, 믿음 생활을 바로 할 수 있는 학교 생활, 믿음 생활 바로 할 수 있는 결혼 관계, 자녀교육, 모든 사업 거기 다 맞춰야 된다는 그말입니다. 그것이 믿는 사람들의 기본적인 자세고 그게 믿음의 가치를 바로 깨닫는 그런 생활이 되는 겁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말씀대로 순종할 수 있는 그 생활을 최우선순위에 둔다 그말입니다. 그리 사는 우리들이 되어야 됩니다. 저는 이렇게 설교는 하는데 실제로 이렇게 살아갈 수 있도록 지도하는게 부족해서 여러 가지 안타까운 마음이 많고 아쉬운게 많습니다.
그런데 사도들이 이렇게 주님에게 구할 때 믿음을 더하소서 하고 구하니까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대답은, 믿음은 어떻게 하면 된다 저렇게 하면 된다 말씀하지 아니하고 겨자씨 믿음을 말씀하셨습니다. 너희에게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 그러니까 겨자씨 한 알을 말씀하신 것은 얼른 생각해봐도 지극히 작은 것, 사람들이 보기에 보잘 것 없는 것 아무것도 아닌 것, 겨자씨는 말하자면 조금 큰 먼지만하다고 할까 그리 볼 수 있습니다. 아주 작습니다. 그런 작은 것이니까 이거는 사람들 생각할 때 그 믿음 생활하는 그 사람이나 그 믿음 자체가 작아도 전혀 상관이 없다는 그말이지요. 다만 거기에 생명 있는 믿음만 가지면 된다 그말입니다. 생명 있는 믿음. 겨자씨 한알만한 믿음이 있었더면 그 믿음은 작아도 상관 없으니까 생명있는 믿음을 가지면 된다 그리 말씀하신 것이고 그 생명이란 것은 연결이고 연결이라 말은 공급의 계속이라 그리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겨자씨 믿음, 다시 말하면 생명 있는 믿음, 하나님과 연결되어진 그 믿음인데 그 믿음을 실제 생활에서 들어가보면 하나님과 연결된 믿음이란 것은 바로 믿음 생활의 계속이다. 별다른 것이 아닙니다. 특별한 것이 아닌 겁니다. 하나님과 연결된 믿음이란 것은 믿음 생활의 계속입니다. 그것이 바로 다시 말하면, 자기가 만나는 그 현실속에서 수많은 현실 현실 살아가는, 또 현실이 나오니까 맛도 없고 재미도 없는데 어쨌든 사람은 현실을 떼고 나면 살아갈 수 없습니다. 사람이 땅을 밟지 않고 사는 수가 있습니까? 땅을 밟지 않고 세상에 살아가는 법이 있습니까? 공중에 날아다니지 못하니까. 사람이 이 세상에 살라그러면 반드시 두 발 가지고 땅을 딛고 살아야 정상으로 사는 겁니다. 현실이란 것은 사람이 땅을 밟고 걸어가는 것과 같은 겁니다. 사람이 현실을 사는 것은 사람이 땅을 두발로 밟고 걸어가는 것과 같은 겁니다. 우리에게 현실이란 것은. 현실은 말하자면은 우리에게 우리가 걸어가는 땅과 같은 생활 환경 세상이다 그말입니다. 그 현실을 우리들이 살아갈 때 매일 매일 순간 순간 살아갈 때 그 살아가는 생활에 그냥 사는 것이 아니고 믿는 사람이 살아가는 그 모습이 도덕주의자들은 도덕적인 그런 면에 중점두고 살아가고 불교 믿는 사람들은 불경적인 생활로 살아갈 것이고 또 이 세상에 낙천적인 사람들은 등따시고 배부르게 편하게 살아갈 것이고 돈을 목적하는 사람은 살아갈 때마다 돈 버는 거기 초점 맞추고 살아갈 것이고 공부하는 학생은 공부에 초점 맞추고 살아갈 것이고 예수 믿는 사람은 살아갈 때 어디다 초점을 맞춰야 되는가? 그 현실에서 내게 원하시는 순간 순간 현실 현실마다 원하시는 하나님의 뜻이 있으니 그 하나님의 뜻을 가리켜서 어려운 말로 영감이라 그리 말하고 하나님의 뜻이 바로 영감입니다. 성령의 감화감동이고 그 뜻이 어디 담겨있느냐? 그 하나님의 뜻은 말씀이라는 그릇 안에 담겨 있습니다. 그 말씀이라는 그릇에 담겨 있는데, 그래서 내게 살아가는 그 현실에 말씀이라는 그릇 안에 담아주신 하나님의 뜻을 찾아서 그 뜻대로 그 현실에서 말도 하고 행동도 하고 사람과 관계도 가지고 울기도 하고 웃기도 하고 판단도 하고 처리도 하는 그것이 믿음생활 순종하는 생활이다 그말이고 그리 살아가다보면 여러 가지 일상적인 생활에서 큰 문제가 없을때도 많이 있지만은 여러 가지 문제가 생길때가 많이 있습니다. 그런게 어려움들이고. 그래서 자기 현실에서 이미 듣고 배워 아는 말씀, 그 말씀 가지고 따져보면 자기 속에 말씀에 지배받는 신앙 양심, 그 양심을 통해 알려주시는 주님의 뜻 성령의 감화 그것을 현실마다 찾아보면 있으니까 그 뜻을 찾아 순종하는 것이 바로 겨자씨 믿음 생활이고 그 생활을 계속하는 것이 겨자씨 믿음의 계속이고 하나님과 연결된 생활에 계속이니까 이게 바로 겨자씨 믿음 생활이 되는 겁니다. 이렇게 살면 어떤 결과가 나타나게 되는 것인가? 뽕나무가 뽑힙니다, 뽕나무가. 지름이 3-4미터쯤 되는, 너무 커서 길을 내면 자동차도 다닐 수 있을만큼 그리 어마어마하게 큰 뽕나무가 사람 손대지 아니하고 뽑혀지고 옮겨지고 심어지는 것인데 이말은 다시 말하면 절대 사람이 할 수 없는 것은 하나님의 겨자씨 믿음의 능력으로 할 수 있게 되어진다 이러니까 수많은 사람들이 이 말씀을 이해하기를 아 예수 믿으면 도깨비 방망이가 생겨져서 금나와라 뚝딱 하면 금이 생겨지고, 내 속에 있는 암병이 고쳐져라 뚝딱 그러면 고쳐지고 내 속에 깊이 박혀있는 악성 악습이 뽑혀라 그러면 뽑혀나가고 이렇게 사람들이 착각하는 것이 너무 너무 많다 그말입니다. 이런 착각을. 그래서 그런 신앙을 가리켜 허영적인 신앙, 허욕적인 신앙 또 이름 하나 붙여 무슨 신앙이라 그랬던가요? 오일밤 예배때 말씀드린 것 같은데. 복권적인 신앙, 로또 복권적인 신앙. 전부 그거는 허영 허욕이고 하나님께서 결코 기뻐하실 수 없는. 그래서 백목사님께서 병 나은 기도하실 때 이 시간 말씀듣고 인간병 낫게 하시고 그다음 덧붙여 기도한 것이 병을 나았다가 죄를 지으면 또 재발하게 하시고 재발했다 또 다시 회개하면 또 고쳐주시고. 그런 것이 다 이것하고 연관성이 있는 겁니다. 사람이 병을 고쳐도 죄 지으면 또 날 수가 있는 겁니다. 또 병이 날 수 있고. 신유의 역사, 신유의 은사란 것은 성경에 있으니까 있는 것입니다. 지금도 그런 일 있을 수 있습니다. 있는 것인데, 그거는 믿음으로 살면 말씀 순종하면 병이 고쳐진다는 하나의 뭡니까? 말씀으로 살고 믿음으로 살면 온갖 종류의 병을 다 고칠 수 있다는 뭐라 그럽니까 그걸 가리켜서? 이렇게 안 통합니까. 그런 병 고치는 걸 가리켜 뭐라 그럽니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가르쳐주고 싶은 교훈과 말씀 계시를 담아가지고 사람이 할 수 없는 기적 이적의 역사를 일으키는 걸 가리켜 우리가 배운대로 뭐라 그럽니까? 표적이라 그럽니다 그걸, 표적. 표적이란 것은 성경에 말씀하시기를 표적은 어떤 사람에게 보여주신다고요? 안 믿는 사람, 믿음 없는 사람에게 표적은 보여준다 그랬습니다. 믿음이 생기도록 하기 위해서. 지금도 예수 믿는 복음이 전파되지 않은 곳에, 전혀 모르는 그런 곳에 가서 조금 믿고 하면은 표적이 많이 나타난다고 하는 겁니다. 그게 우리 목적이 아닙니다. 속에 있는 암병 고쳐봐야, 그 암병 고쳐봐야 좀 지나면 죽습니다. 죽을 고깃덩어리 암병을 고쳐주기 위해서 주님이 세상에 오신게 아니다 그말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신 것은, 그리고 죽은 사람 살리고 많은 병자를 고친 것은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닌 겁니다. 주님 말씀 순종을 하고 믿음으로 살면 이런 일도 있으니까 나타나는 표적을 보고 주님이 가르치시는 하늘의 복음을 깨닫고 하늘의 구원을 이루어가라는 그걸로 보이는 표적이지, 그것 자체가 목적이면 아무 가치가 없는 겁니다. 그런거는 요즘 의사들도 많이 하지 않습니까? 교회서 기도로 고치는 병이 많습니까, 병원에 가서 고치는 병이 많습니까 지금 시대에? 교회가 굉장히 많은데, 오늘날 세계 모든 교회들이 목사님들이 병 고치는 것 하고 이 세계에 있는 의사들이 병 고치는 것 하고 누가 많습니까? 의사들이 병 고치는게 열배 백배 천배는 더 많을 걸요? 그게 목적이 아니라는 겁니다. 그 속에, 그러니까 가르치는 표적입니다. 그래서 뽕나무라는 것은 사람이 할 수 없는 것, 사람 힘으로 절대 안되는 것, 뽕나무를 뽑아서 옮겨 심으면 뭐 하겠습니까? 비유입니다. 겨자씨도 비유고 뽕나무도 비유인데, 그런데 그 큰 뽕나무가 뽑히고 옮기고 심어진다는 것을 비유로 말씀하신 것은 사람이 절대 할 수 없는, 사람의 힘과 능력으로 절대 안되는 것을 해야 되는데 뽑아내야 되는데 사람이 못 뽑아내는게 우리한테 있다는 겁니다. 뽕나무가 땅 속에 수백년 동안 박혀있으니까 깊이 박혔고 사방천지 뿌리가 얽혔고 단단하게 박혀있는 그것을 못 뽑는데 이와 같이 우리 속에는 오랜 세월 속에 깊이 박혀있는 그런 요소들이 있다는 겁니다. 이걸 잠깐 설명드리면, 사람이란 것은 하나님께서 만드실 때 사람의 요소가 몇 가지입니까? 영과 마음과 몸인데, 영은 단일성의 존재입니다. 하나입니다. 전부다 하나고, 영이란 존재는 단일성의 존재고, 마음과 몸은 종합체라 그럽니다. 여러 가지 수많은 요소가 섞여서 종합체로 그렇게 만들어져 있습니다. 그런데 사람의 마음은 오래전에 집회때 배운 말씀을 보면은 사람의 마음은 제일 처음에 하나님께 지음 받은 사람의 마음은 색깔이 무슨 색이라 그러던가요? 마음과 몸 심신은 무색이라 그럽니다, 무색. 아무 색깔이 없다 그말입니다. 색깔이 없다 그말은, 색깔이 없다는 말은 하나님편과 반대편을 두고 어느쪽에도 물들지 않은 상태를 말합니다. 그런데 기본적으로 원죄가 있으니 그거는 깔려 있습니다. 그러나 어쨌든 원죄가 있지만은 그 자체가 무색입니다. 그런데 그 무색된 마음과 몸 심신에, 사람이 세상에 태어나면 잉태되고 어머니 태속에서 바깥 세상에 나오면 심신은 일단 무색입니다. 무색으로 태어났는데, 무색으로 태어난 그 심신이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이제 귀로 듣고 눈으로 보고 몸으로 접촉하는 가운데에서 몸이 고깃덩어리가 귀로 들리고 눈으로 보고 접촉을 하고, 어머니 목소리 아버지 목소리 주변 사람들 목소리가 들려지고 또 좀 지나면 눈이 떠서 희미하게 보여지고 그런데 봐도 뭐가 뭔지 아무것도 모르겠고, 들려도 뭐가 뭔지 아무것도 모르겠고 접촉해도 뭐가 뭔지 아무것도 모르는데 한번 듣고 두 번 듣고 열 번 듣고 스무번 듣고 백번 듣고 천 번 들으니까 귀에서 엄마 소리가 귀에 박힙니다. 기억력, 기억을 하는 겁니다. 뇌가 기억을 하고 마음 속에 박히는 겁니다. 그러면 좀 있다 입이 열리면 엄마 따라 하고, 또 눈으로 자꾸 보이는데 처음에는 누군지 몰랐는데 자꾸 보니까 이분이 나한테 젖도 먹여주고 안아도 주고 아플때 따뜻하게 해주고 또 재워주고 업어주고 하는거 보니까 이분이 가만히 보니까 ‘엄마다 엄마다’ 그러니까 엄마거든요. 아 이분이 우리 엄마구나. 어릴때는 엄마가 항상 파란색 입고 있으면 파란 옷만 입고 있으면 엄마인줄 알고 그러고, 좀 지나고나면 파란 옷만 입은게 아니고 우리 엄마는 어떻게 생겼다는 것을 구별해 알게 되고, 듣게 되고 알게 되고 접촉하는 그 속에서 그래서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접촉하는 그 속에서 눈에 익어지고 귀에 익어지고 신경 세포 조직에 익어지면서 한편으로는 그 모든 것들이 자기 마음속에 있는 기억력 속에 기억에 저장이 되어지고 또 지식성이란 그 속에 지식으로 하나씩 둘씩 저장이 되어지고 또 감정이라는 그런 요소가 조금씩 싹트기 시작하고 그래가지고 그런 모든 것들이 마음속에 있는 요소가 점점 하루하루 살아가면서 접해가면서 마음에 있는 것들이 점점 움직여지고 쌓이게 되고 몸이 점점 그런 것들에게 적응을 하고 반응을 하고 만들어지게 되는 이것이 사람이 점점 자라가는 모습들입니다. 그런데 그 사람의 자라가는 그 모습이 산골에 사는 사람은 산골적인 사람이 되고 바닷가에 사는 사람은 해변 바닷가적인 사람이 되고 평지에 사는 사람은 평지적인 사람이 되는 것이고 어떠한 부모님 밑에서 자라면 그런 부모 같은 사람이 되는 것이고, 선천적으로 아무리 좋은 머리 타고나도 그 사람이 아주 어리석은 그런 부모 밑에 자라면 어릴적에는 그로 많은 영향을 받게 되는 것이고 아무리 못난 그런 돌머리 같은 그런 머리 타고 나도 어지간하면 좋은 부모 밑에 나서 자꾸 가르치고 가르치고 가르치면 나중에는 어느정도는 깨우쳐서 알게 되고. 이런 걸 가리켜 사람이란 것은 환경의 지배를 받고 영향을 받고 환경적인 그런 사람, 그 환경이라 말은 자기가 나서 보고 듣고 자란 그 환경을 말하는 겁니다. 그런 환경적인 사람이 세월 속에서 만들어지게 되는 것이다. 일반 상식이지요? 누구나 다 아는 상식 아닙니까? 맞습니까? 그런데 이렇게 모든 사람은 이 세상에서 살아가면서 그 사람이라는 사람, 그 사람의 인격, 그 사람이라는 사람의 모습이 마음과 몸으로 만들어지게 되는 겁니다. 그런데 이렇게 만들어진 사람이 모든 세상 사람 그렇게 만들어지는데 이것을 크게 나누면 우리도 그렇고 많은 사람 속에 크게 나누면 이것을 그 사람이 그렇게 만들어지는데 사람이 그리 만들어진다는 것은 세월이 들어갔다는 뜻이고 그 세월 속에 듣고 보고 접촉을 하고 그다음 그걸 가지고 속에 저장해놓은 지식과 기억력과 감정과 이런 것들이 작용해서 또다시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고, 그래가지고 사람이 만들어진 것이기 때문에 그 세월속에 자기 마음과 몸에는 살아온 세월의 접촉한 객관의 환경에 수많은 요소들하고의 관계가 다 연관성을 가지고 있는 겁니다. 나무를 한번도 보지 못한 사람은 나무를 모릅니다. 코끼리를 한번도 보지 못한 사람들은 코끼리를 모릅니다. 자, 또 한번 이거는 어려운 게 뭐가 있을까요? 전에 한번 설명드렸는데. 어지간하면 모를 것 같은데. 우리 000 선생님, 바지개가 뭔지 알아요? 모르지요. 어떻게 생겼는지 모르지요. 모르는 겁니다. 저는 알거든요? 봤으니까. 좀 험한 말 한번 해보겠습니다, 우리 000씨? 다른 뜻이 없으니까 험한 말 용서하십시오. 똥장군이 뭔지 압니까? 모르지요? 000샘? 봤습니까? 봤습니까? 봤어요? 어디서? 봤으면 알겠지요. 000 샘 봤습니까? 그림은 봤습니까? 그림으로라도 보면 압니다. 안본 사람은 결코 모릅니다. 누구나 마찬가지입니다, 누구 할 것 없이. 공룡이란 것이 있는데 공룡을 본 사람은 지금 이 시대에는 없습니다. 사람들이 그리는 공룡, 000 공룡 봤어요? 텔레비전에서 봤겠지, 그림에서 하고. 그거는 전부 사람이 상상에서 만들어낸 겁니다. 진짠지 아닌지 모릅니다 그거는. 공룡이 그렇게 생겼다 짐작으로 추측으로 해낸 것이지 실제 그렇게 생겼는지는 모르는 겁니다. 안 봤기 때문에. 있었다 그러면 본 사람은 다 죽었으니까. 사람의 마음과 몸에 들어있는 지식과 모든 작용이란 것은 날때부터 가지고 난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이 세상에 태어나서 그래서 무색으로 나서 세월 속에 살아오면서 본 것이, 들은 것이, 접촉한 것이, 그다음 느낀 것들이 마음 속에 이런 저런 작용으로 쌓여지고 쌓여지고 생겨지게 된 것이 사람의 지식이고 마음이고 감정이고 모든 것들입니다. 그리고 그런 것들은 내 몸하고 무관하지 않습니다. 내 몸 속에 수많은 세포 혈관 이런 것들이 그런 것들하고 내가 보고 접한 것들하고는 다 연관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 환경에. 그러기 때문에 제가 정확하게는 모르겠습니다만은 시골에 사는 사람하고 바닷가에 사는 사람하고 살점을 떼서 조직검사해보면은 차이가 분명히 날 겁니다. 목욕하면 또 어떨지 모르겠지만은 살점을 떼서 하면 다를 겁니다, 아마. 오래 살다보면. 도시 산 사람하고 시골 산 사람하고 다릅니다. 몸만 그런 것이 아니고 마음은 더한 것이고. 이게 사람의 마음과 몸이라는 겁니다. 뭘 말씀드리는고 하니, 사람이 세월 속에 살아오면서 그 사람 누구든 사람이란 것은 객관으로 인해서 내 주관 나라는 것이 생성되고 생겨졌기 때문에 내 밖에 모든 요소가 내 속에 수도없이 많이 들어있다는 겁니다. 그런데 이 들어있는걸 나쁜 표현으로 말하면 좋게 들어있는 것은 기능이고 아주 좋은 그런 긍정적인 요소들이고 반대로 안 좋은 것들도 굉장히 많이 들어있습니다. 원치 아니하게, 자, 자기 머릿속에 내 머릿속에는 깨끗한 것만 있다 그런 분 계십니까? 내 머릿속에 지저분한 것은 하나도 없다 그런 분 계시는가요? 어떤 사람의 머릿속에도 지저분하다는 것이 물질적인 지저분한 것이 아니고 생각적인 그런 지저분한 것이 없는 분 계십니까? 없을 수가 없습니다. 다 들어있습니다. 몸에도 마찬가지, 몸에도 병균 요소가 수도없이 있듯이. 그런 것들이 우리 속에 있는데, 이 모든 것 다 합해가지고 크게 말해서 전체로 말하면 우리 심신에 들어있는 사람들이 판단할 때 좋다 나쁘다 긍정적이고 부정적인 요소를 다 통틀어가지고 크게 말하면 둘로 딱 나눌 수 있는데, 내 심신에 찌들어있는 것을 둘로 나누는데 하나는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 하나, 하나는 하나님께서 원치 않는 것 하나. 이 둘로 나누는데 하나님과 상관없는 불택자들 중생되지 못한 사람들은 전부 그 심신 속에는 하나님과 상관 없는 것들만 가득 들어있습니다. 그런데 중생되고 예수 믿는 사람들은 그때부터 둘이 들어가있습니다. 내 마음과 몸 속에. 둘이 찌들어있는데, 그런데 어릴적부터 중생이 되고 어릴적부터 하나님과 가까이 지낸 모태 신앙, 또 어릴적부터 믿은 그런 신앙들은 그 심신 속에 하나님과 가깝고 하나님 말씀과 가까운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원하시는 그런 하나님의 형상적인 그런 요소들이 많이 들어있을 수 밖에 없겠지요. 바로 듣고 바로 보고 바로 배우면 그런 요소가 많은 것이고 어릴적에 그런 게 없는 사람들은 그런 요소가 늦게 믿고 늦게 깨달아 늦게 믿을수록 하나님의 형상적인 그런 요소는 적을 수 밖에 없는 겁니다. 그러면 문제는 믿는 사람이 세상에서 하는 일이 뭐냐? 하는 일이, 평생을 두고 하는 일은 우리 마음과 몸에서 중생되고 난다음 복음을 받고 깨닫고 난 다음에는 내 심신에서 하나님의 형상과 맞지 않는 배치되고 반대되고 틀어지는 심신에 있는 모든 요소를 다 낱낱이 발견해서 뽑아내는 것이 믿는 사람이 평생 두고 하는 일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형상을 내 심신 속에 옮겨 심는 것이 믿는 사람의 평생을 두고 하는 일이다 그말입니다. 이게 뽕나무를 뽑고 옮기고 심는 비유입니다. 그런데 이것은 내 심신 속에 있는 오늘까지 많이 사신 분은 60년 70년 80년, 젊은 사람들 2,30년 살아온 그 2,30년 세월 속에 2,30년이면은 사람 속에 어지간한거는 다 들었다할만큼 다 들어있는데, 다 굳어지고 있는데 그 속에서 하나님의 형상에 반대되고 배치되는 요소가 우리가 몰라 그러하지 수도 없이 많이 있는데, 이걸 뽑아내야되는데 사람의 힘으로는 절대 이거를 뽑을수가 없다 그말입니다. 마음 속에 인식이나 생각이나 욕심이나 감정이나 취미나 미움이나 시기나 질투나 허영이나 허욕이나 이런 모든 것들을 뽑아내야 되는데 뽑아낼 수가 없고 몸에 익어진 습성은 더욱 더 뽑아내지를 못하는 겁니다. 이것 뽑아내지 못하면 이거 가진 상태로 이 세상을 끝나면 마지막에 그리스도 심판대 앞에 가면 주님이 말씀을 불로 가지고 다 뽑아 다 태워버립니다. 내 심신 속에 있는 이거는 죽고 부활할 때 내 심신 속에 있는 하나님의 형상과 배치되는 형상이 되지 아니한 그런 것으로 내 심신에 살아오면서 들어있는 그런 모든 요소들은 다 떼어놓고 부활합니다. 그거는 땅 속에 있다가 떼놓고 부활하고 그것은 마지막에 둘째 부활때 불택자들과 함께 영원토록 유황불 구렁텅이로 보내버립니다. 털털 다 털어내버리고. 하나님의 형상대로 된 것만 부활해서 천국가게 되는 겁니다. 그것을 살아생전에 많이 뽑아내고 하나님의 형상과 배치된 것 많이 뽑아내버리고 하나님의 형상으로 자꾸 바꿔서 그게 성화고 우리 구원인데 그리 하면 할수록 알찬 사람이 되고, 이거는 없고 헛된 것만 가득 채워놓으면 그만큼 빈 껍데기 사람이 되고 마는 걸 가리켜서 성화 구원 건설구원이라고 말을 하는 겁니다. 그런데 그 하나님 형상 아닌 것을 뽑아내는 그것이 사람 힘으로 절대 안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우나? 뽕나무 뽑는 것만큼 어렵다. 절대 불가능입니다. 부자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은 약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보다 더 어렵다 말씀하시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그런데 우리에게 길을 주셨으니 어떻게 하면 되는 것인가? 어떻게 하면 된다고요? ‘너희에게 겨자씨 한알만한 믿음’ 자기 현실에서 아는대로 순종하는 겁니다. 그래서 공과에 보니까 우리가 말씀 순종할때는 방법이 두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하나님의 뜻을 찾기가 어려운 것은 행하기 쉽고, 참 이런 복음을 들었으니 얼마나 귀한지. 찾기 쉬운 것은 행하기 어렵고 행하기 쉬운 것은 찾기가 어렵고, 우리는 어떤 걸 해야 된다 했습니까? 찾기 어려워도 행하기 쉬운 걸 해야 됩니까? 행하기 어려워도 찾기 쉬운 것 해야 됩니까? 공과에 뭐라고 되있습니까? 행하기는 어려워도 찾기 쉬운 것, 내가 아는 것 하면 된다 그말입니다. 자기가 알 수 있는 것 하면 어려워도 하기만 하면 하나님께서 함께 하셔서 할 수 있도록 해주시겠다는 겁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게 겨자씨 믿음입니다. 내가 아는대로만 실행을 하면 그 아는대로 실행하는 생활을 계속만 해나가면, 사람들이 전부다 하루하다말고 한달하다 말고 3개월하다 말고 그렇게 하다가 마니까 안되는 것이지 이 생활을 계속하는만큼 하나님의 형상과 배치되는 요소 악성 악습은 뽑혀나가게 되어있습니다. 이거는 절대기 때문에. 안하면 안되는 겁니다. 이 도리 외에는 사람이 변화되는 길이 없고, 이 도리 외에는 옛사람을 뽑아내는 방법은 결단코 성경 전체를 찾아봐도 없습니다. 이것만이 유일한 방법이고 절대 진리입니다. 이것이 신앙생활이고 이것이 믿음의 길이고 이게 겨자씨 믿음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이것을 해야 되기 때문에 이리 해야 되기 때문에 이걸 위해서 이 믿음 생활을 계속을 해야 되기 때문에 믿음 생활이란 것은 겨자씨 믿음 생활의 계속인데 이 계속은 하나님의 말씀이 거기 있고 말씀대로 사는 것이 있으니까 이 생활을 계속 하려니까 말씀을 부지런히 알아야 되니까 성경 많이 읽어야 되겠고 성경 읽어도 잘 깨닫지 못하니까 예배 참석해서 자꾸 들어봐야 되겠고, 설교록 읽어봐야 되겠으니까 그러니까 예배를 주일 오전만 갖고 안되니까 오후예배를 보고 그것 갖고 안되니까 밤예배를 보고 그래도 어려우니까 오일예배 보고 그래도 힘드니까 새벽예배를 보고 예배시간만 가지고 안되니까 집에 가서 성경 읽고 복습을 하고, 그래도 힘이드니까 기도 하고 자꾸 노력을 하는 겁니다. 이런게 전부 신앙생활입니다. 그리 하는 가운데서 실행이 되어지고 그 실행 계속되는데서 겨자씨 믿음이 되니까 우리 속에 있는 뽑아내야 될 요소들이 뽑혀 나간다 그말입니다.
이것 외에 다른 진리가 있다고 전하면 그거는 다른 복음입니다. 다른 복음은 바로 이단입니다. 다른 복음은 없나니, 하나밖에 없습니다 이거는 진리가. 절대 진리입니다. 이것 외에 다른 것을 찾으면 그게 허영이고 허욕이고 복권적인 신앙인데 그 신앙은 신앙이 아닙니다, 결단코. 사람들이 힘드는 건 싫어하고 오래 가는 건 싫어합니다. 지극히 작은 것이 바로 이겁니다. 진합태산이 바로 이런 것이고. 그리하면 우리 신앙은 바로 되어지고 건설구원 성화구원 기능구원이 이루어지게 되고 뽑혀나갈 것이 다 뽑혀나가게 되는 겁니다. 끊임없이 노력을 해야 됩니다. 오늘 오후에는 뽕나무 뽑는걸 좀 생각해봤습니다. 그래서 믿음을 구하고 믿음에 가치를 두고 믿음을 구하고 겨자씨 믿음을 가지고, 이걸 가질때 이게 바로 계속이니까 그럴때 바로 내 속에 있는 오늘까지 수십년 살아오면서 깊이 박혀있는 하나님의 형상과 배치되는 악성적인 악습적인 요소를 뽑아내야 됩니다. 담배 피는데 한 몇 년만 담배 피고 나면은 그 몇 년 동안 담배핀 마음과 몸에 익어진 것을 뽑아내려 그러면 얼마나 피눈물 나는 싸움을 해야 됩니다. 안 뽑혀 나갑니다. 아편 중독자들은 어지간한 사람은 평생 못 뽑아내고 그냥 가고 맙니다. 비참하게 가고 마는 겁니다. 그게 전부 말하자면은 악성 악습인데, 우리에게는 그런 저급의 것은 아니지만은 도덕적이고 윤리적이고 고급적인데 알고 나면 하나님 형상과 배치되는 그런, 세상 사람들이 다 좋아하는 도덕 윤리적인 것인데 그게 전부 공자적인 것이고 맹자적인 것이고 세상적인 것이지 신앙적인 것은 아닌 그런 것을 뽑아내야 되기 때문에 많이 배운 사람 고등학문을 배운 사람일수록 이렇게 고차원적인 것을 왜 뽑아내 그런 걸 다 못 채워서 안달이고 그리 익히지 못해서 야단인데. 그런데 성경은 그것을 뽑아내라 그러니까 그게 쉽게 뽑혀 나가겠습니까? 그걸 키우려고 애를 쓰는 건데. 뽑아내면 안된다고 더 집어넣으려고 모두 환장을 하고 있는데. 여러 가지를 생각해야 됩니다. 그런 유식하고 많이 배운 세상에 고등학문 아는 분들은 거기서 하나님 형상과 배치되는 걸 찾아서 뽑아내야 되는데 대단히 어렵습니다. 그래서 인식이라는 것은 굉장히 중요하고 지식이란 것은 중요하고 신앙사상이란 것은 무엇보다 중요한 겁니다. 그것만큼 안되도 또 다른 면으로 또 우리 속에 있는 그런 것들도 뽑아내야 되고 어쨌든 하나님이 중심이고 그분의 말씀이 중심이고 하나님과 그분의 말씀에 준해서 맞지 않는 내 심신에 익어있는 모든 것들은 지식이든 습성이든 성품이든 인식이든 감정이든 욕심이든 소원이든 무엇이든 다 뽑아내야 됩니다. 그걸 뽑아내지 않으면 구원 안되는 겁니다. 이것 뽑아내는 방법은 믿음의 계속, 말씀 순종의 계속, 겨자씨 믿음 밖에 없다. 실행을 한번 해보십시오, 아닌지. 제가 해보면서 하는 말입니다. 저는 이렇게 살아보니까 이렇게 되고 이렇게 안살때는 안된다 그말이지요. 이게 실행이 되는 만큼, 겨자씨 믿음이 되는 만큼 자기는 변화가 됩니다. 안 살면 안됩니다.
다같이 통성으로 기도드리겠습니다.
말씀을 좀 깊이 깊이 생각을 하고 실제로 따져봐야 됩니다. 허영적이고 허욕적이고 복권적인 신앙을 다 뽑아버려야 되고 깨버려야 됩니다. 인식자체를 바꿔야 됩니다. 신앙이 무엇인지 구원이 무엇인지 믿음이 무엇인지 바로 알고 가야 됩니다.
누가복음 17:5-6
믿음 더해지는 방편 두가지 말씀중에서 겨자씨 믿음 하나만 생각을 해보고 있습니다. 사도들은 예수님에게 직접 부르심을 받고 직접 배운 사람들이 사도들입니다. 몇 사람입니까, 모두? 사도들이 모두 몇 명입니까? 열 두 사도인데, 이 사도는 정해져있고 더 이상 더하지도 않고 빠지지도 않습니다. 열 두 사도. 첫째 누굽니까? 베드로, 안드레, 야고보 요한의 형제 야고보입니다. 또 요한, 빌립, 바돌로매 다른 이름으로는요? 바돌로매를 나다나엘이라 그렇게도 말한답니다. 그다음 도마, 마태, 그다음 또 야고보. 이 야고보는 알패오의 아들이라 그럽니다. 또 다대오, 다대오는 다른 이름으로 유다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습니다. 야고보 아들 유다라 그럽니다, 다대오. 그다음 시몬이 있는데 이 시몬은 셀롯인인가 그런 이름을 가지고 열심당원이라는 그런 뜻을 가진 그런 사람인데 시몬이고, 그다음 열두번째 가룟유다 대신에 사도바울이 들어가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 본문에 말씀하신 사도들 열두 사람이라 하면 여기 누구도 포함됩니까? 가룟유다도 들어가 있는데 이 가룟유다가 사도였지만은 타락해서 변질이 되어졌습니다. 그래서 열 두 사도, 가장 중요한 것은 예수님에게 직접 부르심을 받은 사람 열 두 사람입니다. 그런데 예수님 생전에 모시고 다녔던 사람들은 열 두 사도중에서 열 한사람이고 사도바울은 그 뒤에 주님에게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열 두 사람이고, 일반적으로는 사람들이 제비 뽑아서 세운 맛대아라는 사람도 사도로 넣는 그런 사람도 있다 그러는데 성경은 맛대아보다는 사도바울을 사도로 그렇게 본다고 볼 수 있습니다. 직접 기록은 안되있어도 그리 볼 수 있습니다.
사도라는 이름을 가질때 세가지 권세가 있는데, 첫째는 주님에게 직접 부르심을 받았고 두 번째는 성경을 기록할 권세가 있고 세 번째는 교회를 세울 권세가 있는데 그런데 교회를 세울 권세는 보니까 열 두 사도가 다 곳곳에서 복음을 전하고 있기 때문에 교회를 다 세웠다 볼 수가 있겠고, 성경을 기록한 사도는 많지 않습니다. 마태복음에 마태는 사도 맞지요. 마가복음에 마가는 사도가 아닙니다. 또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을 기록한 누가라는 사람도 사도가 아니고, 누가라는 사람의 원래 직업은 의사라 그러지요. 의원 누가라 그리 말합니다. 그래서 성경 기록한 사람 보면은 베드로, 마태 그다음 사도 요한, 바울 이렇게 네 사람 정도가 성경 기록했고 다른 사람은 성경 기록한 것은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교회는 모두 다 세웠다 그렇게 볼 수 있습니다.
이런 사도들은 주님이 가시고 난 다음 주님에게 배워가지고 예수님의 대속의 모든 역사와 가르침을 직접 모시고 다니면서 보고 듣고 배웠던 그 열 두 사도를 통하여 주님의 모든 실상이 곳곳에 전파되게 된 겁니다, 보이는 면으로. 그리고 그 열 두 사도의 뒤를 이은 사람을 속사도라 그리 말하고 아마 그분이 성경에 나오는 칠십인이 아닌가 싶은데 속사도라 그러고, 그리고 이제 계속해서 퍼져나가서 오늘까지 복음이 전파되어왔기 때문에 우리가 거슬러 올라가면 주님에게 가는데 그 주님에게 가기 바로 전에는 열 두 사도가 있다 그리 볼 수 있고, 그래서 열 두 사도의 가지고 있는 가치관은 오늘 우리들이 배워야 될 가치관과 일단 같은 겁니다. 그래서 사도들이 주님에게 여짜오되 간청하기를 ‘우리에게 믿음을 더하소서’ 했으니까 사도들이 가진 가치관, 주님에게 듣고 오랜 세월 배우고 그들이 깨달아 느낀 것은 이 세상에서 사람이, 더욱이 주님을 따라가는 사람에게 있어서 가장 소중한 것은 무엇보다 무엇보다 가장 소중한 것은 믿음이겠구나 예수님이 가르치신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믿음이다. 그런데 고린도전서 13장에 보니까 믿음과 소망과 사랑은 영원히 있을 것인데 그중에 제일은 사랑이라 그래 되어있죠, 사랑이라. 그런데 사도들은 믿음이 보배다, 그런데 연결시켜보면 사랑과 믿음이란 것은 뗄 수 없는 관계를 가지고 있고 소망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그 셋은 성령과 물과 피라, 이 셋은 합하여 하나라는 이거하고는 좀 다르고 삼위일체 하나님하고 이런거는 다르지만은 그러나 관계적으로 보면 믿음과 소망과 사랑이란 것은 뗄 수 없는 관계로 되있어서 그 셋 중에서 하나만 빠져도 두 개는 소용 없는 것이 되어집니다. 그래서 믿음이 있을때 사랑이 역사할 수 있고, 사랑있는 믿음이라야 되고 소망도 역시 마찬가지고 이렇게 되어있습니다. 그래서 강조하는 것에 따라 다르지만은 사도들의 간구는 믿음이 가장 보배다, 믿음이 제일이다 그래서 우리에게 소망을 주옵소서, 우리에게 사랑을 주옵소서, 우리에게 굳센 의지를 주옵소서 이런걸 구하지 않고 우리에게 믿음을 더하여 주옵소서 그렇게 구했습니다. 기독교는 믿음의 도고, 믿음이 전부라 그리 말할 수 있습니다. 믿음이 무엇인가? 믿음이란 것은, 그 믿음의 역할을 생각해본다면 믿음이란 것은 하나님과 사람 사이를 연결시켜주는 그런 말하자면 이게 중매쟁이라 그러면 인격을 가진 존재라야 되는데 하나님과 우리 사이의 중매쟁이는 누굽니까? 누군가요? 하나님과 우리 성도 사이의 중매쟁이는 예수님이고, 예수님하고 우리 사이의 중매쟁이는 누구겠습니까? 예수님과 우리 사이에 중매쟁이는? 우리 사이라고 하면 좀 그렇습니까? 예수님하고 그 시대 사는 유대인들 사이 중매쟁이는 누구였습니까? 세례요한이였습니다, 세례요한. 믿음이란 것은 이거는 인간의 행위인데, 인간의 심신 행위의 작용 역사인데 그 작용 역사가 바로 하나님과 성도 사이를 연결시켜주는 중매쟁이 역할한다 그리 볼 수 있어서, 중매쟁이 다리입니다, 다리. 이게 없으면 건너갈 수 없듯이 믿음이 없으면 사람은 하나님께 갈 수 없고 하나님은 사람을 맞이할 수가 없는 겁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우리 성도에게 주신 기본적인 은혜가 믿음, 기본적인 믿음이 있고 그 기본 믿음을 길러가는게 우리 건설 믿음인데, 그래서 기본적인 믿음은 하나님이 은혜로 주셔서 하나님을 찾게 하시고 알게 하셔서 택함 받고 중생된 성도는 기본적으로 하나님이 어떻게 됩니까? 믿어지게 되어있고 이 은혜를 선물로 받지 못한 사람은 아무리 노력해도 하나님이 안 믿어지는데, 하나님의 택함 받고 중생된 성도는 선물로 믿음을 주셨기 때문에 그 믿음의 작용으로 하나님이 성경 말씀이 믿어지게 되있습니다, 기본적으로. 결단코 절대 인간의 상식과 이치와 역사와 통계로 믿을 수 없는 신구약 성경에 기록된 수많은 사실들이 하나님의 선물 믿음을 받은 사람들에게는 그 사실이 믿어진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그 믿음을 가지고 그다음, 그 믿음을 종자 삼아서 더욱 더 그 믿음을 길러가는 것이 기본적으로 깨달아 알게된 하나님을 점점 더 알아가는 것이고 하나님께 가까이 가는 것이고 하나님과 연결이 더욱 더 돈독해지는 것이고 그 연결을 통해서 하나님의 모든 은혜는 우리들에게 계속 오게 되고 우리들의 모든 기도는 주님에게 하나님께 전달되게 되고 이렇게 왕래, 상호내조하고 상호왕래하는 이런 것이 믿음이라는 연결 고리를 통해서 되어진다는 겁니다. 이게 믿음의 역할입니다. 맞습니까? 논리적으로 맞습니까? 우리 여반에 어떻습니까? 믿음은 하나님과 성도의 연결고리 중매역할 한다 맞습니까? 제가 설명드린게 논리적으로 이해가 되십니까? 남반엔 어떻습니까? 믿음은 하나님과 성도 사이의 연결고리다. 믿음 없으면 안되는 겁니다. 믿음은 크게 말하면 두 종류가 있습니다. 하나는 기본적인 믿음, 선물로 받은 믿음 그게 있어야 그 위에 건설믿음이 건설이 되어지는 겁니다. 기본 믿음이 있기 때문에 하나님이 믿어지고 성경 말씀이 믿어진다는 것이고 믿어지는 그 믿음을 바탕으로 깔아놓고 그 위에서 그 믿음 생활을 점점 길러나갈 때, 해나갈 때 하나님과 우리 사이는 점점 하나님을 알아가게 되고 가까워지게 되고 관계가 돈독해지게 되고 이 연결이 된 상태로 하나님의 모든 것이 믿음이라는 이 통로를 통해서 우리에게 오고, 우리들의 모든 회개 간구 또 도고 이런 모든 것들 하나님께 갈 수 있게 되고, 물론 그 바탕은 중보자 예수님의 대속이 있고, 예수님의 대속을 근거한 믿음이라는 방편 통로를 통해서 하나님과 우리는 상호교제를 하게 되어진다는 말입니다. 논리가 맞습니까? 그래서 믿음은 중요합니다. 이게 믿음인데, 그런데 그 믿음의 역할이 그러하고 믿음의 실제는 그러면 그런 하나님과 성도 사이에 이런 통로 역할하는 이 믿음이란 것은 그 내면이 내용이 어떤 것인가 하면, 그 믿음은, 믿음이라는 통로를 이걸 분석을 해보면 우리가 배운대로 자세히 말하면 세가진데 일반 상식으로 말하면 두가지로 하나는 성경에 기록된 모든 말씀을 내가 마음으로 인정을 하고, 인정하는 그 말씀대로 내가 몸이 따라가서 순종을 하는, 인정과 행함 순종 이 두가지가 바로 믿음의 알맹이고 믿음의 실제다 하는 겁니다. 이것이 기독교에 있어서 가장 중요하고 그러면 제자들이 이렇게 세밀하게까지 알았는지는 모르겠지만은 어쨌든 분석해보면 이 세가지 이런 것이고, 그래서 우리들이 구할 믿음은 바로 이런 걸 구하는 겁니다. 그런데 첫째 말씀드린 믿음의 역할 이거는 원래 그리 되어있는거니까 우리가 특별히 그냥 상식으로 알면 되는 것이고 믿음이란 것은 성경에 기록된 모든 사실이 내 마음 속에 믿어져야 되고 인정되어야 되니까 믿음을 구한다는 말은 신구약 성경에 기록된 모든 사실이 믿어지게 해주옵소서, 인정이 되게 해주옵소서, 죽은 사람이 살아났다는 사실이 믿어지게 해주옵소서, 인간의 모든 언행심사를 하나님께서 낱낱이 다 기록하고 계신다는 것을 내가 믿게 해주옵소서, 이 땅 위에 사는 동안 하나님께서 인간의 모든 언행심사를 낱낱이 행동록에 기록해놨다가 그리스도의 심판대앞에서 영원한 상벌로 갚아주신다는 그 사실이 믿어지게 해주옵소서, 그러기 때문에 그런 사실이 믿어지기 때문에 이 땅에 사는 우리 모든 마음의 작용과 몸의 움직임 하나하나가 함부로 되지 아니하고 말씀에 입각해서 구별되게 조심스럽게 말씀대로 사는 순종으로 사는 그런 우리 언행심사 생활이 되게 해주옵소서 분석하면 이런 것을 말하자면은 구하는 겁니다. 믿음을 구하는 것. 우리가 믿음의 가치를 깨닫고 믿음을 구하는 우리들이 되어야 되겠습니다. 믿음을 더하여 주옵소서, 특별히 교역자가 교인들 두고 기도할 때 많은 형편이 있지만은 전체를 두고 기도할때는 우리 교인들에게 믿음을 더하여 주옵소서, 또 어떨때는 말씀을 듣는 귀를 열어주시고 깨닫는 마음을 허락해주옵소서 그런 기도를 많이 합니다. 어쨌든 믿음만 바로 가지면 그 다음 것은 크게 문제될 것이 없고 모든게 다 해결이 되어지게 되어있습니다. 사도들이 주님에게 믿음을 구했습니다. 우리도 주님에게 믿음의 가치를 깨닫고 믿음을 구하는 우리가 되야되고 이 가치관을 가질때 우리들이, 가치라는 것은 비교잖습니까? 비교해서 보다 더 어느 것인가? 이 세상에는 사람이 살아가는데 필요한 굉장히 많은 것들이 이 세상에는 있는데, 그 모든 것 중에서 우선 순위가 있습니다. 절대 필수적으로 필요한 것이 있고 선택적으로 필요한 것이 있는데, 필수적인 것은 하나님께서 알아서 우리에게 해주신다는 것이 무엇인가? 너희는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아라. 이것은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고 이 모든 것은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다 알아서 해주신다. 참새 두 마리가 한 앗사리온에 팔리고 들에 핀 백합화가 솔로몬의 모든 영광보다 더 뛰어나지만은 그것 전부 하나님이 피시니까 그리되는건데, 하물며 너희는 구속 받은 성도인데 하나님 아버지 아들들인데 이 세상에서 무엇을 먹을까 입을까 마실까 염려하도록 버려두겠느냐? 그게 뭐냐하면은 사람이 살아가는데 필요한 필수적인 그런 정도, 필수요소들, 이런 걸 하나님께서 책임을 다 지신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예수 믿는 사람이 굶어죽을 걱정할 것 없고 밥 굶을 염려할 것 없는데, 그런데 사람이 현실 부딪히다보면은 어떻게 먹고 살까 의식주 염려를 하는데 참 가끔 한번씩 보면은 믿음 없는 그런 염려를 하게 되지요 사람이. 그게 되고 그다음에 사람이 살아가는데는 그다음으로는 모든게 다 선택적인 것인데 필수적인 것은 하나님께서 알아서 책임지시는 것이고 나머지는 전부 선택인데 그 선택에서 중요하게 사람들에게 작용하는 인적 요소가 하나 있는데 그게 무엇이겠습니까? 사람에게 있는 사람이 살아가는데 필수적인 기본요소를 하나님께서 책임을 다 지시고 나머지는 선택적인 그런 것들인데 그 모든 걸 선택함에 있어서 사람에게 있어서 아주 중요하게 작용하는 마음의 요소가 있으니 그걸 가리켜 뭐라 그럽니까? 말씀의 각도를 좀, 제가 질문 드릴때 좀 어렵지요? 저대로 생각하고 질문드리니까. 이런 선택에 있어서 사람에게 있어 중요하게 작용하는, 제가 선택을 이걸 말씀드리면서 앞에 뭘 말했습니까? 믿음의 가치를 두고 설명 드렸으니까 그러면 좀 연결이 되실란가요? 믿음이란 것과 세상에 많은 것을 두고 가치 비교해서 우선순위 보다 더 가치있는 걸 선택해야 되는데 그 선택에 있어서 중요하게 작용하는 마음의 요소가 있으니 그게 무엇이겠는가 말입니다. 0집사님 아시겠습니까? 양심, 조금 각도가 안 맞는 것 같은데. 무엇이겠습니까? 000? 모르겠어요? 요즘 대답을 잘하더니. 사람이 선택할 때 있어서 좋은 것을 얼마든지 선택하고 할 수 있는데 믿음과 연결시켜 볼때, 믿음을 가져야 되는데 믿음 가지려면 좋은 것을 내놔야 될 때가 많이 있습니다. 따져보니까 믿음이 더 귀한데, 믿음이 더 가치있는데 믿음을 두고 가지고 싶은 것들이 많이 있기 때문에 사람들은 믿음을 버리고 세상에 많은 것들을 선택을 하게 되니 믿음을 버리고 많은 것들을 선택하는 그 마음의 요소를 가리켜서 뭐라고 합니까? 욕심이라 그러지요, 욕심. 그걸 욕심이라 그럽니다. 그래서 인간의 욕심이 굉장히 많은 작용을 하게 되는 겁니다. 그러기 때문에 욕심이 생겨진즉,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그 죄가 장성하면 사망을 낳느니라. 죄가 장성 안해도 죄 자체가 바로 사망인데, 사망을 낳는다 그말은 죄가 자꾸 자라면 그만큼 자기에게 사망이 커지고 많아진다는 그런 의미로 볼 수가 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세상을 살아가다가 믿음이란 것을 두고 모든 것을 다 두고 그러니까 일단 예수 믿는게 최우선이고 기본이고 그다음 두 번째는 우리들이 반드시 먼저 선택해야될 첫째 조건이 예수 믿는 것 신앙자유 양심자유 교회자유 첫째, 그다음 두 번째는 그 예수 믿은 선택을 하고 난다음 그다음 두 번째 우리가, 그거는 절대적인 조건이라 보고 그다음 두 번째 우리가 선택해야 되는 그 신앙 자유 양심 자유 교회 자유 위에서 우리들이 선택해야 되는 많은 것 중에서 또 다시 반드시 선택해야 될 거는 뭡니까? 세상 어떤 것보다도 믿음 생활이라는 겁니다. 믿음생활, 신앙생활 하는 것. 그러니까 자유를 가지고 그다음 그 자유 위에서 내가 할 첫째 것은 믿음생활을 가장 최우선에 두고, 신앙생활을 가장 우선순위에 두고 거기 맞춰서 모든 생활하는 것이 믿는 사람의 생활입니다. 믿음 생활을 중심에 두고 믿음 생활을 바로 할 수 있는 직장생활, 믿음 생활을 바로 할 수 있는 가정 생활, 믿음 생활을 바로 할 수 있는 학교 생활, 믿음 생활 바로 할 수 있는 결혼 관계, 자녀교육, 모든 사업 거기 다 맞춰야 된다는 그말입니다. 그것이 믿는 사람들의 기본적인 자세고 그게 믿음의 가치를 바로 깨닫는 그런 생활이 되는 겁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말씀대로 순종할 수 있는 그 생활을 최우선순위에 둔다 그말입니다. 그리 사는 우리들이 되어야 됩니다. 저는 이렇게 설교는 하는데 실제로 이렇게 살아갈 수 있도록 지도하는게 부족해서 여러 가지 안타까운 마음이 많고 아쉬운게 많습니다.
그런데 사도들이 이렇게 주님에게 구할 때 믿음을 더하소서 하고 구하니까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대답은, 믿음은 어떻게 하면 된다 저렇게 하면 된다 말씀하지 아니하고 겨자씨 믿음을 말씀하셨습니다. 너희에게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 그러니까 겨자씨 한 알을 말씀하신 것은 얼른 생각해봐도 지극히 작은 것, 사람들이 보기에 보잘 것 없는 것 아무것도 아닌 것, 겨자씨는 말하자면 조금 큰 먼지만하다고 할까 그리 볼 수 있습니다. 아주 작습니다. 그런 작은 것이니까 이거는 사람들 생각할 때 그 믿음 생활하는 그 사람이나 그 믿음 자체가 작아도 전혀 상관이 없다는 그말이지요. 다만 거기에 생명 있는 믿음만 가지면 된다 그말입니다. 생명 있는 믿음. 겨자씨 한알만한 믿음이 있었더면 그 믿음은 작아도 상관 없으니까 생명있는 믿음을 가지면 된다 그리 말씀하신 것이고 그 생명이란 것은 연결이고 연결이라 말은 공급의 계속이라 그리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겨자씨 믿음, 다시 말하면 생명 있는 믿음, 하나님과 연결되어진 그 믿음인데 그 믿음을 실제 생활에서 들어가보면 하나님과 연결된 믿음이란 것은 바로 믿음 생활의 계속이다. 별다른 것이 아닙니다. 특별한 것이 아닌 겁니다. 하나님과 연결된 믿음이란 것은 믿음 생활의 계속입니다. 그것이 바로 다시 말하면, 자기가 만나는 그 현실속에서 수많은 현실 현실 살아가는, 또 현실이 나오니까 맛도 없고 재미도 없는데 어쨌든 사람은 현실을 떼고 나면 살아갈 수 없습니다. 사람이 땅을 밟지 않고 사는 수가 있습니까? 땅을 밟지 않고 세상에 살아가는 법이 있습니까? 공중에 날아다니지 못하니까. 사람이 이 세상에 살라그러면 반드시 두 발 가지고 땅을 딛고 살아야 정상으로 사는 겁니다. 현실이란 것은 사람이 땅을 밟고 걸어가는 것과 같은 겁니다. 사람이 현실을 사는 것은 사람이 땅을 두발로 밟고 걸어가는 것과 같은 겁니다. 우리에게 현실이란 것은. 현실은 말하자면은 우리에게 우리가 걸어가는 땅과 같은 생활 환경 세상이다 그말입니다. 그 현실을 우리들이 살아갈 때 매일 매일 순간 순간 살아갈 때 그 살아가는 생활에 그냥 사는 것이 아니고 믿는 사람이 살아가는 그 모습이 도덕주의자들은 도덕적인 그런 면에 중점두고 살아가고 불교 믿는 사람들은 불경적인 생활로 살아갈 것이고 또 이 세상에 낙천적인 사람들은 등따시고 배부르게 편하게 살아갈 것이고 돈을 목적하는 사람은 살아갈 때마다 돈 버는 거기 초점 맞추고 살아갈 것이고 공부하는 학생은 공부에 초점 맞추고 살아갈 것이고 예수 믿는 사람은 살아갈 때 어디다 초점을 맞춰야 되는가? 그 현실에서 내게 원하시는 순간 순간 현실 현실마다 원하시는 하나님의 뜻이 있으니 그 하나님의 뜻을 가리켜서 어려운 말로 영감이라 그리 말하고 하나님의 뜻이 바로 영감입니다. 성령의 감화감동이고 그 뜻이 어디 담겨있느냐? 그 하나님의 뜻은 말씀이라는 그릇 안에 담겨 있습니다. 그 말씀이라는 그릇에 담겨 있는데, 그래서 내게 살아가는 그 현실에 말씀이라는 그릇 안에 담아주신 하나님의 뜻을 찾아서 그 뜻대로 그 현실에서 말도 하고 행동도 하고 사람과 관계도 가지고 울기도 하고 웃기도 하고 판단도 하고 처리도 하는 그것이 믿음생활 순종하는 생활이다 그말이고 그리 살아가다보면 여러 가지 일상적인 생활에서 큰 문제가 없을때도 많이 있지만은 여러 가지 문제가 생길때가 많이 있습니다. 그런게 어려움들이고. 그래서 자기 현실에서 이미 듣고 배워 아는 말씀, 그 말씀 가지고 따져보면 자기 속에 말씀에 지배받는 신앙 양심, 그 양심을 통해 알려주시는 주님의 뜻 성령의 감화 그것을 현실마다 찾아보면 있으니까 그 뜻을 찾아 순종하는 것이 바로 겨자씨 믿음 생활이고 그 생활을 계속하는 것이 겨자씨 믿음의 계속이고 하나님과 연결된 생활에 계속이니까 이게 바로 겨자씨 믿음 생활이 되는 겁니다. 이렇게 살면 어떤 결과가 나타나게 되는 것인가? 뽕나무가 뽑힙니다, 뽕나무가. 지름이 3-4미터쯤 되는, 너무 커서 길을 내면 자동차도 다닐 수 있을만큼 그리 어마어마하게 큰 뽕나무가 사람 손대지 아니하고 뽑혀지고 옮겨지고 심어지는 것인데 이말은 다시 말하면 절대 사람이 할 수 없는 것은 하나님의 겨자씨 믿음의 능력으로 할 수 있게 되어진다 이러니까 수많은 사람들이 이 말씀을 이해하기를 아 예수 믿으면 도깨비 방망이가 생겨져서 금나와라 뚝딱 하면 금이 생겨지고, 내 속에 있는 암병이 고쳐져라 뚝딱 그러면 고쳐지고 내 속에 깊이 박혀있는 악성 악습이 뽑혀라 그러면 뽑혀나가고 이렇게 사람들이 착각하는 것이 너무 너무 많다 그말입니다. 이런 착각을. 그래서 그런 신앙을 가리켜 허영적인 신앙, 허욕적인 신앙 또 이름 하나 붙여 무슨 신앙이라 그랬던가요? 오일밤 예배때 말씀드린 것 같은데. 복권적인 신앙, 로또 복권적인 신앙. 전부 그거는 허영 허욕이고 하나님께서 결코 기뻐하실 수 없는. 그래서 백목사님께서 병 나은 기도하실 때 이 시간 말씀듣고 인간병 낫게 하시고 그다음 덧붙여 기도한 것이 병을 나았다가 죄를 지으면 또 재발하게 하시고 재발했다 또 다시 회개하면 또 고쳐주시고. 그런 것이 다 이것하고 연관성이 있는 겁니다. 사람이 병을 고쳐도 죄 지으면 또 날 수가 있는 겁니다. 또 병이 날 수 있고. 신유의 역사, 신유의 은사란 것은 성경에 있으니까 있는 것입니다. 지금도 그런 일 있을 수 있습니다. 있는 것인데, 그거는 믿음으로 살면 말씀 순종하면 병이 고쳐진다는 하나의 뭡니까? 말씀으로 살고 믿음으로 살면 온갖 종류의 병을 다 고칠 수 있다는 뭐라 그럽니까 그걸 가리켜서? 이렇게 안 통합니까. 그런 병 고치는 걸 가리켜 뭐라 그럽니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가르쳐주고 싶은 교훈과 말씀 계시를 담아가지고 사람이 할 수 없는 기적 이적의 역사를 일으키는 걸 가리켜 우리가 배운대로 뭐라 그럽니까? 표적이라 그럽니다 그걸, 표적. 표적이란 것은 성경에 말씀하시기를 표적은 어떤 사람에게 보여주신다고요? 안 믿는 사람, 믿음 없는 사람에게 표적은 보여준다 그랬습니다. 믿음이 생기도록 하기 위해서. 지금도 예수 믿는 복음이 전파되지 않은 곳에, 전혀 모르는 그런 곳에 가서 조금 믿고 하면은 표적이 많이 나타난다고 하는 겁니다. 그게 우리 목적이 아닙니다. 속에 있는 암병 고쳐봐야, 그 암병 고쳐봐야 좀 지나면 죽습니다. 죽을 고깃덩어리 암병을 고쳐주기 위해서 주님이 세상에 오신게 아니다 그말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신 것은, 그리고 죽은 사람 살리고 많은 병자를 고친 것은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닌 겁니다. 주님 말씀 순종을 하고 믿음으로 살면 이런 일도 있으니까 나타나는 표적을 보고 주님이 가르치시는 하늘의 복음을 깨닫고 하늘의 구원을 이루어가라는 그걸로 보이는 표적이지, 그것 자체가 목적이면 아무 가치가 없는 겁니다. 그런거는 요즘 의사들도 많이 하지 않습니까? 교회서 기도로 고치는 병이 많습니까, 병원에 가서 고치는 병이 많습니까 지금 시대에? 교회가 굉장히 많은데, 오늘날 세계 모든 교회들이 목사님들이 병 고치는 것 하고 이 세계에 있는 의사들이 병 고치는 것 하고 누가 많습니까? 의사들이 병 고치는게 열배 백배 천배는 더 많을 걸요? 그게 목적이 아니라는 겁니다. 그 속에, 그러니까 가르치는 표적입니다. 그래서 뽕나무라는 것은 사람이 할 수 없는 것, 사람 힘으로 절대 안되는 것, 뽕나무를 뽑아서 옮겨 심으면 뭐 하겠습니까? 비유입니다. 겨자씨도 비유고 뽕나무도 비유인데, 그런데 그 큰 뽕나무가 뽑히고 옮기고 심어진다는 것을 비유로 말씀하신 것은 사람이 절대 할 수 없는, 사람의 힘과 능력으로 절대 안되는 것을 해야 되는데 뽑아내야 되는데 사람이 못 뽑아내는게 우리한테 있다는 겁니다. 뽕나무가 땅 속에 수백년 동안 박혀있으니까 깊이 박혔고 사방천지 뿌리가 얽혔고 단단하게 박혀있는 그것을 못 뽑는데 이와 같이 우리 속에는 오랜 세월 속에 깊이 박혀있는 그런 요소들이 있다는 겁니다. 이걸 잠깐 설명드리면, 사람이란 것은 하나님께서 만드실 때 사람의 요소가 몇 가지입니까? 영과 마음과 몸인데, 영은 단일성의 존재입니다. 하나입니다. 전부다 하나고, 영이란 존재는 단일성의 존재고, 마음과 몸은 종합체라 그럽니다. 여러 가지 수많은 요소가 섞여서 종합체로 그렇게 만들어져 있습니다. 그런데 사람의 마음은 오래전에 집회때 배운 말씀을 보면은 사람의 마음은 제일 처음에 하나님께 지음 받은 사람의 마음은 색깔이 무슨 색이라 그러던가요? 마음과 몸 심신은 무색이라 그럽니다, 무색. 아무 색깔이 없다 그말입니다. 색깔이 없다 그말은, 색깔이 없다는 말은 하나님편과 반대편을 두고 어느쪽에도 물들지 않은 상태를 말합니다. 그런데 기본적으로 원죄가 있으니 그거는 깔려 있습니다. 그러나 어쨌든 원죄가 있지만은 그 자체가 무색입니다. 그런데 그 무색된 마음과 몸 심신에, 사람이 세상에 태어나면 잉태되고 어머니 태속에서 바깥 세상에 나오면 심신은 일단 무색입니다. 무색으로 태어났는데, 무색으로 태어난 그 심신이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이제 귀로 듣고 눈으로 보고 몸으로 접촉하는 가운데에서 몸이 고깃덩어리가 귀로 들리고 눈으로 보고 접촉을 하고, 어머니 목소리 아버지 목소리 주변 사람들 목소리가 들려지고 또 좀 지나면 눈이 떠서 희미하게 보여지고 그런데 봐도 뭐가 뭔지 아무것도 모르겠고, 들려도 뭐가 뭔지 아무것도 모르겠고 접촉해도 뭐가 뭔지 아무것도 모르는데 한번 듣고 두 번 듣고 열 번 듣고 스무번 듣고 백번 듣고 천 번 들으니까 귀에서 엄마 소리가 귀에 박힙니다. 기억력, 기억을 하는 겁니다. 뇌가 기억을 하고 마음 속에 박히는 겁니다. 그러면 좀 있다 입이 열리면 엄마 따라 하고, 또 눈으로 자꾸 보이는데 처음에는 누군지 몰랐는데 자꾸 보니까 이분이 나한테 젖도 먹여주고 안아도 주고 아플때 따뜻하게 해주고 또 재워주고 업어주고 하는거 보니까 이분이 가만히 보니까 ‘엄마다 엄마다’ 그러니까 엄마거든요. 아 이분이 우리 엄마구나. 어릴때는 엄마가 항상 파란색 입고 있으면 파란 옷만 입고 있으면 엄마인줄 알고 그러고, 좀 지나고나면 파란 옷만 입은게 아니고 우리 엄마는 어떻게 생겼다는 것을 구별해 알게 되고, 듣게 되고 알게 되고 접촉하는 그 속에서 그래서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접촉하는 그 속에서 눈에 익어지고 귀에 익어지고 신경 세포 조직에 익어지면서 한편으로는 그 모든 것들이 자기 마음속에 있는 기억력 속에 기억에 저장이 되어지고 또 지식성이란 그 속에 지식으로 하나씩 둘씩 저장이 되어지고 또 감정이라는 그런 요소가 조금씩 싹트기 시작하고 그래가지고 그런 모든 것들이 마음속에 있는 요소가 점점 하루하루 살아가면서 접해가면서 마음에 있는 것들이 점점 움직여지고 쌓이게 되고 몸이 점점 그런 것들에게 적응을 하고 반응을 하고 만들어지게 되는 이것이 사람이 점점 자라가는 모습들입니다. 그런데 그 사람의 자라가는 그 모습이 산골에 사는 사람은 산골적인 사람이 되고 바닷가에 사는 사람은 해변 바닷가적인 사람이 되고 평지에 사는 사람은 평지적인 사람이 되는 것이고 어떠한 부모님 밑에서 자라면 그런 부모 같은 사람이 되는 것이고, 선천적으로 아무리 좋은 머리 타고나도 그 사람이 아주 어리석은 그런 부모 밑에 자라면 어릴적에는 그로 많은 영향을 받게 되는 것이고 아무리 못난 그런 돌머리 같은 그런 머리 타고 나도 어지간하면 좋은 부모 밑에 나서 자꾸 가르치고 가르치고 가르치면 나중에는 어느정도는 깨우쳐서 알게 되고. 이런 걸 가리켜 사람이란 것은 환경의 지배를 받고 영향을 받고 환경적인 그런 사람, 그 환경이라 말은 자기가 나서 보고 듣고 자란 그 환경을 말하는 겁니다. 그런 환경적인 사람이 세월 속에서 만들어지게 되는 것이다. 일반 상식이지요? 누구나 다 아는 상식 아닙니까? 맞습니까? 그런데 이렇게 모든 사람은 이 세상에서 살아가면서 그 사람이라는 사람, 그 사람의 인격, 그 사람이라는 사람의 모습이 마음과 몸으로 만들어지게 되는 겁니다. 그런데 이렇게 만들어진 사람이 모든 세상 사람 그렇게 만들어지는데 이것을 크게 나누면 우리도 그렇고 많은 사람 속에 크게 나누면 이것을 그 사람이 그렇게 만들어지는데 사람이 그리 만들어진다는 것은 세월이 들어갔다는 뜻이고 그 세월 속에 듣고 보고 접촉을 하고 그다음 그걸 가지고 속에 저장해놓은 지식과 기억력과 감정과 이런 것들이 작용해서 또다시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고, 그래가지고 사람이 만들어진 것이기 때문에 그 세월속에 자기 마음과 몸에는 살아온 세월의 접촉한 객관의 환경에 수많은 요소들하고의 관계가 다 연관성을 가지고 있는 겁니다. 나무를 한번도 보지 못한 사람은 나무를 모릅니다. 코끼리를 한번도 보지 못한 사람들은 코끼리를 모릅니다. 자, 또 한번 이거는 어려운 게 뭐가 있을까요? 전에 한번 설명드렸는데. 어지간하면 모를 것 같은데. 우리 000 선생님, 바지개가 뭔지 알아요? 모르지요. 어떻게 생겼는지 모르지요. 모르는 겁니다. 저는 알거든요? 봤으니까. 좀 험한 말 한번 해보겠습니다, 우리 000씨? 다른 뜻이 없으니까 험한 말 용서하십시오. 똥장군이 뭔지 압니까? 모르지요? 000샘? 봤습니까? 봤습니까? 봤어요? 어디서? 봤으면 알겠지요. 000 샘 봤습니까? 그림은 봤습니까? 그림으로라도 보면 압니다. 안본 사람은 결코 모릅니다. 누구나 마찬가지입니다, 누구 할 것 없이. 공룡이란 것이 있는데 공룡을 본 사람은 지금 이 시대에는 없습니다. 사람들이 그리는 공룡, 000 공룡 봤어요? 텔레비전에서 봤겠지, 그림에서 하고. 그거는 전부 사람이 상상에서 만들어낸 겁니다. 진짠지 아닌지 모릅니다 그거는. 공룡이 그렇게 생겼다 짐작으로 추측으로 해낸 것이지 실제 그렇게 생겼는지는 모르는 겁니다. 안 봤기 때문에. 있었다 그러면 본 사람은 다 죽었으니까. 사람의 마음과 몸에 들어있는 지식과 모든 작용이란 것은 날때부터 가지고 난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이 세상에 태어나서 그래서 무색으로 나서 세월 속에 살아오면서 본 것이, 들은 것이, 접촉한 것이, 그다음 느낀 것들이 마음 속에 이런 저런 작용으로 쌓여지고 쌓여지고 생겨지게 된 것이 사람의 지식이고 마음이고 감정이고 모든 것들입니다. 그리고 그런 것들은 내 몸하고 무관하지 않습니다. 내 몸 속에 수많은 세포 혈관 이런 것들이 그런 것들하고 내가 보고 접한 것들하고는 다 연관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 환경에. 그러기 때문에 제가 정확하게는 모르겠습니다만은 시골에 사는 사람하고 바닷가에 사는 사람하고 살점을 떼서 조직검사해보면은 차이가 분명히 날 겁니다. 목욕하면 또 어떨지 모르겠지만은 살점을 떼서 하면 다를 겁니다, 아마. 오래 살다보면. 도시 산 사람하고 시골 산 사람하고 다릅니다. 몸만 그런 것이 아니고 마음은 더한 것이고. 이게 사람의 마음과 몸이라는 겁니다. 뭘 말씀드리는고 하니, 사람이 세월 속에 살아오면서 그 사람 누구든 사람이란 것은 객관으로 인해서 내 주관 나라는 것이 생성되고 생겨졌기 때문에 내 밖에 모든 요소가 내 속에 수도없이 많이 들어있다는 겁니다. 그런데 이 들어있는걸 나쁜 표현으로 말하면 좋게 들어있는 것은 기능이고 아주 좋은 그런 긍정적인 요소들이고 반대로 안 좋은 것들도 굉장히 많이 들어있습니다. 원치 아니하게, 자, 자기 머릿속에 내 머릿속에는 깨끗한 것만 있다 그런 분 계십니까? 내 머릿속에 지저분한 것은 하나도 없다 그런 분 계시는가요? 어떤 사람의 머릿속에도 지저분하다는 것이 물질적인 지저분한 것이 아니고 생각적인 그런 지저분한 것이 없는 분 계십니까? 없을 수가 없습니다. 다 들어있습니다. 몸에도 마찬가지, 몸에도 병균 요소가 수도없이 있듯이. 그런 것들이 우리 속에 있는데, 이 모든 것 다 합해가지고 크게 말해서 전체로 말하면 우리 심신에 들어있는 사람들이 판단할 때 좋다 나쁘다 긍정적이고 부정적인 요소를 다 통틀어가지고 크게 말하면 둘로 딱 나눌 수 있는데, 내 심신에 찌들어있는 것을 둘로 나누는데 하나는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 하나, 하나는 하나님께서 원치 않는 것 하나. 이 둘로 나누는데 하나님과 상관없는 불택자들 중생되지 못한 사람들은 전부 그 심신 속에는 하나님과 상관 없는 것들만 가득 들어있습니다. 그런데 중생되고 예수 믿는 사람들은 그때부터 둘이 들어가있습니다. 내 마음과 몸 속에. 둘이 찌들어있는데, 그런데 어릴적부터 중생이 되고 어릴적부터 하나님과 가까이 지낸 모태 신앙, 또 어릴적부터 믿은 그런 신앙들은 그 심신 속에 하나님과 가깝고 하나님 말씀과 가까운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원하시는 그런 하나님의 형상적인 그런 요소들이 많이 들어있을 수 밖에 없겠지요. 바로 듣고 바로 보고 바로 배우면 그런 요소가 많은 것이고 어릴적에 그런 게 없는 사람들은 그런 요소가 늦게 믿고 늦게 깨달아 늦게 믿을수록 하나님의 형상적인 그런 요소는 적을 수 밖에 없는 겁니다. 그러면 문제는 믿는 사람이 세상에서 하는 일이 뭐냐? 하는 일이, 평생을 두고 하는 일은 우리 마음과 몸에서 중생되고 난다음 복음을 받고 깨닫고 난 다음에는 내 심신에서 하나님의 형상과 맞지 않는 배치되고 반대되고 틀어지는 심신에 있는 모든 요소를 다 낱낱이 발견해서 뽑아내는 것이 믿는 사람이 평생 두고 하는 일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형상을 내 심신 속에 옮겨 심는 것이 믿는 사람의 평생을 두고 하는 일이다 그말입니다. 이게 뽕나무를 뽑고 옮기고 심는 비유입니다. 그런데 이것은 내 심신 속에 있는 오늘까지 많이 사신 분은 60년 70년 80년, 젊은 사람들 2,30년 살아온 그 2,30년 세월 속에 2,30년이면은 사람 속에 어지간한거는 다 들었다할만큼 다 들어있는데, 다 굳어지고 있는데 그 속에서 하나님의 형상에 반대되고 배치되는 요소가 우리가 몰라 그러하지 수도 없이 많이 있는데, 이걸 뽑아내야되는데 사람의 힘으로는 절대 이거를 뽑을수가 없다 그말입니다. 마음 속에 인식이나 생각이나 욕심이나 감정이나 취미나 미움이나 시기나 질투나 허영이나 허욕이나 이런 모든 것들을 뽑아내야 되는데 뽑아낼 수가 없고 몸에 익어진 습성은 더욱 더 뽑아내지를 못하는 겁니다. 이것 뽑아내지 못하면 이거 가진 상태로 이 세상을 끝나면 마지막에 그리스도 심판대 앞에 가면 주님이 말씀을 불로 가지고 다 뽑아 다 태워버립니다. 내 심신 속에 있는 이거는 죽고 부활할 때 내 심신 속에 있는 하나님의 형상과 배치되는 형상이 되지 아니한 그런 것으로 내 심신에 살아오면서 들어있는 그런 모든 요소들은 다 떼어놓고 부활합니다. 그거는 땅 속에 있다가 떼놓고 부활하고 그것은 마지막에 둘째 부활때 불택자들과 함께 영원토록 유황불 구렁텅이로 보내버립니다. 털털 다 털어내버리고. 하나님의 형상대로 된 것만 부활해서 천국가게 되는 겁니다. 그것을 살아생전에 많이 뽑아내고 하나님의 형상과 배치된 것 많이 뽑아내버리고 하나님의 형상으로 자꾸 바꿔서 그게 성화고 우리 구원인데 그리 하면 할수록 알찬 사람이 되고, 이거는 없고 헛된 것만 가득 채워놓으면 그만큼 빈 껍데기 사람이 되고 마는 걸 가리켜서 성화 구원 건설구원이라고 말을 하는 겁니다. 그런데 그 하나님 형상 아닌 것을 뽑아내는 그것이 사람 힘으로 절대 안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우나? 뽕나무 뽑는 것만큼 어렵다. 절대 불가능입니다. 부자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은 약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보다 더 어렵다 말씀하시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그런데 우리에게 길을 주셨으니 어떻게 하면 되는 것인가? 어떻게 하면 된다고요? ‘너희에게 겨자씨 한알만한 믿음’ 자기 현실에서 아는대로 순종하는 겁니다. 그래서 공과에 보니까 우리가 말씀 순종할때는 방법이 두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하나님의 뜻을 찾기가 어려운 것은 행하기 쉽고, 참 이런 복음을 들었으니 얼마나 귀한지. 찾기 쉬운 것은 행하기 어렵고 행하기 쉬운 것은 찾기가 어렵고, 우리는 어떤 걸 해야 된다 했습니까? 찾기 어려워도 행하기 쉬운 걸 해야 됩니까? 행하기 어려워도 찾기 쉬운 것 해야 됩니까? 공과에 뭐라고 되있습니까? 행하기는 어려워도 찾기 쉬운 것, 내가 아는 것 하면 된다 그말입니다. 자기가 알 수 있는 것 하면 어려워도 하기만 하면 하나님께서 함께 하셔서 할 수 있도록 해주시겠다는 겁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게 겨자씨 믿음입니다. 내가 아는대로만 실행을 하면 그 아는대로 실행하는 생활을 계속만 해나가면, 사람들이 전부다 하루하다말고 한달하다 말고 3개월하다 말고 그렇게 하다가 마니까 안되는 것이지 이 생활을 계속하는만큼 하나님의 형상과 배치되는 요소 악성 악습은 뽑혀나가게 되어있습니다. 이거는 절대기 때문에. 안하면 안되는 겁니다. 이 도리 외에는 사람이 변화되는 길이 없고, 이 도리 외에는 옛사람을 뽑아내는 방법은 결단코 성경 전체를 찾아봐도 없습니다. 이것만이 유일한 방법이고 절대 진리입니다. 이것이 신앙생활이고 이것이 믿음의 길이고 이게 겨자씨 믿음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이것을 해야 되기 때문에 이리 해야 되기 때문에 이걸 위해서 이 믿음 생활을 계속을 해야 되기 때문에 믿음 생활이란 것은 겨자씨 믿음 생활의 계속인데 이 계속은 하나님의 말씀이 거기 있고 말씀대로 사는 것이 있으니까 이 생활을 계속 하려니까 말씀을 부지런히 알아야 되니까 성경 많이 읽어야 되겠고 성경 읽어도 잘 깨닫지 못하니까 예배 참석해서 자꾸 들어봐야 되겠고, 설교록 읽어봐야 되겠으니까 그러니까 예배를 주일 오전만 갖고 안되니까 오후예배를 보고 그것 갖고 안되니까 밤예배를 보고 그래도 어려우니까 오일예배 보고 그래도 힘드니까 새벽예배를 보고 예배시간만 가지고 안되니까 집에 가서 성경 읽고 복습을 하고, 그래도 힘이드니까 기도 하고 자꾸 노력을 하는 겁니다. 이런게 전부 신앙생활입니다. 그리 하는 가운데서 실행이 되어지고 그 실행 계속되는데서 겨자씨 믿음이 되니까 우리 속에 있는 뽑아내야 될 요소들이 뽑혀 나간다 그말입니다.
이것 외에 다른 진리가 있다고 전하면 그거는 다른 복음입니다. 다른 복음은 바로 이단입니다. 다른 복음은 없나니, 하나밖에 없습니다 이거는 진리가. 절대 진리입니다. 이것 외에 다른 것을 찾으면 그게 허영이고 허욕이고 복권적인 신앙인데 그 신앙은 신앙이 아닙니다, 결단코. 사람들이 힘드는 건 싫어하고 오래 가는 건 싫어합니다. 지극히 작은 것이 바로 이겁니다. 진합태산이 바로 이런 것이고. 그리하면 우리 신앙은 바로 되어지고 건설구원 성화구원 기능구원이 이루어지게 되고 뽑혀나갈 것이 다 뽑혀나가게 되는 겁니다. 끊임없이 노력을 해야 됩니다. 오늘 오후에는 뽕나무 뽑는걸 좀 생각해봤습니다. 그래서 믿음을 구하고 믿음에 가치를 두고 믿음을 구하고 겨자씨 믿음을 가지고, 이걸 가질때 이게 바로 계속이니까 그럴때 바로 내 속에 있는 오늘까지 수십년 살아오면서 깊이 박혀있는 하나님의 형상과 배치되는 악성적인 악습적인 요소를 뽑아내야 됩니다. 담배 피는데 한 몇 년만 담배 피고 나면은 그 몇 년 동안 담배핀 마음과 몸에 익어진 것을 뽑아내려 그러면 얼마나 피눈물 나는 싸움을 해야 됩니다. 안 뽑혀 나갑니다. 아편 중독자들은 어지간한 사람은 평생 못 뽑아내고 그냥 가고 맙니다. 비참하게 가고 마는 겁니다. 그게 전부 말하자면은 악성 악습인데, 우리에게는 그런 저급의 것은 아니지만은 도덕적이고 윤리적이고 고급적인데 알고 나면 하나님 형상과 배치되는 그런, 세상 사람들이 다 좋아하는 도덕 윤리적인 것인데 그게 전부 공자적인 것이고 맹자적인 것이고 세상적인 것이지 신앙적인 것은 아닌 그런 것을 뽑아내야 되기 때문에 많이 배운 사람 고등학문을 배운 사람일수록 이렇게 고차원적인 것을 왜 뽑아내 그런 걸 다 못 채워서 안달이고 그리 익히지 못해서 야단인데. 그런데 성경은 그것을 뽑아내라 그러니까 그게 쉽게 뽑혀 나가겠습니까? 그걸 키우려고 애를 쓰는 건데. 뽑아내면 안된다고 더 집어넣으려고 모두 환장을 하고 있는데. 여러 가지를 생각해야 됩니다. 그런 유식하고 많이 배운 세상에 고등학문 아는 분들은 거기서 하나님 형상과 배치되는 걸 찾아서 뽑아내야 되는데 대단히 어렵습니다. 그래서 인식이라는 것은 굉장히 중요하고 지식이란 것은 중요하고 신앙사상이란 것은 무엇보다 중요한 겁니다. 그것만큼 안되도 또 다른 면으로 또 우리 속에 있는 그런 것들도 뽑아내야 되고 어쨌든 하나님이 중심이고 그분의 말씀이 중심이고 하나님과 그분의 말씀에 준해서 맞지 않는 내 심신에 익어있는 모든 것들은 지식이든 습성이든 성품이든 인식이든 감정이든 욕심이든 소원이든 무엇이든 다 뽑아내야 됩니다. 그걸 뽑아내지 않으면 구원 안되는 겁니다. 이것 뽑아내는 방법은 믿음의 계속, 말씀 순종의 계속, 겨자씨 믿음 밖에 없다. 실행을 한번 해보십시오, 아닌지. 제가 해보면서 하는 말입니다. 저는 이렇게 살아보니까 이렇게 되고 이렇게 안살때는 안된다 그말이지요. 이게 실행이 되는 만큼, 겨자씨 믿음이 되는 만큼 자기는 변화가 됩니다. 안 살면 안됩니다.
다같이 통성으로 기도드리겠습니다.
말씀을 좀 깊이 깊이 생각을 하고 실제로 따져봐야 됩니다. 허영적이고 허욕적이고 복권적인 신앙을 다 뽑아버려야 되고 깨버려야 됩니다. 인식자체를 바꿔야 됩니다. 신앙이 무엇인지 구원이 무엇인지 믿음이 무엇인지 바로 알고 가야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