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921-주후(왕하5:9-14)
나아만 대장의 문둥병2014-09-22조회 307추천 25
1. 나아만 대장의 문둥병(1절)
1)모든 것은 하나님께서 주신 것
- 나아만의 실력 공적 인정은 하나님께서 주신 것
- 사람의 가진 전부는 하나님께 매였음을 기억할 것
2)큰 용사나 문둥병자
- 나아만은 큰 용사였지만 문둥병자
- 아무리 뛰어나도 예수 밖, 믿음 밖의 사람은 결국 죽을 죄인
3)세상 것으로는 해결 불가능
- 나아만의 실력 공적 인정으로 문둥병 치료는 불가능
- 인생의 그 어떤 것으로도 죄 문제 해결은 불가능
2. 여종의 신앙(2-3절)
1)신앙은 신분과 형편을 초월한다
- 여종의 신분은 종으로 끌려간 노예였고
- 외롭고 두려움으로 가득찬, 가장 불행한 인생이었으나
- 하나님을 향한 신앙으로 이 모든 것을 초우러
2)신앙은 인간 사랑, 하나님 영광의 욕망이 필연
- 나아만은 적국의 원수였으나 전도하고 문둥병 치료받도록 주선
- 결과적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되었으니
- 신앙은 인간 사랑과 하나님 영광 위한 노력이 필연
3)하나님의 역사는 신분 조건이 무관
- 여종은 나이어린 노예였으나
- 진실하게 하나님을 섬길 때 붙들고 쓰신 것
- 하나님의 역사는 사람의 신분이나 조건이 상관 없는 것
3. 나아만 대장과 두 왕(4-7절)
1)멀리 있어도, 늦게 믿어도 믿음은 있을 수 있는 것
- 하나아만은 하나님 모르는 이방인이었지만 여종의 전도로 믿었고
- 아람 나라 왕도 일시적이었지만 믿었으므로 나아만을 보낸 것
2)본족속이라도 믿음 없으면 실패
- 이스라엘 왕은 하나님 백성의 머리인 왕이었으나 믿음 없어 실패
- 노선과 소속이 생명보다 중하나 그것이 전부는 아닌 것
- 바른 노선과 소속에 있어도 구원은 실패될 수 있는 것
3)하나님 두려워하지 않으면 피조물이 두려워
- 이스라엘 왕은 평소 하나님도 하나님의 선지자도 두려워하지 않았으나
- 대국 아람나라 왕이 보낸 편지를 받고는 옷을 찢고 두려워 죽을 지경이 되었으니
- 하나님 두려운 줄 모르는 자는 피조물이 두려워 견딜 수 없게 되는 것
4. 나아만의 문둥병 치료(8-14절)
1)교만, 주관(무지), 악독이 있으면 복음은 들리지 않아
- 엘리사가 전하는 하나님의 말씀이 나아만에게 바로 들리지 않았으니
- 나아만에게 교만과 주관(기존 지식, 선입적 관념), 악독이 있기 때문
- 교만, 주관, 악독이 있으면 복음은 바로 들리지 않는 것
2)세상 실력 가진 자는 복음을 시쁘게 여겨
- 나아만은 실력, 공로, 인정을 가진 잘난 자였으니
- 요단강에 일곱 번 씻으면 나으리라는 말씀이 너무 시쁘게 여겨져
- 세상 실력 많이 가진 사람은 대개 복음의 말씀이 시시하게 여겨지는 것
3)말씀 순종은 지극한 보배
- 부하들의 충언으로 교만과 주관과 악독을 잠시 접고 순종하니
- 결과는 어린아이 살처럼 깨끗하게 나았고
- 낫고 보니 하나님의 말씀의 권위성을 체험하여 알게 됨
- 한 말씀 순종이 자기 가진 전부보다 효력 있는 지극한 보배
5. 나아만의 믿음과 한계(15-18절)
1)나아만의 믿음
- 엘리사가 어떤 분인지 알아 모시고
- 하나님만 참신, 그 외에 신이 없음을 인정
- 예물을 고사하니 더 존경
- 흙이라도 실어 가서 제단 만들어 섬기려 간청
2)나아만의 한계
- 체험으로 하나님을 알았으나
- 림몬의 당에서 머리를 숙일 때 용납하시기를
- 자기 입장, 기득의 모든 것 포기 못 하여 다시 옛날로
- 건설 구원은 자유성의 결정이니, ‘평안히 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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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921 주후
열왕기하 5:9-19
오전에 크게 두가지를 말씀드렸는데, 두가지에서 좀 정리해서 한가지에 세가지씩 한번 정리해보겠습니다. 첫째, 오전에는 좀 안 나온 말씀일지 모르겠는데 아람 왕의 군대장관 나아만은 그 주인 앞에서 크고 존귀한 자다. 몇 가지 때문에 크고 존귀한 자입니까? 세가지지요. 하나는 실력, 둘째는 공로, 세 번째는 인정입니다. 그런데 이거는 순서적으로 필연적으로 따라가는 겁니다. 실력이 있으면 공로는 대개 있게 되고, 반드시는 아니지만은 실력과 공로가 있으면 인정은 받게 되어 있다 그리 말할 수 있습니다. 이게 정리할 때 오전말씀 복습인데 나아만은 이 세가지를 갖추어 가졌습니다. 그런데 사람이 실력을 마련하려면 학습세례 문답에 보면 모든 지능이, 사람의 모든 지능, 지식과 능력이 어디서 생겨지는고 하니 어디서 생겨진다고 혹시 찾아보셨습니까? 모든 지능이, 지능이란 것은 사람의 000, 어디 어디 들어간다고요? 몸과 마음에. 마음과 몸에 들어있는게 사람의 지능입니다. 남의 마음과 남의 몸에 든 것은 내 것은 아닙니다. 내 마음과 내 몸에 들어있는 지능이 내것이고 그게 바로 실력입니다. 그런데 그 실력, 모든 지능은 어디서 생겨지는고 하니 수고를 달게 하는데서 깨달아지고 자라가느니라 그래 말씀했습니다. 모든 지능은 수고를 달게하는데서 깨달아지고 자라가느니라. 그 수고는 누가 하는 수고입니까? 자기가 하는 수고입니다. 내가 수고하고 내가 노력을 하면 내 심신의 지능이 쌓여지고 자라서 실력있는 사람이 되어지는 겁니다. 노력하지 않는 사람은 실력있는 사람은 결코 될 수가 없습니다. 그러면 나아만의 실력은 누구의 노력입니까? 나아만의 실력은 누구의 노력입니까? 나아만 자신의 노력입니다. 힘 쓰고 애를 써서 실력을 마련했고 그 실력 가지고 있으니까 위기를 만났을때 나라를 구하고 공을 세울 수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여기 본문에 보니까 아람 왕의 군대장관 나아만은 그 주인 앞에서 크고 존귀한 자다. 실력을 마련하고 공을 쌓고 인정 받으니까 크고 존귀한 잔데, 그것이 어디서 생겼는고 하니 그 크고 존귀한 그 나아만 대장의 크고 존귀함이 어디서 나왔는고 하니 어디서 나왔다고 되어있습니까? 성경 보니까 어디서 나왔습니까? ‘이는’, 이는 이게 무슨 뜻입니까? 나아만 대장의 그 주인 앞에서 크고 존귀한 자가 된 그 원인은, 그 배경은, 그 근거는, 누가 그랬습니까? ‘이는 여호와께서 전에 저로 아람을 구원하게 하셨음이라’ 그러면 나아만에게 물어보면 “하나님이 너를 붙들고 쓰셔서 니가 아람 나라를 구원했지?” 그렇게 말하면 나아만 대장이 펄쩍 뛸 겁니다. “내가 노력을 얼마나 많이 했는데. 내가 밤잠을 얼마나 많이 못 잤고, 내가 놀고 싶은 것 얼마나 다 꺾었고, 내 의지력과 절제력과 인내심과 참을성과 끈기로 내가 이런 것도 배웠고 저런 것도 공부하고 이런 연습도 하고 저런 숙달도 하고 그래서 내가 전법도 공부하고 또 무술도 익히고 나라 정치도 배우고 온갖 것을 내 눈으로 읽었고 내 귀로 들었고 내 팔 다리로 걸어 연습을 했고 내 머리로 생각을 했고 다른 사람이 시켜 한 것이 아니고 내가 전부다 내 판단과 내 생각과 내 비판과 평가로 내가 노력해서 내가 만든 내 실력인데 거기 하나님이 왜 들어오느냐?” 고 펄쩍 뛰겠지만은 성경은 말씀하시기를, 그 군대장관 나아만은 그 주인 앞에서 크고 존귀한 자지만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그렇게 되도록 하셨다고 못을 박아놨습니다.
그래서 첫째, 나아만의 모든 실력과 공로와 인정은 하나님이 주신 것이라. 이거는 성경이 말씀하기 때문에 이거는 이론의 여지가 있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주셨다고 못을 딱 박아놨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사람의 모든 것은 전부다 하나님이 주시는 것이지 사람이 한다고 되는 것이 아닌 것을 자연계시나 성경전체에서 많이 찾아볼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 구원은 겉으로 보기에는 사람이 노력을 하는 것처럼 보여지나, 요즘 그걸 말씀을 드렸는데 기독자의 모든 구원은 전적 은혜입니다. 전부다 은혜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배운 건설구원은 인간의 노력이 다 들어가야 된다고 성경이 말씀을 합니다. 마음과 힘과 뜻과 성품 전부 다하지 않으면 내 제자가 되지 못한다, 영생 얻으려면 전부 다 해서 사랑을 해야 된다고 자기를 다 받쳐서 노력을 하고 드려야 된다고 십자가를 져야 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인간이 노력을 해야만 구원이 되는 것으로 사람들이 착각을 하기 쉬운데 그리되면 감리교 알미니안 주의가 되어집니다. 감리교는 하나님의 은혜와 인간의 노력이 섞여야 구원이 된다는 주장이 감리교들의 주장입니다. 우리가 배운 건설구원은 그리 되는 것 같으나 그 이면에 들어가보면 인간의 모든 노력은 전부 하나님의 은혜다. 그래서 인간의 노력은 무엇이라고 했던가요? 얼마전에 제가 말씀드린 것 같은데. 인간의 노력은 그것이 곧 무엇입니까? 바로 들으셨는지 모르겠습니다. 인간의 노력은 무엇입니까? 인간의 노력이 인간의 노력이지 무엇이겠는가. 인간의 모든 노력, 이 노력을 하는 사람도 있고 안 하는 사람도 있고 하고 싶어도 못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누구든지 할 수 있다고, 하고 싶다고 다 되는 것 아닙니다. 인간의 노력은 무엇인가? 하나님의 은혜가 나타나는 것이다 그말입니다. 인간의 노력은 하나님이 그에게 주신 그 은혜가 그의 노력이라는 겉모습을 통해서 나타나는 것이지 제 것이 아니다 그말입니다. 이걸 깨닫지 못하면 사람은 어찌 됩니까? 이 사실을 깨닫지 못하면 사람은 어떻게 됩니까? 인간의 노력은, 노력을 해야 실력이 쌓여지고 그 실력이 있어야 공을 세우고 공을 세워야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는 건데 그 인간의 노력, 그 실력 마련하는 것은 인간의 노력인데 그 노력은 무엇이라고요? 하나님의 은혜가 노력이라는 모양으로 나타나는 겁니다. 그런데 이 사실을 깨닫지 못하면 그 사람은 어떤 사람이 됩니까? 이 사실을 깨닫지 못하면 그 사람은 교만한 사람이 되고 마는 겁니다. 하나님이 주신 것인데, 제가 했다 하니까 하나님을 모르고 하나님이 은혜 거두시면 아무것도 아닌데 그 사실을 깨닫지 못하는 무지한 자가 되니까 교만한 자가 될 수 밖에 없는 겁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겁니다. 나아만 대장에만 그런 것이 아니고 오늘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오늘 우리도. 나아만도 그랬고 6천년 역사 천하 모든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고 가치를 두고 주력을 하는 것은 정리를 해보면 세가지 속에 다 들어있고, 그 세가지에 가장 밑에 것 하나 큰 것 하나는 첫 번째 자기 실력 마련입니다.
그러니까 사람들이 뭐든지 하는 걸 보면 다 실력을 일단 마련하고 그다음 뭘 하지 않습니까? 실력 없으면 아무것도 못하니까. 그래서 실력을 마련하기 위해서 많은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실력만 있으면 뭐든지 할 수 있다, 그 실력이란 것은 종류가 워낙 많으니까 뭐 하나 예를 들어 말하기 그렇지만은, 어떤 면으로든지 그 방면에 탁월한 실력만 가지고 있으면 그 사람은 자기 한 몸둥이 마음과 몸 몸둥이가 바로 재산이고 그게 대우고 그게 가치고 영광이라서 팔을 잘 쓰는 사람은 세계적인 야구 선수들은 보험을 어디다 듭니까? 팔에다 보험을 들지요. 엄청나게 많은 돈을 주고 팔에 보험을 듭니다. 얼굴이 굉장히 잘 생긴 세계적인 미인들은 얼굴에다가 보험을 들고 코가 잘생긴 코 미인들은 코에다가 보험을 듭니다. 요즘 그렇게 하잖습니까? 그 코가 바로 돈이고 코가 바로 인기고 대우고 팔이 대우고 말하자면 자기 몸뚱아리가 그게 그 몸에 들어있는 실력이, 또 타고난 그런 것들이 그 속에 돈도 들었고 명예도 들었고 인정도 들었고 대우도 들었고 다 들어 있는 겁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얼굴을 전부다 많은 사람이 가치로 알아주니까 성형 수술을 어마어마하게 많이 하고, 아마 여반들치고 성형수술 안하는 사람이 거의 없다 할 만큼 다 한다 그러지요. 우리 교인들도 제가 모르기는 모르겠습니다만은 여반들 더러더러 제법 많이 있을 걸요? 표가 안나서 그렇지. 눈꺼플 뭐 쌍꺼플 수술했든 어쨌든 성형수술 했을 겁니다 모두들. 다 한다 그말이지요. 하고, 공부하는 것도 알고보면 실력 마련입니다. 또 뭘 배우는 것 전부 실력마련이고 다 그런 겁니다. 그게 마련이 되어져야 그다음 뭔가 일을 할 수 있고 일을 해야 공적이 쌓여지고 그게 있어야 대우를 받는거니까. 그래서 천하 인간 역사의 모든 사람들의 관심과 가치관과 노력은 전부 이 세가지에 다 기울어져있고, 그래서 사람들의 인식은 인간의 행복은 이 속에 들었다. 인간의 행복은 공부를 많이 해야 된다. 인간의 행복은 돈이 많아야 된다. 인간의 행복은 뭐야 된다. 정리해보면 세가지입니다. 그 세가지 속에 인간의 행복도 존영도 또 대우도 가치도 다 들어있다고 그리 말을 안해도 무언중에 그런 인식과 그런 관념을 가지고 사람들은 이 세상에 살아가고 있고 그렇게 노력을 하는 것입니다. 맞습니까? 논리가 맞습니까? 그렇게 살고 있는 겁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그걸 노력을 하는데, 노력을 하고 나면 그래서 뭔가를 이루고나면 이루는 과정에도 그것이 자기가 했다고해서 자기 스스로 그리 됐다고 생각하고 그리 오판을 하고 자기가 한 줄 알지만은 실상 알고보니까 하나님께서 각자에게 주신 은혜대로 주셨다, 그래서 디모데후선가 거기 보면은 우리 구원은 우리 행위대로 하신 것이 아니고 영원한때전부터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주신 은혜대로 우리를 구원하셨다 그래 놨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우리가 구원을 받은 것이고 그러기 때문에 실력이 많고 탁월한, 잘난 사람도 하나님의 은혜고 못난 사람도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신앙이 좋은 사람도 하나님의 은혜고 신앙이 없는 사람은 은혜가 적은 것이고. 깨달음이 깊은 사람도 하나님의 은혜고 깨달음이 적은 사람도 은혜가 적어 그런 것이지 자기가 잘나 그런 것이 아니다 그말입니다. 이걸 첫째 기억하십시다. ‘이는 여호와께서 전에 저로 아람을 구원하게 하셨음이라’ 인간의 모든 실력은 천하 모든 사람이 다 갈망하는 세가지 행복의 필수조건이라고 오판이지만은 그리 하고 노력하는 그 세가지는 전부 알고보면 인간의 노력으로 되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은혜로 되는 것이고 하나님이 주시는만큼 되는 것이지 인간이 노력한다고 다 되는게 아닌 겁니다. 하나님이 주신 만큼 받을 수 밖에 없는 것 이걸 첫째 기억하십시다.
두 번째는 이 나아만 대장은 그래가지고 크게 은혜 받았고 많이 받아서 아람 나라에서 왕보다도, 실제 왕은 왕이니까 왕자이지만은, 그 나라를 구원한 사람은 나아만 대장이니까 아람 나라 전국민의 인정을 다 받는 이런 나아만 대장이 되어있었습니다. 실력 있었고 큰 공을 세웠고 인정을 받는 나아만 대장이 되어있었지만은 이런 부족함 없는 모든 사람이 갈망하는 좋은 것을 다 가졌지만은, 000샘 나아만 대장이 어떤 사람이라고요? 다 가졌지만은 그 사람은 어떤 모습이라고요? 큰 용사나 문둥병자더라. 이걸 두 번째 기억하십시다. 천하 모든 인생은 다 그 사람이 이 세상에 어떤 것을 가져도 알고보니까 그 사람은 죽을 죄인이더라. 세계적인 재벌 그룹을 이루었어도 그 사람은 알고보니까 예수 밖에 있으면 죽을 죄인이더라. 역사에 위대한 공을 세워도 알고보니까 죽을 죄인이더라. 나아만은 그렇게 큰 공 세웠지만 나아만은 큰 용사지만은 저는 문둥병자더라. 부자지만은 죽을 죄인 문둥병자더라. 머리가 좋은 석학이지만은 예수 밖에 있으니까 문둥병자 죽을 죄인이더라. 인류에서 크게 이바지해서 노벨상을 받았지만은 알고보니까 문둥병자 죽을 죄인이더라. 그런데 이 말씀을 하고 오전에 분위기를 보고 제가 오후 예배 준비하면서 가만히 생각해보니까 세가지 큰 공적을 쌓아서 나라를 구원했다, 실력을 마련했다, 그 실력 가지고 나라에 큰 공을 세웠다, 인정을 받았다고 이런 설교를 하는데 우리 교인들 대부분의 분들이 보면 자기 아주 보잘 것 없는 습성 하나를 못 고쳐서 그것 때문에 수십년을 거기 종노릇한다고 멸시천대 사람들에게 사람 대접받지 못하는 그런 사람들이 많고, 그 정도는 넘어서도 겨우겨우 먹고사는 그 정도, 실력있다 그래봐야 그 가정에서 먹고사는 그 정도, 고만고만한 그런 서민 중에 서민들인 이런 우리들에게 이 말씀을 실력을 마련하고 공로를 말하고 인정을 말하니까 아무런 실감이 없는 것 같은데, 그래서 좀 탄식을 했습니다. 그러나 크고 작은 정도의 차이지 사람은 나름 나름대로 전부다 그런 면을 다 가지고 있다 그말입니다. 그래서 첫째는 세상 모든 것은, 이거는 세상뿐 아니고 신앙도 마찬가지입니다. 인간에게 오는, 피조물에게 오는 영과 육과 구원과 천국과 깨달음과 성령의 감화 감동과 모든 것 전부는 다 하나님이 주셔야 되는 것이지 인간이 가지고 싶다고 가지는 것이 아닙니다. 죄를 짓고 싶어 짓습니까? 죄를 안 짓고 싶으나 하나님이 죄 짓게 만들면 별 수 없이 죄를 짓는 겁니다. 그래서 어떤 인간들은, 어떤 참 안타까운 사람들은 나는 죄를 안 짓고 싶으나 하나님의 예정 속에 죄가 들어있어서 부득이하게 죄를 지었다고 그리 말하지만은 하나님께서는 ‘그 죄를 내가 죄를 짓도록 예정했는줄 네가 어떻게 알았느냐? 너는 모르지. 전체적으로 내가 이렇게 말하니까 그리 핑계를 대는 것이지. 네가 죄를 지었지. 네가 원치 않았는데 죄를 지었느냐? 네 깊은 속에 들어가보면 사람이 짓는 죄는 원죄 하나 빼놓고는 우리들 의지와 상관없이 아담이 대표로 지은 그 죄 원죄 하나 빼놓고는 사람의 모든 죄는 전부다 본죄고, 그 본죄는 다른 말로 말하면 무슨 죄겠습니까? 사람의 모든 죄는 본죈데, 그 본죄는 다른 말로 말하면 무슨 죕니까? 알고 짓는 죄를 무슨 죄라 합니까? 고범죄입니다. 허물이 있기는 있습니다. 정말 몰라서 짓고 있는 그 죄. 도리를 몰라 가지고 짓는 죄 외에는 전부다 고범죄입니다. 거의 대부분 예수 믿는 사람이 짓는 죄는 거의 다 고범죄다. 그 고범죄는 자기 자유 의지로 짓는 죕니다. 하나님께서 간섭할 수 없는 죄기 때문에 심판을 받게 되는 겁니다. 하나님이 주신 겁니다.
두 번째는, 어떤 인간이 어떤 세상에서 어떤 것을 마련해서 사람들에게 아무리 큰 공을 세우고 실력을 가졌고 위대하게 인정을 받는다 할지라도 그 사람이 만약에 예수 밖에 있다면, 예수 안에 있어도 말씀 믿음에서 떠났다면 그 사람은 문둥병자입니다. 큰 용사나 문둥병자더라. 아무리 실력을 가져도 죄 문제, 죽음 문제를 해결 못하면 그 사람은 문둥병자 죽을 죄인입니다. 그 이상이 아닙니다. 넘어가지 못합니다. 이걸 넘어간 사람은 천하에 아무도 없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도 만약에 믿음에서 떠나면 우리도 별 수 없는 문둥병자, 죽을 죄인 밖에 되지 않는 겁니다.
세 번째, 이 사실을 알아도 ‘나는 문둥병자입니다, 나는 죄인입니다, 영원한 멸망 속에 빠져있는 나입니다.’ 그 사실을 사람이 종교성 가지고 깨달아 알지라도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해결하는 길을 절대 없습니다. 나아만 대장도 그랬습니다. 문둥병자인줄 알았지만은, 그걸 고치기를 애썼지만은, 고통 받았고 괴로웠지만은, 자기 전재산 다 바쳐 고치고 싶었지만은 불가능 했습니다. 인간의 죄 문제, 인간의 죽음 문제는 예수님의 대속 외에는 해결되는 길이 없습니다. 요단강은 뭘 말합니까? 나아만 대장이 요단강에 몸을 씻었습니다. 요단강은 뭘 말하는가요? 죽음은 다른 말로 말하면 피를 말할 수도 있지요. 그래서 그게 정확한지 모르겠지만은 요단강에 몸을 씻은 것은 예수님의 대속의 보혈에 몸을 씻은거라 그렇게 해석하는 분도 있습니다. 틀리지 않았다고 생각됩니다. 요단강에 몸을 씻은 것은 예수님의 대속 보혈의 피에 씻은 것이다. 예수님의 보혈로만 구원은 받지 예수님의 피를 떠난 인간구원은 없습니다. 세상의 재물 가지고, 권력가지고, 명예 가지고, 실력가지고 인간의 죄 문제 죽음 문제는 결코 해결하지 못합니다. 우리는 상식인데, 이 상식을 모두 잊어버리고 사니까 모든 문제가 생겨지고 이걸 궁극에서 잡고 그다음 세상 모든 것을 상대하면, 그래서 고구마처럼 뿌리를 원줄기에 박아놓고 줄기가 뻗어나가면 그게 어디서도 그 원뿌리 박은 그것만 잊어버리지 않으면 어디 나가도 괜찮은데, 뿌리를 잊어버리고 나면은 찾아서 헤매기 되는 겁니다. 믿는 사람이 이 세가지, 첫째 모든 건 하나님이 주신 것이다. 두 번째 아무리 크고 좋고 많은 것을 가져도 죽을 죄인이다, 세 번째 이 세상 것 가지고는 죄 문제 죽음 문제는 결코 해결할 수 없다는 이 세가지를 가지고 세상 모든 것을 상대하면 그 사람은 세상의 주인이 되고, 이 세가지를 잊어버리고 세상을 상대하면 작은 것을 상대해도 그 사람은 그것에 종이 될 수 밖에 없는 겁니다. 이걸 첫째 말씀에서 기억을 하십시다.
그다음 두 번째, 나아만 집의 여종에서 첫째는 이 여종의 신분을 생각해 봐야 됩니다. 여종의 신분과 그 형편을 생각해 봐야 됩니다. 종이란 것은 노예란 뜻입니다. 노예는 우리가 잘 아는대로 사람이 아닙니다. 사람인데 사람이 아닙니다. 사람인데도 불구하고 사람 대접 대우를 못 받는 것이고 노예고, 소나 돼지나 도구처럼 취급 받는 그게 노예입니다. 우리 나라도 그랬습니다. 이거는 조금 역사 아는 사람들은 다 아는 상식입니다. 이거는 사람 대접을 못합니다. 그러니까 사람이기 때문에 대우를 한다면 가장 밑바닥 인생입니다. 사람들 발에 밟히는 멸시천대받는 가장 비참한 천한 신분이 바로 노예 신분 나아만 집에 여종의 신분이고 이 여종이 거기다가 자기 나라도 아니고 주변도 아니고 종이라도 그래도 자기 나라에서 주변사람들에게 좀 그리하면 덜 할 것인데, 원수 나라에 잡혀가서 원수 집안에서 종노릇 하니까 죽을 지경입니다. 그러니까 자기 신분이 노예인데다가 그 형편이 가만이 생각해보면 가장 불행한, 외롭고 두렵고 고통스럽고 원망스럽고 또 속에 악과 독만 가득 남았지만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이런 형편과 처지가 되어있는게 이 여인이 아니었겠는가, 이것도 맞습니까? 여종은 노예입니다. 그 노예로써 적국에 끌려갔으니까 노예로 끌려가서 종노릇 하고 있으니까 그 형편이, 그 여종의 일반적인 마음 상태, 심리상태와 형편이 어떠했겠는가? 날마다 눈물로 날을 새울 것이고 밥을 제대로 못 먹을 것이고 구석에 처박혀서 날마다 울기나 할 것이고 구박을 받아가지고 참 밟힐 것이고 잘못 하면, 그래서 한숨으로 탄식으로 눈물로 날이면 날마다 그렇게 하고, 차라리 죽는게 낫겠다고, 죽음보다 못한 그런 생활을 할 수 밖에 없는 그 형편이였고 입장이였고 처지가 여종의 형편입니다. 그런데 이 여종은 뭐가 있었습니까? 여종은 이런 신분이었고 이런 형편이었는데 그 여종이 뭘 가졌습니까? 믿음을 가졌고 신앙을 가졌습니다. 믿음은 하나님이고 신앙은 하나님인데 그 하나님을 향한 신앙을 가지되 그 신앙이 구름 잡는 신앙, 주관적인 신앙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정확한 바른 신앙관을 가졌고, 바른 신앙생활을 했습니다. 그래서 이 여종은 그런 신분임에도 불구하고 그런 형편임에도 불구하고 그는 하나님을 알아서 그분을 섬겼고 자기 형편에 힘껏 하나님을 섬겼고, 그 여종의 입장에서 종으로 잡혀간 그 종이 하나님을 섬기면 얼마나 섬기겠습니까? 연보 하겠습니까? 거기서 예배를 제대로 드리겠습니까? 기도는 자유롭게 했겠습니까? 그런데 그 여종 그 형편에서 하나님이 인정하실 수 있을만큼 하나님을 마음 속 진정 두려워했고 하나님을 먼저 믿었고 의지했고 바라봤고 두려워했고 그분 말씀에 순종했는데 그 생활이 다른 사람들은 잘 모르겠지요. 그런데 여종 자기 속에는, 그 여종 속에 지식적으로, 그 지식으로 인한 하나님과의 지식을 아는 그 지식대로 실행하므로 인한 성령의 역사, 그로 인해서 하나님과의 깊은 영교의 생활이 그 생활이 남모르게 그 속에 있었고, 그래서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그 위로가 요셉처럼, 여종에게는 하나님의 위로가 있었고 하나님의 보여주시는 증거가 있었고 함께하시는 그런 기쁨이 있었기 때문에 그런 신분과 그런 형편임에도 불구하고 이 여종은 조금도 주눅들지 않았고 외롭지 않았고 두려워 벌벌 떨지 않았고 울지 않았고, 거기서 침착하게 한편으로 온유하게 또 진실하게 성실하게 자기 할 수 있는 그 형편 거기서 일을 전부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므로 있는 생활을 다, 신앙생활을 했다 그말이지요. 했는데 그것을 하나님은 아시고 자기는 알고, 그래서 깊은 내면을 몰라도 그 여종이 하나님 모시고, 하나님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은 무엇인가요? 하나님을 모신 사람이 살면 그 모습은 무엇으로 나타납니까? 하나님은 빛이십니다. 그 빛을 모시고 사니까 그 생활이 빛으로 나타납니다. 그 사람의 깊은 내면은 모르는데, 빛인 하나님을 모시고 사니까 그 사람의 말 속에서 빛이 나오고, 그 사람의 언행 속에서 빛이 나오고, 생활 속에 빛이 나오고, 그 사람의 모든 인간관계 속에서 빛이 나오고, 나아만 대장은 별로 상대 안 했을 것이고 여주인이 심부름 시키면서 일을 시키면서 밥을 시키면서 설거지를 시키면서 빨래를 시키면서 집안 청소를 시키면서 가만히 보니까 뭐가 그리 좋은지 모르겠지만은 감사하기도 하는 것 같고, 얼굴은 온유함이 넘치고 진실하고 성실하고 또 믿을 수 있고 여유가 있고 부드럽고, 그러면서도 함부로 언행하지 않고 신중하고, 보니까 뭔가 다른 그것이 그 여종을 통해서 나타났을 것이다 그말입니다. 안 그렇겠습니까? 아무리 나아만 대장이 문둥병이 들어서 고치고 싶어 환장을 했어도, 일개 여종 천박한 그 여종의 말을 그 아내가 그렇게 쉽게 들을 수는 없는 겁니다. 일반 상식으로 안되는 겁니다. 그런데 그 아이가, 그 여종이 평소에 하는 말이 허언을 하지 않는다는 것을 이 여주인이 세월속에서 겪어봤다 그말입니다. 이 아이 말이면 헛말이 아니겠다, 믿을만 하다. 만약에 그 여종이 그냥 아무렇게나 된 그런 아인데 그 말 믿고 갔다가 안되서 수치당하면 그 여종은 목이 달아나버리고, 그런 일을 이런 실력 있는 사람들은 안 합니다. 들어보면 압니다. 그러니까 그 여종에게서 뭔가 좀 말에 신빙성이 있겠고 믿을만하고 그럴만하니까 그 아내가 남편한테 말했고 그 말 듣고 그 남편 나아만 대장도 평소에 그 여종을 눈 여겨 자주는 안 봤겠지만은 들었을 것이고 아니까 그러면 믿을만 하겠다, 임금에게 말했을 것이고, 그래서 움직였지 전혀 나타나는 그런 모습이 없는데 그렇게 될 수는 없다 그말입니다. 그러면 그 여종의 평소 생활, 이제 말씀드린대로 두려울 수 밖에 없는 환경에서 두려움이 전혀 보이질 않고, 외로워서 사람의 가장 큰 나이 많으면 노년에 꼭 있어야 될 세가지를 며칠전에 신문에 나왔던데, 그 중에 하나가 주변사람과의 관계라 그러지요 아마. 고독함이란 것은 그거는 치명적인 그런 외로움입니다. 잘못하면 그것 때문에 죽습니다. 그러니까 혼자 원수 나라 잡혀갔으니까 고독함, 외로움, 견딜 수 없는 고독, 고향 생각, 부모님 생각, 말할 수 없는 거지요. 기약도 없습니다. 3년만 고생하면 된다, 5년만 고생하면 된다 그게 아닙니다. 죽을때까지 종노릇입니다. 그런데 그런 외로움의 표도 안나고. 겁도 보니까 하룻강아지는 아닌 것 같은데 두려워하지도 않고. 말도 함부로 하지 않고 신중하고. 또 성실하고, 진실하고, 온유하고. 여러 가지를 살펴보니까 보통 예사 아이가 아니다. 그래서 그 말을 들었는데 그런 모든 것이 어디서 나왔는가? 그게 어디서 나왔다고요? 하나님이 그 밑에 원동이 되어있으니까 거기서 나오는 겁니다. 신앙의 사람들은 이런 모습이 되어가는게 정상입니다. 예수를 바로 믿으면, 바로 나아만의 여종같은 이런 모습이 만들어져야 됩니다. 이렇게 만들어지는데 싫어할 사람이 있습니까? 사람이 자기 대우는 자기가 만드는 것이고 자기 영광은 자기가 만드는 겁니다. 자기의 가치는 남이 만들어주지 않습니다. 자기 스스로 만드는 겁니다. 내 가치는 내가 만드는 겁니다. 실력있는 사람, 이 여종같은 이런 사람은 싫어할 사람이 아무도 없습니다. 다 좋아하고 서로 데려다 쓰려고 그러지요. 문제는 사람들이 이런 사실을 몰라서 안 하는 것이고 알아도 자기 속에 있는 주관과 선입적인 관념 때문에 못하는 것이고, 게을러서 못하는 것이고 자기 습성 때문에 못해서 안되는 것이지 하나님 모시고 그 분 말씀대로 하기만 하면 그 사람은 가정이면 가정, 교회면 교회 어디서든지 존귀한 사람이 될 수 밖에 없는 것이 성경입니다. 경험으로 그렇지 않습니까? 우리 눈에 보이기에 그렇지 않습니까? 다 곳곳에서 그렇게 사는 사람들은 다 귀하게 대접을 받고 있지 않습니까?
그래서 여기서 첫째 기억할 것, 두 번째에서, 신앙이란 것은, 신앙은 무엇이 신앙이냐? 신앙은 하나님을 향하는게 신앙입니다. 하나님을 향한 신앙은 신분을 초월합니다. 신앙은 모든 형편을 초월하는 것이 신앙이다 이걸 첫째 기억하십시다. 신앙은 모든 신분과 형편을 완전히 초월해 넘어서는게 신앙이다.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 앞에서 ‘나는 신분이 천해서 종이라서, 나는 노예라서, 머슴이라서, 나는 못배워서 무식해서, 나는 나이가 많아서 죽을 날이 가까워서 이 나이에 뭘 하겠습니까’ 그게 바로 한 달란트 받은 핑계입니다. 공부를 못해서 배우지 못해 그것도 핑계입니다. 이 여종도 그랬고 요셉도 그랬고, 사무엘은 세상 공부 하나도 안했습니다. 그래도 이스라엘에 가장 유력한 사사가 되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는 신앙이란 것은 신분도 형편도, 세상 모든 조건을 다 아득하게 초월하는게 신앙이다. 이 사실을 실제 믿고, 이대로 노력하는 것을 가리켜 신앙이라 그러고 이것이 우리가 가는 길입니다. 이걸 지식으로만 가지고 실제 안하기 때문에 안되는 겁니다. 그걸 가리켜 뭐라고 그럽니까? 이걸 지식은 가졌는데 안하는 것은 왜 안하느냐? 안하는 것이 바로 교만이고 그게 자기 주관입니다. 그래서 노래를 부르다시피 말씀드리는게 주관을 버려야 되고 그 주관을 주님 말씀하시기를,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첫째 뭐합니까? 자기를 부인하고. 그게 바로 자기입니다. 자기 생각, 자기 관념, 이걸 부인하지 않고는 이 걸음을 걸어갈 수 없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신앙이란 것은 신분을 초월한다. 모든 형편도 초월하는게 신앙이다.
그다음 두 번째, 이런 신앙의 사람이 되고 있으니까 자연스럽게 세월 속에 이 여종은 그 집안에서 소중한 사람이 되었을 겁니다, 안봐도. 처음에는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었으나 점점 세월 속에 하나님 모신 그 신앙이 빛으로 나타나니까 나아만 안주인에게, 나아만 그 집안에서 없어선 안될 보배가 점점 되어져 갔을 겁니다. 소중한 인물이 되었을 겁니다. 그러므로 그 관계도 좋아졌을 것이고, 그러다보니까 그게 아니라도 그랬겠지만은 나아만의 여종 속에 자기 주인이 원수 나라의 자기를 종으로 잡아온 원수지만은 그러나 그 여종 속에는 하나님을 향한 신앙으로 말미암은 인간 구원의 사랑이 그 속에는 없어지지 않았고 늘 자리잡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 주인이 사마리아에 계신 하나님의 선지자 앞에 계셨더면 좋았겠나이다. 그분이 우리 주인의 병을 고칠 것입니다 하고 그 주인의 그 문둥병에 대한, 문둥병으로 고통 받는 그 주인에 대한 마음, 그 사람을 구원하고 싶은 그 욕망이 그 속에 있는 것이고 그리 되면 결과는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나는 거니까, 그래서 두 번째 신앙은 인간 사랑과 하나님 영광 위한 노력이 필연적으로 나오게 되는 것이 신앙입니다. 예수 믿는 사람이 그 속에 아무리 잘 믿는다고 사람들에게 소문이 나고 그리 한다 할지라도 사람을 아끼고 사랑하는 인간 구원의 사랑과 욕망이 없다면 그거는 참 신앙이 아니고, 하나님 영광 위한 그런 노력이 없다면 참 신앙은 아닙니다. 하나님을 향한 신앙이 바로 되었으면 인간 구원의 욕망과 하나님 영광 위한 노력은 필연적으로 나오게 되어 있습니다. 이게 신앙입니다. 이런 말씀을 가지고 우리 자신을 돌아봐야 됩니다. 내가 신앙생활하는 나의 신앙은 과연 내 신분을 넘어서는 신앙생활 하고 있는가? 내 형편을 초월한 신앙을 가지고 있는가. 내 속에는 원수를 사랑할 수 있는 이런 사랑을 가지고, 인간을 사랑하는 사랑을 가지고 있는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그런 노력을 하고 있는가?
그다음 세 번째, 그래서 하나님의 역사는 하나님이 붙들고 쓰시는 역사는 사람의 신분을 따지지 않습니다. 그 사람의 유식하고 무식함을 따지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당신을 진실하게 믿고 의지하고 바라보고 순종하고 두려워하는 사람이면 누구든 당신이 붙들고 쓰시는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 앞에서는 그 누구도 핑계 대지 못합니다. 자기만 다 진정으로 드려서 성경이 말씀하신 하나님을 참으로 믿고 참 의지하고 두려워하고 순종하면은 하나님이 붙들고 쓰시는데는 ‘하나님께서 이 돌들로도 이스라엘 자손이 되게 하시리라’, 모세의 지팡이는 모세가 쓴 그 지팡이, 나무막대기입니다. 그 지팡이가 하나님의 종 모세 손에 들렸으니까 그 지팡이로 홍해 바다도 가르고 그 지팡이가 뱀도 되고 온갖 역사를 다했고, 아론이 가진 지팡이는 나뭇가지를 잘라서 만든 가공해서 만든 지팡입니다. 그 지팡이를 법궤에다 넣어놓으니까 거기서 뭐가 나왔습니까? 싹이 났습니다. 그 지팡이에 싹이 나고 뿌리가 내려서 열매가 맺었습니다. 죽은 것도 하나님과 연결되면 생명역사가 일어난다 그말이지요. 그러니까 하나님이 붙들고 쓰시면 어린 아이도 상관없고 불구자도 상관 없고 아무것도 못 배워도 상관없고 나이 많은 노인도 상관 없고 병석에 누운 환자도 상관이 없고 상관이 없습니다. 문제는 사람들이, 이것도 주관입니다. ‘지금 이 나이에 내가 뭘 하겠습니까?’ 연세 많은 분들한테 한번씩 만나뵈면 제가 꼭 그말합니다. 사람이 일 하면은 젊을 때는 몸으로 일을 합니다. 마음보다 머리보다 몸으로 하는게 더 많습니다. 그러나 어느정도 나이가 되면 그때부터는 젊은 시절에 활동하는 그 모든 것을 근거 삼아 가지고 몸보다는 머리로 마음으로 생각으로 하는 것이 훨씬 더 가치도 있고 귀하고 효력도 많이 나는 겁니다. 그러니까 나이 많다고, 이 나이에 뭘 하겠는가? 이 몸 가지고 뭘 하겠는가? 내가 뭘 하겠는가? 그게 전부 하나님 앞에 한편으로는 하나님과 자기를 모르는 교만한 말이 되고 그게 자기 주관이 되는 겁니다. 하나님은 진실하게 당신을 믿고 바라보고 의지하는 그 사람이면 누구든 상관이 없다는 겁니다. 이게 은밀하게 역사하시는 하나님이다 그말입니다. 이 사실을 가장 잘 나타내는 찬송이, 찬송가 18장입니다. 참 마음을 다하여서 주님을 따르면 길이 길이 나를 사랑하시는, 그게 그 속에 들어있습니다. 크게 두 번째까지 세가지씩 기억을 하십시다.
그다음 세 번째 오후에서, 나아만 대장이 있고 그다음 그 나아만 대장의 말을 들은 아람 나라 왕이 있습니다. 또 아람 나라 왕의 편지를 받고 나아만 대장을 맞이한 이스라엘 나라 왕이 있습니다. 이 세 사람이 있는데, 아람 나라는 세상입니다. 하나님이 없는 이방나라입니다. 그 나라에 왕은 말하자면 하나님 없는 나라의 왕이고 대장입니다. 이스라엘 나라는, 여기 사마리아라는 건 타락한 북쪽 이스라엘입니다, 남쪽 유다가 아니고. 타락한 북쪽 이스라엘이지만은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백성의 나라고 그 왕은 하나님 백성 나라의 왕입니다. 그런데 보니까 여종의 말을 듣고, 급하니까 그랬겠지만은, 또 직접 들었으니까 그럴수 있겠지만은 나아만 대장은 하나님을 모르는 이방인인데 여종의 말을 듣고 믿음을 가졌습니다. ‘우리 주인이 사마리아에 계신 하나님의 선지자 앞에 계셨으면 좋았겠나이다. 그가 문둥병을 고치리이다’ 그 말을 나아만 대장이 듣고 믿음을 가졌고 수긍 했습니다. 그래서 거기 가고 싶어서 가려고 왕에게 말하니까 그 왕도 거기 대해서 인정을 하고 믿음을 가지고, ‘내가 편지 써줄테니까 가라’ 보냈습니다. 그러면 이방인인 두 사람은 여종을 통해서 전한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믿음을 가졌습니다. 제한적이지만 믿음을 가졌습니다. 그런데 그 편지 받고 나아만을 영접한, 하나님 백성의 나라 이스라엘 왕은 그 편지 받고 어쨌습니까? 7절, ‘이스라엘 왕이 그 글을 읽고 자기 옷을 찢으며 가로되 내가 어찌 하나님이관대 능히 사람을 죽이며 살릴 수 있으랴’, 이 문둥병이 이런 병입니다. ‘저가 어찌하여 사람을 내게 보내어 그 문둥병을 고치라 하느냐’ 이거는 깊이 생각하고 저 왕이 틈을 타서 나로 더불어 전쟁해서 우리나라 치려하는 핑계거리, 시비거리 만드는 것이다 그렇게 받아드렸습니다. 문둥병 환자가 왔는데도. 이 이스라엘 왕은 나라의 본족속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 믿는 믿음은 전혀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믿음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여기서 또 정리해보면 멀리 떨어져있어도, 교회에서 때로는 참 복음에서 멀리 떨어져있어도, 늦게 받아도 하나님을 믿고 받아드리는 사람이 있을 수 있고, 첫째, 두 번째는 본 족속의 머리라도 교회안에서 왕이라도 목사라도 믿음이 없을 수가 있고 실패되는 수가 있다는 겁니다. 이렇게 두가지를 기억해보십시다. 그래서 아무리 교회에서 복음에서 멀리 떨어져 있어도, 멀리서 들려오는 그 복음을 듣고도 구원 얻고 성공하는 사람이, 구원 얻는 사람이, 믿음 있는 사람이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는 사실, 두 번째, 바로 본족속으로 그 자리 있어도 그 자리에서 왕이라도 하나님 백성 전체를 책임진 왕이라도 하나님에 대한 믿음은 완전히 불신으로 믿음 없는 사람으로 될 수가 있다는 겁니다. 예수님 당시에 복음에 가장 큰 원수가 누구라 볼 수 있습니까? 누굽니까? 복음에 가장 큰 원수는 예수님을 팔아먹은 가룟유다 아닌가요? 그 가룟유다가 로마 사람입니까? 누굽니까? 유대인입니다. 예수님의 제자입니다. 그 밑에서 예수님 팔아먹은 인간도 나왔습니다. 사도바울은 원래 멀리 떨어져있었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 잡아죽이던 원수입니다. 그런데 사도바울도 됐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소속이 중요한데, 노선이란 것은 생명보다 중요함에도 불구하고 그 노선 안에 있으면 물론 기본적인 받는 복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만 믿고 자칫 잘못하면 자기 구원에 큰 손해 보기가 대단히 쉽다는 것을 기억을 해야 됩니다. 멀리 있어도 구원 받는 사람이 있을 수 있고, 많진 않습니다, 그래서 소속이 중요하고 좋습니다. 그러나 그 안에 있어도 이스라엘 왕처럼, 가룟유다처럼, 예수님 팔아먹는 것처럼 하나님 대한 믿음은 털끝 만큼도 없었던 이 왕처럼 이런 왕도 될 수가 있는 겁니다. 그래서 편지를 받아가지고는 옷을 잡아 찢고 기절초풍을 해버렸습니다. 이게 그 나라 왕입니다. 그런데 하나 더 비교할 것은 이 이스라엘 왕이 평소에는 하나님의 선지자 알기를, 하나님 알기를 제 어른들 표현에 발톱 사이 때 만큼도 안 여겼습니다. 이 왕이 하나님의 백성의 대가리 되는 왕이 하나님 알기를, 하나님 종들 알기를 제 발톱 사이 때만큼도 안 여겼습니다. 그렇게 간 큰 인간이, 하나님 없는 이방나라에 대장이 오니까 죽어버렸습니다, 겁이 나서. 그래서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은, 하나님을 두려워할 줄 모르는 사람은 뭘 두려워합니까? 피조물을 두려워할 수 밖에 없는 겁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사람은 피조물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은 피조물 전부는 그에게 상전이 되고 제 머리가 되기 때문에 두려울 수 밖에 없는 겁니다. 이것이 처음에 말씀드린 세가지하고 연관이 될 수 있습니다. 모든 것은 하나님이 주시는 것이다. 그분에게서 나오는 은혜라야 된다는 사실을 깨닫고, 알고나면 세상은 전부 그의 이용물이 되고 밥이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으로부터 모든 것이 나온다는 그 사실을 깨닫지 못하는 사람은 세상은 전부 그의 상전이고 그는 전부 세상의 종입니다. 뭐 하나도 그는 넘어가지 못합니다. 그런 세상이 되고 마는 겁니다.
이렇게 세가지를 본문에서, 또 여기서 기억을 하고, 간단하게 네 번째 나아만의 문둥병 나은 여기서는 생각해보면 이 나아만이 왕이 옷을 찢었다는 말을 엘리사가 듣고 사람을 보내서 어찌하여 왕은 옷을 찢었나이까. 그 사람을 나한테로 보내십시오. 그러니까 왕이 좋다고 짐을 벗어서 얼른 보냈습니다. 짐을 벗었다고 얼른 보내서, 보내니까 나아만 대장이 부하들 거느리고 엘리사 집 대문에 왔습니다. 속으로 생각할 때, 자기가 그래도 대국에 일등 공신이니까 비록 치료받는 처지지만은, 그래도 위치가 있고 입장이 있으니까 나와서 정중하게 맞이하고 인사하고 또 아주 거창하게 뭔가 판을 벌여서 상처에 손을 대가지고 기도하고 안수하고 그런 격식을 갖춰서 그렇게 자기 병을 치료할 줄로 그렇게 생각을 하고 왔는데 그 생각이 전부 자기의 주관이다 말이죠. 막상 가보니까 하나님의 선지자란 사람, 병 고칠 사람은 얼굴도 안 보입니다. 얼굴도 안 보이고 심부름꾼이 하나 나와서 들어올 것 없고 요단강물에 가서 일곱 번 몸을 씻고 가면 된다. 그러니까 분하고 노해서 말이 많았었지요. 생각이 많았고. 그 나아만 대장에게 병을 고치러 온 사람이 엘리사가 병 고치는 말 해줬는데 그 말이 제대로 들리지 아니하고 너무 시쁘게 들린 이유가 첫째는 자기 속에 있는 교만 때문입니다. 나와서 영접해야 되고, 자기 생각대로 뭘 해야 되는데, 자기가 그런 사람인데, 그러니까 자기를 몰랐고 대장이면 대장이지, 그것도 그러지 않습니까? 요즘은 많이 고쳐졌지요. 병원에 가면 의사들이 나이 많은 할머니 할아버지들한테 말 공손히 합니까? 바로 된 의사들은 안 그런데 왠만한 의사들은 가면은 아무리 나이 많아도 반말합니다. 말 툭툭 던지고. 병 고치러 왔는데 병을 고쳐주는 의사니까 반말하다시피 그렇게 해버립니다. 그렇지만은 이때는 시대적으로 보면 의사가 그리 잘 한거 아닌데, 자기는 대국이고 대국의 대장이고 소국의 선지자니까 그리 알았지만은 실상을 몰랐다 그말이지요. 자기를 바로 몰랐고 하나님을 바로 몰랐습니다. 교만, 또 자기 생각 자기 주관 자기대로 판단하는 겁니다. 이거 굉장히 중요합니다. 사람들 인간관계에서 많이 피곤하고 힘드는 것이 사람관계에서 모든 사람을 모든 일을 다른 사람 입장과 전체 형편을 가지고 종합적으로 판단하지 아니하고 자기 생각대로 생각하는 겁니다. 자기 인식대로. 자기 주관입니다. 그러면 다른 사람은 안 그런데 자기 생각대로 판단하니까 설명도 안되고 해명도 안되고 대화가 안되니까 대책이 없습니다. 참 힘들고 피곤한. 그런 사람들이 주변에 있으면 많은 사람이 힘들고 피곤하게 됩니다. 그게 자기입니다. 그 주관을 부인하는 것이 성경인데 그게 그렇게 어렵습니다. 나아만의 생각에, 병을 고치려면 상처도 봐야 될 것이고 기도를 하던지 해야될건데 그냥 심부름꾼 하나 보내가지고 요단강물에 일곱 번 씻고 가라 하니까 말이 되는 소리를 해야되지요. 그러니까 자기 주관하고 완전히 다르니까 못 받아드리는 겁니다. 교만이 있으니까, 주관이 있으니까 받아드리지 못하는 겁니다. 거기다가 하나 더하면은 이 사람은 세상 실력이 뛰어나서 세상 실력이 뛰어나다 말은, 그만큼 자기라는 사람이 그 사람 자체가 그렇게 연단이 되어있다는 뜻입니다. 그런 사람이 되어있으니까 그 사람은 뭐든지 할 수 있는 사람이고 해왔었습니다. 그래서 세상에서 나라도 구했고 큰 인정받은 그런 사람, 그런 위치에 섰습니다. 험난한 일, 어려운 일들을 수도없이 헤쳐나와서 이루었다 그말이죠. 그런데 그 모든 것 전부다를 보태도 문둥병은 못 고쳤거든요. 자기가 알고 있는대로 힘든 일 어려운 일 복잡한 일 나라를 구한 일까지 한 나아만인데, 그런 나라 구한 그 일도 문둥병 못 고쳤습니다. 그런데 엘리사가 시키는 문둥병 치료 방법이 뭐하라고요? 요단강물에 가서 일곱 번 씻으라. 말이 되는 소립니까? 너무 너무 시쁘게 보입니다. 가찮게 보이는 겁니다. 너무 쉽게 보이니까 무시해버린 겁니다. 그래서 세상 사람들 중에서 잘난 사람들, 똑똑한 사람들, 의지 강한 사람들이 예수 믿는 복음을 못 받아들이는 이유 중에 큰 이유가 바로 이면 때문입니다. 예수 믿어 천국 간다고? 천국 있다고? 영생을 얻는다고? 말이 되는 소릴 해야지. 믿으면 천국 간다고? 돈 천만원 한달에, 한달에 천만원 받는 사람이 되려고 해보지. 얼마나 힘이 들고 노력해야 되는데. 우리나라, 세계는 고사하고 아시아는 그냥 두고, 대한민국에서 어떤 방면으로 1등 한번 하려 그래보지. 얼마나 많은, 피눈물 나는 노력이 들어가야되는데, 그런데 영생을 얻는데 믿으면 천국간다고? 말이 되는 소릴 해야지. 그래서 안 믿습니다, 그 사람들은. 너무 너무 똑똑하고 잘난 사람들인데 제 꾀에 제가 속는 겁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은혜라 하지 않느냐. 그러기 때문에 그 은혜는 하나님께서 당신이 택한 백성들한테 주시는 것이지 아무한테나 주지 않습니다. 인간이 받고 싶다고 받는게 아니다 그말이지요. 그래서 구원은 전부 하나님 한분에게 다 나오는 겁니다. 이렇게 해가지고 나아만은 받아들이지 못했습니다. 교만과 무지 때문에, 세상 실력이 너무 뛰어나서 그래서 받아들이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일단 부하의 말을 듣고 잠시라도 교만을 접었습니다. 자기 주관을 접었습니다. 사람이 주관이 강하면, 주관이 강한 사람을 다른 말로 뭐라 합니까? 자기가 아는 것이 전부라는 사람을 주관이 강하다 그럽니다. 자기가 아는 것이 전부라고 생각하는 사람을 뭐라 그럽니까? 우물 안에 개구리라 그럽니다. 그래서 주관이 강하면 사람이 무지하게 되고 무식하게 됩니다. 넓은 걸 보지 못합니다. 객관을 받아들이지 못하면, 주관에 갇히면 이 세상은 주관보다 객관이 비교 못할만큼 크고 많습니다. 대아를 가리켜 객관이라 그러고 소아를 주관이라 그럽니다. 나는 작은 나 하나밖에 없고 내 객관은 전부입니다, 하나님까지 포함하면. 그러기 때문에 주관을 부인하고 객관을 받아드려야 사람이 넓어지는 것이고 언덕을 떠나야 하나님의 넓고 큰 은혜 바다로 마음껏 달릴 수가 있는 겁니다. 일단 이 나아만이 부인했습니다. 교만을 꺾고, 임시지만은 참 목 마른 사람이 우물 판다고, 말이 안되는 소리지만은 아니꼽고 더럽지만은 한번 해보자 하고 그 말이 틀린 말 아니니까, 부하들의 말이 ‘어려운 걸 시켜도 할건데 이렇게 쉬운 걸 시켰는데 해보고 안되면 그다음에 가서 때려부수든지 없애버리던지 하지, 안 해봤으니까 할말이 없잖습니까?’ ‘니 말이 맞다’ 그렇게 하려면 교만을 부인하고 자기 주관을 꺾어내야 되지요. 부인해야 되지요. 꺾고 난 다음에 가서 일단 순종을 하니까 어찌 됐습니까? 순종하니까 결과는 말대로 됐거든요. 하고나니까 뭐가 깨집니까? 교만이 깨지고, 주관이 다 깨져버렸지요. ‘아 내가 아는 세상이 전부가 아니구나. 내가 알고 있는,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 말씀은 그 말씀대로 살아봐야 아는 겁니다. 실행하지 않는 사람은 결코 말씀 진리를 깨닫지 못합니다. 그 말씀대로 살아봐야, 먹어봐야 맛을 아는 겁니다. 그러면 내가 알고 있는 세계가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는데, 많은 사람이 얕은 물가에서 저 큰 은혜 바다 가려다가, 뭘 보고 못 간다고요? 찰싹 거리는 작은 파도 보고, 내가 말씀 순종하다 직장에서 떨어질라, 사업 실패할라, 남편에게 아내에게 미움 당할라, 집안에서 쫓겨날라, 뭣 할라, 찰싹거리는 세상 이런 것보고 겁이 나서 못간다 그럽니다. 어제 신문에 보니까 그것도 하나 참고할게 있던데, 어느 독일에 어떤 젊은 사람이 만사 재껴놓고 돈 몇십만원 가지고 세계 곳곳에 여행을 가니까 여행 다니는 가는 곳이 전부다 일거리고 자기 만드는 곳이고 전부다 기회더랍니다. 그런게 하나에 참고가 되겠더라 그말이지요. 사람이 신앙생활에 매진할 때, 기독교는 모험의 도가 아니기 때문에 모험적으로 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주시는 형편이 그렇게 될 때는, 일단 해보는 겁니다. 직장에 떨어질까 겁이나서, 사업 망할까 싶어서, 쫓겨날까 싶어서, 가정에서 미움 당할까 싶어서, 뭐할까 싶어서 겁이 나서 못하는 것은 신앙의 자세는 아니라는 겁니다. 전부 거기 걸려서 못하는 겁니다. 일단 순종해보니까 결과가 환하게 나타나니까 할 말이 없지요. 교만이 깨졌고, 주관이 깨졌고, 악독도 다 깨져버렸습니다. 그리고나서, 그래서 순종의 결과는, 그래서 나아만 대장이 엘리사의 하나님 통한 하나님 말씀에 순종의 결과는 요단강물, 그 요단강물은 자기가 그때까지 쌓아온 아람 나라의 전부보다도 순종 한번으로 가져온 요단강물이 그에게는 더 귀했던 것처럼, 우리 믿는 사람에게 하나님 말씀 순종은 온 세상 전부보다 더 귀한 것이 말씀 순종이다, 지극한 보배다 하는 겁니다.
시간이 갔는데 간단하게 그다음에 하나만 더 말씀드리는데, 하나는 놔두고. 이 나아만이 병 고침을 받고 난다음에 엘리사를 다시 찾아갔습니다. 찾아가서 이제는 그 앞에 엎드리지 않고 섰지만은, 서서 가로되, 그다음에는 이제 말하기를 ‘내가 이제 이스라엘 외에는 온 천하에 신이 없는줄 아나이다’ 이제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받아드렸고, ‘청컨대 당신의 종에게’, 이제 종이 됐습니다. 뻣뻣하게 갔지만은 순종해보고 나니까 종이 됐습니다. ‘종에게 예물을 받으소서’ 하고 엘리사에게 많은 선물을 갖다 안겼습니다. 고침 받았으니 내 마음 같으면 우리 나라도 갖다드리고 싶은데 내가 못하니까 이거라도 받으십시오 하고 많은 예물을 갖다드리는 것이 나아만 대장의 바른 사은이 자세고 믿음입니다. 그래서 나아만 대장은 순종해보므로 믿음을 가졌습니다. 믿음 가졌지만은 엘리사는 결코 받지 않았습니다. 엘리사가 무조건 안 받는 것 아닙니다. 받아야 될 것은 얼마든지 받습니다. 그러나 받지 말아야 될 것은 억만금이라도 안 받는 겁니다. 한사코 거부하니까, 사양하니까 나아만이 말하기를, ‘그러면 청하건데 노새 두 바리에 실을 이 나라의 흙을 좀 주십시오’. 그러면 그 흙을 가지고 내가 돌아가 제단을 쌓고 번제든 다른 제사든지 하나님 앞에만 제사를 드리겠나이다. 하나님만 섬기겠나이다 여기까지 나아만의 믿음이 자라갔고 생겨졌습니다. 나아만이 구원을 받은 겁니다. 그런데 그다음 조건이 하나 붙습니다. 다만 ‘오직 한가지 일이 있사오니’, 두가지도 아니고 한 가지입니다. ‘여호와께서 당신의 종을 사유하시기를 원하나이다 곧 내 주인께서 림몬의 당, 우상입니다, 림몬의 당에 들어가 거기서 숭배하며 내 손을 의지하매’, 그러니까 아람 나라 왕이 림몬이라는 그 우상 섬기는 거기 그 우상을 의지해서 나아만 대장을 믿고 의지하니까 아람 나라 왕이 우상 섬기러 들어갈 때 나아만 대장을 데려 들어가서 같이 절을 한다 그말이지요. 그때는 차마 내가 피하지 못하니까 이것만 용서해주옵소서. 그리 할때 엘리사가 ‘우상이니까 안된다’ 그랬습니까?
뭐라 그랬습니까? ‘평안히 가라’고 가타부타 말 없이 보냈습니다. 그게 나아만 대장의 한계입니다. 그래서 나아만 대장은 기본구원적으로 말하면 구원을 받은 사람이고, 건설구원은 이루지 못한 사람이라. 받은 구원을 나아만 대장은 자기가 이미 가지고 있는 이 세상을 끊지 못하고 버리지 못했기 때문에 구원의 최종은 도달하지 못한 사람이 나아만 대장이라 그리 볼 수가 있는 것이고, 그럴때 엘리사가 평안히 가라고 말한 것은 건설구원은, 기본구원은 하나님의 일방적인 강제적인 은혜지만은, 건설구원은 인간의 자유의지로 만드는 것이기 때문에 엘리사가 거기 침범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알아서 해라, 평안히 가라’고 보낸 겁니다.
오늘 오후에 다섯가지를 간단하게 설명을 드렸는데 하나 하나 좀 생각하시고, 중요한 것은 이 말씀을 가지고 우리 자신, 각자 자기 자신을 돌아봐야 됩니다. 돌아보고, 어쨌든 신앙이란 것은 하나님 한분이 전부라는 것을 늘 기억을 하고 잊지 말아야 됩니다.
다같이 통성으로 기도드리겠습니다.
첫 번째에서 세가지, 두 번째 세가지, 또 세 번째에도 세가지, 네 번째에도 또 몇가지 이렇게 하나 하나 정리하면서 기억을 하고, 자꾸 좀 생각해서 나는 어떻게 살아왔는가를 좀 돌아보십시다.
1)모든 것은 하나님께서 주신 것
- 나아만의 실력 공적 인정은 하나님께서 주신 것
- 사람의 가진 전부는 하나님께 매였음을 기억할 것
2)큰 용사나 문둥병자
- 나아만은 큰 용사였지만 문둥병자
- 아무리 뛰어나도 예수 밖, 믿음 밖의 사람은 결국 죽을 죄인
3)세상 것으로는 해결 불가능
- 나아만의 실력 공적 인정으로 문둥병 치료는 불가능
- 인생의 그 어떤 것으로도 죄 문제 해결은 불가능
2. 여종의 신앙(2-3절)
1)신앙은 신분과 형편을 초월한다
- 여종의 신분은 종으로 끌려간 노예였고
- 외롭고 두려움으로 가득찬, 가장 불행한 인생이었으나
- 하나님을 향한 신앙으로 이 모든 것을 초우러
2)신앙은 인간 사랑, 하나님 영광의 욕망이 필연
- 나아만은 적국의 원수였으나 전도하고 문둥병 치료받도록 주선
- 결과적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되었으니
- 신앙은 인간 사랑과 하나님 영광 위한 노력이 필연
3)하나님의 역사는 신분 조건이 무관
- 여종은 나이어린 노예였으나
- 진실하게 하나님을 섬길 때 붙들고 쓰신 것
- 하나님의 역사는 사람의 신분이나 조건이 상관 없는 것
3. 나아만 대장과 두 왕(4-7절)
1)멀리 있어도, 늦게 믿어도 믿음은 있을 수 있는 것
- 하나아만은 하나님 모르는 이방인이었지만 여종의 전도로 믿었고
- 아람 나라 왕도 일시적이었지만 믿었으므로 나아만을 보낸 것
2)본족속이라도 믿음 없으면 실패
- 이스라엘 왕은 하나님 백성의 머리인 왕이었으나 믿음 없어 실패
- 노선과 소속이 생명보다 중하나 그것이 전부는 아닌 것
- 바른 노선과 소속에 있어도 구원은 실패될 수 있는 것
3)하나님 두려워하지 않으면 피조물이 두려워
- 이스라엘 왕은 평소 하나님도 하나님의 선지자도 두려워하지 않았으나
- 대국 아람나라 왕이 보낸 편지를 받고는 옷을 찢고 두려워 죽을 지경이 되었으니
- 하나님 두려운 줄 모르는 자는 피조물이 두려워 견딜 수 없게 되는 것
4. 나아만의 문둥병 치료(8-14절)
1)교만, 주관(무지), 악독이 있으면 복음은 들리지 않아
- 엘리사가 전하는 하나님의 말씀이 나아만에게 바로 들리지 않았으니
- 나아만에게 교만과 주관(기존 지식, 선입적 관념), 악독이 있기 때문
- 교만, 주관, 악독이 있으면 복음은 바로 들리지 않는 것
2)세상 실력 가진 자는 복음을 시쁘게 여겨
- 나아만은 실력, 공로, 인정을 가진 잘난 자였으니
- 요단강에 일곱 번 씻으면 나으리라는 말씀이 너무 시쁘게 여겨져
- 세상 실력 많이 가진 사람은 대개 복음의 말씀이 시시하게 여겨지는 것
3)말씀 순종은 지극한 보배
- 부하들의 충언으로 교만과 주관과 악독을 잠시 접고 순종하니
- 결과는 어린아이 살처럼 깨끗하게 나았고
- 낫고 보니 하나님의 말씀의 권위성을 체험하여 알게 됨
- 한 말씀 순종이 자기 가진 전부보다 효력 있는 지극한 보배
5. 나아만의 믿음과 한계(15-18절)
1)나아만의 믿음
- 엘리사가 어떤 분인지 알아 모시고
- 하나님만 참신, 그 외에 신이 없음을 인정
- 예물을 고사하니 더 존경
- 흙이라도 실어 가서 제단 만들어 섬기려 간청
2)나아만의 한계
- 체험으로 하나님을 알았으나
- 림몬의 당에서 머리를 숙일 때 용납하시기를
- 자기 입장, 기득의 모든 것 포기 못 하여 다시 옛날로
- 건설 구원은 자유성의 결정이니, ‘평안히 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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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921 주후
열왕기하 5:9-19
오전에 크게 두가지를 말씀드렸는데, 두가지에서 좀 정리해서 한가지에 세가지씩 한번 정리해보겠습니다. 첫째, 오전에는 좀 안 나온 말씀일지 모르겠는데 아람 왕의 군대장관 나아만은 그 주인 앞에서 크고 존귀한 자다. 몇 가지 때문에 크고 존귀한 자입니까? 세가지지요. 하나는 실력, 둘째는 공로, 세 번째는 인정입니다. 그런데 이거는 순서적으로 필연적으로 따라가는 겁니다. 실력이 있으면 공로는 대개 있게 되고, 반드시는 아니지만은 실력과 공로가 있으면 인정은 받게 되어 있다 그리 말할 수 있습니다. 이게 정리할 때 오전말씀 복습인데 나아만은 이 세가지를 갖추어 가졌습니다. 그런데 사람이 실력을 마련하려면 학습세례 문답에 보면 모든 지능이, 사람의 모든 지능, 지식과 능력이 어디서 생겨지는고 하니 어디서 생겨진다고 혹시 찾아보셨습니까? 모든 지능이, 지능이란 것은 사람의 000, 어디 어디 들어간다고요? 몸과 마음에. 마음과 몸에 들어있는게 사람의 지능입니다. 남의 마음과 남의 몸에 든 것은 내 것은 아닙니다. 내 마음과 내 몸에 들어있는 지능이 내것이고 그게 바로 실력입니다. 그런데 그 실력, 모든 지능은 어디서 생겨지는고 하니 수고를 달게 하는데서 깨달아지고 자라가느니라 그래 말씀했습니다. 모든 지능은 수고를 달게하는데서 깨달아지고 자라가느니라. 그 수고는 누가 하는 수고입니까? 자기가 하는 수고입니다. 내가 수고하고 내가 노력을 하면 내 심신의 지능이 쌓여지고 자라서 실력있는 사람이 되어지는 겁니다. 노력하지 않는 사람은 실력있는 사람은 결코 될 수가 없습니다. 그러면 나아만의 실력은 누구의 노력입니까? 나아만의 실력은 누구의 노력입니까? 나아만 자신의 노력입니다. 힘 쓰고 애를 써서 실력을 마련했고 그 실력 가지고 있으니까 위기를 만났을때 나라를 구하고 공을 세울 수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여기 본문에 보니까 아람 왕의 군대장관 나아만은 그 주인 앞에서 크고 존귀한 자다. 실력을 마련하고 공을 쌓고 인정 받으니까 크고 존귀한 잔데, 그것이 어디서 생겼는고 하니 그 크고 존귀한 그 나아만 대장의 크고 존귀함이 어디서 나왔는고 하니 어디서 나왔다고 되어있습니까? 성경 보니까 어디서 나왔습니까? ‘이는’, 이는 이게 무슨 뜻입니까? 나아만 대장의 그 주인 앞에서 크고 존귀한 자가 된 그 원인은, 그 배경은, 그 근거는, 누가 그랬습니까? ‘이는 여호와께서 전에 저로 아람을 구원하게 하셨음이라’ 그러면 나아만에게 물어보면 “하나님이 너를 붙들고 쓰셔서 니가 아람 나라를 구원했지?” 그렇게 말하면 나아만 대장이 펄쩍 뛸 겁니다. “내가 노력을 얼마나 많이 했는데. 내가 밤잠을 얼마나 많이 못 잤고, 내가 놀고 싶은 것 얼마나 다 꺾었고, 내 의지력과 절제력과 인내심과 참을성과 끈기로 내가 이런 것도 배웠고 저런 것도 공부하고 이런 연습도 하고 저런 숙달도 하고 그래서 내가 전법도 공부하고 또 무술도 익히고 나라 정치도 배우고 온갖 것을 내 눈으로 읽었고 내 귀로 들었고 내 팔 다리로 걸어 연습을 했고 내 머리로 생각을 했고 다른 사람이 시켜 한 것이 아니고 내가 전부다 내 판단과 내 생각과 내 비판과 평가로 내가 노력해서 내가 만든 내 실력인데 거기 하나님이 왜 들어오느냐?” 고 펄쩍 뛰겠지만은 성경은 말씀하시기를, 그 군대장관 나아만은 그 주인 앞에서 크고 존귀한 자지만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그렇게 되도록 하셨다고 못을 박아놨습니다.
그래서 첫째, 나아만의 모든 실력과 공로와 인정은 하나님이 주신 것이라. 이거는 성경이 말씀하기 때문에 이거는 이론의 여지가 있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주셨다고 못을 딱 박아놨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사람의 모든 것은 전부다 하나님이 주시는 것이지 사람이 한다고 되는 것이 아닌 것을 자연계시나 성경전체에서 많이 찾아볼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 구원은 겉으로 보기에는 사람이 노력을 하는 것처럼 보여지나, 요즘 그걸 말씀을 드렸는데 기독자의 모든 구원은 전적 은혜입니다. 전부다 은혜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배운 건설구원은 인간의 노력이 다 들어가야 된다고 성경이 말씀을 합니다. 마음과 힘과 뜻과 성품 전부 다하지 않으면 내 제자가 되지 못한다, 영생 얻으려면 전부 다 해서 사랑을 해야 된다고 자기를 다 받쳐서 노력을 하고 드려야 된다고 십자가를 져야 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인간이 노력을 해야만 구원이 되는 것으로 사람들이 착각을 하기 쉬운데 그리되면 감리교 알미니안 주의가 되어집니다. 감리교는 하나님의 은혜와 인간의 노력이 섞여야 구원이 된다는 주장이 감리교들의 주장입니다. 우리가 배운 건설구원은 그리 되는 것 같으나 그 이면에 들어가보면 인간의 모든 노력은 전부 하나님의 은혜다. 그래서 인간의 노력은 무엇이라고 했던가요? 얼마전에 제가 말씀드린 것 같은데. 인간의 노력은 그것이 곧 무엇입니까? 바로 들으셨는지 모르겠습니다. 인간의 노력은 무엇입니까? 인간의 노력이 인간의 노력이지 무엇이겠는가. 인간의 모든 노력, 이 노력을 하는 사람도 있고 안 하는 사람도 있고 하고 싶어도 못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누구든지 할 수 있다고, 하고 싶다고 다 되는 것 아닙니다. 인간의 노력은 무엇인가? 하나님의 은혜가 나타나는 것이다 그말입니다. 인간의 노력은 하나님이 그에게 주신 그 은혜가 그의 노력이라는 겉모습을 통해서 나타나는 것이지 제 것이 아니다 그말입니다. 이걸 깨닫지 못하면 사람은 어찌 됩니까? 이 사실을 깨닫지 못하면 사람은 어떻게 됩니까? 인간의 노력은, 노력을 해야 실력이 쌓여지고 그 실력이 있어야 공을 세우고 공을 세워야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는 건데 그 인간의 노력, 그 실력 마련하는 것은 인간의 노력인데 그 노력은 무엇이라고요? 하나님의 은혜가 노력이라는 모양으로 나타나는 겁니다. 그런데 이 사실을 깨닫지 못하면 그 사람은 어떤 사람이 됩니까? 이 사실을 깨닫지 못하면 그 사람은 교만한 사람이 되고 마는 겁니다. 하나님이 주신 것인데, 제가 했다 하니까 하나님을 모르고 하나님이 은혜 거두시면 아무것도 아닌데 그 사실을 깨닫지 못하는 무지한 자가 되니까 교만한 자가 될 수 밖에 없는 겁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겁니다. 나아만 대장에만 그런 것이 아니고 오늘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오늘 우리도. 나아만도 그랬고 6천년 역사 천하 모든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고 가치를 두고 주력을 하는 것은 정리를 해보면 세가지 속에 다 들어있고, 그 세가지에 가장 밑에 것 하나 큰 것 하나는 첫 번째 자기 실력 마련입니다.
그러니까 사람들이 뭐든지 하는 걸 보면 다 실력을 일단 마련하고 그다음 뭘 하지 않습니까? 실력 없으면 아무것도 못하니까. 그래서 실력을 마련하기 위해서 많은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실력만 있으면 뭐든지 할 수 있다, 그 실력이란 것은 종류가 워낙 많으니까 뭐 하나 예를 들어 말하기 그렇지만은, 어떤 면으로든지 그 방면에 탁월한 실력만 가지고 있으면 그 사람은 자기 한 몸둥이 마음과 몸 몸둥이가 바로 재산이고 그게 대우고 그게 가치고 영광이라서 팔을 잘 쓰는 사람은 세계적인 야구 선수들은 보험을 어디다 듭니까? 팔에다 보험을 들지요. 엄청나게 많은 돈을 주고 팔에 보험을 듭니다. 얼굴이 굉장히 잘 생긴 세계적인 미인들은 얼굴에다가 보험을 들고 코가 잘생긴 코 미인들은 코에다가 보험을 듭니다. 요즘 그렇게 하잖습니까? 그 코가 바로 돈이고 코가 바로 인기고 대우고 팔이 대우고 말하자면 자기 몸뚱아리가 그게 그 몸에 들어있는 실력이, 또 타고난 그런 것들이 그 속에 돈도 들었고 명예도 들었고 인정도 들었고 대우도 들었고 다 들어 있는 겁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얼굴을 전부다 많은 사람이 가치로 알아주니까 성형 수술을 어마어마하게 많이 하고, 아마 여반들치고 성형수술 안하는 사람이 거의 없다 할 만큼 다 한다 그러지요. 우리 교인들도 제가 모르기는 모르겠습니다만은 여반들 더러더러 제법 많이 있을 걸요? 표가 안나서 그렇지. 눈꺼플 뭐 쌍꺼플 수술했든 어쨌든 성형수술 했을 겁니다 모두들. 다 한다 그말이지요. 하고, 공부하는 것도 알고보면 실력 마련입니다. 또 뭘 배우는 것 전부 실력마련이고 다 그런 겁니다. 그게 마련이 되어져야 그다음 뭔가 일을 할 수 있고 일을 해야 공적이 쌓여지고 그게 있어야 대우를 받는거니까. 그래서 천하 인간 역사의 모든 사람들의 관심과 가치관과 노력은 전부 이 세가지에 다 기울어져있고, 그래서 사람들의 인식은 인간의 행복은 이 속에 들었다. 인간의 행복은 공부를 많이 해야 된다. 인간의 행복은 돈이 많아야 된다. 인간의 행복은 뭐야 된다. 정리해보면 세가지입니다. 그 세가지 속에 인간의 행복도 존영도 또 대우도 가치도 다 들어있다고 그리 말을 안해도 무언중에 그런 인식과 그런 관념을 가지고 사람들은 이 세상에 살아가고 있고 그렇게 노력을 하는 것입니다. 맞습니까? 논리가 맞습니까? 그렇게 살고 있는 겁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그걸 노력을 하는데, 노력을 하고 나면 그래서 뭔가를 이루고나면 이루는 과정에도 그것이 자기가 했다고해서 자기 스스로 그리 됐다고 생각하고 그리 오판을 하고 자기가 한 줄 알지만은 실상 알고보니까 하나님께서 각자에게 주신 은혜대로 주셨다, 그래서 디모데후선가 거기 보면은 우리 구원은 우리 행위대로 하신 것이 아니고 영원한때전부터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주신 은혜대로 우리를 구원하셨다 그래 놨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우리가 구원을 받은 것이고 그러기 때문에 실력이 많고 탁월한, 잘난 사람도 하나님의 은혜고 못난 사람도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신앙이 좋은 사람도 하나님의 은혜고 신앙이 없는 사람은 은혜가 적은 것이고. 깨달음이 깊은 사람도 하나님의 은혜고 깨달음이 적은 사람도 은혜가 적어 그런 것이지 자기가 잘나 그런 것이 아니다 그말입니다. 이걸 첫째 기억하십시다. ‘이는 여호와께서 전에 저로 아람을 구원하게 하셨음이라’ 인간의 모든 실력은 천하 모든 사람이 다 갈망하는 세가지 행복의 필수조건이라고 오판이지만은 그리 하고 노력하는 그 세가지는 전부 알고보면 인간의 노력으로 되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은혜로 되는 것이고 하나님이 주시는만큼 되는 것이지 인간이 노력한다고 다 되는게 아닌 겁니다. 하나님이 주신 만큼 받을 수 밖에 없는 것 이걸 첫째 기억하십시다.
두 번째는 이 나아만 대장은 그래가지고 크게 은혜 받았고 많이 받아서 아람 나라에서 왕보다도, 실제 왕은 왕이니까 왕자이지만은, 그 나라를 구원한 사람은 나아만 대장이니까 아람 나라 전국민의 인정을 다 받는 이런 나아만 대장이 되어있었습니다. 실력 있었고 큰 공을 세웠고 인정을 받는 나아만 대장이 되어있었지만은 이런 부족함 없는 모든 사람이 갈망하는 좋은 것을 다 가졌지만은, 000샘 나아만 대장이 어떤 사람이라고요? 다 가졌지만은 그 사람은 어떤 모습이라고요? 큰 용사나 문둥병자더라. 이걸 두 번째 기억하십시다. 천하 모든 인생은 다 그 사람이 이 세상에 어떤 것을 가져도 알고보니까 그 사람은 죽을 죄인이더라. 세계적인 재벌 그룹을 이루었어도 그 사람은 알고보니까 예수 밖에 있으면 죽을 죄인이더라. 역사에 위대한 공을 세워도 알고보니까 죽을 죄인이더라. 나아만은 그렇게 큰 공 세웠지만 나아만은 큰 용사지만은 저는 문둥병자더라. 부자지만은 죽을 죄인 문둥병자더라. 머리가 좋은 석학이지만은 예수 밖에 있으니까 문둥병자 죽을 죄인이더라. 인류에서 크게 이바지해서 노벨상을 받았지만은 알고보니까 문둥병자 죽을 죄인이더라. 그런데 이 말씀을 하고 오전에 분위기를 보고 제가 오후 예배 준비하면서 가만히 생각해보니까 세가지 큰 공적을 쌓아서 나라를 구원했다, 실력을 마련했다, 그 실력 가지고 나라에 큰 공을 세웠다, 인정을 받았다고 이런 설교를 하는데 우리 교인들 대부분의 분들이 보면 자기 아주 보잘 것 없는 습성 하나를 못 고쳐서 그것 때문에 수십년을 거기 종노릇한다고 멸시천대 사람들에게 사람 대접받지 못하는 그런 사람들이 많고, 그 정도는 넘어서도 겨우겨우 먹고사는 그 정도, 실력있다 그래봐야 그 가정에서 먹고사는 그 정도, 고만고만한 그런 서민 중에 서민들인 이런 우리들에게 이 말씀을 실력을 마련하고 공로를 말하고 인정을 말하니까 아무런 실감이 없는 것 같은데, 그래서 좀 탄식을 했습니다. 그러나 크고 작은 정도의 차이지 사람은 나름 나름대로 전부다 그런 면을 다 가지고 있다 그말입니다. 그래서 첫째는 세상 모든 것은, 이거는 세상뿐 아니고 신앙도 마찬가지입니다. 인간에게 오는, 피조물에게 오는 영과 육과 구원과 천국과 깨달음과 성령의 감화 감동과 모든 것 전부는 다 하나님이 주셔야 되는 것이지 인간이 가지고 싶다고 가지는 것이 아닙니다. 죄를 짓고 싶어 짓습니까? 죄를 안 짓고 싶으나 하나님이 죄 짓게 만들면 별 수 없이 죄를 짓는 겁니다. 그래서 어떤 인간들은, 어떤 참 안타까운 사람들은 나는 죄를 안 짓고 싶으나 하나님의 예정 속에 죄가 들어있어서 부득이하게 죄를 지었다고 그리 말하지만은 하나님께서는 ‘그 죄를 내가 죄를 짓도록 예정했는줄 네가 어떻게 알았느냐? 너는 모르지. 전체적으로 내가 이렇게 말하니까 그리 핑계를 대는 것이지. 네가 죄를 지었지. 네가 원치 않았는데 죄를 지었느냐? 네 깊은 속에 들어가보면 사람이 짓는 죄는 원죄 하나 빼놓고는 우리들 의지와 상관없이 아담이 대표로 지은 그 죄 원죄 하나 빼놓고는 사람의 모든 죄는 전부다 본죄고, 그 본죄는 다른 말로 말하면 무슨 죄겠습니까? 사람의 모든 죄는 본죈데, 그 본죄는 다른 말로 말하면 무슨 죕니까? 알고 짓는 죄를 무슨 죄라 합니까? 고범죄입니다. 허물이 있기는 있습니다. 정말 몰라서 짓고 있는 그 죄. 도리를 몰라 가지고 짓는 죄 외에는 전부다 고범죄입니다. 거의 대부분 예수 믿는 사람이 짓는 죄는 거의 다 고범죄다. 그 고범죄는 자기 자유 의지로 짓는 죕니다. 하나님께서 간섭할 수 없는 죄기 때문에 심판을 받게 되는 겁니다. 하나님이 주신 겁니다.
두 번째는, 어떤 인간이 어떤 세상에서 어떤 것을 마련해서 사람들에게 아무리 큰 공을 세우고 실력을 가졌고 위대하게 인정을 받는다 할지라도 그 사람이 만약에 예수 밖에 있다면, 예수 안에 있어도 말씀 믿음에서 떠났다면 그 사람은 문둥병자입니다. 큰 용사나 문둥병자더라. 아무리 실력을 가져도 죄 문제, 죽음 문제를 해결 못하면 그 사람은 문둥병자 죽을 죄인입니다. 그 이상이 아닙니다. 넘어가지 못합니다. 이걸 넘어간 사람은 천하에 아무도 없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도 만약에 믿음에서 떠나면 우리도 별 수 없는 문둥병자, 죽을 죄인 밖에 되지 않는 겁니다.
세 번째, 이 사실을 알아도 ‘나는 문둥병자입니다, 나는 죄인입니다, 영원한 멸망 속에 빠져있는 나입니다.’ 그 사실을 사람이 종교성 가지고 깨달아 알지라도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해결하는 길을 절대 없습니다. 나아만 대장도 그랬습니다. 문둥병자인줄 알았지만은, 그걸 고치기를 애썼지만은, 고통 받았고 괴로웠지만은, 자기 전재산 다 바쳐 고치고 싶었지만은 불가능 했습니다. 인간의 죄 문제, 인간의 죽음 문제는 예수님의 대속 외에는 해결되는 길이 없습니다. 요단강은 뭘 말합니까? 나아만 대장이 요단강에 몸을 씻었습니다. 요단강은 뭘 말하는가요? 죽음은 다른 말로 말하면 피를 말할 수도 있지요. 그래서 그게 정확한지 모르겠지만은 요단강에 몸을 씻은 것은 예수님의 대속의 보혈에 몸을 씻은거라 그렇게 해석하는 분도 있습니다. 틀리지 않았다고 생각됩니다. 요단강에 몸을 씻은 것은 예수님의 대속 보혈의 피에 씻은 것이다. 예수님의 보혈로만 구원은 받지 예수님의 피를 떠난 인간구원은 없습니다. 세상의 재물 가지고, 권력가지고, 명예 가지고, 실력가지고 인간의 죄 문제 죽음 문제는 결코 해결하지 못합니다. 우리는 상식인데, 이 상식을 모두 잊어버리고 사니까 모든 문제가 생겨지고 이걸 궁극에서 잡고 그다음 세상 모든 것을 상대하면, 그래서 고구마처럼 뿌리를 원줄기에 박아놓고 줄기가 뻗어나가면 그게 어디서도 그 원뿌리 박은 그것만 잊어버리지 않으면 어디 나가도 괜찮은데, 뿌리를 잊어버리고 나면은 찾아서 헤매기 되는 겁니다. 믿는 사람이 이 세가지, 첫째 모든 건 하나님이 주신 것이다. 두 번째 아무리 크고 좋고 많은 것을 가져도 죽을 죄인이다, 세 번째 이 세상 것 가지고는 죄 문제 죽음 문제는 결코 해결할 수 없다는 이 세가지를 가지고 세상 모든 것을 상대하면 그 사람은 세상의 주인이 되고, 이 세가지를 잊어버리고 세상을 상대하면 작은 것을 상대해도 그 사람은 그것에 종이 될 수 밖에 없는 겁니다. 이걸 첫째 말씀에서 기억을 하십시다.
그다음 두 번째, 나아만 집의 여종에서 첫째는 이 여종의 신분을 생각해 봐야 됩니다. 여종의 신분과 그 형편을 생각해 봐야 됩니다. 종이란 것은 노예란 뜻입니다. 노예는 우리가 잘 아는대로 사람이 아닙니다. 사람인데 사람이 아닙니다. 사람인데도 불구하고 사람 대접 대우를 못 받는 것이고 노예고, 소나 돼지나 도구처럼 취급 받는 그게 노예입니다. 우리 나라도 그랬습니다. 이거는 조금 역사 아는 사람들은 다 아는 상식입니다. 이거는 사람 대접을 못합니다. 그러니까 사람이기 때문에 대우를 한다면 가장 밑바닥 인생입니다. 사람들 발에 밟히는 멸시천대받는 가장 비참한 천한 신분이 바로 노예 신분 나아만 집에 여종의 신분이고 이 여종이 거기다가 자기 나라도 아니고 주변도 아니고 종이라도 그래도 자기 나라에서 주변사람들에게 좀 그리하면 덜 할 것인데, 원수 나라에 잡혀가서 원수 집안에서 종노릇 하니까 죽을 지경입니다. 그러니까 자기 신분이 노예인데다가 그 형편이 가만이 생각해보면 가장 불행한, 외롭고 두렵고 고통스럽고 원망스럽고 또 속에 악과 독만 가득 남았지만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이런 형편과 처지가 되어있는게 이 여인이 아니었겠는가, 이것도 맞습니까? 여종은 노예입니다. 그 노예로써 적국에 끌려갔으니까 노예로 끌려가서 종노릇 하고 있으니까 그 형편이, 그 여종의 일반적인 마음 상태, 심리상태와 형편이 어떠했겠는가? 날마다 눈물로 날을 새울 것이고 밥을 제대로 못 먹을 것이고 구석에 처박혀서 날마다 울기나 할 것이고 구박을 받아가지고 참 밟힐 것이고 잘못 하면, 그래서 한숨으로 탄식으로 눈물로 날이면 날마다 그렇게 하고, 차라리 죽는게 낫겠다고, 죽음보다 못한 그런 생활을 할 수 밖에 없는 그 형편이였고 입장이였고 처지가 여종의 형편입니다. 그런데 이 여종은 뭐가 있었습니까? 여종은 이런 신분이었고 이런 형편이었는데 그 여종이 뭘 가졌습니까? 믿음을 가졌고 신앙을 가졌습니다. 믿음은 하나님이고 신앙은 하나님인데 그 하나님을 향한 신앙을 가지되 그 신앙이 구름 잡는 신앙, 주관적인 신앙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정확한 바른 신앙관을 가졌고, 바른 신앙생활을 했습니다. 그래서 이 여종은 그런 신분임에도 불구하고 그런 형편임에도 불구하고 그는 하나님을 알아서 그분을 섬겼고 자기 형편에 힘껏 하나님을 섬겼고, 그 여종의 입장에서 종으로 잡혀간 그 종이 하나님을 섬기면 얼마나 섬기겠습니까? 연보 하겠습니까? 거기서 예배를 제대로 드리겠습니까? 기도는 자유롭게 했겠습니까? 그런데 그 여종 그 형편에서 하나님이 인정하실 수 있을만큼 하나님을 마음 속 진정 두려워했고 하나님을 먼저 믿었고 의지했고 바라봤고 두려워했고 그분 말씀에 순종했는데 그 생활이 다른 사람들은 잘 모르겠지요. 그런데 여종 자기 속에는, 그 여종 속에 지식적으로, 그 지식으로 인한 하나님과의 지식을 아는 그 지식대로 실행하므로 인한 성령의 역사, 그로 인해서 하나님과의 깊은 영교의 생활이 그 생활이 남모르게 그 속에 있었고, 그래서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그 위로가 요셉처럼, 여종에게는 하나님의 위로가 있었고 하나님의 보여주시는 증거가 있었고 함께하시는 그런 기쁨이 있었기 때문에 그런 신분과 그런 형편임에도 불구하고 이 여종은 조금도 주눅들지 않았고 외롭지 않았고 두려워 벌벌 떨지 않았고 울지 않았고, 거기서 침착하게 한편으로 온유하게 또 진실하게 성실하게 자기 할 수 있는 그 형편 거기서 일을 전부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므로 있는 생활을 다, 신앙생활을 했다 그말이지요. 했는데 그것을 하나님은 아시고 자기는 알고, 그래서 깊은 내면을 몰라도 그 여종이 하나님 모시고, 하나님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은 무엇인가요? 하나님을 모신 사람이 살면 그 모습은 무엇으로 나타납니까? 하나님은 빛이십니다. 그 빛을 모시고 사니까 그 생활이 빛으로 나타납니다. 그 사람의 깊은 내면은 모르는데, 빛인 하나님을 모시고 사니까 그 사람의 말 속에서 빛이 나오고, 그 사람의 언행 속에서 빛이 나오고, 생활 속에 빛이 나오고, 그 사람의 모든 인간관계 속에서 빛이 나오고, 나아만 대장은 별로 상대 안 했을 것이고 여주인이 심부름 시키면서 일을 시키면서 밥을 시키면서 설거지를 시키면서 빨래를 시키면서 집안 청소를 시키면서 가만히 보니까 뭐가 그리 좋은지 모르겠지만은 감사하기도 하는 것 같고, 얼굴은 온유함이 넘치고 진실하고 성실하고 또 믿을 수 있고 여유가 있고 부드럽고, 그러면서도 함부로 언행하지 않고 신중하고, 보니까 뭔가 다른 그것이 그 여종을 통해서 나타났을 것이다 그말입니다. 안 그렇겠습니까? 아무리 나아만 대장이 문둥병이 들어서 고치고 싶어 환장을 했어도, 일개 여종 천박한 그 여종의 말을 그 아내가 그렇게 쉽게 들을 수는 없는 겁니다. 일반 상식으로 안되는 겁니다. 그런데 그 아이가, 그 여종이 평소에 하는 말이 허언을 하지 않는다는 것을 이 여주인이 세월속에서 겪어봤다 그말입니다. 이 아이 말이면 헛말이 아니겠다, 믿을만 하다. 만약에 그 여종이 그냥 아무렇게나 된 그런 아인데 그 말 믿고 갔다가 안되서 수치당하면 그 여종은 목이 달아나버리고, 그런 일을 이런 실력 있는 사람들은 안 합니다. 들어보면 압니다. 그러니까 그 여종에게서 뭔가 좀 말에 신빙성이 있겠고 믿을만하고 그럴만하니까 그 아내가 남편한테 말했고 그 말 듣고 그 남편 나아만 대장도 평소에 그 여종을 눈 여겨 자주는 안 봤겠지만은 들었을 것이고 아니까 그러면 믿을만 하겠다, 임금에게 말했을 것이고, 그래서 움직였지 전혀 나타나는 그런 모습이 없는데 그렇게 될 수는 없다 그말입니다. 그러면 그 여종의 평소 생활, 이제 말씀드린대로 두려울 수 밖에 없는 환경에서 두려움이 전혀 보이질 않고, 외로워서 사람의 가장 큰 나이 많으면 노년에 꼭 있어야 될 세가지를 며칠전에 신문에 나왔던데, 그 중에 하나가 주변사람과의 관계라 그러지요 아마. 고독함이란 것은 그거는 치명적인 그런 외로움입니다. 잘못하면 그것 때문에 죽습니다. 그러니까 혼자 원수 나라 잡혀갔으니까 고독함, 외로움, 견딜 수 없는 고독, 고향 생각, 부모님 생각, 말할 수 없는 거지요. 기약도 없습니다. 3년만 고생하면 된다, 5년만 고생하면 된다 그게 아닙니다. 죽을때까지 종노릇입니다. 그런데 그런 외로움의 표도 안나고. 겁도 보니까 하룻강아지는 아닌 것 같은데 두려워하지도 않고. 말도 함부로 하지 않고 신중하고. 또 성실하고, 진실하고, 온유하고. 여러 가지를 살펴보니까 보통 예사 아이가 아니다. 그래서 그 말을 들었는데 그런 모든 것이 어디서 나왔는가? 그게 어디서 나왔다고요? 하나님이 그 밑에 원동이 되어있으니까 거기서 나오는 겁니다. 신앙의 사람들은 이런 모습이 되어가는게 정상입니다. 예수를 바로 믿으면, 바로 나아만의 여종같은 이런 모습이 만들어져야 됩니다. 이렇게 만들어지는데 싫어할 사람이 있습니까? 사람이 자기 대우는 자기가 만드는 것이고 자기 영광은 자기가 만드는 겁니다. 자기의 가치는 남이 만들어주지 않습니다. 자기 스스로 만드는 겁니다. 내 가치는 내가 만드는 겁니다. 실력있는 사람, 이 여종같은 이런 사람은 싫어할 사람이 아무도 없습니다. 다 좋아하고 서로 데려다 쓰려고 그러지요. 문제는 사람들이 이런 사실을 몰라서 안 하는 것이고 알아도 자기 속에 있는 주관과 선입적인 관념 때문에 못하는 것이고, 게을러서 못하는 것이고 자기 습성 때문에 못해서 안되는 것이지 하나님 모시고 그 분 말씀대로 하기만 하면 그 사람은 가정이면 가정, 교회면 교회 어디서든지 존귀한 사람이 될 수 밖에 없는 것이 성경입니다. 경험으로 그렇지 않습니까? 우리 눈에 보이기에 그렇지 않습니까? 다 곳곳에서 그렇게 사는 사람들은 다 귀하게 대접을 받고 있지 않습니까?
그래서 여기서 첫째 기억할 것, 두 번째에서, 신앙이란 것은, 신앙은 무엇이 신앙이냐? 신앙은 하나님을 향하는게 신앙입니다. 하나님을 향한 신앙은 신분을 초월합니다. 신앙은 모든 형편을 초월하는 것이 신앙이다 이걸 첫째 기억하십시다. 신앙은 모든 신분과 형편을 완전히 초월해 넘어서는게 신앙이다.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 앞에서 ‘나는 신분이 천해서 종이라서, 나는 노예라서, 머슴이라서, 나는 못배워서 무식해서, 나는 나이가 많아서 죽을 날이 가까워서 이 나이에 뭘 하겠습니까’ 그게 바로 한 달란트 받은 핑계입니다. 공부를 못해서 배우지 못해 그것도 핑계입니다. 이 여종도 그랬고 요셉도 그랬고, 사무엘은 세상 공부 하나도 안했습니다. 그래도 이스라엘에 가장 유력한 사사가 되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는 신앙이란 것은 신분도 형편도, 세상 모든 조건을 다 아득하게 초월하는게 신앙이다. 이 사실을 실제 믿고, 이대로 노력하는 것을 가리켜 신앙이라 그러고 이것이 우리가 가는 길입니다. 이걸 지식으로만 가지고 실제 안하기 때문에 안되는 겁니다. 그걸 가리켜 뭐라고 그럽니까? 이걸 지식은 가졌는데 안하는 것은 왜 안하느냐? 안하는 것이 바로 교만이고 그게 자기 주관입니다. 그래서 노래를 부르다시피 말씀드리는게 주관을 버려야 되고 그 주관을 주님 말씀하시기를,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첫째 뭐합니까? 자기를 부인하고. 그게 바로 자기입니다. 자기 생각, 자기 관념, 이걸 부인하지 않고는 이 걸음을 걸어갈 수 없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신앙이란 것은 신분을 초월한다. 모든 형편도 초월하는게 신앙이다.
그다음 두 번째, 이런 신앙의 사람이 되고 있으니까 자연스럽게 세월 속에 이 여종은 그 집안에서 소중한 사람이 되었을 겁니다, 안봐도. 처음에는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었으나 점점 세월 속에 하나님 모신 그 신앙이 빛으로 나타나니까 나아만 안주인에게, 나아만 그 집안에서 없어선 안될 보배가 점점 되어져 갔을 겁니다. 소중한 인물이 되었을 겁니다. 그러므로 그 관계도 좋아졌을 것이고, 그러다보니까 그게 아니라도 그랬겠지만은 나아만의 여종 속에 자기 주인이 원수 나라의 자기를 종으로 잡아온 원수지만은 그러나 그 여종 속에는 하나님을 향한 신앙으로 말미암은 인간 구원의 사랑이 그 속에는 없어지지 않았고 늘 자리잡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 주인이 사마리아에 계신 하나님의 선지자 앞에 계셨더면 좋았겠나이다. 그분이 우리 주인의 병을 고칠 것입니다 하고 그 주인의 그 문둥병에 대한, 문둥병으로 고통 받는 그 주인에 대한 마음, 그 사람을 구원하고 싶은 그 욕망이 그 속에 있는 것이고 그리 되면 결과는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나는 거니까, 그래서 두 번째 신앙은 인간 사랑과 하나님 영광 위한 노력이 필연적으로 나오게 되는 것이 신앙입니다. 예수 믿는 사람이 그 속에 아무리 잘 믿는다고 사람들에게 소문이 나고 그리 한다 할지라도 사람을 아끼고 사랑하는 인간 구원의 사랑과 욕망이 없다면 그거는 참 신앙이 아니고, 하나님 영광 위한 그런 노력이 없다면 참 신앙은 아닙니다. 하나님을 향한 신앙이 바로 되었으면 인간 구원의 욕망과 하나님 영광 위한 노력은 필연적으로 나오게 되어 있습니다. 이게 신앙입니다. 이런 말씀을 가지고 우리 자신을 돌아봐야 됩니다. 내가 신앙생활하는 나의 신앙은 과연 내 신분을 넘어서는 신앙생활 하고 있는가? 내 형편을 초월한 신앙을 가지고 있는가. 내 속에는 원수를 사랑할 수 있는 이런 사랑을 가지고, 인간을 사랑하는 사랑을 가지고 있는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그런 노력을 하고 있는가?
그다음 세 번째, 그래서 하나님의 역사는 하나님이 붙들고 쓰시는 역사는 사람의 신분을 따지지 않습니다. 그 사람의 유식하고 무식함을 따지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당신을 진실하게 믿고 의지하고 바라보고 순종하고 두려워하는 사람이면 누구든 당신이 붙들고 쓰시는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 앞에서는 그 누구도 핑계 대지 못합니다. 자기만 다 진정으로 드려서 성경이 말씀하신 하나님을 참으로 믿고 참 의지하고 두려워하고 순종하면은 하나님이 붙들고 쓰시는데는 ‘하나님께서 이 돌들로도 이스라엘 자손이 되게 하시리라’, 모세의 지팡이는 모세가 쓴 그 지팡이, 나무막대기입니다. 그 지팡이가 하나님의 종 모세 손에 들렸으니까 그 지팡이로 홍해 바다도 가르고 그 지팡이가 뱀도 되고 온갖 역사를 다했고, 아론이 가진 지팡이는 나뭇가지를 잘라서 만든 가공해서 만든 지팡입니다. 그 지팡이를 법궤에다 넣어놓으니까 거기서 뭐가 나왔습니까? 싹이 났습니다. 그 지팡이에 싹이 나고 뿌리가 내려서 열매가 맺었습니다. 죽은 것도 하나님과 연결되면 생명역사가 일어난다 그말이지요. 그러니까 하나님이 붙들고 쓰시면 어린 아이도 상관없고 불구자도 상관 없고 아무것도 못 배워도 상관없고 나이 많은 노인도 상관 없고 병석에 누운 환자도 상관이 없고 상관이 없습니다. 문제는 사람들이, 이것도 주관입니다. ‘지금 이 나이에 내가 뭘 하겠습니까?’ 연세 많은 분들한테 한번씩 만나뵈면 제가 꼭 그말합니다. 사람이 일 하면은 젊을 때는 몸으로 일을 합니다. 마음보다 머리보다 몸으로 하는게 더 많습니다. 그러나 어느정도 나이가 되면 그때부터는 젊은 시절에 활동하는 그 모든 것을 근거 삼아 가지고 몸보다는 머리로 마음으로 생각으로 하는 것이 훨씬 더 가치도 있고 귀하고 효력도 많이 나는 겁니다. 그러니까 나이 많다고, 이 나이에 뭘 하겠는가? 이 몸 가지고 뭘 하겠는가? 내가 뭘 하겠는가? 그게 전부 하나님 앞에 한편으로는 하나님과 자기를 모르는 교만한 말이 되고 그게 자기 주관이 되는 겁니다. 하나님은 진실하게 당신을 믿고 바라보고 의지하는 그 사람이면 누구든 상관이 없다는 겁니다. 이게 은밀하게 역사하시는 하나님이다 그말입니다. 이 사실을 가장 잘 나타내는 찬송이, 찬송가 18장입니다. 참 마음을 다하여서 주님을 따르면 길이 길이 나를 사랑하시는, 그게 그 속에 들어있습니다. 크게 두 번째까지 세가지씩 기억을 하십시다.
그다음 세 번째 오후에서, 나아만 대장이 있고 그다음 그 나아만 대장의 말을 들은 아람 나라 왕이 있습니다. 또 아람 나라 왕의 편지를 받고 나아만 대장을 맞이한 이스라엘 나라 왕이 있습니다. 이 세 사람이 있는데, 아람 나라는 세상입니다. 하나님이 없는 이방나라입니다. 그 나라에 왕은 말하자면 하나님 없는 나라의 왕이고 대장입니다. 이스라엘 나라는, 여기 사마리아라는 건 타락한 북쪽 이스라엘입니다, 남쪽 유다가 아니고. 타락한 북쪽 이스라엘이지만은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백성의 나라고 그 왕은 하나님 백성 나라의 왕입니다. 그런데 보니까 여종의 말을 듣고, 급하니까 그랬겠지만은, 또 직접 들었으니까 그럴수 있겠지만은 나아만 대장은 하나님을 모르는 이방인인데 여종의 말을 듣고 믿음을 가졌습니다. ‘우리 주인이 사마리아에 계신 하나님의 선지자 앞에 계셨으면 좋았겠나이다. 그가 문둥병을 고치리이다’ 그 말을 나아만 대장이 듣고 믿음을 가졌고 수긍 했습니다. 그래서 거기 가고 싶어서 가려고 왕에게 말하니까 그 왕도 거기 대해서 인정을 하고 믿음을 가지고, ‘내가 편지 써줄테니까 가라’ 보냈습니다. 그러면 이방인인 두 사람은 여종을 통해서 전한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믿음을 가졌습니다. 제한적이지만 믿음을 가졌습니다. 그런데 그 편지 받고 나아만을 영접한, 하나님 백성의 나라 이스라엘 왕은 그 편지 받고 어쨌습니까? 7절, ‘이스라엘 왕이 그 글을 읽고 자기 옷을 찢으며 가로되 내가 어찌 하나님이관대 능히 사람을 죽이며 살릴 수 있으랴’, 이 문둥병이 이런 병입니다. ‘저가 어찌하여 사람을 내게 보내어 그 문둥병을 고치라 하느냐’ 이거는 깊이 생각하고 저 왕이 틈을 타서 나로 더불어 전쟁해서 우리나라 치려하는 핑계거리, 시비거리 만드는 것이다 그렇게 받아드렸습니다. 문둥병 환자가 왔는데도. 이 이스라엘 왕은 나라의 본족속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 믿는 믿음은 전혀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믿음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여기서 또 정리해보면 멀리 떨어져있어도, 교회에서 때로는 참 복음에서 멀리 떨어져있어도, 늦게 받아도 하나님을 믿고 받아드리는 사람이 있을 수 있고, 첫째, 두 번째는 본 족속의 머리라도 교회안에서 왕이라도 목사라도 믿음이 없을 수가 있고 실패되는 수가 있다는 겁니다. 이렇게 두가지를 기억해보십시다. 그래서 아무리 교회에서 복음에서 멀리 떨어져 있어도, 멀리서 들려오는 그 복음을 듣고도 구원 얻고 성공하는 사람이, 구원 얻는 사람이, 믿음 있는 사람이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는 사실, 두 번째, 바로 본족속으로 그 자리 있어도 그 자리에서 왕이라도 하나님 백성 전체를 책임진 왕이라도 하나님에 대한 믿음은 완전히 불신으로 믿음 없는 사람으로 될 수가 있다는 겁니다. 예수님 당시에 복음에 가장 큰 원수가 누구라 볼 수 있습니까? 누굽니까? 복음에 가장 큰 원수는 예수님을 팔아먹은 가룟유다 아닌가요? 그 가룟유다가 로마 사람입니까? 누굽니까? 유대인입니다. 예수님의 제자입니다. 그 밑에서 예수님 팔아먹은 인간도 나왔습니다. 사도바울은 원래 멀리 떨어져있었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 잡아죽이던 원수입니다. 그런데 사도바울도 됐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소속이 중요한데, 노선이란 것은 생명보다 중요함에도 불구하고 그 노선 안에 있으면 물론 기본적인 받는 복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만 믿고 자칫 잘못하면 자기 구원에 큰 손해 보기가 대단히 쉽다는 것을 기억을 해야 됩니다. 멀리 있어도 구원 받는 사람이 있을 수 있고, 많진 않습니다, 그래서 소속이 중요하고 좋습니다. 그러나 그 안에 있어도 이스라엘 왕처럼, 가룟유다처럼, 예수님 팔아먹는 것처럼 하나님 대한 믿음은 털끝 만큼도 없었던 이 왕처럼 이런 왕도 될 수가 있는 겁니다. 그래서 편지를 받아가지고는 옷을 잡아 찢고 기절초풍을 해버렸습니다. 이게 그 나라 왕입니다. 그런데 하나 더 비교할 것은 이 이스라엘 왕이 평소에는 하나님의 선지자 알기를, 하나님 알기를 제 어른들 표현에 발톱 사이 때 만큼도 안 여겼습니다. 이 왕이 하나님의 백성의 대가리 되는 왕이 하나님 알기를, 하나님 종들 알기를 제 발톱 사이 때만큼도 안 여겼습니다. 그렇게 간 큰 인간이, 하나님 없는 이방나라에 대장이 오니까 죽어버렸습니다, 겁이 나서. 그래서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은, 하나님을 두려워할 줄 모르는 사람은 뭘 두려워합니까? 피조물을 두려워할 수 밖에 없는 겁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사람은 피조물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은 피조물 전부는 그에게 상전이 되고 제 머리가 되기 때문에 두려울 수 밖에 없는 겁니다. 이것이 처음에 말씀드린 세가지하고 연관이 될 수 있습니다. 모든 것은 하나님이 주시는 것이다. 그분에게서 나오는 은혜라야 된다는 사실을 깨닫고, 알고나면 세상은 전부 그의 이용물이 되고 밥이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으로부터 모든 것이 나온다는 그 사실을 깨닫지 못하는 사람은 세상은 전부 그의 상전이고 그는 전부 세상의 종입니다. 뭐 하나도 그는 넘어가지 못합니다. 그런 세상이 되고 마는 겁니다.
이렇게 세가지를 본문에서, 또 여기서 기억을 하고, 간단하게 네 번째 나아만의 문둥병 나은 여기서는 생각해보면 이 나아만이 왕이 옷을 찢었다는 말을 엘리사가 듣고 사람을 보내서 어찌하여 왕은 옷을 찢었나이까. 그 사람을 나한테로 보내십시오. 그러니까 왕이 좋다고 짐을 벗어서 얼른 보냈습니다. 짐을 벗었다고 얼른 보내서, 보내니까 나아만 대장이 부하들 거느리고 엘리사 집 대문에 왔습니다. 속으로 생각할 때, 자기가 그래도 대국에 일등 공신이니까 비록 치료받는 처지지만은, 그래도 위치가 있고 입장이 있으니까 나와서 정중하게 맞이하고 인사하고 또 아주 거창하게 뭔가 판을 벌여서 상처에 손을 대가지고 기도하고 안수하고 그런 격식을 갖춰서 그렇게 자기 병을 치료할 줄로 그렇게 생각을 하고 왔는데 그 생각이 전부 자기의 주관이다 말이죠. 막상 가보니까 하나님의 선지자란 사람, 병 고칠 사람은 얼굴도 안 보입니다. 얼굴도 안 보이고 심부름꾼이 하나 나와서 들어올 것 없고 요단강물에 가서 일곱 번 몸을 씻고 가면 된다. 그러니까 분하고 노해서 말이 많았었지요. 생각이 많았고. 그 나아만 대장에게 병을 고치러 온 사람이 엘리사가 병 고치는 말 해줬는데 그 말이 제대로 들리지 아니하고 너무 시쁘게 들린 이유가 첫째는 자기 속에 있는 교만 때문입니다. 나와서 영접해야 되고, 자기 생각대로 뭘 해야 되는데, 자기가 그런 사람인데, 그러니까 자기를 몰랐고 대장이면 대장이지, 그것도 그러지 않습니까? 요즘은 많이 고쳐졌지요. 병원에 가면 의사들이 나이 많은 할머니 할아버지들한테 말 공손히 합니까? 바로 된 의사들은 안 그런데 왠만한 의사들은 가면은 아무리 나이 많아도 반말합니다. 말 툭툭 던지고. 병 고치러 왔는데 병을 고쳐주는 의사니까 반말하다시피 그렇게 해버립니다. 그렇지만은 이때는 시대적으로 보면 의사가 그리 잘 한거 아닌데, 자기는 대국이고 대국의 대장이고 소국의 선지자니까 그리 알았지만은 실상을 몰랐다 그말이지요. 자기를 바로 몰랐고 하나님을 바로 몰랐습니다. 교만, 또 자기 생각 자기 주관 자기대로 판단하는 겁니다. 이거 굉장히 중요합니다. 사람들 인간관계에서 많이 피곤하고 힘드는 것이 사람관계에서 모든 사람을 모든 일을 다른 사람 입장과 전체 형편을 가지고 종합적으로 판단하지 아니하고 자기 생각대로 생각하는 겁니다. 자기 인식대로. 자기 주관입니다. 그러면 다른 사람은 안 그런데 자기 생각대로 판단하니까 설명도 안되고 해명도 안되고 대화가 안되니까 대책이 없습니다. 참 힘들고 피곤한. 그런 사람들이 주변에 있으면 많은 사람이 힘들고 피곤하게 됩니다. 그게 자기입니다. 그 주관을 부인하는 것이 성경인데 그게 그렇게 어렵습니다. 나아만의 생각에, 병을 고치려면 상처도 봐야 될 것이고 기도를 하던지 해야될건데 그냥 심부름꾼 하나 보내가지고 요단강물에 일곱 번 씻고 가라 하니까 말이 되는 소리를 해야되지요. 그러니까 자기 주관하고 완전히 다르니까 못 받아드리는 겁니다. 교만이 있으니까, 주관이 있으니까 받아드리지 못하는 겁니다. 거기다가 하나 더하면은 이 사람은 세상 실력이 뛰어나서 세상 실력이 뛰어나다 말은, 그만큼 자기라는 사람이 그 사람 자체가 그렇게 연단이 되어있다는 뜻입니다. 그런 사람이 되어있으니까 그 사람은 뭐든지 할 수 있는 사람이고 해왔었습니다. 그래서 세상에서 나라도 구했고 큰 인정받은 그런 사람, 그런 위치에 섰습니다. 험난한 일, 어려운 일들을 수도없이 헤쳐나와서 이루었다 그말이죠. 그런데 그 모든 것 전부다를 보태도 문둥병은 못 고쳤거든요. 자기가 알고 있는대로 힘든 일 어려운 일 복잡한 일 나라를 구한 일까지 한 나아만인데, 그런 나라 구한 그 일도 문둥병 못 고쳤습니다. 그런데 엘리사가 시키는 문둥병 치료 방법이 뭐하라고요? 요단강물에 가서 일곱 번 씻으라. 말이 되는 소립니까? 너무 너무 시쁘게 보입니다. 가찮게 보이는 겁니다. 너무 쉽게 보이니까 무시해버린 겁니다. 그래서 세상 사람들 중에서 잘난 사람들, 똑똑한 사람들, 의지 강한 사람들이 예수 믿는 복음을 못 받아들이는 이유 중에 큰 이유가 바로 이면 때문입니다. 예수 믿어 천국 간다고? 천국 있다고? 영생을 얻는다고? 말이 되는 소릴 해야지. 믿으면 천국 간다고? 돈 천만원 한달에, 한달에 천만원 받는 사람이 되려고 해보지. 얼마나 힘이 들고 노력해야 되는데. 우리나라, 세계는 고사하고 아시아는 그냥 두고, 대한민국에서 어떤 방면으로 1등 한번 하려 그래보지. 얼마나 많은, 피눈물 나는 노력이 들어가야되는데, 그런데 영생을 얻는데 믿으면 천국간다고? 말이 되는 소릴 해야지. 그래서 안 믿습니다, 그 사람들은. 너무 너무 똑똑하고 잘난 사람들인데 제 꾀에 제가 속는 겁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은혜라 하지 않느냐. 그러기 때문에 그 은혜는 하나님께서 당신이 택한 백성들한테 주시는 것이지 아무한테나 주지 않습니다. 인간이 받고 싶다고 받는게 아니다 그말이지요. 그래서 구원은 전부 하나님 한분에게 다 나오는 겁니다. 이렇게 해가지고 나아만은 받아들이지 못했습니다. 교만과 무지 때문에, 세상 실력이 너무 뛰어나서 그래서 받아들이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일단 부하의 말을 듣고 잠시라도 교만을 접었습니다. 자기 주관을 접었습니다. 사람이 주관이 강하면, 주관이 강한 사람을 다른 말로 뭐라 합니까? 자기가 아는 것이 전부라는 사람을 주관이 강하다 그럽니다. 자기가 아는 것이 전부라고 생각하는 사람을 뭐라 그럽니까? 우물 안에 개구리라 그럽니다. 그래서 주관이 강하면 사람이 무지하게 되고 무식하게 됩니다. 넓은 걸 보지 못합니다. 객관을 받아들이지 못하면, 주관에 갇히면 이 세상은 주관보다 객관이 비교 못할만큼 크고 많습니다. 대아를 가리켜 객관이라 그러고 소아를 주관이라 그럽니다. 나는 작은 나 하나밖에 없고 내 객관은 전부입니다, 하나님까지 포함하면. 그러기 때문에 주관을 부인하고 객관을 받아드려야 사람이 넓어지는 것이고 언덕을 떠나야 하나님의 넓고 큰 은혜 바다로 마음껏 달릴 수가 있는 겁니다. 일단 이 나아만이 부인했습니다. 교만을 꺾고, 임시지만은 참 목 마른 사람이 우물 판다고, 말이 안되는 소리지만은 아니꼽고 더럽지만은 한번 해보자 하고 그 말이 틀린 말 아니니까, 부하들의 말이 ‘어려운 걸 시켜도 할건데 이렇게 쉬운 걸 시켰는데 해보고 안되면 그다음에 가서 때려부수든지 없애버리던지 하지, 안 해봤으니까 할말이 없잖습니까?’ ‘니 말이 맞다’ 그렇게 하려면 교만을 부인하고 자기 주관을 꺾어내야 되지요. 부인해야 되지요. 꺾고 난 다음에 가서 일단 순종을 하니까 어찌 됐습니까? 순종하니까 결과는 말대로 됐거든요. 하고나니까 뭐가 깨집니까? 교만이 깨지고, 주관이 다 깨져버렸지요. ‘아 내가 아는 세상이 전부가 아니구나. 내가 알고 있는,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 말씀은 그 말씀대로 살아봐야 아는 겁니다. 실행하지 않는 사람은 결코 말씀 진리를 깨닫지 못합니다. 그 말씀대로 살아봐야, 먹어봐야 맛을 아는 겁니다. 그러면 내가 알고 있는 세계가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는데, 많은 사람이 얕은 물가에서 저 큰 은혜 바다 가려다가, 뭘 보고 못 간다고요? 찰싹 거리는 작은 파도 보고, 내가 말씀 순종하다 직장에서 떨어질라, 사업 실패할라, 남편에게 아내에게 미움 당할라, 집안에서 쫓겨날라, 뭣 할라, 찰싹거리는 세상 이런 것보고 겁이 나서 못간다 그럽니다. 어제 신문에 보니까 그것도 하나 참고할게 있던데, 어느 독일에 어떤 젊은 사람이 만사 재껴놓고 돈 몇십만원 가지고 세계 곳곳에 여행을 가니까 여행 다니는 가는 곳이 전부다 일거리고 자기 만드는 곳이고 전부다 기회더랍니다. 그런게 하나에 참고가 되겠더라 그말이지요. 사람이 신앙생활에 매진할 때, 기독교는 모험의 도가 아니기 때문에 모험적으로 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주시는 형편이 그렇게 될 때는, 일단 해보는 겁니다. 직장에 떨어질까 겁이나서, 사업 망할까 싶어서, 쫓겨날까 싶어서, 가정에서 미움 당할까 싶어서, 뭐할까 싶어서 겁이 나서 못하는 것은 신앙의 자세는 아니라는 겁니다. 전부 거기 걸려서 못하는 겁니다. 일단 순종해보니까 결과가 환하게 나타나니까 할 말이 없지요. 교만이 깨졌고, 주관이 깨졌고, 악독도 다 깨져버렸습니다. 그리고나서, 그래서 순종의 결과는, 그래서 나아만 대장이 엘리사의 하나님 통한 하나님 말씀에 순종의 결과는 요단강물, 그 요단강물은 자기가 그때까지 쌓아온 아람 나라의 전부보다도 순종 한번으로 가져온 요단강물이 그에게는 더 귀했던 것처럼, 우리 믿는 사람에게 하나님 말씀 순종은 온 세상 전부보다 더 귀한 것이 말씀 순종이다, 지극한 보배다 하는 겁니다.
시간이 갔는데 간단하게 그다음에 하나만 더 말씀드리는데, 하나는 놔두고. 이 나아만이 병 고침을 받고 난다음에 엘리사를 다시 찾아갔습니다. 찾아가서 이제는 그 앞에 엎드리지 않고 섰지만은, 서서 가로되, 그다음에는 이제 말하기를 ‘내가 이제 이스라엘 외에는 온 천하에 신이 없는줄 아나이다’ 이제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받아드렸고, ‘청컨대 당신의 종에게’, 이제 종이 됐습니다. 뻣뻣하게 갔지만은 순종해보고 나니까 종이 됐습니다. ‘종에게 예물을 받으소서’ 하고 엘리사에게 많은 선물을 갖다 안겼습니다. 고침 받았으니 내 마음 같으면 우리 나라도 갖다드리고 싶은데 내가 못하니까 이거라도 받으십시오 하고 많은 예물을 갖다드리는 것이 나아만 대장의 바른 사은이 자세고 믿음입니다. 그래서 나아만 대장은 순종해보므로 믿음을 가졌습니다. 믿음 가졌지만은 엘리사는 결코 받지 않았습니다. 엘리사가 무조건 안 받는 것 아닙니다. 받아야 될 것은 얼마든지 받습니다. 그러나 받지 말아야 될 것은 억만금이라도 안 받는 겁니다. 한사코 거부하니까, 사양하니까 나아만이 말하기를, ‘그러면 청하건데 노새 두 바리에 실을 이 나라의 흙을 좀 주십시오’. 그러면 그 흙을 가지고 내가 돌아가 제단을 쌓고 번제든 다른 제사든지 하나님 앞에만 제사를 드리겠나이다. 하나님만 섬기겠나이다 여기까지 나아만의 믿음이 자라갔고 생겨졌습니다. 나아만이 구원을 받은 겁니다. 그런데 그다음 조건이 하나 붙습니다. 다만 ‘오직 한가지 일이 있사오니’, 두가지도 아니고 한 가지입니다. ‘여호와께서 당신의 종을 사유하시기를 원하나이다 곧 내 주인께서 림몬의 당, 우상입니다, 림몬의 당에 들어가 거기서 숭배하며 내 손을 의지하매’, 그러니까 아람 나라 왕이 림몬이라는 그 우상 섬기는 거기 그 우상을 의지해서 나아만 대장을 믿고 의지하니까 아람 나라 왕이 우상 섬기러 들어갈 때 나아만 대장을 데려 들어가서 같이 절을 한다 그말이지요. 그때는 차마 내가 피하지 못하니까 이것만 용서해주옵소서. 그리 할때 엘리사가 ‘우상이니까 안된다’ 그랬습니까?
뭐라 그랬습니까? ‘평안히 가라’고 가타부타 말 없이 보냈습니다. 그게 나아만 대장의 한계입니다. 그래서 나아만 대장은 기본구원적으로 말하면 구원을 받은 사람이고, 건설구원은 이루지 못한 사람이라. 받은 구원을 나아만 대장은 자기가 이미 가지고 있는 이 세상을 끊지 못하고 버리지 못했기 때문에 구원의 최종은 도달하지 못한 사람이 나아만 대장이라 그리 볼 수가 있는 것이고, 그럴때 엘리사가 평안히 가라고 말한 것은 건설구원은, 기본구원은 하나님의 일방적인 강제적인 은혜지만은, 건설구원은 인간의 자유의지로 만드는 것이기 때문에 엘리사가 거기 침범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알아서 해라, 평안히 가라’고 보낸 겁니다.
오늘 오후에 다섯가지를 간단하게 설명을 드렸는데 하나 하나 좀 생각하시고, 중요한 것은 이 말씀을 가지고 우리 자신, 각자 자기 자신을 돌아봐야 됩니다. 돌아보고, 어쨌든 신앙이란 것은 하나님 한분이 전부라는 것을 늘 기억을 하고 잊지 말아야 됩니다.
다같이 통성으로 기도드리겠습니다.
첫 번째에서 세가지, 두 번째 세가지, 또 세 번째에도 세가지, 네 번째에도 또 몇가지 이렇게 하나 하나 정리하면서 기억을 하고, 자꾸 좀 생각해서 나는 어떻게 살아왔는가를 좀 돌아보십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