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907-주후(창12:1-5)
믿음으로 가는 길2014-09-12조회 290추천 23
본문: 창12:1-5
제목: 믿음으로 가는 길
요점:
1. 세상이라는 환경
- 하나님이 만드신 곳, 구원의 장소
- 기독교는 염세 반세가 아님
- 결혼, 조혼이 능사는 아니고 만혼이 죄도 아니지만 조혼이 유익
- 하나님이 안 주시면 기다리는 수밖에 없는 것
- 출산 역시 다산주의는 아니지만 하나님이 주시는 대로, 안 주시면 어쩔 수 없는 것
2. 신앙은 ‘믿음’으로 가는 길
1)일반적인 생활
- 사람의 일반적인 생활(보편적, 문화, 유행, 시대의 조류, 흐름)
- 세월 속에 인식되고 습성된, 세월 환경 속에서 젖어들고 심신에 익어진, 생활
- 실례를 들면(자녀관-저출산 문제, 교육관, 결혼관, 직업관...)
- 세상의 모든 사람, 부름 받기 전 아브람, 신앙의 일반 모습)
2)믿음으로 가는 길
- 일반적인 생활 아닌 믿음으로 사는 길
- 믿음은 순종, 하나님 말씀에 순종, 말씀대로 사는 생활
- 실례를 들면(자녀관-주시는 대로, 교육관-신앙에 손해되지 않는 범위,
결혼관-가능하면 조혼, 최대한 간소하게, 직업관-신앙생활 중심으로)
3. 믿음으로 가는 길의 애로
1)믿음으로 가는 길의 애로
- 일반적인 생활의 편리, 안정(시대의 흐름, 세상적 순리이기 때문에)
- 믿음으로 사는 생활의 애로(역항적, 역류적인 면이 있으니)
2)믿음으로 사는 생활이 어려운 이유
①주관 문제(자기 내면)
- 자기 속의 기존 지식, 선입적 관념, 인식
- 세월 속에 젖어들고 익숙해진 습성
②객관 문제(대외 관계)
- 일반 모두의 인식, 관념, 지식, 상식 통계에 비합리
- 세상 환경의 여건, 제도, 조직, 문화에 비합리
③해결은 순종
- 자기 주관과 습성을 다 부인하고
- 세상 지식 인식 통계 상식 모든 것을 부인하고(참고로만)
- 오직 순종 하나로만 나아가야만 해결, 무조건 순종하고 봐야
4. 믿음의 길을 어렵게 하신 목적
1)하나님의 존재
- 하나님은 자존하신 완전자, 전지 전능자
- 우리를 사랑하시는 아버지
- 가장 자비하시고 긍휼히 여기시는 자
- 그런데 왜?
2)믿음의 길을 어렵게 하신 목적
- 하나님 없는, 부인하는 세상에서
- 하나님 말씀 믿음 순종을 통해서
- 하나님 한 분이면 다 된다는 것을 알게 하시고
- 하나님 한 분만으로 전부 삼는 우리를 만드시기 위해
----------------------------------------------------
원문설교
20140907 주후
창세기 12:1-5
아브람이 12장에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기전까지 하란에서 살았습니다. 원래 갈대아 우르라는 곳에서 살다가 아버지 대라가 이사를 해서 가나안 땅에 가려고 가다가 하란까지 와서 하란에서 아버지는 죽고 또 아브람의 그 동생도 죽고, 그래서 아브람이 그 조카 롯하고 가족들이 있는 상태에서 하나님께서 하란에서 아브람을 부르셔서 가나안 땅으로 가라고 명령을 하신 겁니다. 그러면 그때까지 아브람이 살던 그 환경은 지역적인 장소적인 그런 걸 떠나서 환경, 그 하란이라는 그 장소는 얼마나 살았는지 모르겠지만은 갈대아 우르에서 오래 살았고, 하란에서 살다가 거기서 이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는데, 그 사는 그 환경이 땅도 땅이지만은 그 자기를 둘러싼 인맥이라는 그 주변 환경, 주변 사람들, 사람들과의 관계 그런 것들이 대단히 중요하겠고, 오랜 세월 속에 그게 묻혀 살면서 그 속에서 하나님을 섬기되 일반적인 섬김을 가졌다고 했습니다. 사람이 각자가 자기가 보는 그 기준에 따라서 관점에 따라서 판단은 달라지게 되어 있지만은 이제 문제는 최종적으로 어느 것이 옳으냐 하는 것이고, 성경적으로 또 하나님께서 어떻게 판단하시느냐가 최후적으로 가장 중요한 문제가 되어지겠습니다.
아브람이 하란에서 신앙생활하던 것은 일반적이고 보편적인 신앙이었다. 아브람이 이삭을 결혼시킬때, 자기 집안에 있는 아주 신실한 모든 걸 책임진 그 종에게 자기 고향에 가서 이삭의 아내 될 사람을 찾아서 데려오라 그랬습니다. 가서 데려오되, 만약에 그 종이 묻기를 여자가 오려하지 않으면 어떻게 하리이까. 그러면 내 주인의 아들 이삭을 데리고 그 주인 어른의 고향으로 돌아가리이까 할때 아브람이 안오면 그거는 너와 상관이 없으니까 다만 내 아들 데리고 고향으로 돌아가지는 말아라고 했습니다. 그곳이 하란이고 하나님 섬기던 거긴데, 그러나 섬기되 일반적인 신앙으로 하나님 섬기던 곳이라 그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신앙생활을 돌아보면 일반적인 그런 신앙으로 하나님을 섬기는 신앙생활이 많이 있습니다. 이게 전체적인 것도 있고 부분적인 것도 있습니다. 엘리야가 엘리사를 부를 때, 제일 처음에 길갈에서 불렀습니다. 여호와께서 나를 벧엘로 보내시느니라. 그럴때 길갈은 하나님의 은혜로 만나를 가장 처음 먹은 장소가 길갈이고, 그 만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양식입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양식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받은 것들입니다. 하나님 섬기는 곳입니다. 하지만 거기서 떠나서 벧엘로 갔고, 길갈에서 있었고 남아있는 사람도 많이 있습니다. 그런데 엘리야는 벧엘에 갔고 벧엘에 가니까 선지 생도 오십인이 있었습니다. 선지자가 데려고 가던 아주 유명한 특출한 믿음의 용사들이 거기 많이 있었습니다. 엘리야가 또 엘리사에게 말하기를, ‘너는 여기 머물러라. 여기도 하나님 섬기는 곳이고’, 벧엘의 특징은 아브람이 가나안 땅에 들어와서 처음으로 제단을 쌓은 곳으로 하나님 섬기는 곳이 벧엘입니다. 하나님 없는 곳이 아니고 신앙 생활 안하는 곳이 아닙니다. 벧엘인데, 그 벧엘에 선지 생도들도 있었고, 하나님을 잘 섬기는 곳입니다. 장소를 말하나 오늘 우리로 말하면 우리의 신앙의 형편 정도를 말하고 있는 겁니다. 벧엘에서 엘리야가 다시 엘리사에게 묻기를, ‘청컨대 너는 여기 머물러라. 여호와께서 나를 (어디로 보내신다고요?) 여리고로 보내시느니라.’ 벧엘만 있어도 하나님 잘 섬기는 곳인데, 거기 머물러 만족하지 아니하고 다시 여리고를 향해서 나아갔습니다. 그럴때 엘리사가, 엘리야는 만류했지만은 엘리사는 자원해서 ‘여호와의 사심과 당신의 혼의 삶을 가리켜 맹세하노니 내가 당신을 떠나지 아니하겠나이다’ 자유의지로 따라갔고 그 자유의지를 엘리야는 꺽지 않았습니다. 기어코 내가 가는 길이 힘드니까 따라오지 말아라고 꺽어 눌러놓지 않았습니다. 내가 가는 길은 나의 길이고, 너에게는 너의 길이 있을테니까 내가 가는 길이라 하여 무조건 따라오지 말고 너는 여기서 머물러서 있는 것이 어떻겠느냐? 하고 엘리사 정도의 신앙으로 맞추려했지만은 엘리사는 자기가 받은게 있으니까 ‘따라가겠나이다.’ 그래서 따라가려할 때 자원해서 목숨 걸고 따라오겠다는 걸 말리는 것은 자유의지를 꺾는 것이기 때문에 말릴 수 없는 겁니다. 안 꺾었습니다. ‘그러면 가자.’ 여리고에 갔습니다. 여리고는 어떤 곳입니까? 여리고는 이스라엘이 여리고 성을 무너뜨릴때 하나님의 능력으로 권능으로 함락시킨 성이 여리고 성입니다. 하나님의 능력의 역사가, (000샘 오전에는 똘망똘망하더니 오후에는 눈이 가물가물하네?) 능력의 역사가 함께 하신 곳이 여리고입니다. 초자연의 능력의 은혜를 권능을 받은 그런 종들이 있는 곳이 여리고입니다. 오늘 우리 신앙들은 일반적으로 어디가 많겠습니까? 오늘 우리들의 신앙의 보편적인 것은 어디가 가장, 길갈 벧엘 여리고 중에서 어디가 가장 많습니까? 벧엘 신앙이 거의 대부분입니다, 벧엘 신앙. 우리들은 거의 다 벧엘 신앙에 머무르고 있습니다. 벧엘에서 더 나아간 것이 여리고입니다. 여리고까지 갔는데 거기는 하나님의 능력을 권능을 받은 종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그런 신앙입니다. 거기 갔는데, 거기서 엘리야가 하나님의 영감 인도를 따라서 여호와께서 나를 요단으로 보내신다, 요단은, 요단강의 의미는 뭡니까? 요단강은 죽음이고, 요단강 너머는 천국인데, 죽음을 넘어가는 겁니다. 나를 죽음 너머까지 부르신다, 그럴때 엘리사가 또 따라갔습니다. 그러면 가자. 그게 뭐냐하면, 신앙이란 것은 같이 믿어도 일반적이고 보편적인 신앙이 있고, 그 위에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말하자면 아브람이 하란에서 창세기 12장에 출발하는 것 같은 이런 단계로 들어가고 나아가고 바꾸어지는 변환의 이런 신앙세계가 단계가 있다는 것을 말씀을 드리는 겁니다. 이걸 세상적으로 하나 예를 든 것이 오전에 많이 말씀드린게 이 세상에 안 믿는 사람들과 믿는 사람 생활이 같을 수가 없습니다. 안 믿는 사람들은 이 세상이 전부고 세상이 그들의 목적이고 목표고 그게 전부기 때문에 그리 살 수 밖에 없는데, 이것도 가만히 생각해보면 세상이란 것은 이 세상은 하나님이 주신 세상을 가만히 보면 사람들이 알고 있는 실질적인 세상은 그 범위가 어디까지입니까? 사람들이 알고있는 사람들의 모든 노력과 이런 실질적인 인간의 영향력이 실질적으로 미치는 그 세계가 어디까지입니까? 우주 전체를 두고 말하면 지구 땅덩어리 안이고, 기껏해야 달이고 화성인데 이거는 아주 미약하게 미치는 것이, 영향을 못 미친다 그리 볼 수 있고, 이 지구안에서 인간이 주인으로 살고 영향 미치는데 지구란 것은 우주 전체를 두고 보면 지구는 우주 전체에 우주가 이 예배당만하다면 지구란 것은 예배당 안에 있는 눈에 보이지 않는 먼지 하나만큼도 안되는 게 지구입니다. 그만큼 인간의 세상이라는 울타리 안에, 물질계라는 울타리, 하나님이 인간에게 주신 물질계라는 울타리 안에서도 인간이 아는 세상이란 것은 지구욕이 전부고 그냥 생각으로 추측 추론으로 우주를 알지만은 그 우주란 것은 광대한데 인간의 영향력은 조금도 거의 미치지를 못하고 있는 것이고, 그런데 그 우주가 넓고 넓기를 무한에 가까울만큼 수도 많고 굉장히 광활하게 넓고 광대한데 그 우주 너머에 영계라는 것은 말 그대로 영원무궁한 무한한 세계가 그 너머 있고, 그 영계 너머에는 뭐가 있습니까? 영계 너머는 아무 것도 없습니까? 영계 너머에는 하나님이 계시지요.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이 세상이란 울타리, 지구 밖에 우주까지도 좀 한번씩 명상을 해보고 그 너머 영계를 우리가 알 수 없지만은 영계라는 세계에 얼마나 광대한 것을 생각해보고 그 너머 계시는 하나님을 생각하는 것이 우리 신앙 세계입니다. 인간이 사는 세상이란 것은 알고보면 그런 것인데, 그런데 6천년 인간 역사에 수많은 전인류, 수천억이 넘는 인간들이 전부다 이 세상이라는 지구라는 좁은 그 범위, 세상이라는 물질계 그 안에서 이리저리하다가 그 안에 삼켜가지고 다 그 속에 살다가 그것의 사람이 되어가지고 이 세상을 살다가 떠난 것이 모든 전인류라. 신앙의 사람을 제외하고는 전부다 그런 겁니다. 그런데 그런 세상을 보면은 그 세상이 시대시대마다 또 지역 지역마다 그 시대 사는 사람들의 모든 생애를, 삶을, 생활을 전부 일반적으로 이끌고 나가는, 주도해나가는 전체적인 흐름이 있다는 거죠, 흐름. 시대의 조류라 그럽니다. 흐름. 이게 다른 말로 말하면 문화고 유행이라는 것이고 하나의 풍습이라는 것이고 제도라는 것이고 조직이라는 겁니다. 그리고 이것이 그런 것들이 사람 속에 머릿속에 들어갔을때 인식이라 그러고 상식이라 그러고 선입적인 관념이라 그렇게 말을 하는 겁니다. 그런 것들이 시대시대마다 다 자리잡고 있고, 사람들이란 것은 그 시대에 태어나서 그 시대 속에 살고 살다보면 그 시대 사람이 되고 그 시대 녹아들고 젖어들고 그 시대에 익숙해지고 그 시대에 사람이 되어지게 되어있는 겁니다. 그래서 예를 들면, 자녀를 낳으면 어떻게 하느냐? 시대 시대마다 자녀 낳는 숫자가 틀리고, 그 자녀를 교육시키는 교육이 시대마다 다 다르고, 옛날에 여인들은 우리나라 구한말 대한제국 그때까지만 해도 우리나라에 여성으로서 공부한 사람은 손에 꼽을만큼 귀했습니다. 그래서 아마 여성박사 1호는 지금도 아마 역사에 이름이 남아있을걸요? 여성 의사 1호도 그럴 것이고. 뭐든지 처음엔 다 그렇지만은. 불과 100년전입니다. 불과 100년전, 여기 연세 많으신 분들 태어날 어릴때 그 당시 그때만 해도 이 시대는 여자는 학교를 안보냈고, 밖에 돌아다니면 안된다 그러고, 속담이 여반들한테 대단히 죄송하지만은, 암탉이 울면 집안이 망한다고, 여자 목소리가 크면 집안 망한다는게 그게 유교식 조선시대 우리나라 불과 100년전에 사람들의 상식입니다, 인식. 여자들은 남자에 존속되고 남존여비 사상이고 여자는 남자가 쥐어박으면 쥐어박히고 때리면 맞고 그렇게 하는게 여자지 목소리 내는게 아니었습니다. 그게 특별한 사람만 그런게 아니고 특정 지역만 그런 것이 아니라 이나라 삼천리 반도 강산 전부 다 그랬습니다. 곳곳에 전부다. 우리나라만 그런 것이 아니고 다른 나라도 오랜 세월 그리 해왔고. 그게 그 시대 사람들의 흐름이라. 그게 사람들의 인식이었고 상식이었고 보편이었고 문화였고 그 시대 시대 조류 흐름이었다, 그래서 여자 팔자란 것은 의례히 그런 것이라고 그리 살았고, 양반 상놈도 다 그리 알고 살았는데 그걸 머리 좋은 사람, 상놈 중에 머리 좋고 똑똑한 인간이 나와가지고 왕후장상의 씨가 따로 있더냐 하고 반란 일으키면 정부에서 정부차원에서 온 나라 전체가 달라들어 진압해서 목을 쳐서 사형을 시켜버리는 겁니다. 니가 이놈아, 감히 시대의 흐름을 거슬려 하고 사형을 시켜버리는 겁니다. 그리고 그렇게 까지는 안해도 양반들 중에서도 좀 생각있는 사람들이 우리가 비록 양반일지라도 이래서 되겠느냐 하고 그래도 눌려서 크게 못하는 것이고 조금씩 조금씩 그렇게 바꾸어지는 것이고. 아주 유명하다는 경국대전이라고 우리나라 통치 기반되는 기준이 되는 그런 일종의 법치국가에 법 비슷한 그런 걸 성종 임금이 만들었다던가요? 아주 유명한 그런, 나라 잘 다스리기로 유명한 그 임금인데 그 속에도 보면은 상놈은 어느 이상은 못한다고 그렇게 되어있는 겁니다. 그러니까 그게 시대의 흐름이라는 것이고, 그 시대를 사는 그때 일반적인 그게 상식이고 보편적인 그게 문화고 그게 생활 방편이였습니다. 거기서 거슬리는 게 아니다 그말이죠. 그런데 그것이 시대시대마다 조금씩 바꾸어져서 그리 사는 그런 시대 그게 세상이라는 것이고 세상은 다 그렇게 이어져 내려왔고 지금도 그게 점점 변해서 지금은 이제는 남녀 평등이 되어지고, 오히려 여존남비처럼 그런 시대가 되어지고 있고 또 자녀는 하나 낳으면 말고 둘은 너무 많고, 안 낳아도 상관없고 결혼 해도 되고 안해도 되고 이런 인식들. 이런 인식들이 다 그렇게 일반적인 그런 인식으로 개념으로 상식으로 보편적인 것으로 자리 잡고 있는 시대다. 그러면 그런 시대가 그리되면 거의 십중팔구 백에 구십구프로는 다 그 속에 뭍혀서 그렇게 살아가는 것이고 그리 살아갈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게 다. 그리고 신앙이란 것도 믿어가다 보면 그런 일반적인 흐름으로 그렇게 모든 교회들이 다 그리 나가면 교회들이 다 자연적으로 그렇게 흘러져 가는 겁니다. 자주 말씀드리지만은 저희들 어릴때, 저 시골교회에서 우리 총공회 안에 교회다녔지만은, 어릴때 주일학교때 인식에 주일날 과자 사먹으면 어머니한테 맞아 죽습니다 단번에. 그리고 주일날 돈내고 차타는 것은 지옥가는 정도로 생각했습니다. 아예 주일은, 다른 거는 주일날 예배 바치고 나면 어릴때 주일학교때는 냇가에 가서 고기도 잡고, 지금 우리 주일학생들은 저희들 어릴때보다 훨씬 더 주일을 잘 지킵니다. 저희는 마치고 나면 냇가에 가서 고기도 잡고 목욕하고 놀고 그랬거든요? 그러면서도 주일날 과자 사먹고 주일날 차타는 거는 아예 상상을 못 했습니다. 그게 지역이 좁은 그런 영향도 있겠고 그리 되있겠지만은. 어쨌든 그래 됐는데 그만큼 주일은 엄금하게 지켰습니다. 엄하게. 지금은 우리 공회 교회를 제외하고 일반적으로 주일이란 개념 자체가 없어진 시대입니다. 당연히 주일날 예배만 드리면 되는 것이고 예배 드리고 밖에 나가서 가족들하고 소풍을 가도 되고 외식을 해도 되고 주일날 텔레비전 봐도 되고 이런 거는 보통 일반 신앙생활 모습이 되어 있습니다. 안 그렇습니까? 일반적인 신앙 흐름이 되어져 있는 겁니다. 그게 일반적인 신앙, 그 사람들이 그분들이 하나님을 배반합니까? 그분이 예수님의 대속을 부인합니까? 아닙니다. 그분들도 성경 읽고 하나님 두려워하고 예수님 대속 믿고 구주로 믿고 신앙생활 다 하는 겁니다. 연보하고 십일조하고 다 신앙생활 다하는 분들입니다. 그런데 그분들이 주일이란 개념은 그리 흘러나가면 그리 되는 겁니다. 이시대 누군가 와서 참 하나님 은혜로 완전히 뒤집어 엎는다는게 긍정적으로 개혁을 해서 성경으로 돌아가자 그래 갖고 주일은 이렇게 지키면 안된다고 그래서 교회가 대부흥이 일어나고 그게 전국적으로 퍼져나가서 교회들이 주일은 다시 지켜야 된다는 그런 흐름이 되어지고 그게 대세로 자리잡으면 또 그리 따라갑니다. 그게 시대라는 겁니다. 안 믿는 세상은 다 그런 것이고 신앙 흐름이란 것도 그리 되어서는 안되는데 일반적으로는 다 그렇게 되어지고 있다는 겁니다. 모든 생활들이. 아브람이 살던, 아브람이 하나님 앞에 부름을 받기 전에 살던 모습이 바로 이런 시대였다 이게 단정은 아니라도 그렇게 생각해볼 수 있는 겁니다. 일반적이고 보편적인 그런 걸로 하나님을 섬기는 그런 신앙생활이였는데 하나님께서 그대로 두지 아니하시고 부르셨으니까 부르시는 것은 지금 있던 그곳에서 떠나라, 그러면 떠나라 말은 장소도 떠나고 사람도 떠나고 환경도 떠나고 현재 신앙생활의 모습에서 떠나라. 현재 가지고 있는 인식도 바꾸고 사고방식도 바꾸고 선입적 관념도 빼내버리고 또 모든 생활 모습도 다 바꿔서 거기서 떠나서 내가 너에게 지시하는 곳으로 새로 가라. 방향 전환입니다. 새로운 출발입니다. 없던 것을 새로하는 것이고 지금까지 하던 것에서 더 앞으로 전진해서 새롭게 나아가는 겁니다. 방향을 바꿔서 나아가는게 아브람의 신앙 출발입니다. 이리 되어질때, 그래서 이 세상에 사는 모습은 이제까지 말씀드린대로 세상이 그렇게 되고 모든 세상 사람들이 그렇게 살아가듯이, 이거 또 한번 강조를 해야 되는데. 시대의 조류라는 것, 흐름이란 것은 거스르기가 굉장히 어렵습니다. 거의 불가능하다 할만큼 대단히 어렵습니다. 그래서 시대시대마다 그것을 깨닫고 거기서 벗어나서 한번 좀 바로 개혁을 해보려고 그렇게 세상 정치적으로도 또 경제 그런 면으로도 그렇게 하려고 고통받고 한 사람들도 많이 있고 다 유명한 사람들이 다 그래됐는데 그걸 거스리는 것은 아주 굉장히 강한 바람이 불때 그 바람을 거슬러서 나아가려 그러면 일반 바람이야 시원하지만은 태풍이 불면 그 태풍을 반대로 나아가면 몸이 못 견디지 않습니까? 홍수가 났을때 보면은 이번에 보니까 창원에서 시내 버스가 떠내려갔는데 일곱사람이 탔다가 떠내려갔는데 그 무거운 시내버스가 불과 그 강이 그래봐야 바다도 아니고 강인데, 보면은 강도 그리 큰 것 같지도 않은데 그 강이 물살이 세니까 그 버스가 둥둥 떠내려가서 교가에 받치고 그 안에 탄 사람들이 다 죽었잖습니까. 흘러가는 물결을 시골에서 사람의 무릎 좀 넘어서 허벅지까지 오는 물이 물살이 세게 내려오면 사람이 중심을 잘 못잡는다 그러지요. 센 물결로 흘러 내려가면 그 물결을 거슬려서 올라가는 것은 어렵습니다. 대단히 힘든 것처럼, 그 시대 전체 흐름이란 것을 거슬러 역류한다는 것은 굉장히 어려운 일이고, 그래서 아브람이 간단하게 기록되있지만은 그때까지 살던 75년을 살던 인식을 바꾸고 상식을 바꾸고 선입적인 관념 기존 지식을 바꾸고 속에서부터 바꿔야 되니까, 그리고 자기 생활 모습을 다 바꾸고 환경까지 다 바꾸는 것은 간단하게 기록되있지만은 쉬운일이 아니다 그말입니다. 대단히 어려운 일입니다. 우리들이 살아가는데서 외부적인, 이사 한번 가려하면 굉장히 어렵고 몇일 있다가 딴 데 갔다 오는 것도 준비를 많이 해야 되고 힘이 들고 그래서 좀처럼 사람들이 잘 안 움직이지 않습니까? 되도록 있는 자리 있으려 그러고. 전학을 하면 학생들이 전학을 하면 완전 새로운 교실 교사 친구들 환경에 적응해야 되니까 굉장히 힘듭니다. 나무를 뽑아서 옮기면 그 나무가 스트레스를 받아서 오래토록 그 나무가 자칫하면 죽고 만다는 거지요. 어릴때까지 좀 크고 나면은, 뭐든 마찬가지입니다. 어제 신문에 보니까 희귀동물, 멸종 직전의 희귀 동물들을 팔아가지고 돈 번 그런 사람들이 있다는데, 저 아프리카 같은데서 아주 희귀동물들을 몇천키로 몇만키로를 사서 수입해오는데, 인간이 잔인하기가 그 새나 이런 것들을 가방속에다 쑤셔놓고 가방 지퍼를 닫아놓고 몇날 몇일을 배 타고 비행기 타고 오면 그것들이 삽니까? 그래가지고 오는데 삼천 몇 마리를 그동안에 데려다가 팔아먹었는데 생존율이, 혹시 신문 보셨습니까, 어제? 0.1%. 99.9프로 다 죽었답니다. 삼천 몇백마리 데려왔는데 네 마리 살고 다 죽었답니다. 그래도 팔아먹고 돈은 벌고. 그래도 사고. 그것들이 거기 살던 환경에서 여기까지 오면 오는 도중에 바뀌고 숨 막히고 여기 와서도 어지간해서는 못 산다 그말이죠. 사람이든 동물이든 식물이든 환경이 바뀌면 적응하기가 굉장히 어려운 겁니다. 이게 아브람의 출발입니다. 그게 사람이기 때문에 바꾸는 것은 환경만 바꾸는 것이 아니고 생각부터 바꿔야 됩니다. 인식을 바꾸고 개념을 바꾸고 상식을 바꾸고 선입적인 관념을 바꿔야 되는데 사람이란 것이 유기적인 존재고 자유의지가 있고 이성이 있고 정이 있고 온갖 것들이 사람 속에 마음에 작용하는 그런 작용이 있는데 그 모든 것들이 오랜 세월 그 속에 틀이 박혀있고 자리 잡고 있는데 그것을 바꾼다는 것이, 그러기 때문에 세상적으로 바꾸는 것도 대단히 어렵고 이 세상이 없는 그런 것을 바꾸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울만큼 대단히 어렵다 그말입니다. 아브람의 신앙출발이 간단하게 기록되있지만은 아브람의 신앙출발은 완전히 방향전환한 것이고 전체가 다 바꾸어지는 것이기 때문에 굉장히 어려운 것이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대개는 다 그 시대를 주도하는, 그 시대에 모든 흐름 속에 따라서 가는 것이 모든 세상 사람들의 생활 모습이고 신앙생활도 대체적으로 다 그렇게 되어가고 있다는게 일반적이고 그런데 그중에서 일반적이지 아니한 믿음으로 가는 길이 있으니, 그 믿음으로 가는 길은 아브람으로 말하면 하나님께서 부르실 그때가 믿음으로 이제는 그때까지 믿던 그 믿음에서 다른 믿음으로 탁월한 믿음으로 돌아서는 그런 때고 방향 전환이 되는 것이고, 우리들로 말하면 부르심을 받을때가 보편적으로 믿다가 지금도 그렇습니다. 지금 우리 교인들이 신앙생활하는 걸 보면은 비교적 다른 교단에 비하면 주일 지키는 것부터 잘 믿는 편입니다. 새벽기도 나오는 것까지 계산해서 다 잘 믿는 편인데, 그런데 이렇게 믿어나가다가 보편적 벧엘 생활처럼 하다가 여리고로 가기 위해서 이렇게 믿어도 되겠는가 하나님의 능력을 봐야 되지 않겠는가 하고 산곡에 백합화 성도들이여 책을 보고 국법을 바꾼 주일학교 책을 읽어보고 백영희 목사님 전기를 읽어보고 나도 이렇게 살아봐야 되겠다 하고 오늘부터 성경을 한번 하루 한시간씩 적어도 읽어봐야 되겠다, 기도를 하루에 한 시간은 해야 되겠다. 내 생활을 고쳐 봐야 되겠다 하고 작정을 하고 한번 방향전환을 하려고 해보면 쉽습디까? 해보면 대단히 어렵습니다. 내가 지금까지 새벽기도를 못 나갔는데 한번 나가봐야 되겠다하고 작정을 하고 마음에 다짐을 하고 출발해보면 그게 얼마나 어려운지를 알게 됩니다. 그래서 말씀을 붙들고 말씀대로 살려고 실행해보면 말씀이 어려운 지 알게 되고, 그러나 실행을 해보면 그 말씀이 과연 살아있는 말씀인지 죽은 말씀인지 알게 된다 그말입니다. 믿음으로 가는 길은 순종하는 길이고 하나님 말씀으로 사는 그런 길입니다.
그래서 이런 신앙도 그렇고 자녀라는 것도 성경은 다산주의가 아닙니다. 성경은 다산주의가 아니고, 하나님이 주시는대로 낳는게 자녀 출산에 대한 성경적인 관입니다. 하나님께서 하나 주시면 열 가지고 싶은데 하나밖에 안 주시면 하나밖에 못가지는 겁니다. 둘 주시면 둘만 가지는 겁니다. 하나도 안 주시면 못 가지는 겁니다. 무조건 많은게 좋은 것이 아니고. 그래서 결혼해서 아이를 못 낳는 것은 잘못이 아닙니다. 노력해도 하나님이 안 주시면 노력하는데까지만 할 일이고 그다음 하나님께 맡기는 것이지, 그걸 두고 사람이 할 수 없는 범위까지 힘 쓰는 것은, 내가 아들 못 낳으니까 어떻게 다른 방법 써서 그거는 우리 할 일이 아닙니다. 주시는데까지만 낳는 겁니다. 다만 인위적으로 주시는데도 인간들이 그걸 막아서 강제로 없애버리는 것은 큰 죄가 된다 그말입니다. 뭐든지 그래서 설교할때도 들으실 때 평소 그 설교하는 사람의 평소 신앙사상을 가지고 들으셔야 됩니다. 설교하는 저 사람의 사상이 평소에 어떤 인식이냐가 중요합니다. 그래서 저 사람은 반세주의다, 그런 사상 가지고 있으면 세상에서 어떻게 말해도 그거는 세상을 반대하는 것인데, 저는 염세주의 반세주의가 아닙니다. 기독교는 염세주의도 반세주의도 아닙니다. 이 세상은 우리가 이용해야되는 용세주의고 이겨가야 되는 극세주의지 세상을 부인하는 것이 기독교 아니고 우리 복음이 아닙니다. 자녀 출산에 다산주의 아닙니다. 그렇다고하여 인위적으로 산아제한하는 것도 틀린 겁니다. 어떻게 할 것인가? 하나님이 주시는만큼 낳는 겁니다. 그리고 어려워도 기르는 겁니다. 결혼은 조혼 만능인가? 성경은 조혼주의인가? 조혼주의라고까지는 말할 거 없고. 그러면 만혼하면은 죄가 되는가? 서른살에 결혼하면 죕니까? 사십에 결혼하면 죄가 되는 겁니까? 아닙니다. 서른이든 마흔이든 늦게 결혼하는게 죄 되는게 아니고, 일찍 결혼하는게 무조건 다 좋은 거 아닙니다. 전체적으로 비유를 따져서 할 수 있으면, 가능하면 가장 중요한게 사람 선택이니까 사람만 있으면 일찍 하는게 좋다는 겁니다. 확률적으로 그러하고 성경적으로 전체를 따져볼때 워낙 죄악이 많고 험하니까 일찍 하는게 장점이 많고 유익이 많다는 것이지, 일찍한다고 해서 다 좋은게 아닙니다. 일찍하는데 대해서 부작용도 대단히 많습니다. 늦게하는 장점도 없지 않습니다. 있는데, 전체를 두고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이냐를 따져볼때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람 이성면에서 깨끗한 것이 가장 중요한 것이고, 또 일찍 결혼하면 그만큼 자기도 미혹을 덜 받고 미혹 주는 것도 덜하니까 다른 여러 가지 어려움과 부작용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래도 늦게 하는 것보다는 일찍하는게 좋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따져보고 상대적으로 좋은 것을 취하는 것이 당연한 겁니다. 하고 싶어도 하나님이 허락지 않으시면 못하는 겁니다.
제가 아는 어떤 목사님도 서른살에 결혼했습니다. 유명한 목사님인데. 백목사님께서 아주 기뻐하신 그런 목사님인데 서른에 결혼했습니다. 일찍하는게 무조건 좋은거 아니고 늦게 하는게 무조건 나쁜게 아닙니다. 전체적으로 볼때 그래도 할 수 있으면 맞춰서 일찍가는 것이 좋지 않겠느냐. 더구나 요즘같은 시대 흐름에는 전부다 나이는 어리고 정신연령은 어린데 이 덩치는 모두 커서 그리 되어있으니까 온갖 죄를 다 짓고, 우리 공회 우리 교회 아이들은 그래도 믿음 가정 안에 있는 우리 학생들 청년들은 그래도 비교적 깨끗한 편입니다. 그런데 바깥 세계 나가보면 교회를 떠나서 교회든 교회 안이든 한마디로 말하면 엉망진창이고 소돔 고모라보다 훨씬 더한 이 세상이 되어 있습니다. 그런 상황이기 때문에 아주 처녀들을 나이 늦게까지 들도록 그냥 두는 것은 대단히 죄는 아닌데 위험천만한 일이고 길거리에는 늑대같은 인간들이 우글거리고 있으니까 대단히 위험한 것이고 남자들은 본의아니게 늑대가 되어가니까 대단히 위험하니까 가능하면 일찍하는게 경제라든지 직장이라든지 살림살이 이런 것들은 선택사항이고 인식에 따라서 달라집니다. 사람의 행복이란 것이 뭔가? 사람의 행복은 아이들 옛날말에 행복은 무슨 순이 아니라고요? 행복은 학교 성적순이 아니라던가요? 행복은 돈 많은 순위가 아닙니다. 인간의 행복이란 것은. 그러니까 결혼이란 것은 하는 것이 보편적이겠고, 한다면 가능하면 일찍하는게 좋겠고 사람 선택만 되고 나면 그다음에는 경제나 직장이나 학업 이런 것들은 그 다음에 형편 맞춰서 천천히 맞춰서 가면 되는 겁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원하시는 선한 길을 따라 믿음으로 순종하면 무조건 복입니다 그거는. 하고 나서 보면. 그래서 오늘 주일학교 설교에 그것 참 마음에 들던데. 하나님 말씀이면 명령이면 무조건 순종하고 보는 겁니다. 어른들 말을 들으면, 000, 뭐가 생긴다고요? 어른들 말들으면 뭐가 생겨요? 잠을 자다가도 떡이 생긴데요. 저 어릴때 참 많이 들은 말입니다. 부모님께. 어른들 말 들으면 자다가 떡이 생긴단다. 무조건 좋은 일이 생긴다 그말이지요. 하물며 전지전능하신 하나님 말씀을 순종하면 무조건 좋은 겁니다. 그러니까 하나님 말씀이면 무조건 순종을 하고 보면 됩니다. 그래서 우리가 인식을 그렇게 가질때, 제가 설교할때도 오전에 강아지도 좀 했는데, 강아지 기르면 안됩니까? 저도 사택에 앵무새를 네 마리나 기르고 있는데요? 누가 갖다줘서. 강아지 기르면 안되는 겁니까? 얼마든지 기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제가 말하는 것은 길거리 나가보면 강아지 끌고 다니면서 남한테 아주 피해주는 사람들. 강아지 배설물 그냥 던져놓고 가는 사람들, 그런 사람들 주로 염두해두고 말하는 겁니다. 그 사람들이 대개 보면, 그 사람들 다는 아니고 그중에서 보면 몇몇 사람들 보면은 강아지 죽었다고 무덤 만들어주고 일주일이 지나도록 강아지가 생각나서 잠도 안오고, 그게 정상입니까, 그게? 개구리는 잡아다가 사지를 절단해서 껍데기 산채로 벗겨놓고 눈을 껌뻑껌뻑하는걸 입으로 먹으면서, 웃으면서 먹습니다. 사진보니까. 먹으면서, 개 잡아먹는다고. 개를 애완견 잡아먹습니까? 식용을 잡아먹지. 그것도 사람 취향에 따라 그런 것이지 문화가 다르면 아 그 나라 문화는 그런가보다 하고 마는 것이지 그걸 가지고 뭘 대모를 하고 시위를 하고 그게 다 지나친 것이고 생각이 틀려 먹은 것이다 그말이지요. 인식이란 것은 대단히 중요한 겁니다. 그래서 설교할때도 제가 좀 과격하고 단순한 면이 있어서 강하게 말씀을 드려도 그 앞뒤를 다 생각을 해서 원래 제 인식은 그게 아니니까, 다만 자녀 출산을 두고는 하나님이 주시는대로 낳는게 좋다, 복이 된다, 결혼도 가능하면 빨리하는게 좋다, 늦게 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면 무리해서 빨리할 것 아닙니다. 할 수 있으면 하는 겁니다. 그런데 늦게 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면 늦어지는 게 순리입니다. 그게 하나님의 뜻이고, 그거는 진리가 아닌 겁니다. 절대 진리가 아니고. 맞춰서 그리 하는 겁니다. 그래서 이런 것도 들으실 때, 좀 아시고, 제 인식이 그러니까 그렇게 들으시면 좋겠고.
그래서 그런 관이 말이지요, 관이. 결혼식도 그렇습니다. 결혼식도 아주 뭐 호텔에서, 몇천만원짜리 호텔을 가지고 몇천만원 꽃을 꾸며가지고 몇천만원짜리 옷을 입고 그래가지고 그렇게 호화찬란하게 해야 되는가? 간소하게 하면 안되는가? 그러니까 우리나라 사람들이 벼락 부자가 되놓으니까 가난에 포언이 져서 그렇게 하는데 외국에 선진국에는 다 일반적으로 결혼식 아주 간단하게 한다 그러지요? 독일 같은 나라, 우리나라보다 훨씬 오래전부터 잘 사는 나라인데 그 사람들 결혼식 가족들 모아놓고 간단하게 하는 사람도 있고 안하는 사람도 있고 법원에 가서 혼인신고 하면 끝이랍니다. 우리 가서 우리 둘이 결혼합니다 하고 시청가서 혼인신고 하면 결혼 끝. 간단하게 식구들 모여서 그만 찬송하나 부르고 기도하면 끝. 허례허식이란 것은 그게 결코 모든 면에서 좋은게 아니니까 그런 것도 하나의 인식입니다. 굉장히 문화적이고 선진적이고 발전된 인식 아닙니까? 성경 찾아보면 다 그렇게 되는데. 이런 것들을 우리 나라라는 이 시대, 세상이란 여기서 그런 관을 가지고 해나가려하니까 사람들이 전부 우습게 보는 겁니다. 비웃고 조롱을 하고. 그렇게 빨리 해? 왜 그렇게 아이를 많이 낳아? 아이를 대학을 안 보내? 직장을 대기업을 가야지, 갈 수 있는데 왜 중소기업을 가? 사업을 왜 그렇게 해? 주일날, 대목장에 주일날 문을 닫아? 밤예배 간다고 대목에 그렇게 일찍 가게 문을 닫아버려? 세상 사람들이 볼때 믿음의 길이란 것은 이 세상을 중심으로 목표 목적으로 하지 않고 하나님을 중심에 두고 그 분의 뜻을 찾고 그 분 원하시는 우리 자체 구원을 두고 천국을 소망하기 때문에 그 믿음으로 가는 길을 세상 속에서 가려 그러면 비합리적이고 비상식적이고 비인식적이고 통계에 안 맞으니까 거슬러질 수 밖에 없는 것이고 이거는 당연한 것입니다. 그럴때 우리가 그것을 해결하는 방법은 무엇인가? 해결하는 법은 첫째, 그보다 먼저 왜 믿음으로 가는 길이 어려우냐? 그 어려운 이유를 찾아보면 첫째는 자기 문제, 자기 문제는 몇가지라 그랬습니까? 가만히 생각해보면 자기 안과 밖의 문제입니다. 자기 속에 들어있는 자기 지식, 마음의 문제 인식과 상식과 선입적인 관념 기존지식 이런 마음의 문제 악성이라 그럽니다. 그런 문제하고, 하나는 그대로 자기 몸에 익어진 환경에 익어진 자기 눈이 그렇게 익었고 귀가 익었고 입이 익었고 우리나라 요즘 신문을 너무 자주 인용하는데, 하다보면 나오는데 우리나라 물의 종류가, 물, 마시는 물 말이지요. 사람을 물 같이 보냐? 그렇게 흔한 그 물인데, 그 물이 음료수보다 비싼 시대가 왔는데, 오래전부터 온다 온다 그러더니 왔는데, 그 물의 종류가 굉장히 많답니다. 그런데 많은 물의 종류를 갖다놓고 사람들에게 이 중에서 가장 맛있는 물을 찾아보라고 물 전문가한테, 전문가라던가 사람들인가, 골라보라 그러니까 하나를 고르는데 그 물이 어떤 물인가. 어떤 물이겠습니까? 백두산에서 가져온 거요? 프랑스 알프스 산 밑에서 퍼온 것도 있고, 제주도에서 가져온 물도 있고 백두산에서 가져온 물도 있고 오만 종류의 물이 다 있는데, 가장 맛있는 물이 어떤 물인가를 고르니까 어떤 물이라고요? 사람들이 가장 많이 마시는 물, 입에 가장 익은 물. 그물이 가장 맛있다 그러더랍니다. 사람들이 많이 먹어서 오래토록 입에 익은 그 물맛이, 그 물을 가장 맛있는 물로 다 골라내더랍니다. 거의 대개가 다. 분유회사 이야기 아시지요, 분유. 아동병원 산부인과 병원에 아주 저렴하게 분유를 기를 쓰고 넣어주는데 아이 태어날때부터 분유를 모유 안 먹이고 분유 먹이는 그것이 어릴때부터 태어나자마자 그것 몇 달먹고 나면 그다음부터는 아기가 그 분유 그 우유만 찾는다 그러지요. 다른 건 안 찾는답니다. 그래서 기를 쓰고 그렇게 한다 그러지요. 사람의 입맛이라는 겁니다. 그런것이 말하자면 자기, 이 세상 속에 자기 몸이 익어지는 겁니다. 눈이 익고 귀가 익고 입이 익고 우리 피부가 환경 속에서 익어지는게 인간입니다. 그래서 사람이란 것은 적자생존의 존재. 환경에 적응하는 그런 존재라 말이지요. 하나님께서 그렇게 만들어놓으신 겁니다. 그런 것을 자기 마음 속에도 그런게 되어있고 몸도 그렇게 익어져있는데 이걸 벗어나서, 깨버리고 벗어나기가 대단히 어렵다 그말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걸 알고 이것을 빼내야 됩니다. 백목사님께서 가장 좋아하시는 찬송 하나가 몇장이라고요? 5장, 참 많이 불렀습니다. 복의 근원 강림하사 많이 불렀고, 백목사님께서 정하신 찬송의 가치는 제일 은혜있고 좋은 찬송이 몇장입니까? 1장, 그다음에 2장, 그다음에 3장 그런 순서로 나갑니다. 그런데 앞에 거는 좀 특별한 거고 5장 찬송을 가장 많이 부르셨고, 다른데 또 하나 많이 부르신게 136장을 참 많이 불렀습니다. 언덕을 떠나서 창파에 배 띄워. 그러니까 내 주 하나님 넓고 큰 은혜는 그 찬송. 그러기 때문에 자기를 부인하는 것. 기존 지식과 선입적 관념, 몸에 익어진 것을 다 부인하는 것이 언덕을 떠나는 겁니다. 언덕을 떠나서 창파에 배 띄워서. 그리고 내가 부인한다 그래도 나는 성경적으로 믿음으로 하려 그래도 내 밖에 있는 온 세상이 전부, 조직과 제도와 문화와 분위기 유행 전부다가 그리 되있으니까 거슬러 나가기가 대단히 어려운데 그렇지만은 그것을 거슬러 나가는 것이 믿음의 길입니다. 노아 홍수때 온 세상을 다 전멸시킨 물을 노아는 믿음으로 방주를 타고 세상을 정죄하고 믿음을 좇은 의의 후사가 되었던 것처럼. 그 뒤에 후손들 자손들이 애굽에서 나와가지고 홍해 바다를 갈라뜨리고 간 것처럼, 홍해바다를 갈라뜨린 것은 세상을 깨버린 겁니다. 죽음을 깨버리고 넘어서 간 겁니다. 요단강을 갈라서 이 세상 죽음을 깨버리고 들어간 것처럼, 베드로는 어떻게 했습니까? 바다위를 걸어갔습니다. 이 세상을 밟고 가는 겁니다. 신앙이란 것은 이 세상을 하나님의 능력으로 자기에게 주어진 세상, 온 세상 6천년을 집어삼킨, 전인류를 집어삼킨 세상을 믿음의 능력으로 깨버리든지, 자기 앞에 닥친 악령의 그 모든 역사를 깨버리든지 자기 속에서부터 깨야 됩니다. 내 속에 기존지식과 선입적 관념과 상식, 그거 지난주일에 지식을 많이 말씀드렸는데 인간지식을 파고 들어가보면 그거 별 것 없습니다. 들어가고 들어가고 들어가보면 결국 인간의 범위안이고, 그런데 그게 워낙 오랜 세월에 온 세상 인간을 많이 점령을 하고 구석구석 뻗어들어가있으니까. 정권이 한번 바뀌고 나면은 나라의 정권이 바뀌면 그 나라에 대통령이 가진 권한의 요직은 수천명이 바뀝니다. 도지사가 바뀌면 그 도지사 권한 안에 있는 사람들 거의 대부분 바꿔버립니다. 자기한테 맞는 사람으로. 그래서 밑에 사람들이 기를 쓰고 자기 사람 채우려고 애를 쓰는 겁니다. 그런데 인간 지식이 그래서 이것 뭐 세상 이야긴데, 소위 말하는 좌파가 정권 잡아서, 10년 동안 정권 잡아가지고 구석 구석 좌경 그런 좌익 사상에 있는 사람들을 온갖 곳에 다 심어놓으니까 그거 끝난지 벌써 10년이 넘었습니까? 그런데도 아직까지도 그런 사람들 곳곳에 자리 잡아서 얼마나 많은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까? 인간의 지식이 온 세상을 사로잡기를 6천년 사로잡고 온 세상 점령하고 있는데 그 인간 지식을 그런 인간 지식이 내 머리 속에도 어떤 아이는 10년, 10년 동안만 머릿속에 들어간 그것도 빼기 어렵고, 20년 동안 하나님의 지식없이 20년 동안 인간 지식만 집어넣은 그 사람을 하나님의 지식으로 바꾼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합니다. 그래서 믿음의 길을 바로 가지 않고 잘못된 신앙길에 들어서서 이름만 믿는다는 이름 가지고 대학을 다니는 그 사람들 청년들의 신앙관을 바꾸는 것은 하나님의 특별한 능력 아니면 불가능입니다. 안된다고 보는 것이 맞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주일학생들 어릴때 교육이 굉장히 중요합니다. 우리는 이 복음을 받은 사람들이니까 내 속에 들어있는, 그러기 때문에 생각을 하라는 겁니다. 생각이라 말은 비교하라 말이고 연구라는 말이고, 비교하면 뭐가 나옵니까? 두 개 놓고 비교하면 뭐가 나옵니까? 비교하면 가치 평가가 나오는 겁니다. 시간적으로 어디까지 가느냐. 범위적으로 어디까지 가느냐. 결과가 어떻게 되느냐. 내가 알고 있는 인간 지식의 결과는 어떠하며, 내가 배운 하나님의 지식 가지고 나가는 그 결과는 어떠하겠는가를 따져서 생각해보면 비교해보면 살펴보면 나오는 겁니다, 답이 환하게. 그런데 안 하거든요 사람들이. 그래가지고 인간 지식을 내 속에 있는 이 세상과 같은 기존 지식과 선입적 관념, 이 세상과 같은 그런 것을 깨버리고 내 몸에 익어진 것도 세월속에서 깨버리고. 그래도 내 밖에는 너무 강한 것이 있는데 나만 바뀌면 확신하면 내 밖의 것은 이길 수 있습니다. 그걸 넘어가면, 그래서 이걸 넘어가는 방법은 자기와 세상을 일단 부인하는 겁니다. 자기와 세상을 부인하고 그다음 하나님 말씀이면 무조건 순종하는 겁니다. 순종하고 보는 겁니다. 그러면 길은 생기기 마련인데, 하나님께서 이렇게 우리에게 믿음의 길을 어렵게 하신 목적은, 이유는 하나님은 자존하신 분, 전지전능 완전자인데 우리를 사랑하시는 분인데, 가장 자비하시고 긍휼히 여기시는 그 하나님인데 왜 그분이 우리에게 이렇게 세상을 믿음으로 살아가기 어렵게 만들어 두셨는가? 하나님이 없는 세상, 하나님 부인하는 이 세상에서 하나님 말씀을 세상과 자기를 부인하고 믿음으로 순종하는 그 순종을 통해서 하나님 한분이면 모든 것이 다 된다는, 하나님 한분만으로 전부 삼는 그런 우리 믿음의 사람을 만드시기 위해서 이 세상을 그렇게 믿음과 배치되고 반대되고 비합리적으로 만들어두신 겁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 세상이 어떠해도 하나님의 말씀을 믿음으로 받아들여서 마음속으로 믿고 그 말씀에 순종해보면 세상이 어떠하며 하나님이 어떠하신 분인걸 확신하고 알게 됩니다. 그러기 때문에 믿음의 길은 행함으로 가는 길이고 살아봐야 가는 것이지 그래서 말씀하시기를 너희가 내 말에 거하면, 말씀대로 살아보면 참 내 제자가 된다, 정말 주님 닮은 주와 같은 사람이 되어지고 그러면 진리를 깨닫게 되고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해서 온 세상을 다 집어삼킨 6천년 역사 인간 지식도 넘어서고 그 세상도 넘어설 수 있는 그런 언덕을 떠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진다는 겁니다. 해보지 않고는, 가보지 않으면 모르고 먹어보지 않으면 모르고 행해보지 않으면 알 수 없는 것이 신앙의 길입니다.
오늘 믿음으로 가는 길에서 몇가지 어렵지 않는 말씀이고, 생각해보면 상식이고 그럴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가만히 생각을 하고 우리에게 보여주신 이 길을 믿음으로 가는 우리가 되도록 하십시다.
다같이 통성으로 기도드리겠습니다.
고집이란 것은 신앙생활에 쓰는 겁니다. 견집은 대단히 중요합니다. 아나마와 스닐과 헤르몬 산 꼭대기 견집의 산이 있는데, 견집은 중요하나, 자존심이 중요하나 쓸데없는 자존심은 허영이고 교만입니다. 좋은 고집은 가져야 되고 좋은 자존심은 가져야 되고, 가치없고 쓸데없는 자존심 고집은 버리는 것이 또 자기 위해서 좋고 신앙입니다. 믿음으로 가는 길에 맞지 않는 인간 지식 선입적 관념, 자기 속에 익어진 것, 모든 세상을 부인하고 순종하는 우리가 되도록 하십시다.
제목: 믿음으로 가는 길
요점:
1. 세상이라는 환경
- 하나님이 만드신 곳, 구원의 장소
- 기독교는 염세 반세가 아님
- 결혼, 조혼이 능사는 아니고 만혼이 죄도 아니지만 조혼이 유익
- 하나님이 안 주시면 기다리는 수밖에 없는 것
- 출산 역시 다산주의는 아니지만 하나님이 주시는 대로, 안 주시면 어쩔 수 없는 것
2. 신앙은 ‘믿음’으로 가는 길
1)일반적인 생활
- 사람의 일반적인 생활(보편적, 문화, 유행, 시대의 조류, 흐름)
- 세월 속에 인식되고 습성된, 세월 환경 속에서 젖어들고 심신에 익어진, 생활
- 실례를 들면(자녀관-저출산 문제, 교육관, 결혼관, 직업관...)
- 세상의 모든 사람, 부름 받기 전 아브람, 신앙의 일반 모습)
2)믿음으로 가는 길
- 일반적인 생활 아닌 믿음으로 사는 길
- 믿음은 순종, 하나님 말씀에 순종, 말씀대로 사는 생활
- 실례를 들면(자녀관-주시는 대로, 교육관-신앙에 손해되지 않는 범위,
결혼관-가능하면 조혼, 최대한 간소하게, 직업관-신앙생활 중심으로)
3. 믿음으로 가는 길의 애로
1)믿음으로 가는 길의 애로
- 일반적인 생활의 편리, 안정(시대의 흐름, 세상적 순리이기 때문에)
- 믿음으로 사는 생활의 애로(역항적, 역류적인 면이 있으니)
2)믿음으로 사는 생활이 어려운 이유
①주관 문제(자기 내면)
- 자기 속의 기존 지식, 선입적 관념, 인식
- 세월 속에 젖어들고 익숙해진 습성
②객관 문제(대외 관계)
- 일반 모두의 인식, 관념, 지식, 상식 통계에 비합리
- 세상 환경의 여건, 제도, 조직, 문화에 비합리
③해결은 순종
- 자기 주관과 습성을 다 부인하고
- 세상 지식 인식 통계 상식 모든 것을 부인하고(참고로만)
- 오직 순종 하나로만 나아가야만 해결, 무조건 순종하고 봐야
4. 믿음의 길을 어렵게 하신 목적
1)하나님의 존재
- 하나님은 자존하신 완전자, 전지 전능자
- 우리를 사랑하시는 아버지
- 가장 자비하시고 긍휼히 여기시는 자
- 그런데 왜?
2)믿음의 길을 어렵게 하신 목적
- 하나님 없는, 부인하는 세상에서
- 하나님 말씀 믿음 순종을 통해서
- 하나님 한 분이면 다 된다는 것을 알게 하시고
- 하나님 한 분만으로 전부 삼는 우리를 만드시기 위해
----------------------------------------------------
원문설교
20140907 주후
창세기 12:1-5
아브람이 12장에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기전까지 하란에서 살았습니다. 원래 갈대아 우르라는 곳에서 살다가 아버지 대라가 이사를 해서 가나안 땅에 가려고 가다가 하란까지 와서 하란에서 아버지는 죽고 또 아브람의 그 동생도 죽고, 그래서 아브람이 그 조카 롯하고 가족들이 있는 상태에서 하나님께서 하란에서 아브람을 부르셔서 가나안 땅으로 가라고 명령을 하신 겁니다. 그러면 그때까지 아브람이 살던 그 환경은 지역적인 장소적인 그런 걸 떠나서 환경, 그 하란이라는 그 장소는 얼마나 살았는지 모르겠지만은 갈대아 우르에서 오래 살았고, 하란에서 살다가 거기서 이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는데, 그 사는 그 환경이 땅도 땅이지만은 그 자기를 둘러싼 인맥이라는 그 주변 환경, 주변 사람들, 사람들과의 관계 그런 것들이 대단히 중요하겠고, 오랜 세월 속에 그게 묻혀 살면서 그 속에서 하나님을 섬기되 일반적인 섬김을 가졌다고 했습니다. 사람이 각자가 자기가 보는 그 기준에 따라서 관점에 따라서 판단은 달라지게 되어 있지만은 이제 문제는 최종적으로 어느 것이 옳으냐 하는 것이고, 성경적으로 또 하나님께서 어떻게 판단하시느냐가 최후적으로 가장 중요한 문제가 되어지겠습니다.
아브람이 하란에서 신앙생활하던 것은 일반적이고 보편적인 신앙이었다. 아브람이 이삭을 결혼시킬때, 자기 집안에 있는 아주 신실한 모든 걸 책임진 그 종에게 자기 고향에 가서 이삭의 아내 될 사람을 찾아서 데려오라 그랬습니다. 가서 데려오되, 만약에 그 종이 묻기를 여자가 오려하지 않으면 어떻게 하리이까. 그러면 내 주인의 아들 이삭을 데리고 그 주인 어른의 고향으로 돌아가리이까 할때 아브람이 안오면 그거는 너와 상관이 없으니까 다만 내 아들 데리고 고향으로 돌아가지는 말아라고 했습니다. 그곳이 하란이고 하나님 섬기던 거긴데, 그러나 섬기되 일반적인 신앙으로 하나님 섬기던 곳이라 그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신앙생활을 돌아보면 일반적인 그런 신앙으로 하나님을 섬기는 신앙생활이 많이 있습니다. 이게 전체적인 것도 있고 부분적인 것도 있습니다. 엘리야가 엘리사를 부를 때, 제일 처음에 길갈에서 불렀습니다. 여호와께서 나를 벧엘로 보내시느니라. 그럴때 길갈은 하나님의 은혜로 만나를 가장 처음 먹은 장소가 길갈이고, 그 만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양식입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양식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받은 것들입니다. 하나님 섬기는 곳입니다. 하지만 거기서 떠나서 벧엘로 갔고, 길갈에서 있었고 남아있는 사람도 많이 있습니다. 그런데 엘리야는 벧엘에 갔고 벧엘에 가니까 선지 생도 오십인이 있었습니다. 선지자가 데려고 가던 아주 유명한 특출한 믿음의 용사들이 거기 많이 있었습니다. 엘리야가 또 엘리사에게 말하기를, ‘너는 여기 머물러라. 여기도 하나님 섬기는 곳이고’, 벧엘의 특징은 아브람이 가나안 땅에 들어와서 처음으로 제단을 쌓은 곳으로 하나님 섬기는 곳이 벧엘입니다. 하나님 없는 곳이 아니고 신앙 생활 안하는 곳이 아닙니다. 벧엘인데, 그 벧엘에 선지 생도들도 있었고, 하나님을 잘 섬기는 곳입니다. 장소를 말하나 오늘 우리로 말하면 우리의 신앙의 형편 정도를 말하고 있는 겁니다. 벧엘에서 엘리야가 다시 엘리사에게 묻기를, ‘청컨대 너는 여기 머물러라. 여호와께서 나를 (어디로 보내신다고요?) 여리고로 보내시느니라.’ 벧엘만 있어도 하나님 잘 섬기는 곳인데, 거기 머물러 만족하지 아니하고 다시 여리고를 향해서 나아갔습니다. 그럴때 엘리사가, 엘리야는 만류했지만은 엘리사는 자원해서 ‘여호와의 사심과 당신의 혼의 삶을 가리켜 맹세하노니 내가 당신을 떠나지 아니하겠나이다’ 자유의지로 따라갔고 그 자유의지를 엘리야는 꺽지 않았습니다. 기어코 내가 가는 길이 힘드니까 따라오지 말아라고 꺽어 눌러놓지 않았습니다. 내가 가는 길은 나의 길이고, 너에게는 너의 길이 있을테니까 내가 가는 길이라 하여 무조건 따라오지 말고 너는 여기서 머물러서 있는 것이 어떻겠느냐? 하고 엘리사 정도의 신앙으로 맞추려했지만은 엘리사는 자기가 받은게 있으니까 ‘따라가겠나이다.’ 그래서 따라가려할 때 자원해서 목숨 걸고 따라오겠다는 걸 말리는 것은 자유의지를 꺾는 것이기 때문에 말릴 수 없는 겁니다. 안 꺾었습니다. ‘그러면 가자.’ 여리고에 갔습니다. 여리고는 어떤 곳입니까? 여리고는 이스라엘이 여리고 성을 무너뜨릴때 하나님의 능력으로 권능으로 함락시킨 성이 여리고 성입니다. 하나님의 능력의 역사가, (000샘 오전에는 똘망똘망하더니 오후에는 눈이 가물가물하네?) 능력의 역사가 함께 하신 곳이 여리고입니다. 초자연의 능력의 은혜를 권능을 받은 그런 종들이 있는 곳이 여리고입니다. 오늘 우리 신앙들은 일반적으로 어디가 많겠습니까? 오늘 우리들의 신앙의 보편적인 것은 어디가 가장, 길갈 벧엘 여리고 중에서 어디가 가장 많습니까? 벧엘 신앙이 거의 대부분입니다, 벧엘 신앙. 우리들은 거의 다 벧엘 신앙에 머무르고 있습니다. 벧엘에서 더 나아간 것이 여리고입니다. 여리고까지 갔는데 거기는 하나님의 능력을 권능을 받은 종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그런 신앙입니다. 거기 갔는데, 거기서 엘리야가 하나님의 영감 인도를 따라서 여호와께서 나를 요단으로 보내신다, 요단은, 요단강의 의미는 뭡니까? 요단강은 죽음이고, 요단강 너머는 천국인데, 죽음을 넘어가는 겁니다. 나를 죽음 너머까지 부르신다, 그럴때 엘리사가 또 따라갔습니다. 그러면 가자. 그게 뭐냐하면, 신앙이란 것은 같이 믿어도 일반적이고 보편적인 신앙이 있고, 그 위에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말하자면 아브람이 하란에서 창세기 12장에 출발하는 것 같은 이런 단계로 들어가고 나아가고 바꾸어지는 변환의 이런 신앙세계가 단계가 있다는 것을 말씀을 드리는 겁니다. 이걸 세상적으로 하나 예를 든 것이 오전에 많이 말씀드린게 이 세상에 안 믿는 사람들과 믿는 사람 생활이 같을 수가 없습니다. 안 믿는 사람들은 이 세상이 전부고 세상이 그들의 목적이고 목표고 그게 전부기 때문에 그리 살 수 밖에 없는데, 이것도 가만히 생각해보면 세상이란 것은 이 세상은 하나님이 주신 세상을 가만히 보면 사람들이 알고 있는 실질적인 세상은 그 범위가 어디까지입니까? 사람들이 알고있는 사람들의 모든 노력과 이런 실질적인 인간의 영향력이 실질적으로 미치는 그 세계가 어디까지입니까? 우주 전체를 두고 말하면 지구 땅덩어리 안이고, 기껏해야 달이고 화성인데 이거는 아주 미약하게 미치는 것이, 영향을 못 미친다 그리 볼 수 있고, 이 지구안에서 인간이 주인으로 살고 영향 미치는데 지구란 것은 우주 전체를 두고 보면 지구는 우주 전체에 우주가 이 예배당만하다면 지구란 것은 예배당 안에 있는 눈에 보이지 않는 먼지 하나만큼도 안되는 게 지구입니다. 그만큼 인간의 세상이라는 울타리 안에, 물질계라는 울타리, 하나님이 인간에게 주신 물질계라는 울타리 안에서도 인간이 아는 세상이란 것은 지구욕이 전부고 그냥 생각으로 추측 추론으로 우주를 알지만은 그 우주란 것은 광대한데 인간의 영향력은 조금도 거의 미치지를 못하고 있는 것이고, 그런데 그 우주가 넓고 넓기를 무한에 가까울만큼 수도 많고 굉장히 광활하게 넓고 광대한데 그 우주 너머에 영계라는 것은 말 그대로 영원무궁한 무한한 세계가 그 너머 있고, 그 영계 너머에는 뭐가 있습니까? 영계 너머는 아무 것도 없습니까? 영계 너머에는 하나님이 계시지요.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이 세상이란 울타리, 지구 밖에 우주까지도 좀 한번씩 명상을 해보고 그 너머 영계를 우리가 알 수 없지만은 영계라는 세계에 얼마나 광대한 것을 생각해보고 그 너머 계시는 하나님을 생각하는 것이 우리 신앙 세계입니다. 인간이 사는 세상이란 것은 알고보면 그런 것인데, 그런데 6천년 인간 역사에 수많은 전인류, 수천억이 넘는 인간들이 전부다 이 세상이라는 지구라는 좁은 그 범위, 세상이라는 물질계 그 안에서 이리저리하다가 그 안에 삼켜가지고 다 그 속에 살다가 그것의 사람이 되어가지고 이 세상을 살다가 떠난 것이 모든 전인류라. 신앙의 사람을 제외하고는 전부다 그런 겁니다. 그런데 그런 세상을 보면은 그 세상이 시대시대마다 또 지역 지역마다 그 시대 사는 사람들의 모든 생애를, 삶을, 생활을 전부 일반적으로 이끌고 나가는, 주도해나가는 전체적인 흐름이 있다는 거죠, 흐름. 시대의 조류라 그럽니다. 흐름. 이게 다른 말로 말하면 문화고 유행이라는 것이고 하나의 풍습이라는 것이고 제도라는 것이고 조직이라는 겁니다. 그리고 이것이 그런 것들이 사람 속에 머릿속에 들어갔을때 인식이라 그러고 상식이라 그러고 선입적인 관념이라 그렇게 말을 하는 겁니다. 그런 것들이 시대시대마다 다 자리잡고 있고, 사람들이란 것은 그 시대에 태어나서 그 시대 속에 살고 살다보면 그 시대 사람이 되고 그 시대 녹아들고 젖어들고 그 시대에 익숙해지고 그 시대에 사람이 되어지게 되어있는 겁니다. 그래서 예를 들면, 자녀를 낳으면 어떻게 하느냐? 시대 시대마다 자녀 낳는 숫자가 틀리고, 그 자녀를 교육시키는 교육이 시대마다 다 다르고, 옛날에 여인들은 우리나라 구한말 대한제국 그때까지만 해도 우리나라에 여성으로서 공부한 사람은 손에 꼽을만큼 귀했습니다. 그래서 아마 여성박사 1호는 지금도 아마 역사에 이름이 남아있을걸요? 여성 의사 1호도 그럴 것이고. 뭐든지 처음엔 다 그렇지만은. 불과 100년전입니다. 불과 100년전, 여기 연세 많으신 분들 태어날 어릴때 그 당시 그때만 해도 이 시대는 여자는 학교를 안보냈고, 밖에 돌아다니면 안된다 그러고, 속담이 여반들한테 대단히 죄송하지만은, 암탉이 울면 집안이 망한다고, 여자 목소리가 크면 집안 망한다는게 그게 유교식 조선시대 우리나라 불과 100년전에 사람들의 상식입니다, 인식. 여자들은 남자에 존속되고 남존여비 사상이고 여자는 남자가 쥐어박으면 쥐어박히고 때리면 맞고 그렇게 하는게 여자지 목소리 내는게 아니었습니다. 그게 특별한 사람만 그런게 아니고 특정 지역만 그런 것이 아니라 이나라 삼천리 반도 강산 전부 다 그랬습니다. 곳곳에 전부다. 우리나라만 그런 것이 아니고 다른 나라도 오랜 세월 그리 해왔고. 그게 그 시대 사람들의 흐름이라. 그게 사람들의 인식이었고 상식이었고 보편이었고 문화였고 그 시대 시대 조류 흐름이었다, 그래서 여자 팔자란 것은 의례히 그런 것이라고 그리 살았고, 양반 상놈도 다 그리 알고 살았는데 그걸 머리 좋은 사람, 상놈 중에 머리 좋고 똑똑한 인간이 나와가지고 왕후장상의 씨가 따로 있더냐 하고 반란 일으키면 정부에서 정부차원에서 온 나라 전체가 달라들어 진압해서 목을 쳐서 사형을 시켜버리는 겁니다. 니가 이놈아, 감히 시대의 흐름을 거슬려 하고 사형을 시켜버리는 겁니다. 그리고 그렇게 까지는 안해도 양반들 중에서도 좀 생각있는 사람들이 우리가 비록 양반일지라도 이래서 되겠느냐 하고 그래도 눌려서 크게 못하는 것이고 조금씩 조금씩 그렇게 바꾸어지는 것이고. 아주 유명하다는 경국대전이라고 우리나라 통치 기반되는 기준이 되는 그런 일종의 법치국가에 법 비슷한 그런 걸 성종 임금이 만들었다던가요? 아주 유명한 그런, 나라 잘 다스리기로 유명한 그 임금인데 그 속에도 보면은 상놈은 어느 이상은 못한다고 그렇게 되어있는 겁니다. 그러니까 그게 시대의 흐름이라는 것이고, 그 시대를 사는 그때 일반적인 그게 상식이고 보편적인 그게 문화고 그게 생활 방편이였습니다. 거기서 거슬리는 게 아니다 그말이죠. 그런데 그것이 시대시대마다 조금씩 바꾸어져서 그리 사는 그런 시대 그게 세상이라는 것이고 세상은 다 그렇게 이어져 내려왔고 지금도 그게 점점 변해서 지금은 이제는 남녀 평등이 되어지고, 오히려 여존남비처럼 그런 시대가 되어지고 있고 또 자녀는 하나 낳으면 말고 둘은 너무 많고, 안 낳아도 상관없고 결혼 해도 되고 안해도 되고 이런 인식들. 이런 인식들이 다 그렇게 일반적인 그런 인식으로 개념으로 상식으로 보편적인 것으로 자리 잡고 있는 시대다. 그러면 그런 시대가 그리되면 거의 십중팔구 백에 구십구프로는 다 그 속에 뭍혀서 그렇게 살아가는 것이고 그리 살아갈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게 다. 그리고 신앙이란 것도 믿어가다 보면 그런 일반적인 흐름으로 그렇게 모든 교회들이 다 그리 나가면 교회들이 다 자연적으로 그렇게 흘러져 가는 겁니다. 자주 말씀드리지만은 저희들 어릴때, 저 시골교회에서 우리 총공회 안에 교회다녔지만은, 어릴때 주일학교때 인식에 주일날 과자 사먹으면 어머니한테 맞아 죽습니다 단번에. 그리고 주일날 돈내고 차타는 것은 지옥가는 정도로 생각했습니다. 아예 주일은, 다른 거는 주일날 예배 바치고 나면 어릴때 주일학교때는 냇가에 가서 고기도 잡고, 지금 우리 주일학생들은 저희들 어릴때보다 훨씬 더 주일을 잘 지킵니다. 저희는 마치고 나면 냇가에 가서 고기도 잡고 목욕하고 놀고 그랬거든요? 그러면서도 주일날 과자 사먹고 주일날 차타는 거는 아예 상상을 못 했습니다. 그게 지역이 좁은 그런 영향도 있겠고 그리 되있겠지만은. 어쨌든 그래 됐는데 그만큼 주일은 엄금하게 지켰습니다. 엄하게. 지금은 우리 공회 교회를 제외하고 일반적으로 주일이란 개념 자체가 없어진 시대입니다. 당연히 주일날 예배만 드리면 되는 것이고 예배 드리고 밖에 나가서 가족들하고 소풍을 가도 되고 외식을 해도 되고 주일날 텔레비전 봐도 되고 이런 거는 보통 일반 신앙생활 모습이 되어 있습니다. 안 그렇습니까? 일반적인 신앙 흐름이 되어져 있는 겁니다. 그게 일반적인 신앙, 그 사람들이 그분들이 하나님을 배반합니까? 그분이 예수님의 대속을 부인합니까? 아닙니다. 그분들도 성경 읽고 하나님 두려워하고 예수님 대속 믿고 구주로 믿고 신앙생활 다 하는 겁니다. 연보하고 십일조하고 다 신앙생활 다하는 분들입니다. 그런데 그분들이 주일이란 개념은 그리 흘러나가면 그리 되는 겁니다. 이시대 누군가 와서 참 하나님 은혜로 완전히 뒤집어 엎는다는게 긍정적으로 개혁을 해서 성경으로 돌아가자 그래 갖고 주일은 이렇게 지키면 안된다고 그래서 교회가 대부흥이 일어나고 그게 전국적으로 퍼져나가서 교회들이 주일은 다시 지켜야 된다는 그런 흐름이 되어지고 그게 대세로 자리잡으면 또 그리 따라갑니다. 그게 시대라는 겁니다. 안 믿는 세상은 다 그런 것이고 신앙 흐름이란 것도 그리 되어서는 안되는데 일반적으로는 다 그렇게 되어지고 있다는 겁니다. 모든 생활들이. 아브람이 살던, 아브람이 하나님 앞에 부름을 받기 전에 살던 모습이 바로 이런 시대였다 이게 단정은 아니라도 그렇게 생각해볼 수 있는 겁니다. 일반적이고 보편적인 그런 걸로 하나님을 섬기는 그런 신앙생활이였는데 하나님께서 그대로 두지 아니하시고 부르셨으니까 부르시는 것은 지금 있던 그곳에서 떠나라, 그러면 떠나라 말은 장소도 떠나고 사람도 떠나고 환경도 떠나고 현재 신앙생활의 모습에서 떠나라. 현재 가지고 있는 인식도 바꾸고 사고방식도 바꾸고 선입적 관념도 빼내버리고 또 모든 생활 모습도 다 바꿔서 거기서 떠나서 내가 너에게 지시하는 곳으로 새로 가라. 방향 전환입니다. 새로운 출발입니다. 없던 것을 새로하는 것이고 지금까지 하던 것에서 더 앞으로 전진해서 새롭게 나아가는 겁니다. 방향을 바꿔서 나아가는게 아브람의 신앙 출발입니다. 이리 되어질때, 그래서 이 세상에 사는 모습은 이제까지 말씀드린대로 세상이 그렇게 되고 모든 세상 사람들이 그렇게 살아가듯이, 이거 또 한번 강조를 해야 되는데. 시대의 조류라는 것, 흐름이란 것은 거스르기가 굉장히 어렵습니다. 거의 불가능하다 할만큼 대단히 어렵습니다. 그래서 시대시대마다 그것을 깨닫고 거기서 벗어나서 한번 좀 바로 개혁을 해보려고 그렇게 세상 정치적으로도 또 경제 그런 면으로도 그렇게 하려고 고통받고 한 사람들도 많이 있고 다 유명한 사람들이 다 그래됐는데 그걸 거스리는 것은 아주 굉장히 강한 바람이 불때 그 바람을 거슬러서 나아가려 그러면 일반 바람이야 시원하지만은 태풍이 불면 그 태풍을 반대로 나아가면 몸이 못 견디지 않습니까? 홍수가 났을때 보면은 이번에 보니까 창원에서 시내 버스가 떠내려갔는데 일곱사람이 탔다가 떠내려갔는데 그 무거운 시내버스가 불과 그 강이 그래봐야 바다도 아니고 강인데, 보면은 강도 그리 큰 것 같지도 않은데 그 강이 물살이 세니까 그 버스가 둥둥 떠내려가서 교가에 받치고 그 안에 탄 사람들이 다 죽었잖습니까. 흘러가는 물결을 시골에서 사람의 무릎 좀 넘어서 허벅지까지 오는 물이 물살이 세게 내려오면 사람이 중심을 잘 못잡는다 그러지요. 센 물결로 흘러 내려가면 그 물결을 거슬려서 올라가는 것은 어렵습니다. 대단히 힘든 것처럼, 그 시대 전체 흐름이란 것을 거슬러 역류한다는 것은 굉장히 어려운 일이고, 그래서 아브람이 간단하게 기록되있지만은 그때까지 살던 75년을 살던 인식을 바꾸고 상식을 바꾸고 선입적인 관념 기존 지식을 바꾸고 속에서부터 바꿔야 되니까, 그리고 자기 생활 모습을 다 바꾸고 환경까지 다 바꾸는 것은 간단하게 기록되있지만은 쉬운일이 아니다 그말입니다. 대단히 어려운 일입니다. 우리들이 살아가는데서 외부적인, 이사 한번 가려하면 굉장히 어렵고 몇일 있다가 딴 데 갔다 오는 것도 준비를 많이 해야 되고 힘이 들고 그래서 좀처럼 사람들이 잘 안 움직이지 않습니까? 되도록 있는 자리 있으려 그러고. 전학을 하면 학생들이 전학을 하면 완전 새로운 교실 교사 친구들 환경에 적응해야 되니까 굉장히 힘듭니다. 나무를 뽑아서 옮기면 그 나무가 스트레스를 받아서 오래토록 그 나무가 자칫하면 죽고 만다는 거지요. 어릴때까지 좀 크고 나면은, 뭐든 마찬가지입니다. 어제 신문에 보니까 희귀동물, 멸종 직전의 희귀 동물들을 팔아가지고 돈 번 그런 사람들이 있다는데, 저 아프리카 같은데서 아주 희귀동물들을 몇천키로 몇만키로를 사서 수입해오는데, 인간이 잔인하기가 그 새나 이런 것들을 가방속에다 쑤셔놓고 가방 지퍼를 닫아놓고 몇날 몇일을 배 타고 비행기 타고 오면 그것들이 삽니까? 그래가지고 오는데 삼천 몇 마리를 그동안에 데려다가 팔아먹었는데 생존율이, 혹시 신문 보셨습니까, 어제? 0.1%. 99.9프로 다 죽었답니다. 삼천 몇백마리 데려왔는데 네 마리 살고 다 죽었답니다. 그래도 팔아먹고 돈은 벌고. 그래도 사고. 그것들이 거기 살던 환경에서 여기까지 오면 오는 도중에 바뀌고 숨 막히고 여기 와서도 어지간해서는 못 산다 그말이죠. 사람이든 동물이든 식물이든 환경이 바뀌면 적응하기가 굉장히 어려운 겁니다. 이게 아브람의 출발입니다. 그게 사람이기 때문에 바꾸는 것은 환경만 바꾸는 것이 아니고 생각부터 바꿔야 됩니다. 인식을 바꾸고 개념을 바꾸고 상식을 바꾸고 선입적인 관념을 바꿔야 되는데 사람이란 것이 유기적인 존재고 자유의지가 있고 이성이 있고 정이 있고 온갖 것들이 사람 속에 마음에 작용하는 그런 작용이 있는데 그 모든 것들이 오랜 세월 그 속에 틀이 박혀있고 자리 잡고 있는데 그것을 바꾼다는 것이, 그러기 때문에 세상적으로 바꾸는 것도 대단히 어렵고 이 세상이 없는 그런 것을 바꾸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울만큼 대단히 어렵다 그말입니다. 아브람의 신앙출발이 간단하게 기록되있지만은 아브람의 신앙출발은 완전히 방향전환한 것이고 전체가 다 바꾸어지는 것이기 때문에 굉장히 어려운 것이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대개는 다 그 시대를 주도하는, 그 시대에 모든 흐름 속에 따라서 가는 것이 모든 세상 사람들의 생활 모습이고 신앙생활도 대체적으로 다 그렇게 되어가고 있다는게 일반적이고 그런데 그중에서 일반적이지 아니한 믿음으로 가는 길이 있으니, 그 믿음으로 가는 길은 아브람으로 말하면 하나님께서 부르실 그때가 믿음으로 이제는 그때까지 믿던 그 믿음에서 다른 믿음으로 탁월한 믿음으로 돌아서는 그런 때고 방향 전환이 되는 것이고, 우리들로 말하면 부르심을 받을때가 보편적으로 믿다가 지금도 그렇습니다. 지금 우리 교인들이 신앙생활하는 걸 보면은 비교적 다른 교단에 비하면 주일 지키는 것부터 잘 믿는 편입니다. 새벽기도 나오는 것까지 계산해서 다 잘 믿는 편인데, 그런데 이렇게 믿어나가다가 보편적 벧엘 생활처럼 하다가 여리고로 가기 위해서 이렇게 믿어도 되겠는가 하나님의 능력을 봐야 되지 않겠는가 하고 산곡에 백합화 성도들이여 책을 보고 국법을 바꾼 주일학교 책을 읽어보고 백영희 목사님 전기를 읽어보고 나도 이렇게 살아봐야 되겠다 하고 오늘부터 성경을 한번 하루 한시간씩 적어도 읽어봐야 되겠다, 기도를 하루에 한 시간은 해야 되겠다. 내 생활을 고쳐 봐야 되겠다 하고 작정을 하고 한번 방향전환을 하려고 해보면 쉽습디까? 해보면 대단히 어렵습니다. 내가 지금까지 새벽기도를 못 나갔는데 한번 나가봐야 되겠다하고 작정을 하고 마음에 다짐을 하고 출발해보면 그게 얼마나 어려운지를 알게 됩니다. 그래서 말씀을 붙들고 말씀대로 살려고 실행해보면 말씀이 어려운 지 알게 되고, 그러나 실행을 해보면 그 말씀이 과연 살아있는 말씀인지 죽은 말씀인지 알게 된다 그말입니다. 믿음으로 가는 길은 순종하는 길이고 하나님 말씀으로 사는 그런 길입니다.
그래서 이런 신앙도 그렇고 자녀라는 것도 성경은 다산주의가 아닙니다. 성경은 다산주의가 아니고, 하나님이 주시는대로 낳는게 자녀 출산에 대한 성경적인 관입니다. 하나님께서 하나 주시면 열 가지고 싶은데 하나밖에 안 주시면 하나밖에 못가지는 겁니다. 둘 주시면 둘만 가지는 겁니다. 하나도 안 주시면 못 가지는 겁니다. 무조건 많은게 좋은 것이 아니고. 그래서 결혼해서 아이를 못 낳는 것은 잘못이 아닙니다. 노력해도 하나님이 안 주시면 노력하는데까지만 할 일이고 그다음 하나님께 맡기는 것이지, 그걸 두고 사람이 할 수 없는 범위까지 힘 쓰는 것은, 내가 아들 못 낳으니까 어떻게 다른 방법 써서 그거는 우리 할 일이 아닙니다. 주시는데까지만 낳는 겁니다. 다만 인위적으로 주시는데도 인간들이 그걸 막아서 강제로 없애버리는 것은 큰 죄가 된다 그말입니다. 뭐든지 그래서 설교할때도 들으실 때 평소 그 설교하는 사람의 평소 신앙사상을 가지고 들으셔야 됩니다. 설교하는 저 사람의 사상이 평소에 어떤 인식이냐가 중요합니다. 그래서 저 사람은 반세주의다, 그런 사상 가지고 있으면 세상에서 어떻게 말해도 그거는 세상을 반대하는 것인데, 저는 염세주의 반세주의가 아닙니다. 기독교는 염세주의도 반세주의도 아닙니다. 이 세상은 우리가 이용해야되는 용세주의고 이겨가야 되는 극세주의지 세상을 부인하는 것이 기독교 아니고 우리 복음이 아닙니다. 자녀 출산에 다산주의 아닙니다. 그렇다고하여 인위적으로 산아제한하는 것도 틀린 겁니다. 어떻게 할 것인가? 하나님이 주시는만큼 낳는 겁니다. 그리고 어려워도 기르는 겁니다. 결혼은 조혼 만능인가? 성경은 조혼주의인가? 조혼주의라고까지는 말할 거 없고. 그러면 만혼하면은 죄가 되는가? 서른살에 결혼하면 죕니까? 사십에 결혼하면 죄가 되는 겁니까? 아닙니다. 서른이든 마흔이든 늦게 결혼하는게 죄 되는게 아니고, 일찍 결혼하는게 무조건 다 좋은 거 아닙니다. 전체적으로 비유를 따져서 할 수 있으면, 가능하면 가장 중요한게 사람 선택이니까 사람만 있으면 일찍 하는게 좋다는 겁니다. 확률적으로 그러하고 성경적으로 전체를 따져볼때 워낙 죄악이 많고 험하니까 일찍 하는게 장점이 많고 유익이 많다는 것이지, 일찍한다고 해서 다 좋은게 아닙니다. 일찍하는데 대해서 부작용도 대단히 많습니다. 늦게하는 장점도 없지 않습니다. 있는데, 전체를 두고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이냐를 따져볼때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람 이성면에서 깨끗한 것이 가장 중요한 것이고, 또 일찍 결혼하면 그만큼 자기도 미혹을 덜 받고 미혹 주는 것도 덜하니까 다른 여러 가지 어려움과 부작용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래도 늦게 하는 것보다는 일찍하는게 좋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따져보고 상대적으로 좋은 것을 취하는 것이 당연한 겁니다. 하고 싶어도 하나님이 허락지 않으시면 못하는 겁니다.
제가 아는 어떤 목사님도 서른살에 결혼했습니다. 유명한 목사님인데. 백목사님께서 아주 기뻐하신 그런 목사님인데 서른에 결혼했습니다. 일찍하는게 무조건 좋은거 아니고 늦게 하는게 무조건 나쁜게 아닙니다. 전체적으로 볼때 그래도 할 수 있으면 맞춰서 일찍가는 것이 좋지 않겠느냐. 더구나 요즘같은 시대 흐름에는 전부다 나이는 어리고 정신연령은 어린데 이 덩치는 모두 커서 그리 되어있으니까 온갖 죄를 다 짓고, 우리 공회 우리 교회 아이들은 그래도 믿음 가정 안에 있는 우리 학생들 청년들은 그래도 비교적 깨끗한 편입니다. 그런데 바깥 세계 나가보면 교회를 떠나서 교회든 교회 안이든 한마디로 말하면 엉망진창이고 소돔 고모라보다 훨씬 더한 이 세상이 되어 있습니다. 그런 상황이기 때문에 아주 처녀들을 나이 늦게까지 들도록 그냥 두는 것은 대단히 죄는 아닌데 위험천만한 일이고 길거리에는 늑대같은 인간들이 우글거리고 있으니까 대단히 위험한 것이고 남자들은 본의아니게 늑대가 되어가니까 대단히 위험하니까 가능하면 일찍하는게 경제라든지 직장이라든지 살림살이 이런 것들은 선택사항이고 인식에 따라서 달라집니다. 사람의 행복이란 것이 뭔가? 사람의 행복은 아이들 옛날말에 행복은 무슨 순이 아니라고요? 행복은 학교 성적순이 아니라던가요? 행복은 돈 많은 순위가 아닙니다. 인간의 행복이란 것은. 그러니까 결혼이란 것은 하는 것이 보편적이겠고, 한다면 가능하면 일찍하는게 좋겠고 사람 선택만 되고 나면 그다음에는 경제나 직장이나 학업 이런 것들은 그 다음에 형편 맞춰서 천천히 맞춰서 가면 되는 겁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원하시는 선한 길을 따라 믿음으로 순종하면 무조건 복입니다 그거는. 하고 나서 보면. 그래서 오늘 주일학교 설교에 그것 참 마음에 들던데. 하나님 말씀이면 명령이면 무조건 순종하고 보는 겁니다. 어른들 말을 들으면, 000, 뭐가 생긴다고요? 어른들 말들으면 뭐가 생겨요? 잠을 자다가도 떡이 생긴데요. 저 어릴때 참 많이 들은 말입니다. 부모님께. 어른들 말 들으면 자다가 떡이 생긴단다. 무조건 좋은 일이 생긴다 그말이지요. 하물며 전지전능하신 하나님 말씀을 순종하면 무조건 좋은 겁니다. 그러니까 하나님 말씀이면 무조건 순종을 하고 보면 됩니다. 그래서 우리가 인식을 그렇게 가질때, 제가 설교할때도 오전에 강아지도 좀 했는데, 강아지 기르면 안됩니까? 저도 사택에 앵무새를 네 마리나 기르고 있는데요? 누가 갖다줘서. 강아지 기르면 안되는 겁니까? 얼마든지 기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제가 말하는 것은 길거리 나가보면 강아지 끌고 다니면서 남한테 아주 피해주는 사람들. 강아지 배설물 그냥 던져놓고 가는 사람들, 그런 사람들 주로 염두해두고 말하는 겁니다. 그 사람들이 대개 보면, 그 사람들 다는 아니고 그중에서 보면 몇몇 사람들 보면은 강아지 죽었다고 무덤 만들어주고 일주일이 지나도록 강아지가 생각나서 잠도 안오고, 그게 정상입니까, 그게? 개구리는 잡아다가 사지를 절단해서 껍데기 산채로 벗겨놓고 눈을 껌뻑껌뻑하는걸 입으로 먹으면서, 웃으면서 먹습니다. 사진보니까. 먹으면서, 개 잡아먹는다고. 개를 애완견 잡아먹습니까? 식용을 잡아먹지. 그것도 사람 취향에 따라 그런 것이지 문화가 다르면 아 그 나라 문화는 그런가보다 하고 마는 것이지 그걸 가지고 뭘 대모를 하고 시위를 하고 그게 다 지나친 것이고 생각이 틀려 먹은 것이다 그말이지요. 인식이란 것은 대단히 중요한 겁니다. 그래서 설교할때도 제가 좀 과격하고 단순한 면이 있어서 강하게 말씀을 드려도 그 앞뒤를 다 생각을 해서 원래 제 인식은 그게 아니니까, 다만 자녀 출산을 두고는 하나님이 주시는대로 낳는게 좋다, 복이 된다, 결혼도 가능하면 빨리하는게 좋다, 늦게 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면 무리해서 빨리할 것 아닙니다. 할 수 있으면 하는 겁니다. 그런데 늦게 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면 늦어지는 게 순리입니다. 그게 하나님의 뜻이고, 그거는 진리가 아닌 겁니다. 절대 진리가 아니고. 맞춰서 그리 하는 겁니다. 그래서 이런 것도 들으실 때, 좀 아시고, 제 인식이 그러니까 그렇게 들으시면 좋겠고.
그래서 그런 관이 말이지요, 관이. 결혼식도 그렇습니다. 결혼식도 아주 뭐 호텔에서, 몇천만원짜리 호텔을 가지고 몇천만원 꽃을 꾸며가지고 몇천만원짜리 옷을 입고 그래가지고 그렇게 호화찬란하게 해야 되는가? 간소하게 하면 안되는가? 그러니까 우리나라 사람들이 벼락 부자가 되놓으니까 가난에 포언이 져서 그렇게 하는데 외국에 선진국에는 다 일반적으로 결혼식 아주 간단하게 한다 그러지요? 독일 같은 나라, 우리나라보다 훨씬 오래전부터 잘 사는 나라인데 그 사람들 결혼식 가족들 모아놓고 간단하게 하는 사람도 있고 안하는 사람도 있고 법원에 가서 혼인신고 하면 끝이랍니다. 우리 가서 우리 둘이 결혼합니다 하고 시청가서 혼인신고 하면 결혼 끝. 간단하게 식구들 모여서 그만 찬송하나 부르고 기도하면 끝. 허례허식이란 것은 그게 결코 모든 면에서 좋은게 아니니까 그런 것도 하나의 인식입니다. 굉장히 문화적이고 선진적이고 발전된 인식 아닙니까? 성경 찾아보면 다 그렇게 되는데. 이런 것들을 우리 나라라는 이 시대, 세상이란 여기서 그런 관을 가지고 해나가려하니까 사람들이 전부 우습게 보는 겁니다. 비웃고 조롱을 하고. 그렇게 빨리 해? 왜 그렇게 아이를 많이 낳아? 아이를 대학을 안 보내? 직장을 대기업을 가야지, 갈 수 있는데 왜 중소기업을 가? 사업을 왜 그렇게 해? 주일날, 대목장에 주일날 문을 닫아? 밤예배 간다고 대목에 그렇게 일찍 가게 문을 닫아버려? 세상 사람들이 볼때 믿음의 길이란 것은 이 세상을 중심으로 목표 목적으로 하지 않고 하나님을 중심에 두고 그 분의 뜻을 찾고 그 분 원하시는 우리 자체 구원을 두고 천국을 소망하기 때문에 그 믿음으로 가는 길을 세상 속에서 가려 그러면 비합리적이고 비상식적이고 비인식적이고 통계에 안 맞으니까 거슬러질 수 밖에 없는 것이고 이거는 당연한 것입니다. 그럴때 우리가 그것을 해결하는 방법은 무엇인가? 해결하는 법은 첫째, 그보다 먼저 왜 믿음으로 가는 길이 어려우냐? 그 어려운 이유를 찾아보면 첫째는 자기 문제, 자기 문제는 몇가지라 그랬습니까? 가만히 생각해보면 자기 안과 밖의 문제입니다. 자기 속에 들어있는 자기 지식, 마음의 문제 인식과 상식과 선입적인 관념 기존지식 이런 마음의 문제 악성이라 그럽니다. 그런 문제하고, 하나는 그대로 자기 몸에 익어진 환경에 익어진 자기 눈이 그렇게 익었고 귀가 익었고 입이 익었고 우리나라 요즘 신문을 너무 자주 인용하는데, 하다보면 나오는데 우리나라 물의 종류가, 물, 마시는 물 말이지요. 사람을 물 같이 보냐? 그렇게 흔한 그 물인데, 그 물이 음료수보다 비싼 시대가 왔는데, 오래전부터 온다 온다 그러더니 왔는데, 그 물의 종류가 굉장히 많답니다. 그런데 많은 물의 종류를 갖다놓고 사람들에게 이 중에서 가장 맛있는 물을 찾아보라고 물 전문가한테, 전문가라던가 사람들인가, 골라보라 그러니까 하나를 고르는데 그 물이 어떤 물인가. 어떤 물이겠습니까? 백두산에서 가져온 거요? 프랑스 알프스 산 밑에서 퍼온 것도 있고, 제주도에서 가져온 물도 있고 백두산에서 가져온 물도 있고 오만 종류의 물이 다 있는데, 가장 맛있는 물이 어떤 물인가를 고르니까 어떤 물이라고요? 사람들이 가장 많이 마시는 물, 입에 가장 익은 물. 그물이 가장 맛있다 그러더랍니다. 사람들이 많이 먹어서 오래토록 입에 익은 그 물맛이, 그 물을 가장 맛있는 물로 다 골라내더랍니다. 거의 대개가 다. 분유회사 이야기 아시지요, 분유. 아동병원 산부인과 병원에 아주 저렴하게 분유를 기를 쓰고 넣어주는데 아이 태어날때부터 분유를 모유 안 먹이고 분유 먹이는 그것이 어릴때부터 태어나자마자 그것 몇 달먹고 나면 그다음부터는 아기가 그 분유 그 우유만 찾는다 그러지요. 다른 건 안 찾는답니다. 그래서 기를 쓰고 그렇게 한다 그러지요. 사람의 입맛이라는 겁니다. 그런것이 말하자면 자기, 이 세상 속에 자기 몸이 익어지는 겁니다. 눈이 익고 귀가 익고 입이 익고 우리 피부가 환경 속에서 익어지는게 인간입니다. 그래서 사람이란 것은 적자생존의 존재. 환경에 적응하는 그런 존재라 말이지요. 하나님께서 그렇게 만들어놓으신 겁니다. 그런 것을 자기 마음 속에도 그런게 되어있고 몸도 그렇게 익어져있는데 이걸 벗어나서, 깨버리고 벗어나기가 대단히 어렵다 그말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걸 알고 이것을 빼내야 됩니다. 백목사님께서 가장 좋아하시는 찬송 하나가 몇장이라고요? 5장, 참 많이 불렀습니다. 복의 근원 강림하사 많이 불렀고, 백목사님께서 정하신 찬송의 가치는 제일 은혜있고 좋은 찬송이 몇장입니까? 1장, 그다음에 2장, 그다음에 3장 그런 순서로 나갑니다. 그런데 앞에 거는 좀 특별한 거고 5장 찬송을 가장 많이 부르셨고, 다른데 또 하나 많이 부르신게 136장을 참 많이 불렀습니다. 언덕을 떠나서 창파에 배 띄워. 그러니까 내 주 하나님 넓고 큰 은혜는 그 찬송. 그러기 때문에 자기를 부인하는 것. 기존 지식과 선입적 관념, 몸에 익어진 것을 다 부인하는 것이 언덕을 떠나는 겁니다. 언덕을 떠나서 창파에 배 띄워서. 그리고 내가 부인한다 그래도 나는 성경적으로 믿음으로 하려 그래도 내 밖에 있는 온 세상이 전부, 조직과 제도와 문화와 분위기 유행 전부다가 그리 되있으니까 거슬러 나가기가 대단히 어려운데 그렇지만은 그것을 거슬러 나가는 것이 믿음의 길입니다. 노아 홍수때 온 세상을 다 전멸시킨 물을 노아는 믿음으로 방주를 타고 세상을 정죄하고 믿음을 좇은 의의 후사가 되었던 것처럼. 그 뒤에 후손들 자손들이 애굽에서 나와가지고 홍해 바다를 갈라뜨리고 간 것처럼, 홍해바다를 갈라뜨린 것은 세상을 깨버린 겁니다. 죽음을 깨버리고 넘어서 간 겁니다. 요단강을 갈라서 이 세상 죽음을 깨버리고 들어간 것처럼, 베드로는 어떻게 했습니까? 바다위를 걸어갔습니다. 이 세상을 밟고 가는 겁니다. 신앙이란 것은 이 세상을 하나님의 능력으로 자기에게 주어진 세상, 온 세상 6천년을 집어삼킨, 전인류를 집어삼킨 세상을 믿음의 능력으로 깨버리든지, 자기 앞에 닥친 악령의 그 모든 역사를 깨버리든지 자기 속에서부터 깨야 됩니다. 내 속에 기존지식과 선입적 관념과 상식, 그거 지난주일에 지식을 많이 말씀드렸는데 인간지식을 파고 들어가보면 그거 별 것 없습니다. 들어가고 들어가고 들어가보면 결국 인간의 범위안이고, 그런데 그게 워낙 오랜 세월에 온 세상 인간을 많이 점령을 하고 구석구석 뻗어들어가있으니까. 정권이 한번 바뀌고 나면은 나라의 정권이 바뀌면 그 나라에 대통령이 가진 권한의 요직은 수천명이 바뀝니다. 도지사가 바뀌면 그 도지사 권한 안에 있는 사람들 거의 대부분 바꿔버립니다. 자기한테 맞는 사람으로. 그래서 밑에 사람들이 기를 쓰고 자기 사람 채우려고 애를 쓰는 겁니다. 그런데 인간 지식이 그래서 이것 뭐 세상 이야긴데, 소위 말하는 좌파가 정권 잡아서, 10년 동안 정권 잡아가지고 구석 구석 좌경 그런 좌익 사상에 있는 사람들을 온갖 곳에 다 심어놓으니까 그거 끝난지 벌써 10년이 넘었습니까? 그런데도 아직까지도 그런 사람들 곳곳에 자리 잡아서 얼마나 많은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까? 인간의 지식이 온 세상을 사로잡기를 6천년 사로잡고 온 세상 점령하고 있는데 그 인간 지식을 그런 인간 지식이 내 머리 속에도 어떤 아이는 10년, 10년 동안만 머릿속에 들어간 그것도 빼기 어렵고, 20년 동안 하나님의 지식없이 20년 동안 인간 지식만 집어넣은 그 사람을 하나님의 지식으로 바꾼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합니다. 그래서 믿음의 길을 바로 가지 않고 잘못된 신앙길에 들어서서 이름만 믿는다는 이름 가지고 대학을 다니는 그 사람들 청년들의 신앙관을 바꾸는 것은 하나님의 특별한 능력 아니면 불가능입니다. 안된다고 보는 것이 맞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주일학생들 어릴때 교육이 굉장히 중요합니다. 우리는 이 복음을 받은 사람들이니까 내 속에 들어있는, 그러기 때문에 생각을 하라는 겁니다. 생각이라 말은 비교하라 말이고 연구라는 말이고, 비교하면 뭐가 나옵니까? 두 개 놓고 비교하면 뭐가 나옵니까? 비교하면 가치 평가가 나오는 겁니다. 시간적으로 어디까지 가느냐. 범위적으로 어디까지 가느냐. 결과가 어떻게 되느냐. 내가 알고 있는 인간 지식의 결과는 어떠하며, 내가 배운 하나님의 지식 가지고 나가는 그 결과는 어떠하겠는가를 따져서 생각해보면 비교해보면 살펴보면 나오는 겁니다, 답이 환하게. 그런데 안 하거든요 사람들이. 그래가지고 인간 지식을 내 속에 있는 이 세상과 같은 기존 지식과 선입적 관념, 이 세상과 같은 그런 것을 깨버리고 내 몸에 익어진 것도 세월속에서 깨버리고. 그래도 내 밖에는 너무 강한 것이 있는데 나만 바뀌면 확신하면 내 밖의 것은 이길 수 있습니다. 그걸 넘어가면, 그래서 이걸 넘어가는 방법은 자기와 세상을 일단 부인하는 겁니다. 자기와 세상을 부인하고 그다음 하나님 말씀이면 무조건 순종하는 겁니다. 순종하고 보는 겁니다. 그러면 길은 생기기 마련인데, 하나님께서 이렇게 우리에게 믿음의 길을 어렵게 하신 목적은, 이유는 하나님은 자존하신 분, 전지전능 완전자인데 우리를 사랑하시는 분인데, 가장 자비하시고 긍휼히 여기시는 그 하나님인데 왜 그분이 우리에게 이렇게 세상을 믿음으로 살아가기 어렵게 만들어 두셨는가? 하나님이 없는 세상, 하나님 부인하는 이 세상에서 하나님 말씀을 세상과 자기를 부인하고 믿음으로 순종하는 그 순종을 통해서 하나님 한분이면 모든 것이 다 된다는, 하나님 한분만으로 전부 삼는 그런 우리 믿음의 사람을 만드시기 위해서 이 세상을 그렇게 믿음과 배치되고 반대되고 비합리적으로 만들어두신 겁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 세상이 어떠해도 하나님의 말씀을 믿음으로 받아들여서 마음속으로 믿고 그 말씀에 순종해보면 세상이 어떠하며 하나님이 어떠하신 분인걸 확신하고 알게 됩니다. 그러기 때문에 믿음의 길은 행함으로 가는 길이고 살아봐야 가는 것이지 그래서 말씀하시기를 너희가 내 말에 거하면, 말씀대로 살아보면 참 내 제자가 된다, 정말 주님 닮은 주와 같은 사람이 되어지고 그러면 진리를 깨닫게 되고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해서 온 세상을 다 집어삼킨 6천년 역사 인간 지식도 넘어서고 그 세상도 넘어설 수 있는 그런 언덕을 떠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진다는 겁니다. 해보지 않고는, 가보지 않으면 모르고 먹어보지 않으면 모르고 행해보지 않으면 알 수 없는 것이 신앙의 길입니다.
오늘 믿음으로 가는 길에서 몇가지 어렵지 않는 말씀이고, 생각해보면 상식이고 그럴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가만히 생각을 하고 우리에게 보여주신 이 길을 믿음으로 가는 우리가 되도록 하십시다.
다같이 통성으로 기도드리겠습니다.
고집이란 것은 신앙생활에 쓰는 겁니다. 견집은 대단히 중요합니다. 아나마와 스닐과 헤르몬 산 꼭대기 견집의 산이 있는데, 견집은 중요하나, 자존심이 중요하나 쓸데없는 자존심은 허영이고 교만입니다. 좋은 고집은 가져야 되고 좋은 자존심은 가져야 되고, 가치없고 쓸데없는 자존심 고집은 버리는 것이 또 자기 위해서 좋고 신앙입니다. 믿음으로 가는 길에 맞지 않는 인간 지식 선입적 관념, 자기 속에 익어진 것, 모든 세상을 부인하고 순종하는 우리가 되도록 하십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