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817-주후(롬8:1-17)
영을 통한 심신 구원의 역사2014-08-19조회 294추천 25
설교원문
20140817 주후
로마서 8:1-17
오전에 크게 첫 번째 말씀드린 것이, 하나님의 목적을 말씀을 드렸습니다. 하나님 목적이 뭔가? 같이 한번 해보시겠습니다. ‘하나님의 목적’. 부모의 영광은 무엇입니까? 부모의 영광은 무엇입니까? 부모님 되신 분들, 부모님 영광이 무엇입니까? 부모 영광은 자녀입니다, 자녀. 또 선생님의 영광은 제자겠고, 왕의 영광은 백성입니다. 백성이 없는 왕은 왕이 이름만 왕이지 힘이 없는 왕입니다. 세계에는 여러나라 몇 개국이 있는지 모르겠지만은 대략 어림잡아 2백여개국, 맞습니까? 2백개국정도. 나라가 한 2백개 정도 있을 겁니다. 그런데 그 중에는 아주 작은 나라도 있고 큰 나라도 있어서 미국같은 나라는 인구도 인구지만은 땅도 땅이고 여러 가지로 세계 강대국이 되어있으니까 미국 나라의 대통령은 영광이 많고, 같은 나라라는 국가라는 이름이 붙고, 예를 들어서 UN에 가입해서 한 회원국으로 뭔가 회의하면 의결권을 같이 가진 그런 한 국가라 해도 작은 나라, 세계에서 제일 작은 나라는 무슨 나라입니까? 도미니카 공화국. 맞습니까? 비타칸은 그 이름이, 그래도 실제 나라 아니잖습니까. 독립되도 바티칸이라는 거는 교황청 말하는 것 아닙니까? 로마 교황청. 그거는 좀 빼야 될 것 같은데. 빼고, 어쨌든 작은 나라 있습니다. 아주 소국, 작은 나라. 그런 작은 나라는 왕도 왕이고 백성도 있지만은 워낙 작으니까, 땅덩어리도 작고 백성수도 작으니까 힘도 없고 그만큼 영광도 작은 겁니다. 부모님이, 부모가 결혼해서 아이를 낳으면 많이 낳을수록 무조건은 아니지만은 영광이 크고 많을 가능성이 높고, 또 스승의 위치에 있으면 그 밑에서 배운 제자들이 많을수록 스승의 영광이 큰데, 물론 당연히 자녀를 많이 낳아서 잘 되어야 되지, 많이 낳은 자녀가 낳는 족족 아무짝에도 못쓸 그런 아이들만 나면 참 큰 문제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일반적으로 보면 대체적으로 전체적으로 보면 가정에 아이가 많으면 자녀들 많은 형제 많은 아이들이 빗나가는 경우는 별로 없습니다. 지금도 아마 그거는 크게 달라지지 않을 겁니다. 그래서 결혼하면 어쨌든 목표를 다산주의는 아니지만은, 하나님께서 주시는만큼 낳을 수 있는데까지 낳고, 그다음 세월이 많이 지나면 그때부터는 부부가 생활을 조절하고 절제해서 안 낳으면 그때부턴 이제 괜찮은 것이고, 그러면 하나님이 주시는대로 다 선물도 받고 죄도 안 짓고 그리되는데, 부부가 자기들 누릴 재미는 다 누리면서 가족계획을 딱딱 해가지고 그리 하면은 그에 상응하는 하나님의 보응을 받을 수가 있다 그말이지요. 그래서 성경적으로 보면은 결혼은 빨리 하는게 좋고, 무조건은 아닙니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빨리 하는게 좋고, 또 자녀는 하나님이 주시는만큼 주시는대로 낳는 것이 좋고, 또 가정은 남편이 이끌어나가는게 정상이고 아내는 뒷받침하고 돕는 배필로 하는게 정상이고 이런 성경적인 개인 사람의 모습이든지 가정의 모습이든지 부부의 위치든지 이런 것들이 기본적으로 정해진 게 있습니다.
사람이란 것은 하나님께 지으심을 받은 피조물이고 사람의 제일되는 목적이 뭐냐, 사람의 첫째되는 목적은 하나님을 영원토록 영화롭게 하는 것이 사람의 제일되는 첫째되는 목적입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만드신 이유가 목적이 바로 그것 때문에 만드신 겁니다. 그래서 인생으로 나서 하나님의 은혜가 없어서 택함을 받지 못한 그 사람들은 하나님 은혜가 없으니까 어찌할 수 없지만은 하나님의 은혜로 택함을 받은 성도 같으면 하나님을 아는 것이 가장 기본이고 중요하고 동시에 전부가 되는 것인데, 이걸 세월이 지나서 시대가 변하고 환경이 다 변하니까, 환경이 변하고 환경따라 사람이 변하고 또 사람들이 변하니까 교회들이 변하고 믿는 사람들까지 변해버리는 것은 그게 뭔고 하니, 소금이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겠느냐 땅에도 거름에도 쓸 데 없어 밖에 버리워 사람에게 밟힐 뿐이라, 이거는 소금을 하나 예를 들어 말한 것이지, 기독자를 말하는 것이고 이거는 비단 기독자들도 해당되지만은 이걸 응용하면 세상 모든 이치에 전부다 해당이 되는 겁니다. 사람이 사람의 본모습을 잃어버리면 그 사람은 사람으로서는 쓸모가 없게 되는 겁니다. 사람이면 기본적으로 사람의 본모습을 하나님이 만들어놓으신 택자의 본모습 또는 불택자라도 사람의 본모습은 가지고 있어야, 그래야 사람답게 대우받고 그리 되는 것인데, 사람이 사람의 본질 본성을 잃어버리면 사람으로서의 존재 의미나 가치는 없기 때문에 멸시천대를 받을 수 밖에 없는 겁니다. 사람만 그런 것이 아니고 모든 물질 물건들도 다 그러한 겁니다. 그게 자연적인 것이든지 사람이 만든 인공의 것이든지, 그것은 모든 존재라는 것은 그 존재의 본질 본성이 있는데 그것을 잃어버리면 그 존재로서는 쓸모가 없게 되는 겁니다. 이것은 비단 사람 자체 존재 자체만 그런 것이 아니고 주어진 자기 위치도 역시 그러합니다.
좀 비유가 안 맞는데 이거는, 회계를 맡겨놨더니, 예를 들어 어느 회사에서 경리를 보라고 맡겨놨더니 그 경리가 자기 맡은 경제를 가지고 돈을 살살 빼먹고 그러면 그 사람은 경리가 아니고 도둑놈이고, 그 사람은 거기서 쫓겨나는게 당연한 것이고 처벌을 받는게 마땅한 것입니다. 선생님으로 세워놨는데 학생들을 가르치지는 아니하고, 그냥 가르치는 그 시간은 대충 떼우고 월급이나 받고 자기 다른 것으로 그 시간을 채워나가면 그 사람은 선생님으로서의 자격은 없게 되어지는 겁니다. 부모라면, 아버지라면 아버지의 주어진 책임이 있고 의무가 있고 역할이 있는데 그걸 못하면 아버지로서의 자격이 없는 것이고 그리 되면 그것은 자녀들에게나 사람들에게 이미 맛을 잃어버렸기 때문에 멸시천대를 받을 수 밖에 없는 것이고, 어머니도 역시 그런 것이고, 남편으로서의 위치는 남편은 아내를 책임지고 가정을 돌보는게 남편인데 그 남편이 아내에 대한 책임을 져버려 버리면 그 남편은 남편으로서 가치가 없는 것이고 멸시천대를 받는 것이고 아내도 역시 마찬가지로 그러합니다. 성경적으로 남자 역할이 있고 여인의 역할이 있는데, 그 역할을, 하나님이 원래 만들어놓으신 그 역할을 잃어버리면 그게 바로 소금이 맛을 잃는 것이기 때문에 종례에는 멸시천대를 받을 수 밖에 없다. 시대가 변해서 여성들이 사회활동을 많이 하고, 그래서 남자들이 다 직장이 없어가지고 쩔쩔 매는 그런 시대가 되어있는데 이것도 시대 흐름을 우리가 역행을 해서 일부러 그럴 것은 없지만은, 이것도 성경적으로 따져보면 정상적인 그런 모습은 아닙니다. 사회활동, 외부활동 외무는 남자들이 하는 것이고, 여인의 원래 의무는 돕는 배필로 남편 뒷바라지 하고 자녀를 주시는대로 많이 낳아서 잘 길러 가정을 이끌어가는 것이 여인의 첫째 책임이며 의무며 임무며 주어진 본분이며 역할이고, 그게 가장 중요한 것입니다. 그걸 빼놓고 다른 걸 아무리 잘해도 본질 본성을 경시해버리면 나중에는 대단히 위험하기가 쉽다 그말입니다. 이런 것들은 지극히 상식적이면서 기본적인 것이기 때문에 모든 것은 다 기본이 잘못되면 다 무너지게 되는 건데, 이거는 건물만 그런 것이 아니고 나라도 가정도 사랑도 다 그리되어지는 겁니다. 이런 것들은 시대가 변한다고 해서 변하는 것이 아닙니다. 어느정도 그 시대 흐름에 따라서 맞출 그런 필요가 없지는 않지만은 근본적인 그런 것은 잊어버리면 안된다 그말입니다. 그래서 뭐든지 성경대로만 하면은 다 복이 되고 유익이 되게 되어있습니다.
하나님의 목적이 뭔가? 하나님의 목적은 한말로 말하면 하나님의 영광인데, 그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그래서 부모님의 영광은 자녀고, 많은 자녀고, 잘된 자녀고, 스승의 영광은 제자가 많은 것이고 그 많은 제자가 잘 되는 것이고, 왕의 영광은 백성이 많은 것이고 그 백성들이 배부르게 잘 먹고 잘 사는 겁니다. 지금 북한 같은 나라는 굶어죽는 사람 많고 백성들은 어렵고 위에 왕만 잘되고 있으니까 온 세계가 들어서 욕을 하고, 자꾸 도망을 치지 않습니까? 솔로몬 시대에는, 다윗 시대에는 백성들이 자꾸 모여듭니다. 살기 좋으니까. 그러면 숫자가 많아지니까 왕이 영광이 되는 것이고. 아합 시대 그런 때는 백성들이 전부다 도망을 다 쳐버립니다. 그래서 자기 나라를 떠나는 백성이 많다 말은, 왕의 수치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은 하나님께서 많은 존재를 만드셔서 그 많은 존재가 다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 은혜를 받아서 감사하고 하나님께 영광을 영원토록 돌리고 그러므로 하나님은 무한하신 분이니까 필요한 은혜를 얼마든지 주고 주고 자꾸 주므로 하나님은 주어서 기쁘시고 또 받는 존재들은 받아서 감사하고 영광돌리는 이 돌아가는 것이 계속 돌면서 주고 주고 주고 주고 받고 받고, 주니까 기쁘고 기쁘고, 받으니까 감사하고 감사하고 그러니 또 주고 또 받고 감사하고 또 주고 또 기쁘고 또 받고 또 감사하고 하는 이것이 사람이 먹고 입고 자고 뱅뱅 도는 것처럼 그런 것들이 아니고 그렇게 점점 하면서, 마치 어린 아기가 젖먹고 놀고 자고 밥 먹고 놀고 자고 그렇게 계속 되는데 그렇게 계속 되는 속에서 변화되는 것은 무엇입니까? 젖먹이 어린 아기를 젖을 자꾸 먹이면 먹고, 좀 표현이 죄송합니다만은, 먹고 싸고 놀고 자고 먹고 또 배설하고 놀고 자고 그렇게 계속 돌면은 하루 종일 있어봐야 먹는 것 노는 것 자는 것 먹는 것 노는 것 자는 것 이것밖에 없잖습니까? 변화가 없지요. 웃고 떠들고 놀다가 배고프면 먹고 자고 그리하는데, 그렇게 매일 되풀이되는 그 생활속에 변화되는게 뭡니까? 그 아기가 점점 자라가는 거지요. 자라가면 점점 사람의 모습을 껍데기로 갖추어져 가는 것처럼 하나님의 은혜를 자꾸 주고 받으면 주시므로 기쁘시고 받으므로 감사하고 영광돌리고 이 뱅뱅 도는 그 속에서 받아누리는 우리는 점점 점점 하나님의 형상으로 자꾸 세월속에서 영원토록 자라가고 닮아가는, 이 구원 역사가 이루어지는 이것이 천국 건설이고, 그런데 이것이 무한이기 때문에 끝없이 계속 되는데 이걸 하나의 글자로만, 문장으로만, 그냥 하나의 설교로만 듣지 마시고 이 말씀 들을때 무한이라는 그 단어 하나를 가지고 생각을 해서 연구해서 파고 들어가봐야 됩니다. 무한이 뭐냐? 무한이라 말은 한이 없다는 말이니까, 시간도 한이 없고 범위도 한이 없고 또 영원도 끝이 없다는 말이니까, 우리가 무한히 영원히 자라간다 그러면 어디까지 자라갈 것인가? 자라가면 어떻게 자라갈 것인가? 사람이 키가 자꾸 자라면 하늘에 닿겠습니까, 우주에 닿겠습니까? 이런 차원이 아니고 지식이 자꾸 자란다 그러면, 그 지식의 범위가 듣고 배우고 듣고 배워서 자라가면은 사람의 수명이 한계 되어서 다 못 자라가지 머리 좋은 사람들이 자꾸 듣고 공부하고 배우고 익히면 그 머릿속에 얼마나 많은 것이 들어가게 될 것이고, 그 머릿속에 수많은 것이 들어가있으면 그걸 가지고 생각을 하고 연구하고 하면 거기서 오만 것이 다 나올 것이고, 온갖 게 다 이루어지게 될 것이고, 그리되는데 우리가 하나님의 형상으로 닮아가는 것이 하나님 같은 그런 분으로 점점 자라가는데 그분이 완전자기 때문에 영원하고 무한하니까 우리가 자라는 것도 아무리 자라고 자라고 자라도 끝없이 자라간다 그말이지요. 아마 보통 사람이 천재적인 그런 사람들이 만들어놓은 세상에 현재 이 세상에 나와있는 지식이란 것은 다 유한한 지식인데, 그 지식을 다 알려 그러면 평생이 아니라 수십 평생을 살아도 현재 세상에 나와있는 그 지식을 다 머릿속에 다 담지는 못할 겁니다. 그런데 하나님 같은 자가 되는 거기는 우리는 지식적으로 또 지혜적으로 또 인품적으로 완전으로 영원 불변으로 무한으로 그분 닮아가는게 어디까지 되어져 가는지, 그게 영원토록, 그러니까 사람이 점점, 어린 아이가 점점 자라가자고 하루 하루 자라고 한달 지나니까 다르고 1년 지나니까 다르고, 사람의 모습을 갖추어 가는게 점점 달라 변화되어서 자라가는 그 모습보고 참 재미가 있고 보람도 느끼고 그리 되듯이, 사람이 점점, 몹쓸 사람이 점점 쓸모있고 가치있는 사람으로 점점 바꾸어져 가는 그런 모습이 참 귀하고 좋게 그렇게 보여지듯이, 지식을 배워가면 하나하나 알아가는 그것이 재미가 있듯이, 우리들이 인격적으로 하나님을 닮아가는 그 맛이 우리가 다 느끼지 못해 그러하지 참 좋은 것이고 영원토록 이게 계속이 되어지는 겁니다.
그래서 천국 건설, 하나님의 목적이란 것은 바로 이런 것을 말하는 겁니다. 생각을 해야 맛이 있는데, 어떤지 모르겠습니다. 생각을 해서. 그래서 하나님의 목적은 말하자면은 하나님을 알리고 하나님이 아닌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하나님을 알리고 그 백성들을 하나님 같은 사람을 만드시고 그래서 그에게 하나님이 은혜를 주시면서 은혜를 주시므로 하나님은 당신 닮은 사람을 더 만드시고 받아 누리므로 하나님 닮은 사람이 더 되어져 가고 그러므로 하나님께 감사하고 찬송하고 영광 돌리는 이 생활이 영원토록 계속 되는게 천국의 모습이고 천국 건설이고 이것이 하나님의 뜻이며 하나님의 목적이다 그말입니다. 이게 하나님 목적입니다.
그다음 두 번째 이 목적을 위해서 반드시 가장 중심적으로 필요한 존재가 무엇인고 하니, 그게 바로 ‘사람’인데, 그 사람이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사람이다.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사람으로 하나님께서 만드신 그 이유는 무엇이냐면은,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사람을 만드신 것은, 이걸 좀 생각해보면, 하나님의 형상대로 닮았다는 그 말의 의미가 외형적으로 닮은 것도 닮은 것이지만은 이게 말하자면은 본질 본성적으로, 종자적으로 이거는 하나님을 닮도록 되어있는 그런 종자로 만들었다 그렇게 생각해 볼 수 있을까요? 종자적으로 본질 본성적으로 하나님을 닮는, 닮아가는 그런 존재로 만들었다 그런 뜻입니다. 그래서 하나님 형상을 닮은 존재로 만들어서 만드신 그 사람이 영과 마음과 몸인데, 그래서 말하기를 영은 하나님의 형상 모형, 또 마음은 영의 모형, 몸은 마음의 모형 이렇게 말을 할 수가 있는데, 그러면 영은 하나님의 형상이라고 성경에 나와있으니까 알겠는데 마음이 영의 모형이라는 것은 어떻게 생각할 수가 있을까? 마음은 점점 영을 닮아가는 것이고, 영이란 것은 마음을 통해서 나타나고 마음을 주관하는 것이고, 그래서 영을 닮아가는 마음이고 마음을 닮아가는 몸이라. 닮아간다는 것은 그것처럼 점점 그렇게 한단계 올라가는 것이고 신비스럽게 되어져가는 그런 것을 말할 수 있겠는데, 그래서 하나님이 영을 통해서 당신을 알리시고 그 영은 마음을 통해서 하나님을 알리고 마음은 몸을 통해서 하나님을 알리고, 몸은 영을 통해 마음을 통해 내려온 하나님과 하나님의 모든 역사를 자기 몸에 모든 말과 행동과 보는 것과 또 움직이는 모든 것으로 가지고 사물에게 그것을 행하므로 모든 사물에게도 하나님을 나타내고 그래가지고 온 바다에 물이 넘침 같이 온 세계에 하나님의 지식과 하나님을 아는 지식과 하나님의 형상이 차고 넘치고 충만하도록 만들어가시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고 역사라. 이걸 위해서 하나님께서 사람을 만드시되 영과 마음과 몸으로 그렇게 만드셨다 그말입니다. 그래서 과정, 이것도 세상 이야기니까 응용을 하는데, 요즘 보면은 그런게 있지요, 사람이 태어나서 그 사람은 태어나가지고 곱게 곱게 자라고 곱게 곱게 공부하고 한번도 말썽 안피우고 그대로 자라가지고 부모님 슬하에서 자라서 열심히 공부하고 자라서 공부하고 자라서 자녀낳고 그렇게 평범하게 자란 그런 사람들은 보통 사람들이고, 그 보통 평범한 인생길을 걸어가는 사람은 ‘아 참, 복되게 잘 살았다’ 하는 그 정도지, 그 사람에게서는 다른 사람 제3자가 감동이라든지 그런 느낌을 가지는 그런 것은 없는데, 어떤 사람은 보니까 고아원에서 나서 일찍 조실부모하고, 일찍부터 부모를 여의고, 그래서 전쟁통에서 길거리에 나가서 주워 먹으면서 남의 집에 팔려다니다가 그러다가 독한 마음을 먹고 신문팔이하고 또 구두닦이하고 온갖 고생을 다 겪다가 그래서 매도 많이 맞고 위험도 많이 당하고 그래가지고 장사를 시작했는데 처음에 사탕 장사하다가 또 신발 장사하다가 옷 장사하다가 또 좀 큰 장사하다가 그래가지고 자수성가를 해서 재벌회사를 건설했다, 그러면 그 사람은 들어볼때, 아 그 사람은 걸어온 과정이 예사롭지 않고, 말하자면 요즘 세상 쓰는 말대로 이야기가 있는, 속에 드라마가 있는 말이죠. 그런 것이 들어있는 인생살이가 되다 보니까 듣는 사람들에게 감동이 되고 그들 표현대로 은혜가 되고 힘을 주는 그런 걸음걸이가 되는 겁니다. 그래서 위인들이, 대개 유명한 위인들 전기를 읽어보면, 그 사람들은 위인이 위인인 것은 평범하지 아니한 인생걸음을 걸으면서 온갖 난관, 역경, 온갖 세파를 겪어 나가면서 그것을 헤쳐서 겪어나간 그런 과정 과정의 인간 승리가 있을때 많은 사람들이 그것을 보고 감동을 받고 힘을 얻고 그리 되어지는 것처럼,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닌데 그와 같은 이치로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만드시되 영을 만드시고 마음을 만드시고 몸을 만드시고 이렇게 과정이 되도록 만드신 것은,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자유의지를 가진 존재를 만들려다 보니까 영이 있어야 되겠고 마음도 있어야 되겠고, 그런데 그 과정 과정에서 하나님이 당신의 영광을 위한 그런 과정 과정의 역사 일 이런 것을 있도록 해서 듣는 사람들 아는 사람들 그것을 겪은 사람들이 몸소 경험하고 체험하고 겪어가지고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 은혜를 알고 또 은혜를 받고, 자기가 겪으면서 자라가면서 닮아가는 그런 과정들이 있을때 그 속에 내용이 있는 것이고 자기가 몸소 겪는 것이고 자유 의지에 의한 그런 것으로 만들어지는 것이기 때문에 이것이 필요해서 하나님께서 이런 과정을 통과하도록 그렇게 만들어놨고, 알고보면 이것은 필연적으로 이렇게 될 수 밖에 없는 역사다 그말이지요. 이해가 되십니까? 000샘 이해가 되요? 어렵습니까? 하나님께서 사람을, 하나님은 전능자입니다. 전능자니까, 아 그래 복잡하게 하지 말고 그냥 몽땅 사람을 만들되 영으로 만들어가지고 하나님 찬양하도록 하면 될 건데, 뭐 영을 만들어놓고 마음은 또 왜 만들고 몸은 또 뭐하러 만들고 만물들은 뭐하러 만들어놓고, 그렇게 복잡하게 이렇게 해놨는가? 하나는, 인간의 자유의지,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자유성 가진, 자의적인 자기 스스로의 지식과 스스로의 자기 아는 이성지식과 스스로의 몸소 겪은 체험과 이런 것으로 되어야 되기 때문에, 그래서 자유의지에 의한 하나님의 형상 닮은 존재를 만들어야 되니까 이렇게 하신 것이고, 두 번째는 이런 과정들을 몸소 겪어서 자기가 직접 겪어 가지고 자라가는 것이고 만들어져 가는 것이니까 이게 바로 외식도, 그다음 뭡니까, 공과에서? 외식도, 허위도, 과장도, 오판도, 착각도, 하우하박도 어두움도, 허영과 허욕도 용납되지 않는, 자기가 직접 알고 직접 겪어서 걸어가는 걸음이기 때문에 그 과정을 통한 자기 실제 실력을 자기가 만들어가는 것이고, 뒤로 돌아보면 하나님의 은혜인데, 한편으로 보면 자기가 걸어간 것이거든요? 내가 걸어갔는데 하나님의 은혜고, 하나님 은혠데 내가 걸어간 것이고, 이게 필요하니까 이렇게 만들어두신 것이고, 세 번째는 그 과정속에 그렇게 된 그 속에 걸음 걸음마다 하나 하나마다 하나님의 사랑과 사랑으로 하는 수고와 희생 역사가 들어가는 이것이 있기 때문에, 대략 이렇게 세가지로 생각해보면 이런 것들이 있기 때문에 이게 다 뭉쳐지고 보면은, 이게 영원을 두고 참 기가 막힌 그런 존재와 그런 관계가 만들어지게 되는 것이다 그말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사람을 이렇게 만들어두셨습니다. 영과 마음과 몸. 그래서 하나님이 영을 만드시되 그 영이란 것은 오로지 하나님만이 쓰실 수 있도록, 그래서 악한 자가 만지지도 못하고 가까이 하지도 못하는게 영인데, 그 영은 그래서 마귀가 감히 침범할 수 없고 그러므로 영이란 것은 중생전이나 중생후나 범죄하지 않는 존재고 범죄할 수 없는 존재로 지음을 받은게 영이고, 하나님만이 쓰실 수 있고 하나님만을 나타낼 수 있는게 영이고 아래로는 자기 마음에게만 활동할 수 있는게 영이라. 이런 영을 만들어가지고 그 영에게 하나님이 당신을 나타내 보이시고, 영을 알게 하시고, 그래서 영이 본하나님을 영은 자기 마음에게만 나타내서, 마음은 영을 통해서 하나님을 알게 되고, 그러기 때문에 ‘중생’이라 말은 죽었던 영이 살아나는 것인데, 중생되지 아니한, 영이 죽어있는 존재는 결코 하나님을 알 수가 없고, 또 짐승이 아무리 똑똑해도 짐승은 영이 없으므로 하나님을 알 수 없고, 그래서 이것도 어제 신문에 보니까, 참 우스운 세상이지요. 죽은 짐승과 더불어 텔레파시로 교감을 해서 죽은 짐승이, 죽은 강아지가 자기를 기르던 주인에게 하고 싶은 말을 텔레파시 하는 사람들이 죽은 강아지하고 교감을 해가지고 말을 들어서 주인한테 알려주는데, 몇 마디 질문, 무엇을 알고 싶으냐 궁금하냐, 당신이 기르던 강아지가 죽었는데 그 죽은 강아지가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몇가지 알고 싶으냐, 너댓가지 질문하면 그 질문 가지고 강아지한테 텔레파시로 물어보고 그래 답을 들어가지고 주인한테 가르쳐주고, 서너가지 가르쳐주는데 몇만원씩 받는데, 그 하는데 일감이 밀려서 일주일이 지나야 답을 듣고 그런답니다. 순사기꾼들, 도둑놈들. 그런데 그 사기를 치고 도둑질 하는데도 거기 기가 막히게 사람들이 많이 넘어가거든요? 참 세상이 희안하지 않습니까? 그것 보면 도무지 이해가 안되는데, 어떻게 이런, 눈 앞에 이거는 뻔히 보이는데도 그런데도 거기 몇 만원씩 돈을 쥐어주고 거기 가입을 해서 질문을 하고 답을 알려주니까 마음이 위로를 받고 평안을 얻는 답니다. 기르던 강아지 죽고 나니까 몇 날 몇 일 잠을 못자고 슬퍼죽겠는데 거기 해서 그 답을 듣고 나니까 해결이 되고 잠이 오고 그렇답니다. 전부다 주관이지요. 그런 세상입니다. 그런데, 그거는 그런데, 이것도 또 제가 세상 말만 하면 맥을 잊어버려서. 무슨 말 하다가 이거 했지요? 무슨 설교하다가 이거 텔레파시가 나왔습니까? 죽은 강아지가? 아, 짐승은, 맞지요. 짐승은 영이 없다는 그 말. 그래서 짐승은 아무리 사랑스럽고 해도 짐승은 구원이 없는 겁니다. 짐승은 짐승이지, 그래서 개를 잡아먹는다고 욕을 하고, 뭘 잡아먹는다고 욕하는 그것도 우스운 말이고, 또 짐승을 자기 기르던 강아지 고양이가 죽으면 몇 날 몇 일 울고 불고 하는 그 인간들이 자기 부모는 산송장으로 고려장을 시켜놓고 하는 그것도 우스운 말이고 우스운 생각이고, 보면은 전부 거꾸로 된게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그래서 감정에 앞서지 말고 이성에 앞서야 되는 것이지, 감정에 앞서면 여러 가지 부작용들이 많이 생긴다는 겁니다. 그래서 사람은, 하나님께 사람을 이렇게 영과 마음과 몸으로 지으신 이유가 이렇게 있는 겁니다. 영을 통해서, 영은 마음을 통해서, 마음은 몸을 통해서, 그리고 몸은 바깥 세계에 다 퍼져서 어쨌든 결과적으로 온 세계에 우주에 하나님으로 충만하게 만드는 것이 이게 하나님의 뜻이다. 그러면 하나님을 닮아야 하나님 같은 존재가 되어져야 그게 영원한 천국이 건설이 되고 완전한 천국이 되는 것이지, 하나님 같은 존재가 안되고는 그것도 될 수가 없는 그런 면도 생각해 볼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사람은 영과 마음과 몸으로 되어있는데, 영이란 것은 하나님의 형상대로의 지음받은 존재가 영이고, 심신의 주격이고, 사람의 실제적인 사람의 주체, 실질적인 사람이라 그럴때는 영을 말하는 겁니다. 그래서 사람이라 그럴때는 영을 말하는데, 영이 죽은 사람들을 가리켜 죽은 자라 말하는 것이고, 그래서 안 믿는 사람들 중에, 안 믿는 사람은 중생되지 못한 사람들이니까 안 믿는 사람들을 성경은 죽은 사람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는 겁니다. 또 이 영은 영물로 되어있는 존재인데, 영물인데, 이 세상은 물질계이기 때문에, 물질계 세상에서 영의 존재를 알기는 대단히 어려우나 영이란 것을 성경이 나오는 걸 가지고 우리는 몰라도 배운 걸 가지고 적용시켜 보면 영이라는 존재는 하나님만이 쓰실 수 있고 영이 하는 일은 하나님만 상대하고 하나님만 나타내는게 영이다. 그런데 그 영이 활동하는 활동 범위는 자기 마음에게만 활동한다. 하나님은 사람에게 당신을 나타낼때 반드시 영을 통해서 나타내지, 성경이 우리 영으로 더불어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거하시는 것처럼, 영을 통해서만 하나님을 사람에게 당신을 나타내고, 복음이란 것은, 하나님의 말씀이란 것은 전부 하나님과 관련된 것인데, 사람의 마음이 구원 도리를 깨닫고, 말씀을 듣고 깨닫는 것도 듣기는 귀로 듣고 우리 이성으로 생각을 하나 그 속에 영의 작용이 없이는 우리가 말씀을 들어도 깨달음은 없는 겁니다. 하나님과 관련된 깨달음은 없기 때문에, 그래서 반드시 영을 통해서 마음에 하나님과 말씀을 알려주시고, 마음은 영을 통해서 받고 그다음 마음이 깨달아 느낀 것을 몸에게 전달하므로 몸이 현실에서 살아가는 그런 생활을 하고 있다 그말입니다. 그리고 영이란 것은 마음 안에 있는데, 마음 안에 있다는 그 안이라 그럴때 그것은 장소적인 개념이 아니고 존재 순위적이고 존재 가치적인 그런 개념으로 마음을 통해서 작용한다는 의미, 마음보다 더 귀하고 고급의 존재라는 의미로 영은 마음 안에 있는 것이다 그렇게 표현하는 것이고, 마음이 몸 안에 있다 그럴때도 몸 안에 있는데 그말은 몸을 통해서 역사한다는 말이고 몸보다 더 신비하고 고급적인 존재라는 그런 의미지, 장소적으로 몸 안에 어디 마음이 있느냐 그러면 심장 안에 마음이 있다, 심장을 아무리 해부해도 그 안에 마음은 없고 안 보이는 겁니다. 어쨌든 몸 안에 마음이 있는 것은 성경으로 따져보면 그러니까, 그러면 몸 안에 있다 말은 몸을 통해서 역사한다는 말이고 몸 보다는 더 고급의 존재라는 의미로 그렇게 표현할 수가 있는 것이고, 그래서 영은 이런 것. 또 마음이란 것은 영의 모형이고 몸의 주체면서 영의 모든 것을 나타내고, 몸 안에 존재하면서 몸을 통해서 역사하고, 몸보다 고급의 존재라는 것이고 신비한 물질인데 이거는 물질이기 때문에 마음이란 것은 사람들이 누구나 다 알고 인지하고 있는게 사람의 마음이지만은 그러나 구체적으로 마음이 무엇인가를 물으면 사람들은 대답을 하기가 대단히 어렵고, 마음이란 것은 그래서 하나의 그릇같은 것이라. 그 마음 속에는 온갖 마음의 작용 요소들이 들어있으니까 그런 것이라 할 수 있는데 이게 신비한 물질이기 때문에 눈에 보이지도 않고 들리지도 아니하고 다만 느낌으로 알 수 있는 존재, 이게 마음이다. 몸이란 것은 마음의 모형으로 마음을 나타내는 것이고 흙으로 지음 받은 육체로써 사물을 직접 일선에 접하며 활동하는 그게 사람의 몸이고, 물질 중에서 신비한 물질 마음 다음으로 그 기능이 가장 탁월한 것이 사람의 몸이다. 그래서 사람이란 것은 이렇게 영과 마음과 몸으로 지어져있고, 하나님이 하나님의 목적을 위해서 이런 요소들로 사람을 지어서 만들어 놓으셨다 그말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지음받은 인간이, 그래서 이렇게 지어놓으신 사람의 근본 목적은 하나님을 나타내는 겁니다.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이고. 그런데 사람이 하나님을 거역하고 마귀한테 미혹받아서 범죄하고 타락해서 영원한 사망을 당하게 되어졌고, 그 사망할 때 죄를 지을때 뭐가 죄를 지었느냐? 사람이 죄를 지을때는 무엇이 지었다고요? 심신이 지었다 그럴때, 막연하게 하지말고, 앞에 오전에 말씀드린 대로 논리가 그렇지 않습니까? 마귀가 배암을 입고 들어왔습니다. 들어왔을때 하와의 눈이 봤고, 눈은 몸이지요? 눈이 봤고, 그다음에 하와의 귀가 뱀의 말을 들었고, 귀는 몸입니다. 눈이 보고 귀가 듣고 나니까 마음 속에 생각이 났지요? ‘아 그런가’ 하고. 생각이 나서 또 눈이 선악과를 쳐다봤고, 쳐다보니까 마음에 생각되기를 보암직도 하고 먹음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만큼 탐스럽게 보였으니까 마음이 그렇게 생각이 들었고, 그래서 발이 걸어가서 손이 따서 입에 가져가서 입이 아작아작 씹어먹고 또 하와한테 가서, 하와한테 보여주고 설명하고 주니까 하와도 보고 듣고 받아서 입으로 먹었으니까 그거는 전부다 몸과 마음에 작용들이지, 그게 영은 전혀 들어가지를 않았다 그말입니다. 그러니까 순전한 범죄는 심신의 범죄다 그말입니다. 마음과 몸의 죈데, 영이 죽은 것은 우리가 배워 잘 아는대로 주격 위치에서 주격 책임으로 영도 죽고 마음과 몸도 죽었는데, 영은 하나로 된 단일체기 때문에 단번에 죽었고 마음은 수많은 종합체기 때문에 오랜 세월 걸쳐 평생을 통해서 죽는 것이고, 그래서 사람이 지금 죽는 것은, 늙고 병들고 죽는 것은 선악과 따먹은 그 죗값으로 사람이 세월속에 늙고 병들고 죽는 것이고, 그러면 나자 마자 죽는 사람은 나자 마자 죽는 것도 그것도 죽기는 단번에 죽어도 그 속에 있는 많은 그런 요소가 다 같이 죽는 것이다 그말입니다. 그렇게 죽는 것이고. 그래서 그렇게 죽은 상태가 되어있어서 하나님의 목적이 실패가 되기 때문에 구원해야 되니까, 인간이 없으면 하나님의 목적은 안되는 것이니까 인간을 구원하기 위해서 예수님이 도성인신 하셨고 사활의 대속을 마귀와 전투해서 베풀어서 싸워 이기심으로, 대속을 완성하시므로 완전 승리하시고, 그래서 우리를 구원하셔서 하나님의 공심판 통과하고 마귀의 왕권을 빼앗고 종으로 삼고 우리 훈련 연습의 대상으로 삼아놓고 그리고 우리에게 재생의 기회를 주신 것이니 그게 바로 현실이라. 그래서 오늘에 우리들이 살고있는 현실의 생활, 현실 전투는 그게 전부 하나님께서 대속의 공로를 베풀어서 우리에게 주신 재생의, 패자부활의 기회가 우리가 살고있는 생애고 우리 모든 현실은 거기서 영은 하나님의 은혜로 단번에 주격이기 때문에 살려놨고, 이제는 영을 통해서 살리는 심신의 모든 요소를 살려나가는 것이 우리들이 현재 살아가는 이 세상 생활에 모든 신앙생활에 과정들이고 힘쓰는 신앙생활들이라는 것을 말씀을 드리는 겁니다.
그러기 때문에 심신의 기능 구원이란 것은 반드시 영을 통해서만 되는 것이지, 영을 통하지 않고는 이게 되는 수가 없다는 것을 강조하는 것이고, 그래서 영을 통해서 우리 심신의 기능을 살리는 하나님의 구원 역사라. 그러기 때문에 사람의 영이란 것은 알아야 되는 것이고, 영이라는 존재를 모르면 기본적인 그런 것은 있을지 몰라도 건설구원에 어떻게 구원되는지는 알 수가 없다 그말입니다. 그래서 영을 알아야 되고 영의 존재도 알아야 되고 영의 역사도 활동도 알아야 되고 우리들의 심신이 어떻게 구원되는지를 알고 전투를 해야 전투를 바로 할 수가 있는 것이지, 그래서 현실을 살아가는 것은 전부 내 몸과 그 안에는 마음과 이 두가지가 내 눈에 보이고 들려지고 접해지는 모든, 가정에서 가족들끼리 자녀하고 부모하고 티격태격하는 것도 마음과 몸이고 부부가 사는 것도 마음과 몸이고 직장 생활하는 것도 마음과 몸이고 그 내 마음과 몸의 그 요소가, 그 모든 생활들이 그게 어디서 뻗어서 나오는 것인가? 그래서 육신의 일을 쫓는 자는, 로마서 8장 5절입니다. ‘육신을 좇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을 좇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하나니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 이 육신이 뭐냐? 육신이란 것이 전부 자기 고깃덩어리, 자기 좋게 하는 것. 자기 마음과 몸, 여기 영이란 것은 성령을 말하는데, 성령은 우리 영과 하나니까. 그래서 영은 잊어버리고 자기 마음과 몸이 주장되어 사는 생활이 전부다 육신적인데, 가정에서 돌아가서 부부가 부부싸움할 때를 한번 돌아보십시오. 부부가 어떤 일 때문에 부부 싸움을 한다면, 전부 육신의 말이고 행동이고 생각인데, 남편이 아내한테 하는 말과 행동과 화가 나서 쏟아붓는 것, 아내가 거기 대해서 되받아치고 바가지를 긁고 속이 썩어서 밥을 안해주고 남자는 밥도 안먹고 나가버리고 이렇게 하는 모든 것들이, 그게 어디서 나오는, 그렇게 행동하는 그 주체가 바로 마음이고 몸인데 그 마음과 몸에 그런 행동이 나오게 된 그 근거 뿌리가 어디서 나오는 것인가? 그게 전부 말하자면은 영과 상관없는 육신적인 것이고, 바로 악령에 붙들린 악성 악습으로 되어진 그런 것들인데, 알기 쉽게 말하자면 그런 것들을 뽑아내서, 오전에 말씀드린대로 담배를 많이 피니까 몸에 인이 박혀가지고 안 피면 안되고, 술을 많이 먹으니까 알콜이 중독이 되어가지고 몸에 중독이 박혀가지고 이걸 안 먹으면 그만 금단현상이 일어나가지고 몸이 벌벌 떨리고 안되니까 강제로 병원에 보내가지고 억지로라도 그렇게 술을 끊게 만들고 담배를 끊게 만들고 그렇게 하는 것처럼, 그래서 속에 있는 독소를 뽑아내지 않으면 안되는 것처럼, 피아노를 배우는데 기본기 익히지 아니하고 제멋대로 얄궂게 배워놓으니까 옳은 실력있는 선생님이 데려다 가르치는데 보니까 ‘한번 쳐봐라’ 그러니까 엉망으로 치는데, 제딴에는 친다고 잘치는데 보니까 이게 원리 원칙 기본기가 완전히 틀려버리니까 그걸 빼내려 그러면, 기계나 이런 건 확 잡아빼버리고 갖다버리고 바꾸면 되는데 사람 마음과 몸에 익어진 악성과 악습이란 것은, 특히 악습이란 것은 이거는, 악성이란 것은 마음 요소니까 생각을 바꾸면 되는데 설득해서, 악습이란 것은, 몸에 익어진 것은 이거는 그 몸에 길들여진만큼의 세월이 들어가서 반대로 나가야 빠져나가지 안 빠져 나간다 그말입니다. 이런 것들이 전부 하나님 없이 세상으로 살아서 하나님 없는 생각, 욕심, 사고방식, 가치관, 사상, 소원 그렇게 산 생활들, 그런 모든 생활들 우리가 오늘까지 살아오면서 얼마나 많이 했는데, 그런 모든 것들이 내 심신에 익어있고 그게 전부 삐뚤어져있는 것이니까 그게 전부 죽어있는 심신인데, 지나간 세월의 심신 그렇게 된 것은 이미 살리지 못하는 것이고 다 죽어버린 것이고 그건 두 번 죽었기 때문에 둘째 사망의 해를 받은 것이고, 할 수 없는 것이고, 남은 때라도 그걸 살려 나가야 되겠는데 그렇게 살려내려면 그만큼 앞으로는 과거에 그런 찌든 그 때를 빼내면서 그렇게 안하고 해나가야 되니까 그것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 그런 일을 하는 역사가 바로 우리 현실에 우리들의 생활이고 하나님께서 우리 사람이라는 사람의 사람을 변화시키는 것은 말하자면 영은 다 된 것이고 마음과 몸을 변화시키는 건데 마음과 몸을 변화시킨다는 말은 그 마음과 몸이 순간 순간 현실 현실마다 그렇게 안할거는 안해야 되고 할거는 해야 되고 실제로 하나 하나 그렇게 봐야 되고 들어야 되고 생각해야 되고 말해야 되고 행동해야 되고 그렇게 해나가야만 그 마음과 몸이 그렇게 실제 변화가 되어지는 것이기 때문에 신앙이란 것은 진압태산으로 차근 차근 차근 밟아가는 것이지 이렇게 하지 아니하고 어느날 갑자기 있다가 기도만 한다고, 하나님께서 하늘에 뚝 떨어져가지고 나를 변화시켜서 안되던 회개가 순식간에 회개가 되어지고 어느 부흥회 한번 참석하니까 회개되어지고, 부흥회 참석해서 은혜 받으니까 회개 되었다 그거는 순간입니다. 그 순간은 마음이 감동이 되고 힘이 되어 살아보겠다 하지만은 그날까지 살아온 자기 몸에 찌들어진 그거는 그 부흥회 열기 식어지면 또 나오는 겁니다, 그거는. 그러기 때문에 세월속에서 그걸 바꿔내고 빼내지 않고는 안되는 것이다 그말이지요. 이런 모든 역사 심신의 구원 역사를 하는 것이 바로 오늘의 현재라. 이걸 가리켜 공과에서 말씀하시기를 준비와 시험의 현장이 바로 현실이라고 말씀을 하시는 겁니다. 이래가지고 설명을 드려도 이걸 못 알아듣고 모르면 안되지요. 생각을 많이 하셔야 됩니다.
그래서 오늘 말씀의 요점은, ‘영을 통한 심신 구원의 역사’ 이게 오늘 말씀의 제목이고 중심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영을 통하지 않고는 하나님은 우리 심신을 구원할 수가 없고, 그래서 영을 살려놓고 우리 심신을 살려나가는 것이고 그 심신을 살려나가는 것이 바로 현실 전투고, 그 현실 전투에서 내 심신의 기능이 사는 것은 내가 변화가 되는 것이고 변화되는 것은 하나 하나 바꾸어져 나가는 것이고 그게 우리 성화고 그것이 참사람으로 점점 되어져 가는 것이고, 이것이 우리의 구원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이거 위해서 기도하고 이거 위해 성경 읽고 이것 때문에 예배 보고 이것 때문에 말씀도 듣고 그리하고 있는 겁니다. 이게 실제적으로 되어지는 것. 그러기 때문에 기독교는 진실의 도라고 말씀을 하는 겁니다.
다같이 통성으로 기도 드리겠습니다.
기독교는 진실의 도라. 외식도 허위도 과장도 오산도 착각도 오판도 하우하박도 허영 허욕도 어두움도 용납 안되는 진실과 실상의 도라는 그 의미를 공과에 말씀하신 것을 깊이 생각해봐야 됩니다. 그게 바로 현실에 있는 것이고, 그 현실에서 우리 심신에 수많은 요소가 오랜 세월 찌들어 있는 걸 뽑아내면서 옳은 바른 연습으로 익숙해져 나가야되는 그런 것이기 때문에 이거는 실제 안하면 안된다는 겁니다. 먹어야 배가 부르고 마셔야 목에 갈증이 면해지는 것처럼 실제 안하고 되는 수는 없는 것이 기독자의 구원이라 하는 겁니다.
20140817 주후
로마서 8:1-17
오전에 크게 첫 번째 말씀드린 것이, 하나님의 목적을 말씀을 드렸습니다. 하나님 목적이 뭔가? 같이 한번 해보시겠습니다. ‘하나님의 목적’. 부모의 영광은 무엇입니까? 부모의 영광은 무엇입니까? 부모님 되신 분들, 부모님 영광이 무엇입니까? 부모 영광은 자녀입니다, 자녀. 또 선생님의 영광은 제자겠고, 왕의 영광은 백성입니다. 백성이 없는 왕은 왕이 이름만 왕이지 힘이 없는 왕입니다. 세계에는 여러나라 몇 개국이 있는지 모르겠지만은 대략 어림잡아 2백여개국, 맞습니까? 2백개국정도. 나라가 한 2백개 정도 있을 겁니다. 그런데 그 중에는 아주 작은 나라도 있고 큰 나라도 있어서 미국같은 나라는 인구도 인구지만은 땅도 땅이고 여러 가지로 세계 강대국이 되어있으니까 미국 나라의 대통령은 영광이 많고, 같은 나라라는 국가라는 이름이 붙고, 예를 들어서 UN에 가입해서 한 회원국으로 뭔가 회의하면 의결권을 같이 가진 그런 한 국가라 해도 작은 나라, 세계에서 제일 작은 나라는 무슨 나라입니까? 도미니카 공화국. 맞습니까? 비타칸은 그 이름이, 그래도 실제 나라 아니잖습니까. 독립되도 바티칸이라는 거는 교황청 말하는 것 아닙니까? 로마 교황청. 그거는 좀 빼야 될 것 같은데. 빼고, 어쨌든 작은 나라 있습니다. 아주 소국, 작은 나라. 그런 작은 나라는 왕도 왕이고 백성도 있지만은 워낙 작으니까, 땅덩어리도 작고 백성수도 작으니까 힘도 없고 그만큼 영광도 작은 겁니다. 부모님이, 부모가 결혼해서 아이를 낳으면 많이 낳을수록 무조건은 아니지만은 영광이 크고 많을 가능성이 높고, 또 스승의 위치에 있으면 그 밑에서 배운 제자들이 많을수록 스승의 영광이 큰데, 물론 당연히 자녀를 많이 낳아서 잘 되어야 되지, 많이 낳은 자녀가 낳는 족족 아무짝에도 못쓸 그런 아이들만 나면 참 큰 문제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일반적으로 보면 대체적으로 전체적으로 보면 가정에 아이가 많으면 자녀들 많은 형제 많은 아이들이 빗나가는 경우는 별로 없습니다. 지금도 아마 그거는 크게 달라지지 않을 겁니다. 그래서 결혼하면 어쨌든 목표를 다산주의는 아니지만은, 하나님께서 주시는만큼 낳을 수 있는데까지 낳고, 그다음 세월이 많이 지나면 그때부터는 부부가 생활을 조절하고 절제해서 안 낳으면 그때부턴 이제 괜찮은 것이고, 그러면 하나님이 주시는대로 다 선물도 받고 죄도 안 짓고 그리되는데, 부부가 자기들 누릴 재미는 다 누리면서 가족계획을 딱딱 해가지고 그리 하면은 그에 상응하는 하나님의 보응을 받을 수가 있다 그말이지요. 그래서 성경적으로 보면은 결혼은 빨리 하는게 좋고, 무조건은 아닙니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빨리 하는게 좋고, 또 자녀는 하나님이 주시는만큼 주시는대로 낳는 것이 좋고, 또 가정은 남편이 이끌어나가는게 정상이고 아내는 뒷받침하고 돕는 배필로 하는게 정상이고 이런 성경적인 개인 사람의 모습이든지 가정의 모습이든지 부부의 위치든지 이런 것들이 기본적으로 정해진 게 있습니다.
사람이란 것은 하나님께 지으심을 받은 피조물이고 사람의 제일되는 목적이 뭐냐, 사람의 첫째되는 목적은 하나님을 영원토록 영화롭게 하는 것이 사람의 제일되는 첫째되는 목적입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만드신 이유가 목적이 바로 그것 때문에 만드신 겁니다. 그래서 인생으로 나서 하나님의 은혜가 없어서 택함을 받지 못한 그 사람들은 하나님 은혜가 없으니까 어찌할 수 없지만은 하나님의 은혜로 택함을 받은 성도 같으면 하나님을 아는 것이 가장 기본이고 중요하고 동시에 전부가 되는 것인데, 이걸 세월이 지나서 시대가 변하고 환경이 다 변하니까, 환경이 변하고 환경따라 사람이 변하고 또 사람들이 변하니까 교회들이 변하고 믿는 사람들까지 변해버리는 것은 그게 뭔고 하니, 소금이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겠느냐 땅에도 거름에도 쓸 데 없어 밖에 버리워 사람에게 밟힐 뿐이라, 이거는 소금을 하나 예를 들어 말한 것이지, 기독자를 말하는 것이고 이거는 비단 기독자들도 해당되지만은 이걸 응용하면 세상 모든 이치에 전부다 해당이 되는 겁니다. 사람이 사람의 본모습을 잃어버리면 그 사람은 사람으로서는 쓸모가 없게 되는 겁니다. 사람이면 기본적으로 사람의 본모습을 하나님이 만들어놓으신 택자의 본모습 또는 불택자라도 사람의 본모습은 가지고 있어야, 그래야 사람답게 대우받고 그리 되는 것인데, 사람이 사람의 본질 본성을 잃어버리면 사람으로서의 존재 의미나 가치는 없기 때문에 멸시천대를 받을 수 밖에 없는 겁니다. 사람만 그런 것이 아니고 모든 물질 물건들도 다 그러한 겁니다. 그게 자연적인 것이든지 사람이 만든 인공의 것이든지, 그것은 모든 존재라는 것은 그 존재의 본질 본성이 있는데 그것을 잃어버리면 그 존재로서는 쓸모가 없게 되는 겁니다. 이것은 비단 사람 자체 존재 자체만 그런 것이 아니고 주어진 자기 위치도 역시 그러합니다.
좀 비유가 안 맞는데 이거는, 회계를 맡겨놨더니, 예를 들어 어느 회사에서 경리를 보라고 맡겨놨더니 그 경리가 자기 맡은 경제를 가지고 돈을 살살 빼먹고 그러면 그 사람은 경리가 아니고 도둑놈이고, 그 사람은 거기서 쫓겨나는게 당연한 것이고 처벌을 받는게 마땅한 것입니다. 선생님으로 세워놨는데 학생들을 가르치지는 아니하고, 그냥 가르치는 그 시간은 대충 떼우고 월급이나 받고 자기 다른 것으로 그 시간을 채워나가면 그 사람은 선생님으로서의 자격은 없게 되어지는 겁니다. 부모라면, 아버지라면 아버지의 주어진 책임이 있고 의무가 있고 역할이 있는데 그걸 못하면 아버지로서의 자격이 없는 것이고 그리 되면 그것은 자녀들에게나 사람들에게 이미 맛을 잃어버렸기 때문에 멸시천대를 받을 수 밖에 없는 것이고, 어머니도 역시 그런 것이고, 남편으로서의 위치는 남편은 아내를 책임지고 가정을 돌보는게 남편인데 그 남편이 아내에 대한 책임을 져버려 버리면 그 남편은 남편으로서 가치가 없는 것이고 멸시천대를 받는 것이고 아내도 역시 마찬가지로 그러합니다. 성경적으로 남자 역할이 있고 여인의 역할이 있는데, 그 역할을, 하나님이 원래 만들어놓으신 그 역할을 잃어버리면 그게 바로 소금이 맛을 잃는 것이기 때문에 종례에는 멸시천대를 받을 수 밖에 없다. 시대가 변해서 여성들이 사회활동을 많이 하고, 그래서 남자들이 다 직장이 없어가지고 쩔쩔 매는 그런 시대가 되어있는데 이것도 시대 흐름을 우리가 역행을 해서 일부러 그럴 것은 없지만은, 이것도 성경적으로 따져보면 정상적인 그런 모습은 아닙니다. 사회활동, 외부활동 외무는 남자들이 하는 것이고, 여인의 원래 의무는 돕는 배필로 남편 뒷바라지 하고 자녀를 주시는대로 많이 낳아서 잘 길러 가정을 이끌어가는 것이 여인의 첫째 책임이며 의무며 임무며 주어진 본분이며 역할이고, 그게 가장 중요한 것입니다. 그걸 빼놓고 다른 걸 아무리 잘해도 본질 본성을 경시해버리면 나중에는 대단히 위험하기가 쉽다 그말입니다. 이런 것들은 지극히 상식적이면서 기본적인 것이기 때문에 모든 것은 다 기본이 잘못되면 다 무너지게 되는 건데, 이거는 건물만 그런 것이 아니고 나라도 가정도 사랑도 다 그리되어지는 겁니다. 이런 것들은 시대가 변한다고 해서 변하는 것이 아닙니다. 어느정도 그 시대 흐름에 따라서 맞출 그런 필요가 없지는 않지만은 근본적인 그런 것은 잊어버리면 안된다 그말입니다. 그래서 뭐든지 성경대로만 하면은 다 복이 되고 유익이 되게 되어있습니다.
하나님의 목적이 뭔가? 하나님의 목적은 한말로 말하면 하나님의 영광인데, 그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그래서 부모님의 영광은 자녀고, 많은 자녀고, 잘된 자녀고, 스승의 영광은 제자가 많은 것이고 그 많은 제자가 잘 되는 것이고, 왕의 영광은 백성이 많은 것이고 그 백성들이 배부르게 잘 먹고 잘 사는 겁니다. 지금 북한 같은 나라는 굶어죽는 사람 많고 백성들은 어렵고 위에 왕만 잘되고 있으니까 온 세계가 들어서 욕을 하고, 자꾸 도망을 치지 않습니까? 솔로몬 시대에는, 다윗 시대에는 백성들이 자꾸 모여듭니다. 살기 좋으니까. 그러면 숫자가 많아지니까 왕이 영광이 되는 것이고. 아합 시대 그런 때는 백성들이 전부다 도망을 다 쳐버립니다. 그래서 자기 나라를 떠나는 백성이 많다 말은, 왕의 수치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은 하나님께서 많은 존재를 만드셔서 그 많은 존재가 다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 은혜를 받아서 감사하고 하나님께 영광을 영원토록 돌리고 그러므로 하나님은 무한하신 분이니까 필요한 은혜를 얼마든지 주고 주고 자꾸 주므로 하나님은 주어서 기쁘시고 또 받는 존재들은 받아서 감사하고 영광돌리는 이 돌아가는 것이 계속 돌면서 주고 주고 주고 주고 받고 받고, 주니까 기쁘고 기쁘고, 받으니까 감사하고 감사하고 그러니 또 주고 또 받고 감사하고 또 주고 또 기쁘고 또 받고 또 감사하고 하는 이것이 사람이 먹고 입고 자고 뱅뱅 도는 것처럼 그런 것들이 아니고 그렇게 점점 하면서, 마치 어린 아기가 젖먹고 놀고 자고 밥 먹고 놀고 자고 그렇게 계속 되는데 그렇게 계속 되는 속에서 변화되는 것은 무엇입니까? 젖먹이 어린 아기를 젖을 자꾸 먹이면 먹고, 좀 표현이 죄송합니다만은, 먹고 싸고 놀고 자고 먹고 또 배설하고 놀고 자고 그렇게 계속 돌면은 하루 종일 있어봐야 먹는 것 노는 것 자는 것 먹는 것 노는 것 자는 것 이것밖에 없잖습니까? 변화가 없지요. 웃고 떠들고 놀다가 배고프면 먹고 자고 그리하는데, 그렇게 매일 되풀이되는 그 생활속에 변화되는게 뭡니까? 그 아기가 점점 자라가는 거지요. 자라가면 점점 사람의 모습을 껍데기로 갖추어져 가는 것처럼 하나님의 은혜를 자꾸 주고 받으면 주시므로 기쁘시고 받으므로 감사하고 영광돌리고 이 뱅뱅 도는 그 속에서 받아누리는 우리는 점점 점점 하나님의 형상으로 자꾸 세월속에서 영원토록 자라가고 닮아가는, 이 구원 역사가 이루어지는 이것이 천국 건설이고, 그런데 이것이 무한이기 때문에 끝없이 계속 되는데 이걸 하나의 글자로만, 문장으로만, 그냥 하나의 설교로만 듣지 마시고 이 말씀 들을때 무한이라는 그 단어 하나를 가지고 생각을 해서 연구해서 파고 들어가봐야 됩니다. 무한이 뭐냐? 무한이라 말은 한이 없다는 말이니까, 시간도 한이 없고 범위도 한이 없고 또 영원도 끝이 없다는 말이니까, 우리가 무한히 영원히 자라간다 그러면 어디까지 자라갈 것인가? 자라가면 어떻게 자라갈 것인가? 사람이 키가 자꾸 자라면 하늘에 닿겠습니까, 우주에 닿겠습니까? 이런 차원이 아니고 지식이 자꾸 자란다 그러면, 그 지식의 범위가 듣고 배우고 듣고 배워서 자라가면은 사람의 수명이 한계 되어서 다 못 자라가지 머리 좋은 사람들이 자꾸 듣고 공부하고 배우고 익히면 그 머릿속에 얼마나 많은 것이 들어가게 될 것이고, 그 머릿속에 수많은 것이 들어가있으면 그걸 가지고 생각을 하고 연구하고 하면 거기서 오만 것이 다 나올 것이고, 온갖 게 다 이루어지게 될 것이고, 그리되는데 우리가 하나님의 형상으로 닮아가는 것이 하나님 같은 그런 분으로 점점 자라가는데 그분이 완전자기 때문에 영원하고 무한하니까 우리가 자라는 것도 아무리 자라고 자라고 자라도 끝없이 자라간다 그말이지요. 아마 보통 사람이 천재적인 그런 사람들이 만들어놓은 세상에 현재 이 세상에 나와있는 지식이란 것은 다 유한한 지식인데, 그 지식을 다 알려 그러면 평생이 아니라 수십 평생을 살아도 현재 세상에 나와있는 그 지식을 다 머릿속에 다 담지는 못할 겁니다. 그런데 하나님 같은 자가 되는 거기는 우리는 지식적으로 또 지혜적으로 또 인품적으로 완전으로 영원 불변으로 무한으로 그분 닮아가는게 어디까지 되어져 가는지, 그게 영원토록, 그러니까 사람이 점점, 어린 아이가 점점 자라가자고 하루 하루 자라고 한달 지나니까 다르고 1년 지나니까 다르고, 사람의 모습을 갖추어 가는게 점점 달라 변화되어서 자라가는 그 모습보고 참 재미가 있고 보람도 느끼고 그리 되듯이, 사람이 점점, 몹쓸 사람이 점점 쓸모있고 가치있는 사람으로 점점 바꾸어져 가는 그런 모습이 참 귀하고 좋게 그렇게 보여지듯이, 지식을 배워가면 하나하나 알아가는 그것이 재미가 있듯이, 우리들이 인격적으로 하나님을 닮아가는 그 맛이 우리가 다 느끼지 못해 그러하지 참 좋은 것이고 영원토록 이게 계속이 되어지는 겁니다.
그래서 천국 건설, 하나님의 목적이란 것은 바로 이런 것을 말하는 겁니다. 생각을 해야 맛이 있는데, 어떤지 모르겠습니다. 생각을 해서. 그래서 하나님의 목적은 말하자면은 하나님을 알리고 하나님이 아닌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하나님을 알리고 그 백성들을 하나님 같은 사람을 만드시고 그래서 그에게 하나님이 은혜를 주시면서 은혜를 주시므로 하나님은 당신 닮은 사람을 더 만드시고 받아 누리므로 하나님 닮은 사람이 더 되어져 가고 그러므로 하나님께 감사하고 찬송하고 영광 돌리는 이 생활이 영원토록 계속 되는게 천국의 모습이고 천국 건설이고 이것이 하나님의 뜻이며 하나님의 목적이다 그말입니다. 이게 하나님 목적입니다.
그다음 두 번째 이 목적을 위해서 반드시 가장 중심적으로 필요한 존재가 무엇인고 하니, 그게 바로 ‘사람’인데, 그 사람이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사람이다.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사람으로 하나님께서 만드신 그 이유는 무엇이냐면은,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사람을 만드신 것은, 이걸 좀 생각해보면, 하나님의 형상대로 닮았다는 그 말의 의미가 외형적으로 닮은 것도 닮은 것이지만은 이게 말하자면은 본질 본성적으로, 종자적으로 이거는 하나님을 닮도록 되어있는 그런 종자로 만들었다 그렇게 생각해 볼 수 있을까요? 종자적으로 본질 본성적으로 하나님을 닮는, 닮아가는 그런 존재로 만들었다 그런 뜻입니다. 그래서 하나님 형상을 닮은 존재로 만들어서 만드신 그 사람이 영과 마음과 몸인데, 그래서 말하기를 영은 하나님의 형상 모형, 또 마음은 영의 모형, 몸은 마음의 모형 이렇게 말을 할 수가 있는데, 그러면 영은 하나님의 형상이라고 성경에 나와있으니까 알겠는데 마음이 영의 모형이라는 것은 어떻게 생각할 수가 있을까? 마음은 점점 영을 닮아가는 것이고, 영이란 것은 마음을 통해서 나타나고 마음을 주관하는 것이고, 그래서 영을 닮아가는 마음이고 마음을 닮아가는 몸이라. 닮아간다는 것은 그것처럼 점점 그렇게 한단계 올라가는 것이고 신비스럽게 되어져가는 그런 것을 말할 수 있겠는데, 그래서 하나님이 영을 통해서 당신을 알리시고 그 영은 마음을 통해서 하나님을 알리고 마음은 몸을 통해서 하나님을 알리고, 몸은 영을 통해 마음을 통해 내려온 하나님과 하나님의 모든 역사를 자기 몸에 모든 말과 행동과 보는 것과 또 움직이는 모든 것으로 가지고 사물에게 그것을 행하므로 모든 사물에게도 하나님을 나타내고 그래가지고 온 바다에 물이 넘침 같이 온 세계에 하나님의 지식과 하나님을 아는 지식과 하나님의 형상이 차고 넘치고 충만하도록 만들어가시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고 역사라. 이걸 위해서 하나님께서 사람을 만드시되 영과 마음과 몸으로 그렇게 만드셨다 그말입니다. 그래서 과정, 이것도 세상 이야기니까 응용을 하는데, 요즘 보면은 그런게 있지요, 사람이 태어나서 그 사람은 태어나가지고 곱게 곱게 자라고 곱게 곱게 공부하고 한번도 말썽 안피우고 그대로 자라가지고 부모님 슬하에서 자라서 열심히 공부하고 자라서 공부하고 자라서 자녀낳고 그렇게 평범하게 자란 그런 사람들은 보통 사람들이고, 그 보통 평범한 인생길을 걸어가는 사람은 ‘아 참, 복되게 잘 살았다’ 하는 그 정도지, 그 사람에게서는 다른 사람 제3자가 감동이라든지 그런 느낌을 가지는 그런 것은 없는데, 어떤 사람은 보니까 고아원에서 나서 일찍 조실부모하고, 일찍부터 부모를 여의고, 그래서 전쟁통에서 길거리에 나가서 주워 먹으면서 남의 집에 팔려다니다가 그러다가 독한 마음을 먹고 신문팔이하고 또 구두닦이하고 온갖 고생을 다 겪다가 그래서 매도 많이 맞고 위험도 많이 당하고 그래가지고 장사를 시작했는데 처음에 사탕 장사하다가 또 신발 장사하다가 옷 장사하다가 또 좀 큰 장사하다가 그래가지고 자수성가를 해서 재벌회사를 건설했다, 그러면 그 사람은 들어볼때, 아 그 사람은 걸어온 과정이 예사롭지 않고, 말하자면 요즘 세상 쓰는 말대로 이야기가 있는, 속에 드라마가 있는 말이죠. 그런 것이 들어있는 인생살이가 되다 보니까 듣는 사람들에게 감동이 되고 그들 표현대로 은혜가 되고 힘을 주는 그런 걸음걸이가 되는 겁니다. 그래서 위인들이, 대개 유명한 위인들 전기를 읽어보면, 그 사람들은 위인이 위인인 것은 평범하지 아니한 인생걸음을 걸으면서 온갖 난관, 역경, 온갖 세파를 겪어 나가면서 그것을 헤쳐서 겪어나간 그런 과정 과정의 인간 승리가 있을때 많은 사람들이 그것을 보고 감동을 받고 힘을 얻고 그리 되어지는 것처럼,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닌데 그와 같은 이치로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만드시되 영을 만드시고 마음을 만드시고 몸을 만드시고 이렇게 과정이 되도록 만드신 것은,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자유의지를 가진 존재를 만들려다 보니까 영이 있어야 되겠고 마음도 있어야 되겠고, 그런데 그 과정 과정에서 하나님이 당신의 영광을 위한 그런 과정 과정의 역사 일 이런 것을 있도록 해서 듣는 사람들 아는 사람들 그것을 겪은 사람들이 몸소 경험하고 체험하고 겪어가지고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 은혜를 알고 또 은혜를 받고, 자기가 겪으면서 자라가면서 닮아가는 그런 과정들이 있을때 그 속에 내용이 있는 것이고 자기가 몸소 겪는 것이고 자유 의지에 의한 그런 것으로 만들어지는 것이기 때문에 이것이 필요해서 하나님께서 이런 과정을 통과하도록 그렇게 만들어놨고, 알고보면 이것은 필연적으로 이렇게 될 수 밖에 없는 역사다 그말이지요. 이해가 되십니까? 000샘 이해가 되요? 어렵습니까? 하나님께서 사람을, 하나님은 전능자입니다. 전능자니까, 아 그래 복잡하게 하지 말고 그냥 몽땅 사람을 만들되 영으로 만들어가지고 하나님 찬양하도록 하면 될 건데, 뭐 영을 만들어놓고 마음은 또 왜 만들고 몸은 또 뭐하러 만들고 만물들은 뭐하러 만들어놓고, 그렇게 복잡하게 이렇게 해놨는가? 하나는, 인간의 자유의지,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자유성 가진, 자의적인 자기 스스로의 지식과 스스로의 자기 아는 이성지식과 스스로의 몸소 겪은 체험과 이런 것으로 되어야 되기 때문에, 그래서 자유의지에 의한 하나님의 형상 닮은 존재를 만들어야 되니까 이렇게 하신 것이고, 두 번째는 이런 과정들을 몸소 겪어서 자기가 직접 겪어 가지고 자라가는 것이고 만들어져 가는 것이니까 이게 바로 외식도, 그다음 뭡니까, 공과에서? 외식도, 허위도, 과장도, 오판도, 착각도, 하우하박도 어두움도, 허영과 허욕도 용납되지 않는, 자기가 직접 알고 직접 겪어서 걸어가는 걸음이기 때문에 그 과정을 통한 자기 실제 실력을 자기가 만들어가는 것이고, 뒤로 돌아보면 하나님의 은혜인데, 한편으로 보면 자기가 걸어간 것이거든요? 내가 걸어갔는데 하나님의 은혜고, 하나님 은혠데 내가 걸어간 것이고, 이게 필요하니까 이렇게 만들어두신 것이고, 세 번째는 그 과정속에 그렇게 된 그 속에 걸음 걸음마다 하나 하나마다 하나님의 사랑과 사랑으로 하는 수고와 희생 역사가 들어가는 이것이 있기 때문에, 대략 이렇게 세가지로 생각해보면 이런 것들이 있기 때문에 이게 다 뭉쳐지고 보면은, 이게 영원을 두고 참 기가 막힌 그런 존재와 그런 관계가 만들어지게 되는 것이다 그말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사람을 이렇게 만들어두셨습니다. 영과 마음과 몸. 그래서 하나님이 영을 만드시되 그 영이란 것은 오로지 하나님만이 쓰실 수 있도록, 그래서 악한 자가 만지지도 못하고 가까이 하지도 못하는게 영인데, 그 영은 그래서 마귀가 감히 침범할 수 없고 그러므로 영이란 것은 중생전이나 중생후나 범죄하지 않는 존재고 범죄할 수 없는 존재로 지음을 받은게 영이고, 하나님만이 쓰실 수 있고 하나님만을 나타낼 수 있는게 영이고 아래로는 자기 마음에게만 활동할 수 있는게 영이라. 이런 영을 만들어가지고 그 영에게 하나님이 당신을 나타내 보이시고, 영을 알게 하시고, 그래서 영이 본하나님을 영은 자기 마음에게만 나타내서, 마음은 영을 통해서 하나님을 알게 되고, 그러기 때문에 ‘중생’이라 말은 죽었던 영이 살아나는 것인데, 중생되지 아니한, 영이 죽어있는 존재는 결코 하나님을 알 수가 없고, 또 짐승이 아무리 똑똑해도 짐승은 영이 없으므로 하나님을 알 수 없고, 그래서 이것도 어제 신문에 보니까, 참 우스운 세상이지요. 죽은 짐승과 더불어 텔레파시로 교감을 해서 죽은 짐승이, 죽은 강아지가 자기를 기르던 주인에게 하고 싶은 말을 텔레파시 하는 사람들이 죽은 강아지하고 교감을 해가지고 말을 들어서 주인한테 알려주는데, 몇 마디 질문, 무엇을 알고 싶으냐 궁금하냐, 당신이 기르던 강아지가 죽었는데 그 죽은 강아지가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몇가지 알고 싶으냐, 너댓가지 질문하면 그 질문 가지고 강아지한테 텔레파시로 물어보고 그래 답을 들어가지고 주인한테 가르쳐주고, 서너가지 가르쳐주는데 몇만원씩 받는데, 그 하는데 일감이 밀려서 일주일이 지나야 답을 듣고 그런답니다. 순사기꾼들, 도둑놈들. 그런데 그 사기를 치고 도둑질 하는데도 거기 기가 막히게 사람들이 많이 넘어가거든요? 참 세상이 희안하지 않습니까? 그것 보면 도무지 이해가 안되는데, 어떻게 이런, 눈 앞에 이거는 뻔히 보이는데도 그런데도 거기 몇 만원씩 돈을 쥐어주고 거기 가입을 해서 질문을 하고 답을 알려주니까 마음이 위로를 받고 평안을 얻는 답니다. 기르던 강아지 죽고 나니까 몇 날 몇 일 잠을 못자고 슬퍼죽겠는데 거기 해서 그 답을 듣고 나니까 해결이 되고 잠이 오고 그렇답니다. 전부다 주관이지요. 그런 세상입니다. 그런데, 그거는 그런데, 이것도 또 제가 세상 말만 하면 맥을 잊어버려서. 무슨 말 하다가 이거 했지요? 무슨 설교하다가 이거 텔레파시가 나왔습니까? 죽은 강아지가? 아, 짐승은, 맞지요. 짐승은 영이 없다는 그 말. 그래서 짐승은 아무리 사랑스럽고 해도 짐승은 구원이 없는 겁니다. 짐승은 짐승이지, 그래서 개를 잡아먹는다고 욕을 하고, 뭘 잡아먹는다고 욕하는 그것도 우스운 말이고, 또 짐승을 자기 기르던 강아지 고양이가 죽으면 몇 날 몇 일 울고 불고 하는 그 인간들이 자기 부모는 산송장으로 고려장을 시켜놓고 하는 그것도 우스운 말이고 우스운 생각이고, 보면은 전부 거꾸로 된게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그래서 감정에 앞서지 말고 이성에 앞서야 되는 것이지, 감정에 앞서면 여러 가지 부작용들이 많이 생긴다는 겁니다. 그래서 사람은, 하나님께 사람을 이렇게 영과 마음과 몸으로 지으신 이유가 이렇게 있는 겁니다. 영을 통해서, 영은 마음을 통해서, 마음은 몸을 통해서, 그리고 몸은 바깥 세계에 다 퍼져서 어쨌든 결과적으로 온 세계에 우주에 하나님으로 충만하게 만드는 것이 이게 하나님의 뜻이다. 그러면 하나님을 닮아야 하나님 같은 존재가 되어져야 그게 영원한 천국이 건설이 되고 완전한 천국이 되는 것이지, 하나님 같은 존재가 안되고는 그것도 될 수가 없는 그런 면도 생각해 볼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사람은 영과 마음과 몸으로 되어있는데, 영이란 것은 하나님의 형상대로의 지음받은 존재가 영이고, 심신의 주격이고, 사람의 실제적인 사람의 주체, 실질적인 사람이라 그럴때는 영을 말하는 겁니다. 그래서 사람이라 그럴때는 영을 말하는데, 영이 죽은 사람들을 가리켜 죽은 자라 말하는 것이고, 그래서 안 믿는 사람들 중에, 안 믿는 사람은 중생되지 못한 사람들이니까 안 믿는 사람들을 성경은 죽은 사람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는 겁니다. 또 이 영은 영물로 되어있는 존재인데, 영물인데, 이 세상은 물질계이기 때문에, 물질계 세상에서 영의 존재를 알기는 대단히 어려우나 영이란 것을 성경이 나오는 걸 가지고 우리는 몰라도 배운 걸 가지고 적용시켜 보면 영이라는 존재는 하나님만이 쓰실 수 있고 영이 하는 일은 하나님만 상대하고 하나님만 나타내는게 영이다. 그런데 그 영이 활동하는 활동 범위는 자기 마음에게만 활동한다. 하나님은 사람에게 당신을 나타낼때 반드시 영을 통해서 나타내지, 성경이 우리 영으로 더불어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거하시는 것처럼, 영을 통해서만 하나님을 사람에게 당신을 나타내고, 복음이란 것은, 하나님의 말씀이란 것은 전부 하나님과 관련된 것인데, 사람의 마음이 구원 도리를 깨닫고, 말씀을 듣고 깨닫는 것도 듣기는 귀로 듣고 우리 이성으로 생각을 하나 그 속에 영의 작용이 없이는 우리가 말씀을 들어도 깨달음은 없는 겁니다. 하나님과 관련된 깨달음은 없기 때문에, 그래서 반드시 영을 통해서 마음에 하나님과 말씀을 알려주시고, 마음은 영을 통해서 받고 그다음 마음이 깨달아 느낀 것을 몸에게 전달하므로 몸이 현실에서 살아가는 그런 생활을 하고 있다 그말입니다. 그리고 영이란 것은 마음 안에 있는데, 마음 안에 있다는 그 안이라 그럴때 그것은 장소적인 개념이 아니고 존재 순위적이고 존재 가치적인 그런 개념으로 마음을 통해서 작용한다는 의미, 마음보다 더 귀하고 고급의 존재라는 의미로 영은 마음 안에 있는 것이다 그렇게 표현하는 것이고, 마음이 몸 안에 있다 그럴때도 몸 안에 있는데 그말은 몸을 통해서 역사한다는 말이고 몸보다 더 신비하고 고급적인 존재라는 그런 의미지, 장소적으로 몸 안에 어디 마음이 있느냐 그러면 심장 안에 마음이 있다, 심장을 아무리 해부해도 그 안에 마음은 없고 안 보이는 겁니다. 어쨌든 몸 안에 마음이 있는 것은 성경으로 따져보면 그러니까, 그러면 몸 안에 있다 말은 몸을 통해서 역사한다는 말이고 몸 보다는 더 고급의 존재라는 의미로 그렇게 표현할 수가 있는 것이고, 그래서 영은 이런 것. 또 마음이란 것은 영의 모형이고 몸의 주체면서 영의 모든 것을 나타내고, 몸 안에 존재하면서 몸을 통해서 역사하고, 몸보다 고급의 존재라는 것이고 신비한 물질인데 이거는 물질이기 때문에 마음이란 것은 사람들이 누구나 다 알고 인지하고 있는게 사람의 마음이지만은 그러나 구체적으로 마음이 무엇인가를 물으면 사람들은 대답을 하기가 대단히 어렵고, 마음이란 것은 그래서 하나의 그릇같은 것이라. 그 마음 속에는 온갖 마음의 작용 요소들이 들어있으니까 그런 것이라 할 수 있는데 이게 신비한 물질이기 때문에 눈에 보이지도 않고 들리지도 아니하고 다만 느낌으로 알 수 있는 존재, 이게 마음이다. 몸이란 것은 마음의 모형으로 마음을 나타내는 것이고 흙으로 지음 받은 육체로써 사물을 직접 일선에 접하며 활동하는 그게 사람의 몸이고, 물질 중에서 신비한 물질 마음 다음으로 그 기능이 가장 탁월한 것이 사람의 몸이다. 그래서 사람이란 것은 이렇게 영과 마음과 몸으로 지어져있고, 하나님이 하나님의 목적을 위해서 이런 요소들로 사람을 지어서 만들어 놓으셨다 그말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지음받은 인간이, 그래서 이렇게 지어놓으신 사람의 근본 목적은 하나님을 나타내는 겁니다.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이고. 그런데 사람이 하나님을 거역하고 마귀한테 미혹받아서 범죄하고 타락해서 영원한 사망을 당하게 되어졌고, 그 사망할 때 죄를 지을때 뭐가 죄를 지었느냐? 사람이 죄를 지을때는 무엇이 지었다고요? 심신이 지었다 그럴때, 막연하게 하지말고, 앞에 오전에 말씀드린 대로 논리가 그렇지 않습니까? 마귀가 배암을 입고 들어왔습니다. 들어왔을때 하와의 눈이 봤고, 눈은 몸이지요? 눈이 봤고, 그다음에 하와의 귀가 뱀의 말을 들었고, 귀는 몸입니다. 눈이 보고 귀가 듣고 나니까 마음 속에 생각이 났지요? ‘아 그런가’ 하고. 생각이 나서 또 눈이 선악과를 쳐다봤고, 쳐다보니까 마음에 생각되기를 보암직도 하고 먹음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만큼 탐스럽게 보였으니까 마음이 그렇게 생각이 들었고, 그래서 발이 걸어가서 손이 따서 입에 가져가서 입이 아작아작 씹어먹고 또 하와한테 가서, 하와한테 보여주고 설명하고 주니까 하와도 보고 듣고 받아서 입으로 먹었으니까 그거는 전부다 몸과 마음에 작용들이지, 그게 영은 전혀 들어가지를 않았다 그말입니다. 그러니까 순전한 범죄는 심신의 범죄다 그말입니다. 마음과 몸의 죈데, 영이 죽은 것은 우리가 배워 잘 아는대로 주격 위치에서 주격 책임으로 영도 죽고 마음과 몸도 죽었는데, 영은 하나로 된 단일체기 때문에 단번에 죽었고 마음은 수많은 종합체기 때문에 오랜 세월 걸쳐 평생을 통해서 죽는 것이고, 그래서 사람이 지금 죽는 것은, 늙고 병들고 죽는 것은 선악과 따먹은 그 죗값으로 사람이 세월속에 늙고 병들고 죽는 것이고, 그러면 나자 마자 죽는 사람은 나자 마자 죽는 것도 그것도 죽기는 단번에 죽어도 그 속에 있는 많은 그런 요소가 다 같이 죽는 것이다 그말입니다. 그렇게 죽는 것이고. 그래서 그렇게 죽은 상태가 되어있어서 하나님의 목적이 실패가 되기 때문에 구원해야 되니까, 인간이 없으면 하나님의 목적은 안되는 것이니까 인간을 구원하기 위해서 예수님이 도성인신 하셨고 사활의 대속을 마귀와 전투해서 베풀어서 싸워 이기심으로, 대속을 완성하시므로 완전 승리하시고, 그래서 우리를 구원하셔서 하나님의 공심판 통과하고 마귀의 왕권을 빼앗고 종으로 삼고 우리 훈련 연습의 대상으로 삼아놓고 그리고 우리에게 재생의 기회를 주신 것이니 그게 바로 현실이라. 그래서 오늘에 우리들이 살고있는 현실의 생활, 현실 전투는 그게 전부 하나님께서 대속의 공로를 베풀어서 우리에게 주신 재생의, 패자부활의 기회가 우리가 살고있는 생애고 우리 모든 현실은 거기서 영은 하나님의 은혜로 단번에 주격이기 때문에 살려놨고, 이제는 영을 통해서 살리는 심신의 모든 요소를 살려나가는 것이 우리들이 현재 살아가는 이 세상 생활에 모든 신앙생활에 과정들이고 힘쓰는 신앙생활들이라는 것을 말씀을 드리는 겁니다.
그러기 때문에 심신의 기능 구원이란 것은 반드시 영을 통해서만 되는 것이지, 영을 통하지 않고는 이게 되는 수가 없다는 것을 강조하는 것이고, 그래서 영을 통해서 우리 심신의 기능을 살리는 하나님의 구원 역사라. 그러기 때문에 사람의 영이란 것은 알아야 되는 것이고, 영이라는 존재를 모르면 기본적인 그런 것은 있을지 몰라도 건설구원에 어떻게 구원되는지는 알 수가 없다 그말입니다. 그래서 영을 알아야 되고 영의 존재도 알아야 되고 영의 역사도 활동도 알아야 되고 우리들의 심신이 어떻게 구원되는지를 알고 전투를 해야 전투를 바로 할 수가 있는 것이지, 그래서 현실을 살아가는 것은 전부 내 몸과 그 안에는 마음과 이 두가지가 내 눈에 보이고 들려지고 접해지는 모든, 가정에서 가족들끼리 자녀하고 부모하고 티격태격하는 것도 마음과 몸이고 부부가 사는 것도 마음과 몸이고 직장 생활하는 것도 마음과 몸이고 그 내 마음과 몸의 그 요소가, 그 모든 생활들이 그게 어디서 뻗어서 나오는 것인가? 그래서 육신의 일을 쫓는 자는, 로마서 8장 5절입니다. ‘육신을 좇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을 좇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하나니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 이 육신이 뭐냐? 육신이란 것이 전부 자기 고깃덩어리, 자기 좋게 하는 것. 자기 마음과 몸, 여기 영이란 것은 성령을 말하는데, 성령은 우리 영과 하나니까. 그래서 영은 잊어버리고 자기 마음과 몸이 주장되어 사는 생활이 전부다 육신적인데, 가정에서 돌아가서 부부가 부부싸움할 때를 한번 돌아보십시오. 부부가 어떤 일 때문에 부부 싸움을 한다면, 전부 육신의 말이고 행동이고 생각인데, 남편이 아내한테 하는 말과 행동과 화가 나서 쏟아붓는 것, 아내가 거기 대해서 되받아치고 바가지를 긁고 속이 썩어서 밥을 안해주고 남자는 밥도 안먹고 나가버리고 이렇게 하는 모든 것들이, 그게 어디서 나오는, 그렇게 행동하는 그 주체가 바로 마음이고 몸인데 그 마음과 몸에 그런 행동이 나오게 된 그 근거 뿌리가 어디서 나오는 것인가? 그게 전부 말하자면은 영과 상관없는 육신적인 것이고, 바로 악령에 붙들린 악성 악습으로 되어진 그런 것들인데, 알기 쉽게 말하자면 그런 것들을 뽑아내서, 오전에 말씀드린대로 담배를 많이 피니까 몸에 인이 박혀가지고 안 피면 안되고, 술을 많이 먹으니까 알콜이 중독이 되어가지고 몸에 중독이 박혀가지고 이걸 안 먹으면 그만 금단현상이 일어나가지고 몸이 벌벌 떨리고 안되니까 강제로 병원에 보내가지고 억지로라도 그렇게 술을 끊게 만들고 담배를 끊게 만들고 그렇게 하는 것처럼, 그래서 속에 있는 독소를 뽑아내지 않으면 안되는 것처럼, 피아노를 배우는데 기본기 익히지 아니하고 제멋대로 얄궂게 배워놓으니까 옳은 실력있는 선생님이 데려다 가르치는데 보니까 ‘한번 쳐봐라’ 그러니까 엉망으로 치는데, 제딴에는 친다고 잘치는데 보니까 이게 원리 원칙 기본기가 완전히 틀려버리니까 그걸 빼내려 그러면, 기계나 이런 건 확 잡아빼버리고 갖다버리고 바꾸면 되는데 사람 마음과 몸에 익어진 악성과 악습이란 것은, 특히 악습이란 것은 이거는, 악성이란 것은 마음 요소니까 생각을 바꾸면 되는데 설득해서, 악습이란 것은, 몸에 익어진 것은 이거는 그 몸에 길들여진만큼의 세월이 들어가서 반대로 나가야 빠져나가지 안 빠져 나간다 그말입니다. 이런 것들이 전부 하나님 없이 세상으로 살아서 하나님 없는 생각, 욕심, 사고방식, 가치관, 사상, 소원 그렇게 산 생활들, 그런 모든 생활들 우리가 오늘까지 살아오면서 얼마나 많이 했는데, 그런 모든 것들이 내 심신에 익어있고 그게 전부 삐뚤어져있는 것이니까 그게 전부 죽어있는 심신인데, 지나간 세월의 심신 그렇게 된 것은 이미 살리지 못하는 것이고 다 죽어버린 것이고 그건 두 번 죽었기 때문에 둘째 사망의 해를 받은 것이고, 할 수 없는 것이고, 남은 때라도 그걸 살려 나가야 되겠는데 그렇게 살려내려면 그만큼 앞으로는 과거에 그런 찌든 그 때를 빼내면서 그렇게 안하고 해나가야 되니까 그것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 그런 일을 하는 역사가 바로 우리 현실에 우리들의 생활이고 하나님께서 우리 사람이라는 사람의 사람을 변화시키는 것은 말하자면 영은 다 된 것이고 마음과 몸을 변화시키는 건데 마음과 몸을 변화시킨다는 말은 그 마음과 몸이 순간 순간 현실 현실마다 그렇게 안할거는 안해야 되고 할거는 해야 되고 실제로 하나 하나 그렇게 봐야 되고 들어야 되고 생각해야 되고 말해야 되고 행동해야 되고 그렇게 해나가야만 그 마음과 몸이 그렇게 실제 변화가 되어지는 것이기 때문에 신앙이란 것은 진압태산으로 차근 차근 차근 밟아가는 것이지 이렇게 하지 아니하고 어느날 갑자기 있다가 기도만 한다고, 하나님께서 하늘에 뚝 떨어져가지고 나를 변화시켜서 안되던 회개가 순식간에 회개가 되어지고 어느 부흥회 한번 참석하니까 회개되어지고, 부흥회 참석해서 은혜 받으니까 회개 되었다 그거는 순간입니다. 그 순간은 마음이 감동이 되고 힘이 되어 살아보겠다 하지만은 그날까지 살아온 자기 몸에 찌들어진 그거는 그 부흥회 열기 식어지면 또 나오는 겁니다, 그거는. 그러기 때문에 세월속에서 그걸 바꿔내고 빼내지 않고는 안되는 것이다 그말이지요. 이런 모든 역사 심신의 구원 역사를 하는 것이 바로 오늘의 현재라. 이걸 가리켜 공과에서 말씀하시기를 준비와 시험의 현장이 바로 현실이라고 말씀을 하시는 겁니다. 이래가지고 설명을 드려도 이걸 못 알아듣고 모르면 안되지요. 생각을 많이 하셔야 됩니다.
그래서 오늘 말씀의 요점은, ‘영을 통한 심신 구원의 역사’ 이게 오늘 말씀의 제목이고 중심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영을 통하지 않고는 하나님은 우리 심신을 구원할 수가 없고, 그래서 영을 살려놓고 우리 심신을 살려나가는 것이고 그 심신을 살려나가는 것이 바로 현실 전투고, 그 현실 전투에서 내 심신의 기능이 사는 것은 내가 변화가 되는 것이고 변화되는 것은 하나 하나 바꾸어져 나가는 것이고 그게 우리 성화고 그것이 참사람으로 점점 되어져 가는 것이고, 이것이 우리의 구원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이거 위해서 기도하고 이거 위해 성경 읽고 이것 때문에 예배 보고 이것 때문에 말씀도 듣고 그리하고 있는 겁니다. 이게 실제적으로 되어지는 것. 그러기 때문에 기독교는 진실의 도라고 말씀을 하는 겁니다.
다같이 통성으로 기도 드리겠습니다.
기독교는 진실의 도라. 외식도 허위도 과장도 오산도 착각도 오판도 하우하박도 허영 허욕도 어두움도 용납 안되는 진실과 실상의 도라는 그 의미를 공과에 말씀하신 것을 깊이 생각해봐야 됩니다. 그게 바로 현실에 있는 것이고, 그 현실에서 우리 심신에 수많은 요소가 오랜 세월 찌들어 있는 걸 뽑아내면서 옳은 바른 연습으로 익숙해져 나가야되는 그런 것이기 때문에 이거는 실제 안하면 안된다는 겁니다. 먹어야 배가 부르고 마셔야 목에 갈증이 면해지는 것처럼 실제 안하고 되는 수는 없는 것이 기독자의 구원이라 하는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