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25-주전(창13:1-13)
신앙의 두 길2014-05-25조회 459추천 28
본문: 창세기 13장 1절-13절(요약/2014.05.25.주일)
제목: 신앙의 두 길
1. 자신의 신앙을 살피자(고전10:12)
1)선 줄로 생각하면- 넘어질까 조심
2)쉬지 않고- 자신의 신앙을 살펴야
3)생각보다 훨씬- 크고 많은 자기의 단점, 고칠 점이 있음을 기억
4)진합태산은- 부정적인 면에도 해당, 작은 잘못 하나가 모이면 큰 문제
2. 아브라함과 롯의 노정(12:1-13:4)
1)신앙 출발(12:1-5)
①명령: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②의미: 소속과 소망을 바꿔라, 기본 회개, 신앙 출발
③순종: 아브람의 순종, 갈 바를 알지 못하고 하나님과 말씀만 믿고
④참고: 가지고, 데리고 갈 수 있는 것은 가지고, 데리고 출발
2)벧엘 환난(12:5-10)
①벧엘: 벧엘 도착, 가나안 땅, 하나님의 약속, 이 땅을 네 자손에게 주리라
②제단: 여호와를 위하여 단을 쌓고 하나님 섬기는 생활
③환난: 기근이 심하여(경제 어려움) 점점 남방으로 가다가 애굽까지 내려감
④교훈: 신앙생활에 좋은 일만 있지 않다는 것, 환난은 언제나 있는 것 기억
3)애굽 환난(12:11-20)
①애굽: 세상. 경제 어려움 때문에 세상으로 들어간 것
②처세: 아내 때문에 죽임 당할까 두려워 누이라 속이는 처신
③위기: 애굽 왕 바로에게 아내 사라를 빼앗길 위기(하나님의 징계)
④구출: 하나님이 바로에게 현몽, 바로가 사라를 돌려보냄
⑤교훈: 신앙생활에 어려움 피해 세상으로 들어가면 더 큰 환난
4)회개, 축복(13:1-4)
①회개: 애굽에서 큰 징계 받고 회개, 다시 벧엘로
②축복: 회개하고 벧엘로 돌아오는 기간에 축복, 크게 부요
③교훈: 회개하는 길은 축복 받는 길
3. 아브라함과 롯의 선택(13:5-13)
1)기로(岐路)
①축복: 양과 소가 심히 많아. 물질 축복, 세상 축복
②갈등: 양과 소가 많아서 동거 불가, 목자들의 다툼 계속
③기로: 두 가족 동거 불가하니 나누어질 수밖에 없는 상황
④교훈: 세상 축복을 하늘 축복으로 바꾸지 못하면 축복이 오히려 손해
2)선택(選擇)
①고민: 아브라함도 롯도 고민
②상황: 소돔들은 여호와의 동산 같고, 가나안은 박토
③양보: 아브라함이 롯에게 선택권을 양보
④선택: 롯은 소돔으로, 아브라함은 가나안으로
3)결과(結果)
①롯의 결과: 소돔 전쟁, 소돔 고모라 유황불비, 멸망의 조상
②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약속, 젖과 꿀이 흐르는, 318명, 믿음의 조상
4. 신앙의 두 길
1)두 길
①하나님과 자기 ②하나님 뜻과 사람의 뜻 ③축복과 조건
2)아브람의 길
①자기보다 하나님
②사람의 뜻보다 하나님 뜻
③보이는 조건보다 하나님 축복
3)롯의 길
①하나님보다 자기
②하나님 뜻보다 사람의 뜻
③하나님 축복보다 보이는 조건
--------------------------------------------------------------------
140525 주전
창세기 13:1-13
그 뒤로 14절부터 계속 읽어 보면 롯이 소돔으로 떠나고 난 다음에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셔 가지고 보이고 있는 그 땅을 아브라함과 그 자손에게 주고 아브라함의 자손들을 하늘에 별처럼 바다의 모래처럼 많게 해주겠다는 축복을 약속하신 그런 내용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오늘은 아브라함과 롯의 두 사람의 신앙을 신앙 걸음을 통해서 우리의 신앙을 한번 살펴보려고 합니다. 오늘 말씀 제목을 신앙의 두 길, 그렇게 생각해 봤습니다.
같이 한번 해보겠습니다. 신앙의 두길
우리 신앙생활 하는 길에는 언제든지 두 길이 있다는 것을 여기서 생각해볼 수 있겠습니다.
먼저 고린도전서 10장 12절 말씀에 보면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해라, 사람이 앉아 있으면 넘어 질 일은 없습니다. 누워있어도 넘어질 일은 없습니다. 사람이 서 있다가 어지러우면 앉아야 되고 더 어지러우면 누우면 괜찮아 집니다. 그런데 서 있는 사람은 넘어질 위험을 언제든지 가지고 있습니다. 성경에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는 말씀은 자기 신앙을 두고 말씀합니다. 사람이 자기 신앙이 나는 신앙이 있다고 생각하면 그 신앙이 위험하고 또 깨어 있다고 생각하면 신앙이 잠들기 쉽다. 말하자면 신앙생활에 있어서 자신감을 가지고 있으면 넘어질 위험성이 많다 그런 뜻입니다. 신앙생활에 있어서 자신감을 가지고 있으면 넘어질 가능성이 많다, 선줄로 생각하면 넘어질까 조심하라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우리는 자신의 신앙을 쉬지 않고 자신의 신앙을 살피는 우리들이 되어야 합니다. 스스로 자신을 돌아보고 자기 신앙을 쉬지 않고 살펴나가는 그런 우리들이 되어야 합니다. 학생들이 자기 학교 성적을 늘 살펴보듯이 또 사람이 자기 건강을 늘 검진하고 살펴보듯이 우리 신앙은 우리는 우리 자신의 신앙을 쉬지 않고 살펴보는 그런 우리들이 되어야 합니다. 자신감을 가지고 이만하면 됐다고 생각을 하고 자기 신앙을 돌아보지 않으면 그때부터 그 사람은 넘어지기 쉽습니다. 우리는 남에 대해서는 다른 사람에 대해서는 평가도 정확하고 판단도 대게 정확합니다. 자기에게 가까울수록 평가나 판단은 더 어두워지게 되고 바로 되지 못하기가 쉽습니다. 등잔 밑이 어둡다는 세상 속담은 가까울수록 더 어둡다는 그 말입니다. 사람이 자기 자신에 대해서는 가장 비판이나 평가 판단이 어두워지게 되고 자기와 먼 사람일수록 바른 평가 바른 판단이 나오게 됩니다. 자기에게 대해서는 가장 어두운 것이 대부분의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내가 생각할 때 나는 단점이 있으되 나의 단점은 그리 크지 않다고 생각하기 쉽고 내 신앙이 이정도 되면 어느 정도는 되리라 그리 알고 있기가 쉽고 내게 있는 단점, 내 신앙의 정도가 설마 저렇게까지 되어 질까 싶은 그런 생각을 하기 쉬운데 사람은 생각보다 훨씬 크고 많은 단점을 가진 것이 대부분의 사람들이고 생각보다 훨씬 크고 많은 고칠 점을 가지고 있는 것이 대부분의 사람인 것을 기억을 해야 합니다. 성경에 인류 시조에서 아담하와의 아들 중에 가인이 있습니다. 가인은 자기 동생 아벨을 의롭다 하여 시기해서 아벨을 시기하다가 돌로 쳐 죽인 인류 첫 살인자가 가인입니다. 가인은 모든 사람들이 볼 때 아주 죄인이고 몹쓸 사람으로 판단하고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 자신들 속에 가인 같은 요소가 있으리라고는 상상도 못하고 전혀 생각지를 못하는 것이 대부분의 사람들입니다. 설마 내 속에 의로운 아우를 시기하여 돌로 쳐 죽인 가인 같은 요소가 설마 내 속에 있을까 하는 겁니다. 또 롯 같은 오늘 봉독한 말씀에 나오는 롯과 같은 이런 요소가 내속에 있을까 그리 생각하기 쉬운데 우리 속에는 가인 같은 요소가 얼마든지 있고 롯 같은 요소도 얼마든지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런 것이 없다고 생각하면 그게 바로 선 줄로 생각하는 것이고 넘어질 위험성이 대단히 많은 사람이 되어 있는 겁니다. 생각보다 훨씬 크고 많은 단점, 문제점이 우리들에게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하고 진합태산 이라는 말은 티끌 모아서 큰 산을 이룬다는 뜻인데, 이 말은 일반적으로 좋은, 긍정적인 부분에 많이 쓰이나 이거는 부정적인 면에도 해당이 되는 말입니다. 작은 단점들을 무시하면 그게 점점 모여져서 큰 단점을 만들게 되고 큰 문제를 만들게 되어지는 겁니다. 이 면을 우리가 잘 생각을 하고 우리 자신을 쉬지 않고 살펴보는 그런 우리들이 되어야겠습니다.
여기 본문에 보면 아브람과 롯, 두 사람이 애굽에서 올라오면서 복을 받아서 벧엘에 이르게 되었는데 거기가 좁아서 나누어지는 그런 장면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먼저 아브라함과 롯의 신앙 출발을 먼저 살펴봐야 하는데 12장 1절부터 읽어 보면 아브라함과 롯의 신앙 출발의 내용이 기록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서 내가 너에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고 명령을 하셨습니다. 그때 아브라함의 나이가 75세였는데 75년 동안 살아온 자기 고향 땅 본토와 친척 아비 집 거기서 떠나서 하나님이 명령하신 그곳으로 가라고 명령을 하셨습니다.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서 내가 너에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땅에 소속된 사람, 이 세상에 소속된 자기 소속과 또 사람에게 소속된 소속과 이 세상을 소망하고 인간을 의지하던 이것을 떠나 가지고 이제는 하나님과 하늘나라로 소속과 소망을 바꾸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말하자면 믿는 사람의 진정한 신앙 출발이며 기본 회개에 대한 말씀입니다. 소속과 소망을 바꿔라, 기본 회개, 신앙 출발을 말씀합니다.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서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럴 때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 말씀을 믿고 자기 알 바를 알지 못하고 믿음으로 하나님과 말씀만 믿고 순종해서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서 갔습니다. 하나님께서 떠나라 그러니까 떠났고 가라 그러니까 어디로 가야 될지 또 가면 어떻게 될지 알지 못하지만 하나님의 명령이니까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 말씀만 믿고 갈 바를 알지 못하고 출발해서 나아갔습니다. 갈 때에 다 버리고 간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말씀 따라서 걸어가는 그 걸음에 방해되지 않고 가져 갈 수 있는 것들, 데려 갈수 있는 사람들은 다 가지고 데리고 출발해서 나아갔습니다.
그래 가지고 나아가서 가나안 땅에 이르러서 벧엘과 아이 사이, 서는 벧엘이요 동은 아이라 하는 그 벧엘 지방에 이르렀습니다. 거기서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내가 이 땅을 네 자손에게 주리라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서, 오래도록 살던 정든 자기 고향땅, 거기서 떠나서 하나님께서 가라 하신 곳으로 갔으니까, 신앙 출발을 해서 하나님의 인도를 따라 지금 신앙생활하고 있는 겁니다. 벧엘은 하나님 섬기는 장소, 신앙생활 하는 것을 말합니다. 거기서 제단을 쌓고 하나님을 섬겼습니다.
그런데 벧엘에 이르러서 하나님 섬기는 신앙생활을 하는 도중에 점점 그 땅에 기근이 심해 져서, 점점 기근을 피해서 남쪽으로 점점 내려가다가 어디까지 갔는고 하니 애굽까지 내려갔습니다. 기근은 경제 환난을 말합니다. 예수 믿는 사람이, 택함을 받은 성도는 때가 되면 중생되고, 중생된 사람은 때가 되면 신앙 출발을 하게 됩니다. 예수 믿는 신앙 출발을 하게 되는데 신앙생활을 하다 보면 하나님의 인도 따라가 하나님의 인도를 따라가는 것이니까, 하나님이 인도 하시고 하나님 섬기는 신앙생활 하니까 좋은 일만 있고 복된 일만 있으리라 오해하기 쉬운데, 신앙 걸음에는 여러 가지 종류의 어려움을 많이 만날 수 있고, 대게 그 첫 출발의 어려움이 가장 낮은 단계 어려움이 경제 어려움을 만나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 믿는 사람이 하나님을 섬기는 생활, 말씀 지키는 생활, 계명대로 사는 생활을 하려고 하면 경제적인 어려움을 만나게 됩니다. 주일을 지키려고 하니까 직장도 자유롭게 구할 수가 없고 또 사업을 해도 주일을 다 지키니까 손해를 많이 보고 여러 가지 경제 어려움을 많이 만나게 됩니다. 아브라함과 롯도 하나님이 떠나라는 자기 고향을 떠나서 가라 하신 약속의 땅, 가나안을 향해서 갔고 가나안 땅, 벧엘 땅에 도착했는데 거기서 제단 쌓고 하나님을 섬기는 생활하고 있는데 점점 그 땅에 기근이 심해져서 먹을 것이 점점 없어지고 경제적인 큰 어려움을 만나게 되어졌습니다. 기억해야 됩니다. 예수 믿는 사람이 예수 믿으면 잘 믿어도, 믿으면 언제든지 좋은 일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 잘 믿는 사람도 여러 가지 종류 여러 형태의 어려움을 만날 수 있다 하는 겁니다. 하나님의 뜻이고 연단입니다.
그럴 때 어떻게 대처해야 되느냐, 그럴 때 아브라함은, 이 때 아브라함은 아직까지 우리 믿음에 조상이지만 아직까지 믿음의 조상이 안 되고 신앙이 어릴 때 입니다. 아브라함의 신앙이 아직 어릴 때라서 배가 고파서 하나님이 거하라 하신 그 땅에 머물러 있다가 배고픔을 피해서 점점 남쪽으로 내려갔는데, 내려가는데 배고픔을 믿는 사람이 피해서 떠나 갈수 있습니다. 그런데 선이 있는데 갈수 있는데 까지는 갈 수 있습니다. 지난 주일에 우리가 환난에 대해서 공부를 했는데 기독교는 고행주의가 아니기 때문에 사서 고생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러니까 예수 믿는 사람이 직장을 구하되 일부러 월급이 작은데, 일이 힘든 그런 곳을 찾아갈 필요가 없다는 겁니다. 일부러 장사하는 사람이 밑지고 물건 팔고 손해 보고 물건 팔, 그런 일을 할 필요가 없다는 겁니다. 기독교는 고행주의가 아닙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다가 순종하다가 어려움을 만나면 그 어려움을 피할 수 있습니다. 피해서 어려움이 없는 어려움이 적은 그런 곳을 찾아갈 수 있다는 겁니다. 그런데 선이 있습니다. 갈수 있는데 까지 가야 되고, 가서는 안 되는 데는 가서는 안 되는데 아브라함과 롯이 벧엘에서 재단 쌓고 하나님 섬기는 신앙생활을 하다가 배고픈 어려움을 만나니까 어려움을 피해서 점점 남쪽으로 내려 갔습니다. 갔는데 어디까지 갔는고 하니, 애굽까지 가버렸는데 성경에 애굽은 우리가 어떻게 해석합니까? 애굽은 세상입니다. 세상은 하나님이 없는 곳이고 하나님 섬기지 않는 곳이 세상입니다. 아브라함과 롯이 세상으로 들어가 버렸습니다. 하나님을 완전히 버리지는 안았지만 신앙생활을 포기하다시피 하는 세상생활로 들어가 버렸습니다. 말하자면 가서는 안 될 곳까지 가버렸다 그 말입니다. 신앙보다 배고픔이 너무 커서 배고픔을 피해서, 말하자면 신앙을 저버린 그 정도까지 나아가게 되어졌습니다. 애굽까지 가버렸습니다. 경제 어려움 때문에 세상으로 들어간 것입니다.
믿는 사람이 세상에 들어가면, 믿음을 버리게 되면 성경에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라 소금이 만일 맛을 잃으면 밖에 버리워 사람들에게 밟힌다 그랬습니다. 땅에도 거름에도 쓸데없어서 밖에 버려져 사람들에게 밟힌다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러니까 예수 믿는 사람이 신앙생활 하다가 신앙을 버리면, 세상으로 들어가면, 어려워서 세상에 들어갔는데, 신앙을 버렸는데, 신앙을 버리고 세상으로 들어가면 그 세상에서 만나는 더 큰 어려움을 만나게 됩니다. 아브라함과 롯이 아브라함이 주체니깐 아브라함이 배고픔 때문에 애굽에 내려갔는데 애굽에 내려가니깐 애굽에는 하나님이 없는 세상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그러니깐 마음에 들면 죽이고 빼앗아갑니다.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가 미인입니다. 그런데 그 아내를 데리고 애굽에 들어가니깐, 하나님 모르는 그 무자비한 인간들이 자기를 죽이고 아내를 빼앗아 갈까 싶어서 겁이 나서 거기서 그 사람들을 속여서 자기 아내를 자기 누이동생이라 속이고 그리 들어갔습니다. 그러니까 그곳에 사는 사람들과 애굽의 바로 왕이 아브라함의 아내를 보고 미인이니까 또 아내라 하지 않고 동생이라 그러니까 자네 동생을 내 아내 삼게 하자 그래가지고 바로가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를 아내 삼으려고 데려갔습니다. 아내 빼앗겼지요, 말도 못합니다. 죽을까 싶어서, 빼앗겼는데 그냥 두면 아브라함은 아내 빼앗기고 아내 빼앗겼는데 동생이 아니고 사실은 아내인데 동생이라 속였지마는 언젠가는 발각이 될 것이고 그러면 남의 아내 빼앗는 것이 되는 것이니까 바로가 아브라함을 살려둘 리가 없고 죽일 것이고 그래 자칫하면 아내 빼앗기고 자기 죽고 몽땅 집안 전부 몰살당할 위기를 만나게 되어졌습니다. 이게 믿는 사람이 세상으로 들어가면 만나면 당하는 환란중의 하나입니다.
정리해보십시다. 예수 믿는 사람이 신앙생활 하다 보면 항상 좋은 일만 있는 게 아니라는 겁니다. 항상 등 따시고 배부르고 편안하게 내가 원하는 환경현실만 오지 않습니다. 아무리 신앙생활을 해도 하나님 지키는 계명생활하고 믿음을 잘 지켜도 살아가다 보면 여러 종류의 형태 어려움을 만나게 되는 겁니다. 하나님 뜻이 있어서 그리 하시는 겁니다. 그럴 때 믿는 사람이 그 어려움을 피해서 세상으로 들어가 버리면, 믿음을 버리고 세상으로 들어가면 어려움 피해서 세상으로 들어갔는데 무엇을 피해갔는데 무엇을 만난다는 것처럼 어려움 피해서 세상으로 들어갔는데 세상으로 들어가면 그때는 하나님을 배반했으니깐 하나님의 보호도 없습니다. 하나님 없는 세상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하나님 없는 세상에 하나님 버리고 들어가면 그 세상에 밟히고 세상에 종 되고 밥 되고 대단히 위험한 처지가 되게 되는걸 여기서 볼 수 있습니다. 그리 되어 있는데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믿음의 조상으로 길러나가야 되니깐 사랑하셔서 또 완전히 버리지 않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바로의 꿈에 나타나셔서 네가 남의 아내를 데려왔으니 그를 돌려보내지 않으면 너 죽는다, 그래가지고 경고하셔서 가까스로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구출을 받게 되어졌습니다. 이게 애굽에 가서 만난 아브라함의 환란입니다. 이게 환란입니다. 그러고 나니깐 아브라함이 비로소 깨달았습니다. 내가 하나님 섬기는 생활하다가 배고프다고 하나님 섬기는 생활을 포기하고 하나님 없는 세상으로 들어갔더니 아내 빼앗길뻔했고 나 죽을 뻔 했고 우리가족이 전부 몰살 당할 뻔 했고 하나님 진노였구나, 그런데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구원을 받았구나, 이걸 깨닫고 아주 철저하게 통절히 회개하는 심정으로 다시 벧엘로 하나님 섬기는 생활로 다시 돌아 올라 왔습니다. 올라 오는 길에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롯에게 크게 축복을 하셔서 올라오는 기간이 좀 걸렸는데 그 사이에 두 집안이 큰 복을 받아서 부자가 되어졌습니다. 회개하고 돌아오는 길은 축복받는 길이란 것을 또 하나 기억해야 됩니다. 회개하는 것은 아픕니다. 고통스럽고, 그러나 믿는 사람이 죄를 지었으면 믿음을 저버렸으면 이거는 참 숯불 지고 불로 들어가는 그런 행동이 되는 것인데 회개 하려 그러면 회개 해야 되는데 어렵고 고통이 따릅니다. 그래도 고통이 따르고 어려워도 회개만 하면 하나님께서 기뻐하셔서 큰 복을 주십니다. 누가복음 15장에 보면 잃은 양 한 마리 양 한 마리가 우리를 떠나서 목자를 떠나서 들로 나갔는데 목자가 찾으러 가서 찾았고 찾고 난 다음에 돌아 올 때는 어깨에 메고 왔습니다. 이게 회개의 걸음이라 그리 말합니다. 우리가 회개하는 걸음은 하나님의 어깨에 안겨 메어오는 안겨오는 그런 걸음이 되는 겁니다. 아브라함과 롯이 회개하고 돌아오니깐 하나님께서 기뻐하셔서 큰 복을 주셨습니다.
그 다음 13장 중간에 나갑니다. 복을 받아서 회개하고 돌아오니깐 복을 받아서 아브라함도 롯도 목축하는 사람들인데 양과 소가 심히 많아져서 큰 부자가 됐습니다. 물질축복 세상축복을 받아서 큰 부자가 됐습니다. 목축하는 사람들이니깐 양도 많고 소도 많고 큰 부자가 되었는데 부자가 되면 좋겠는데 문제가 생겼습니다. 어떤 문제가 생겼는고 하니 땅은 한정이 되어있는데 땅은 좁은데 땅이 있어도 풀이나 물이 한정이 되었을 건데 워낙 땅이 많고 소가 많고 짐승들이 많고 그들 먹인 사람들이 있고 하니깐 좁은 한정된 땅에 두 집안에 가축들이 워낙 많으니깐 좁아가지고 서로 날마다 아브라함의 목자들하고 롯의 목자들이 날마다 시비를 합니다. 서로 자기 짐승들에게 좋은 풀 좋은 물 먹이려고 부딪치고 마찰이 생겨지게 됩니다. 그래서 두 집안 사이에 아직까지 아브라함과 롯은 신앙 있는 사람들이니깐 초월하는데, 그 밑에 있는 일꾼들 사이에서 갈등이 점점 굉장히 심해지게 됩니다. 아브라함의 집안하고 롯의 집안 일꾼들 사이에 땅이 좁으니깐 갈등이 생겨서 이게 점점 심각하고 마찰하고 점점 커지게 밖으로 나오게 됐습니다. 마찰이 점점 되게 됐다 그 말이죠. 그래서 두 집안이 한곳에 같이 머물 수 없게 될 상황이 되어 졌습니다. 여기서도 우리가 하나 생각해 볼 수 있는 것이 지금 상황이 아브라함과 롯 두 집안이 벧엘에 있는 가나안 땅에 같이 살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이유가 무엇입니까? 왜 두 집안이 출발부터 같이 나왔고 같이 고난 받았고 같이 애굽에 갔었고 같이 회개하고 돌아와서 같이 복을 받았으니까 한 집안처럼 그래 됐으니까 큰 복을 받았으니까 좋은데 함께 행복하게 사이좋게 오손도손 살면 좋겠는데 함께 살수 없게 되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양과 소가 너무 많아가지고, 왜 양과 소가 많아졌습니까? 하나님 앞에 축복을 받아서 그러면 하나님 축복을 받은 것은 좋은데 그 받은 축복이 많아서 그 축복 때문에 지금 두 집안이 갈등이 생겼다 그 말이지요.
이게 믿는 사람에게 필연적인 이런 과정 중에 하나입니다. 이게 세상축복입니다. 그래서 예수 믿는 사람들이 예수 믿어서 세상에 복을 받습니다. 가난한 사람이 경제가 부자가 되기도 하고 집안이 불목이 있던 집안이 예수 믿으니깐 화목이 되기도 하고 또 머리가 별로 그만큼 안하고 성적이 안 좋던 학생이 예수 잘 믿어 성적이 좋아지기도 하고 직장이 없어 애를 먹던 사람이 예수 잘 믿어 직장을 구하기도 하고 세상 축복을 받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 세상 축복을 받으면 좋은데 축복인데 그 축복을 관리를 잘 못하면 그 축복 때문에 여러 가지 문제가 생깁니다. 축복은 좋은 것 인데 받은 복을 잘못 관리하면 받은 세상 복 때문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는 걸 여기서 말씀합니다.
두 집안은 한 집안처럼 숙질 간 입니다. 아브라함은 삼촌이고 롯은 조카입니다. 한 집안처럼 그런 사이인데 같이 신앙 출발했고 같이 어려움 겪었고 같이 시험에 들었고 같이 회개했고 같이 복을 받은 참 신앙의 동지 그런 좋은 집안인데 이 두 집안이 하나님 축복 받아가지고 소유가 많아지니깐 아브라함과 롯은 괜찮은데 그 일꾼들 사이에 큰 갈등이 생겨져서 한 곳에 같이 머물 수 없는 그런 상황까지 이르게 됐습니다. 세상축복은 언제든지 이런 위험성이 따라 온다는 이것을 기억을 해야 됩니다. 하늘의 축복은 이런 게 없습니다. 신령한 축복은 전부다 좋은데 이 세상 복은 반드시 그 뒤에 위험성이 따라 오기 때문에 세상축복을 하늘의 축복으로 바꾸지 못하면 그 세상 받은 복 때문에 큰 손해를 보게 되는 그런 경우를 허다하게 볼 수 있습니다. 이런 상황이 되니깐 이제 고민이 생겼습니다. 아브라함도 롯도 아주 심각하게 고민합니다. 이 상황을 어떻게 타게 할까 어떻게 대체 해결을 할까 고민을 많이 합니다. 고민한 것은 좁으니깐 그만 나눠지면 되는데 서로 떨어져 살면 되는데 그 상황이 어떻게 되어있냐 하면은 떨어질라 그래도 가나안 한쪽은 아주 박토 붉은 자산 같은 그런 곳이고 한쪽은 굉장히 좋은 땅이 비옥하고 물이 좋고 또 문화가 발달되고 모든 생활여건이 굉장히 좋은 그런 곳입니다. 말하자면은 그런 곳이 있지요. 보면은 그래서 요런 상황이 되니깐 두 개 양쪽이 다 동등조건이 되 있으면 사이좋게 한쪽씩 나눠가면 되는데 한쪽은 굉장히 박토 자산 물도 별로 없고 풀이 없는 붉은 자산 가나안 땅이고 한쪽은 소돔 고모라 지금 결과가 되어져서 저주받은 땅이라, 그러나 그때는 성경에 기록되기를 여호와의 동산 같고 애굽땅과 같던 그곳이 소돔 고모라 땅이었습니다. 그러니깐 땅이 비옥하고 물이 좋고 공기 좋고 물이 맑고 또 경제가 풍성하고 과학이 발달하고 문화가 발달하고 교육여건이 좋고 교통도 좋고 다 좋은 거기가 소돔 고모라 땅이었고 땅도 별로 안 좋고 풀도 적고 물도 없고 또 후진 곳 이고 모든 것이 불편한 곳이 가나안 땅입니다. 요래 둘로 나눠져 있었습니다.
그래 되어있으니깐 어느 쪽으로 누가 가야 되는가 고민을 많이 하는데 고민하다가 아브라함이 먼저 믿음의 조상 믿음의 사람이니깐 아브라함이 먼저 말을 꺼냈습니다. 조카 우리가 하나님 섬기는 사람이고 숙질 간 인데 이 좁은 곳에서 우리는 초월했지만 일꾼들이 날마다 이렇게 마찰이 나니깐 하나님에게 덕이 안되고 윤리상 있을 수 없는 일이니깐 우리 서로 나눠지지 나누어 지는데, 자네도 알다시피 한쪽은 박토고 한쪽은 비옥하니깐 서로 좋은 곳에 가고 싶은 그런 마음이야 있지 안겠는가, 그런데 내가 책임을 지고 우리 집 사람들을 다 설득할거니깐 자네가 먼저 좋은 곳을 선택을 하게 자네가 일꾼들과 의논해서 좋은 곳을 선택하고 나면, 자네가 오른쪽에 가면 나는 왼쪽에 갈 것이고, 자네가 왼쪽가면 나는 오른쪽 가겠고 그리할 거니깐 먼저 선택을 하게 하고 선택권을 롯에게 넘겼습니다. 그러니깐 롯도 양심 있고 신앙 있는 사람인데 고민을 많이 했겠지요. 고민 많이 했는데 하다가 롯의 아내가 아주 고약한 아내입니다. 소금기둥 된 딸들이 고약한 딸들입니다. 그러니까 일꾼들도 거기 일꾼들이 자기 욕심만 아는 그런 사람이다 보니깐 롯은 그러고 싶지 안 았지만은 의논해보니 소돔 땅이랍니다. 우리가 삼촌한테 양보해야 되지 않겠나, 그렇지만은 아내와 딸들과 일꾼들은 어림도 없습니다. 그래가지고 할 수 없이 부득이하게 롯이 먼저 선택을 해서 비옥하고 좋은 살기 좋은 소돔 들을 택해서 그리 가고 가고 나니깐, 아브라함은 박토 가나안을 택해서 그리 갔습니다.
그런데 그 결과가 어찌 됐는가 그 결과가 몇 년 얼마 지나고 난 다음에 결과 보니까 소돔 고모라 땅에 전쟁이 났는데 그 살기 좋은 땅이니까 경제도 넉넉할 것이고 군사력도 풍부할 것이고 근데 어떻게 된는지 쳐들어 온 나라에 소돔 고모라가 져서 롯도 잡혀가고 재산 다 빼앗기고 그리 되어 졌을 때 아브라함이 구출한 그런 일이 있었고 거기에 본문에 기록된 대로 소돔사람들은 악해서 큰 죄인이었더라, 죄악이 너무 심해가지고 하나님이 유황불비 내려서 소돔고모라 성을 완전히 전멸시켜서 사람이고 짐승이고 숲 풀 이고 수목이고 모조리 다 유황불비로 전멸시켜버리고 그 땅을 사해를 만들어 버렸습니다. 사해, 소금바다 사해를 만들어 버렸습니다. 생물이 살수 없는 그런 곳 을 저주받은 땅 그곳을 그것이 바로 소돔 고모라가 되어졌고, 반대로 아브라함이 갔던 가나안은 박토중에 박토인데 하나님께서 그 땅을 젖과 꿀이 되는 땅으로 하셨고 아브라함의 재산 지키는 수지궁이 318명이나 되었고 아브라함은 믿음의 조상이 되어졌습니다. 요게 두 사람이 간 결과 입니다.
그래서 아브라함과 롯의 신앙노정과 두 사람의 선택을 본문을 통해서 좀 생각해봤는데, 여기서 오늘 우리가 생각해보고자 하는 말씀은 크게 말하면 신앙의 두 길이라 볼수 있는데, 세가지에 대해서 두 길이 있습니다. 아브라함의 걸어간 길과 롯이 걸어간 길인데 아브라함이 걸어간 길을 보면은 두 집안이 많은 노정을 거쳐가지고 기도했었을 때에 가나안과 소돔이라는 두 기로에 있었을 때에, 아브라함이 선택해서 간 길은 아브라함은 자기 하나님을 자기 자신보다 먼저 생각했고 앞세웠고 이게 아브라함이 선택한 길입니다. 하나님과 자기가 있는데 아브라함은 자기보다는, 두 곳이 있는데 갈라져야 되는데 가나안 땅은 박토입니다. 불편합니다. 목축하기 최악의 조건이고 소돔들은 아주 좋은 곳입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은 삼촌이니깐 선택권 가지고 있는데 아브라함이 자기 권위로 자기 주인력으로 내가 삼촌이니깐 소돔 고모라를 택해가겠다, 그러면 롯은 한말도 못하고 그냥 줄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은 말은 안 해도 하나님을 먼저 생각하고 자기가 좋은곳 으로 택해가면은 롯이 시험에 들것이고 어려울 것이고 하나님이 안 기뻐 하실 것이고 그래서 하나님을 생각하고 자기의 권위를 손해 봤습니다. 아브라함의 자기 권위 위신 자기 체면 이거다 깎아먹고 포기하고 하나님의 원하시고 기뻐하시는 그 길을 아브라함은 갔습니다. 아브라함이 그리 갔을 때 아브라함은 믿음 없는 사람들 잘 모르는 사람들에게 아브라함은 인정받지 못합니다. 우리 주인 따라가다가는 굶어 죽겠다 신임이 다 떨어져 버립니다. 자존심도 상하는 길입니다. 자기 손해입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을 높이기 위해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기 위해서 하나님을 좋게 하기 위해서 자기를 완전히 포기하고 자기를 손해 봤고 반대로 롯은 하나님도 생각했지만은 하나님보다 자기 위신 자기 권위 자기 체면 자기 자존심 자기 입장을 먼저 생각했습니다. 이것이 두 사람이 갈라진 두 사람의 길입니다.
선택해 보면 나와 있습니다. 본문에 보면은 아브라함은 자기보다는 하나님을 앞세웠고 높였고 먼저 생각했고, 반대로 롯은 하나님도 생각 했지만은 먼저 자기를 생각했습니다. 자기 위신 자기 권위 자기 체면 자기 자존심 자기 욕심 자기 성질 자기 입장 자기 손해보지 않고, 그러다 보니 하나님을 손해 봤습니다. 이렇게 두 집안이 갈라졌을 때 아브라함과 롯의 갈림길 입니다. 기로에서 갈라진 것입니다.
두 번째 아브라함은 자기에게도 아내가 있고 일꾼들 많은 사람이 있었지마는 그 사람들의 생각 의사 뜻 그들의 마음도 중요하나 그들의 그 모든 것 보다는 하나님이 원하시는게 무엇이냐 하는 하나님의 뜻을 자기와 사람들의 뜻보다 먼저 생각을 하고 앞세운 이것이 아브라함의 신앙이었고 길이었고, 반대로 롯은 하나님의 뜻도 중요하지만은 롯의 걸어간 그 걸음은 하나님의 뜻보다는 자기 뜻 사람들의 생각 아내의 생각 아내 의견 딸들의 의견 일꾼들의 의견 그것을 꺽지 못하고 무시하지 못하고 그것을 하나님의 뜻보다 크게 여기고 앞서 세운다는 것이 롯의 걸어간 걸음입니다. 둘이 갈라졌습니다.
세번째는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축복이면은 눈에 보이는 조건은 아무 상관이 없다고 믿고 나아갔고 그래서 조건이 아무리 좋아도 하나님이 축복하지 않으면 그 좋은 조건 다 아무 소용 없고 아무리 조건이 악조건이라도 하나님이 축복만하시면 얼마든지 될수 있다는 믿음 가지고 하나님의 축복을 믿고 가는 것이 아브라함이고, 롯은 하나님의 축복도 중요하나 공부도 중요하고 건강도 중요하고 집안도 중요하고 배경도 중요하고 조건이 중요하다, 그래서 롯은 하나님의 축복보다는 조건을 택해서 간 것이 롯의 신앙의 걸음입니다.
요래 세가지 둘로 갈라진 것이 아브라함과 롯이였고 그 결과로 아브라함은 믿음의 조상 위대한 영원한 믿음의 조상이 되었고, 롯은 그 뒤에 보면은 자기를 앞세웠는데 자기는 소돔들에 유황불비 내린다고 천사가 와서 알려줄 때 롯이 정혼한 두 사위에게 그 사실을 말하니깐 사위와 딸들이 농담으로 여겼습니다. 롯은 지금 소돔 고모라가 저주받아서 멸망되어 피신까지 갈라 하는데 아내와 그 딸들과 그 사위들은 그 말이 아버지 말이 얼마나 우습게 여겼던지 농담으로 여겼더라. 그만큼 자기 권위 때문에 하나님을 버렸는데 권위는 바닥에 떨어졌고 자기 자존심 체면 때문에 하나님 버렸는데 그 위신 체면이 바닥에 떨어져서 완전히 참 그런 사람이 됐고 마지막 가서는 멸망의 조상이 됐습니다. 이게 자기 앞세운 롯의 결과였고 또 아브라함은 사람들 다 잃어도 사람들이 귀하고 소중하고 잃기 싫지만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드리기 위해서 부득이하게 사람들을 섭섭하게 하고 손해 봤지마는 마지막 가서 보니깐 아브라함의 사람은 하늘의 별처럼 바다의 모래처럼 많은 믿음의 조상이 됐고 반대로 롯은 아내 빼앗기지 않기 위해서 섭섭해 하지 않기 위해서 딸들 마음 안 상하게 하기 위해서 일꾼들 안 잃기 위해서 사람들을 얻기 위해서 하나님의 뜻을 저버렸는데 마지막 갈 때 롯은 혼자 남았고 사람 다 잃어버렸고 저 산둥에 가서 혼자 갔고 비참한 롯이 되어졌습니다. 사람 다 잃어버렸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세번째도 하나님 축복 믿고 간 아브라함은 큰 부자가 됐는데 조건이 따라갔던 롯은 알거지가 되고 말았습니다. 요게 결과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말씀을 가지고 요게 우리 신앙에 있는 항상 부딪히는 두 길입니다. 본문에 기록된 두 사람의 신앙의 노정과 두 사람의 선택을 살펴 따져보고 그리고 두 사람이 선택한 두 길 기로에서 갈라진 두 길을 생각해보고 우리 앞에 항상 두 길이 있음을 기억하고 우리는 롯의 길을 걸을까 심히 조심하고 아브라함의 길을 걸어가는, 나 자신보다는 하나님을 먼저 앞세우고 하나님을 생각하고 사람들이 소중하나 하나님의 뜻이 더 중요함을 기억하고, 아무리 조건이 좋아도 하나님이 축복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안 되는 것을 기억하고 아브라함의 길을 걸어가는 그런 우리가 되어야 하겠다는 것을 기억하십시다. 다같이 통성으로 기도 드리겠습니다. 신앙의 두 길은 아브라함과 롯에게만 해당되는 말씀이 아니고 그게 아닙니다. 우리 모두에게 공통적으로 똑같이 해당되는 길임을 기억하십시다.
제목: 신앙의 두 길
1. 자신의 신앙을 살피자(고전10:12)
1)선 줄로 생각하면- 넘어질까 조심
2)쉬지 않고- 자신의 신앙을 살펴야
3)생각보다 훨씬- 크고 많은 자기의 단점, 고칠 점이 있음을 기억
4)진합태산은- 부정적인 면에도 해당, 작은 잘못 하나가 모이면 큰 문제
2. 아브라함과 롯의 노정(12:1-13:4)
1)신앙 출발(12:1-5)
①명령: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②의미: 소속과 소망을 바꿔라, 기본 회개, 신앙 출발
③순종: 아브람의 순종, 갈 바를 알지 못하고 하나님과 말씀만 믿고
④참고: 가지고, 데리고 갈 수 있는 것은 가지고, 데리고 출발
2)벧엘 환난(12:5-10)
①벧엘: 벧엘 도착, 가나안 땅, 하나님의 약속, 이 땅을 네 자손에게 주리라
②제단: 여호와를 위하여 단을 쌓고 하나님 섬기는 생활
③환난: 기근이 심하여(경제 어려움) 점점 남방으로 가다가 애굽까지 내려감
④교훈: 신앙생활에 좋은 일만 있지 않다는 것, 환난은 언제나 있는 것 기억
3)애굽 환난(12:11-20)
①애굽: 세상. 경제 어려움 때문에 세상으로 들어간 것
②처세: 아내 때문에 죽임 당할까 두려워 누이라 속이는 처신
③위기: 애굽 왕 바로에게 아내 사라를 빼앗길 위기(하나님의 징계)
④구출: 하나님이 바로에게 현몽, 바로가 사라를 돌려보냄
⑤교훈: 신앙생활에 어려움 피해 세상으로 들어가면 더 큰 환난
4)회개, 축복(13:1-4)
①회개: 애굽에서 큰 징계 받고 회개, 다시 벧엘로
②축복: 회개하고 벧엘로 돌아오는 기간에 축복, 크게 부요
③교훈: 회개하는 길은 축복 받는 길
3. 아브라함과 롯의 선택(13:5-13)
1)기로(岐路)
①축복: 양과 소가 심히 많아. 물질 축복, 세상 축복
②갈등: 양과 소가 많아서 동거 불가, 목자들의 다툼 계속
③기로: 두 가족 동거 불가하니 나누어질 수밖에 없는 상황
④교훈: 세상 축복을 하늘 축복으로 바꾸지 못하면 축복이 오히려 손해
2)선택(選擇)
①고민: 아브라함도 롯도 고민
②상황: 소돔들은 여호와의 동산 같고, 가나안은 박토
③양보: 아브라함이 롯에게 선택권을 양보
④선택: 롯은 소돔으로, 아브라함은 가나안으로
3)결과(結果)
①롯의 결과: 소돔 전쟁, 소돔 고모라 유황불비, 멸망의 조상
②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약속, 젖과 꿀이 흐르는, 318명, 믿음의 조상
4. 신앙의 두 길
1)두 길
①하나님과 자기 ②하나님 뜻과 사람의 뜻 ③축복과 조건
2)아브람의 길
①자기보다 하나님
②사람의 뜻보다 하나님 뜻
③보이는 조건보다 하나님 축복
3)롯의 길
①하나님보다 자기
②하나님 뜻보다 사람의 뜻
③하나님 축복보다 보이는 조건
--------------------------------------------------------------------
140525 주전
창세기 13:1-13
그 뒤로 14절부터 계속 읽어 보면 롯이 소돔으로 떠나고 난 다음에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셔 가지고 보이고 있는 그 땅을 아브라함과 그 자손에게 주고 아브라함의 자손들을 하늘에 별처럼 바다의 모래처럼 많게 해주겠다는 축복을 약속하신 그런 내용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오늘은 아브라함과 롯의 두 사람의 신앙을 신앙 걸음을 통해서 우리의 신앙을 한번 살펴보려고 합니다. 오늘 말씀 제목을 신앙의 두 길, 그렇게 생각해 봤습니다.
같이 한번 해보겠습니다. 신앙의 두길
우리 신앙생활 하는 길에는 언제든지 두 길이 있다는 것을 여기서 생각해볼 수 있겠습니다.
먼저 고린도전서 10장 12절 말씀에 보면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해라, 사람이 앉아 있으면 넘어 질 일은 없습니다. 누워있어도 넘어질 일은 없습니다. 사람이 서 있다가 어지러우면 앉아야 되고 더 어지러우면 누우면 괜찮아 집니다. 그런데 서 있는 사람은 넘어질 위험을 언제든지 가지고 있습니다. 성경에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는 말씀은 자기 신앙을 두고 말씀합니다. 사람이 자기 신앙이 나는 신앙이 있다고 생각하면 그 신앙이 위험하고 또 깨어 있다고 생각하면 신앙이 잠들기 쉽다. 말하자면 신앙생활에 있어서 자신감을 가지고 있으면 넘어질 위험성이 많다 그런 뜻입니다. 신앙생활에 있어서 자신감을 가지고 있으면 넘어질 가능성이 많다, 선줄로 생각하면 넘어질까 조심하라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우리는 자신의 신앙을 쉬지 않고 자신의 신앙을 살피는 우리들이 되어야 합니다. 스스로 자신을 돌아보고 자기 신앙을 쉬지 않고 살펴나가는 그런 우리들이 되어야 합니다. 학생들이 자기 학교 성적을 늘 살펴보듯이 또 사람이 자기 건강을 늘 검진하고 살펴보듯이 우리 신앙은 우리는 우리 자신의 신앙을 쉬지 않고 살펴보는 그런 우리들이 되어야 합니다. 자신감을 가지고 이만하면 됐다고 생각을 하고 자기 신앙을 돌아보지 않으면 그때부터 그 사람은 넘어지기 쉽습니다. 우리는 남에 대해서는 다른 사람에 대해서는 평가도 정확하고 판단도 대게 정확합니다. 자기에게 가까울수록 평가나 판단은 더 어두워지게 되고 바로 되지 못하기가 쉽습니다. 등잔 밑이 어둡다는 세상 속담은 가까울수록 더 어둡다는 그 말입니다. 사람이 자기 자신에 대해서는 가장 비판이나 평가 판단이 어두워지게 되고 자기와 먼 사람일수록 바른 평가 바른 판단이 나오게 됩니다. 자기에게 대해서는 가장 어두운 것이 대부분의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내가 생각할 때 나는 단점이 있으되 나의 단점은 그리 크지 않다고 생각하기 쉽고 내 신앙이 이정도 되면 어느 정도는 되리라 그리 알고 있기가 쉽고 내게 있는 단점, 내 신앙의 정도가 설마 저렇게까지 되어 질까 싶은 그런 생각을 하기 쉬운데 사람은 생각보다 훨씬 크고 많은 단점을 가진 것이 대부분의 사람들이고 생각보다 훨씬 크고 많은 고칠 점을 가지고 있는 것이 대부분의 사람인 것을 기억을 해야 합니다. 성경에 인류 시조에서 아담하와의 아들 중에 가인이 있습니다. 가인은 자기 동생 아벨을 의롭다 하여 시기해서 아벨을 시기하다가 돌로 쳐 죽인 인류 첫 살인자가 가인입니다. 가인은 모든 사람들이 볼 때 아주 죄인이고 몹쓸 사람으로 판단하고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 자신들 속에 가인 같은 요소가 있으리라고는 상상도 못하고 전혀 생각지를 못하는 것이 대부분의 사람들입니다. 설마 내 속에 의로운 아우를 시기하여 돌로 쳐 죽인 가인 같은 요소가 설마 내 속에 있을까 하는 겁니다. 또 롯 같은 오늘 봉독한 말씀에 나오는 롯과 같은 이런 요소가 내속에 있을까 그리 생각하기 쉬운데 우리 속에는 가인 같은 요소가 얼마든지 있고 롯 같은 요소도 얼마든지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런 것이 없다고 생각하면 그게 바로 선 줄로 생각하는 것이고 넘어질 위험성이 대단히 많은 사람이 되어 있는 겁니다. 생각보다 훨씬 크고 많은 단점, 문제점이 우리들에게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하고 진합태산 이라는 말은 티끌 모아서 큰 산을 이룬다는 뜻인데, 이 말은 일반적으로 좋은, 긍정적인 부분에 많이 쓰이나 이거는 부정적인 면에도 해당이 되는 말입니다. 작은 단점들을 무시하면 그게 점점 모여져서 큰 단점을 만들게 되고 큰 문제를 만들게 되어지는 겁니다. 이 면을 우리가 잘 생각을 하고 우리 자신을 쉬지 않고 살펴보는 그런 우리들이 되어야겠습니다.
여기 본문에 보면 아브람과 롯, 두 사람이 애굽에서 올라오면서 복을 받아서 벧엘에 이르게 되었는데 거기가 좁아서 나누어지는 그런 장면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먼저 아브라함과 롯의 신앙 출발을 먼저 살펴봐야 하는데 12장 1절부터 읽어 보면 아브라함과 롯의 신앙 출발의 내용이 기록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서 내가 너에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고 명령을 하셨습니다. 그때 아브라함의 나이가 75세였는데 75년 동안 살아온 자기 고향 땅 본토와 친척 아비 집 거기서 떠나서 하나님이 명령하신 그곳으로 가라고 명령을 하셨습니다.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서 내가 너에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땅에 소속된 사람, 이 세상에 소속된 자기 소속과 또 사람에게 소속된 소속과 이 세상을 소망하고 인간을 의지하던 이것을 떠나 가지고 이제는 하나님과 하늘나라로 소속과 소망을 바꾸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말하자면 믿는 사람의 진정한 신앙 출발이며 기본 회개에 대한 말씀입니다. 소속과 소망을 바꿔라, 기본 회개, 신앙 출발을 말씀합니다.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서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럴 때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 말씀을 믿고 자기 알 바를 알지 못하고 믿음으로 하나님과 말씀만 믿고 순종해서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서 갔습니다. 하나님께서 떠나라 그러니까 떠났고 가라 그러니까 어디로 가야 될지 또 가면 어떻게 될지 알지 못하지만 하나님의 명령이니까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 말씀만 믿고 갈 바를 알지 못하고 출발해서 나아갔습니다. 갈 때에 다 버리고 간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말씀 따라서 걸어가는 그 걸음에 방해되지 않고 가져 갈 수 있는 것들, 데려 갈수 있는 사람들은 다 가지고 데리고 출발해서 나아갔습니다.
그래 가지고 나아가서 가나안 땅에 이르러서 벧엘과 아이 사이, 서는 벧엘이요 동은 아이라 하는 그 벧엘 지방에 이르렀습니다. 거기서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내가 이 땅을 네 자손에게 주리라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서, 오래도록 살던 정든 자기 고향땅, 거기서 떠나서 하나님께서 가라 하신 곳으로 갔으니까, 신앙 출발을 해서 하나님의 인도를 따라 지금 신앙생활하고 있는 겁니다. 벧엘은 하나님 섬기는 장소, 신앙생활 하는 것을 말합니다. 거기서 제단을 쌓고 하나님을 섬겼습니다.
그런데 벧엘에 이르러서 하나님 섬기는 신앙생활을 하는 도중에 점점 그 땅에 기근이 심해 져서, 점점 기근을 피해서 남쪽으로 점점 내려가다가 어디까지 갔는고 하니 애굽까지 내려갔습니다. 기근은 경제 환난을 말합니다. 예수 믿는 사람이, 택함을 받은 성도는 때가 되면 중생되고, 중생된 사람은 때가 되면 신앙 출발을 하게 됩니다. 예수 믿는 신앙 출발을 하게 되는데 신앙생활을 하다 보면 하나님의 인도 따라가 하나님의 인도를 따라가는 것이니까, 하나님이 인도 하시고 하나님 섬기는 신앙생활 하니까 좋은 일만 있고 복된 일만 있으리라 오해하기 쉬운데, 신앙 걸음에는 여러 가지 종류의 어려움을 많이 만날 수 있고, 대게 그 첫 출발의 어려움이 가장 낮은 단계 어려움이 경제 어려움을 만나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 믿는 사람이 하나님을 섬기는 생활, 말씀 지키는 생활, 계명대로 사는 생활을 하려고 하면 경제적인 어려움을 만나게 됩니다. 주일을 지키려고 하니까 직장도 자유롭게 구할 수가 없고 또 사업을 해도 주일을 다 지키니까 손해를 많이 보고 여러 가지 경제 어려움을 많이 만나게 됩니다. 아브라함과 롯도 하나님이 떠나라는 자기 고향을 떠나서 가라 하신 약속의 땅, 가나안을 향해서 갔고 가나안 땅, 벧엘 땅에 도착했는데 거기서 제단 쌓고 하나님을 섬기는 생활하고 있는데 점점 그 땅에 기근이 심해져서 먹을 것이 점점 없어지고 경제적인 큰 어려움을 만나게 되어졌습니다. 기억해야 됩니다. 예수 믿는 사람이 예수 믿으면 잘 믿어도, 믿으면 언제든지 좋은 일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 잘 믿는 사람도 여러 가지 종류 여러 형태의 어려움을 만날 수 있다 하는 겁니다. 하나님의 뜻이고 연단입니다.
그럴 때 어떻게 대처해야 되느냐, 그럴 때 아브라함은, 이 때 아브라함은 아직까지 우리 믿음에 조상이지만 아직까지 믿음의 조상이 안 되고 신앙이 어릴 때 입니다. 아브라함의 신앙이 아직 어릴 때라서 배가 고파서 하나님이 거하라 하신 그 땅에 머물러 있다가 배고픔을 피해서 점점 남쪽으로 내려갔는데, 내려가는데 배고픔을 믿는 사람이 피해서 떠나 갈수 있습니다. 그런데 선이 있는데 갈수 있는데 까지는 갈 수 있습니다. 지난 주일에 우리가 환난에 대해서 공부를 했는데 기독교는 고행주의가 아니기 때문에 사서 고생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러니까 예수 믿는 사람이 직장을 구하되 일부러 월급이 작은데, 일이 힘든 그런 곳을 찾아갈 필요가 없다는 겁니다. 일부러 장사하는 사람이 밑지고 물건 팔고 손해 보고 물건 팔, 그런 일을 할 필요가 없다는 겁니다. 기독교는 고행주의가 아닙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다가 순종하다가 어려움을 만나면 그 어려움을 피할 수 있습니다. 피해서 어려움이 없는 어려움이 적은 그런 곳을 찾아갈 수 있다는 겁니다. 그런데 선이 있습니다. 갈수 있는데 까지 가야 되고, 가서는 안 되는 데는 가서는 안 되는데 아브라함과 롯이 벧엘에서 재단 쌓고 하나님 섬기는 신앙생활을 하다가 배고픈 어려움을 만나니까 어려움을 피해서 점점 남쪽으로 내려 갔습니다. 갔는데 어디까지 갔는고 하니, 애굽까지 가버렸는데 성경에 애굽은 우리가 어떻게 해석합니까? 애굽은 세상입니다. 세상은 하나님이 없는 곳이고 하나님 섬기지 않는 곳이 세상입니다. 아브라함과 롯이 세상으로 들어가 버렸습니다. 하나님을 완전히 버리지는 안았지만 신앙생활을 포기하다시피 하는 세상생활로 들어가 버렸습니다. 말하자면 가서는 안 될 곳까지 가버렸다 그 말입니다. 신앙보다 배고픔이 너무 커서 배고픔을 피해서, 말하자면 신앙을 저버린 그 정도까지 나아가게 되어졌습니다. 애굽까지 가버렸습니다. 경제 어려움 때문에 세상으로 들어간 것입니다.
믿는 사람이 세상에 들어가면, 믿음을 버리게 되면 성경에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라 소금이 만일 맛을 잃으면 밖에 버리워 사람들에게 밟힌다 그랬습니다. 땅에도 거름에도 쓸데없어서 밖에 버려져 사람들에게 밟힌다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러니까 예수 믿는 사람이 신앙생활 하다가 신앙을 버리면, 세상으로 들어가면, 어려워서 세상에 들어갔는데, 신앙을 버렸는데, 신앙을 버리고 세상으로 들어가면 그 세상에서 만나는 더 큰 어려움을 만나게 됩니다. 아브라함과 롯이 아브라함이 주체니깐 아브라함이 배고픔 때문에 애굽에 내려갔는데 애굽에 내려가니깐 애굽에는 하나님이 없는 세상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그러니깐 마음에 들면 죽이고 빼앗아갑니다.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가 미인입니다. 그런데 그 아내를 데리고 애굽에 들어가니깐, 하나님 모르는 그 무자비한 인간들이 자기를 죽이고 아내를 빼앗아 갈까 싶어서 겁이 나서 거기서 그 사람들을 속여서 자기 아내를 자기 누이동생이라 속이고 그리 들어갔습니다. 그러니까 그곳에 사는 사람들과 애굽의 바로 왕이 아브라함의 아내를 보고 미인이니까 또 아내라 하지 않고 동생이라 그러니까 자네 동생을 내 아내 삼게 하자 그래가지고 바로가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를 아내 삼으려고 데려갔습니다. 아내 빼앗겼지요, 말도 못합니다. 죽을까 싶어서, 빼앗겼는데 그냥 두면 아브라함은 아내 빼앗기고 아내 빼앗겼는데 동생이 아니고 사실은 아내인데 동생이라 속였지마는 언젠가는 발각이 될 것이고 그러면 남의 아내 빼앗는 것이 되는 것이니까 바로가 아브라함을 살려둘 리가 없고 죽일 것이고 그래 자칫하면 아내 빼앗기고 자기 죽고 몽땅 집안 전부 몰살당할 위기를 만나게 되어졌습니다. 이게 믿는 사람이 세상으로 들어가면 만나면 당하는 환란중의 하나입니다.
정리해보십시다. 예수 믿는 사람이 신앙생활 하다 보면 항상 좋은 일만 있는 게 아니라는 겁니다. 항상 등 따시고 배부르고 편안하게 내가 원하는 환경현실만 오지 않습니다. 아무리 신앙생활을 해도 하나님 지키는 계명생활하고 믿음을 잘 지켜도 살아가다 보면 여러 종류의 형태 어려움을 만나게 되는 겁니다. 하나님 뜻이 있어서 그리 하시는 겁니다. 그럴 때 믿는 사람이 그 어려움을 피해서 세상으로 들어가 버리면, 믿음을 버리고 세상으로 들어가면 어려움 피해서 세상으로 들어갔는데 무엇을 피해갔는데 무엇을 만난다는 것처럼 어려움 피해서 세상으로 들어갔는데 세상으로 들어가면 그때는 하나님을 배반했으니깐 하나님의 보호도 없습니다. 하나님 없는 세상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하나님 없는 세상에 하나님 버리고 들어가면 그 세상에 밟히고 세상에 종 되고 밥 되고 대단히 위험한 처지가 되게 되는걸 여기서 볼 수 있습니다. 그리 되어 있는데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믿음의 조상으로 길러나가야 되니깐 사랑하셔서 또 완전히 버리지 않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바로의 꿈에 나타나셔서 네가 남의 아내를 데려왔으니 그를 돌려보내지 않으면 너 죽는다, 그래가지고 경고하셔서 가까스로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구출을 받게 되어졌습니다. 이게 애굽에 가서 만난 아브라함의 환란입니다. 이게 환란입니다. 그러고 나니깐 아브라함이 비로소 깨달았습니다. 내가 하나님 섬기는 생활하다가 배고프다고 하나님 섬기는 생활을 포기하고 하나님 없는 세상으로 들어갔더니 아내 빼앗길뻔했고 나 죽을 뻔 했고 우리가족이 전부 몰살 당할 뻔 했고 하나님 진노였구나, 그런데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구원을 받았구나, 이걸 깨닫고 아주 철저하게 통절히 회개하는 심정으로 다시 벧엘로 하나님 섬기는 생활로 다시 돌아 올라 왔습니다. 올라 오는 길에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롯에게 크게 축복을 하셔서 올라오는 기간이 좀 걸렸는데 그 사이에 두 집안이 큰 복을 받아서 부자가 되어졌습니다. 회개하고 돌아오는 길은 축복받는 길이란 것을 또 하나 기억해야 됩니다. 회개하는 것은 아픕니다. 고통스럽고, 그러나 믿는 사람이 죄를 지었으면 믿음을 저버렸으면 이거는 참 숯불 지고 불로 들어가는 그런 행동이 되는 것인데 회개 하려 그러면 회개 해야 되는데 어렵고 고통이 따릅니다. 그래도 고통이 따르고 어려워도 회개만 하면 하나님께서 기뻐하셔서 큰 복을 주십니다. 누가복음 15장에 보면 잃은 양 한 마리 양 한 마리가 우리를 떠나서 목자를 떠나서 들로 나갔는데 목자가 찾으러 가서 찾았고 찾고 난 다음에 돌아 올 때는 어깨에 메고 왔습니다. 이게 회개의 걸음이라 그리 말합니다. 우리가 회개하는 걸음은 하나님의 어깨에 안겨 메어오는 안겨오는 그런 걸음이 되는 겁니다. 아브라함과 롯이 회개하고 돌아오니깐 하나님께서 기뻐하셔서 큰 복을 주셨습니다.
그 다음 13장 중간에 나갑니다. 복을 받아서 회개하고 돌아오니깐 복을 받아서 아브라함도 롯도 목축하는 사람들인데 양과 소가 심히 많아져서 큰 부자가 됐습니다. 물질축복 세상축복을 받아서 큰 부자가 됐습니다. 목축하는 사람들이니깐 양도 많고 소도 많고 큰 부자가 되었는데 부자가 되면 좋겠는데 문제가 생겼습니다. 어떤 문제가 생겼는고 하니 땅은 한정이 되어있는데 땅은 좁은데 땅이 있어도 풀이나 물이 한정이 되었을 건데 워낙 땅이 많고 소가 많고 짐승들이 많고 그들 먹인 사람들이 있고 하니깐 좁은 한정된 땅에 두 집안에 가축들이 워낙 많으니깐 좁아가지고 서로 날마다 아브라함의 목자들하고 롯의 목자들이 날마다 시비를 합니다. 서로 자기 짐승들에게 좋은 풀 좋은 물 먹이려고 부딪치고 마찰이 생겨지게 됩니다. 그래서 두 집안 사이에 아직까지 아브라함과 롯은 신앙 있는 사람들이니깐 초월하는데, 그 밑에 있는 일꾼들 사이에서 갈등이 점점 굉장히 심해지게 됩니다. 아브라함의 집안하고 롯의 집안 일꾼들 사이에 땅이 좁으니깐 갈등이 생겨서 이게 점점 심각하고 마찰하고 점점 커지게 밖으로 나오게 됐습니다. 마찰이 점점 되게 됐다 그 말이죠. 그래서 두 집안이 한곳에 같이 머물 수 없게 될 상황이 되어 졌습니다. 여기서도 우리가 하나 생각해 볼 수 있는 것이 지금 상황이 아브라함과 롯 두 집안이 벧엘에 있는 가나안 땅에 같이 살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이유가 무엇입니까? 왜 두 집안이 출발부터 같이 나왔고 같이 고난 받았고 같이 애굽에 갔었고 같이 회개하고 돌아와서 같이 복을 받았으니까 한 집안처럼 그래 됐으니까 큰 복을 받았으니까 좋은데 함께 행복하게 사이좋게 오손도손 살면 좋겠는데 함께 살수 없게 되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양과 소가 너무 많아가지고, 왜 양과 소가 많아졌습니까? 하나님 앞에 축복을 받아서 그러면 하나님 축복을 받은 것은 좋은데 그 받은 축복이 많아서 그 축복 때문에 지금 두 집안이 갈등이 생겼다 그 말이지요.
이게 믿는 사람에게 필연적인 이런 과정 중에 하나입니다. 이게 세상축복입니다. 그래서 예수 믿는 사람들이 예수 믿어서 세상에 복을 받습니다. 가난한 사람이 경제가 부자가 되기도 하고 집안이 불목이 있던 집안이 예수 믿으니깐 화목이 되기도 하고 또 머리가 별로 그만큼 안하고 성적이 안 좋던 학생이 예수 잘 믿어 성적이 좋아지기도 하고 직장이 없어 애를 먹던 사람이 예수 잘 믿어 직장을 구하기도 하고 세상 축복을 받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 세상 축복을 받으면 좋은데 축복인데 그 축복을 관리를 잘 못하면 그 축복 때문에 여러 가지 문제가 생깁니다. 축복은 좋은 것 인데 받은 복을 잘못 관리하면 받은 세상 복 때문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는 걸 여기서 말씀합니다.
두 집안은 한 집안처럼 숙질 간 입니다. 아브라함은 삼촌이고 롯은 조카입니다. 한 집안처럼 그런 사이인데 같이 신앙 출발했고 같이 어려움 겪었고 같이 시험에 들었고 같이 회개했고 같이 복을 받은 참 신앙의 동지 그런 좋은 집안인데 이 두 집안이 하나님 축복 받아가지고 소유가 많아지니깐 아브라함과 롯은 괜찮은데 그 일꾼들 사이에 큰 갈등이 생겨져서 한 곳에 같이 머물 수 없는 그런 상황까지 이르게 됐습니다. 세상축복은 언제든지 이런 위험성이 따라 온다는 이것을 기억을 해야 됩니다. 하늘의 축복은 이런 게 없습니다. 신령한 축복은 전부다 좋은데 이 세상 복은 반드시 그 뒤에 위험성이 따라 오기 때문에 세상축복을 하늘의 축복으로 바꾸지 못하면 그 세상 받은 복 때문에 큰 손해를 보게 되는 그런 경우를 허다하게 볼 수 있습니다. 이런 상황이 되니깐 이제 고민이 생겼습니다. 아브라함도 롯도 아주 심각하게 고민합니다. 이 상황을 어떻게 타게 할까 어떻게 대체 해결을 할까 고민을 많이 합니다. 고민한 것은 좁으니깐 그만 나눠지면 되는데 서로 떨어져 살면 되는데 그 상황이 어떻게 되어있냐 하면은 떨어질라 그래도 가나안 한쪽은 아주 박토 붉은 자산 같은 그런 곳이고 한쪽은 굉장히 좋은 땅이 비옥하고 물이 좋고 또 문화가 발달되고 모든 생활여건이 굉장히 좋은 그런 곳입니다. 말하자면은 그런 곳이 있지요. 보면은 그래서 요런 상황이 되니깐 두 개 양쪽이 다 동등조건이 되 있으면 사이좋게 한쪽씩 나눠가면 되는데 한쪽은 굉장히 박토 자산 물도 별로 없고 풀이 없는 붉은 자산 가나안 땅이고 한쪽은 소돔 고모라 지금 결과가 되어져서 저주받은 땅이라, 그러나 그때는 성경에 기록되기를 여호와의 동산 같고 애굽땅과 같던 그곳이 소돔 고모라 땅이었습니다. 그러니깐 땅이 비옥하고 물이 좋고 공기 좋고 물이 맑고 또 경제가 풍성하고 과학이 발달하고 문화가 발달하고 교육여건이 좋고 교통도 좋고 다 좋은 거기가 소돔 고모라 땅이었고 땅도 별로 안 좋고 풀도 적고 물도 없고 또 후진 곳 이고 모든 것이 불편한 곳이 가나안 땅입니다. 요래 둘로 나눠져 있었습니다.
그래 되어있으니깐 어느 쪽으로 누가 가야 되는가 고민을 많이 하는데 고민하다가 아브라함이 먼저 믿음의 조상 믿음의 사람이니깐 아브라함이 먼저 말을 꺼냈습니다. 조카 우리가 하나님 섬기는 사람이고 숙질 간 인데 이 좁은 곳에서 우리는 초월했지만 일꾼들이 날마다 이렇게 마찰이 나니깐 하나님에게 덕이 안되고 윤리상 있을 수 없는 일이니깐 우리 서로 나눠지지 나누어 지는데, 자네도 알다시피 한쪽은 박토고 한쪽은 비옥하니깐 서로 좋은 곳에 가고 싶은 그런 마음이야 있지 안겠는가, 그런데 내가 책임을 지고 우리 집 사람들을 다 설득할거니깐 자네가 먼저 좋은 곳을 선택을 하게 자네가 일꾼들과 의논해서 좋은 곳을 선택하고 나면, 자네가 오른쪽에 가면 나는 왼쪽에 갈 것이고, 자네가 왼쪽가면 나는 오른쪽 가겠고 그리할 거니깐 먼저 선택을 하게 하고 선택권을 롯에게 넘겼습니다. 그러니깐 롯도 양심 있고 신앙 있는 사람인데 고민을 많이 했겠지요. 고민 많이 했는데 하다가 롯의 아내가 아주 고약한 아내입니다. 소금기둥 된 딸들이 고약한 딸들입니다. 그러니까 일꾼들도 거기 일꾼들이 자기 욕심만 아는 그런 사람이다 보니깐 롯은 그러고 싶지 안 았지만은 의논해보니 소돔 땅이랍니다. 우리가 삼촌한테 양보해야 되지 않겠나, 그렇지만은 아내와 딸들과 일꾼들은 어림도 없습니다. 그래가지고 할 수 없이 부득이하게 롯이 먼저 선택을 해서 비옥하고 좋은 살기 좋은 소돔 들을 택해서 그리 가고 가고 나니깐, 아브라함은 박토 가나안을 택해서 그리 갔습니다.
그런데 그 결과가 어찌 됐는가 그 결과가 몇 년 얼마 지나고 난 다음에 결과 보니까 소돔 고모라 땅에 전쟁이 났는데 그 살기 좋은 땅이니까 경제도 넉넉할 것이고 군사력도 풍부할 것이고 근데 어떻게 된는지 쳐들어 온 나라에 소돔 고모라가 져서 롯도 잡혀가고 재산 다 빼앗기고 그리 되어 졌을 때 아브라함이 구출한 그런 일이 있었고 거기에 본문에 기록된 대로 소돔사람들은 악해서 큰 죄인이었더라, 죄악이 너무 심해가지고 하나님이 유황불비 내려서 소돔고모라 성을 완전히 전멸시켜서 사람이고 짐승이고 숲 풀 이고 수목이고 모조리 다 유황불비로 전멸시켜버리고 그 땅을 사해를 만들어 버렸습니다. 사해, 소금바다 사해를 만들어 버렸습니다. 생물이 살수 없는 그런 곳 을 저주받은 땅 그곳을 그것이 바로 소돔 고모라가 되어졌고, 반대로 아브라함이 갔던 가나안은 박토중에 박토인데 하나님께서 그 땅을 젖과 꿀이 되는 땅으로 하셨고 아브라함의 재산 지키는 수지궁이 318명이나 되었고 아브라함은 믿음의 조상이 되어졌습니다. 요게 두 사람이 간 결과 입니다.
그래서 아브라함과 롯의 신앙노정과 두 사람의 선택을 본문을 통해서 좀 생각해봤는데, 여기서 오늘 우리가 생각해보고자 하는 말씀은 크게 말하면 신앙의 두 길이라 볼수 있는데, 세가지에 대해서 두 길이 있습니다. 아브라함의 걸어간 길과 롯이 걸어간 길인데 아브라함이 걸어간 길을 보면은 두 집안이 많은 노정을 거쳐가지고 기도했었을 때에 가나안과 소돔이라는 두 기로에 있었을 때에, 아브라함이 선택해서 간 길은 아브라함은 자기 하나님을 자기 자신보다 먼저 생각했고 앞세웠고 이게 아브라함이 선택한 길입니다. 하나님과 자기가 있는데 아브라함은 자기보다는, 두 곳이 있는데 갈라져야 되는데 가나안 땅은 박토입니다. 불편합니다. 목축하기 최악의 조건이고 소돔들은 아주 좋은 곳입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은 삼촌이니깐 선택권 가지고 있는데 아브라함이 자기 권위로 자기 주인력으로 내가 삼촌이니깐 소돔 고모라를 택해가겠다, 그러면 롯은 한말도 못하고 그냥 줄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은 말은 안 해도 하나님을 먼저 생각하고 자기가 좋은곳 으로 택해가면은 롯이 시험에 들것이고 어려울 것이고 하나님이 안 기뻐 하실 것이고 그래서 하나님을 생각하고 자기의 권위를 손해 봤습니다. 아브라함의 자기 권위 위신 자기 체면 이거다 깎아먹고 포기하고 하나님의 원하시고 기뻐하시는 그 길을 아브라함은 갔습니다. 아브라함이 그리 갔을 때 아브라함은 믿음 없는 사람들 잘 모르는 사람들에게 아브라함은 인정받지 못합니다. 우리 주인 따라가다가는 굶어 죽겠다 신임이 다 떨어져 버립니다. 자존심도 상하는 길입니다. 자기 손해입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을 높이기 위해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기 위해서 하나님을 좋게 하기 위해서 자기를 완전히 포기하고 자기를 손해 봤고 반대로 롯은 하나님도 생각했지만은 하나님보다 자기 위신 자기 권위 자기 체면 자기 자존심 자기 입장을 먼저 생각했습니다. 이것이 두 사람이 갈라진 두 사람의 길입니다.
선택해 보면 나와 있습니다. 본문에 보면은 아브라함은 자기보다는 하나님을 앞세웠고 높였고 먼저 생각했고, 반대로 롯은 하나님도 생각 했지만은 먼저 자기를 생각했습니다. 자기 위신 자기 권위 자기 체면 자기 자존심 자기 욕심 자기 성질 자기 입장 자기 손해보지 않고, 그러다 보니 하나님을 손해 봤습니다. 이렇게 두 집안이 갈라졌을 때 아브라함과 롯의 갈림길 입니다. 기로에서 갈라진 것입니다.
두 번째 아브라함은 자기에게도 아내가 있고 일꾼들 많은 사람이 있었지마는 그 사람들의 생각 의사 뜻 그들의 마음도 중요하나 그들의 그 모든 것 보다는 하나님이 원하시는게 무엇이냐 하는 하나님의 뜻을 자기와 사람들의 뜻보다 먼저 생각을 하고 앞세운 이것이 아브라함의 신앙이었고 길이었고, 반대로 롯은 하나님의 뜻도 중요하지만은 롯의 걸어간 그 걸음은 하나님의 뜻보다는 자기 뜻 사람들의 생각 아내의 생각 아내 의견 딸들의 의견 일꾼들의 의견 그것을 꺽지 못하고 무시하지 못하고 그것을 하나님의 뜻보다 크게 여기고 앞서 세운다는 것이 롯의 걸어간 걸음입니다. 둘이 갈라졌습니다.
세번째는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축복이면은 눈에 보이는 조건은 아무 상관이 없다고 믿고 나아갔고 그래서 조건이 아무리 좋아도 하나님이 축복하지 않으면 그 좋은 조건 다 아무 소용 없고 아무리 조건이 악조건이라도 하나님이 축복만하시면 얼마든지 될수 있다는 믿음 가지고 하나님의 축복을 믿고 가는 것이 아브라함이고, 롯은 하나님의 축복도 중요하나 공부도 중요하고 건강도 중요하고 집안도 중요하고 배경도 중요하고 조건이 중요하다, 그래서 롯은 하나님의 축복보다는 조건을 택해서 간 것이 롯의 신앙의 걸음입니다.
요래 세가지 둘로 갈라진 것이 아브라함과 롯이였고 그 결과로 아브라함은 믿음의 조상 위대한 영원한 믿음의 조상이 되었고, 롯은 그 뒤에 보면은 자기를 앞세웠는데 자기는 소돔들에 유황불비 내린다고 천사가 와서 알려줄 때 롯이 정혼한 두 사위에게 그 사실을 말하니깐 사위와 딸들이 농담으로 여겼습니다. 롯은 지금 소돔 고모라가 저주받아서 멸망되어 피신까지 갈라 하는데 아내와 그 딸들과 그 사위들은 그 말이 아버지 말이 얼마나 우습게 여겼던지 농담으로 여겼더라. 그만큼 자기 권위 때문에 하나님을 버렸는데 권위는 바닥에 떨어졌고 자기 자존심 체면 때문에 하나님 버렸는데 그 위신 체면이 바닥에 떨어져서 완전히 참 그런 사람이 됐고 마지막 가서는 멸망의 조상이 됐습니다. 이게 자기 앞세운 롯의 결과였고 또 아브라함은 사람들 다 잃어도 사람들이 귀하고 소중하고 잃기 싫지만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드리기 위해서 부득이하게 사람들을 섭섭하게 하고 손해 봤지마는 마지막 가서 보니깐 아브라함의 사람은 하늘의 별처럼 바다의 모래처럼 많은 믿음의 조상이 됐고 반대로 롯은 아내 빼앗기지 않기 위해서 섭섭해 하지 않기 위해서 딸들 마음 안 상하게 하기 위해서 일꾼들 안 잃기 위해서 사람들을 얻기 위해서 하나님의 뜻을 저버렸는데 마지막 갈 때 롯은 혼자 남았고 사람 다 잃어버렸고 저 산둥에 가서 혼자 갔고 비참한 롯이 되어졌습니다. 사람 다 잃어버렸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세번째도 하나님 축복 믿고 간 아브라함은 큰 부자가 됐는데 조건이 따라갔던 롯은 알거지가 되고 말았습니다. 요게 결과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말씀을 가지고 요게 우리 신앙에 있는 항상 부딪히는 두 길입니다. 본문에 기록된 두 사람의 신앙의 노정과 두 사람의 선택을 살펴 따져보고 그리고 두 사람이 선택한 두 길 기로에서 갈라진 두 길을 생각해보고 우리 앞에 항상 두 길이 있음을 기억하고 우리는 롯의 길을 걸을까 심히 조심하고 아브라함의 길을 걸어가는, 나 자신보다는 하나님을 먼저 앞세우고 하나님을 생각하고 사람들이 소중하나 하나님의 뜻이 더 중요함을 기억하고, 아무리 조건이 좋아도 하나님이 축복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안 되는 것을 기억하고 아브라함의 길을 걸어가는 그런 우리가 되어야 하겠다는 것을 기억하십시다. 다같이 통성으로 기도 드리겠습니다. 신앙의 두 길은 아브라함과 롯에게만 해당되는 말씀이 아니고 그게 아닙니다. 우리 모두에게 공통적으로 똑같이 해당되는 길임을 기억하십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