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16-주후
작성중2014-03-18조회 489추천 35
설교원문
20140316 주후
히브리서 11:1-3
첫째, 기독교는 믿음의 도라는 것을 생각해봤습니다. 기독교는 믿음의 도다. 세상에 무슨 단체가 있으면 그 단체의 목적, 그 단체의 강령 그런 것들이 있고 그러면 그것이 중심이 되고 그것을 위해서 거기 맞는 그런 모든 활동을 하게 되는 면이 있습니다. 그 단체도 그렇고 또, 주로 단체가 그러하게 되겠습니다. 그러면 기독교라는 종교는, 불교는 그게 어디로 가는지 잘을 모르겠지만은 자기를 완전히 없애버리는 무아(無我)지경으로 들어가는 그게 불교가 아닌가 그리 상식으로 좀 알고 있고, 또 유교는 사람의 기본적인 그런 사람의 마땅한 도리를 찾아 행하는 그게 그것이 아닌가 그리 생각하고. 그래서 불교는 종교인데 유교는 종교가 아니라 그리 말합니다. 우리 기독교는 종교인데, 기독교는 그 내용이 믿음의 도다 그말은, 믿음으로 모든게 시작이 되고 출발이 되어지고 믿음으로 출발이 되고, 또 기독교 안에 있는 모든 효력을 보는 것도 전부 믿음으로만 볼 수 있다는 겁니다.
하나님의 능력도 하나님 살아계신 그 사실을 아는 것도, 성경이 말씀하신 모든 신앙의 성공도 승리도 또 목표달성도, 모든 효력도 전부 믿음으로만 그것을 이룰 수 있고 달성할 수 있고 알 수 가 있다 하는 겁니다. 이걸 가리켜서 기독교는 믿음의 도다. 그래서 출발도 믿음으로 하고 진행 과정도 믿음으로 하고 결과가 맺어지는 것도 믿음으로만 맺어지는 것이 기독교다. 그러면 기독교는 믿음이 전부다.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것이 없느니라. 귀신 들린 아들을 데린 아버지가 그 아들의 병을 고쳐보겠다고 주님이 잠깐 안 계신 사이에 그 제자들에게 들어갔습니다. 그런데 제자들이 아무리 해도 귀신을 쫓아내지 못하고 고생만 하고 있는데, 주님이 오셨습니다. 왜 이렇게 되어졌느냐? 언제부터 이렇게 되어졌느냐? 물으니까 어려서부터 귀신이 들었는데 귀신이 저를 붙들고 불에도 들어가고 물에도 들어가고 죽을 지경입니다. 어떻게 좀 해주옵소서. 뭘 좀 할 수 있거든 좀 도와주옵소서. 그러니까 순복음 교회, 그 참 많이 써먹은 말입니다. 예수님께서,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할 수 있거든은 확정이 아니고 만약 그렇다면 그러니까 확실한 믿음이 아닙니다. 그래서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것이 없느니라고 말씀하시니까 그 아이의 아버지가 소리질러 가로되, 뭐라 그랬습니까? 내가 믿나이다. 그리고 나의 믿음 없는 것을 도와주소서. 그랬습니다. 우리는 모두 믿음이 있으십니까? 그 말씀이 참 절절히 와닿았습니다. 이번에 이 말씀 준비하면서 ‘내가 믿나이다 나의 믿음 없는 것을 도와주소서’. 우리는 믿는다하나 믿음이 실제 사실, 많이 빈약한 그런 우리들입니다. 그래서 믿음을 지금 공부를 하고 있습니다.
믿음을 가지면, 그 믿음의 역사가 본문에서 크게 두가지로 나타나는데 하나는 소망의 실상입니다. 말하자면은 믿음은 실상을 이루는 것이다. 성경에 기록하신 모든 하나님의 약속을 실상으로 받아가질 수 있는, 우리 믿는 사람들이 소망하는 모든 소망을 실상으로 이루어가지는 것이 믿음이다. 그 소망이 무엇인가. 몇 가지만 말해보면 영생하는 소망이고, 영생이라는 말은 생명의 영원한 활동입니다. 그냥 사람이 오래 산다 그러면 우리 인식은, 일반 인식으로 말하면 사람이 죽었다가 부활해서 살아본 사람이 없고, 사후세계를 경험해본 사람이 없기 때문에 오래 산다 그러면 이 고깃덩어리 가지고 오래산다는 것만 알지 영생이라는 개념이 세상에는 없고 없을 수 밖에 없습니다. 영생이란 것은 시공을 초월한 신령한 몸으로 그래서 다시는 늙지도 않고 병들지도 않고 쇠해지지도 않고 죽지도 않고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그 몸으로 영원히 활동해 사는게 영생인데, 사는 것도 문제가 많습니다. 어떤 사람은 그런 말 좀 들어보셨는지요? 저는 직접 제가 듣지는 않아도, 어떤 사람들 두고 어른들이 하는말 한번씩 옛날에 좀 들어봤습니다. 제발 좀 뒤졌으면 좋겠다. 얼마나 속을 속였으면 그런 말이 나오겠습니까. 살아있는데 차라리 다른 사람들이 죽기를 바라는 그런 사람이 영생을 한다면 얼마나 많은 사람에게 피해를 끼치게 되겠습니까? 또 그렇게 피해를 안 끼쳐도 남에게 유익을 주지 못한다면 그것도 살아봐야 별 또 그럴 겁니다. 그런데 성경이 말씀하신 영생은 자체도 그러하고 그 사람이 없으면 안되는, 하나님도 각 차이는 있지만은 하나님에게도 그 사람이 필요한 정도가 어느정도로 필요하고, 마치 대통령이 나라를 다스릴때 총리 한 사람만 가지고 나라를 못 다스리고 장관이 있으면 어느 한 부서의 장관만 가지고는 전체를 못 다스리니까 총리도 세우고 이 부서 장관도 세우고 저 부서 장관도 세우고 각 부서에 필요한 장관을 세우고 그 밑에 또 국장을 세워놓고 또 사무관 세워놓고 다 이래가지고 나라를 다스려 가는 것처럼 하늘나라도 그리 될 수 밖에 없는 것이고, 그래서 하나님이 계시는데 그 하나님의 천국 통치에 각자 이 세상에서 준비한만큼 하나님의 궁극으로 주신 분량만큼의 그 실력가지고 천국에서 쓰여지게 되는데, 그 쓰여지는 그 양이 요긴하게 쓰여지고 활용이 많이 되는 만큼 그 사람의 가치는 올라가고 대우는 올라가게 되는 것이고, 그러면 그 사람은 영생하면 할수록 많은 사람에게 참 필요한 그런 사람. 그래서 성경에 보면은 어떤 인물이, 왕이 이스라엘 왕 중에서, 그 왕 이름이 뭐지요? 얼마나 못되게 하고 모질게 했으면 죽을때 창자가 배 밖으로 튀어나와서 그래 죽었는데 아끼는 자 없이 세상을 떠났다고 했습니다. 아무도 그 사람 죽는데 아까워하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참 비참하지요. 인생 살아도 그리 산다면 얼마나 불쌍하겠습니까? 아끼는 자 없이 세상을 떠났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나이가 많아서, 백목사님이 세상 떠나실 때, 순교하실 때 연세가 80인데, 그때 80이면 참 살만큼 사신 겁니다. 그런데 많은 교인들 대부분 교인들은 그분이 그렇게 갑작스럽게 돌아가실 줄 몰랐지요. 가시고 나니까 온 예배당이 그냥 몇 날 며칠동안 눈물 바다가 되었습니다. 저도 참 어지간히 울었는데. 장례지낼때 눈물바다가 되고, 그런 장례가 드물만큼 그런 장례식. 그래서 그런 분도 있고 아끼는 자 없이 세상을 떠난 사람도 있고. 천국에서 영생할 때 영생하는 그 사람이 제발 오래 살아야 되겠다, 영생하지만은 그 사람이 활동하는만큼 많은 존재들에게 유익을 끼치고 도움을 주고 은혜를 끼치니까 그 영생이 얼마나 가치가 있으며 빛이 나겠습니까? 이런 영생하는 것이 우리 소망이다 그말이지요. 또 하나님같은 흠과 점이 없는 완전자, 껍데기 고깃덩어리 얼굴도 모두 꾸며서, 흠이 있으면 너무 사각이네 뼈를 깎아서 동그랗게 계란형을 만들고, 눈이 쭉 째졌네, 눈을 파가지고 동그랗게 만들고, 코가 납작하네 코 뼈를 갖다붙여가지고 세우고. 온갖 그냥 성형수술해서 보기에, 껍데기 보기에 덜 흠이 없도록 그렇게 참 가치가 없는 건데. 그래 만드는데. 그보다는 그 사람의 지식이라든지 인식, 사고방식. 사람이 인식이 하나 잘못되면 그의 생애가 잘못되고 모든 언행과 대외접촉이 다 잘못되는데 참 큰 문제입니다. 그 사람이 인격장애라는 말이 있지요. 인격이 삐뚤어지고 인격이 잘못되면 그의 생애 전부다 잘못되고 그 사람이 잘못되면 많은 사람에게 피해를 끼치는 그런 사람이 됩니다. 흠과 점이 없는 그런 온전한 사람, 이런 사람이 되는. 그래서 외모는 이거는 다 썩을 것이니까 이거는 가치가 없고, 이 사람이 부활할 그때는 이거 완전히 초월한 그런 몸이 되니까 그 사람의 인격이, 그 사람의 모든 사상이 다 하나님 닮은 흠과 점이 없는. 그리고 거기서 나오는 모든 사리판단 처리가 모든 만물이 다 찬성하고 하나님의 지공 지성법에 흠이 없는 이런 우리들을 만드시는 이 소망이 실제 이루어지는게 믿음이다. 만물 통치자가 되는 것이 시은의, 하나님의 시은 대리자 이것이 되는 것이 천국의 영원한 소망인데 이 소망이 실제로 우리에게 이루어지는 것이 믿음이다. 또 하나는 믿음은 간단하게 말하면 증거입니다. 하나는 소망의 실상이고 하나는 증거입니다. 안 보이는 것, 모르는 것, 볼 수 없는 것을 볼 수 있게 만드는 그것이 바로 믿음이다. 그러니까 눈에 안 보였고 아무도 몰랐는데 믿음을 가지니까 몰랐던 것을 알게되고 감추어져있고 드러나지 않아서 사람들이 몰랐는데 믿음을 가지니까 그 사람을 통해서 세상에 드러나게 되는, 대표적으로 말하면 부활의 지식이란 것이 아브라함이 이삭을 번제로 드리기 전까지는 부활이라는 개념이 사람들속에 없었는데, 아브람이 믿음을 가지고 이삭을 번제로 드릴때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이 서로 상치가 되고 배치가 되니까 믿음으로 아브라함이 깨달은 것이 바로 그거지요. 이삭을 통해서 자손이 모래알처럼 많게 하겠다고 약속하신 것도 하나님의 약속, 계약 말씀. 이삭을 번제로 불에 태워 죽이라는 것도 하나님의 말씀. 그러면 인간의 이치, 인간의 계산으로는 둘중의 하나인데, 이삭이 오래 살아가지고 이삭을 통해서 아이가 나야되고, 이삭이 죽으면 그만이고 하나님의 계약이 둘이 상치가 되니까 둘중에 하나는 틀린건데, 모순처럼, 하나는 틀린건데 아브라함은 믿음으로 깨닫기를 하나님의 계약은 틀리는 것이 없다. 그렇다면 이삭을 통해서 자손이 난다는 것도 맞을 것이고, 번제로 드리란 말씀도 순종해야 되니까 그러면 번제로 드리면 재가 된 이삭의 몸에서 아이가 나든지 그게 안되면 죽은 이삭이 다시 살아나든지. 아브람이 깨달은 건 뭐였습니까, 성경으로 볼때? 아브람이 깨달은 것은 죽은 가운데서 하나님이 살려주시겠구나, 부활의 지식을 인류 최초로 깨달은 것이 아브람이 이삭을 바칠때 깨달은 깨달음. 그게 이 세상에 없는 것을 믿음을 가지고 나타나게 하고 볼 수 있는 것이 믿음이다, 이게 증거다 그 말입니다. 그래서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 선진들이 이로써 증거를 얻었느니라’. 노아도 아브라함도 이삭도 야곱도 요셉도 모세도 모든 사람이 전부 이렇게 믿음의 길을 걸어가서 보이지 않은 것들을 다 봤고 소망하는 것을 다 받아본 이게 믿음의 선진들의 것입니다. 그래서 본문에 보니까 모든 세계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진 줄을 어떻게 아느냐? 어떻게 압니까? 하늘과 땅과 바다와 그 가운데 모든 존재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졌다는 사실을 우리는 압니다. 아십니까? 모르시는 분도 있을 수 있습니다. 아는 분도 있고. 안다면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모든 세계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졌다는 사실을 우리가 압니다. 어떻게 알지요? 어떻게 압니까? 아시는 분 크게 말씀해 보시지요. 모든 세계가, 하늘과 땅과 태양과 달과 별과 춘하추동 사시와 하루 24시간과 모든 사람과 모든 존재가 성경에 보니까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졌습니다. 그 사실을 우리는 아는데, 세상 사람들은 모릅니다. 왜 성경에 기록된 것을 똑같이 한글로 됐는데 우리보다 유식한 사람도 많은데, 우리는 아는데 나는 무식해도 아는데 유식한 그들은 왜 성경에 있는데 왜 모릅니까? 아는 것은 뭘로 알고 모르는 것은 왜 모릅니까? 아는 것은 믿음으로 알고 모르는 것은 안 믿으니까 모르는 겁니다. 보이는 것은 나타난 것으로 말미암아 된 것이 아니다. 눈에 보이는 모든 것들은 보이는 존재에게서 나온 것이 아니다 그말입니다. 사람 보기에는 보이는 것이 보이는 것을 만들었고 있는 것이 있는 것을 만든 것 같으나 하나님은 사람들이 모르는 보이지 않는 분이고, 그래서 보이는 모든 것들은 보이지 않는데서 나왔고 보이는 것들은 보이지 않은 것을 위해서 있고 보이는 것은 잠깐이고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다. 이게 성경입니다. 이게 전부 믿음으로 되어지는 것이다, 믿음은 참 중요합니다. 그래서 믿음이란 것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를 아니합니다. 좀 똑똑히 한번 생각해보십시다.
그러면 믿음이란 무엇이냐? 믿음은 그 정의를 내린다면, 요소적으로. 첫째, 믿음은 아는 것이다. 안다는 말은 하나님의 성경 말씀을 아는 겁니다. 이건 기본입니다. 모든 것이 다 그러합니다. 세상 모든 일은 본인이 알든 모르든, 의식하든 못하든 모든 일에는 아는 지식이 첫째입니다. 알아야 면장도 하고, 면장만 하는 것이 아니고 밥을 하는 것도 알아야 하고 설거지 하는 것도 알아야 되지 모르면 못하는 겁니다. 세상 모든 일이. 믿음은 더 합니다. 첫째는 아는 겁니다. 안다 말은, 아는 걸 한문 글자 두 글자로 말하면 뭐라 그러지요? ‘알 지(知’)자 ‘알 식(識)’자, 지식이라 그러지요. 안다. 안다는 말은 지식이라는 뜻입니다. 아는 것. 뭘 아는 겁니까? 성경 말씀을 아는 겁니다. 성경 말씀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이 우리가 알 수 있도록 글자로 기록해서 우리에게 알려주신 말씀이 성경입니다. 하나님과 관련된 모든 것을 우리가 볼 수 있고 알 수 있도록 기록해주신, 말씀으로 기록해주신게 성경이니까 이 성경 내용을 첫째 아는 겁니다. 그러기 때문에 믿음이 생기려면 가장 힘을 써야 될 것이 첫째 성경을 많이 읽어야 되는 겁니다. 대개 보면은 모태신앙으로 자란 우리 젊은 사람들은 성경을 상식으로 많이 압니다. 기본 상식으로. 왜 많이 아느냐? 어려서부터 귀가 따갑도록 들었거든요. 그러니까 설교시간마다 성경 들으니까 많이 안 읽어도 어지간한 상식은 그 머릿속에 다 들어있는데 참 복은 복인데, 그것 때문에 게으르면 이제 큰 문제가 되는 거지요. 첫째 성경을 알아야 됩니다. 아는 것이고. 두번째는 아는 그대로 인정하는 것인데 인정이라 말은 그대로 받아드리는 것인데, 그런데 사람의 지식이란 것은, 인정이란 것은 마음의 작용이고 그 마음의 작용은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이성비판이란 것은 이치를 따져가지고 뭔가를 결정하는 그런 것인데 사람이란 것이 양심도 있고 그런 것이 있으니까 뭔가를 볼때, 들을때 그것을 보고 내가 그것을 볼때 자기 생각 아니다 싶은 그런 것도 있습니다. ‘이건 아닌데’. 그러면 눈에 보이는, 들리는 그 지식이 내게 들어올때 거부가 되는 겁니다. 그러면 처음 듣는 혹은 밖에서 내가 보고 읽고 듣는 그 지식하고 이미 내 속에 들어와있는 지식 상식하고 배치가 되면 그 둘 중에서 힘이 있는 지식이 내 속에 이성을 점령을 하게 되는 겁니다. 강한 것이. 그러면 내 속에 있는 지식이 논리적으로, 실상적으로 약하면 밖에서 처음 들어온 지식이 강하고 내 속에 있는 지식이 약하면 내 속에 있는 기존지식은 깨지게 되고 밖에 들어온 그 지식이 점령을 합니다. 그래서 공산주의자들이 처음에 사상을 퍼뜨릴때 뭘 가장 많이 했는가? 세뇌교육. 감옥이든지 어디든지 계속해서 공산주의 지식 사상을 귀가 따갑도록 틀어놨다고 그러지요. 지식을 막 집어 넣는 겁니다. 집어넣고나면 잠을 자도, 길을 가도 그것만 머릿속에 뱅뱅 돕니다. 그러다보니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그게 자기 지식이 되어버리고 그리 될 수가 있는 건데, 믿음이란 것은 첫째는 아는 것이고 두 번째는 읽고 들어 안 그 성경 말씀을 자기가 받아들이는게 믿음인데 받아들일때 이 말씀은 뭐가 문제냐 하면, 이 세상 사람들이 상식적으로 알고 있고 인정하는 그게 전부 말하자면 인간 이치고 인간 상식이고, 인간 통계고 인간 과학이고, 인간 경험이고 체험이고 이런거 아니겠습니까? 그런 것들이 세상에 가득 찼고 그런 것들이 모든 사람 속에 들어있고, 우리들 속에도 그런 것이 들어있는데 이 성경 말씀은 그것하고 맞는 것도 있지만은, 내가 알고 있고 모든 사람들이 알고 있는 인간의 생각, 인간의 이치, 인간의 상식, 인간의 통계에 의한 그런 모든 것들, 사람 자신의 살아오면서 보고 듣고 접하고 경험하고 체험하고 느낀 그로 인해서 자기 속에 생성된 그런 자기 지식 이것하고 성경 말씀하고 맞지 않는 배치되는 것들이 많이 있다 그말입니다. 있는데도 불구하고 기본적인 믿음을 받으면 도무지 사람이 믿을 수 없는 그런 것이 인간이 모든 상식과 지식 이런걸 다 깨버리고 그게 초월해서 그 속에 박혀 버리는것이 하나님의 은혜인데, 이거는 말하자면은 이것은 하나님의 역사가 아니면 안되는 것이기 때문에 강제로 넣어주는 겁니다. 이게 다음에 나올 기본적인 믿음인데, 어쨌든 믿음의 정의는 첫째 아는 것, 두 번째는 인정하는 것인데 인정하는 것은 뭐하는 거라고요? 내가 받아들이는 겁니다. 받아들이는 것. 받아들일때, 내 속에 내가 지금 받아드리는 그 말씀하고 배치되는, 마찰되는 그런 내 속에 있는 기존 지식이, 이미 들어와있는 지식이, 기존지식이라 말은 기혼자는 어떤 사람을 말합니까? 미혼자는 아직까지 혼인하지 아니한 사람, 기혼자는 이미 혼인한 사람, 기존이라 말은 이미 내 속에 있는 그 뜻입니다. 지식이라 말은 이미 이 말씀을 읽고 듣기전에 내 속에 들어와있는 지식을 기존지식이라. 선입적인 관념이라 그 말은, 선입이라 그말은, ‘먼저 선’자 ‘들 입’자, 내 속에 먼저 들어와있는 생각, 사고방식, 사상 이런걸 선입적인 관념이라 그리 말하는데 어렵지 않은데 쓰다보니까 그런 겁니다. 이런 것이 내 속에 있으니까, 이미 내 속에 자리 잡고 있으니까. 기득권이라는 말이 있지요. 회사에서 주주총회에서 원래 있던 회장을 탈락시켜버리고 새회장을 뽑았습니다. 그 회장이 출근하는데 서로 새로 취임하고 떠나고 이러는데 당연히 그리하는게 맞지만은 새로 들어가는 사람은 나가는 사람 볼때 참 마음이 미안하고 그렇지 않겠습니까? 떨어져 나가는 입장이니까. 나가는 것. 그런 것이 있는 건데, 내 속에 있는 그런 지식이 들어있으면 새로운 지식을 받아들이려 그러면 이런 마찰같은 이런것이 필연적으로 있게 되어있습니다 이게. 그런데 그것이 있어도 하나님의 말씀을 내가 받아들이지 않으면 믿음은 생기지 않습니다. 믿음은 자라가지를 아니합니다. 그러니까 내 생각과 인간의 생각과, 내 상식과 인간의 모든 상식과, 그 상식 생각이 역사 오랜 세월을 겪어서 수많은 걸 통계를 내서 사람이 경험하고 체험해서 어떻게 해서 생겨졌든 인간의 범위안에서 생겨진 그래서 그것을 듣고 봄으로 자기 속에 자리잡고 있는 그 지식이 있는데 그 지식이 있는 그 가운데 하나님의 지식이 눈으로 읽으니까 귀로 들으니까 밀고 들어오는데 마찰이 될 때, 내 속에 들어있는 그 지식을 내가 부인을 하지 않으면 하나님의 지식은 내 속에 들어오지 못하고 자리 잡지를 못하는 겁니다. 그래서 믿음의 두 번째 ‘인정’이라 말은 이게 실제로 되야만이 믿음이 되지, 이게 되지 않으면 믿음은 되지를 않는다는 겁니다. 그래서 첫째는 아는 것이고 두 번째는 인정하는 것이고. 이게 되고 나면 그다음 세 번째는 자기 속에 알고 인정되는 그대로 모든 존재를 대할 때 인식도 그래가지고 ‘아 물질이란 것은 이런 것이구나’. 사람의 존재 가치를 두고 볼때, 하나님이 첫째 그다음 두 번째 진리 그다음 세 번째는 사람 사람도 영이 가장 가치고 영 다음에는 마음 몸 이게 가치고 사람 다음에는 일이겠고 그다음이 물질이겠고 이리 가치를 정하는 것이구나 이렇게 인식을 가지고 그렇게 대우를 하는 겁니다. 그래서 돈보다는 사람이다, 사람보다는 진리다, 진리 위에는 하나님이 계신다 이렇게 알고 그 존재를 상대하고 또 그 존재 가치에 맞게 그 존재를 대우를 하고 대접을 하고, 그래서 죄라는 것은 타락 탈선이라는 것은 그 존재, 하나님이 정해놓으신 존재 가치를 벗어나서 그것을 대우하면 그게 타락이 되는 겁니다. 탈선이 되는 것이고. 그 존재 스스로가 그 자리를 벗어나면 그게 죄고 타락이고 또 다른 사람이 그 존재를 거기서 달리 대하면 그것도 바로 탈선이, 자기로써 그 존재 관계에서 탈선이 되는 겁니다. 그러니까 성경이 말씀하신 그대로 그 모든 존재를 알아서 그리 접촉을 하고 상대를 하는 겁니다. 죄가 있는 사람을 상대할때는 ‘내가 약하면 죄에 전염되기 쉬우니까, 저 사람 보니까 하나님 안 믿는 사람이고 세상 사람인데 내가 접촉을 하면 내가 강하면 끌어오겠지만은 나도 믿음이 부족한데 접하다가는 내가 끌려가겠구나, 조심을 해야 되겠다.’ 믿음 없는 사람은 조심을 하고, 나보다 모든 면에 믿음 있고 신앙 열심있는 그런 사람을 볼때는 ‘아 저분은 신앙의 사람이고 내가 만나면 유익을 얻으니까 자주 좀 만나봐야 되겠다’. 접촉을 하고 존경도 하고. 사람이든지 또 어떤 일이든지 물질이든지 유형이든지 무형이든지 어쨌든 이 세상에 모든 존재 그런 것들을 내가 인식도 그리하고 상대도 그리하고 또 모든 일에 결과를 두고도 어떤 일이 생겼으면 마음에 이거는 누구 때문이다, 잘되면 제탓, 못되면 조상탓. 아버지가 못나서 우리 어머니가 머리가 나빠서. 우리 집안이 원래 이래서, 내가 이렇고 저렇고 그런 못되먹은 그런 생각이나 그런 걸 할 것이 아니고 모든 일에 원인은 전부다, 내게 일어난 모든 일의 원인은 전부 나로 말미암아 됐다는 것이 성경이니까 그러니까 어떤 일이 원망할 만한 일이 생겨도 원망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주권이다, 예정 속에 든 것이다. 나를 위해서 나 때문에 이렇게 된 것이다. 나와 관련된 일이니까 뭔가 하나님께서 내게 원하시는 것이 있는 것이다 이렇게 인식을 하고 그렇게 상대하는 것이 그게 말하자면은 믿음이고, 그 믿음은 세가지 중에 첫째입니까 둘째입니까 셋째입니까? 그리 인식가지고 그렇게 상대하는 것은, 어떤 일이 생겼을때, 누구의 잘못으로 인해서 문제가 생겨서 내가 큰 곤경에 빠졌습니다, 이거는 그 사람 때문이다, 백퍼센트 그 사람 때문입니다. 그럴때 그 사람 때문이라 그리 하지 않고 하나님께서 이것은 모든 건 예정 속에 들지 않은 것이 없고 하나님의 주권 아닌 것이 없는데 그 사람이 실수하게 한 것도 하나님의 뜻, 예정과 주권이고. 그것 때문에 일이 나한테 미친 것도 예정과 주권이고. 그러니 이거는 하나님께서 내게 원하시는 뜻이 있다. 이렇게 깨달아서 그 일을 믿음으로 하나님 앞에 자기가 해결하는 그런 믿음을 가졌습니다. 이거는 첫째 둘째 셋째중에 어디 속한 겁니까? 그렇게 사건 해결을 상대한다 그말이지요. 인식을 그렇게 가지고. 원망하지 않고 그래 합니다. 그러면 그것이 아는 겁니까 인정하는 겁니까 행하는 겁니까? 그게 바로 행하는 겁니다. 그렇게 실행을 하는 겁니다. 그렇게 그 일에 대해서 상대하는 것이고. 모든 흥망성쇠라는 것은 결과고 존비귀천도 결과고 생사화복이 결과인데, 모든 일의 결과는 전부 하나님이 하시는 것인 것을 인식을 하고 거기 맞도록 사는 것이 이게 믿음이다. 믿음의 정의는 이렇게 세 가지입니다. 아는 것, 인정하는 것, 실행하는 것.
그러면 네 번째로, 믿음의 종류는 어떤 것이 있느냐? 이거는 알기 쉽게 구별하는 것인데, 첫째는 기본적인 믿음이 있다. 이 기본적인 믿음은 하나님이 은혜로 주신 믿음이기 때문에 그냥 믿어지는 믿음입니다. 우리가 은혜라는 말을 쓸때는, 주로 은혜라는 말은 공짜라 그말인데 어떤 걸 받는게 은혜입니까? 하나님이나 우리가 부모님께 받는 것, 은혜라 그럴때는 은혜라 그러니까 공짜라 그러니까 자칫하면 값이 없으니까 헐한 것이고 싸구려 이렇게 생각하기 쉬운데 우리가 성경에 받은 은혜는 다 어떤 은혜입니까? 어떤 것이 은혜로 받는 겁니까? 사람의 힘으로 할 수 없는 것들만 은혜로 받습니다. 인간의 노력으로, 인간의 의지로, 온 세상이 다 달려들어도 사람은 할 수 없는 것이, 그거는 하나님께서 전부 은혜로 다 주셨습니다. 택함이라든지 중생이라든지 기본구원이라든지 이런 건 은혜로 주신 것이고 마찬가지고 기본적인 믿음은 사람이 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이 은혜로 주셨기 때문에 이거는 그래서 성경에기록된 모든 사실, 모든 말씀, 이 사실은 온 세상이 달려들어도 참, 지구가 몇 번 뒤집어져도 우주가 몇 번 뒤집어져도 믿을 수 없는 내용만 있는게 성경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사람으로서는 절대 안 믿어집니다. 못 믿는 겁니다 이거는. 믿어질 수가 없는 것인데도 믿어지는 것은 그게 바로 하나님의 은혜다 그말이지요. 그냥 되는 게 아닌 겁니다. 하나님께서 믿어지도록 하니까 믿어지는 것이지 하나님의 은혜 아니면 결코 믿을 수 없는 것이 성경에 기록된 모든 말씀 아닙니까? 하나님이 살아계신 그 사실을 믿을 수가 있는 겁니까? 엿새동안에 우주가 다 말씀으로 지었다는 그 사실을 6천년 역사 천하모든 인간 하나님 은혜없는 인간들 다 모아놓고 단 한순간이라도 한명이라도 믿어지는 사람이 있는가를 대보면 안되는 겁니다 결코. 믿을 수 없는 겁니다. 천국과 지옥이 있다는 사실도 믿을 수가 없는 것이고. 그런데 우리는 너무도 자연스럽게 믿어지지 않습니까, 그게? 그것이 하나님의 은혜고 그게 바로 기본적으로 주신 믿음입니다. 노력으로 인해서, 소원해서 되어지는 것이 아니고 그냥 어느날 갑자기 그 사실이 자기도 모르게 거부되지 아니하고 자연스럽게 ‘아 그렇구나, 그리 되었구나’. 받아드려지는 겁니다. 이게 기본적인 믿음입니다. 말하자면은 저절로 인정이 되는 믿음,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이 믿음은 기본구원에 속한 믿음이고 이 믿음은 건설믿음의 바로 종자가 되고 터가 되는 그 믿음이 바로 이 믿음입니다.
그러면 건설믿음이란 어떤 것인가? 건설믿음이란 것은 첫째는 기본적인 그 믿음, 하나님이 은혜로 주신 그 믿음 위에 그 믿음을 종자로 터로 삼아야 됩니다. 하나님은 없는 가운데서 만드신 분이 하나님입니다. 인간은 아무리 능력이 탁월해도 없는 가운데서 만들지는 못 합니다. 이 우주에 오늘까지 6천년 역사에, 홍수로 다 전멸됐으니까 4천년 역사에 인간의 과학이 최첨단으로 발달된 오늘인데 어떤 계통으로 어떤 과학의 면을 두고 발달된 걸 살펴봐도 그 모든 인간과학의 발달은 하나님이 만들어낸 그것을 가지고 이렇게 저렇게 변형하고 가공하고 더하고 더하고 이래 한 것이지, 없는데서 뭔가 만들어낸 것은 없습니다. 인간은 없는 것을 만들어낼 능력이 없고 하나님이 그 능력 주지를 않았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믿음도 마찬가지입니다. 건설믿음은 반드시 뭐가 있어야 됩니까? 건설믿음은 반드시 기본적인 믿음이 있어야 됩니다. 하나님이 은혜 주신 그 믿음이 있어야 그게 종자가 되고 터가 되어야 그 위에 건설하고 길러갈 수 있지 이것이 없으면 건설믿음은 없는 겁니다. 그래서 기본적인 믿음을 종자로 삼아서 그 다음 길러가야 되고 자라가야 되는 믿음이고 건설구원에 속한 믿음이다 그렇게 둘로 구분할 필요가 있어서 구분해봤고, 그다음 크게 다섯 번째로, 그런데 믿음은 가만히 보니까 성경에도 그렇고 현실에도 그렇고 우리 주변에 보니까 믿음 가진 사람들은 다 꼭같지 아니하고 많은 차이가 있더라. 아브람의 믿음과 롯의 믿음이 달랐고 야곱의 믿음과 에서 믿음이 달랐고 노아의 믿음과 그 당시 하나님의 사람들의 믿음이 다 각각 달랐더라. 믿음이 다 다르지요. 그런데 속에 들어가보면 기본적인 믿음은 하나님 은혜로 주신 것이기 때문에 차이가 없이 꼭 같습니다. 이거는 사도바울의 믿음과 우리의 믿음이 같고 백목사님 믿음과 우리 믿음이 꼭 같아서 요 믿음은 하나님께서 은혜로 그냥 주셨기 때문에, 그러기 때문에 한 달란트 받았던 자가 핑계댔지만은 핑계되지 못합니다. 다섯 달란트 받은 자나 한 달란트 받은 자나 하나님께 받은 것은 같고, 기본적으로 받은 것은 같고. 그러니까 사도바울 같은 사람이나 우리같은 사람이나 기본적인 믿음은 꼭 같이 받았습니다. 그 말은 다시 말하면 온 세상이, 온 천하가 모든 인류가 믿을 수 없는 사실이 믿어지게 한 것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믿어지도록 해주셨다 그말입니다. 성경에 기록된 모든 사실이 믿어지게 하신 겁니다. 그러면 차이는 어디서 차이냐? 그래서 건설의 차이는 무슨 차이라고요? 결과의 차이는 과정의 차이고, 과정의 차이는 건설의 차이고, 건설의 차이는 다른 말로 말하면 노력의 차이다. 인간 노력의 차이입니다. 사람이, 제가 지난번에 앉는 자리를 두고 말씀을 드렸었지요. 자리뿐만이 그런게 아닙니다, 모든게 다 그렇습니다. 예배시간을 맞춰보면 저희들은 일주일에 한번씩 토요일마다 가정예배를 드리는데, 시간을 정해봤습니다. 일곱시 딱 정하니까 자꾸 지각을 해서 일곱시 반에 정하니까 또 지각합니다. 삼십분 뒤 여덞시 한번 해보자, 또 지각을 합니다. 그런데 말 들어보면 전부 이렇고 저렇고 이유가 있고 사정이 있고 다 있지, 사정 없는 사람 없습니다. 뭐든 다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니까, 그래서 패자는 뭐가 없다고요? 말이 없다 그러지요, 패자는. 사람이 정정당당한 사람은 말이 없는 겁니다. 핑계를 대자면 다 있는 겁니다. 그런데 결과를 두고 그러면 실패한 사람한테 물어보기를, 왜 실패했는가? 이렇고 저렇고 이렇고 저렇고, 시대가 어떻게 해서, 몸이 건강이 안 따라가서, 환경이 어떻게 해서, 핑계 댈걸 열가지 백가지 다 갖다댑니다. ‘아 그렇겠네. 그러면 성공한 사람한테 물어보지’. 물어봅니다. ‘자네는 이런 일 없었는가?’ ‘나도 그런게 있지요. 없는 사람 있습니까?’ ‘몸은 안 아팠는가?’ ‘사람이 평생 살다 안 아픈 사람 있습니까? 아프지요’. ‘시대는 괜찮았는가?’ ‘같은 시대 살았지 않습니까?’ 실패한 사람이 당한 그 핑계댄것이 성공한 사람에게도 하나도 빠짐없이 다 있습니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패전한 사람은 그런 핑계를 대고 다 넘어져버렸고, 거기 져버렸고. 성공한 사람은 그걸 전부다 이겨서 극복을 한 것이고 그 차이입니다. 그 차이가 전부 노력의 차이고 전투의 차이고. 그래서 승리자는 합당하게 승리할만큼 그래서 세상에서 공부 1등하면 합당한 대우를 받아야 마땅하고, 올림픽에 나가서 금메달을 따면 그만큼 대접을 받아야 마땅하고, 또 열심히 노력해서 판사 검사 의사가 되면 그만큼 대접받고 돈을 벌어야 마땅한 겁니다. 그게 공평입니다. 다른 사람 놀때 안 놀았고 잘 때 안 잤고 아플때 견뎠고 힘들때 노력했고 다 그래하는 겁니다. 노력의 차이. 믿음의 차이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브라함과 롯의 길은 똑같았습니다, 두 사람의 길이. 그런데 왜 아브라함은 아브라함의 길을 가고 롯은 왜 롯의 길을 가는 겁니까? 믿음의 차이라는 거지요. 그런데 아브라함은 아브라함의 길을 갈 수 밖에 없었고, 롯은 롯의 길을 갈 수 밖에 없었습니다. 하나님이 120년 방주 만들 기회를 주셨을때, 기간 주셨을때, 노아에게 알리셨고, 노아에게 알리신 그 사실을 노아는 모든 백성들에게 다 알렸습니다. 전도 했습니다. 오늘도 마찬가지입니다. 성경에 그렇게 되어있고 하나님의 종들이 진실한 종들은 이 세상은 끝이 납니다. 주님 재림이 있습니다. 재림하시면 온 세상은 다 불에 탑니다. 새하늘과 새땅이 도래합니다. 그런데 그 사실을 믿습니까? 믿고 노아가 방주 준비하듯이 재림 준비를 하십니까? 저도 많이 못 하니까 참 다른 말 큰소리 못하겠지만은 우리가 다 그렇습니다. 노아 시대때 그랬습니다. 노아가 120년후면은 온 세상은 홍수로 전멸됩니다. 그 사실을 노아는 현실처럼 믿었습니다. 현재 벌어질 현상의 세계처럼 노아는 믿었고 믿어졌고 하나님의 아들들은 그 사실이 어떤 사람은 ‘그런가? 그렇겠지. 좀 있다가 준비하지. 방주 만드는데 시간이 뭐 그래 오래 걸리겠어? 120년 남았다면서. 한 10년 하면 안될까? 110년 놀고 10년 동안 준비하지 뭐. 5년동안 준비하지 뭐.’ 별에별 그런 사람들의 종류가 다 있었을건데 그거 다 믿음의 차이였고, 마지막에 가보니까 준비한 사람은 여덞사람 밖에 없고 나머지는 전부 방주 준비를 안 했는데 그 안한 것이 안 한 것이 아니고 한편으로는 안 한 것이고 한편으로는 못한 겁니다. 왜 못 한 겁니까? 안 한 것은 제가 안 한 것이고, 못하게 된 것은 안했기 때문에 못하게 된 겁니다. 못 했다면 강제니까 못하게 된 것은 안했기 때문에 못합니다. 안 했으니까 못 했습니다. 못한 것은 왜 못했습니까? 안 믿어지니까 못 한겁니다. 왜 안 믿어졌습니까? 안 믿으니까 안 믿어진 겁니다. 하나님께서 기회는 충분히 주셨는데 그 기회를 제가 그냥 허투루 다 써버리고 귀넘어 듣고 안 들으니까, 그러니 안 믿으니까 나중에는 못 믿게 되는 겁니다. 이것 희안합니다, 사람이. 죄와 싸우는 것도 그렇습니다. 사람이 자기가 이길 수 있는 죄를 이기면 나중에는 어찌 됩니까? 이길 수 없는 죄도 이기는 능력이 나옵니다. 그런데 이길 수 있는 죄를 무시하고 안 이기면 나중에는 이길 수 있는 죄도 못 이깁니다. 묘하게 이치가 그리 되어있습니다. 세상 이치도 보면 그리 되게 됩니다. 그래서 믿음의 차이는 결국 말하자면은 사람의 노력의 차이다. 그러면 그 노력이란 것, 오늘 결론적으로 말하면, 그러면 믿음을 우리가 만들어가야 되는데 ‘내가 믿나이다. 나의 믿음 없는 것을 도와주소서’. 깊이 새겨 보셔야 됩니다. 홍해 바다를 앞에 두고 모세 여호수아 갈렙은 겁이 없습니다. 참 이 말씀도 저도 그리 되지 못하니까 어쨌든 설교는 하는 겁니다. 겁이 없는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간이 다 녹아버렸습니다. 이제는 꼼짝없이 죽는 겁니다. 그런데 그 사람들이 하나님의 능력을 못 봤느냐. 열 번을 애굽에서 봤습니다. 열 번을 보고도 자기들 눈 앞에 펼쳐진 걸 실제 겪어보고도 홍해바다, 다른 현실 닥치니까 또 안 믿는 겁니다. 그들이 안 믿는 것이 아니고 홍해 바다 닥쳤을때는 그들이 안 믿은 것이 아니고 어떤 겁니까? 못 믿는 겁니다. 안 믿어지는 겁니다. 이제는 죽었다. 같은 자리인데 안 믿어지는 겁니다. 롯이 롯의 길을 간 것은 그리 갈 수 밖에 없도록 자기가 그렇게 만든 겁니다. 아브라함은 아브라함의 길을 갈 수 밖에 없도록 자기가 만든 것이고, 홈페이지에 보니까 우리교회 홈페이지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정탐군 12명을 뽑아서 가나안에 보내라 그랬는데, 하나님이 그래 보내라 그랬는데 하나님의 뜻입니까 선입니까 잘못된 겁니까? 그거는 하나님이 보내라 그러셨죠, 보내라 그러신 것이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 정탐군을 안 보내면 가나안에 들어갈 그런 사람들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아시니까 ‘보내라’. 그런데 정탐군 12명을 가나안에 보내가지고 맺은 결과는 무엇입니까? 여호수아하고 갈렙 빼고는 전부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인 것을 자기 눈으로 보고도 ‘그 땅은 거민을 삼키는 땅이라. 우리가 들어가면 다 죽는다’고 악평을 해서 모든 백성의 믿음을 완전히 떨어뜨리고 다시 애굽으로 돌아가자하고 모세를 돌로 쳐죽이려고 하던 그 일을 만들었지요, 정탐을 보낸 것이. 저것들의 믿음 부족한 것이 그리 만든 겁니다. 하나님께서 그리 아시고 그리 하신 것이고. 여리고성에 갈 때, 점령할때보면, 정탐을 보냅니다. 정탐군들이 가서 샅샅이 들여다보고 그다음 여리고성을 점령합니다. 그런데 여리고성 점령할 때 정탐군들이 가서 보고 한 것 하고 하나님이 성 점령하게 하신 것은 전혀 상관이 없습니다. 하나님이 여리고성을 점령한 것은 완전히 다른 방법입니다. 그들이 정탐가서 한 일은 딱 하나입니다. 여리고성에 정탐군들이 가서 한 일은 하나입니다. 뭡니까? 기생 라합을 찾아낸 겁니다. 그거 하나만 했습니다. 그거는 바로 되고. 그거 하나 말고도 한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 성 점령할때는 그들 정탐군들이 한 것은 전혀 상관이 없고 그냥 성 한바퀴 매일 돌고 마지막에 일곱바퀴 돌고 소리 지른게 그게 전부입니다. 하나님의 역사는 인간의 역사하고는 전혀 다른 차원에서 이루어진다는 것을 믿어야 믿는 사람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여러 가지 면이 있고, 여러 가지 있을수 있는데, 하나님의 섭리 역사에 인간 계산과 인간의 걸음이 앞서가면 하나님께서 빠져버립니다. 하나님이 빠지면 큰 문제 생길 수 있습니다. 여러 가지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믿음이 자란다는 것은 믿음은 어떻게 자랄 수 있는가? 믿음 자라는 방법은 첫째는 기본믿음이 있어야 됩니다. 종자믿음이 있어야 됩니다. 우리 다 있지요. 기본적인 믿음 다 있습니다. 종자적인 믿음이 있습니다. 이 믿음을 가졌으면 그다음 두 번째는 우리가 노력을 해야 되는데, 노력할 방향이 둘이 있습니다. 하나는 뭐냐. 하나는 자기가 가지고 있는 자본, 자기 시간과 노력 정성을 믿음에 드려야 됩니다. 믿음을 가지도록 믿음에다가 자기 시간과 노력 정성을 받쳐 들여서 투자를 해야 믿음이 자랍니다. 그리하지 않으면 믿음 자라지 아니합니다. 자라가는 믿음입니다. 말하자면은 오른손 왼손이 있는데, 우리 학생들 선생님들 중에서 보면은 글씨를 왼손으로 쓰는데, 아마 옛날 사람들 대개 보면은 왼손은 거의 장애자 수준일껄요? 왼손으로는 그림은 커녕 아무것도 못하지 않습니까? 옛날에, 요즘도 그런 사람들 있다던가요. 왼손으로 글씨 쓴다고 혼을 낸다고요? 뭔가 잘못된거겠죠. 양손을 다 쓰면 좋지 않겠습니까? 옛날에 저 어릴때는 왼손으로 글 쓰면 어른들한테 혼이 났습니다. 또 왼손으로 밥 먹으면 혼이 납니다. 그러니까 아예 왼손을 못쓰게 하니까 왼손은 아무것도 못합니다. 그냥 달려가 있고 일반적인 그냥 가벼운 것만 하지. 그런데 어떤 사람 보니까 왼손을 가지고 글씨를 쓰는데 기가 차게 써나갑니다. 왼손으로 뭘 하는데 오른손보다 더 잘합니다. 그러면 팔은 양 팔 있고 손은 양 손 있는데 오른손만 자꾸 쓰니까 왼손은 나중에 달려있기만 있지 기능이 쓸모없는 그만큼 활용도가 떨어져버립니다. 못하게 된다 그말이지요. 양손을 다 쓰는 사람은 오른손 왼손 양손을 다 쓰면은 그만큼 능률이 그만큼 많이 있겠고 활용도 그만큼 많지 않겠습니까? 또 왼손만 쓰는 것도 문제가 되겠지만은. 자기가 어느쪽에다 가치두고 어느 방향으로 관심과 시간과 노력을 드리느냐에 따라서 그만큼 그면에 대해서 그 사람은 모든 면에 늘어날 수 밖에 없는 겁니다. 아무리 무식해도 영어책을 꼬부랑 글자로 a,b,c도 몰라도 그 사람이 영어를 자꾸 듣고 접촉을 하고 읽고 하다 보면은 나중에는 영어를 할 줄 아는 사람이 되는 겁니다. 그래서 미국 갈때는, 영어 배우러 영어권 나라에 가는데 첫째 피할 것이 뭐라 그럽니까? 한국 사람 있는 곳은 가지마라. 거기 가면 저절로 쉬운 것 쓰거든요. 그러면 영어 안 늘어난다는 겁니다. 그냥 영어 쓰는 사람한테만 가면 시간만 지나면 저절로 늘어난다는 겁니다. 한문이 어려워도 그걸 자꾸 쓰고 읽고 하다보면은 나중에 어느정도까지는 알게 됩니다. 믿음이 자라는 방법, 믿음 길러가는 방법의 중요한 첫째가 바로 이겁니다. 그러면 믿음이 뭡니까? 믿음은 첫째 성경 말씀은 아는 것. 두 번째는 인정하는 것 받아들이는 것, 그다음에는 실행하는 것. 믿음이 자라려면, 믿음을 길러가려면 성경 읽는데 시간을 들여야 됩니다. 성경 말씀 생각하는데 마음을 드려야 됩니다. 성경이 어려우면 백목사님 설교록을 읽는 시간이 많아져야 됩니다. 공부하는 학생이 1년 365일 공부는 전부 영어에 과학에 자기 전공에 거기 시간을 다 들이는데, 거기 들어가는 시간은 하루 24시간 중에서 예를 들면 잠 자는 시간 6시간 빼고, 18시간 중에서 밥 먹는 시간 3시간 빼고, 15시간 중에서 하루에 세상 공부하는 시간은 12시간, 그다음에 또 이것 저것 하는 시간은 또 한 2시간, 성경 읽는 시간은 한시간, 그 사람은 결코 믿음 자라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쓰시는 것에 따라서 다를 수 있는데 믿음이 자랄 리가 없습니다. 상식적으로 아니지 않습니까? 안되는 겁니다. 만약에 자기 입장이 그러해서 그리한다면 마음에 소원이 들어가야 되고 소원이 13시간 공부하는 그 이상에 소원이 성경 1시간 읽어도 그리 들어가야 되고 설교록 읽는 시간이 그리 들어가야 그만큼 강도가 소원이 들어가야 믿음이 생겨지지 그게 아니면 믿음 생겨지지 않습니다. 기본적인 믿음도 은혜지만은 건설믿음도 궁극적으로 하나님이 주신 은혜 아닌가요? 은혜입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것은 하나님 마음을 감동시켜야 되지 그분이 감동되지 않으면 안되는 겁니다. 신앙이란 것은 기본적으로 하나님과 우리와의 관계고,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바로 대우하는게 신앙입니다. 모든 일에 있어서 하나님과 자기 관계에 있어서 하나님이 해결하면 모든게 단번에 되는 것이고 그분이 해결하면 안되는 것이기 때문에 그래서 백목사님 같은 분들도 무슨 일이 닥치면 그 일은 그 일대로 처리하고 무조건 하나님 앞에 기도하고 매달려서 그분의 노를 푸는 그것부터 먼저합니다. 그분의 뜻 찾는 것부터 먼저합니다. 그거 하고 난다음 병행할거는 병행을 하고 하지, 그리고나서 그것 하기전까지는 다른 것 해봐야 안되는 줄을 안다 그말이지요. 믿음도 마찬가지입니다. 믿음이 생기는 것은 하나님이 보실 때 그 믿음, 믿음이 생겨지도록 노력을 해야 되고 시간을 들여야 되고 정성이 들어가야 그게 되는 것이지, 마음은 딴데 있는데 거기 딴데 있으니까 노력 그리 가고 시간 그리 가는데, 말만 믿음 가진다 그러면 아무리 해봐야 믿음이 생겨지겠습니까? 상식적으로 이치적으로 그렇지 않습니까? 그러면 믿음을 길러가는 첫째 방법은 방향을 틀어서 믿음이 자라는 거기에 내 시간과 노력 정성을 드려야 믿음이 자라가는 겁니다. 드리지 않으면 결코 믿음이 자라지 않습니다. 굉장히 중요한겁니다. 이게 하나 있고, 그래서 믿음 자라는 법은 성경 말씀, 혹은 설교록을, 그래서 제가 겪어본 바로 기본적인 믿음이 있다고 확신이 된 그 상황에서 설교록을 가지고 집중해서 읽어보고 연구해본 사람 치고 믿음 안 생기는 사람을 별로 본 적이 없습니다. 성경이 너무 어려운데. 백목사님 설교록을 가지고, 그걸 가지고 읽으면서 분석하고 생각하고 연구해보고 거기 집중해보는 사람 치고 믿음 안 생기는 사람이 별로 없습니다. 하면 되는 겁니다. 그리 될 수 밖에 없는 겁니다. 눈이 열리고 귀가 열리고 말씀 이치가 깨달아지게 되는 겁니다. 그리고 또 하나는 현재 자기 생활에서 믿음 생활을 계속 하는 겁니다. 주어진 그 상황에서 믿음으로 사는 그 생활을 계속 해나가는 겁니다. 믿음으로 사는 생활을 계속 하는 겁니다. 노아가 그래 믿어진 것은, 저절로 믿어진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온 세상이 다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의 아름다움을 보고 자기들 좋아하는 모든 자로 아내 삼는 그런 상황 속에서 노아는 하나님께 가치두고 하나님 말씀 거기 전부 삼아 믿는, 자기 주어진 그 생활 생활에서 어쨌든 하나님 말씀에 어긋나지 않도록 죄 안 지으려고 하나님이 원하시는 그 뜻이 무엇인지 찾아서 그 뜻에 맞추려고, 그리고 하나님 섭섭하지 않게 하기 위해서 모시고 살려고 그리 노력을 하는 그 생활을 꾸준하게 계속을 해 나가는 겁니다. 그래 하는데는 몸이 아플때도 있고, 돈이 손해 볼 때도 있고, 원망스러울 때도 있고, 또 피곤할때도 있고, 병들때도 있고, 온갖 우여곡절이 다 있는데, 그런 것 있음에도 불구하고 사람이 넘어질때도 불구하고 그래도 넘어지면 또 일어서고 기도하고 또 일어서고 그래가지고 믿음으로 사는 그 생활을 계속 해나가는 겁니다. 하다보면은 하나씩 둘씩 자기 속에 하나님께서 보여주시는 증거가 나타나게 되고, 그 증거를 자꾸 살펴보면은 작은 것들이 하나 둘 쌓여가지고 진합태산이 돼서 나중에는 믿을 수 없는 것이 그런 것이 믿어지게 되고, 믿어지니까 할 수 없는 그런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이 되게 된다 그말입니다. 이게 또 믿음이 자라가는 방편입니다. 겨자시 믿음의 방편은 바로 이 방편입니다.
그래서 오늘 말씀은 전체로 말하면 믿음을 길러가는 방법, 믿음을 만들어가는 방법인데, 전체 믿음에 대한 것을 상식으로, 또 실제로 생각을 하시면서, ‘내가 믿나이다. 나의 믿음 없는 것을 도와주소서’. 그 사람 갑자기 왔으니까 그리 될 수 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세월을 주셨는데, 그래서 하루 30분 기도, 앞으로 환난 두고 기도 참, 실감이 어렵지만 우리 앞에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르겠는데, 그때 지금부터 미리 기도하지 않으면 믿음 다 팔아버리니까 지금부터 앞으로 몰라도 아는대로, 만약에 앞으로 어떤 어려움이 닥치면, 경제 어려움이 올런지 건강 어려움이 올런지, 가정적인 어려움이 올런지, 앞날이 막히는 어려움이 올런지 어떤 어려움이 올지는 모르겠으나 만약에 어떤 어려움이 와도 믿음으로 해결하고 믿음 팔지 않게 해달라는 그런 기도를 간절하게 지금부터 자꾸 하다보면 하나님께서 열어 보여주시는 것이 있을 것이고, 작은 그 현실에서 증거를 자꾸 받다보면 점점 그 믿음이 커져서, 그래서 너희가 내 말에 거하면 참 내 제자가 되고 진리를 알지니 그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세상 사람들은 그걸, 기독교 대학 중에서 백석대학교라고 있을 겁니다. 그 대학은 아마 학교 교훈이 그거 겠지요.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그 대학 총장이라든지 교수들한테 가서 이게 무슨 뜻인지 압니까 물어보면 제가 볼때, 십중팔구 무슨 뜻인지 모를 겁니다.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너희가 내 말에 거하면 참 내 제자가 되고 진리를 알지니 그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이것이 이루어지는 그 방법이 진합태산이고 현실에 믿음 계속하는 그 생활에서 되는 겁니다. 아브라함도 노아도 요셉도 모세도 다 이런 믿음의 길을 거쳐서 그리 간 겁니다. 사무엘 같은 사람은 믿음의 전공자고 그런 사람이겠지요. 우리도 이 방법을 잘 생각을 하고 하나님 앞에 기도하면서 사람이 약한 믿음, 나사로가 죽어서 무덤에 있을때 예수님이 오셨습니다. 그때 나사로의, 나사로는 죽었으니까 나사로는 믿음이 없습니다. 그럴때 예수님께서 누구 믿음으로 살렸습니까? 그 누이들의 믿음 가지고 살린겁니다. 내가 믿으면 하나님 영광 보리라 하지 아니하였느냐. 믿을때 나사로가 살아났고 살아난 나사로에게 그다음에 한 것은 풀어서 다니게 하라. 그러면 다니는 건 나사로 제가 하는 겁니다. 어릴때는, 젖먹이 어릴때는 부모님의 기도와 노력이 필요합니다. 부모님 믿음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지식적으로 연령적으로 신앙의 연조적으로 어느 정도 장성하고 나면은 그때는 다른 사람의 믿음은 도움은 될지언정,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그 본인에게 원하시기 때문에 본인이 이 믿음의 길을 걸어가야 믿음이 생겨지고 자라지 본인이 믿음의 길을 걸어가지 않으면 그 믿음은 결코 자라지를 아니합니다. 안가는데 어떻게 가까워집니까? 가지 않는데. 안하는데 기능이 숙달이 되어집니까? 믿음 생활을 해야 믿음은 자라는 겁니다. 안하면 결코 자라지 않습니다. 좀 생각해 보십시다.
다같이 통성으로 기도 드리겠습니다.
믿음 자라는 방법을 결론적으로 말씀드리면서 앞에 몇가지를 말씀드렸습니다. 바탕 지식으로 삼고 결론은 우리 믿음을 길러가는 것, 믿음이 자라가야 되겠으니까 우리 믿음을 길러가는, 어쨌든 믿음에 전공을 하고 많은 시간과 노력을 성경 읽고 생각하고 그대로 사는데 드리고 현실에서 인도하시는 말씀의 인도 따라서 믿음으로 사는 생활을 계속하는 우리가 되도록 하십시다.
20140316 주후
히브리서 11:1-3
첫째, 기독교는 믿음의 도라는 것을 생각해봤습니다. 기독교는 믿음의 도다. 세상에 무슨 단체가 있으면 그 단체의 목적, 그 단체의 강령 그런 것들이 있고 그러면 그것이 중심이 되고 그것을 위해서 거기 맞는 그런 모든 활동을 하게 되는 면이 있습니다. 그 단체도 그렇고 또, 주로 단체가 그러하게 되겠습니다. 그러면 기독교라는 종교는, 불교는 그게 어디로 가는지 잘을 모르겠지만은 자기를 완전히 없애버리는 무아(無我)지경으로 들어가는 그게 불교가 아닌가 그리 상식으로 좀 알고 있고, 또 유교는 사람의 기본적인 그런 사람의 마땅한 도리를 찾아 행하는 그게 그것이 아닌가 그리 생각하고. 그래서 불교는 종교인데 유교는 종교가 아니라 그리 말합니다. 우리 기독교는 종교인데, 기독교는 그 내용이 믿음의 도다 그말은, 믿음으로 모든게 시작이 되고 출발이 되어지고 믿음으로 출발이 되고, 또 기독교 안에 있는 모든 효력을 보는 것도 전부 믿음으로만 볼 수 있다는 겁니다.
하나님의 능력도 하나님 살아계신 그 사실을 아는 것도, 성경이 말씀하신 모든 신앙의 성공도 승리도 또 목표달성도, 모든 효력도 전부 믿음으로만 그것을 이룰 수 있고 달성할 수 있고 알 수 가 있다 하는 겁니다. 이걸 가리켜서 기독교는 믿음의 도다. 그래서 출발도 믿음으로 하고 진행 과정도 믿음으로 하고 결과가 맺어지는 것도 믿음으로만 맺어지는 것이 기독교다. 그러면 기독교는 믿음이 전부다.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것이 없느니라. 귀신 들린 아들을 데린 아버지가 그 아들의 병을 고쳐보겠다고 주님이 잠깐 안 계신 사이에 그 제자들에게 들어갔습니다. 그런데 제자들이 아무리 해도 귀신을 쫓아내지 못하고 고생만 하고 있는데, 주님이 오셨습니다. 왜 이렇게 되어졌느냐? 언제부터 이렇게 되어졌느냐? 물으니까 어려서부터 귀신이 들었는데 귀신이 저를 붙들고 불에도 들어가고 물에도 들어가고 죽을 지경입니다. 어떻게 좀 해주옵소서. 뭘 좀 할 수 있거든 좀 도와주옵소서. 그러니까 순복음 교회, 그 참 많이 써먹은 말입니다. 예수님께서,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할 수 있거든은 확정이 아니고 만약 그렇다면 그러니까 확실한 믿음이 아닙니다. 그래서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것이 없느니라고 말씀하시니까 그 아이의 아버지가 소리질러 가로되, 뭐라 그랬습니까? 내가 믿나이다. 그리고 나의 믿음 없는 것을 도와주소서. 그랬습니다. 우리는 모두 믿음이 있으십니까? 그 말씀이 참 절절히 와닿았습니다. 이번에 이 말씀 준비하면서 ‘내가 믿나이다 나의 믿음 없는 것을 도와주소서’. 우리는 믿는다하나 믿음이 실제 사실, 많이 빈약한 그런 우리들입니다. 그래서 믿음을 지금 공부를 하고 있습니다.
믿음을 가지면, 그 믿음의 역사가 본문에서 크게 두가지로 나타나는데 하나는 소망의 실상입니다. 말하자면은 믿음은 실상을 이루는 것이다. 성경에 기록하신 모든 하나님의 약속을 실상으로 받아가질 수 있는, 우리 믿는 사람들이 소망하는 모든 소망을 실상으로 이루어가지는 것이 믿음이다. 그 소망이 무엇인가. 몇 가지만 말해보면 영생하는 소망이고, 영생이라는 말은 생명의 영원한 활동입니다. 그냥 사람이 오래 산다 그러면 우리 인식은, 일반 인식으로 말하면 사람이 죽었다가 부활해서 살아본 사람이 없고, 사후세계를 경험해본 사람이 없기 때문에 오래 산다 그러면 이 고깃덩어리 가지고 오래산다는 것만 알지 영생이라는 개념이 세상에는 없고 없을 수 밖에 없습니다. 영생이란 것은 시공을 초월한 신령한 몸으로 그래서 다시는 늙지도 않고 병들지도 않고 쇠해지지도 않고 죽지도 않고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그 몸으로 영원히 활동해 사는게 영생인데, 사는 것도 문제가 많습니다. 어떤 사람은 그런 말 좀 들어보셨는지요? 저는 직접 제가 듣지는 않아도, 어떤 사람들 두고 어른들이 하는말 한번씩 옛날에 좀 들어봤습니다. 제발 좀 뒤졌으면 좋겠다. 얼마나 속을 속였으면 그런 말이 나오겠습니까. 살아있는데 차라리 다른 사람들이 죽기를 바라는 그런 사람이 영생을 한다면 얼마나 많은 사람에게 피해를 끼치게 되겠습니까? 또 그렇게 피해를 안 끼쳐도 남에게 유익을 주지 못한다면 그것도 살아봐야 별 또 그럴 겁니다. 그런데 성경이 말씀하신 영생은 자체도 그러하고 그 사람이 없으면 안되는, 하나님도 각 차이는 있지만은 하나님에게도 그 사람이 필요한 정도가 어느정도로 필요하고, 마치 대통령이 나라를 다스릴때 총리 한 사람만 가지고 나라를 못 다스리고 장관이 있으면 어느 한 부서의 장관만 가지고는 전체를 못 다스리니까 총리도 세우고 이 부서 장관도 세우고 저 부서 장관도 세우고 각 부서에 필요한 장관을 세우고 그 밑에 또 국장을 세워놓고 또 사무관 세워놓고 다 이래가지고 나라를 다스려 가는 것처럼 하늘나라도 그리 될 수 밖에 없는 것이고, 그래서 하나님이 계시는데 그 하나님의 천국 통치에 각자 이 세상에서 준비한만큼 하나님의 궁극으로 주신 분량만큼의 그 실력가지고 천국에서 쓰여지게 되는데, 그 쓰여지는 그 양이 요긴하게 쓰여지고 활용이 많이 되는 만큼 그 사람의 가치는 올라가고 대우는 올라가게 되는 것이고, 그러면 그 사람은 영생하면 할수록 많은 사람에게 참 필요한 그런 사람. 그래서 성경에 보면은 어떤 인물이, 왕이 이스라엘 왕 중에서, 그 왕 이름이 뭐지요? 얼마나 못되게 하고 모질게 했으면 죽을때 창자가 배 밖으로 튀어나와서 그래 죽었는데 아끼는 자 없이 세상을 떠났다고 했습니다. 아무도 그 사람 죽는데 아까워하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참 비참하지요. 인생 살아도 그리 산다면 얼마나 불쌍하겠습니까? 아끼는 자 없이 세상을 떠났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나이가 많아서, 백목사님이 세상 떠나실 때, 순교하실 때 연세가 80인데, 그때 80이면 참 살만큼 사신 겁니다. 그런데 많은 교인들 대부분 교인들은 그분이 그렇게 갑작스럽게 돌아가실 줄 몰랐지요. 가시고 나니까 온 예배당이 그냥 몇 날 며칠동안 눈물 바다가 되었습니다. 저도 참 어지간히 울었는데. 장례지낼때 눈물바다가 되고, 그런 장례가 드물만큼 그런 장례식. 그래서 그런 분도 있고 아끼는 자 없이 세상을 떠난 사람도 있고. 천국에서 영생할 때 영생하는 그 사람이 제발 오래 살아야 되겠다, 영생하지만은 그 사람이 활동하는만큼 많은 존재들에게 유익을 끼치고 도움을 주고 은혜를 끼치니까 그 영생이 얼마나 가치가 있으며 빛이 나겠습니까? 이런 영생하는 것이 우리 소망이다 그말이지요. 또 하나님같은 흠과 점이 없는 완전자, 껍데기 고깃덩어리 얼굴도 모두 꾸며서, 흠이 있으면 너무 사각이네 뼈를 깎아서 동그랗게 계란형을 만들고, 눈이 쭉 째졌네, 눈을 파가지고 동그랗게 만들고, 코가 납작하네 코 뼈를 갖다붙여가지고 세우고. 온갖 그냥 성형수술해서 보기에, 껍데기 보기에 덜 흠이 없도록 그렇게 참 가치가 없는 건데. 그래 만드는데. 그보다는 그 사람의 지식이라든지 인식, 사고방식. 사람이 인식이 하나 잘못되면 그의 생애가 잘못되고 모든 언행과 대외접촉이 다 잘못되는데 참 큰 문제입니다. 그 사람이 인격장애라는 말이 있지요. 인격이 삐뚤어지고 인격이 잘못되면 그의 생애 전부다 잘못되고 그 사람이 잘못되면 많은 사람에게 피해를 끼치는 그런 사람이 됩니다. 흠과 점이 없는 그런 온전한 사람, 이런 사람이 되는. 그래서 외모는 이거는 다 썩을 것이니까 이거는 가치가 없고, 이 사람이 부활할 그때는 이거 완전히 초월한 그런 몸이 되니까 그 사람의 인격이, 그 사람의 모든 사상이 다 하나님 닮은 흠과 점이 없는. 그리고 거기서 나오는 모든 사리판단 처리가 모든 만물이 다 찬성하고 하나님의 지공 지성법에 흠이 없는 이런 우리들을 만드시는 이 소망이 실제 이루어지는게 믿음이다. 만물 통치자가 되는 것이 시은의, 하나님의 시은 대리자 이것이 되는 것이 천국의 영원한 소망인데 이 소망이 실제로 우리에게 이루어지는 것이 믿음이다. 또 하나는 믿음은 간단하게 말하면 증거입니다. 하나는 소망의 실상이고 하나는 증거입니다. 안 보이는 것, 모르는 것, 볼 수 없는 것을 볼 수 있게 만드는 그것이 바로 믿음이다. 그러니까 눈에 안 보였고 아무도 몰랐는데 믿음을 가지니까 몰랐던 것을 알게되고 감추어져있고 드러나지 않아서 사람들이 몰랐는데 믿음을 가지니까 그 사람을 통해서 세상에 드러나게 되는, 대표적으로 말하면 부활의 지식이란 것이 아브라함이 이삭을 번제로 드리기 전까지는 부활이라는 개념이 사람들속에 없었는데, 아브람이 믿음을 가지고 이삭을 번제로 드릴때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이 서로 상치가 되고 배치가 되니까 믿음으로 아브라함이 깨달은 것이 바로 그거지요. 이삭을 통해서 자손이 모래알처럼 많게 하겠다고 약속하신 것도 하나님의 약속, 계약 말씀. 이삭을 번제로 불에 태워 죽이라는 것도 하나님의 말씀. 그러면 인간의 이치, 인간의 계산으로는 둘중의 하나인데, 이삭이 오래 살아가지고 이삭을 통해서 아이가 나야되고, 이삭이 죽으면 그만이고 하나님의 계약이 둘이 상치가 되니까 둘중에 하나는 틀린건데, 모순처럼, 하나는 틀린건데 아브라함은 믿음으로 깨닫기를 하나님의 계약은 틀리는 것이 없다. 그렇다면 이삭을 통해서 자손이 난다는 것도 맞을 것이고, 번제로 드리란 말씀도 순종해야 되니까 그러면 번제로 드리면 재가 된 이삭의 몸에서 아이가 나든지 그게 안되면 죽은 이삭이 다시 살아나든지. 아브람이 깨달은 건 뭐였습니까, 성경으로 볼때? 아브람이 깨달은 것은 죽은 가운데서 하나님이 살려주시겠구나, 부활의 지식을 인류 최초로 깨달은 것이 아브람이 이삭을 바칠때 깨달은 깨달음. 그게 이 세상에 없는 것을 믿음을 가지고 나타나게 하고 볼 수 있는 것이 믿음이다, 이게 증거다 그 말입니다. 그래서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 선진들이 이로써 증거를 얻었느니라’. 노아도 아브라함도 이삭도 야곱도 요셉도 모세도 모든 사람이 전부 이렇게 믿음의 길을 걸어가서 보이지 않은 것들을 다 봤고 소망하는 것을 다 받아본 이게 믿음의 선진들의 것입니다. 그래서 본문에 보니까 모든 세계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진 줄을 어떻게 아느냐? 어떻게 압니까? 하늘과 땅과 바다와 그 가운데 모든 존재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졌다는 사실을 우리는 압니다. 아십니까? 모르시는 분도 있을 수 있습니다. 아는 분도 있고. 안다면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모든 세계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졌다는 사실을 우리가 압니다. 어떻게 알지요? 어떻게 압니까? 아시는 분 크게 말씀해 보시지요. 모든 세계가, 하늘과 땅과 태양과 달과 별과 춘하추동 사시와 하루 24시간과 모든 사람과 모든 존재가 성경에 보니까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졌습니다. 그 사실을 우리는 아는데, 세상 사람들은 모릅니다. 왜 성경에 기록된 것을 똑같이 한글로 됐는데 우리보다 유식한 사람도 많은데, 우리는 아는데 나는 무식해도 아는데 유식한 그들은 왜 성경에 있는데 왜 모릅니까? 아는 것은 뭘로 알고 모르는 것은 왜 모릅니까? 아는 것은 믿음으로 알고 모르는 것은 안 믿으니까 모르는 겁니다. 보이는 것은 나타난 것으로 말미암아 된 것이 아니다. 눈에 보이는 모든 것들은 보이는 존재에게서 나온 것이 아니다 그말입니다. 사람 보기에는 보이는 것이 보이는 것을 만들었고 있는 것이 있는 것을 만든 것 같으나 하나님은 사람들이 모르는 보이지 않는 분이고, 그래서 보이는 모든 것들은 보이지 않는데서 나왔고 보이는 것들은 보이지 않은 것을 위해서 있고 보이는 것은 잠깐이고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다. 이게 성경입니다. 이게 전부 믿음으로 되어지는 것이다, 믿음은 참 중요합니다. 그래서 믿음이란 것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를 아니합니다. 좀 똑똑히 한번 생각해보십시다.
그러면 믿음이란 무엇이냐? 믿음은 그 정의를 내린다면, 요소적으로. 첫째, 믿음은 아는 것이다. 안다는 말은 하나님의 성경 말씀을 아는 겁니다. 이건 기본입니다. 모든 것이 다 그러합니다. 세상 모든 일은 본인이 알든 모르든, 의식하든 못하든 모든 일에는 아는 지식이 첫째입니다. 알아야 면장도 하고, 면장만 하는 것이 아니고 밥을 하는 것도 알아야 하고 설거지 하는 것도 알아야 되지 모르면 못하는 겁니다. 세상 모든 일이. 믿음은 더 합니다. 첫째는 아는 겁니다. 안다 말은, 아는 걸 한문 글자 두 글자로 말하면 뭐라 그러지요? ‘알 지(知’)자 ‘알 식(識)’자, 지식이라 그러지요. 안다. 안다는 말은 지식이라는 뜻입니다. 아는 것. 뭘 아는 겁니까? 성경 말씀을 아는 겁니다. 성경 말씀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이 우리가 알 수 있도록 글자로 기록해서 우리에게 알려주신 말씀이 성경입니다. 하나님과 관련된 모든 것을 우리가 볼 수 있고 알 수 있도록 기록해주신, 말씀으로 기록해주신게 성경이니까 이 성경 내용을 첫째 아는 겁니다. 그러기 때문에 믿음이 생기려면 가장 힘을 써야 될 것이 첫째 성경을 많이 읽어야 되는 겁니다. 대개 보면은 모태신앙으로 자란 우리 젊은 사람들은 성경을 상식으로 많이 압니다. 기본 상식으로. 왜 많이 아느냐? 어려서부터 귀가 따갑도록 들었거든요. 그러니까 설교시간마다 성경 들으니까 많이 안 읽어도 어지간한 상식은 그 머릿속에 다 들어있는데 참 복은 복인데, 그것 때문에 게으르면 이제 큰 문제가 되는 거지요. 첫째 성경을 알아야 됩니다. 아는 것이고. 두번째는 아는 그대로 인정하는 것인데 인정이라 말은 그대로 받아드리는 것인데, 그런데 사람의 지식이란 것은, 인정이란 것은 마음의 작용이고 그 마음의 작용은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이성비판이란 것은 이치를 따져가지고 뭔가를 결정하는 그런 것인데 사람이란 것이 양심도 있고 그런 것이 있으니까 뭔가를 볼때, 들을때 그것을 보고 내가 그것을 볼때 자기 생각 아니다 싶은 그런 것도 있습니다. ‘이건 아닌데’. 그러면 눈에 보이는, 들리는 그 지식이 내게 들어올때 거부가 되는 겁니다. 그러면 처음 듣는 혹은 밖에서 내가 보고 읽고 듣는 그 지식하고 이미 내 속에 들어와있는 지식 상식하고 배치가 되면 그 둘 중에서 힘이 있는 지식이 내 속에 이성을 점령을 하게 되는 겁니다. 강한 것이. 그러면 내 속에 있는 지식이 논리적으로, 실상적으로 약하면 밖에서 처음 들어온 지식이 강하고 내 속에 있는 지식이 약하면 내 속에 있는 기존지식은 깨지게 되고 밖에 들어온 그 지식이 점령을 합니다. 그래서 공산주의자들이 처음에 사상을 퍼뜨릴때 뭘 가장 많이 했는가? 세뇌교육. 감옥이든지 어디든지 계속해서 공산주의 지식 사상을 귀가 따갑도록 틀어놨다고 그러지요. 지식을 막 집어 넣는 겁니다. 집어넣고나면 잠을 자도, 길을 가도 그것만 머릿속에 뱅뱅 돕니다. 그러다보니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그게 자기 지식이 되어버리고 그리 될 수가 있는 건데, 믿음이란 것은 첫째는 아는 것이고 두 번째는 읽고 들어 안 그 성경 말씀을 자기가 받아들이는게 믿음인데 받아들일때 이 말씀은 뭐가 문제냐 하면, 이 세상 사람들이 상식적으로 알고 있고 인정하는 그게 전부 말하자면 인간 이치고 인간 상식이고, 인간 통계고 인간 과학이고, 인간 경험이고 체험이고 이런거 아니겠습니까? 그런 것들이 세상에 가득 찼고 그런 것들이 모든 사람 속에 들어있고, 우리들 속에도 그런 것이 들어있는데 이 성경 말씀은 그것하고 맞는 것도 있지만은, 내가 알고 있고 모든 사람들이 알고 있는 인간의 생각, 인간의 이치, 인간의 상식, 인간의 통계에 의한 그런 모든 것들, 사람 자신의 살아오면서 보고 듣고 접하고 경험하고 체험하고 느낀 그로 인해서 자기 속에 생성된 그런 자기 지식 이것하고 성경 말씀하고 맞지 않는 배치되는 것들이 많이 있다 그말입니다. 있는데도 불구하고 기본적인 믿음을 받으면 도무지 사람이 믿을 수 없는 그런 것이 인간이 모든 상식과 지식 이런걸 다 깨버리고 그게 초월해서 그 속에 박혀 버리는것이 하나님의 은혜인데, 이거는 말하자면은 이것은 하나님의 역사가 아니면 안되는 것이기 때문에 강제로 넣어주는 겁니다. 이게 다음에 나올 기본적인 믿음인데, 어쨌든 믿음의 정의는 첫째 아는 것, 두 번째는 인정하는 것인데 인정하는 것은 뭐하는 거라고요? 내가 받아들이는 겁니다. 받아들이는 것. 받아들일때, 내 속에 내가 지금 받아드리는 그 말씀하고 배치되는, 마찰되는 그런 내 속에 있는 기존 지식이, 이미 들어와있는 지식이, 기존지식이라 말은 기혼자는 어떤 사람을 말합니까? 미혼자는 아직까지 혼인하지 아니한 사람, 기혼자는 이미 혼인한 사람, 기존이라 말은 이미 내 속에 있는 그 뜻입니다. 지식이라 말은 이미 이 말씀을 읽고 듣기전에 내 속에 들어와있는 지식을 기존지식이라. 선입적인 관념이라 그 말은, 선입이라 그말은, ‘먼저 선’자 ‘들 입’자, 내 속에 먼저 들어와있는 생각, 사고방식, 사상 이런걸 선입적인 관념이라 그리 말하는데 어렵지 않은데 쓰다보니까 그런 겁니다. 이런 것이 내 속에 있으니까, 이미 내 속에 자리 잡고 있으니까. 기득권이라는 말이 있지요. 회사에서 주주총회에서 원래 있던 회장을 탈락시켜버리고 새회장을 뽑았습니다. 그 회장이 출근하는데 서로 새로 취임하고 떠나고 이러는데 당연히 그리하는게 맞지만은 새로 들어가는 사람은 나가는 사람 볼때 참 마음이 미안하고 그렇지 않겠습니까? 떨어져 나가는 입장이니까. 나가는 것. 그런 것이 있는 건데, 내 속에 있는 그런 지식이 들어있으면 새로운 지식을 받아들이려 그러면 이런 마찰같은 이런것이 필연적으로 있게 되어있습니다 이게. 그런데 그것이 있어도 하나님의 말씀을 내가 받아들이지 않으면 믿음은 생기지 않습니다. 믿음은 자라가지를 아니합니다. 그러니까 내 생각과 인간의 생각과, 내 상식과 인간의 모든 상식과, 그 상식 생각이 역사 오랜 세월을 겪어서 수많은 걸 통계를 내서 사람이 경험하고 체험해서 어떻게 해서 생겨졌든 인간의 범위안에서 생겨진 그래서 그것을 듣고 봄으로 자기 속에 자리잡고 있는 그 지식이 있는데 그 지식이 있는 그 가운데 하나님의 지식이 눈으로 읽으니까 귀로 들으니까 밀고 들어오는데 마찰이 될 때, 내 속에 들어있는 그 지식을 내가 부인을 하지 않으면 하나님의 지식은 내 속에 들어오지 못하고 자리 잡지를 못하는 겁니다. 그래서 믿음의 두 번째 ‘인정’이라 말은 이게 실제로 되야만이 믿음이 되지, 이게 되지 않으면 믿음은 되지를 않는다는 겁니다. 그래서 첫째는 아는 것이고 두 번째는 인정하는 것이고. 이게 되고 나면 그다음 세 번째는 자기 속에 알고 인정되는 그대로 모든 존재를 대할 때 인식도 그래가지고 ‘아 물질이란 것은 이런 것이구나’. 사람의 존재 가치를 두고 볼때, 하나님이 첫째 그다음 두 번째 진리 그다음 세 번째는 사람 사람도 영이 가장 가치고 영 다음에는 마음 몸 이게 가치고 사람 다음에는 일이겠고 그다음이 물질이겠고 이리 가치를 정하는 것이구나 이렇게 인식을 가지고 그렇게 대우를 하는 겁니다. 그래서 돈보다는 사람이다, 사람보다는 진리다, 진리 위에는 하나님이 계신다 이렇게 알고 그 존재를 상대하고 또 그 존재 가치에 맞게 그 존재를 대우를 하고 대접을 하고, 그래서 죄라는 것은 타락 탈선이라는 것은 그 존재, 하나님이 정해놓으신 존재 가치를 벗어나서 그것을 대우하면 그게 타락이 되는 겁니다. 탈선이 되는 것이고. 그 존재 스스로가 그 자리를 벗어나면 그게 죄고 타락이고 또 다른 사람이 그 존재를 거기서 달리 대하면 그것도 바로 탈선이, 자기로써 그 존재 관계에서 탈선이 되는 겁니다. 그러니까 성경이 말씀하신 그대로 그 모든 존재를 알아서 그리 접촉을 하고 상대를 하는 겁니다. 죄가 있는 사람을 상대할때는 ‘내가 약하면 죄에 전염되기 쉬우니까, 저 사람 보니까 하나님 안 믿는 사람이고 세상 사람인데 내가 접촉을 하면 내가 강하면 끌어오겠지만은 나도 믿음이 부족한데 접하다가는 내가 끌려가겠구나, 조심을 해야 되겠다.’ 믿음 없는 사람은 조심을 하고, 나보다 모든 면에 믿음 있고 신앙 열심있는 그런 사람을 볼때는 ‘아 저분은 신앙의 사람이고 내가 만나면 유익을 얻으니까 자주 좀 만나봐야 되겠다’. 접촉을 하고 존경도 하고. 사람이든지 또 어떤 일이든지 물질이든지 유형이든지 무형이든지 어쨌든 이 세상에 모든 존재 그런 것들을 내가 인식도 그리하고 상대도 그리하고 또 모든 일에 결과를 두고도 어떤 일이 생겼으면 마음에 이거는 누구 때문이다, 잘되면 제탓, 못되면 조상탓. 아버지가 못나서 우리 어머니가 머리가 나빠서. 우리 집안이 원래 이래서, 내가 이렇고 저렇고 그런 못되먹은 그런 생각이나 그런 걸 할 것이 아니고 모든 일에 원인은 전부다, 내게 일어난 모든 일의 원인은 전부 나로 말미암아 됐다는 것이 성경이니까 그러니까 어떤 일이 원망할 만한 일이 생겨도 원망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주권이다, 예정 속에 든 것이다. 나를 위해서 나 때문에 이렇게 된 것이다. 나와 관련된 일이니까 뭔가 하나님께서 내게 원하시는 것이 있는 것이다 이렇게 인식을 하고 그렇게 상대하는 것이 그게 말하자면은 믿음이고, 그 믿음은 세가지 중에 첫째입니까 둘째입니까 셋째입니까? 그리 인식가지고 그렇게 상대하는 것은, 어떤 일이 생겼을때, 누구의 잘못으로 인해서 문제가 생겨서 내가 큰 곤경에 빠졌습니다, 이거는 그 사람 때문이다, 백퍼센트 그 사람 때문입니다. 그럴때 그 사람 때문이라 그리 하지 않고 하나님께서 이것은 모든 건 예정 속에 들지 않은 것이 없고 하나님의 주권 아닌 것이 없는데 그 사람이 실수하게 한 것도 하나님의 뜻, 예정과 주권이고. 그것 때문에 일이 나한테 미친 것도 예정과 주권이고. 그러니 이거는 하나님께서 내게 원하시는 뜻이 있다. 이렇게 깨달아서 그 일을 믿음으로 하나님 앞에 자기가 해결하는 그런 믿음을 가졌습니다. 이거는 첫째 둘째 셋째중에 어디 속한 겁니까? 그렇게 사건 해결을 상대한다 그말이지요. 인식을 그렇게 가지고. 원망하지 않고 그래 합니다. 그러면 그것이 아는 겁니까 인정하는 겁니까 행하는 겁니까? 그게 바로 행하는 겁니다. 그렇게 실행을 하는 겁니다. 그렇게 그 일에 대해서 상대하는 것이고. 모든 흥망성쇠라는 것은 결과고 존비귀천도 결과고 생사화복이 결과인데, 모든 일의 결과는 전부 하나님이 하시는 것인 것을 인식을 하고 거기 맞도록 사는 것이 이게 믿음이다. 믿음의 정의는 이렇게 세 가지입니다. 아는 것, 인정하는 것, 실행하는 것.
그러면 네 번째로, 믿음의 종류는 어떤 것이 있느냐? 이거는 알기 쉽게 구별하는 것인데, 첫째는 기본적인 믿음이 있다. 이 기본적인 믿음은 하나님이 은혜로 주신 믿음이기 때문에 그냥 믿어지는 믿음입니다. 우리가 은혜라는 말을 쓸때는, 주로 은혜라는 말은 공짜라 그말인데 어떤 걸 받는게 은혜입니까? 하나님이나 우리가 부모님께 받는 것, 은혜라 그럴때는 은혜라 그러니까 공짜라 그러니까 자칫하면 값이 없으니까 헐한 것이고 싸구려 이렇게 생각하기 쉬운데 우리가 성경에 받은 은혜는 다 어떤 은혜입니까? 어떤 것이 은혜로 받는 겁니까? 사람의 힘으로 할 수 없는 것들만 은혜로 받습니다. 인간의 노력으로, 인간의 의지로, 온 세상이 다 달려들어도 사람은 할 수 없는 것이, 그거는 하나님께서 전부 은혜로 다 주셨습니다. 택함이라든지 중생이라든지 기본구원이라든지 이런 건 은혜로 주신 것이고 마찬가지고 기본적인 믿음은 사람이 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이 은혜로 주셨기 때문에 이거는 그래서 성경에기록된 모든 사실, 모든 말씀, 이 사실은 온 세상이 달려들어도 참, 지구가 몇 번 뒤집어져도 우주가 몇 번 뒤집어져도 믿을 수 없는 내용만 있는게 성경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사람으로서는 절대 안 믿어집니다. 못 믿는 겁니다 이거는. 믿어질 수가 없는 것인데도 믿어지는 것은 그게 바로 하나님의 은혜다 그말이지요. 그냥 되는 게 아닌 겁니다. 하나님께서 믿어지도록 하니까 믿어지는 것이지 하나님의 은혜 아니면 결코 믿을 수 없는 것이 성경에 기록된 모든 말씀 아닙니까? 하나님이 살아계신 그 사실을 믿을 수가 있는 겁니까? 엿새동안에 우주가 다 말씀으로 지었다는 그 사실을 6천년 역사 천하모든 인간 하나님 은혜없는 인간들 다 모아놓고 단 한순간이라도 한명이라도 믿어지는 사람이 있는가를 대보면 안되는 겁니다 결코. 믿을 수 없는 겁니다. 천국과 지옥이 있다는 사실도 믿을 수가 없는 것이고. 그런데 우리는 너무도 자연스럽게 믿어지지 않습니까, 그게? 그것이 하나님의 은혜고 그게 바로 기본적으로 주신 믿음입니다. 노력으로 인해서, 소원해서 되어지는 것이 아니고 그냥 어느날 갑자기 그 사실이 자기도 모르게 거부되지 아니하고 자연스럽게 ‘아 그렇구나, 그리 되었구나’. 받아드려지는 겁니다. 이게 기본적인 믿음입니다. 말하자면은 저절로 인정이 되는 믿음,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이 믿음은 기본구원에 속한 믿음이고 이 믿음은 건설믿음의 바로 종자가 되고 터가 되는 그 믿음이 바로 이 믿음입니다.
그러면 건설믿음이란 어떤 것인가? 건설믿음이란 것은 첫째는 기본적인 그 믿음, 하나님이 은혜로 주신 그 믿음 위에 그 믿음을 종자로 터로 삼아야 됩니다. 하나님은 없는 가운데서 만드신 분이 하나님입니다. 인간은 아무리 능력이 탁월해도 없는 가운데서 만들지는 못 합니다. 이 우주에 오늘까지 6천년 역사에, 홍수로 다 전멸됐으니까 4천년 역사에 인간의 과학이 최첨단으로 발달된 오늘인데 어떤 계통으로 어떤 과학의 면을 두고 발달된 걸 살펴봐도 그 모든 인간과학의 발달은 하나님이 만들어낸 그것을 가지고 이렇게 저렇게 변형하고 가공하고 더하고 더하고 이래 한 것이지, 없는데서 뭔가 만들어낸 것은 없습니다. 인간은 없는 것을 만들어낼 능력이 없고 하나님이 그 능력 주지를 않았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믿음도 마찬가지입니다. 건설믿음은 반드시 뭐가 있어야 됩니까? 건설믿음은 반드시 기본적인 믿음이 있어야 됩니다. 하나님이 은혜 주신 그 믿음이 있어야 그게 종자가 되고 터가 되어야 그 위에 건설하고 길러갈 수 있지 이것이 없으면 건설믿음은 없는 겁니다. 그래서 기본적인 믿음을 종자로 삼아서 그 다음 길러가야 되고 자라가야 되는 믿음이고 건설구원에 속한 믿음이다 그렇게 둘로 구분할 필요가 있어서 구분해봤고, 그다음 크게 다섯 번째로, 그런데 믿음은 가만히 보니까 성경에도 그렇고 현실에도 그렇고 우리 주변에 보니까 믿음 가진 사람들은 다 꼭같지 아니하고 많은 차이가 있더라. 아브람의 믿음과 롯의 믿음이 달랐고 야곱의 믿음과 에서 믿음이 달랐고 노아의 믿음과 그 당시 하나님의 사람들의 믿음이 다 각각 달랐더라. 믿음이 다 다르지요. 그런데 속에 들어가보면 기본적인 믿음은 하나님 은혜로 주신 것이기 때문에 차이가 없이 꼭 같습니다. 이거는 사도바울의 믿음과 우리의 믿음이 같고 백목사님 믿음과 우리 믿음이 꼭 같아서 요 믿음은 하나님께서 은혜로 그냥 주셨기 때문에, 그러기 때문에 한 달란트 받았던 자가 핑계댔지만은 핑계되지 못합니다. 다섯 달란트 받은 자나 한 달란트 받은 자나 하나님께 받은 것은 같고, 기본적으로 받은 것은 같고. 그러니까 사도바울 같은 사람이나 우리같은 사람이나 기본적인 믿음은 꼭 같이 받았습니다. 그 말은 다시 말하면 온 세상이, 온 천하가 모든 인류가 믿을 수 없는 사실이 믿어지게 한 것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믿어지도록 해주셨다 그말입니다. 성경에 기록된 모든 사실이 믿어지게 하신 겁니다. 그러면 차이는 어디서 차이냐? 그래서 건설의 차이는 무슨 차이라고요? 결과의 차이는 과정의 차이고, 과정의 차이는 건설의 차이고, 건설의 차이는 다른 말로 말하면 노력의 차이다. 인간 노력의 차이입니다. 사람이, 제가 지난번에 앉는 자리를 두고 말씀을 드렸었지요. 자리뿐만이 그런게 아닙니다, 모든게 다 그렇습니다. 예배시간을 맞춰보면 저희들은 일주일에 한번씩 토요일마다 가정예배를 드리는데, 시간을 정해봤습니다. 일곱시 딱 정하니까 자꾸 지각을 해서 일곱시 반에 정하니까 또 지각합니다. 삼십분 뒤 여덞시 한번 해보자, 또 지각을 합니다. 그런데 말 들어보면 전부 이렇고 저렇고 이유가 있고 사정이 있고 다 있지, 사정 없는 사람 없습니다. 뭐든 다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니까, 그래서 패자는 뭐가 없다고요? 말이 없다 그러지요, 패자는. 사람이 정정당당한 사람은 말이 없는 겁니다. 핑계를 대자면 다 있는 겁니다. 그런데 결과를 두고 그러면 실패한 사람한테 물어보기를, 왜 실패했는가? 이렇고 저렇고 이렇고 저렇고, 시대가 어떻게 해서, 몸이 건강이 안 따라가서, 환경이 어떻게 해서, 핑계 댈걸 열가지 백가지 다 갖다댑니다. ‘아 그렇겠네. 그러면 성공한 사람한테 물어보지’. 물어봅니다. ‘자네는 이런 일 없었는가?’ ‘나도 그런게 있지요. 없는 사람 있습니까?’ ‘몸은 안 아팠는가?’ ‘사람이 평생 살다 안 아픈 사람 있습니까? 아프지요’. ‘시대는 괜찮았는가?’ ‘같은 시대 살았지 않습니까?’ 실패한 사람이 당한 그 핑계댄것이 성공한 사람에게도 하나도 빠짐없이 다 있습니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패전한 사람은 그런 핑계를 대고 다 넘어져버렸고, 거기 져버렸고. 성공한 사람은 그걸 전부다 이겨서 극복을 한 것이고 그 차이입니다. 그 차이가 전부 노력의 차이고 전투의 차이고. 그래서 승리자는 합당하게 승리할만큼 그래서 세상에서 공부 1등하면 합당한 대우를 받아야 마땅하고, 올림픽에 나가서 금메달을 따면 그만큼 대접을 받아야 마땅하고, 또 열심히 노력해서 판사 검사 의사가 되면 그만큼 대접받고 돈을 벌어야 마땅한 겁니다. 그게 공평입니다. 다른 사람 놀때 안 놀았고 잘 때 안 잤고 아플때 견뎠고 힘들때 노력했고 다 그래하는 겁니다. 노력의 차이. 믿음의 차이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브라함과 롯의 길은 똑같았습니다, 두 사람의 길이. 그런데 왜 아브라함은 아브라함의 길을 가고 롯은 왜 롯의 길을 가는 겁니까? 믿음의 차이라는 거지요. 그런데 아브라함은 아브라함의 길을 갈 수 밖에 없었고, 롯은 롯의 길을 갈 수 밖에 없었습니다. 하나님이 120년 방주 만들 기회를 주셨을때, 기간 주셨을때, 노아에게 알리셨고, 노아에게 알리신 그 사실을 노아는 모든 백성들에게 다 알렸습니다. 전도 했습니다. 오늘도 마찬가지입니다. 성경에 그렇게 되어있고 하나님의 종들이 진실한 종들은 이 세상은 끝이 납니다. 주님 재림이 있습니다. 재림하시면 온 세상은 다 불에 탑니다. 새하늘과 새땅이 도래합니다. 그런데 그 사실을 믿습니까? 믿고 노아가 방주 준비하듯이 재림 준비를 하십니까? 저도 많이 못 하니까 참 다른 말 큰소리 못하겠지만은 우리가 다 그렇습니다. 노아 시대때 그랬습니다. 노아가 120년후면은 온 세상은 홍수로 전멸됩니다. 그 사실을 노아는 현실처럼 믿었습니다. 현재 벌어질 현상의 세계처럼 노아는 믿었고 믿어졌고 하나님의 아들들은 그 사실이 어떤 사람은 ‘그런가? 그렇겠지. 좀 있다가 준비하지. 방주 만드는데 시간이 뭐 그래 오래 걸리겠어? 120년 남았다면서. 한 10년 하면 안될까? 110년 놀고 10년 동안 준비하지 뭐. 5년동안 준비하지 뭐.’ 별에별 그런 사람들의 종류가 다 있었을건데 그거 다 믿음의 차이였고, 마지막에 가보니까 준비한 사람은 여덞사람 밖에 없고 나머지는 전부 방주 준비를 안 했는데 그 안한 것이 안 한 것이 아니고 한편으로는 안 한 것이고 한편으로는 못한 겁니다. 왜 못 한 겁니까? 안 한 것은 제가 안 한 것이고, 못하게 된 것은 안했기 때문에 못하게 된 겁니다. 못 했다면 강제니까 못하게 된 것은 안했기 때문에 못합니다. 안 했으니까 못 했습니다. 못한 것은 왜 못했습니까? 안 믿어지니까 못 한겁니다. 왜 안 믿어졌습니까? 안 믿으니까 안 믿어진 겁니다. 하나님께서 기회는 충분히 주셨는데 그 기회를 제가 그냥 허투루 다 써버리고 귀넘어 듣고 안 들으니까, 그러니 안 믿으니까 나중에는 못 믿게 되는 겁니다. 이것 희안합니다, 사람이. 죄와 싸우는 것도 그렇습니다. 사람이 자기가 이길 수 있는 죄를 이기면 나중에는 어찌 됩니까? 이길 수 없는 죄도 이기는 능력이 나옵니다. 그런데 이길 수 있는 죄를 무시하고 안 이기면 나중에는 이길 수 있는 죄도 못 이깁니다. 묘하게 이치가 그리 되어있습니다. 세상 이치도 보면 그리 되게 됩니다. 그래서 믿음의 차이는 결국 말하자면은 사람의 노력의 차이다. 그러면 그 노력이란 것, 오늘 결론적으로 말하면, 그러면 믿음을 우리가 만들어가야 되는데 ‘내가 믿나이다. 나의 믿음 없는 것을 도와주소서’. 깊이 새겨 보셔야 됩니다. 홍해 바다를 앞에 두고 모세 여호수아 갈렙은 겁이 없습니다. 참 이 말씀도 저도 그리 되지 못하니까 어쨌든 설교는 하는 겁니다. 겁이 없는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간이 다 녹아버렸습니다. 이제는 꼼짝없이 죽는 겁니다. 그런데 그 사람들이 하나님의 능력을 못 봤느냐. 열 번을 애굽에서 봤습니다. 열 번을 보고도 자기들 눈 앞에 펼쳐진 걸 실제 겪어보고도 홍해바다, 다른 현실 닥치니까 또 안 믿는 겁니다. 그들이 안 믿는 것이 아니고 홍해 바다 닥쳤을때는 그들이 안 믿은 것이 아니고 어떤 겁니까? 못 믿는 겁니다. 안 믿어지는 겁니다. 이제는 죽었다. 같은 자리인데 안 믿어지는 겁니다. 롯이 롯의 길을 간 것은 그리 갈 수 밖에 없도록 자기가 그렇게 만든 겁니다. 아브라함은 아브라함의 길을 갈 수 밖에 없도록 자기가 만든 것이고, 홈페이지에 보니까 우리교회 홈페이지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정탐군 12명을 뽑아서 가나안에 보내라 그랬는데, 하나님이 그래 보내라 그랬는데 하나님의 뜻입니까 선입니까 잘못된 겁니까? 그거는 하나님이 보내라 그러셨죠, 보내라 그러신 것이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 정탐군을 안 보내면 가나안에 들어갈 그런 사람들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아시니까 ‘보내라’. 그런데 정탐군 12명을 가나안에 보내가지고 맺은 결과는 무엇입니까? 여호수아하고 갈렙 빼고는 전부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인 것을 자기 눈으로 보고도 ‘그 땅은 거민을 삼키는 땅이라. 우리가 들어가면 다 죽는다’고 악평을 해서 모든 백성의 믿음을 완전히 떨어뜨리고 다시 애굽으로 돌아가자하고 모세를 돌로 쳐죽이려고 하던 그 일을 만들었지요, 정탐을 보낸 것이. 저것들의 믿음 부족한 것이 그리 만든 겁니다. 하나님께서 그리 아시고 그리 하신 것이고. 여리고성에 갈 때, 점령할때보면, 정탐을 보냅니다. 정탐군들이 가서 샅샅이 들여다보고 그다음 여리고성을 점령합니다. 그런데 여리고성 점령할 때 정탐군들이 가서 보고 한 것 하고 하나님이 성 점령하게 하신 것은 전혀 상관이 없습니다. 하나님이 여리고성을 점령한 것은 완전히 다른 방법입니다. 그들이 정탐가서 한 일은 딱 하나입니다. 여리고성에 정탐군들이 가서 한 일은 하나입니다. 뭡니까? 기생 라합을 찾아낸 겁니다. 그거 하나만 했습니다. 그거는 바로 되고. 그거 하나 말고도 한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 성 점령할때는 그들 정탐군들이 한 것은 전혀 상관이 없고 그냥 성 한바퀴 매일 돌고 마지막에 일곱바퀴 돌고 소리 지른게 그게 전부입니다. 하나님의 역사는 인간의 역사하고는 전혀 다른 차원에서 이루어진다는 것을 믿어야 믿는 사람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여러 가지 면이 있고, 여러 가지 있을수 있는데, 하나님의 섭리 역사에 인간 계산과 인간의 걸음이 앞서가면 하나님께서 빠져버립니다. 하나님이 빠지면 큰 문제 생길 수 있습니다. 여러 가지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믿음이 자란다는 것은 믿음은 어떻게 자랄 수 있는가? 믿음 자라는 방법은 첫째는 기본믿음이 있어야 됩니다. 종자믿음이 있어야 됩니다. 우리 다 있지요. 기본적인 믿음 다 있습니다. 종자적인 믿음이 있습니다. 이 믿음을 가졌으면 그다음 두 번째는 우리가 노력을 해야 되는데, 노력할 방향이 둘이 있습니다. 하나는 뭐냐. 하나는 자기가 가지고 있는 자본, 자기 시간과 노력 정성을 믿음에 드려야 됩니다. 믿음을 가지도록 믿음에다가 자기 시간과 노력 정성을 받쳐 들여서 투자를 해야 믿음이 자랍니다. 그리하지 않으면 믿음 자라지 아니합니다. 자라가는 믿음입니다. 말하자면은 오른손 왼손이 있는데, 우리 학생들 선생님들 중에서 보면은 글씨를 왼손으로 쓰는데, 아마 옛날 사람들 대개 보면은 왼손은 거의 장애자 수준일껄요? 왼손으로는 그림은 커녕 아무것도 못하지 않습니까? 옛날에, 요즘도 그런 사람들 있다던가요. 왼손으로 글씨 쓴다고 혼을 낸다고요? 뭔가 잘못된거겠죠. 양손을 다 쓰면 좋지 않겠습니까? 옛날에 저 어릴때는 왼손으로 글 쓰면 어른들한테 혼이 났습니다. 또 왼손으로 밥 먹으면 혼이 납니다. 그러니까 아예 왼손을 못쓰게 하니까 왼손은 아무것도 못합니다. 그냥 달려가 있고 일반적인 그냥 가벼운 것만 하지. 그런데 어떤 사람 보니까 왼손을 가지고 글씨를 쓰는데 기가 차게 써나갑니다. 왼손으로 뭘 하는데 오른손보다 더 잘합니다. 그러면 팔은 양 팔 있고 손은 양 손 있는데 오른손만 자꾸 쓰니까 왼손은 나중에 달려있기만 있지 기능이 쓸모없는 그만큼 활용도가 떨어져버립니다. 못하게 된다 그말이지요. 양손을 다 쓰는 사람은 오른손 왼손 양손을 다 쓰면은 그만큼 능률이 그만큼 많이 있겠고 활용도 그만큼 많지 않겠습니까? 또 왼손만 쓰는 것도 문제가 되겠지만은. 자기가 어느쪽에다 가치두고 어느 방향으로 관심과 시간과 노력을 드리느냐에 따라서 그만큼 그면에 대해서 그 사람은 모든 면에 늘어날 수 밖에 없는 겁니다. 아무리 무식해도 영어책을 꼬부랑 글자로 a,b,c도 몰라도 그 사람이 영어를 자꾸 듣고 접촉을 하고 읽고 하다 보면은 나중에는 영어를 할 줄 아는 사람이 되는 겁니다. 그래서 미국 갈때는, 영어 배우러 영어권 나라에 가는데 첫째 피할 것이 뭐라 그럽니까? 한국 사람 있는 곳은 가지마라. 거기 가면 저절로 쉬운 것 쓰거든요. 그러면 영어 안 늘어난다는 겁니다. 그냥 영어 쓰는 사람한테만 가면 시간만 지나면 저절로 늘어난다는 겁니다. 한문이 어려워도 그걸 자꾸 쓰고 읽고 하다보면은 나중에 어느정도까지는 알게 됩니다. 믿음이 자라는 방법, 믿음 길러가는 방법의 중요한 첫째가 바로 이겁니다. 그러면 믿음이 뭡니까? 믿음은 첫째 성경 말씀은 아는 것. 두 번째는 인정하는 것 받아들이는 것, 그다음에는 실행하는 것. 믿음이 자라려면, 믿음을 길러가려면 성경 읽는데 시간을 들여야 됩니다. 성경 말씀 생각하는데 마음을 드려야 됩니다. 성경이 어려우면 백목사님 설교록을 읽는 시간이 많아져야 됩니다. 공부하는 학생이 1년 365일 공부는 전부 영어에 과학에 자기 전공에 거기 시간을 다 들이는데, 거기 들어가는 시간은 하루 24시간 중에서 예를 들면 잠 자는 시간 6시간 빼고, 18시간 중에서 밥 먹는 시간 3시간 빼고, 15시간 중에서 하루에 세상 공부하는 시간은 12시간, 그다음에 또 이것 저것 하는 시간은 또 한 2시간, 성경 읽는 시간은 한시간, 그 사람은 결코 믿음 자라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쓰시는 것에 따라서 다를 수 있는데 믿음이 자랄 리가 없습니다. 상식적으로 아니지 않습니까? 안되는 겁니다. 만약에 자기 입장이 그러해서 그리한다면 마음에 소원이 들어가야 되고 소원이 13시간 공부하는 그 이상에 소원이 성경 1시간 읽어도 그리 들어가야 되고 설교록 읽는 시간이 그리 들어가야 그만큼 강도가 소원이 들어가야 믿음이 생겨지지 그게 아니면 믿음 생겨지지 않습니다. 기본적인 믿음도 은혜지만은 건설믿음도 궁극적으로 하나님이 주신 은혜 아닌가요? 은혜입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것은 하나님 마음을 감동시켜야 되지 그분이 감동되지 않으면 안되는 겁니다. 신앙이란 것은 기본적으로 하나님과 우리와의 관계고,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바로 대우하는게 신앙입니다. 모든 일에 있어서 하나님과 자기 관계에 있어서 하나님이 해결하면 모든게 단번에 되는 것이고 그분이 해결하면 안되는 것이기 때문에 그래서 백목사님 같은 분들도 무슨 일이 닥치면 그 일은 그 일대로 처리하고 무조건 하나님 앞에 기도하고 매달려서 그분의 노를 푸는 그것부터 먼저합니다. 그분의 뜻 찾는 것부터 먼저합니다. 그거 하고 난다음 병행할거는 병행을 하고 하지, 그리고나서 그것 하기전까지는 다른 것 해봐야 안되는 줄을 안다 그말이지요. 믿음도 마찬가지입니다. 믿음이 생기는 것은 하나님이 보실 때 그 믿음, 믿음이 생겨지도록 노력을 해야 되고 시간을 들여야 되고 정성이 들어가야 그게 되는 것이지, 마음은 딴데 있는데 거기 딴데 있으니까 노력 그리 가고 시간 그리 가는데, 말만 믿음 가진다 그러면 아무리 해봐야 믿음이 생겨지겠습니까? 상식적으로 이치적으로 그렇지 않습니까? 그러면 믿음을 길러가는 첫째 방법은 방향을 틀어서 믿음이 자라는 거기에 내 시간과 노력 정성을 드려야 믿음이 자라가는 겁니다. 드리지 않으면 결코 믿음이 자라지 않습니다. 굉장히 중요한겁니다. 이게 하나 있고, 그래서 믿음 자라는 법은 성경 말씀, 혹은 설교록을, 그래서 제가 겪어본 바로 기본적인 믿음이 있다고 확신이 된 그 상황에서 설교록을 가지고 집중해서 읽어보고 연구해본 사람 치고 믿음 안 생기는 사람을 별로 본 적이 없습니다. 성경이 너무 어려운데. 백목사님 설교록을 가지고, 그걸 가지고 읽으면서 분석하고 생각하고 연구해보고 거기 집중해보는 사람 치고 믿음 안 생기는 사람이 별로 없습니다. 하면 되는 겁니다. 그리 될 수 밖에 없는 겁니다. 눈이 열리고 귀가 열리고 말씀 이치가 깨달아지게 되는 겁니다. 그리고 또 하나는 현재 자기 생활에서 믿음 생활을 계속 하는 겁니다. 주어진 그 상황에서 믿음으로 사는 그 생활을 계속 해나가는 겁니다. 믿음으로 사는 생활을 계속 하는 겁니다. 노아가 그래 믿어진 것은, 저절로 믿어진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온 세상이 다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의 아름다움을 보고 자기들 좋아하는 모든 자로 아내 삼는 그런 상황 속에서 노아는 하나님께 가치두고 하나님 말씀 거기 전부 삼아 믿는, 자기 주어진 그 생활 생활에서 어쨌든 하나님 말씀에 어긋나지 않도록 죄 안 지으려고 하나님이 원하시는 그 뜻이 무엇인지 찾아서 그 뜻에 맞추려고, 그리고 하나님 섭섭하지 않게 하기 위해서 모시고 살려고 그리 노력을 하는 그 생활을 꾸준하게 계속을 해 나가는 겁니다. 그래 하는데는 몸이 아플때도 있고, 돈이 손해 볼 때도 있고, 원망스러울 때도 있고, 또 피곤할때도 있고, 병들때도 있고, 온갖 우여곡절이 다 있는데, 그런 것 있음에도 불구하고 사람이 넘어질때도 불구하고 그래도 넘어지면 또 일어서고 기도하고 또 일어서고 그래가지고 믿음으로 사는 그 생활을 계속 해나가는 겁니다. 하다보면은 하나씩 둘씩 자기 속에 하나님께서 보여주시는 증거가 나타나게 되고, 그 증거를 자꾸 살펴보면은 작은 것들이 하나 둘 쌓여가지고 진합태산이 돼서 나중에는 믿을 수 없는 것이 그런 것이 믿어지게 되고, 믿어지니까 할 수 없는 그런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이 되게 된다 그말입니다. 이게 또 믿음이 자라가는 방편입니다. 겨자시 믿음의 방편은 바로 이 방편입니다.
그래서 오늘 말씀은 전체로 말하면 믿음을 길러가는 방법, 믿음을 만들어가는 방법인데, 전체 믿음에 대한 것을 상식으로, 또 실제로 생각을 하시면서, ‘내가 믿나이다. 나의 믿음 없는 것을 도와주소서’. 그 사람 갑자기 왔으니까 그리 될 수 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세월을 주셨는데, 그래서 하루 30분 기도, 앞으로 환난 두고 기도 참, 실감이 어렵지만 우리 앞에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르겠는데, 그때 지금부터 미리 기도하지 않으면 믿음 다 팔아버리니까 지금부터 앞으로 몰라도 아는대로, 만약에 앞으로 어떤 어려움이 닥치면, 경제 어려움이 올런지 건강 어려움이 올런지, 가정적인 어려움이 올런지, 앞날이 막히는 어려움이 올런지 어떤 어려움이 올지는 모르겠으나 만약에 어떤 어려움이 와도 믿음으로 해결하고 믿음 팔지 않게 해달라는 그런 기도를 간절하게 지금부터 자꾸 하다보면 하나님께서 열어 보여주시는 것이 있을 것이고, 작은 그 현실에서 증거를 자꾸 받다보면 점점 그 믿음이 커져서, 그래서 너희가 내 말에 거하면 참 내 제자가 되고 진리를 알지니 그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세상 사람들은 그걸, 기독교 대학 중에서 백석대학교라고 있을 겁니다. 그 대학은 아마 학교 교훈이 그거 겠지요.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그 대학 총장이라든지 교수들한테 가서 이게 무슨 뜻인지 압니까 물어보면 제가 볼때, 십중팔구 무슨 뜻인지 모를 겁니다.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너희가 내 말에 거하면 참 내 제자가 되고 진리를 알지니 그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이것이 이루어지는 그 방법이 진합태산이고 현실에 믿음 계속하는 그 생활에서 되는 겁니다. 아브라함도 노아도 요셉도 모세도 다 이런 믿음의 길을 거쳐서 그리 간 겁니다. 사무엘 같은 사람은 믿음의 전공자고 그런 사람이겠지요. 우리도 이 방법을 잘 생각을 하고 하나님 앞에 기도하면서 사람이 약한 믿음, 나사로가 죽어서 무덤에 있을때 예수님이 오셨습니다. 그때 나사로의, 나사로는 죽었으니까 나사로는 믿음이 없습니다. 그럴때 예수님께서 누구 믿음으로 살렸습니까? 그 누이들의 믿음 가지고 살린겁니다. 내가 믿으면 하나님 영광 보리라 하지 아니하였느냐. 믿을때 나사로가 살아났고 살아난 나사로에게 그다음에 한 것은 풀어서 다니게 하라. 그러면 다니는 건 나사로 제가 하는 겁니다. 어릴때는, 젖먹이 어릴때는 부모님의 기도와 노력이 필요합니다. 부모님 믿음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지식적으로 연령적으로 신앙의 연조적으로 어느 정도 장성하고 나면은 그때는 다른 사람의 믿음은 도움은 될지언정,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그 본인에게 원하시기 때문에 본인이 이 믿음의 길을 걸어가야 믿음이 생겨지고 자라지 본인이 믿음의 길을 걸어가지 않으면 그 믿음은 결코 자라지를 아니합니다. 안가는데 어떻게 가까워집니까? 가지 않는데. 안하는데 기능이 숙달이 되어집니까? 믿음 생활을 해야 믿음은 자라는 겁니다. 안하면 결코 자라지 않습니다. 좀 생각해 보십시다.
다같이 통성으로 기도 드리겠습니다.
믿음 자라는 방법을 결론적으로 말씀드리면서 앞에 몇가지를 말씀드렸습니다. 바탕 지식으로 삼고 결론은 우리 믿음을 길러가는 것, 믿음이 자라가야 되겠으니까 우리 믿음을 길러가는, 어쨌든 믿음에 전공을 하고 많은 시간과 노력을 성경 읽고 생각하고 그대로 사는데 드리고 현실에서 인도하시는 말씀의 인도 따라서 믿음으로 사는 생활을 계속하는 우리가 되도록 하십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