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02-주후(눅16:22-31)
인간의 사후 세계2014-02-02조회 428추천 29
본문: 눅16:22-31
제목: 인간의 사후 세계
요점:
1. 부자의 3가지 무지와 그 결과
1) 하나님께 대해서 3가지 무지
2)인생에 대해서 3가지 무지
3)세상에 대해서 3가지 무지
- 무지의 결과는 하나님 없는 생애
- 자기만 영화롭게 기쁘게, 형제들까지도
2. 사람의 사후(사람이 죽으면)
- 신자의 영과 혼은 낙원에
- 불신자의 영과 혼은 음부에
3. 천국과 지옥의 형편
1)천국은
- 천국은 믿음 계통의 성도들이 있고
- 모든 성도는 주님의 몸을 이룬 지체들의 관계
- 성도 외에는 주님 한 분만 계시니 주님이 전부
- 모든 만물은 시은의 대상이며 활동 무대
2)지옥은
- 하나님 없는 곳, 무소부재시나 지옥에 있는 존재들에게는 없는
- 하나님 은혜가 없는 곳
- 하나님 없이 산 자들과 요소들만 모인 곳
4. 부자의 사후 소원 2가지
1)물 한 방울
- 손가락 끝에 물을 찍어 혀를 서늘케 해 달라 했으니
- 물 한 방울도 가질 수 없는 영원한 고통
- 세상에서 물 한 방울도 하나님으로 살지 않았으니
2)다섯 형제를 위한 간청
- 세상에서 형제를 위해 한 모든 것은 자기처럼 만든 결과
- 음부에 가서 보니 착각과 오판을 깨달았으나 이미 늦어
- 음부에 가서 알 것을 왜 세상에서는 몰랐을까?
- 얼마든지 알 수 있었으나 스스로 알지 않았으니 유구무언
5. 죽은 자의 활동은 제한적
- 신자는 낙원에서만 활동
- 불신자는 음부에서만 활동
- 죽은 자가 다시 세상에 살아올 수는 결코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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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원문)
20140202 주후
누가복음 16:22-31
이 홍포 입은 부자가 세상을 잘못살고 실패를 했습니다. 그 원인은 오전에 말씀드린대로 크게 말하면 세가지를 몰랐기 때문이다 그리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물론 그 안에 또 세부적으로 들어가면 더 많이 있을수 있고, 또 각도를 달리하면 다른면도 있을 수 있는데 일단 세가지로 생각해본겁니다. 첫째는, 이 부자는 하나님께 대해서 무지했다 그리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몰랐고, 만약에 알았다면 믿지 않았고 생각지 않았고, 또 알았다면 하나님이 알려주신 그대로 알지 아니하고 자기대로 알았고 피조물들이 아는 그대로 알았지, 하나님이 하나님 당신을 말씀으로 알려주시는대로 바로 알지 않았기 때문에 결국 모른 결과가 되고 말았습니다. 하나님은 완전하신 분이기 때문에, 완전은 무한과 연결되어있고 그래서 하나님은 그 면면이 무한한 분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이 하나님을 알래야 다 알 수가 없는 것인데, 크게 말하면 이 부자가 하나님을 알지 못했다는 것은 세가지면을 생각해보면, 첫째는 하나님의 두려우심을 몰랐다, 그래서 그에게는 하나님께 대한 경외심이 없었다, 하나님을 두려워함이 그에게 없었다 그말입니다. 하나님을 아는대로 알고나면 두려워하지 않을 수가 없는데, 하나님을 몰랐기 때문에 마치 하룻강아지가 범 무서운줄 모른다는 것처럼 이 부자는 하나님의 지극히 크고 두려우심을 몰랐고 생각지 않았고, 그러므로 그 두려우신 하나님 앞에서 사는 생활이 없었습니다. 말하자면은 조심이 없었고, 경계가 없었고, 근신이 없었고 그냥 세상에서 자기를 위해서는 그런 것이 있었을겁니다. 자기의 명예, 자기 위신, 자기 체면, 어떤 사람은 보면은 다른 것 다 양보하고 참아도 자기 위신 깎이는 것 못 참는 사람이 있습니다. 자기 체면이 깎이면 못 참는 사람이 있고, 자기 권위가 깎이면 못 참는 사람이 있습니다. 사람에 따라서 다 그 면면들이 있는데, 이 부자가 자기를 아름답게 꾸민걸 보면, 자기의 명예라든지 위신이라든지, 자기 자신이 아름답게 꾸며져서 드러나는 그 면을 위해서는 조심도 했겠고, 근신도 했겠고, 자중도 했겠고 여러 가지 필요한 그런 노력들을 했겠지만은, 하나님을 생각하고, 하나님이 크고 두려우신 그분앞에서 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에, 오늘 아침에 주일학교 공과가르치는데 보니까 ‘ 때문에’ 하면 안되고 뭐해야 된다 그랬습니까? ‘덕분에’. 누구 덕분입니다, 누구 덕분입니다 그래살지 누구 때문입니다, 때문입니다 그러면 핑계, 원망이 되니까 안된다 그랬는데, 방향을 바꿔서 이 부자는 ‘하나님 때문에’ 산 것이 없었습니다. 하나님 때문에 조심하고, 하나님 때문에 근심하고, 하나님이 보고 계시니까 그래서 두려워서 함부로 살지 못하는 이런 것이 없어서 하나님을 경외함이 없었다. 그래서 이 부자는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그분의 크심을 아는 것에 대해서 전혀 무지한 사람이었다.
사람이란 것은, 두려움이란 것은 지식의 소산입니다 하나의. 그러니까 하룻강아지는 범에 대해서 지식이 없으니까 두려운 줄 모르니까 함부로 날뛰는 겁니다. 그런데 범을 겪어보고 아는 개들은 범 냄새만 나면 마루 밑에 들어가서 죽은듯이 있지, 꼼짝도 못하고 반쯤 죽어버린다 그러지요. 알면 그런겁니다. 뭐든지 알면 조심 안할 수 없고, 알면 거기 대해서 영향을 받고 피동되지 않을 수가 없는데, 우리가 믿음이 부족해도 우리대로 하나님을 알기 때문에 현실 생활에서 자기 습성대로 또는 환경에 피동되어 그리 살다가도 어느 선까지 들어가면 우리가 아는 하나님이 생각이 나서 행동이나 생활이 제재를 받고 막나가지를 못하지 않습니까. 그렇지 않습니까? 여기 계신 분 대부분 그러시지요 아마. 어느정도 선까지는 하다가도 ‘이거 하나님께서 진노하신다’ 싶은 거기까지 가면은 겁이 나서 못합니다. 그런데 이 부자는 그런 것이 없었다 그말이지요. 하나님께 대한 두려움이 이 사람에게는 없어서, 세상을 살되 참 실력껏, 자기 노력껏 살았는데 어쨌든 하나님께 대해서는 무지했습니다. 하나님께 대한 두려움.
그다음 두 번째는, 하나님의 주권. 하나님의 주권이라 말은, 하나님이 세상을 운영하신다 그말입니다. 하나님이 짓기도 지으셨고, 하나님이 모든 것을 하나 하나 움직여서 운영해 나가시는데, 그게 하나님의 주권인데, 그 하나님의 주권 섭리에 방향을 이 부자는 몰랐습니다. 하나님이 왜 이 세상을 지었고, 하늘과 땅과 바다와 그 가운데 모든걸 다 지어놓고 모든 우주의 움직임, 산천초목들의 움직임, 또 사계절의 변화, 낮과 밤, 이런 모든 존재들의 역사가 있고, 그 모든 것을 하나님이 이렇게 저렇게 운행해 가시며, 사람을 만들어두시고 사람들을 낱낱이 간섭하시고 섭리하시는 그 하나님의 주권 섭리의 방향을 깨닫지를 못하니까 그는 자기대로 산 겁니다. 하나님의 섭리와 그 섭리의 흐름, 그 섭리의 방향은 생각지 아니하고 자기대로만 살았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주권 섭리의 방향을 모르니까 자기대로 그냥 아무렇게나 살 수가 있는 겁니다.
그리고 세 번째는, 하나님의 심판을 이 사람은 몰랐습니다. 마지막에 하나님께서 인간들에게 마음껏 자유를 주시고, 그 자유에 대한 책임을 물으시는 하나님의 영원한 심판. 영원한 상벌에 그 보응을 결정 짓는 하나님의 판단, 갚으심이 있다는 이 사실을 이 부자가 몰랐습니다. 세가지 첫째, 큰 세가지 중에서 하나님께 대한 무지 세가지입니다. 첫째는 하나님 경외의 무지, 두 번째는 하나님 주권의 무지, 세 번째는 하나님 심판에 무지했다, 몰랐다, 알았더라도 제대로 잘 몰랐고 생각지 않았습니다.
두 번째 이 부자는 인생에 대해서 무지했습니다. 사람이 무엇인가? 인생에 근본이 무엇인지를 부자가 몰랐습니다. 사람은 어디서 생겼을까? 사람이 생기기는 부모가 낳았겠지. 그 부모는 조부모가 낳았겠지, 또 그 위에 낳았겠지. 그래가지고 사람은 거슬러 올라가면 세상이 말하는대로 원숭이가 변해 사람이 되었고, 그 원숭이는 어떤 뭐 작은 생물이 어떻게 되어서 오랜 수십억년 세월속에서 이렇게 저렇게 변화되고 진화되고 그래가지고 사람이 됐겠지. 그래가지고 사람이 생겨놨겠지. 이런 말도 안되는, 얼토당토 않은 그런 소리를 하고. 아니면 자기대로 알고. 그래가지고 인생의 근본은 하나님이 인생을 만들었으므로 하나님이 모든 인생의 주인이고, 모든 인생의 주인이 하나님이 계신다는 것을 이 사람은 몰랐습니다. 하나님이 지으신 인생이다, 하나님께 지음받은 인생이다, 이게 뭡니까? 제가 손에 들고 있는게 뭔가요? 옳지. 이거 누가 만들었을까요? 사람이 만들었겠지. 시계 만드는 사람이 만들었겠지요. 이거 만든 주인이 있는 겁니다. 뭐든지. 예술가들이, 화가들이 그림을 그리면 아주 혼을 담아서 그림을 그립니다. 그래놓고 그 그림을 걸어놓고 감상도 하고 보여줍니다. ‘이 그림을 누가 그렸습니까?’ ‘아무것이가 그렸습니다.’ ‘참, 그림 그린 실력이 참 좋습니다, 참 잘 그렸네요. 그림속에 참 혼이 들어있습니다.’ 도자기를 만들어놓고 ‘이 도자기를 누가 만들었습니까?’ ‘아무것이가 만들었습니다.’ ‘참, 실력있는 보통기술이 아닙니다.’ 만든, 모든 물건은 만든 주인이 있는 겁니다. 그 물건을 만든 제작자가 있는 겁니다. 사람이 만든 것은 사람이 주인인 것이고, 자연이란 것은, 사람이 볼때 자연이지, 전부 하나님이 만드신 것이지, 들에 핀 수많은, 좀 있으면 봄이 되면은 이제 싹들이 모두 올라올건데 들판에 가보면 그 새파란 잔디밭에 수없이 많은, 저 대관령 목장 같은데 그런데 가보면 보나마나 뭐 그 푸른 잔디, 수만평 들판에 잔디가 올라올건데, 그 수많은 잔디밭의 새싹 하나도 하나님께서 다 지으셨지 그게 저절로 그리 나는 법은 없는 것이고, 해운대 바닷가에 모래알맹이 숫자가 몇 개나 되는지 아십니까? 000? 해운대 바닷가에 있는 모래알 숫자가 몇갠지 압니까? 몰라요? 계산해보면 알지. 00씨 몇갠지 압니까? 약 3천조개쯤 됩니다. 3천조개는 좀 많을까, 한 3천억개쯤 된다 그럴까요? 어떻게 압니까? 한번 세보면 알겠죠 가서. 한번 세어보십시오. 확인하는 법이 없지요. 그런데 그 수많은, 수천억개, 수조개도 될만한 그런 많은 모래알 하나 하나가 그것 전부다 주인이 있는 겁니다. 방금 말씀드린 것은 그냥 하는 말이고. 그래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 바닷가 모래알 숫자가 모두 몇갭니까? 저거는 좀 너무 터무니 없겠지만은, 사람들이 셀 수 없는 많은 분량, 그거 몇 개냐? 대강 한 2천억개쯤 됩니다. 어떻게 압니까? 그거 다 아는 수가 있습니다. 한번 세어보십시오. 아는 수가 있습니다. 한번 세어보십시오, 맞는가 안 맞는가. 대강 계산하는 수는 있겠지요. 그냥 어느 숫자 세가지고 무게 달아보면 나올거니까. 그러니까 그런 거 하나도 하나님이 다 만드셨지, 그 모래알 알맹이 하나가 저절로 생겨지지를 않는다 그말이고, 하물며 만물의 영장인 사람이야 하나님이 만드셨지 그게 저절로 생겨질 리가 없지 않습니까? 하나님이 사람을 지으셨고, 하나님께 지음받은 인생이고, 그러므로 사람은 주인이 계시고, 그 주인이 있으니까 그 주인의 뜻을 따라서 바로 살아야되는게 사람인데, 이 부자는 이 인생이 무엇인지를 몰랐습니다. 인생의 근본도 몰랐고. 그런데 사람의 주인이신 하나님께서 사람을 왜 만드셨느냐? 만드신 목적이 있는 겁니다. 만드신 목적. 그것이 만들어진것에 따라서 용도가 다 있겠지만은, 하나님이 사람을 만드신 목적은 딱 하나입니다. 본문으로 말하면 두 개고. 뭡니까? 하나님이 사람을 만드신 목적이 무엇인가요? 하나님 영광을 드러내기 위해서, 또 하나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기 위해서. 하나님을 나타내기 위해서 사람을 지으신 겁니다. 그 사람을 통해서 하나님을 나타내는 겁니다. 그 사람을 만드신 하나님이 계신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 그러기 때문에 사람이 하나님께 지음을 받았고, 이런 용도 목적으로 지음받은 사람이 하나님을 잊어버리면, 이사야 1장에 보면은 ‘소는 임자를 알고, 나귀는 그 주인의 구유를 알것만은 이 백성은 나를 알지 못하는도다’ 하나님에게 지음받은 인생이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하나님 나타내는 자기 본분을 망각하면 하나님께 버림을 받는 겁니다. 사람은 하나님께 지음을 받았고, 지으신 하나님의 목적은 당신이 지어놓은 그 사람을 통해서 하나님 당신을 나타내 보이는 겁니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볼 수 있게 나타내는 것이 사람의 근본의 본분이고 목적입니다. 사람의 존재 이유입니다. 목적이고. 이걸 이 부자는 몰랐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 생각지 아니하고 자기만 나타냈지, 하나님은 나타내지를 않았습니다. 다른 나라에 임금이 사신을 보냈더니, 사신이 가서 자기만 실컷 드러내고 자기 나라 왕은 탁 숨겨놓고 까뭉개버리면 그 사신은 역적 기질이 있어서 그는 목을 쳐버립니다, 왕들이. 그냥 용납하지 않습니다. ‘너 이놈, 우리 나라, (이 나라 옛날에 나라는 왕의 나라거든요) 이 나라는 내 나라인데, 내가 주인인데, 내가 너를 이웃나라에 나를, 내 권위와 내 위엄을 나타내고, 우리 나라의 국익을 위해서 보냈더니 네놈 이익만 챙겨먹고, 사리사익만 챙겨? 네 놈이 역적 아니냐.’ 목을 쳐버립니다. 그냥 두지 않지요.
성경에 그래가지고, 평생 참 잘 살았는데 마지막에 그래가지고 하나님께 크게 진노받고 한 사람이 누구지요? 성경에 유명한 인물, 이거 모르면 큰 일인데요. 누굽니까? 평생을 잘 살았는데 마지막에 하나님 딱 숨겨놓고 그래하다가 하나님께 버림받은 왕, 이름 뭡니까? 히스기야 왕이지요, 히스기야. 그 히스기야가 마지막에 앗수르대군 18만5천명 물리치고 그리고 난 다음 다 이겼고, 승리했고, 병이 들었는데 ‘너는 네 집에 대해서 유언해라, 네가 죽고 살지를 못하리라’ 그러니까 히스기야가 울면서 하나님 앞에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내가 살아생전 이제 하나님을 뵈옵지 못하겠고 이제 죽어야 됩니까’ 하고 하도 우니까 하나님께서 내가 너에게 생명을, 몇 년 영장시킵니까? 15년을 연장 시켜줬는데, 15년 연장시켜줬는데 살아나고나서 바벨론나라 사신들이 바벨론에 사신을 보내서 세상에 죽을 병이 들어 살다니, 무슨 능력인가 싶어서 사자를 보냈는데 히스기야가 하나님의 능력이라 말은 입도 뻥긋 안하고 딱 닫아놓고, 하나님은 뒤로 쳐박아 놓고 우리나라가 보물이 이래 많습니다. 우리나라 무기가 이렇습니다. 내가 이런 나라 만들었습니다 하고 자기만 앞에 잔뜩 자랑하니까 하나님께서 이사야를 보내서 ‘그들이 어디서 왔습니까?’ 먼 나라 바벨론에서 왔습니다. 뭘 봤습니까? 우리나라에 있는 보물창고, 무기고, 내탕고 전부 다 봤습니다. 하나님께서 때가 되면은 당신이 보여준거 하나도 남김없이 바벨론으로 전부다 다 빼앗길 것이고 몽땅 포로되어 갈 것이고, 당신의 자녀중에서 바벨론 나라에 환관될 사람들이 있을 겁니다. 그랬는데 히스기야가 뭐라고 그랬습니까? ‘예, 좋지요 뭐. 내 생전에만 편하면 안되겠습니까?’ 참 왕의 자격 없는, 어떻게 살아생전 그래하다가 그렇게 변할 수가 있는지. 그래 변할 수 있는게 사람입니다. 하나님은 가장 진노하시는 것이, 하나님 영광 딱 가로막고 다른 거 내세우는 겁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대신해서 자리에 앉히는 걸 무슨 죄라 그럽니까?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걸 다른 것이 할 수 있다고 그것에게 절하고, 손 비비고, 그것을 하나님 대신 앉히면 그걸 가리켜 뭐라 그럽니까? ‘우상’이라 그러지 않습니까? 가장 진노하시는 죄중에 하나가 우상죄입니다. 그래서 십계명 서두에 하는 말씀, ‘나는 너를 애굽땅 종 되었던 집에서 인도하여낸 너의 하나님 여호와다’ 그말은, 너희들을 구원한, 너희들을 책임지는 하나님 주인이 계시니까 나를 잊어버리지 말아라 그말입니다. 십계명 지키기전에 먼저 기억할 것이 하나님을 잊지 말라는 겁니다. 내가 살아있고, 내가 너희들을 구출했고 책임지니까 나를 잊어버리지 말아라. 그래서 십계명을 지켜도 그 서두 말씀을 기억하고 지켜야 바로 지키는 것이지, 그 서두 잊어버리고 십계명 지키는 것은 바른 신앙이 아닙니다.
그래서 인간의 궁극의 목적이며, 최종 목적이며, 근본의 목적은 하나님을 자기를 통해서 이 세상에 나타내는 겁니다. 이게 지음받은 사람의 목적입니다. 이 부자는 이걸 까마득히 몰랐습니다. 우리는 알았습니까? 우리도 과거에는 몰랐지요. 모르고 그냥 살았습니다. 참, 눈 먼 망아지가 워낭소리 듣고 따라간다고, 그냥 믿음 믿음하고 따라가는 겁니다. 알고보면 참 어렵습니다. 오전설교하고 오후설교 준비하면서, 제 생각속에 그런 생각이 듭니다. 오전내내 하는 말이, ‘하나님 하나님’ 하나님만 노래 부릅니다. 사람이 사람인데 하나님만이 전부인가? 왜 하나님만 말하는가? 오직 하나님만 영화롭게, 기쁘시게 해야 되는가? 사람은 나서면 안되는 것인가? 하나님이 전부고, 그 하나님을 기쁘시게 영화롭게 하고, 하나님만 나타내면 거기에 자기와 모든 것은 다 들어있는 겁니다. 요 다음에 또 나올건데.
그래서 이 부자가 첫째는 하나님께 대해서 세가지, 두 번째는 인생에 대해서 세가지인데, 첫째는 인생의 근본, 인생은 자존자가 아니고, 인생을 만든 다른 무엇이 있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이 만들어 하나님께 지음받은 인생이다. 하나님께서 지으셨다. 사람은 주인이 있다. 두 번째는 그 인생은 지음받은 목적이 하나님을 나타내서 하나님을 영광스럽게 한다 그랬는데, 사람이 하나님을 영광스럽게 할 수 있습니까? 이 세상에서 그 어떤 존재도, 그 존재에 대해서 위인전을 쓰면, 이것 참 오해할까 싶어 이 말은 못하겠는데, 사람에 대해서 위인전을 쓰면, 어떤 사람은 그 사람의 내면속에 들어가면 그 사람의 참모습이 어떤 사람은 80이면 거기다가 100을 얹어서 180, 280 그래 만들어서 위인 만드는 사람도 있고, 어떤 사람은 그 사람의 본모습은 한 500이 되는데, 사람이 필서로 기록하려니까 500까지 못하고 한 300정도로 나타내고 그래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런데 후자로, 그 사람의 본모습은 한500쯤이나 500가지나 되는데, 사람들이 오해할까 싶어서, 너무 소설같은 그런 이야기라고 치부할까 싶어서 좀 줄여서 쓰는 그런 사람도 역사에 아주 드물게 있을 수 있지만은 희귀합니다. 대개의 위인들은 전부다 100가지나 있으면 200가지, 500가지, 천가지나 있는 것처럼 거기다가 포장을 막 과대포장을 잔뜩하고, 화장품을 입혀가지고 화장을 해서 그래가지고 위인전 만드니까 그리 되는 거지요. 그런데 하나님의 사람들, 참된 하나님의 사람들은 파고 들어가고 들어가도 자꾸 나오는게 하나님의 사람들의 본모습이고, 그 원형이신 하나님은 무한이기 때문에 인간이 그분을 과대포장해서 인간이 수식어를 갖다붙여서 그래가지고 그분을 영광스럽게 할 수가 없는 겁니다. 그분은 계시는 그 모습 그대로를 우리들이 나타내는데, 그대로도 다 나타내지 못하고 그러기 때문에 인간이 아무리 노력해도 사람의 노력만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지 못하고, 우리가 할 수 있는대로 하나님의 뜻을 따라 바로 행해나가면 하나님께서 당신을 드러내시게 되면 그게 영광이 되어진다 그말입니다. 사람의 목적은 이겁니다.
그리고 세 번째는 인생의 결국을 몰랐습니다. 사람은 이 세상에서, 사람은 영원불멸의 존재인데, 그러나 이 세상에서는 정해진 기한이 되면 떠나야 되는 건데, 이걸 사람들이 알면서도 부인하고 잊어버리고 사는 것이 대부분의 사람들이며 오늘 우리들의 모습입니다. 자기 죽음의 날을 늘 기억하고, 죽을때가 있으니 그때를 기억하고 살라고 그렇게 사시는 분들이 여기 얼마나 좀 계십니까? 저도 참 그렇게 살기 어렵습니다. 그러니까 어떨때는 보면은 잠자다가 오늘밤에 또 내일 못 일어날지 알수가 있나. 그런 생각도 가끔 하기는 하지만은 일어나기를 바라고 일어나겠지 그래싶고, 그렇게 살지, 인생이 언제 어떻게 된다는 것을 늘 염두에 두고 떠나가야된다는 것을 계산하고 사는 사람이 별로 많지 못하고, 이 부자는 아예 까마득히 잊어버리고 살았습니다. 젊을수록 그럴 것이고, 나이 많아도 그럴 수 있을 것이고. 세 번째, 세상은 떠나야 되고, 떠나고 나면 하나님의 심판 받아서 영원한 상벌에 보응을 받아야되는 인간은 영원불멸의 존재라. 인생의 결국을 몰랐습니다. 세 번째는 이 부자가 세상에 대해서 너무도 무지했습니다. 세상이 뭔지를 몰랐습니다. 이 세상은 사람과 마찬가지로, 세상은 넓고 넓은데, 우주 이 세상 물질계는 지으신 주인 하나님이 계신다는 이 사실을 이 부자가 기억지 않았고 알지 못했습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지으셨다, 또 이 세상을 지으신 목적이 있습니다. 이 세상은 무엇하는 세상인지. 세상의 주인이 누굽니까? 근본 주인은 하나님이신데, 하나님께서 세상을 누구한테 맡겼습니까? 사람에게 맡겼습니다. 아담 하와에게, 생육하고 번성하라, 땅을 정복하라, 통치하라. 이 세상은 사람이 주인이고 하나님께서 인생을 만드시고, 인생을 통해서 하나님 당신을 나타내려고 하신 것처럼 그 인생들의 하나님 나타내는 활동무대가 바로 이 세상이므로, 그래서 세상은 인간에게 주셨고, 인간을 통해서 인간이 활동을 통해서 하나님을 나타내는 활동무대로 주신것이 이 세상이므로 세상의 용도는 하나님을 영화롭게, 기쁘시게 하는데 쓰여지는 그런 무대, 그런 모든 존재들이 이 세상이다, 거기 이용되는 것들이 이 세상인데 이 부자는 반대로 하나님 영화롭게 기쁘시게 하는 건 생각지 아니하고 자기를 꾸미고 나타내는 거기에 세상 모든 것을 다 이용을 하는 겁니다. 하나님이 주신 세상, 자기 가진 것, 그 가진 것을 활용해서 다니면서, 또 뭘 하면서, 모든 활동을 통해서 하나님이 만들어주신 세상이라는 공간에서, 하나님이 주신 세상의 모든 것을 이용을 해서 전부 자기 위해 썼으니까 이 세상을 악용한 그런 부자가 되고 말았고, 그리고 세상의 결과. 이 세상은 어떤 세상이냐? 세상은 영원을 마련하는, 농사 짓는 세상이며, 농사가 되며, 종자가 되는 세상이다. 세상은 천국이 마련되는 곳이고 지옥이 마련되는 곳이 세상이란 이 사실을 이 부자가 까마득히 몰랐습니다. 이것들을 모르니까 부자의 생애는 그리될 수 밖에 없는 것이고, 오늘날도 이 천하에 수많은 사람이 살고 있지만은 이 사실을 크게 하나님에 대해서, 인생에 대해서, 세상에 대해서 이것을 하나하나를 모르게 되면 사람이 별 수 없이 이 부자처럼 살아갈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그말이지요.
자, 한번 더 해보십시다. 부자가 평생을 물 한방울도 남김없이 전부 자기로 살았는데 그 이유는 세가지를 몰랐습니다. 첫째, 누구 몰랐습니까? 하나님께 대해서 무지. 두 번째는요? 인생에 대해서 무지. 세 번째는? 세상에 대해서 무지. 하나님께 대해서 몇가지 몰랐습니까? 다시 세가지. 첫째는 뭡니까? 하나님 두려우심, 그냥 알기 쉽게 하나님 경외를 몰랐고, 경외라 말은, 높이고 두려워한다는 뜻인데 이걸 몰랐으니까, 쓰기 좋게, 보기 좋게 하나님 경외심을 몰랐고. 두 번째는요? 하나님 주권, 주권이라 말은, 그 주권의 방향,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주권섭리하시는 그 방향이 어디로 가느냐? 하나님 당신을 나타내는 것인데 이걸 몰랐고, 세 번째는? 하나님의 심판을 몰랐고. 인생에 대해서는 첫째, 인생의 근본을 몰랐습니다. 인생이 어디서 왔는가? 인생의 주인, 근본을 몰랐고. 두 번째는? 인생의 생애 과정. 인생의 목적. 사람이 세상에서 사는 이유가 뭐며, 목적이 뭐냐 이걸 몰랐고, 세 번째는 인생의 결국을 몰랐습니다. 마지막 결국을. 세상에 대해서는 세상의 주인을 몰랐습니다. 세상 주인은 하나님인데 몰랐고, 두 번째는 세상의 용도, 무엇하는 세상인지, 어디에 쓰는 세상인지, 세상을 몰랐고, 세 번째는 이 세상의 결과. 세상은 천국과 지옥이 마련되는 세상인데 이 사실을 이 부자가 몰랐습니다. 이걸 모른 그 결과로 이 부자는 자기를 꾸며나타내고, 자기 기쁘게 한 그렇게만 살았고, 그렇게 산 그 결과가 죽고 난 다음에 사후세계에서 그를 음부로 가게 했고, 그 음부에서 물한방울도 자유없는 그런 사람을, 결과를 맺고 말았습니다. 크게 요거 하나 기억하시고, 두 번째는 사람이 사후세계에 대해서, 사람이 죽으면, 모든 사람은 다 죽습니다. 사람이 한번 딱 죽으면, 일단 몸은 이 물질계에 남아있습니다. 몸은 매장을 하면 땅속에 뭍혀 흙이 될 것이고, 또 화장을 하면 불에 다 타서 공기중에 다 뿌려지거나 물에 뿌려져서 또 그리 있을 것이고. 또 바다에 수장을 하면 내가 뭐 물고기 밥이나, 뭐 어쨌든간에 이 물질계에 몸은 남아있고, 그 몸속에 있던 마음과 혼과 영은, 불신자의 영과 혼은 음부로 가고, 신자의 영과 혼은 낙원에 가서 대기하고 있습니다. 그 낙원은 어디냐? 낙원은 천국의 대기소라 그러지요. 음부는 지옥의 대기소. 그러면 낙원에 가는 사람은 천국 가는 사람들이고, 음부 가는 사람은 지옥가는 사람들입니다.
우리가 사람이 아무리 원해도 사람의 노력으로 갈 수 있는 낙원이 아니고 순전히 하나님의 은혜라야 갈 수 있는 곳이 천국이며 낙원입니다. 우리를 천국 백성 삼아서 천국 가도록, 낙원 갈 수 있도록 그 은혜에 대해서 우리가 얼마나 감사한지 생각해야 되고, 음부에는 이 부자가 갔던 것처럼, 음부에는 하나님의 것은 하나도 없는 그런 하나님의 은혜란 곳은 하나도 없는 그곳이 바로 음부니까 그런 영원한 형벌에, 고통에 그 지옥을 면하고 우리를 영원한 천국으로 인도해주신 그 은혜를 좀 생각을 하고 많이 좀 명상을 해봐야 겠습니다. 그래서 사람이 죽으면 일단 신자의 혼과 영은 낙원에 가고 불신자의 혼과 영은 음부로 가서 주님 재림때까지 대기하고 있다가 주님 재림하시면 이제 다시 땅속에 물질계에 있던 그 몸을 입고 부활해서, 신령한 몸으로 부활해서 영원한 천국에서 영생을 하게 되고, 불신자들은 몸을 입되 영원한 지옥의 고통으로 영원토록 계속되는 이게 사후세계의 큰 실상이다 그리 알아야 되겠고, 세 번째 하나 알것은, 천국과 지옥의 형편을 생각해봅니다. 천국은 어떤 곳인가. 가보지 않아서 우리가 잘 모릅니다. 그런데 천국에는, 여기 본문에 보면은, 낙원에 보니까 아브라함이 있고, 아브라함의 품에 나사로가 안겼습니다. 천국에는 많은 존재들이, 만물들이 있는데 그 만물들이 내게 필요한 것이 아니고, 영원한 천국에 있는 모든 만물들은 나의 활동 무대고, 내게 이용된 활동 무대들이고, 천국에서 있는 존재를 크게 말하면, 나라는 사람이 있고 그다음 나와 같은 신앙계통의 믿음의 형제들이 있는데, 그 믿음의 형제들은 어떤 모습으로 있는고하니, 여러사람이지만은 한 몸을 이룬, 몸에 붙은 각 지체와 같은 그런 모습으로 천국에서, 주안에서 한 피 받아 한 몸이룬 그런 형제들이 천국에 있고, 그리고 천국에 있는 것은 오직 주님 한분 밖에 없다는 겁니다. 우리가 천국가면은 그 천국에서 주님만이 계시고, 그 주님만이 우리의 전부가 되는 것이고 그리 되야 된다는 겁니다. 주님외에는 성도에게 아무것도 필요없는, 그러니까 같은 믿는 사람들, 성도들은 마치 말하자면은 몸에, 한몸에 눈과 귀와 코와 입, 이목구비, 수족, 또 이런 모든 것들 붙은 지체가 여럿이 있는데 이게 한몸이 돼서 어느게 귀하고 천한것보다 그 지체의 위치라든지, 역할에 따라서 중요성은 있지만은 알고보면 어느 한지체도 더하고 덜함 없이 꼭 같이 중요한 그런 지체가 되어서 온 몸에 지체 전부다가 다 자기 위치에 붙어서, 자기 역할을 감당하므로 온전한 한몸을 이루어가는 것처럼, 천국에는 모든 성도들이 다 모여서 요런 주님의 몸을 이루는 요런 역할로 천국에 다 있고, 서로 돕는, 그러니까 하나되는 이런 역할로만 있고, 그 외에 모든, 다른 어떤 것이 있을지 다 알수가 없겠으나 있는 만물들은 우리들이 거기서 이런 주님의 몸이 되어가지고 주님을 영광스럽게 하는, 기쁘시게 하는 그 역할하는데에 필요하며, 하나님에게 받은 내 모든 것을 주는, 내가 은혜 베푸는 시은의 대상, 내가 하나님께 받아서 은혜 베풀어주는 그 은혜를 받아서 먹고 사는, 그런 내 시은의 대상으로만 모든 만물은 존재하고 있지, 그 외에 다른 것은 내게 돕는 것이라든지 협조 이런 것이 아니고 그런 대상이 있고, 그러니까 주님 계시고 성도들이 있고 만물들이 있는데, 그 만물들은 내가 은혜 베푸는 시은의 대상들이고, 내가 다스릴 그런 모든 존재들이고, 모든 성도들은 나와 한몸된 성도들이고, 지체들이고, 그 외에는 오직 주님 한분만 계신 곳이 천국이다.
그러기 때문에 이 세상에서 주님을 자기 주님 삼지 않으면, 이 세상에서 주님을 자기 주님 삼는 이런 생활 하지 않으면 천국가서 그 사람은 받을 것이 아무것도 없게 됩니다. 이걸 보여준 것 중에 하나가,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나와서 출애굽할 때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아무것도 필요가 없었습니다, 그들에게. 하나님이 계시니까 하나님 한분이 그들에게 먹을 것도 됐고, 입을 것도 되고 신발도 되고, 반석의 물도 되고, 홍해바다 건너가는 그런 것도 되고, 전쟁에 승리도 되고. 하나님 한분 계시면 그들에게 부족함이 없었고 능치 못함이 없었고 필요한 전부다가 다 되었습니다. 하나님 한분 떠나면 아무것도 없는 그들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이스라엘이 하나님 한분 계시니까 아무런 부족함이 없는 전부가 되었던 것처럼, 이게 성도의 세상 생활인데, 이것이 천국이 바로 이 모습 그대로다 그말이지요. 천국이란 곳은 우리 성도에게 주님 한분 계시면 주님이 전부지, 주님 외에 다른 것은 아무것도 필요없는 그런 나라가 천국이고, 바로 그 천국에서 주님과 자기와 이런 관계로 그렇게 살아갈 수 있는 그 연습, 그런 관계를 맺어가는 것이 성도의 이 세상생활이기 때문에, 믿는 사람이 세상에서 무엇을 하든지, 뭘 얻든지, 받든지 어떤 것이든 모든 것은 다 주님 한분으로 인해서, 주로 말미암아, 주님 때문에, 주로 인해서 받아야되고, 주님에게 받고, 주님 해주시는 것이라야 되고, 주로 인해서 생겨진, 움직이는 그런 것들이 되어져야 그 사람이 천국에 맞는 사람이 되고, 천국에서 주님의 전부를 자기것 삼는 이 사람이 될 수가 있는 것이지, 이 세상에서 하나님 없이 자기 능력으로, 자기 실력으로, 어떤 피조물로 인해서 산 그 모든 것은 낙원에서, 천국에서는 전혀 상관없는 그런 생활, 그런 움직임이 되고야 만다 그말이지요.
그러기 때문에 신앙의 최종성공은 주님과 더불어 동거동행하는, 동고동락하는, 주와 하나 되는. 그래서 내가 하는 말은 내 말이 아니고 아버지께서 나를 통해서 하시는 말씀이고, 내가 하는 일은 내 일이 아니고 아버지께서 나를 통해서 나타나는 것이다. 주 동하면 나 동하고, 주 정하면 나 정하고. 순간순간 주님으로 함께 호흡하고, 일보일보 주님과 더불어 동행하는 이것이 세상에서 성도의 최종 성공이고 목표고, 요래 산것만큼 천국에서 주님과 동거동행하고 주님으로 전부 삼는 그 사람이 될 수가 있다는 것이니 이게 말도 알아듣기 어려운데, 실제 생활에서 이게 얼마만큼 되겠습니까. 참, 신앙의 세계라는 것은 깊고도 높고, 참 어렵습니다. 그래도 우리들이 가야되는 길입니다. 그래서 사후세계에서, 사후세계, 하나는 사람이 일단 죽으면 신자의 영과 혼은 낙원으로, 불신자의 영과 혼은 음부로 간다. 그다음, 천국에는 거기는 성도들만 있는데, 그 성도들은 전부 한 몸으로 다, 모든 한몸에 붙은 지체로 그렇게 있고, 그래가지고 온전한 한몸이 되어서 주님을 나타내고, 그 외에는 주님 한분만이 전부라. 그분계시면, 그분에게서 모든게 다 나왔으니까, 전부 그분에게 다 있으니까 그분 한분으로 전부 삼는 이 나라가 천국이고, 그러기 때문에 그 천국에 맞는 주님과 나와의 관계, 주님으로 전부 삼는 그 생활은 이 세상에서 내가 사는, 내게 주신 평생을 산 만큼 천국에서 주님으로 자기 전부 삼는, 부족함이 없는 그런 생활이 되게 되고 아무리 주님이 무한하신 분이고 모든게 다 되지만은, 내가 세상에서 주님과 관계를 바로 맺지 못하고 주님 없이 산 생활이 있는 만큼 천국가면 주님은 내 주님이 안되기 때문에 그만큼 부족할 수 밖에 없는 것이고, 그러면 그 사람이 천국에서의 역할이 줄어들 수 밖에 없을 것이고, 역할이 줄어들면 그 사람의 쓸모가 적다는 말이고, 쓸모가 적으면 그 사람의 뭐가 적습니까? 가치가 적은 것이고, 가치가 적으면 그 사람의 영광이나 대우는 줄어들 수 밖에 없는 이게 건설구원의 영광의 차이다 그리 말할 수 있겠지요.
반대로 지옥은 어떤 곳인가. 지옥은 하나님 은혜가 없는 곳. 하나님이 계시지 않는 곳인데, 하나님은 무소부재니까 계시지 않는 곳이 없는 것인데, 은밀하게 따지고 들어가면 지옥에 하나님이 없다 그래 말을 못하지요. 그러나 지옥에 간 사람들에게는 하나님은 없는 것이 되는 겁니다. 또 하나님의 은혜가 하나도 없는 그곳이 지옥입니다. 그곳은 이 세상에서 살되 하나님 없이 산 사람들, 하나님과 상관 없고, 하나님의 은혜 없이, 하나님의 도움 없이, 하나님의 능력없이, 하나님과 관계없이 순전히 자기 힘으로, 자기 지능으로, 혹은 피조물 무엇으로만 살아서 하나님과 관계가 없고, 하나님의 지도도, 하나님의 가르침도, 하나님의 도우심도 전혀 없는, 하나님과 관계없이 산 그런 사람들, 그런 요소들만 모여가지고 간 곳이 지옥이기 때문에, 지옥에는 하나님 없고, 하나님 은혜가 하나도 없는 그런 곳이 지옥이라. 그래서 이 부자가 물 한방울도 자기 마음대로 하지 못했다는 것은,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은혜는 그에게, 하나님의 은혜로 산 생활, 하나님과 관계 맺고 산 생활은 물 한방울 움직이는 것도 이 부자에게는 없었다 그랬으니까 참, 상상하기 어려운 부자의 너무도 실패한 그런 생애라, 그리 볼 수가 있겠습니다. 지옥은 이런 곳입니다. 하나님이 안계시는 곳, 하나님의 은혜가 없는 곳. 자기로만 산 사람 혹은 피조물로만 산 사람, 하나님 없이 산 사람 그런 사람과 그런 생활과 그런 요소들만 모여 가는 곳이 지옥이고 음부다.
그다음 네 번째로 부자의 소원이 두가지가 있습니다. 부자의 소원 두가지. 하나는 물 한방울입니다, 물 한방울. 물 한방울인데 앞에서 말한대로 그리 살았으니까 그리 된 겁니다. 물 한방울을 부자가 자기 혀에 적시지 못해서 그렇게 간청을 했습니다. 나사로를 보내서 손가락 끝에 물을 찍어서, 손가락 끝에 물을 찍었으니까 한방울 아니겠습니까? 물 한방울도 음부에 가서 자기것이 없었으니까 세상에서 얼마만큼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하나님 없이 그렇게 살면, 그리 살 수가 있을까? 그런데 의외로 이렇게 산 사람이 많을지 모릅니다. 참 깊이 깊이 좀 생각해 봐야 되고, 또 하나는. 형제 다섯이 있으니까 그 형제 다섯을 내가 온 이곳에 오지 않도록 해주옵소서. 그래 간청을 했는데 만약 이 부자가 자기가 죽고 난 다음에, 자기 당면할 그 상황을 살아생전에 알았더라면 그리 살지 않았을 것이고 형제들 그렇게 인도하지 않았을 겁니다. 안봐도 본문에 기록된 내용으로 봐서 이 부자는 형제우애가 돈독한 사람이고 그 아끼는, 그 좋은 의 좋은 그 형제들, 자기 형제들을 자기 실력껏 자기와 같이 그렇게 만들었을 겁니다. 그러니까 음부에 가서 보니까 자기 생애는 전부 실패였고, 영원한 고통이였고, 지상에서 살아생전 자기 형제들을 자기처럼 그렇게 인도했고 그렇게 가르쳤고 그리 이끌었고, 그리 만들어놨으니까 그들도 그냥 두면은 자기처럼 될 것이기 때문에, 음부에 와서 보니까 그게 아닌 줄 알고, 그러니까 인생관 가치관이 제대로 눈을 떠서, 거기 가서 보니까 잘못된 줄 깨닫고 그때사 이거 큰일났구나 싶어서 그 고통 중에, 자기 고통 면하는 것이 안되니까 그 다음으로는 부탁한 것이, ‘내 형제 다섯은 이곳에 오지 않도록 좀 보내주옵소서’ 그리 간청했지만은 이미 때는 늦었기 때문에 그들에게는 모세와 선지자가 있으니까, 그들에게는 율법도 있고, 하나님의 은혜도 있고, 그들에게는 성경도 있고, 복음 전하는 성도들이 있고, 주님 대속이 있고 그들에게 들을찌니라. 그러기 때문에 이 부자가 때늦은 후회를 하고, 때늦은 소원을 가졌지만은 이미 다 기회가 지나고 나니까 다시는 오지를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는 많은 기회를 주십니다. 수많은 기회를 주시는데, 그 주시는 기회를 전부 마지막까지 다 차버리고 나면은, 더 이상 주실만큼 다 주고 나면은 두 번 다시 기회가 없고, 그러고나면 영원한 이런 결과만 있을 수 밖에 없는거니까 오늘에 봐야 되겠고. 하나 더 보태면 죽은 자가 다시 세상에 살아오는 법은 없는 겁니다. 나사로를 보내어 그랬지만은, 죽은 나사로가 다시 살아갈 수 없는 것이고, 부자도 다시 살아갈 수 없는 것이고. 사람이 일단 죽으면, 죽고 난 다음에 그가 활동할 수 있는 것은, 믿는 사람이면 낙원에서, 낙원 안에서 있고, 안 믿는 사람이면 음부 안에 있지, 죽은 사람이 혼이 되어서, 귀신이 되어서 이 세상에 나오는 수는 없는 것이다, 요것도 하나 참고로 기억을 하십시다.
그래서 오늘 오후에는 크게 다섯가지를 간단히 좀 생각해봤습니다. 첫째는 부자의 무지와 결과. 왜 그리 되어졌느냐. 그는 세가지를 몰랐기 때문에 그리 되어졌다. 두 번째, 크게 두 번째. 사람의 사후세계, 신자의 영과 혼은 낙원에, 불신자의 영과 혼은 음부에 간다. 영원한 고통이다. 세 번째, 천국과 지옥의 형편에서, 천국은 주님만 계시고 성도들만 있는 곳인데, 성도들은 다 모여서 한몸 이룬 지체들로 있고 주님만이 전부고, 그 외에 모든 만물은 성도들의 활동무대고 시은의 대상이고, 지옥에는 그곳은 하나님이 안계시고 없는 곳이고, 하나님의 은혜가 없는, 하나님 없이 살고, 자기로만 산, 피조물로만 산 자들과 그런 요소들만 가는 곳이 지옥이다. 부자의 네 번째, 부자의 소원 두가지. 때늦은 후회를 가지고, 때늦은 소원을 가졌지만은 이미 다 기회가 지나갔기 때문에 두가지 다 이루지를 못했기 때문에, 살아생전 우리는 이것을 바로 가져야 되겠고, 마지막 다섯 번째로는 죽은자의 활동은, 일단 죽고나면 지상세계에 오지 못한다는 것. 낙원에서 음부에서 제한되어 있지, 지상으로 올라오지 못한다는 크게 다섯가지를 기억하면서 사후세계를 보고, 오늘 우리들의 세상살이를 바로 살아가는, 이 부자처럼 살지 말고, 나사로처럼, 주시는 현실을 하나님을 알고 감사하고 거기서 하나님 영광스럽게, 기쁘시게 하는 그 생활에만 총력 기울이는 이것이 믿는 성도의 성공하는 생활이다 하는 것을 기억하십시다. 다같이 통성으로 기도 드리겠습니다. 음부에는 하나님의 은혜가 하나도 없고, 자기를 도울 존재도 하나도 없는 곳이 음부고 지옥입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없고 그 은혜를 갖다 줄 존재도 없고, 다 각각 자기로 산 그런 것들, 그런 존재들만 모인 곳이 지옥이니까 참 고통 고통으로만 영원히 계속되는데, 세상을 잘못살면 그런 지옥이 마련됩니다. 우리는 천국을 마련하는 그런 세상살이하도록 해야되겠습니다. 홍포 입은 부자가 무지했던 세가지도 같이 기억하고 우리 세상생활 한번 돌아보십시다.
제목: 인간의 사후 세계
요점:
1. 부자의 3가지 무지와 그 결과
1) 하나님께 대해서 3가지 무지
2)인생에 대해서 3가지 무지
3)세상에 대해서 3가지 무지
- 무지의 결과는 하나님 없는 생애
- 자기만 영화롭게 기쁘게, 형제들까지도
2. 사람의 사후(사람이 죽으면)
- 신자의 영과 혼은 낙원에
- 불신자의 영과 혼은 음부에
3. 천국과 지옥의 형편
1)천국은
- 천국은 믿음 계통의 성도들이 있고
- 모든 성도는 주님의 몸을 이룬 지체들의 관계
- 성도 외에는 주님 한 분만 계시니 주님이 전부
- 모든 만물은 시은의 대상이며 활동 무대
2)지옥은
- 하나님 없는 곳, 무소부재시나 지옥에 있는 존재들에게는 없는
- 하나님 은혜가 없는 곳
- 하나님 없이 산 자들과 요소들만 모인 곳
4. 부자의 사후 소원 2가지
1)물 한 방울
- 손가락 끝에 물을 찍어 혀를 서늘케 해 달라 했으니
- 물 한 방울도 가질 수 없는 영원한 고통
- 세상에서 물 한 방울도 하나님으로 살지 않았으니
2)다섯 형제를 위한 간청
- 세상에서 형제를 위해 한 모든 것은 자기처럼 만든 결과
- 음부에 가서 보니 착각과 오판을 깨달았으나 이미 늦어
- 음부에 가서 알 것을 왜 세상에서는 몰랐을까?
- 얼마든지 알 수 있었으나 스스로 알지 않았으니 유구무언
5. 죽은 자의 활동은 제한적
- 신자는 낙원에서만 활동
- 불신자는 음부에서만 활동
- 죽은 자가 다시 세상에 살아올 수는 결코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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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원문)
20140202 주후
누가복음 16:22-31
이 홍포 입은 부자가 세상을 잘못살고 실패를 했습니다. 그 원인은 오전에 말씀드린대로 크게 말하면 세가지를 몰랐기 때문이다 그리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물론 그 안에 또 세부적으로 들어가면 더 많이 있을수 있고, 또 각도를 달리하면 다른면도 있을 수 있는데 일단 세가지로 생각해본겁니다. 첫째는, 이 부자는 하나님께 대해서 무지했다 그리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몰랐고, 만약에 알았다면 믿지 않았고 생각지 않았고, 또 알았다면 하나님이 알려주신 그대로 알지 아니하고 자기대로 알았고 피조물들이 아는 그대로 알았지, 하나님이 하나님 당신을 말씀으로 알려주시는대로 바로 알지 않았기 때문에 결국 모른 결과가 되고 말았습니다. 하나님은 완전하신 분이기 때문에, 완전은 무한과 연결되어있고 그래서 하나님은 그 면면이 무한한 분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이 하나님을 알래야 다 알 수가 없는 것인데, 크게 말하면 이 부자가 하나님을 알지 못했다는 것은 세가지면을 생각해보면, 첫째는 하나님의 두려우심을 몰랐다, 그래서 그에게는 하나님께 대한 경외심이 없었다, 하나님을 두려워함이 그에게 없었다 그말입니다. 하나님을 아는대로 알고나면 두려워하지 않을 수가 없는데, 하나님을 몰랐기 때문에 마치 하룻강아지가 범 무서운줄 모른다는 것처럼 이 부자는 하나님의 지극히 크고 두려우심을 몰랐고 생각지 않았고, 그러므로 그 두려우신 하나님 앞에서 사는 생활이 없었습니다. 말하자면은 조심이 없었고, 경계가 없었고, 근신이 없었고 그냥 세상에서 자기를 위해서는 그런 것이 있었을겁니다. 자기의 명예, 자기 위신, 자기 체면, 어떤 사람은 보면은 다른 것 다 양보하고 참아도 자기 위신 깎이는 것 못 참는 사람이 있습니다. 자기 체면이 깎이면 못 참는 사람이 있고, 자기 권위가 깎이면 못 참는 사람이 있습니다. 사람에 따라서 다 그 면면들이 있는데, 이 부자가 자기를 아름답게 꾸민걸 보면, 자기의 명예라든지 위신이라든지, 자기 자신이 아름답게 꾸며져서 드러나는 그 면을 위해서는 조심도 했겠고, 근신도 했겠고, 자중도 했겠고 여러 가지 필요한 그런 노력들을 했겠지만은, 하나님을 생각하고, 하나님이 크고 두려우신 그분앞에서 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에, 오늘 아침에 주일학교 공과가르치는데 보니까 ‘ 때문에’ 하면 안되고 뭐해야 된다 그랬습니까? ‘덕분에’. 누구 덕분입니다, 누구 덕분입니다 그래살지 누구 때문입니다, 때문입니다 그러면 핑계, 원망이 되니까 안된다 그랬는데, 방향을 바꿔서 이 부자는 ‘하나님 때문에’ 산 것이 없었습니다. 하나님 때문에 조심하고, 하나님 때문에 근심하고, 하나님이 보고 계시니까 그래서 두려워서 함부로 살지 못하는 이런 것이 없어서 하나님을 경외함이 없었다. 그래서 이 부자는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그분의 크심을 아는 것에 대해서 전혀 무지한 사람이었다.
사람이란 것은, 두려움이란 것은 지식의 소산입니다 하나의. 그러니까 하룻강아지는 범에 대해서 지식이 없으니까 두려운 줄 모르니까 함부로 날뛰는 겁니다. 그런데 범을 겪어보고 아는 개들은 범 냄새만 나면 마루 밑에 들어가서 죽은듯이 있지, 꼼짝도 못하고 반쯤 죽어버린다 그러지요. 알면 그런겁니다. 뭐든지 알면 조심 안할 수 없고, 알면 거기 대해서 영향을 받고 피동되지 않을 수가 없는데, 우리가 믿음이 부족해도 우리대로 하나님을 알기 때문에 현실 생활에서 자기 습성대로 또는 환경에 피동되어 그리 살다가도 어느 선까지 들어가면 우리가 아는 하나님이 생각이 나서 행동이나 생활이 제재를 받고 막나가지를 못하지 않습니까. 그렇지 않습니까? 여기 계신 분 대부분 그러시지요 아마. 어느정도 선까지는 하다가도 ‘이거 하나님께서 진노하신다’ 싶은 거기까지 가면은 겁이 나서 못합니다. 그런데 이 부자는 그런 것이 없었다 그말이지요. 하나님께 대한 두려움이 이 사람에게는 없어서, 세상을 살되 참 실력껏, 자기 노력껏 살았는데 어쨌든 하나님께 대해서는 무지했습니다. 하나님께 대한 두려움.
그다음 두 번째는, 하나님의 주권. 하나님의 주권이라 말은, 하나님이 세상을 운영하신다 그말입니다. 하나님이 짓기도 지으셨고, 하나님이 모든 것을 하나 하나 움직여서 운영해 나가시는데, 그게 하나님의 주권인데, 그 하나님의 주권 섭리에 방향을 이 부자는 몰랐습니다. 하나님이 왜 이 세상을 지었고, 하늘과 땅과 바다와 그 가운데 모든걸 다 지어놓고 모든 우주의 움직임, 산천초목들의 움직임, 또 사계절의 변화, 낮과 밤, 이런 모든 존재들의 역사가 있고, 그 모든 것을 하나님이 이렇게 저렇게 운행해 가시며, 사람을 만들어두시고 사람들을 낱낱이 간섭하시고 섭리하시는 그 하나님의 주권 섭리의 방향을 깨닫지를 못하니까 그는 자기대로 산 겁니다. 하나님의 섭리와 그 섭리의 흐름, 그 섭리의 방향은 생각지 아니하고 자기대로만 살았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주권 섭리의 방향을 모르니까 자기대로 그냥 아무렇게나 살 수가 있는 겁니다.
그리고 세 번째는, 하나님의 심판을 이 사람은 몰랐습니다. 마지막에 하나님께서 인간들에게 마음껏 자유를 주시고, 그 자유에 대한 책임을 물으시는 하나님의 영원한 심판. 영원한 상벌에 그 보응을 결정 짓는 하나님의 판단, 갚으심이 있다는 이 사실을 이 부자가 몰랐습니다. 세가지 첫째, 큰 세가지 중에서 하나님께 대한 무지 세가지입니다. 첫째는 하나님 경외의 무지, 두 번째는 하나님 주권의 무지, 세 번째는 하나님 심판에 무지했다, 몰랐다, 알았더라도 제대로 잘 몰랐고 생각지 않았습니다.
두 번째 이 부자는 인생에 대해서 무지했습니다. 사람이 무엇인가? 인생에 근본이 무엇인지를 부자가 몰랐습니다. 사람은 어디서 생겼을까? 사람이 생기기는 부모가 낳았겠지. 그 부모는 조부모가 낳았겠지, 또 그 위에 낳았겠지. 그래가지고 사람은 거슬러 올라가면 세상이 말하는대로 원숭이가 변해 사람이 되었고, 그 원숭이는 어떤 뭐 작은 생물이 어떻게 되어서 오랜 수십억년 세월속에서 이렇게 저렇게 변화되고 진화되고 그래가지고 사람이 됐겠지. 그래가지고 사람이 생겨놨겠지. 이런 말도 안되는, 얼토당토 않은 그런 소리를 하고. 아니면 자기대로 알고. 그래가지고 인생의 근본은 하나님이 인생을 만들었으므로 하나님이 모든 인생의 주인이고, 모든 인생의 주인이 하나님이 계신다는 것을 이 사람은 몰랐습니다. 하나님이 지으신 인생이다, 하나님께 지음받은 인생이다, 이게 뭡니까? 제가 손에 들고 있는게 뭔가요? 옳지. 이거 누가 만들었을까요? 사람이 만들었겠지. 시계 만드는 사람이 만들었겠지요. 이거 만든 주인이 있는 겁니다. 뭐든지. 예술가들이, 화가들이 그림을 그리면 아주 혼을 담아서 그림을 그립니다. 그래놓고 그 그림을 걸어놓고 감상도 하고 보여줍니다. ‘이 그림을 누가 그렸습니까?’ ‘아무것이가 그렸습니다.’ ‘참, 그림 그린 실력이 참 좋습니다, 참 잘 그렸네요. 그림속에 참 혼이 들어있습니다.’ 도자기를 만들어놓고 ‘이 도자기를 누가 만들었습니까?’ ‘아무것이가 만들었습니다.’ ‘참, 실력있는 보통기술이 아닙니다.’ 만든, 모든 물건은 만든 주인이 있는 겁니다. 그 물건을 만든 제작자가 있는 겁니다. 사람이 만든 것은 사람이 주인인 것이고, 자연이란 것은, 사람이 볼때 자연이지, 전부 하나님이 만드신 것이지, 들에 핀 수많은, 좀 있으면 봄이 되면은 이제 싹들이 모두 올라올건데 들판에 가보면 그 새파란 잔디밭에 수없이 많은, 저 대관령 목장 같은데 그런데 가보면 보나마나 뭐 그 푸른 잔디, 수만평 들판에 잔디가 올라올건데, 그 수많은 잔디밭의 새싹 하나도 하나님께서 다 지으셨지 그게 저절로 그리 나는 법은 없는 것이고, 해운대 바닷가에 모래알맹이 숫자가 몇 개나 되는지 아십니까? 000? 해운대 바닷가에 있는 모래알 숫자가 몇갠지 압니까? 몰라요? 계산해보면 알지. 00씨 몇갠지 압니까? 약 3천조개쯤 됩니다. 3천조개는 좀 많을까, 한 3천억개쯤 된다 그럴까요? 어떻게 압니까? 한번 세보면 알겠죠 가서. 한번 세어보십시오. 확인하는 법이 없지요. 그런데 그 수많은, 수천억개, 수조개도 될만한 그런 많은 모래알 하나 하나가 그것 전부다 주인이 있는 겁니다. 방금 말씀드린 것은 그냥 하는 말이고. 그래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 바닷가 모래알 숫자가 모두 몇갭니까? 저거는 좀 너무 터무니 없겠지만은, 사람들이 셀 수 없는 많은 분량, 그거 몇 개냐? 대강 한 2천억개쯤 됩니다. 어떻게 압니까? 그거 다 아는 수가 있습니다. 한번 세어보십시오. 아는 수가 있습니다. 한번 세어보십시오, 맞는가 안 맞는가. 대강 계산하는 수는 있겠지요. 그냥 어느 숫자 세가지고 무게 달아보면 나올거니까. 그러니까 그런 거 하나도 하나님이 다 만드셨지, 그 모래알 알맹이 하나가 저절로 생겨지지를 않는다 그말이고, 하물며 만물의 영장인 사람이야 하나님이 만드셨지 그게 저절로 생겨질 리가 없지 않습니까? 하나님이 사람을 지으셨고, 하나님께 지음받은 인생이고, 그러므로 사람은 주인이 계시고, 그 주인이 있으니까 그 주인의 뜻을 따라서 바로 살아야되는게 사람인데, 이 부자는 이 인생이 무엇인지를 몰랐습니다. 인생의 근본도 몰랐고. 그런데 사람의 주인이신 하나님께서 사람을 왜 만드셨느냐? 만드신 목적이 있는 겁니다. 만드신 목적. 그것이 만들어진것에 따라서 용도가 다 있겠지만은, 하나님이 사람을 만드신 목적은 딱 하나입니다. 본문으로 말하면 두 개고. 뭡니까? 하나님이 사람을 만드신 목적이 무엇인가요? 하나님 영광을 드러내기 위해서, 또 하나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기 위해서. 하나님을 나타내기 위해서 사람을 지으신 겁니다. 그 사람을 통해서 하나님을 나타내는 겁니다. 그 사람을 만드신 하나님이 계신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 그러기 때문에 사람이 하나님께 지음을 받았고, 이런 용도 목적으로 지음받은 사람이 하나님을 잊어버리면, 이사야 1장에 보면은 ‘소는 임자를 알고, 나귀는 그 주인의 구유를 알것만은 이 백성은 나를 알지 못하는도다’ 하나님에게 지음받은 인생이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하나님 나타내는 자기 본분을 망각하면 하나님께 버림을 받는 겁니다. 사람은 하나님께 지음을 받았고, 지으신 하나님의 목적은 당신이 지어놓은 그 사람을 통해서 하나님 당신을 나타내 보이는 겁니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볼 수 있게 나타내는 것이 사람의 근본의 본분이고 목적입니다. 사람의 존재 이유입니다. 목적이고. 이걸 이 부자는 몰랐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 생각지 아니하고 자기만 나타냈지, 하나님은 나타내지를 않았습니다. 다른 나라에 임금이 사신을 보냈더니, 사신이 가서 자기만 실컷 드러내고 자기 나라 왕은 탁 숨겨놓고 까뭉개버리면 그 사신은 역적 기질이 있어서 그는 목을 쳐버립니다, 왕들이. 그냥 용납하지 않습니다. ‘너 이놈, 우리 나라, (이 나라 옛날에 나라는 왕의 나라거든요) 이 나라는 내 나라인데, 내가 주인인데, 내가 너를 이웃나라에 나를, 내 권위와 내 위엄을 나타내고, 우리 나라의 국익을 위해서 보냈더니 네놈 이익만 챙겨먹고, 사리사익만 챙겨? 네 놈이 역적 아니냐.’ 목을 쳐버립니다. 그냥 두지 않지요.
성경에 그래가지고, 평생 참 잘 살았는데 마지막에 그래가지고 하나님께 크게 진노받고 한 사람이 누구지요? 성경에 유명한 인물, 이거 모르면 큰 일인데요. 누굽니까? 평생을 잘 살았는데 마지막에 하나님 딱 숨겨놓고 그래하다가 하나님께 버림받은 왕, 이름 뭡니까? 히스기야 왕이지요, 히스기야. 그 히스기야가 마지막에 앗수르대군 18만5천명 물리치고 그리고 난 다음 다 이겼고, 승리했고, 병이 들었는데 ‘너는 네 집에 대해서 유언해라, 네가 죽고 살지를 못하리라’ 그러니까 히스기야가 울면서 하나님 앞에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내가 살아생전 이제 하나님을 뵈옵지 못하겠고 이제 죽어야 됩니까’ 하고 하도 우니까 하나님께서 내가 너에게 생명을, 몇 년 영장시킵니까? 15년을 연장 시켜줬는데, 15년 연장시켜줬는데 살아나고나서 바벨론나라 사신들이 바벨론에 사신을 보내서 세상에 죽을 병이 들어 살다니, 무슨 능력인가 싶어서 사자를 보냈는데 히스기야가 하나님의 능력이라 말은 입도 뻥긋 안하고 딱 닫아놓고, 하나님은 뒤로 쳐박아 놓고 우리나라가 보물이 이래 많습니다. 우리나라 무기가 이렇습니다. 내가 이런 나라 만들었습니다 하고 자기만 앞에 잔뜩 자랑하니까 하나님께서 이사야를 보내서 ‘그들이 어디서 왔습니까?’ 먼 나라 바벨론에서 왔습니다. 뭘 봤습니까? 우리나라에 있는 보물창고, 무기고, 내탕고 전부 다 봤습니다. 하나님께서 때가 되면은 당신이 보여준거 하나도 남김없이 바벨론으로 전부다 다 빼앗길 것이고 몽땅 포로되어 갈 것이고, 당신의 자녀중에서 바벨론 나라에 환관될 사람들이 있을 겁니다. 그랬는데 히스기야가 뭐라고 그랬습니까? ‘예, 좋지요 뭐. 내 생전에만 편하면 안되겠습니까?’ 참 왕의 자격 없는, 어떻게 살아생전 그래하다가 그렇게 변할 수가 있는지. 그래 변할 수 있는게 사람입니다. 하나님은 가장 진노하시는 것이, 하나님 영광 딱 가로막고 다른 거 내세우는 겁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대신해서 자리에 앉히는 걸 무슨 죄라 그럽니까?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걸 다른 것이 할 수 있다고 그것에게 절하고, 손 비비고, 그것을 하나님 대신 앉히면 그걸 가리켜 뭐라 그럽니까? ‘우상’이라 그러지 않습니까? 가장 진노하시는 죄중에 하나가 우상죄입니다. 그래서 십계명 서두에 하는 말씀, ‘나는 너를 애굽땅 종 되었던 집에서 인도하여낸 너의 하나님 여호와다’ 그말은, 너희들을 구원한, 너희들을 책임지는 하나님 주인이 계시니까 나를 잊어버리지 말아라 그말입니다. 십계명 지키기전에 먼저 기억할 것이 하나님을 잊지 말라는 겁니다. 내가 살아있고, 내가 너희들을 구출했고 책임지니까 나를 잊어버리지 말아라. 그래서 십계명을 지켜도 그 서두 말씀을 기억하고 지켜야 바로 지키는 것이지, 그 서두 잊어버리고 십계명 지키는 것은 바른 신앙이 아닙니다.
그래서 인간의 궁극의 목적이며, 최종 목적이며, 근본의 목적은 하나님을 자기를 통해서 이 세상에 나타내는 겁니다. 이게 지음받은 사람의 목적입니다. 이 부자는 이걸 까마득히 몰랐습니다. 우리는 알았습니까? 우리도 과거에는 몰랐지요. 모르고 그냥 살았습니다. 참, 눈 먼 망아지가 워낭소리 듣고 따라간다고, 그냥 믿음 믿음하고 따라가는 겁니다. 알고보면 참 어렵습니다. 오전설교하고 오후설교 준비하면서, 제 생각속에 그런 생각이 듭니다. 오전내내 하는 말이, ‘하나님 하나님’ 하나님만 노래 부릅니다. 사람이 사람인데 하나님만이 전부인가? 왜 하나님만 말하는가? 오직 하나님만 영화롭게, 기쁘시게 해야 되는가? 사람은 나서면 안되는 것인가? 하나님이 전부고, 그 하나님을 기쁘시게 영화롭게 하고, 하나님만 나타내면 거기에 자기와 모든 것은 다 들어있는 겁니다. 요 다음에 또 나올건데.
그래서 이 부자가 첫째는 하나님께 대해서 세가지, 두 번째는 인생에 대해서 세가지인데, 첫째는 인생의 근본, 인생은 자존자가 아니고, 인생을 만든 다른 무엇이 있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이 만들어 하나님께 지음받은 인생이다. 하나님께서 지으셨다. 사람은 주인이 있다. 두 번째는 그 인생은 지음받은 목적이 하나님을 나타내서 하나님을 영광스럽게 한다 그랬는데, 사람이 하나님을 영광스럽게 할 수 있습니까? 이 세상에서 그 어떤 존재도, 그 존재에 대해서 위인전을 쓰면, 이것 참 오해할까 싶어 이 말은 못하겠는데, 사람에 대해서 위인전을 쓰면, 어떤 사람은 그 사람의 내면속에 들어가면 그 사람의 참모습이 어떤 사람은 80이면 거기다가 100을 얹어서 180, 280 그래 만들어서 위인 만드는 사람도 있고, 어떤 사람은 그 사람의 본모습은 한 500이 되는데, 사람이 필서로 기록하려니까 500까지 못하고 한 300정도로 나타내고 그래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런데 후자로, 그 사람의 본모습은 한500쯤이나 500가지나 되는데, 사람들이 오해할까 싶어서, 너무 소설같은 그런 이야기라고 치부할까 싶어서 좀 줄여서 쓰는 그런 사람도 역사에 아주 드물게 있을 수 있지만은 희귀합니다. 대개의 위인들은 전부다 100가지나 있으면 200가지, 500가지, 천가지나 있는 것처럼 거기다가 포장을 막 과대포장을 잔뜩하고, 화장품을 입혀가지고 화장을 해서 그래가지고 위인전 만드니까 그리 되는 거지요. 그런데 하나님의 사람들, 참된 하나님의 사람들은 파고 들어가고 들어가도 자꾸 나오는게 하나님의 사람들의 본모습이고, 그 원형이신 하나님은 무한이기 때문에 인간이 그분을 과대포장해서 인간이 수식어를 갖다붙여서 그래가지고 그분을 영광스럽게 할 수가 없는 겁니다. 그분은 계시는 그 모습 그대로를 우리들이 나타내는데, 그대로도 다 나타내지 못하고 그러기 때문에 인간이 아무리 노력해도 사람의 노력만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지 못하고, 우리가 할 수 있는대로 하나님의 뜻을 따라 바로 행해나가면 하나님께서 당신을 드러내시게 되면 그게 영광이 되어진다 그말입니다. 사람의 목적은 이겁니다.
그리고 세 번째는 인생의 결국을 몰랐습니다. 사람은 이 세상에서, 사람은 영원불멸의 존재인데, 그러나 이 세상에서는 정해진 기한이 되면 떠나야 되는 건데, 이걸 사람들이 알면서도 부인하고 잊어버리고 사는 것이 대부분의 사람들이며 오늘 우리들의 모습입니다. 자기 죽음의 날을 늘 기억하고, 죽을때가 있으니 그때를 기억하고 살라고 그렇게 사시는 분들이 여기 얼마나 좀 계십니까? 저도 참 그렇게 살기 어렵습니다. 그러니까 어떨때는 보면은 잠자다가 오늘밤에 또 내일 못 일어날지 알수가 있나. 그런 생각도 가끔 하기는 하지만은 일어나기를 바라고 일어나겠지 그래싶고, 그렇게 살지, 인생이 언제 어떻게 된다는 것을 늘 염두에 두고 떠나가야된다는 것을 계산하고 사는 사람이 별로 많지 못하고, 이 부자는 아예 까마득히 잊어버리고 살았습니다. 젊을수록 그럴 것이고, 나이 많아도 그럴 수 있을 것이고. 세 번째, 세상은 떠나야 되고, 떠나고 나면 하나님의 심판 받아서 영원한 상벌에 보응을 받아야되는 인간은 영원불멸의 존재라. 인생의 결국을 몰랐습니다. 세 번째는 이 부자가 세상에 대해서 너무도 무지했습니다. 세상이 뭔지를 몰랐습니다. 이 세상은 사람과 마찬가지로, 세상은 넓고 넓은데, 우주 이 세상 물질계는 지으신 주인 하나님이 계신다는 이 사실을 이 부자가 기억지 않았고 알지 못했습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지으셨다, 또 이 세상을 지으신 목적이 있습니다. 이 세상은 무엇하는 세상인지. 세상의 주인이 누굽니까? 근본 주인은 하나님이신데, 하나님께서 세상을 누구한테 맡겼습니까? 사람에게 맡겼습니다. 아담 하와에게, 생육하고 번성하라, 땅을 정복하라, 통치하라. 이 세상은 사람이 주인이고 하나님께서 인생을 만드시고, 인생을 통해서 하나님 당신을 나타내려고 하신 것처럼 그 인생들의 하나님 나타내는 활동무대가 바로 이 세상이므로, 그래서 세상은 인간에게 주셨고, 인간을 통해서 인간이 활동을 통해서 하나님을 나타내는 활동무대로 주신것이 이 세상이므로 세상의 용도는 하나님을 영화롭게, 기쁘시게 하는데 쓰여지는 그런 무대, 그런 모든 존재들이 이 세상이다, 거기 이용되는 것들이 이 세상인데 이 부자는 반대로 하나님 영화롭게 기쁘시게 하는 건 생각지 아니하고 자기를 꾸미고 나타내는 거기에 세상 모든 것을 다 이용을 하는 겁니다. 하나님이 주신 세상, 자기 가진 것, 그 가진 것을 활용해서 다니면서, 또 뭘 하면서, 모든 활동을 통해서 하나님이 만들어주신 세상이라는 공간에서, 하나님이 주신 세상의 모든 것을 이용을 해서 전부 자기 위해 썼으니까 이 세상을 악용한 그런 부자가 되고 말았고, 그리고 세상의 결과. 이 세상은 어떤 세상이냐? 세상은 영원을 마련하는, 농사 짓는 세상이며, 농사가 되며, 종자가 되는 세상이다. 세상은 천국이 마련되는 곳이고 지옥이 마련되는 곳이 세상이란 이 사실을 이 부자가 까마득히 몰랐습니다. 이것들을 모르니까 부자의 생애는 그리될 수 밖에 없는 것이고, 오늘날도 이 천하에 수많은 사람이 살고 있지만은 이 사실을 크게 하나님에 대해서, 인생에 대해서, 세상에 대해서 이것을 하나하나를 모르게 되면 사람이 별 수 없이 이 부자처럼 살아갈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그말이지요.
자, 한번 더 해보십시다. 부자가 평생을 물 한방울도 남김없이 전부 자기로 살았는데 그 이유는 세가지를 몰랐습니다. 첫째, 누구 몰랐습니까? 하나님께 대해서 무지. 두 번째는요? 인생에 대해서 무지. 세 번째는? 세상에 대해서 무지. 하나님께 대해서 몇가지 몰랐습니까? 다시 세가지. 첫째는 뭡니까? 하나님 두려우심, 그냥 알기 쉽게 하나님 경외를 몰랐고, 경외라 말은, 높이고 두려워한다는 뜻인데 이걸 몰랐으니까, 쓰기 좋게, 보기 좋게 하나님 경외심을 몰랐고. 두 번째는요? 하나님 주권, 주권이라 말은, 그 주권의 방향,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주권섭리하시는 그 방향이 어디로 가느냐? 하나님 당신을 나타내는 것인데 이걸 몰랐고, 세 번째는? 하나님의 심판을 몰랐고. 인생에 대해서는 첫째, 인생의 근본을 몰랐습니다. 인생이 어디서 왔는가? 인생의 주인, 근본을 몰랐고. 두 번째는? 인생의 생애 과정. 인생의 목적. 사람이 세상에서 사는 이유가 뭐며, 목적이 뭐냐 이걸 몰랐고, 세 번째는 인생의 결국을 몰랐습니다. 마지막 결국을. 세상에 대해서는 세상의 주인을 몰랐습니다. 세상 주인은 하나님인데 몰랐고, 두 번째는 세상의 용도, 무엇하는 세상인지, 어디에 쓰는 세상인지, 세상을 몰랐고, 세 번째는 이 세상의 결과. 세상은 천국과 지옥이 마련되는 세상인데 이 사실을 이 부자가 몰랐습니다. 이걸 모른 그 결과로 이 부자는 자기를 꾸며나타내고, 자기 기쁘게 한 그렇게만 살았고, 그렇게 산 그 결과가 죽고 난 다음에 사후세계에서 그를 음부로 가게 했고, 그 음부에서 물한방울도 자유없는 그런 사람을, 결과를 맺고 말았습니다. 크게 요거 하나 기억하시고, 두 번째는 사람이 사후세계에 대해서, 사람이 죽으면, 모든 사람은 다 죽습니다. 사람이 한번 딱 죽으면, 일단 몸은 이 물질계에 남아있습니다. 몸은 매장을 하면 땅속에 뭍혀 흙이 될 것이고, 또 화장을 하면 불에 다 타서 공기중에 다 뿌려지거나 물에 뿌려져서 또 그리 있을 것이고. 또 바다에 수장을 하면 내가 뭐 물고기 밥이나, 뭐 어쨌든간에 이 물질계에 몸은 남아있고, 그 몸속에 있던 마음과 혼과 영은, 불신자의 영과 혼은 음부로 가고, 신자의 영과 혼은 낙원에 가서 대기하고 있습니다. 그 낙원은 어디냐? 낙원은 천국의 대기소라 그러지요. 음부는 지옥의 대기소. 그러면 낙원에 가는 사람은 천국 가는 사람들이고, 음부 가는 사람은 지옥가는 사람들입니다.
우리가 사람이 아무리 원해도 사람의 노력으로 갈 수 있는 낙원이 아니고 순전히 하나님의 은혜라야 갈 수 있는 곳이 천국이며 낙원입니다. 우리를 천국 백성 삼아서 천국 가도록, 낙원 갈 수 있도록 그 은혜에 대해서 우리가 얼마나 감사한지 생각해야 되고, 음부에는 이 부자가 갔던 것처럼, 음부에는 하나님의 것은 하나도 없는 그런 하나님의 은혜란 곳은 하나도 없는 그곳이 바로 음부니까 그런 영원한 형벌에, 고통에 그 지옥을 면하고 우리를 영원한 천국으로 인도해주신 그 은혜를 좀 생각을 하고 많이 좀 명상을 해봐야 겠습니다. 그래서 사람이 죽으면 일단 신자의 혼과 영은 낙원에 가고 불신자의 혼과 영은 음부로 가서 주님 재림때까지 대기하고 있다가 주님 재림하시면 이제 다시 땅속에 물질계에 있던 그 몸을 입고 부활해서, 신령한 몸으로 부활해서 영원한 천국에서 영생을 하게 되고, 불신자들은 몸을 입되 영원한 지옥의 고통으로 영원토록 계속되는 이게 사후세계의 큰 실상이다 그리 알아야 되겠고, 세 번째 하나 알것은, 천국과 지옥의 형편을 생각해봅니다. 천국은 어떤 곳인가. 가보지 않아서 우리가 잘 모릅니다. 그런데 천국에는, 여기 본문에 보면은, 낙원에 보니까 아브라함이 있고, 아브라함의 품에 나사로가 안겼습니다. 천국에는 많은 존재들이, 만물들이 있는데 그 만물들이 내게 필요한 것이 아니고, 영원한 천국에 있는 모든 만물들은 나의 활동 무대고, 내게 이용된 활동 무대들이고, 천국에서 있는 존재를 크게 말하면, 나라는 사람이 있고 그다음 나와 같은 신앙계통의 믿음의 형제들이 있는데, 그 믿음의 형제들은 어떤 모습으로 있는고하니, 여러사람이지만은 한 몸을 이룬, 몸에 붙은 각 지체와 같은 그런 모습으로 천국에서, 주안에서 한 피 받아 한 몸이룬 그런 형제들이 천국에 있고, 그리고 천국에 있는 것은 오직 주님 한분 밖에 없다는 겁니다. 우리가 천국가면은 그 천국에서 주님만이 계시고, 그 주님만이 우리의 전부가 되는 것이고 그리 되야 된다는 겁니다. 주님외에는 성도에게 아무것도 필요없는, 그러니까 같은 믿는 사람들, 성도들은 마치 말하자면은 몸에, 한몸에 눈과 귀와 코와 입, 이목구비, 수족, 또 이런 모든 것들 붙은 지체가 여럿이 있는데 이게 한몸이 돼서 어느게 귀하고 천한것보다 그 지체의 위치라든지, 역할에 따라서 중요성은 있지만은 알고보면 어느 한지체도 더하고 덜함 없이 꼭 같이 중요한 그런 지체가 되어서 온 몸에 지체 전부다가 다 자기 위치에 붙어서, 자기 역할을 감당하므로 온전한 한몸을 이루어가는 것처럼, 천국에는 모든 성도들이 다 모여서 요런 주님의 몸을 이루는 요런 역할로 천국에 다 있고, 서로 돕는, 그러니까 하나되는 이런 역할로만 있고, 그 외에 모든, 다른 어떤 것이 있을지 다 알수가 없겠으나 있는 만물들은 우리들이 거기서 이런 주님의 몸이 되어가지고 주님을 영광스럽게 하는, 기쁘시게 하는 그 역할하는데에 필요하며, 하나님에게 받은 내 모든 것을 주는, 내가 은혜 베푸는 시은의 대상, 내가 하나님께 받아서 은혜 베풀어주는 그 은혜를 받아서 먹고 사는, 그런 내 시은의 대상으로만 모든 만물은 존재하고 있지, 그 외에 다른 것은 내게 돕는 것이라든지 협조 이런 것이 아니고 그런 대상이 있고, 그러니까 주님 계시고 성도들이 있고 만물들이 있는데, 그 만물들은 내가 은혜 베푸는 시은의 대상들이고, 내가 다스릴 그런 모든 존재들이고, 모든 성도들은 나와 한몸된 성도들이고, 지체들이고, 그 외에는 오직 주님 한분만 계신 곳이 천국이다.
그러기 때문에 이 세상에서 주님을 자기 주님 삼지 않으면, 이 세상에서 주님을 자기 주님 삼는 이런 생활 하지 않으면 천국가서 그 사람은 받을 것이 아무것도 없게 됩니다. 이걸 보여준 것 중에 하나가,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나와서 출애굽할 때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아무것도 필요가 없었습니다, 그들에게. 하나님이 계시니까 하나님 한분이 그들에게 먹을 것도 됐고, 입을 것도 되고 신발도 되고, 반석의 물도 되고, 홍해바다 건너가는 그런 것도 되고, 전쟁에 승리도 되고. 하나님 한분 계시면 그들에게 부족함이 없었고 능치 못함이 없었고 필요한 전부다가 다 되었습니다. 하나님 한분 떠나면 아무것도 없는 그들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이스라엘이 하나님 한분 계시니까 아무런 부족함이 없는 전부가 되었던 것처럼, 이게 성도의 세상 생활인데, 이것이 천국이 바로 이 모습 그대로다 그말이지요. 천국이란 곳은 우리 성도에게 주님 한분 계시면 주님이 전부지, 주님 외에 다른 것은 아무것도 필요없는 그런 나라가 천국이고, 바로 그 천국에서 주님과 자기와 이런 관계로 그렇게 살아갈 수 있는 그 연습, 그런 관계를 맺어가는 것이 성도의 이 세상생활이기 때문에, 믿는 사람이 세상에서 무엇을 하든지, 뭘 얻든지, 받든지 어떤 것이든 모든 것은 다 주님 한분으로 인해서, 주로 말미암아, 주님 때문에, 주로 인해서 받아야되고, 주님에게 받고, 주님 해주시는 것이라야 되고, 주로 인해서 생겨진, 움직이는 그런 것들이 되어져야 그 사람이 천국에 맞는 사람이 되고, 천국에서 주님의 전부를 자기것 삼는 이 사람이 될 수가 있는 것이지, 이 세상에서 하나님 없이 자기 능력으로, 자기 실력으로, 어떤 피조물로 인해서 산 그 모든 것은 낙원에서, 천국에서는 전혀 상관없는 그런 생활, 그런 움직임이 되고야 만다 그말이지요.
그러기 때문에 신앙의 최종성공은 주님과 더불어 동거동행하는, 동고동락하는, 주와 하나 되는. 그래서 내가 하는 말은 내 말이 아니고 아버지께서 나를 통해서 하시는 말씀이고, 내가 하는 일은 내 일이 아니고 아버지께서 나를 통해서 나타나는 것이다. 주 동하면 나 동하고, 주 정하면 나 정하고. 순간순간 주님으로 함께 호흡하고, 일보일보 주님과 더불어 동행하는 이것이 세상에서 성도의 최종 성공이고 목표고, 요래 산것만큼 천국에서 주님과 동거동행하고 주님으로 전부 삼는 그 사람이 될 수가 있다는 것이니 이게 말도 알아듣기 어려운데, 실제 생활에서 이게 얼마만큼 되겠습니까. 참, 신앙의 세계라는 것은 깊고도 높고, 참 어렵습니다. 그래도 우리들이 가야되는 길입니다. 그래서 사후세계에서, 사후세계, 하나는 사람이 일단 죽으면 신자의 영과 혼은 낙원으로, 불신자의 영과 혼은 음부로 간다. 그다음, 천국에는 거기는 성도들만 있는데, 그 성도들은 전부 한 몸으로 다, 모든 한몸에 붙은 지체로 그렇게 있고, 그래가지고 온전한 한몸이 되어서 주님을 나타내고, 그 외에는 주님 한분만이 전부라. 그분계시면, 그분에게서 모든게 다 나왔으니까, 전부 그분에게 다 있으니까 그분 한분으로 전부 삼는 이 나라가 천국이고, 그러기 때문에 그 천국에 맞는 주님과 나와의 관계, 주님으로 전부 삼는 그 생활은 이 세상에서 내가 사는, 내게 주신 평생을 산 만큼 천국에서 주님으로 자기 전부 삼는, 부족함이 없는 그런 생활이 되게 되고 아무리 주님이 무한하신 분이고 모든게 다 되지만은, 내가 세상에서 주님과 관계를 바로 맺지 못하고 주님 없이 산 생활이 있는 만큼 천국가면 주님은 내 주님이 안되기 때문에 그만큼 부족할 수 밖에 없는 것이고, 그러면 그 사람이 천국에서의 역할이 줄어들 수 밖에 없을 것이고, 역할이 줄어들면 그 사람의 쓸모가 적다는 말이고, 쓸모가 적으면 그 사람의 뭐가 적습니까? 가치가 적은 것이고, 가치가 적으면 그 사람의 영광이나 대우는 줄어들 수 밖에 없는 이게 건설구원의 영광의 차이다 그리 말할 수 있겠지요.
반대로 지옥은 어떤 곳인가. 지옥은 하나님 은혜가 없는 곳. 하나님이 계시지 않는 곳인데, 하나님은 무소부재니까 계시지 않는 곳이 없는 것인데, 은밀하게 따지고 들어가면 지옥에 하나님이 없다 그래 말을 못하지요. 그러나 지옥에 간 사람들에게는 하나님은 없는 것이 되는 겁니다. 또 하나님의 은혜가 하나도 없는 그곳이 지옥입니다. 그곳은 이 세상에서 살되 하나님 없이 산 사람들, 하나님과 상관 없고, 하나님의 은혜 없이, 하나님의 도움 없이, 하나님의 능력없이, 하나님과 관계없이 순전히 자기 힘으로, 자기 지능으로, 혹은 피조물 무엇으로만 살아서 하나님과 관계가 없고, 하나님의 지도도, 하나님의 가르침도, 하나님의 도우심도 전혀 없는, 하나님과 관계없이 산 그런 사람들, 그런 요소들만 모여가지고 간 곳이 지옥이기 때문에, 지옥에는 하나님 없고, 하나님 은혜가 하나도 없는 그런 곳이 지옥이라. 그래서 이 부자가 물 한방울도 자기 마음대로 하지 못했다는 것은,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은혜는 그에게, 하나님의 은혜로 산 생활, 하나님과 관계 맺고 산 생활은 물 한방울 움직이는 것도 이 부자에게는 없었다 그랬으니까 참, 상상하기 어려운 부자의 너무도 실패한 그런 생애라, 그리 볼 수가 있겠습니다. 지옥은 이런 곳입니다. 하나님이 안계시는 곳, 하나님의 은혜가 없는 곳. 자기로만 산 사람 혹은 피조물로만 산 사람, 하나님 없이 산 사람 그런 사람과 그런 생활과 그런 요소들만 모여 가는 곳이 지옥이고 음부다.
그다음 네 번째로 부자의 소원이 두가지가 있습니다. 부자의 소원 두가지. 하나는 물 한방울입니다, 물 한방울. 물 한방울인데 앞에서 말한대로 그리 살았으니까 그리 된 겁니다. 물 한방울을 부자가 자기 혀에 적시지 못해서 그렇게 간청을 했습니다. 나사로를 보내서 손가락 끝에 물을 찍어서, 손가락 끝에 물을 찍었으니까 한방울 아니겠습니까? 물 한방울도 음부에 가서 자기것이 없었으니까 세상에서 얼마만큼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하나님 없이 그렇게 살면, 그리 살 수가 있을까? 그런데 의외로 이렇게 산 사람이 많을지 모릅니다. 참 깊이 깊이 좀 생각해 봐야 되고, 또 하나는. 형제 다섯이 있으니까 그 형제 다섯을 내가 온 이곳에 오지 않도록 해주옵소서. 그래 간청을 했는데 만약 이 부자가 자기가 죽고 난 다음에, 자기 당면할 그 상황을 살아생전에 알았더라면 그리 살지 않았을 것이고 형제들 그렇게 인도하지 않았을 겁니다. 안봐도 본문에 기록된 내용으로 봐서 이 부자는 형제우애가 돈독한 사람이고 그 아끼는, 그 좋은 의 좋은 그 형제들, 자기 형제들을 자기 실력껏 자기와 같이 그렇게 만들었을 겁니다. 그러니까 음부에 가서 보니까 자기 생애는 전부 실패였고, 영원한 고통이였고, 지상에서 살아생전 자기 형제들을 자기처럼 그렇게 인도했고 그렇게 가르쳤고 그리 이끌었고, 그리 만들어놨으니까 그들도 그냥 두면은 자기처럼 될 것이기 때문에, 음부에 와서 보니까 그게 아닌 줄 알고, 그러니까 인생관 가치관이 제대로 눈을 떠서, 거기 가서 보니까 잘못된 줄 깨닫고 그때사 이거 큰일났구나 싶어서 그 고통 중에, 자기 고통 면하는 것이 안되니까 그 다음으로는 부탁한 것이, ‘내 형제 다섯은 이곳에 오지 않도록 좀 보내주옵소서’ 그리 간청했지만은 이미 때는 늦었기 때문에 그들에게는 모세와 선지자가 있으니까, 그들에게는 율법도 있고, 하나님의 은혜도 있고, 그들에게는 성경도 있고, 복음 전하는 성도들이 있고, 주님 대속이 있고 그들에게 들을찌니라. 그러기 때문에 이 부자가 때늦은 후회를 하고, 때늦은 소원을 가졌지만은 이미 다 기회가 지나고 나니까 다시는 오지를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는 많은 기회를 주십니다. 수많은 기회를 주시는데, 그 주시는 기회를 전부 마지막까지 다 차버리고 나면은, 더 이상 주실만큼 다 주고 나면은 두 번 다시 기회가 없고, 그러고나면 영원한 이런 결과만 있을 수 밖에 없는거니까 오늘에 봐야 되겠고. 하나 더 보태면 죽은 자가 다시 세상에 살아오는 법은 없는 겁니다. 나사로를 보내어 그랬지만은, 죽은 나사로가 다시 살아갈 수 없는 것이고, 부자도 다시 살아갈 수 없는 것이고. 사람이 일단 죽으면, 죽고 난 다음에 그가 활동할 수 있는 것은, 믿는 사람이면 낙원에서, 낙원 안에서 있고, 안 믿는 사람이면 음부 안에 있지, 죽은 사람이 혼이 되어서, 귀신이 되어서 이 세상에 나오는 수는 없는 것이다, 요것도 하나 참고로 기억을 하십시다.
그래서 오늘 오후에는 크게 다섯가지를 간단히 좀 생각해봤습니다. 첫째는 부자의 무지와 결과. 왜 그리 되어졌느냐. 그는 세가지를 몰랐기 때문에 그리 되어졌다. 두 번째, 크게 두 번째. 사람의 사후세계, 신자의 영과 혼은 낙원에, 불신자의 영과 혼은 음부에 간다. 영원한 고통이다. 세 번째, 천국과 지옥의 형편에서, 천국은 주님만 계시고 성도들만 있는 곳인데, 성도들은 다 모여서 한몸 이룬 지체들로 있고 주님만이 전부고, 그 외에 모든 만물은 성도들의 활동무대고 시은의 대상이고, 지옥에는 그곳은 하나님이 안계시고 없는 곳이고, 하나님의 은혜가 없는, 하나님 없이 살고, 자기로만 산, 피조물로만 산 자들과 그런 요소들만 가는 곳이 지옥이다. 부자의 네 번째, 부자의 소원 두가지. 때늦은 후회를 가지고, 때늦은 소원을 가졌지만은 이미 다 기회가 지나갔기 때문에 두가지 다 이루지를 못했기 때문에, 살아생전 우리는 이것을 바로 가져야 되겠고, 마지막 다섯 번째로는 죽은자의 활동은, 일단 죽고나면 지상세계에 오지 못한다는 것. 낙원에서 음부에서 제한되어 있지, 지상으로 올라오지 못한다는 크게 다섯가지를 기억하면서 사후세계를 보고, 오늘 우리들의 세상살이를 바로 살아가는, 이 부자처럼 살지 말고, 나사로처럼, 주시는 현실을 하나님을 알고 감사하고 거기서 하나님 영광스럽게, 기쁘시게 하는 그 생활에만 총력 기울이는 이것이 믿는 성도의 성공하는 생활이다 하는 것을 기억하십시다. 다같이 통성으로 기도 드리겠습니다. 음부에는 하나님의 은혜가 하나도 없고, 자기를 도울 존재도 하나도 없는 곳이 음부고 지옥입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없고 그 은혜를 갖다 줄 존재도 없고, 다 각각 자기로 산 그런 것들, 그런 존재들만 모인 곳이 지옥이니까 참 고통 고통으로만 영원히 계속되는데, 세상을 잘못살면 그런 지옥이 마련됩니다. 우리는 천국을 마련하는 그런 세상살이하도록 해야되겠습니다. 홍포 입은 부자가 무지했던 세가지도 같이 기억하고 우리 세상생활 한번 돌아보십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