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03-주후(눅11:1-7)
회개는 하늘의 기쁨2013-11-03조회 468추천 37
본문: 눅15:1-7
제목: 회개는 하늘의 기쁨
요점:
1. 인식 전환의 필요성
- 모든 존재, 활동, 결과의 근원은 하나님
- 인생의 행복과 기쁨은 하나님 모신 데서만
- 하나님 떠난 인생은 불행과 고통과 두려움뿐
- 하나님 떠나도, 하나님 없어도 행복할 수 있다는 인식은 큰 불행
- 이런 잘못된 인식을 완전히 바꾸어 전환할 것
2. 교회는 인간병 치료하는 곳
- 15장 전체는 1-2절에 대한 주님의 말씀
- 15장은 잃은 양 한 마리 비유, 잃은 드라크마 비유, 탕자 비유
- 예수님은 의인의 구주가 아닌 죄인의 구주
- 교회는 죄인을 불러서 구원하는 곳, 사람을 만드는 곳
- 따라서 교회는 인간병 고치는 병원이며
- 교역자는 인간병 고치는 의사, 교인들은 간호사와 같은 것
- 죄 짓는 사람들, 잘못하는 사람들에 대한 우리의 태도와 인식을 바꿀 것
3. 본문에서-목자의 심정
- 잃은 양 한 마리 비유를 통해
- 죄인 하나, 죄인의 한 부분 회개에 대한 하나님의 기쁨을 말씀
- 목자는 예수님, 성령님, 복음의 일꾼들
- 목자의 관심과 근심 걱정 전부는 잃은 양 한 마리에
- 목자의 전심전력은 잃은 양 한 마리에
- 목자의 기쁨 전부는 잃은 양 한 마리 찾았을 때
4. 본문에서-잃은 양 한 마리는
- 잃은 양 한 마리는
①택자로서 아직 믿지 않는 사람
②믿다가 낙심한 사람
③믿는 사람의 회개하지 않은 죄된 한 부분
- 잃은 양 한 마리를 ①과 ②로만 생각하면 우리 대부분은 해당되지 않으나
- 잃은 양 한 마리를 ③으로 생각한다면 우리 모두가 다 해당되는 말씀
5. 회개는 하늘의 기쁨
- 잃은 양 한 마리를 찾는 것은 죄인의 회개
- 죄인 하나가 회개하면 하늘에서는 기쁨이
- 회개할 것 없는 의인 99로 인한 기쁨보다 더한 기쁨
- 하늘은 지상의 교회이니
- 교회의 하나님과 성령님과 복음의 모든 일꾼들, 하늘의 천군천사들까지
- 가장 원하고 기뻐하는 것은 잃은 양 한 마리 찾는 것 즉 죄인의 회개
- 회개는 하늘의 기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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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원문)
20131103 주후
누가복음 11:1-7
오전 말씀중에서 중요한 것 하나가 우리 인식을 전환하자 하는 겁니다. 인식을 바꾸자. 같이 해보실까요? ‘인식 전환’. 전환이라 그말은 바꾼다 그 뜻입니다. 인식을 전환하자, 인식이라 말은 자기의 주관이 된 지식이라 이걸 일반적으로 국어사전 의미하고 좀 다릅니다. 국어사전적인 의미는 ‘알 인’자 ‘알 식’자 그냥 안다 인지한다 그런 뜻인데 제가 생각하는 인식은 자기의 주관이 된 지식이라 그말입니다. 인식. 어떻게 보느냐 일종의 사고방식 같은 것 이런것이 인식입니다. 무슨 인식을 바꾸느냐? 인식은 모든 존재나 모든 일에 대한 인식이 많이 있는데 그중에서 오늘 말씀드린 인식전환은 인간의 참된 행복과 혹은 불행과 기쁨 이런 것을 말씀드린 겁니다.
로마서 11장 36절에 무슨 말씀이 있다고요? 오전 요약지에 나와있는데요? 로마서 11장 36절에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감이라’ 만물은 하나님이 지으신 모든 피조물 전부를 말합니다. 주에게서 나왔고 그다음 존재했고 주로 말미암고 움직이고 주에게로 돌아간다 그말은 하나님이 모든 것을 지었고 하나님이 모든 것을 다 주권하고 있고 그 주권 속에는 만물 자체 주권과 함께 만물의 주권에는 하나님의 그 주권 역사 속에는 모든 활동 그 활동으로 인한 결과가 다 포함이 되어있어서 말하자면 인간의 생사화복 흥망성쇠 존비귀천 희로애락 이런 것들이 전부다 하나님의 주권 속에 포함이 되어있다 그말입니다. 우리가 찬송을 할때 그냥 할 것이 아니고 만복의 근원 하나님 그러면 모든 복의 복 전부는 그 근본이 하나님이라 그말입니다.
근원이라 말은 우물에 우리들이 마시는 물에 원천 그는 어디서 나오느냐 그말입니다. 거기서 끊어져버리면 일시적으로는 나와도 과거에 그런 예가 더러 있었는데 요즘도 아마 있을 겁니다. 주유소에서 기름 차에 넣어줄때 넣어주면은 이게 계량기 미터기가 딱 끊어지는 것이 어디서 끊어지는고 하니 주유소 그 입구에 딱 끊어져버리거든요. 차 기름 넣는 거기서. 거기 끊어지도록 만들어놓으면 거기서 호수까지 길이가 제법 되는데 그 안에 있는 기름의 분량을 전부 주유소에서 떼먹는다 그런 말들이 한때 많이 있었습니다. 지금은 어떤지 모르겠지만은 그만큼 남는 거지요. 근데 그 뿌리가 안에서 딱 끊어지면 들어있어도 쪽 빠져나오고 나면 다 없어지게 되는 거지요. 근원이란 것은 근원이 무슨 ‘근’자 입니까? 000 선생님 '근‘자가 무슨 ’근‘자인가요? 근원의 ’근‘자는 ’뿌리 근‘자입니다. ’뿌리 근‘자. 만복의 근원 그 근원은 모든 복의 근본 뿌리가 하나님이라. 뿌리에서 끊어지면 죽는 겁니다. 아무것도 없는 겁니다.
그래서 모든 존재, 모든 존재 자체와 그 모든 존재 활동 전부의 근원은 하나님이기 때문에 따라서 인생의 모든 행복은 근본이 하나님에게 있다 그말입니다. 하나님에게서 끊어지면 하나님과 끊어지는 걸 뭐라 그럽니까? 하나님과 연결은 생명이고 그러면 하나님과 단절은 사망이겠지요. 하나님과 끊어지면 사망입니다. 하나님과 끊어지면 단절이 되었으니까 끊어졌으니까 거기서 밑에서 하나님께로부터 나오는 모든 것은 다 끊어져버리는 겁니다. 그러니까 인생이 하나님과 끊어지고 멀어지면 끊어져도 논리적으로 말하면 일반적으로 끊어져도 가까이 있으면 다시 붙이면 되겠는데 손가락이 탁 잘렸습니다. 얼른 가지고 가서 몇시간 안에 가지고 가면 다시 봉합 수술해서 붙일 수 있다 그러지요? 그런데 딱 잘렸는데 어디 갔는지 없어져버렸습니다. 그러면 못찾으면 시간 지나면 없는 겁니다. 끊어지면 없는 거지요. 죽은 거고. 하나님과 끊어지면 사망입니다. 그 사망에서 멀어지면 더더욱 사망은 더 깊어지는 겁니다. 인생의 참 행복, 생명과 생명이 있어야 그다음 모든게 있지요. 생명과 행복과 기쁨과 만족과 온갖 좋은 것은 하나님에게서 나온다 하는 겁니다. 그러니까 만약에 사람이 하나님을 떠나면 하나님과 끊어지면 생명이 없고 멀어지면 점점 멀어지고 그래서 하나님 떠난 인생에게 행복은 없다 기쁨은 없다 만족도 없다 그렇다면 하나님 떠난 인생은 사망이고 불행이고 고통이고 이런 것 밖에 없는 겁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하나님을 떠나도 예수 믿는 사람들이 수많은 믿는 사람들이 하나님을 떠나고도 얼마든지 잘 웃고 삽니다. 아닙니까? 제가 오늘 이 말씀을 준비하면서 생각하는 중에서 가장 큰 고민이 그거였습니다. 그래서 오전 말씀에 제목을 인식의 전환이라 그래 붙이려 그러다가 전체로 회개로 그래했는데 하나님을 떠나도 믿는 사람이 잘 먹고 잘 살고 잘 웃고 잘 누리고 과거 어떤 사람은 그게 전부 아니겠지만은 백목사님만 바라보고 살다가 백목사님이 순교하시는 그순간 이 세상이 끝나는 줄 알았고 인생이 끝나는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백목사님 가셔도 세상은 그대로 돌아가더라 그말이지요. 하나님의 뜻이 있고 섭리역사가 있는 것이겠지요. 그런데 백목사님은 사람이니까 그분은 하나님이 보내신 종이니까, 귀한 종이지만은 그분이 떠나도 그분이 남긴 말씀이 있고 그분의 생애가 남아있고 은혜가 있으니까 살아갑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떠나면 하나님은 생명의 근본인데 그분 떠나면 인생은 막바로 사망입니다. 고통 밖에 없고 불행 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수많은 예수 믿는 사람들이 하나님과 끊어지고도 하나님을 떠나고도 하나님 떠나는 것은 죄를 지으면 말씀을 어기면 하나님을 떠나는 겁니다. 하나님 떠나고도 죄를 짓고도 얼굴에는 웃음이 피고 마음까지도 편안하고 보면 알지요? 전혀 양심에 거리낌이 없고 캥기는 것이 없고 꺼림칙한것이 없고 마음껏 먹고 마음껏 입고 실력껏 벌고 마음껏 누리고 잘 삽니다 행복하게 기쁘고 즐겁게. 그리 살고 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야고보를 통해서 야고보 4장 9절에 말씀하시기를 ‘너희들의 웃음을 애통으로 바꿔라 너희 즐거움을 근심으로 바꾸라’고 말씀을 하신 겁니다. 이게 인식이 잘못된 것이고 거꾸로 된 겁니다. 몰라서 된 것이고 믿음이 없어서 그런 겁니다. 우리는 이 말씀을 가지고 기억을 해야 됩니다. 예수 믿는 사람이 죄를 지어도 행복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아도 그렇게 살고 있다는 그 자체가 큰 불행입니다. 하나님 떠나도 하나님 없어도 잘 먹을 수 있다는게 큰 불행입니다.
야곱은 하나님 없이는 못사는 사람이였습니다. 하나님의 축복이 끊어지면 차라리 내가 죽고 말지 내가 도둑놈이 되더라도 하나님의 축복은 받아야 되겠다. 그게 야곱의 중심입니다. 그래서 야곱은 도둑질 했습니다. 형의 장자 명분을 빼앗아버렸습니다. 빼앗았고 그다음에 형에게 갈 장자의 축복을 몽땅 가로채버렸습니다. 도둑질이지요. 큰 도둑질입니다. 물건 훔치는 것보다 더 큰 도적질 요즘 저작권 도적질처럼 큰 도둑질입니다. 그래도 야곱은 그 중심이 ‘내가 이런 도둑놈이 되더라도 하나님 없이는 못 살겠다. 하나님과 끊어지고는 못 살겠다.’ 그게 야곱의 중심입니다. 에서는 처음에는 그런 줄 알았다 네가 하도 그러니까 아버지가 그러니까 나도 그런 줄 알았다. 그런데 20년동안 떨어져서 살아보니까 야곱이 선물을 잔뜩 보내니까 에서가 말하기를 ‘야 야곱아 너 그렇게 하나님 축복 노래 부르고 그렇게 얍삽하게 꾀 많게 쩨쩨하게 내 장자 명분 빼앗아 가고 축복 빼앗아 가고 그래가지고 도망 다니고 너는 그래 쩨쩨하게 살았는데 나는 통 크게 남자답게 그렇게 살아도 20년 지났는데 나도 잘 산다. 너 보내준 것 아니라도 나도 이만큼 부자됐고 떵떵거리고 잘 산다. 하나님 없어도 되더라 하나님 축복아니라도 잘 살 수 있겠더라’ 그래서 에서입니다. 그래서 에서는 탈선이고 멸망의 조상입니다. 구원의 조상이 아니고.
하나님이 없어도 믿음 생활 안해도 말씀을 떠나도 죄를 지어도 괜찮다고 생각하는 그것이 사람의 불행 중에 가장 큰 불행입니다. 시편 73편에 그 이해할 수 없었던 그 하나님 없는 떠나버린 그 잘 먹고 잘 사는 그 사람보고 시험 들었던 그 시편 기자가 참 깊이 바로 깨달았습니다. 우리는 그런걸 보고 아는 우리가 되야 됩니다. 회개를 해야 되는데 뭘 회개할 것인가? 알아야 회개를 하지요. 범죄함으로 인해서 하나님 앞에 죄를 짓고 하나님을 떠나고 멀어짐으로 인해서 받는 고통이 있어야, 아픔이 있어야, 마음에 괴로움이 있어야, 양심에 찔리는 그런 것이 있어야 회개할 마음이 생겨지지요. 몸이 아파야 약을 먹고 병원에 갈 것 아닙니까? 그런데 아픔이 없으니까 괴로움이 없으니까 고통이 없으니까 거기에 대한 감각이 전혀 없는 겁니다. 그런 걸 가리켜 성경은 뭐라 그럽니까? 그렇게 믿음을 떠나도 말씀을 어겨도 하나님과 떠나도 아무런 감각이 없는 걸 가리켜 성경은 강퍅이라 그럽니다. 강퍅. 팍이 아니라 강퍅. 받침이 두갭니다 줄이 두 개. 강퍅. 성경은 그리 말합니다. 우리 마음을 강퍅하게 하지 말아라. 바로가 마음을 강퍅케 하다가 애굽 나라가 완전히 망했고 바로도 망했습니다. 우리는 그런 우리가 되지 말고 인식을 완전히 바꿔야 되겠습니다. 잘 몰라도 어쨌든 하나님의 말씀을 떠나면, 어기면 바로 죄고 죄를 지으면 그때부터 무조건 사망이다, 불행이다, 고통이다, 두려움이고 저주밖에 없다는 요 사실을 똑똑히 기억을 하고 인식 속에 우리 인식 속에 완전히 박아놔야 되겠습니다. 요걸 꼭 기억을 하시고 그다음 두 번째는 여기 15장에 보면 내용 전체가 1절 2절에 대한 말씀에 이어집니다. 모든 세리와 죄인들이 말씀을 들으러 가까이 나아오니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정 반대지요? 세리와 죄인들하고 바리새인과 서기관은 정반대쪽에 있는 사람입니다. 극과 극입니다. 하나는 하늘이고 예를 들면 하나는 땅입니다. 하나는 귀족들이고 아주 귀족들이고 하나는 천민들입니다. 그러니까 세리와 죄인들은 아주 말단들, 쓰레기들, 인종지말자들 그런 사람들이고 바리새인 서기관들은 아주 거룩한 사람들 근엄한 사람들 잘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 그 사람들입니다. 예수님이 오셨을때 예수님 근처에는 바리새인과 서기관이 없지는 않았습니다. 바리새인과 서기관이 없지는 않았는데 주로 예수님 근처에는 전부 죄인들과 세리들이 바글바글하게 모여 들었습니다. 천민들이 모여들었습니다. 죄 많은 사람들, 버림 받은 사람들, 다윗이 사울에게 쫓겨 다닐때 다윗 주변에 모인 사람들도 주로 그랬습니다. 쫓겨난 사람들, 근심 많은 사람들, 별별 종류에 아주 낮은 사람들 그런 사람들이 몰려들었듯이 예수님 주변에는 주로 그런 사람들이 모였습니다. 그러니까 소위 잘 믿는다고 하는 정통교파라고 하는 바리새인들, 하나님의 율법을 거룩하게 잘 지켜서 아주 철저하게 법을 지키는 잘 믿는 사람들 스스로 죄 안짓는다 하는 사람들 또 서기관 성경 박사들, 정통 교회 속한 교인들 성경 박사들 이들이 예수님을 원망하기를 이 사람이 죄인을 영접하고 음식을 같이 먹는다 그렇게 비웃고 조롱을 한겁니다.
그래서 주님이 15장에서 첫째는 잃은 양 비유, 두 번째는요? 잃은 드라크마 비유, 세 번째는요? 탕자 비유로 연이어서 세가지 말씀을 했는데 세가지 전부다 죄인을 돌아오기 원하는 목자의 심정 혹은 아버지의 심정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잃은 양 비유, 잃은 양 몇 마립니까? 잃은 양 한 마리. 드라크마 비유, 드라크마 몇 갭니까? 열 드라크마 중에 하나. 탕자 중에서 그 두 아들 중에서 작은 아들 둘째 요래가지고 꼭 같이 집을 나간 탕자, 잃어버린 드라크마, 목자의 품을 떠난 잃은 양 이래가지고 죄인에 대한 주님의 심정을 주님이 기록을 해주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의인의 구주가 아니다.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오지 않았고 죄인을 불러서 회개시키러 왔다. 예수님은 죄인의 구줍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 스스로 자기가 의롭다 생각하면 주님은 필요가 없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대속은 죄인의 죄를 짊어진 대속이지 의인의 죄를 짊어진 대속이 아닙니다. 의인은 하늘나라에서 필요하지 이 세상에서 스스로 의인은 주님에게 필요가 없는 겁니다. 우리가 죄를 지어라 말이 아닙니다. 있는 죄를 찾아야 된다 그말입니다. 그래서 주님이 세상에 오신 것은 죄인을 불러서 구원하러 오신 처럼, 주님이 세우신 몸된 교회라는 곳은 죄인을 불러서 구원하는 곳이 교회입니다. 교회라는 곳은 그 설립의 취지가 교회라는 존재 목적이, 운영의 방향이 교회는 죄인을 불러서 구원하는 곳이고 죄인을 사람 만드는 곳이 교회입니다. 병원은 뭐하는 곳입니까? 병원에는 어떤 사람이 가는 곳입니까? 병자들이 가는 곳입니다. 팔이 하나 부러졌습니다, 배탈이 났습니다, 감기가 났습니다, 속이 거북합니다. 뭔가 그 사람의 몸에 고장난 사람이 가는 곳이 병원이고 그 병원에 근무하는 의사와 간호사는 그들을 치료해주는 것이 그들의 주업무고 일입니다. 물론 그들 통해서 이익을 창출하고 하지만은 주목적은 자기들 먹고 사는 그것도 그 병을 치료해주고 먹고 사는 겁니다. 세상이니까 자기 이익을 창출하고 이익을 챙겨야되지만은 챙기는데에는 자기 할 일하고 챙겨야 되지 병치료해주지 않고 이익만 챙기면 도둑놈입니다 그거는. 어느 병원이든지 그 병원이 가니까 병원 간판은 붙여놨고 의사 자격증 간호사는 있는데 치료하는데 돌팔이다, 치료하지도 못하고 할줄 모르고 치료는 안해주고 돈만 챙기면 그 병원은 고발해서 없애버려야 니다. 도둑놈들입니다. 그 병원은 사기꾼들입니다. 안그렇습니까? 병원은 사람의 병을 치료하는 곳이 병원입니다. 의사는 사람 병고치는 것이 의사고 간호사는 거기 돕는 사람이 간호사입니다. 교회는 인간병을 고치는 곳이 교회입니다. 목사는 인간병 치료하는 인간병 치료하는 의사입니다. 교인들은 거기 돕는 간호사들입니다. 아닙니까? 그래서 교회오는 사람들은 죄인들이 오는 겁니다. 도둑놈도 오고 사기꾼도 오고 강도도 오고 협착군도 오고 스스로 죄 많은 사람도 오고 술꾼도 오고 별에별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 교회다. 그래서 우리는 교회라는 곳에 대한 인식을 바로 가져야 되고 교인들에 대한 우리들의 인식을 바로 가져야 됩니다. 교회는 거룩한 곳이다. 거룩한 곳이 맞습니다. 교회는 거룩해야 됩니다. 그러나 거기 오는 사람들, 주님 계실 때 예루살렘에 있는 성전 안에 온갖 병자들이 다 모였습니다. 온갖 병자들이 전부 다 모여서 병 낫기를 기다리는데 주님이 거기 가실 때 38년된 가장 병이 중한 그 환자를 제일 먼저 찾아가서 고쳐주셨습니다. 교회는 깨끗한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 아닙니다. 그런 사람들도 옵니다. 더 깨끗해지기 위해서. 거룩한 사람들도 오는 곳입니다. 더 거룩하기 위해서. 그러나 주로 교회라는 곳은 죄인들이 모여서 그 죄인들의 죄를 알고 죄를 살펴서 알고 진찰해서 알고 그 죄를 하나씩 고쳐서 점점 죄 없는 사람들을 만들어가는 곳이 교회다. 우리 하는 일은 이런 것이다. 그러기 때문에 의사가 하는 일은 치과 의사들, 외과 의사들이 하는 일은 주로 뭐하는지 아십니까? 요즘은 많이 아시지요? 성형 수술하면 턱 뼈를 막 깍아낸다 그러지요? 턱뼈 깍다 죽는 사람도 있다 그러지요? 외과 의사들 치과 의사들은 막 그냥 톱질, 대패질, 드릴로 구멍 뚫고 그럽니다. 뼈에 구멍 뚫어야 되고 깍아내야 되고 또 잘라내야 되고 아닙니까? 정형외과 의사들 그래하지요? 치과도 필요하면 그래하고 성형외과도 그래 할 것이고 내과 의사들은요? 안에 내장 막 잘라서 펴봐야 되고 안에 내장 다 드러내봐야 되고. 좋은 일입니까? 고급 같으나 그래서 의사들이 처음 수술하고 난 사람들은 수술하고 나면 일주일동안 밥을 못먹는답니다. 사람 그 내장 다 보고나면. 안그렇겠습니까? 요즘은 이제 발달이 돼서 좀 개복을 덜하지만은. 그게 의사들이 하는 겁니다. 좋은 겁니까? 온갖 흉한 것, 징그러운 것, 끔찍한 것 다 봐야 됩니다. 손에 뭐 뭍혀야 됩니까? 피 뭍혀야 됩니다. 그런거 다 뭍여야 됩니다. 그게 의삽니다. 교회 목사는요? 거룩하게 깨끗하게 그래 지내는 사람이 목사입니까? 아닙니다. 사람을 고치기 위해서는 자기가 깨끗하게 살지만은 도둑질하고 죄짓는다 말이 아닙니다. 별에별 사람을 다 만나고 다 접촉을 하고 다 들어봐야 되고 다 생각해봐야 되고 그게 교회목사고 교인들입니다. 함께 다른 사람을 고쳐가는 간호사, 의사 이런 사람들. 그런 곳이 교회입니다. 이걸 잊어버리면 교회의 본질을 잊어버리는 겁니다. 교회라는 존재에 목적과 가치가 없어져 버리는 겁니다. 우리 교회는 부자들만 모였습니다. 우리 교회는 거룩한 사람들만 모였습니다. 교회가 아니구만. 그거는 교회 아닙니다. 그래놓고 더 거룩해지기 위해서 그래서 그러면 괜찮겠지만은 그걸 자랑으로 삼으면 그 사람은 뭔가 모르는 사람입니다. 요것도 우리 인식을 바로 잡아야됩니다. 성경입니다. 건강한 자에게는 의사가 필요없다, 의원이 쓸데없다,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오지 않았다. 죄인 불러서 구원하러 왔다. 우리 속에 죄인을 볼때 죄많은 사람을 볼때 술꾼들 볼때 예수 믿는 사람들이 술을 먹어? 담배를 펴? 예수 믿는 사람들이 바람을 펴? 저런 죄를 지어? 그런 마음이 들면 하나님께서 ‘이놈아 너는? 한번 뒤집어 보자’ 털어서 먼지 안나는 사람 있습니까? ‘그 가진 심보 하나만 해도 너는 그 심보 하나가 다른 사람 술 먹고 담배 피고 바람 피는 것보다 너는 죄가 더 크다’ 하나님이 그래 판단하실지 모릅니다. 교회라는 것의 인식을 우리가 또 여기서 두 번째 바로 가져야 됩니다.
첫째는 인생의 행불행의 가치, 요 인식 전환. 두 번째는 교회라는 곳에 대한 인식 요걸 두 번째 바로 가지고 본문에 들어가서 잃은 양 한 마리. 잃은 향 한 마리라는 비유를 통해서 여기 잃은 양이라는 것하고 한 마리라는 것이 있습니다. 잃은 양 한 마리 하나. 하나를 찾으면 드라크마 비유에도 하나를 잃으면 요래 하나가 나와 있습니다. 그럼 이 말씀은 목자되신 주님 우리 주님이 죄인 하나 회개하는 것에 대한 안타까운 그 기다림과 심정을 말씀하신 것이라 그래 볼 수 있는데 목자는 오전에 누구 누구였습니까? 첫째 목자는 누구입니까? 목자는 누구 였습니까? 예수님. 두 번째는요? 성령님. 성령님을 다른 이름으로 말하면 좀 길게 말하면 그리스도의 영이라 그래 말합니다. 성신이라고도 하고 성령님. 그다음 세 번째는요? 복음의 일꾼들이면 오늘 여기 있는 우리 대부분입니다. 이 분들이 여기에 목자로 비유된 겁니다. 예수님 하나님입니다. 성령님도 하나님입니다. 그다음 모든 복음의 일꾼들 이분들이 여기 목자입니다. 그런데 이 복음의 일꾼된 목자가 그 모든 관심이 어디다 가있느냐? 마음이 어디다 가있느냐? 목자가 어느 사람이 양 일백 마리가 있는데 그 중에 하나가 한 마리가 그만 목자를 떠났습니다. 못된 송아지가 엉덩이에 뿔난다고 요 못된 양이 목자를 떠나서 뽈뽈뽈 기어나가서 다른데 가버렸습니다. 목자 눈밖에 벗어났습니다. 그러다가 살살 나가가지고 오만데 다 제멋대로 돌아다닙니다. 자유롭게 돌아다니는데 가다보니까 이리도 만나고 사자도 만나고 또 독사도 만날것이고 또 깊은 웅덩이도 만날 것이고 가시덤불도 만날 것이고 가다보니까 배가 고픈데 어디 풀이 있는지 모르겠고 목이 마른데 물이 어디있는지 모르겠고 그러니까 목자 품을 떠난 양의 처지가 그렇습니다. 그 양의 처지를 목자가 너무도 잘 아니까 눈에 한 마리가 안보이니까 참된 목자 같으면 참 목자는 양을 위해서 자기 목숨을 버리느니라, 이 목자가 양이 안보이니까 마음 근심 걱정에 아흔아홉마리를 들에 두고 이 아흔아홉마리는 내 품에 있으니까 아흔아홉 마리를 들에 두고 그 잃은 양 한 마리를 찾도록, 찾을때까지 찾아서 돌아다닙니다. 목자의 심정입니다, 목자의 심정. 그러면 목자의 모든 관심, 심경, 전근심걱정은 어디 가있느냐? 잃은 양 한 마리 거기 다 기울어집니다. 목자의 근심 걱정 심정입니다. 어디가서 밥은 안 굶는가? 꼴은 먹었는가? 목은 안 마른가? 이리한테 삼키지는 않았는가? 구덩이에 빠져 죽었을까? 온갖 불안과 근심 걱정 애타는 마음으로 목자는 자기를 떠난 잃은 향 한 마리에 모든 근심이 다 가있습니다. 또 목자의 모든 노력은 밤낮으로 다니면서 양을 찾아 다닙니다. 찾을때까지 찾습니다. 찾도록 찾아다니지 아니하겠느냐. 손익계산 생산적인 손익계산으로 영업에 이익을 창출하는 그면으로 계산하면 안 맞는 논리입니다, 이건 아닙니다. 여기 목자는 부모의 심정입니다 말하자면. 주일학생을 기를때 백목사님께서 비유하시기를 주일학교 반사 선생님 중에서 첫 번째 포로수용소 소장이 있다, 포로수용소 소장 그 사람은 포로니까 잡아 가두고 탈출만 못하게 막는 포로수용소 소장 같은 반사도 있고 두 번째는 고아원의 원장 같은 반사도 있고 세 번째는 참목자 부모같은 반사도 있다 그랬습니다. 포로수용소 소장은 적군들이니까 죽을 것인데 안 죽고 살려주는 것만 해도 감지덕지니까 지키기만 하는 것이고 고아원 원장은 고아들 데려다놓고 월급 받고 그래 있는 것이고 목자는 부모 같은 심정으로 이런 여러 종류의 반사가 있다 그럽니다. 나는 어떤가 생각해봐야 됩니다. 여기 목자는 부모 같은 목자입니다. 그러니까 양이 한 마리 자기 품을 떠나니까 모든 근심 걱정이 거기 다 기울어져서 자식 잃은 부모의 심정, 부부가 행복하게 잘 살다가 딸 하나가 유괴됐든지 잃어버렸든지 그래가지고 가정 파탄된 그런 경우 흔하게 보지요. 참 안타까운 일입니다. 보면은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그런 딸 아들 자식을 잃어버리고 못 찾아놨으니 그 부모 심정이 어떻겠는가 그말이지요. 몇 년이고 그냥 사업도 다 집어던지고 그만 딸자식 아들 찾아서 몇 년이고 돌아다닌다 그러지요. 다니다가 그만 인생 다 자기도 다 허비한 경우가 종종 있는데 그게 부모의 심정입니다. 여기 목자는 주님인데 주님의 심정이 우리들에 대해서 그러하다 그말이지요. 그러니까 모든 근심 걱정이, 모든 관심이 잃은 향 한 마리 거기에. 모든 노력은 잃은 양 한 마리 찾는 거기에. 그리고나서 목자의 가장 큰 기쁨은 아흔아홉마리로 인해서 하늘에서는 의인 아흔아홉을 인하여 기뻐하는 것보다 잃은 양 한 마리 죄인 하나가 회개하는 것을 더 기뻐한다 그랬습니다. 의인 아흔아홉을 인해서 기쁜, 의인 99명이니까 얼마나 일을 많이 하며 충성을 많이 하며 목자를 잘 섬기겠습니까? 그 모든 기쁨 전부보다 목자는 잃은 양 한 마리 죄인 하나가 회개하는 것을 더 원하고 기뻐한다 이게 하늘의 성격입니다. 주님의 심정입니다. 여기 하늘은 어딥니까? 하늘에서는, 여기 하늘은 어디를 말합니까? 교회라는 겁니다. 교회라는 곳은 하늘의 세계는 하늘의 성격은 바로 이런걸 말하는 겁니다. 이게 목자되신 하나님의 심정이고 천국의 성격입니다.
그런데 하나 기억할 것이 여기서 잃은 양이 누구냐? 잃은 양은 오전에 몇가지 였습니까? 잃은 양 첫째는 누굽니까? 잃은 양은? 첫째? 첫째 잃은 양이 누구였던가요? 잃은 양은 택자, 택자로서 아직까지 안 믿는 사람 택자. 두 번째 잃은 양은요? 믿다가 낙심한 사람, 세 번째 잃은 양은요? 믿는 사람에서 죄된 한 부분. 요게 잃은 양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하나 생각해보십시다. 수많은 교회들이, 수많은 설교자들이 요 잃은 양을 앞에 두가지만 주로 말합니다. 하나님의 백성인데 아직까지 하나님을 찾지 못하고 헤매고 있는 어린양. 믿어야 될 사람 어린 양이다. 그래서 잃은 양을 찾아야 된다, 강조 많이 합니다. 또 예수님을 믿다가 낙심 했으니까 목사 품을 떠났으니까 잃은 양, 다시 품으로 돌아와야 된다. 여기까지는 다 알고 많이 강조하고 설교를 합니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 자신과 한번 연결시켜 보십시다. 이 말씀을 오늘 여기 있는 우리들이 잃은 양에 해당이 된다면, 나도 잃은 양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첫째 택자로서 믿지 못한 사람, 우리는 해당됩니까? 택자로서 예수 믿지 못하는 사람 우리 그런 사람입니까? 아니면 우리 잃은 양 아닙니다. 두 번째? 믿다가 낙심한 사람. 우리 그렇습니까? 아닙니다. 그럼 우리 잃은 양 아닙니다. 여기까지만 끝나면 요 말씀은 우리하고는 해당이 없습니다. 그럼 이 말씀이 우리하고 해당이 될려면 우리는 어디 위치입니까? 목자 위치만 해당됩니다. 우리는 잃은 양이 아닙니다. 그러면 우리는 잃은 양이 아니니까 하늘의 기쁨도 목자되신 하나님의 기쁨도 드리지 못하겠습니다. 우리는 잃은 양이 아니고, 그런데 만약에 세 번째 잃은 양은 믿는 사람의 죄된 한 부분을 말씀한 것이라면 우리는 해당 됩니까 안됩니까? 해당 안되는 사람이 있습니까? 우리 전부는 다 여기 해당이 되는 겁니다. 그렇다면 주님이 진정 원하시는 것은 무엇을 원하시는가? 택한 백성으로서 믿지 않는 사람은 때가 되면 어떤 형태로든 중생을 합니다. 중생된 사람은 때가 되면 하나님을 찾게 됩니다. 믿게 됩니다. 택자 중에서 안 믿는 사람 같으면 이 말씀과 좀 더 거리가 멀겠고 해당은 되겠지만은, 믿다가 낙심한 사람은 좀 더 가깝겠고 그보다 가장 이 말씀이 직접적으로 많이 해당이 된다면 수많은 믿는 사람들 중에서 그 믿는 사람의 모든 언행심사 모든 생활중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떠나버린, 하나님의 법을 떠난, 하나님을 떠난 그 모든 말과 행동과 마음의 작용과 모든 생활을 찾아 본다면 우리에게는 그런 것들이 수없이 많이 있을 겁니다. 그런데 그 중에서 하나님께서 가장 원하시는 한 부분, 잃은 양 한 마리, 지금 하나님께서 나에게 있어서 가장 원하시는, 내게 있는 하나님 말씀을 떠나서 죄가 되어 있는 부분, 그걸 하나님께서 고치기를 그토록 원하시는 것을 생각해본다면 바로 그래서 목자되신 주님의 심정은 모든 관심과 근심걱정 전부는 어린양 한 마리에 다 가있는데 어린양, 너희 중에 어느 사람이 양 일백마리가 있는데 그 중에 하나를 잃으면, 하납니다. 드라크마도 하나를 잃으면, 하납니다. 그 하나가 전부가 아니고 가장 앞에 대두된 하나님이 가장 원하시는 그 하납니다. 그 하나. 그거 하나 하고 나면 또 하나가 나오겠지요. 목자되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가장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가. 하나님과 동행, 선, 기도, 전도, 심방, 인간 구원. 다 좋습니다. 다 원하는 겁니다. 그런데 여기 본문에는 목자되신 하나님께서 양된 우리들에게 우리는 다 양이지 않습니까? 양된 우리에게 가장 원하시는 것은 잃은 양 한 마리 그걸 찾는 겁니다. 그 잃은 양 한 마리 그것이 무엇인가? 바로 가장 많이 강조되는 부분이 오늘 여기 있는 우리들에게 저와 여러분들 우리들에게 하나님 앞에 죄되어 있는 그 부분, 하나님께서 고치기를 원하시는, 바꾸기를 원하시는 그 한부분 그것을 회개하는 겁니다. 거기 하나님의 모든 관심은, 근심 걱정은 다 기울어져 있는 겁니다.
어떤 사람이 예를 들겠습니다. 예수 믿는 사람이 그 사람이 아직 신앙이 어려서, 신앙이 어려서 주일은 잘 지킵니다. 잘 지키는데 아직까지 술을 끊지 못해서, 담배를 끊지 못해서 애를 태우고 있습니다. 그 사람 스스로 기도하면 좀 아는 사람이면 나는 예수 믿는 사람인데 담배를 못 끊어서, 술을 못 끊어서 자꾸 그 생각이 납니다. 그러면 그 사람은 기도하는 것보다 성경보는 것보다 연보하는 것보다 전도하는 것보다 어떤 의를 행하는 것보다 하나님이 그 사람에게 가장 원하는 것은 그 사람에게 있어서는 술을 끊고 담배 끊는 그것을 가장 원하고 계시는 겁니다. 그게 바로 잃은 양 한 마리입니다. 자기 속에 있는 습성 하나가 있습니다. 나쁜 습성. 무슨 습성이든지 그 습성이 있으면 밤 늦게까지 쓸데없는 것을 보는 거라든지, 밤 늦게까지 안 할 일 하는 것이라든지, 아침에 늦잠을 자는 것이라든지, 게으른 것이라든지, 자기가 하나님 앞에 눈을 감고 기도하면 가장 먼저 양심에 걸리고 가책되는 그 머리되는 하나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바로 그 넘어것을 원하지 않습니다. 바로 그것을 원하신다는 겁니다. 너 요게 바로 잃은 양이니, 하나님의 목자되신 하나님의 밤낮 근심 걱정 심정은 사람마다 다른데 그 사람에게는 이걸 고쳐야 되는데, 이걸 바꿔야 되는데, 이거 회개해야 되는데, 거기 하나님의 모든 관심이 다 기울어져 있다는 겁니다. 목자의 심정입니다. 그거 고치는데 하나님의 모든 노력은 다 기울어집니다. 그래서 그거 하나 고치면 하나님께서 다른 것 다 안해도 하나님 기뻐하시는 역사가 팍팍 보입니다. 그런거 경험해 보십니까? 그 하나를 딱 두고 그거 하나만 고치면 하나님의 모든 초점이 관심의 초점이 근심 걱정이 거기 다 기울어져있고 노력이 다 기울어져있으니까 그것만 딱 고쳤다하면 하나님께서 그에게 기뻐하시는 그런 모습을 마구 보여주시는 것이 환하게 보여집니다. 이게 신앙입니다. 요렇게 사는게 신앙생활입니다. 살아있는 것이고. 그리고나서 그것만 고치고나면 하나님께서 그렇게 기뻐하시는 그런 모습을 보여주시는 겁니다. 신앙이란 것은 유기적인 생활입니다. 유기적이라 말은 생명이 살아있다는 뜻입니다. 작용한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목석이 아닙니다. 돌부처에게 기도하듯이 그런 기도는 신앙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살아계시니 그 살아계신 하나님이 나를 보실 때 내 모든 생활을 나의 모든 평소생활을, 가정생활, 인간관계, 경제생활, 개인생활 돌아보면 알잖습니까? 그래서 신앙생활에 가장 중요한 것은 생각이고 그 생각의 방향은 자기를 돌아보는 겁니다. 자기를 살피는게 생각입니다. 나는 누구냐? 내 생활이 어떠냐? 지금 나 개인의 생활은, 내 가정 생활은, 내 직장 생활은, 내 경제 생활은, 나의 인간관계는, 나의 생활태도는, 예배 생활은, 나의 신앙 생활 여러 가지 모습들은 그런 걸 돌아보면 그중에서 하나님께서 가장 자기 양심을 통해서 먼저 알려주시는 것이 있습니다. 그게 바로 하나님이 그토록 고치기를, 하나님 품으로 돌아가기를 원하시는 잃은 양 한 마리에 속한 죄된 한 부분이다 그말이고 하나님의 모든 관심이 성도 성도마다 그런것이 있으니까 거기 다 기울어져있습니다. 하나님의 모든 근심 걱정은 거기 다 가있습니다. 그게 아흔아홉마리를 들에 두고 잃은 양 한 마리를 찾아다니는 목자의 심정입니다. 저걸 고쳐야 되는데. 저는 아무것이한테는 저 사람은 성격을 고쳐야 되는데, 속아지를 고쳐야 되는데, 자존심을 좀 뽑아내야 되는데, 저 습성을 좀 고쳐야 되겠는데, 악습을 고쳐야 되겠는데, 저 생활 방편을 좀 바궈야 되겠는데, 저 말버릇을 고쳐야 되겠는데, 말투를 고쳐야 되겠는데, 마음보를 고쳐야 되겠는데, 경제 관념을 좀 바꿔야 되겠는데, 어떤 사람은 다 좋은데 경제 관념이 없어서 경제 생활이 엉망이 된 사람이 있습니다. 그 사람은 하나님께서 아무것도 못합니다. 기도 안해도 괜찮다, 성경 안봐도 안뭐라할게. 심방 전도 안해도 괜찮다, 너는 경제관념부터 바꾸고 경제부터 바로 잡아라. 현재 너 정도에서는 경제생활이 그래되면은 아무것도 못한다, 그것부터 고쳐라. 사람마다 다 있으니까 그게 바로 잃은 양 한 마리입니다. 어떤 사람은 그런 사람도 있습니다. 성경을 죽어도 안 읽는 사람. 그 사람한테는 주님이 제발 성경 좀 읽어라 밥은 먹지, 하루 세끼 꼬박꼬박 밥은 챙겨먹으면서 하나님의 일용한 양식되는 성경은 왜 안 읽느냐? 제발 성경 좀 읽어라. 그 사람은 성경 읽으면 하나님께서 그렇게 기뻐하시는 그런 모습을 보여주십니다. 어떤 사람은 기도를 원하는 사람. 그런데 그런 것은 건설적인 것이기 때문에 그런것 보다는 대개 회개라는 것은 잘못된 것을 고치는 것이기 때문에 성경 읽고 기도하기를 원하는 것보다는 우리들 속에 우리의 모든 잘못이란 건 전부 심신의 작용이지 않습니까? 죄라는 것은 심신의 작용에서 나오는 삐뚤어진게 죕니다. 죄라는 것은 심신의 활동작용이 하나님과 말씀에 삐뚤어지게 됐을때 그걸 죄라고 그럽니다. 그러니까 그 심신의 활동작용 중에서, 수많은 작용 중에서 하나님과 말씀에 틀리고 삐뚤어진 하나님이 하지 말라는 것, 하지말라는 걸 한 것, 하라는 걸 안한 것, 말씀에 어긋난 것, 삐뚤어진 것, 수많은 마음의 심신의 작용움직임들, 모든 대외관계접촉들 그 속에서 생겨진 삐뚤어진 잘못된 그것을 하나 찾아서 그중에서 가장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을 믿는 사람은 말씀이 있고 말씀에 좌우되는 양심이 있고 성령의 감화가 있으니까 생각해보면 아는 겁니다. 그러기 때문에 속지 말아라, 스스로 속이지 말아라, 하나님은 만홀히 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말씀을 하신 겁니다. 생각해보면 압니다. 너희가 남에게 대접을 하고자 하는대로 너희가 남을 대접하라 이것이 바로 율법이다. 이게 하나님의 가르침이고 법이고 이게 선지자다, 하나님의 종들이 외치는게 전부 이거다. 너가 원하는대로, 입장을 바꿔서 니가 지금 하나님이라면 네가 하나님이 되어서 너 자신을 살펴볼때 너에게 가장 하나님께서 원하시는게 무엇이겠나를 살펴보면 안다는 겁니다. 생각해보면. 그것이 바로 잃은 양 한 마리 잃어버린 그 양을 찾는 목자의 심정, 애타는 심정, 찾는 노력, 전심전력, 하나님의 모든 역사라 말은 그 사람에 대한 섭리역사입니다. 그 사람을 향한 하나님의 모든 섭리역사, 주변 모든 환경, 그 사람 주변에 사람들의 심리상태, 일어나는 일들, 크고 작은 모든 사건들, 그 모든 것을 살펴보면 가만히 살펴보면 자기에게 하나님께서 원하시는게 무엇인지 알 수 있습니다. 아 하나님께서 이런 일이 생긴것은 바로 나에게 요 면 때문이구나. 요거 고치라는 것이구나. 그래서 이 사람을 보내서 이런 일을 생기게 하는구나. 별별일이 다 있는데 그 모든 일의 전부는 하나님의 전심전력 전역사는 그 사람에게 있는 가장 하나님이 원하시는 잃은 양 한 마리에 속한 그 하나. 그거 고치는 거기에 그걸 발견하도록, 알도록 그래서 그걸 알기까지 자꾸 하나님께서는 쉬지 않고 역사하십니다. 그걸 알게 하려고, 알고나면 고치게 하려고, 끊임없는 역사를 하시는 겁니다. 이거는 들은 말씀이고 배운 말씀인데 말씀을 듣고 배우고 나서 생각해보니까 수도없는 역사가 바로 그렇습니다. ‘아 그렇구나 바로 나한테 있는 요거 하나 고치는 걸 하나님께서 그토록 원하시고 요것 때문에 밤낮 근심걱정을 하시는구나. 요것 고치라고 모든 노력을 다 하고 계시는구나. 이걸 고치니까 그렇게 기뻐하시는구나.’ 요걸 우리가 기억하십시다.
그래서 요래 고치고 나니까 잃은 양 한 마리 찾고 나니까 하늘에서는, 하늘은 하나님이 계신 곳입니다. 하나님 계신 곳, 천군 천사 있는 곳, 복음의 사람들, 믿음의 성도들이 있는 그곳이 하늘입니다. 교회입니다. 그곳에서는 회개할 것 없는 의인 아흔아홉. 다 되어있으니까 그들은 걱정할 것 없지요. 그들의 모든 역사나 건설이나 작용이나 하나님 기쁘시게 하는 그런 모든 것보다 하나님의 기쁨은 죄인 하나가 회개한 그것을, 하나 고치는 거기에 모든 것이 다 있어서 그게 바로 하나님의 기쁨이고 하늘의 기쁨이다. 그래서 회개를 하늘의 기쁨이다. 같이 해보실까요? ‘회개는 하늘의 기쁨.’ 회개는 하늘의 기쁨입니다. 집안에 가정에서 씩씩하고 잘난 자식들 다 잘사는데 아주 꼬랑꼬랑 앓는 그런 아이 하나가 늘 끙끙 앓고 있으면 부모의 마음은 잘난 자식들한테 가있지 않습니다. 너거는 다 잘났으니까 알아서 잘 살겠지, 그런데 저 막내 저 녀석은 어떻게 먹고 살꼬. 앞날에 어떻게 살꼬. 밤낮 그 막내 끙끙 앓는 자식 막내 그놈 때문에 잠을 못자고 밥을 못 먹고 눈을 못 감습니다. 죽을때도 얘들아 제발 부탁한다, 저 막내 저거 좀 챙겨다오. 부모 심정 아니겠습니까?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그 죄인된, 죄된 그 부분 거기 모든 관심은 다 가있다 이게 목자되신 잃은 양 있는 목자의 주님의 심정 요 심정을 우리가 기억을 하고 우리 속에 있는 내 속에 있는 잃은 양에 속한 죄된 부분 요걸 찾아서 목자와 같은 심정, 주와 같은 심정으로 요걸 찾는데 찾고 난 다음에 이걸 고치는 여기에 이걸 고쳐서 주님을 이렇게 기쁘시게 하는 그런 우리가 되보십시다. 다같이 통성으로 기도드리겠습니다. 잃은 양 비유, 잃은 양 한 마리, 택자로서 믿지 않는 사람 해당 됩니다. 믿다가 낙심한 사람도 물론 해당됩니다. 그러나 가장 직접적으로는 오늘 믿는 우리들 중에서 하나님 말씀을 떠난 우리의 한부분, 생활, 습성, 성품, 요소 이런 거 하나 찾아서 고치는 걸 하나님이 그토록 원하시니까 나에게는 잃은 양에 속한 것이 과연 무엇일까 깊이 좀 생각해보십시다.
제목: 회개는 하늘의 기쁨
요점:
1. 인식 전환의 필요성
- 모든 존재, 활동, 결과의 근원은 하나님
- 인생의 행복과 기쁨은 하나님 모신 데서만
- 하나님 떠난 인생은 불행과 고통과 두려움뿐
- 하나님 떠나도, 하나님 없어도 행복할 수 있다는 인식은 큰 불행
- 이런 잘못된 인식을 완전히 바꾸어 전환할 것
2. 교회는 인간병 치료하는 곳
- 15장 전체는 1-2절에 대한 주님의 말씀
- 15장은 잃은 양 한 마리 비유, 잃은 드라크마 비유, 탕자 비유
- 예수님은 의인의 구주가 아닌 죄인의 구주
- 교회는 죄인을 불러서 구원하는 곳, 사람을 만드는 곳
- 따라서 교회는 인간병 고치는 병원이며
- 교역자는 인간병 고치는 의사, 교인들은 간호사와 같은 것
- 죄 짓는 사람들, 잘못하는 사람들에 대한 우리의 태도와 인식을 바꿀 것
3. 본문에서-목자의 심정
- 잃은 양 한 마리 비유를 통해
- 죄인 하나, 죄인의 한 부분 회개에 대한 하나님의 기쁨을 말씀
- 목자는 예수님, 성령님, 복음의 일꾼들
- 목자의 관심과 근심 걱정 전부는 잃은 양 한 마리에
- 목자의 전심전력은 잃은 양 한 마리에
- 목자의 기쁨 전부는 잃은 양 한 마리 찾았을 때
4. 본문에서-잃은 양 한 마리는
- 잃은 양 한 마리는
①택자로서 아직 믿지 않는 사람
②믿다가 낙심한 사람
③믿는 사람의 회개하지 않은 죄된 한 부분
- 잃은 양 한 마리를 ①과 ②로만 생각하면 우리 대부분은 해당되지 않으나
- 잃은 양 한 마리를 ③으로 생각한다면 우리 모두가 다 해당되는 말씀
5. 회개는 하늘의 기쁨
- 잃은 양 한 마리를 찾는 것은 죄인의 회개
- 죄인 하나가 회개하면 하늘에서는 기쁨이
- 회개할 것 없는 의인 99로 인한 기쁨보다 더한 기쁨
- 하늘은 지상의 교회이니
- 교회의 하나님과 성령님과 복음의 모든 일꾼들, 하늘의 천군천사들까지
- 가장 원하고 기뻐하는 것은 잃은 양 한 마리 찾는 것 즉 죄인의 회개
- 회개는 하늘의 기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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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원문)
20131103 주후
누가복음 11:1-7
오전 말씀중에서 중요한 것 하나가 우리 인식을 전환하자 하는 겁니다. 인식을 바꾸자. 같이 해보실까요? ‘인식 전환’. 전환이라 그말은 바꾼다 그 뜻입니다. 인식을 전환하자, 인식이라 말은 자기의 주관이 된 지식이라 이걸 일반적으로 국어사전 의미하고 좀 다릅니다. 국어사전적인 의미는 ‘알 인’자 ‘알 식’자 그냥 안다 인지한다 그런 뜻인데 제가 생각하는 인식은 자기의 주관이 된 지식이라 그말입니다. 인식. 어떻게 보느냐 일종의 사고방식 같은 것 이런것이 인식입니다. 무슨 인식을 바꾸느냐? 인식은 모든 존재나 모든 일에 대한 인식이 많이 있는데 그중에서 오늘 말씀드린 인식전환은 인간의 참된 행복과 혹은 불행과 기쁨 이런 것을 말씀드린 겁니다.
로마서 11장 36절에 무슨 말씀이 있다고요? 오전 요약지에 나와있는데요? 로마서 11장 36절에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감이라’ 만물은 하나님이 지으신 모든 피조물 전부를 말합니다. 주에게서 나왔고 그다음 존재했고 주로 말미암고 움직이고 주에게로 돌아간다 그말은 하나님이 모든 것을 지었고 하나님이 모든 것을 다 주권하고 있고 그 주권 속에는 만물 자체 주권과 함께 만물의 주권에는 하나님의 그 주권 역사 속에는 모든 활동 그 활동으로 인한 결과가 다 포함이 되어있어서 말하자면 인간의 생사화복 흥망성쇠 존비귀천 희로애락 이런 것들이 전부다 하나님의 주권 속에 포함이 되어있다 그말입니다. 우리가 찬송을 할때 그냥 할 것이 아니고 만복의 근원 하나님 그러면 모든 복의 복 전부는 그 근본이 하나님이라 그말입니다.
근원이라 말은 우물에 우리들이 마시는 물에 원천 그는 어디서 나오느냐 그말입니다. 거기서 끊어져버리면 일시적으로는 나와도 과거에 그런 예가 더러 있었는데 요즘도 아마 있을 겁니다. 주유소에서 기름 차에 넣어줄때 넣어주면은 이게 계량기 미터기가 딱 끊어지는 것이 어디서 끊어지는고 하니 주유소 그 입구에 딱 끊어져버리거든요. 차 기름 넣는 거기서. 거기 끊어지도록 만들어놓으면 거기서 호수까지 길이가 제법 되는데 그 안에 있는 기름의 분량을 전부 주유소에서 떼먹는다 그런 말들이 한때 많이 있었습니다. 지금은 어떤지 모르겠지만은 그만큼 남는 거지요. 근데 그 뿌리가 안에서 딱 끊어지면 들어있어도 쪽 빠져나오고 나면 다 없어지게 되는 거지요. 근원이란 것은 근원이 무슨 ‘근’자 입니까? 000 선생님 '근‘자가 무슨 ’근‘자인가요? 근원의 ’근‘자는 ’뿌리 근‘자입니다. ’뿌리 근‘자. 만복의 근원 그 근원은 모든 복의 근본 뿌리가 하나님이라. 뿌리에서 끊어지면 죽는 겁니다. 아무것도 없는 겁니다.
그래서 모든 존재, 모든 존재 자체와 그 모든 존재 활동 전부의 근원은 하나님이기 때문에 따라서 인생의 모든 행복은 근본이 하나님에게 있다 그말입니다. 하나님에게서 끊어지면 하나님과 끊어지는 걸 뭐라 그럽니까? 하나님과 연결은 생명이고 그러면 하나님과 단절은 사망이겠지요. 하나님과 끊어지면 사망입니다. 하나님과 끊어지면 단절이 되었으니까 끊어졌으니까 거기서 밑에서 하나님께로부터 나오는 모든 것은 다 끊어져버리는 겁니다. 그러니까 인생이 하나님과 끊어지고 멀어지면 끊어져도 논리적으로 말하면 일반적으로 끊어져도 가까이 있으면 다시 붙이면 되겠는데 손가락이 탁 잘렸습니다. 얼른 가지고 가서 몇시간 안에 가지고 가면 다시 봉합 수술해서 붙일 수 있다 그러지요? 그런데 딱 잘렸는데 어디 갔는지 없어져버렸습니다. 그러면 못찾으면 시간 지나면 없는 겁니다. 끊어지면 없는 거지요. 죽은 거고. 하나님과 끊어지면 사망입니다. 그 사망에서 멀어지면 더더욱 사망은 더 깊어지는 겁니다. 인생의 참 행복, 생명과 생명이 있어야 그다음 모든게 있지요. 생명과 행복과 기쁨과 만족과 온갖 좋은 것은 하나님에게서 나온다 하는 겁니다. 그러니까 만약에 사람이 하나님을 떠나면 하나님과 끊어지면 생명이 없고 멀어지면 점점 멀어지고 그래서 하나님 떠난 인생에게 행복은 없다 기쁨은 없다 만족도 없다 그렇다면 하나님 떠난 인생은 사망이고 불행이고 고통이고 이런 것 밖에 없는 겁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하나님을 떠나도 예수 믿는 사람들이 수많은 믿는 사람들이 하나님을 떠나고도 얼마든지 잘 웃고 삽니다. 아닙니까? 제가 오늘 이 말씀을 준비하면서 생각하는 중에서 가장 큰 고민이 그거였습니다. 그래서 오전 말씀에 제목을 인식의 전환이라 그래 붙이려 그러다가 전체로 회개로 그래했는데 하나님을 떠나도 믿는 사람이 잘 먹고 잘 살고 잘 웃고 잘 누리고 과거 어떤 사람은 그게 전부 아니겠지만은 백목사님만 바라보고 살다가 백목사님이 순교하시는 그순간 이 세상이 끝나는 줄 알았고 인생이 끝나는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백목사님 가셔도 세상은 그대로 돌아가더라 그말이지요. 하나님의 뜻이 있고 섭리역사가 있는 것이겠지요. 그런데 백목사님은 사람이니까 그분은 하나님이 보내신 종이니까, 귀한 종이지만은 그분이 떠나도 그분이 남긴 말씀이 있고 그분의 생애가 남아있고 은혜가 있으니까 살아갑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떠나면 하나님은 생명의 근본인데 그분 떠나면 인생은 막바로 사망입니다. 고통 밖에 없고 불행 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수많은 예수 믿는 사람들이 하나님과 끊어지고도 하나님을 떠나고도 하나님 떠나는 것은 죄를 지으면 말씀을 어기면 하나님을 떠나는 겁니다. 하나님 떠나고도 죄를 짓고도 얼굴에는 웃음이 피고 마음까지도 편안하고 보면 알지요? 전혀 양심에 거리낌이 없고 캥기는 것이 없고 꺼림칙한것이 없고 마음껏 먹고 마음껏 입고 실력껏 벌고 마음껏 누리고 잘 삽니다 행복하게 기쁘고 즐겁게. 그리 살고 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야고보를 통해서 야고보 4장 9절에 말씀하시기를 ‘너희들의 웃음을 애통으로 바꿔라 너희 즐거움을 근심으로 바꾸라’고 말씀을 하신 겁니다. 이게 인식이 잘못된 것이고 거꾸로 된 겁니다. 몰라서 된 것이고 믿음이 없어서 그런 겁니다. 우리는 이 말씀을 가지고 기억을 해야 됩니다. 예수 믿는 사람이 죄를 지어도 행복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아도 그렇게 살고 있다는 그 자체가 큰 불행입니다. 하나님 떠나도 하나님 없어도 잘 먹을 수 있다는게 큰 불행입니다.
야곱은 하나님 없이는 못사는 사람이였습니다. 하나님의 축복이 끊어지면 차라리 내가 죽고 말지 내가 도둑놈이 되더라도 하나님의 축복은 받아야 되겠다. 그게 야곱의 중심입니다. 그래서 야곱은 도둑질 했습니다. 형의 장자 명분을 빼앗아버렸습니다. 빼앗았고 그다음에 형에게 갈 장자의 축복을 몽땅 가로채버렸습니다. 도둑질이지요. 큰 도둑질입니다. 물건 훔치는 것보다 더 큰 도적질 요즘 저작권 도적질처럼 큰 도둑질입니다. 그래도 야곱은 그 중심이 ‘내가 이런 도둑놈이 되더라도 하나님 없이는 못 살겠다. 하나님과 끊어지고는 못 살겠다.’ 그게 야곱의 중심입니다. 에서는 처음에는 그런 줄 알았다 네가 하도 그러니까 아버지가 그러니까 나도 그런 줄 알았다. 그런데 20년동안 떨어져서 살아보니까 야곱이 선물을 잔뜩 보내니까 에서가 말하기를 ‘야 야곱아 너 그렇게 하나님 축복 노래 부르고 그렇게 얍삽하게 꾀 많게 쩨쩨하게 내 장자 명분 빼앗아 가고 축복 빼앗아 가고 그래가지고 도망 다니고 너는 그래 쩨쩨하게 살았는데 나는 통 크게 남자답게 그렇게 살아도 20년 지났는데 나도 잘 산다. 너 보내준 것 아니라도 나도 이만큼 부자됐고 떵떵거리고 잘 산다. 하나님 없어도 되더라 하나님 축복아니라도 잘 살 수 있겠더라’ 그래서 에서입니다. 그래서 에서는 탈선이고 멸망의 조상입니다. 구원의 조상이 아니고.
하나님이 없어도 믿음 생활 안해도 말씀을 떠나도 죄를 지어도 괜찮다고 생각하는 그것이 사람의 불행 중에 가장 큰 불행입니다. 시편 73편에 그 이해할 수 없었던 그 하나님 없는 떠나버린 그 잘 먹고 잘 사는 그 사람보고 시험 들었던 그 시편 기자가 참 깊이 바로 깨달았습니다. 우리는 그런걸 보고 아는 우리가 되야 됩니다. 회개를 해야 되는데 뭘 회개할 것인가? 알아야 회개를 하지요. 범죄함으로 인해서 하나님 앞에 죄를 짓고 하나님을 떠나고 멀어짐으로 인해서 받는 고통이 있어야, 아픔이 있어야, 마음에 괴로움이 있어야, 양심에 찔리는 그런 것이 있어야 회개할 마음이 생겨지지요. 몸이 아파야 약을 먹고 병원에 갈 것 아닙니까? 그런데 아픔이 없으니까 괴로움이 없으니까 고통이 없으니까 거기에 대한 감각이 전혀 없는 겁니다. 그런 걸 가리켜 성경은 뭐라 그럽니까? 그렇게 믿음을 떠나도 말씀을 어겨도 하나님과 떠나도 아무런 감각이 없는 걸 가리켜 성경은 강퍅이라 그럽니다. 강퍅. 팍이 아니라 강퍅. 받침이 두갭니다 줄이 두 개. 강퍅. 성경은 그리 말합니다. 우리 마음을 강퍅하게 하지 말아라. 바로가 마음을 강퍅케 하다가 애굽 나라가 완전히 망했고 바로도 망했습니다. 우리는 그런 우리가 되지 말고 인식을 완전히 바꿔야 되겠습니다. 잘 몰라도 어쨌든 하나님의 말씀을 떠나면, 어기면 바로 죄고 죄를 지으면 그때부터 무조건 사망이다, 불행이다, 고통이다, 두려움이고 저주밖에 없다는 요 사실을 똑똑히 기억을 하고 인식 속에 우리 인식 속에 완전히 박아놔야 되겠습니다. 요걸 꼭 기억을 하시고 그다음 두 번째는 여기 15장에 보면 내용 전체가 1절 2절에 대한 말씀에 이어집니다. 모든 세리와 죄인들이 말씀을 들으러 가까이 나아오니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정 반대지요? 세리와 죄인들하고 바리새인과 서기관은 정반대쪽에 있는 사람입니다. 극과 극입니다. 하나는 하늘이고 예를 들면 하나는 땅입니다. 하나는 귀족들이고 아주 귀족들이고 하나는 천민들입니다. 그러니까 세리와 죄인들은 아주 말단들, 쓰레기들, 인종지말자들 그런 사람들이고 바리새인 서기관들은 아주 거룩한 사람들 근엄한 사람들 잘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 그 사람들입니다. 예수님이 오셨을때 예수님 근처에는 바리새인과 서기관이 없지는 않았습니다. 바리새인과 서기관이 없지는 않았는데 주로 예수님 근처에는 전부 죄인들과 세리들이 바글바글하게 모여 들었습니다. 천민들이 모여들었습니다. 죄 많은 사람들, 버림 받은 사람들, 다윗이 사울에게 쫓겨 다닐때 다윗 주변에 모인 사람들도 주로 그랬습니다. 쫓겨난 사람들, 근심 많은 사람들, 별별 종류에 아주 낮은 사람들 그런 사람들이 몰려들었듯이 예수님 주변에는 주로 그런 사람들이 모였습니다. 그러니까 소위 잘 믿는다고 하는 정통교파라고 하는 바리새인들, 하나님의 율법을 거룩하게 잘 지켜서 아주 철저하게 법을 지키는 잘 믿는 사람들 스스로 죄 안짓는다 하는 사람들 또 서기관 성경 박사들, 정통 교회 속한 교인들 성경 박사들 이들이 예수님을 원망하기를 이 사람이 죄인을 영접하고 음식을 같이 먹는다 그렇게 비웃고 조롱을 한겁니다.
그래서 주님이 15장에서 첫째는 잃은 양 비유, 두 번째는요? 잃은 드라크마 비유, 세 번째는요? 탕자 비유로 연이어서 세가지 말씀을 했는데 세가지 전부다 죄인을 돌아오기 원하는 목자의 심정 혹은 아버지의 심정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잃은 양 비유, 잃은 양 몇 마립니까? 잃은 양 한 마리. 드라크마 비유, 드라크마 몇 갭니까? 열 드라크마 중에 하나. 탕자 중에서 그 두 아들 중에서 작은 아들 둘째 요래가지고 꼭 같이 집을 나간 탕자, 잃어버린 드라크마, 목자의 품을 떠난 잃은 양 이래가지고 죄인에 대한 주님의 심정을 주님이 기록을 해주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의인의 구주가 아니다.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오지 않았고 죄인을 불러서 회개시키러 왔다. 예수님은 죄인의 구줍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 스스로 자기가 의롭다 생각하면 주님은 필요가 없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대속은 죄인의 죄를 짊어진 대속이지 의인의 죄를 짊어진 대속이 아닙니다. 의인은 하늘나라에서 필요하지 이 세상에서 스스로 의인은 주님에게 필요가 없는 겁니다. 우리가 죄를 지어라 말이 아닙니다. 있는 죄를 찾아야 된다 그말입니다. 그래서 주님이 세상에 오신 것은 죄인을 불러서 구원하러 오신 처럼, 주님이 세우신 몸된 교회라는 곳은 죄인을 불러서 구원하는 곳이 교회입니다. 교회라는 곳은 그 설립의 취지가 교회라는 존재 목적이, 운영의 방향이 교회는 죄인을 불러서 구원하는 곳이고 죄인을 사람 만드는 곳이 교회입니다. 병원은 뭐하는 곳입니까? 병원에는 어떤 사람이 가는 곳입니까? 병자들이 가는 곳입니다. 팔이 하나 부러졌습니다, 배탈이 났습니다, 감기가 났습니다, 속이 거북합니다. 뭔가 그 사람의 몸에 고장난 사람이 가는 곳이 병원이고 그 병원에 근무하는 의사와 간호사는 그들을 치료해주는 것이 그들의 주업무고 일입니다. 물론 그들 통해서 이익을 창출하고 하지만은 주목적은 자기들 먹고 사는 그것도 그 병을 치료해주고 먹고 사는 겁니다. 세상이니까 자기 이익을 창출하고 이익을 챙겨야되지만은 챙기는데에는 자기 할 일하고 챙겨야 되지 병치료해주지 않고 이익만 챙기면 도둑놈입니다 그거는. 어느 병원이든지 그 병원이 가니까 병원 간판은 붙여놨고 의사 자격증 간호사는 있는데 치료하는데 돌팔이다, 치료하지도 못하고 할줄 모르고 치료는 안해주고 돈만 챙기면 그 병원은 고발해서 없애버려야 니다. 도둑놈들입니다. 그 병원은 사기꾼들입니다. 안그렇습니까? 병원은 사람의 병을 치료하는 곳이 병원입니다. 의사는 사람 병고치는 것이 의사고 간호사는 거기 돕는 사람이 간호사입니다. 교회는 인간병을 고치는 곳이 교회입니다. 목사는 인간병 치료하는 인간병 치료하는 의사입니다. 교인들은 거기 돕는 간호사들입니다. 아닙니까? 그래서 교회오는 사람들은 죄인들이 오는 겁니다. 도둑놈도 오고 사기꾼도 오고 강도도 오고 협착군도 오고 스스로 죄 많은 사람도 오고 술꾼도 오고 별에별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 교회다. 그래서 우리는 교회라는 곳에 대한 인식을 바로 가져야 되고 교인들에 대한 우리들의 인식을 바로 가져야 됩니다. 교회는 거룩한 곳이다. 거룩한 곳이 맞습니다. 교회는 거룩해야 됩니다. 그러나 거기 오는 사람들, 주님 계실 때 예루살렘에 있는 성전 안에 온갖 병자들이 다 모였습니다. 온갖 병자들이 전부 다 모여서 병 낫기를 기다리는데 주님이 거기 가실 때 38년된 가장 병이 중한 그 환자를 제일 먼저 찾아가서 고쳐주셨습니다. 교회는 깨끗한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 아닙니다. 그런 사람들도 옵니다. 더 깨끗해지기 위해서. 거룩한 사람들도 오는 곳입니다. 더 거룩하기 위해서. 그러나 주로 교회라는 곳은 죄인들이 모여서 그 죄인들의 죄를 알고 죄를 살펴서 알고 진찰해서 알고 그 죄를 하나씩 고쳐서 점점 죄 없는 사람들을 만들어가는 곳이 교회다. 우리 하는 일은 이런 것이다. 그러기 때문에 의사가 하는 일은 치과 의사들, 외과 의사들이 하는 일은 주로 뭐하는지 아십니까? 요즘은 많이 아시지요? 성형 수술하면 턱 뼈를 막 깍아낸다 그러지요? 턱뼈 깍다 죽는 사람도 있다 그러지요? 외과 의사들 치과 의사들은 막 그냥 톱질, 대패질, 드릴로 구멍 뚫고 그럽니다. 뼈에 구멍 뚫어야 되고 깍아내야 되고 또 잘라내야 되고 아닙니까? 정형외과 의사들 그래하지요? 치과도 필요하면 그래하고 성형외과도 그래 할 것이고 내과 의사들은요? 안에 내장 막 잘라서 펴봐야 되고 안에 내장 다 드러내봐야 되고. 좋은 일입니까? 고급 같으나 그래서 의사들이 처음 수술하고 난 사람들은 수술하고 나면 일주일동안 밥을 못먹는답니다. 사람 그 내장 다 보고나면. 안그렇겠습니까? 요즘은 이제 발달이 돼서 좀 개복을 덜하지만은. 그게 의사들이 하는 겁니다. 좋은 겁니까? 온갖 흉한 것, 징그러운 것, 끔찍한 것 다 봐야 됩니다. 손에 뭐 뭍혀야 됩니까? 피 뭍혀야 됩니다. 그런거 다 뭍여야 됩니다. 그게 의삽니다. 교회 목사는요? 거룩하게 깨끗하게 그래 지내는 사람이 목사입니까? 아닙니다. 사람을 고치기 위해서는 자기가 깨끗하게 살지만은 도둑질하고 죄짓는다 말이 아닙니다. 별에별 사람을 다 만나고 다 접촉을 하고 다 들어봐야 되고 다 생각해봐야 되고 그게 교회목사고 교인들입니다. 함께 다른 사람을 고쳐가는 간호사, 의사 이런 사람들. 그런 곳이 교회입니다. 이걸 잊어버리면 교회의 본질을 잊어버리는 겁니다. 교회라는 존재에 목적과 가치가 없어져 버리는 겁니다. 우리 교회는 부자들만 모였습니다. 우리 교회는 거룩한 사람들만 모였습니다. 교회가 아니구만. 그거는 교회 아닙니다. 그래놓고 더 거룩해지기 위해서 그래서 그러면 괜찮겠지만은 그걸 자랑으로 삼으면 그 사람은 뭔가 모르는 사람입니다. 요것도 우리 인식을 바로 잡아야됩니다. 성경입니다. 건강한 자에게는 의사가 필요없다, 의원이 쓸데없다,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오지 않았다. 죄인 불러서 구원하러 왔다. 우리 속에 죄인을 볼때 죄많은 사람을 볼때 술꾼들 볼때 예수 믿는 사람들이 술을 먹어? 담배를 펴? 예수 믿는 사람들이 바람을 펴? 저런 죄를 지어? 그런 마음이 들면 하나님께서 ‘이놈아 너는? 한번 뒤집어 보자’ 털어서 먼지 안나는 사람 있습니까? ‘그 가진 심보 하나만 해도 너는 그 심보 하나가 다른 사람 술 먹고 담배 피고 바람 피는 것보다 너는 죄가 더 크다’ 하나님이 그래 판단하실지 모릅니다. 교회라는 것의 인식을 우리가 또 여기서 두 번째 바로 가져야 됩니다.
첫째는 인생의 행불행의 가치, 요 인식 전환. 두 번째는 교회라는 곳에 대한 인식 요걸 두 번째 바로 가지고 본문에 들어가서 잃은 양 한 마리. 잃은 향 한 마리라는 비유를 통해서 여기 잃은 양이라는 것하고 한 마리라는 것이 있습니다. 잃은 양 한 마리 하나. 하나를 찾으면 드라크마 비유에도 하나를 잃으면 요래 하나가 나와 있습니다. 그럼 이 말씀은 목자되신 주님 우리 주님이 죄인 하나 회개하는 것에 대한 안타까운 그 기다림과 심정을 말씀하신 것이라 그래 볼 수 있는데 목자는 오전에 누구 누구였습니까? 첫째 목자는 누구입니까? 목자는 누구 였습니까? 예수님. 두 번째는요? 성령님. 성령님을 다른 이름으로 말하면 좀 길게 말하면 그리스도의 영이라 그래 말합니다. 성신이라고도 하고 성령님. 그다음 세 번째는요? 복음의 일꾼들이면 오늘 여기 있는 우리 대부분입니다. 이 분들이 여기에 목자로 비유된 겁니다. 예수님 하나님입니다. 성령님도 하나님입니다. 그다음 모든 복음의 일꾼들 이분들이 여기 목자입니다. 그런데 이 복음의 일꾼된 목자가 그 모든 관심이 어디다 가있느냐? 마음이 어디다 가있느냐? 목자가 어느 사람이 양 일백 마리가 있는데 그 중에 하나가 한 마리가 그만 목자를 떠났습니다. 못된 송아지가 엉덩이에 뿔난다고 요 못된 양이 목자를 떠나서 뽈뽈뽈 기어나가서 다른데 가버렸습니다. 목자 눈밖에 벗어났습니다. 그러다가 살살 나가가지고 오만데 다 제멋대로 돌아다닙니다. 자유롭게 돌아다니는데 가다보니까 이리도 만나고 사자도 만나고 또 독사도 만날것이고 또 깊은 웅덩이도 만날 것이고 가시덤불도 만날 것이고 가다보니까 배가 고픈데 어디 풀이 있는지 모르겠고 목이 마른데 물이 어디있는지 모르겠고 그러니까 목자 품을 떠난 양의 처지가 그렇습니다. 그 양의 처지를 목자가 너무도 잘 아니까 눈에 한 마리가 안보이니까 참된 목자 같으면 참 목자는 양을 위해서 자기 목숨을 버리느니라, 이 목자가 양이 안보이니까 마음 근심 걱정에 아흔아홉마리를 들에 두고 이 아흔아홉마리는 내 품에 있으니까 아흔아홉 마리를 들에 두고 그 잃은 양 한 마리를 찾도록, 찾을때까지 찾아서 돌아다닙니다. 목자의 심정입니다, 목자의 심정. 그러면 목자의 모든 관심, 심경, 전근심걱정은 어디 가있느냐? 잃은 양 한 마리 거기 다 기울어집니다. 목자의 근심 걱정 심정입니다. 어디가서 밥은 안 굶는가? 꼴은 먹었는가? 목은 안 마른가? 이리한테 삼키지는 않았는가? 구덩이에 빠져 죽었을까? 온갖 불안과 근심 걱정 애타는 마음으로 목자는 자기를 떠난 잃은 향 한 마리에 모든 근심이 다 가있습니다. 또 목자의 모든 노력은 밤낮으로 다니면서 양을 찾아 다닙니다. 찾을때까지 찾습니다. 찾도록 찾아다니지 아니하겠느냐. 손익계산 생산적인 손익계산으로 영업에 이익을 창출하는 그면으로 계산하면 안 맞는 논리입니다, 이건 아닙니다. 여기 목자는 부모의 심정입니다 말하자면. 주일학생을 기를때 백목사님께서 비유하시기를 주일학교 반사 선생님 중에서 첫 번째 포로수용소 소장이 있다, 포로수용소 소장 그 사람은 포로니까 잡아 가두고 탈출만 못하게 막는 포로수용소 소장 같은 반사도 있고 두 번째는 고아원의 원장 같은 반사도 있고 세 번째는 참목자 부모같은 반사도 있다 그랬습니다. 포로수용소 소장은 적군들이니까 죽을 것인데 안 죽고 살려주는 것만 해도 감지덕지니까 지키기만 하는 것이고 고아원 원장은 고아들 데려다놓고 월급 받고 그래 있는 것이고 목자는 부모 같은 심정으로 이런 여러 종류의 반사가 있다 그럽니다. 나는 어떤가 생각해봐야 됩니다. 여기 목자는 부모 같은 목자입니다. 그러니까 양이 한 마리 자기 품을 떠나니까 모든 근심 걱정이 거기 다 기울어져서 자식 잃은 부모의 심정, 부부가 행복하게 잘 살다가 딸 하나가 유괴됐든지 잃어버렸든지 그래가지고 가정 파탄된 그런 경우 흔하게 보지요. 참 안타까운 일입니다. 보면은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그런 딸 아들 자식을 잃어버리고 못 찾아놨으니 그 부모 심정이 어떻겠는가 그말이지요. 몇 년이고 그냥 사업도 다 집어던지고 그만 딸자식 아들 찾아서 몇 년이고 돌아다닌다 그러지요. 다니다가 그만 인생 다 자기도 다 허비한 경우가 종종 있는데 그게 부모의 심정입니다. 여기 목자는 주님인데 주님의 심정이 우리들에 대해서 그러하다 그말이지요. 그러니까 모든 근심 걱정이, 모든 관심이 잃은 향 한 마리 거기에. 모든 노력은 잃은 양 한 마리 찾는 거기에. 그리고나서 목자의 가장 큰 기쁨은 아흔아홉마리로 인해서 하늘에서는 의인 아흔아홉을 인하여 기뻐하는 것보다 잃은 양 한 마리 죄인 하나가 회개하는 것을 더 기뻐한다 그랬습니다. 의인 아흔아홉을 인해서 기쁜, 의인 99명이니까 얼마나 일을 많이 하며 충성을 많이 하며 목자를 잘 섬기겠습니까? 그 모든 기쁨 전부보다 목자는 잃은 양 한 마리 죄인 하나가 회개하는 것을 더 원하고 기뻐한다 이게 하늘의 성격입니다. 주님의 심정입니다. 여기 하늘은 어딥니까? 하늘에서는, 여기 하늘은 어디를 말합니까? 교회라는 겁니다. 교회라는 곳은 하늘의 세계는 하늘의 성격은 바로 이런걸 말하는 겁니다. 이게 목자되신 하나님의 심정이고 천국의 성격입니다.
그런데 하나 기억할 것이 여기서 잃은 양이 누구냐? 잃은 양은 오전에 몇가지 였습니까? 잃은 양 첫째는 누굽니까? 잃은 양은? 첫째? 첫째 잃은 양이 누구였던가요? 잃은 양은 택자, 택자로서 아직까지 안 믿는 사람 택자. 두 번째 잃은 양은요? 믿다가 낙심한 사람, 세 번째 잃은 양은요? 믿는 사람에서 죄된 한 부분. 요게 잃은 양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하나 생각해보십시다. 수많은 교회들이, 수많은 설교자들이 요 잃은 양을 앞에 두가지만 주로 말합니다. 하나님의 백성인데 아직까지 하나님을 찾지 못하고 헤매고 있는 어린양. 믿어야 될 사람 어린 양이다. 그래서 잃은 양을 찾아야 된다, 강조 많이 합니다. 또 예수님을 믿다가 낙심 했으니까 목사 품을 떠났으니까 잃은 양, 다시 품으로 돌아와야 된다. 여기까지는 다 알고 많이 강조하고 설교를 합니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 자신과 한번 연결시켜 보십시다. 이 말씀을 오늘 여기 있는 우리들이 잃은 양에 해당이 된다면, 나도 잃은 양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첫째 택자로서 믿지 못한 사람, 우리는 해당됩니까? 택자로서 예수 믿지 못하는 사람 우리 그런 사람입니까? 아니면 우리 잃은 양 아닙니다. 두 번째? 믿다가 낙심한 사람. 우리 그렇습니까? 아닙니다. 그럼 우리 잃은 양 아닙니다. 여기까지만 끝나면 요 말씀은 우리하고는 해당이 없습니다. 그럼 이 말씀이 우리하고 해당이 될려면 우리는 어디 위치입니까? 목자 위치만 해당됩니다. 우리는 잃은 양이 아닙니다. 그러면 우리는 잃은 양이 아니니까 하늘의 기쁨도 목자되신 하나님의 기쁨도 드리지 못하겠습니다. 우리는 잃은 양이 아니고, 그런데 만약에 세 번째 잃은 양은 믿는 사람의 죄된 한 부분을 말씀한 것이라면 우리는 해당 됩니까 안됩니까? 해당 안되는 사람이 있습니까? 우리 전부는 다 여기 해당이 되는 겁니다. 그렇다면 주님이 진정 원하시는 것은 무엇을 원하시는가? 택한 백성으로서 믿지 않는 사람은 때가 되면 어떤 형태로든 중생을 합니다. 중생된 사람은 때가 되면 하나님을 찾게 됩니다. 믿게 됩니다. 택자 중에서 안 믿는 사람 같으면 이 말씀과 좀 더 거리가 멀겠고 해당은 되겠지만은, 믿다가 낙심한 사람은 좀 더 가깝겠고 그보다 가장 이 말씀이 직접적으로 많이 해당이 된다면 수많은 믿는 사람들 중에서 그 믿는 사람의 모든 언행심사 모든 생활중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떠나버린, 하나님의 법을 떠난, 하나님을 떠난 그 모든 말과 행동과 마음의 작용과 모든 생활을 찾아 본다면 우리에게는 그런 것들이 수없이 많이 있을 겁니다. 그런데 그 중에서 하나님께서 가장 원하시는 한 부분, 잃은 양 한 마리, 지금 하나님께서 나에게 있어서 가장 원하시는, 내게 있는 하나님 말씀을 떠나서 죄가 되어 있는 부분, 그걸 하나님께서 고치기를 그토록 원하시는 것을 생각해본다면 바로 그래서 목자되신 주님의 심정은 모든 관심과 근심걱정 전부는 어린양 한 마리에 다 가있는데 어린양, 너희 중에 어느 사람이 양 일백마리가 있는데 그 중에 하나를 잃으면, 하납니다. 드라크마도 하나를 잃으면, 하납니다. 그 하나가 전부가 아니고 가장 앞에 대두된 하나님이 가장 원하시는 그 하납니다. 그 하나. 그거 하나 하고 나면 또 하나가 나오겠지요. 목자되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가장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가. 하나님과 동행, 선, 기도, 전도, 심방, 인간 구원. 다 좋습니다. 다 원하는 겁니다. 그런데 여기 본문에는 목자되신 하나님께서 양된 우리들에게 우리는 다 양이지 않습니까? 양된 우리에게 가장 원하시는 것은 잃은 양 한 마리 그걸 찾는 겁니다. 그 잃은 양 한 마리 그것이 무엇인가? 바로 가장 많이 강조되는 부분이 오늘 여기 있는 우리들에게 저와 여러분들 우리들에게 하나님 앞에 죄되어 있는 그 부분, 하나님께서 고치기를 원하시는, 바꾸기를 원하시는 그 한부분 그것을 회개하는 겁니다. 거기 하나님의 모든 관심은, 근심 걱정은 다 기울어져 있는 겁니다.
어떤 사람이 예를 들겠습니다. 예수 믿는 사람이 그 사람이 아직 신앙이 어려서, 신앙이 어려서 주일은 잘 지킵니다. 잘 지키는데 아직까지 술을 끊지 못해서, 담배를 끊지 못해서 애를 태우고 있습니다. 그 사람 스스로 기도하면 좀 아는 사람이면 나는 예수 믿는 사람인데 담배를 못 끊어서, 술을 못 끊어서 자꾸 그 생각이 납니다. 그러면 그 사람은 기도하는 것보다 성경보는 것보다 연보하는 것보다 전도하는 것보다 어떤 의를 행하는 것보다 하나님이 그 사람에게 가장 원하는 것은 그 사람에게 있어서는 술을 끊고 담배 끊는 그것을 가장 원하고 계시는 겁니다. 그게 바로 잃은 양 한 마리입니다. 자기 속에 있는 습성 하나가 있습니다. 나쁜 습성. 무슨 습성이든지 그 습성이 있으면 밤 늦게까지 쓸데없는 것을 보는 거라든지, 밤 늦게까지 안 할 일 하는 것이라든지, 아침에 늦잠을 자는 것이라든지, 게으른 것이라든지, 자기가 하나님 앞에 눈을 감고 기도하면 가장 먼저 양심에 걸리고 가책되는 그 머리되는 하나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바로 그 넘어것을 원하지 않습니다. 바로 그것을 원하신다는 겁니다. 너 요게 바로 잃은 양이니, 하나님의 목자되신 하나님의 밤낮 근심 걱정 심정은 사람마다 다른데 그 사람에게는 이걸 고쳐야 되는데, 이걸 바꿔야 되는데, 이거 회개해야 되는데, 거기 하나님의 모든 관심이 다 기울어져 있다는 겁니다. 목자의 심정입니다. 그거 고치는데 하나님의 모든 노력은 다 기울어집니다. 그래서 그거 하나 고치면 하나님께서 다른 것 다 안해도 하나님 기뻐하시는 역사가 팍팍 보입니다. 그런거 경험해 보십니까? 그 하나를 딱 두고 그거 하나만 고치면 하나님의 모든 초점이 관심의 초점이 근심 걱정이 거기 다 기울어져있고 노력이 다 기울어져있으니까 그것만 딱 고쳤다하면 하나님께서 그에게 기뻐하시는 그런 모습을 마구 보여주시는 것이 환하게 보여집니다. 이게 신앙입니다. 요렇게 사는게 신앙생활입니다. 살아있는 것이고. 그리고나서 그것만 고치고나면 하나님께서 그렇게 기뻐하시는 그런 모습을 보여주시는 겁니다. 신앙이란 것은 유기적인 생활입니다. 유기적이라 말은 생명이 살아있다는 뜻입니다. 작용한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목석이 아닙니다. 돌부처에게 기도하듯이 그런 기도는 신앙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살아계시니 그 살아계신 하나님이 나를 보실 때 내 모든 생활을 나의 모든 평소생활을, 가정생활, 인간관계, 경제생활, 개인생활 돌아보면 알잖습니까? 그래서 신앙생활에 가장 중요한 것은 생각이고 그 생각의 방향은 자기를 돌아보는 겁니다. 자기를 살피는게 생각입니다. 나는 누구냐? 내 생활이 어떠냐? 지금 나 개인의 생활은, 내 가정 생활은, 내 직장 생활은, 내 경제 생활은, 나의 인간관계는, 나의 생활태도는, 예배 생활은, 나의 신앙 생활 여러 가지 모습들은 그런 걸 돌아보면 그중에서 하나님께서 가장 자기 양심을 통해서 먼저 알려주시는 것이 있습니다. 그게 바로 하나님이 그토록 고치기를, 하나님 품으로 돌아가기를 원하시는 잃은 양 한 마리에 속한 죄된 한 부분이다 그말이고 하나님의 모든 관심이 성도 성도마다 그런것이 있으니까 거기 다 기울어져있습니다. 하나님의 모든 근심 걱정은 거기 다 가있습니다. 그게 아흔아홉마리를 들에 두고 잃은 양 한 마리를 찾아다니는 목자의 심정입니다. 저걸 고쳐야 되는데. 저는 아무것이한테는 저 사람은 성격을 고쳐야 되는데, 속아지를 고쳐야 되는데, 자존심을 좀 뽑아내야 되는데, 저 습성을 좀 고쳐야 되겠는데, 악습을 고쳐야 되겠는데, 저 생활 방편을 좀 바궈야 되겠는데, 저 말버릇을 고쳐야 되겠는데, 말투를 고쳐야 되겠는데, 마음보를 고쳐야 되겠는데, 경제 관념을 좀 바꿔야 되겠는데, 어떤 사람은 다 좋은데 경제 관념이 없어서 경제 생활이 엉망이 된 사람이 있습니다. 그 사람은 하나님께서 아무것도 못합니다. 기도 안해도 괜찮다, 성경 안봐도 안뭐라할게. 심방 전도 안해도 괜찮다, 너는 경제관념부터 바꾸고 경제부터 바로 잡아라. 현재 너 정도에서는 경제생활이 그래되면은 아무것도 못한다, 그것부터 고쳐라. 사람마다 다 있으니까 그게 바로 잃은 양 한 마리입니다. 어떤 사람은 그런 사람도 있습니다. 성경을 죽어도 안 읽는 사람. 그 사람한테는 주님이 제발 성경 좀 읽어라 밥은 먹지, 하루 세끼 꼬박꼬박 밥은 챙겨먹으면서 하나님의 일용한 양식되는 성경은 왜 안 읽느냐? 제발 성경 좀 읽어라. 그 사람은 성경 읽으면 하나님께서 그렇게 기뻐하시는 그런 모습을 보여주십니다. 어떤 사람은 기도를 원하는 사람. 그런데 그런 것은 건설적인 것이기 때문에 그런것 보다는 대개 회개라는 것은 잘못된 것을 고치는 것이기 때문에 성경 읽고 기도하기를 원하는 것보다는 우리들 속에 우리의 모든 잘못이란 건 전부 심신의 작용이지 않습니까? 죄라는 것은 심신의 작용에서 나오는 삐뚤어진게 죕니다. 죄라는 것은 심신의 활동작용이 하나님과 말씀에 삐뚤어지게 됐을때 그걸 죄라고 그럽니다. 그러니까 그 심신의 활동작용 중에서, 수많은 작용 중에서 하나님과 말씀에 틀리고 삐뚤어진 하나님이 하지 말라는 것, 하지말라는 걸 한 것, 하라는 걸 안한 것, 말씀에 어긋난 것, 삐뚤어진 것, 수많은 마음의 심신의 작용움직임들, 모든 대외관계접촉들 그 속에서 생겨진 삐뚤어진 잘못된 그것을 하나 찾아서 그중에서 가장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을 믿는 사람은 말씀이 있고 말씀에 좌우되는 양심이 있고 성령의 감화가 있으니까 생각해보면 아는 겁니다. 그러기 때문에 속지 말아라, 스스로 속이지 말아라, 하나님은 만홀히 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말씀을 하신 겁니다. 생각해보면 압니다. 너희가 남에게 대접을 하고자 하는대로 너희가 남을 대접하라 이것이 바로 율법이다. 이게 하나님의 가르침이고 법이고 이게 선지자다, 하나님의 종들이 외치는게 전부 이거다. 너가 원하는대로, 입장을 바꿔서 니가 지금 하나님이라면 네가 하나님이 되어서 너 자신을 살펴볼때 너에게 가장 하나님께서 원하시는게 무엇이겠나를 살펴보면 안다는 겁니다. 생각해보면. 그것이 바로 잃은 양 한 마리 잃어버린 그 양을 찾는 목자의 심정, 애타는 심정, 찾는 노력, 전심전력, 하나님의 모든 역사라 말은 그 사람에 대한 섭리역사입니다. 그 사람을 향한 하나님의 모든 섭리역사, 주변 모든 환경, 그 사람 주변에 사람들의 심리상태, 일어나는 일들, 크고 작은 모든 사건들, 그 모든 것을 살펴보면 가만히 살펴보면 자기에게 하나님께서 원하시는게 무엇인지 알 수 있습니다. 아 하나님께서 이런 일이 생긴것은 바로 나에게 요 면 때문이구나. 요거 고치라는 것이구나. 그래서 이 사람을 보내서 이런 일을 생기게 하는구나. 별별일이 다 있는데 그 모든 일의 전부는 하나님의 전심전력 전역사는 그 사람에게 있는 가장 하나님이 원하시는 잃은 양 한 마리에 속한 그 하나. 그거 고치는 거기에 그걸 발견하도록, 알도록 그래서 그걸 알기까지 자꾸 하나님께서는 쉬지 않고 역사하십니다. 그걸 알게 하려고, 알고나면 고치게 하려고, 끊임없는 역사를 하시는 겁니다. 이거는 들은 말씀이고 배운 말씀인데 말씀을 듣고 배우고 나서 생각해보니까 수도없는 역사가 바로 그렇습니다. ‘아 그렇구나 바로 나한테 있는 요거 하나 고치는 걸 하나님께서 그토록 원하시고 요것 때문에 밤낮 근심걱정을 하시는구나. 요것 고치라고 모든 노력을 다 하고 계시는구나. 이걸 고치니까 그렇게 기뻐하시는구나.’ 요걸 우리가 기억하십시다.
그래서 요래 고치고 나니까 잃은 양 한 마리 찾고 나니까 하늘에서는, 하늘은 하나님이 계신 곳입니다. 하나님 계신 곳, 천군 천사 있는 곳, 복음의 사람들, 믿음의 성도들이 있는 그곳이 하늘입니다. 교회입니다. 그곳에서는 회개할 것 없는 의인 아흔아홉. 다 되어있으니까 그들은 걱정할 것 없지요. 그들의 모든 역사나 건설이나 작용이나 하나님 기쁘시게 하는 그런 모든 것보다 하나님의 기쁨은 죄인 하나가 회개한 그것을, 하나 고치는 거기에 모든 것이 다 있어서 그게 바로 하나님의 기쁨이고 하늘의 기쁨이다. 그래서 회개를 하늘의 기쁨이다. 같이 해보실까요? ‘회개는 하늘의 기쁨.’ 회개는 하늘의 기쁨입니다. 집안에 가정에서 씩씩하고 잘난 자식들 다 잘사는데 아주 꼬랑꼬랑 앓는 그런 아이 하나가 늘 끙끙 앓고 있으면 부모의 마음은 잘난 자식들한테 가있지 않습니다. 너거는 다 잘났으니까 알아서 잘 살겠지, 그런데 저 막내 저 녀석은 어떻게 먹고 살꼬. 앞날에 어떻게 살꼬. 밤낮 그 막내 끙끙 앓는 자식 막내 그놈 때문에 잠을 못자고 밥을 못 먹고 눈을 못 감습니다. 죽을때도 얘들아 제발 부탁한다, 저 막내 저거 좀 챙겨다오. 부모 심정 아니겠습니까?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그 죄인된, 죄된 그 부분 거기 모든 관심은 다 가있다 이게 목자되신 잃은 양 있는 목자의 주님의 심정 요 심정을 우리가 기억을 하고 우리 속에 있는 내 속에 있는 잃은 양에 속한 죄된 부분 요걸 찾아서 목자와 같은 심정, 주와 같은 심정으로 요걸 찾는데 찾고 난 다음에 이걸 고치는 여기에 이걸 고쳐서 주님을 이렇게 기쁘시게 하는 그런 우리가 되보십시다. 다같이 통성으로 기도드리겠습니다. 잃은 양 비유, 잃은 양 한 마리, 택자로서 믿지 않는 사람 해당 됩니다. 믿다가 낙심한 사람도 물론 해당됩니다. 그러나 가장 직접적으로는 오늘 믿는 우리들 중에서 하나님 말씀을 떠난 우리의 한부분, 생활, 습성, 성품, 요소 이런 거 하나 찾아서 고치는 걸 하나님이 그토록 원하시니까 나에게는 잃은 양에 속한 것이 과연 무엇일까 깊이 좀 생각해보십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