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27-주후(창3:1-19)
뱀에게 미혹 받은 인류의 범죄2013-10-27조회 464추천 30
본문: 창세기 3장 1절-19절
제목: 뱀에게 미혹 받은 인류의 범죄
요점:
1. 구원은 자체 변화
- 사람은 같지 않고 외모도 성품도 다 다르니
- 자기를 냉정하게 살펴 바로 알아
- 고칠 것을 바로 찾아 고치는 자체 변화가 구원
- 자기를 고치지 않는 신앙은 구원과는 상관 없는 것
2. 에덴동산의 때와 지금
- 본문의 상황은 에덴동산의 때와 장소
- 그때는 마귀가 뱀을 입고 하나님 말씀을 이용하여 미혹했지만
- 지금은 마귀가 무엇을 입고 올지, 어떤 것을 이용할지 모르니
- 본문에서 생각한 7가지를 자기에게서 찾아 고칠 것
3. 뱀에게 미혹 받은 인류의 범죄
1)간교: 상대방을 위하는 척 하면서 자기 위해 이용하는 나쁜 짓
2)이간: 두 사이를 벌어지게 만드는 죄
3)가감: 하나님 말씀을 제 주관대로, 형편과 손익 따라 더하고 빼는 것
4)부인: 하나님 말씀을 아예 부인하는 죄
5)거짓: 반 거짓말로 미혹
6)반대: 하나님 말씀고 모든 것이 정반대로 보임
7)범죄: 위의 6 순서를 지나오면 범죄는 필연
4. 미혹과 범죄의 필연적 순서
1)간교한 마귀가
2)하와를 미혹하여 하나님과 이간시키고
3)뱀에게 미혹되어 하나님과 멀어지니 말씀을 가감하고
4)하와가 말씀을 가감하니 뱀은 아예 말씀을 부인하게 하고
5)미혹받은 하와에게 반거짓말로 교묘하게 미혹하여 혼돈시키고
6)마귀에게 미혹되어 선악과를 보니 하나님 말씀과는 정반대로 보이고
7)이렇게 되니 선악과 따 먹는 범죄는 필연
5. 자신에게서 7가지를 찾아 고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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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원문)
20131027 주후
창세기 3:1-19
인류시조의 범죄 그 범죄하기까지 미혹받은 그 과정을 범죄하기까지 일곱가지로 한번 생각해봤습니다. 사람이란 것은 사람은 누구나 다 꼭 같지 아니하고 사람마다 얼굴 생김새만큼이나 사람의 성품이라든지 성격이라든지 그런 모든 것들이 다 각각 다릅니다. 그래서 아주 좋은 사람도 있는 반면에 나쁜 사람도 있고 또 훌륭한 사람 있는 반면에 아주 보잘것없는 그런 사람도 있고 똑똑한 사람이 있는 반면에 아주 어리석은 사람도 있고 여러 형태 여러 종류의 사람들이 세상에는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사람을 이렇게 각각 다르게 여러 가지로 만들어 주셨는데 그 만듯니 목적은 여러 가지 뜻이 있겠지만은 우리는 자기 자신의 성격이나 성품이나 실력이나 타고난 선천적인 그런 자기 자체 신체 또 성품 이런 조건과 모든 환경적인 그런 조건이 어떠하든지간에 상관없이 우리의 힘쓸것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모습으로 우리 자신을 고쳐서 온전한 사람을 만드는 것이 우리의 노력할 것이고 우리의 목적입니다.
지난 오일밤예배 말씀을 한번 복습해보겠습니다. 지난 오일밤예배때 공부했던 말씀 우리 구원이 무엇입니까 네글자로? 우리 구원은 무엇이 구원입니까? 자체변화입니다. 이거는 영원히 변하지 않는거니까 이런것은 머릿속에 콱 박아놔서 잊지 말아야 됩니다. 많은 사람들이 오해하기를 교회를 열심히 다니면 구원이 된다 또 연보를 많이 해서 구제 많이 하면 구원이 된다 기도를 많이 하면 구원이 된다 전도 많이 하면 된다 이렇게 모두 오해를 하는데 착각입니다. 아무리 억억만금을 연보해도 그 연보하는 것이 하늘의 상급이 될지언정 자기 구원은 아니고 기도를 많이 하면 그 기도를 통해서 구원이 이루어지기 쉽고 좋은데 아무리 기도를 많이해도 그 자체가 구원되는것은 아니고 전도를 아무리 많이 해도 그 전도가 자기 구원되는 것 아닙니다.
구원은 무엇이 구원이라고요? 자체변화. 자체변화가 무슨 뜻이지요? 자기 자신이 사람이 온전한 사람이 되는 겁니다. 자기라는 사람이 변화가 되는 것이다. 백목사님께서 과거에 워낙 실력있는 분이라서 전국에 교회들이 많았습니다. 근데 서울에 어느 한 교회를 개척을 하고 파송을 해서 이제 교회가 커졌는데 목사님이 한번씩 가셔서 이제 설교하고 교회를 말하자면 간접으로 그래 목회하시는데 가끔 한번씩 가면 목사님께서 교회 상황을 딱 보시고 거기서 교회 분위기를 보시고 집사님들 불러서 책망을 하고 또 꾸중도 하고 지적도 하고 그래하십니다. 그러면 목사님께 꾸중 듣고 책망들은 집사님들이 서로 말하기를 ‘누가 이 사실을 목사님에게 고자질했느냐? 아무 집사가 그랬겠다, 아무 권찰이 그랬겠다’ 그래가지고 자기들끼리 막 그러고 있답니다. 그러면 목사님께서 그것까지 아시고 말씀하시기를 ‘꼭 말을 들어야 아느냐?’ 닭하고 닭하고 모이면 무슨 소리가 나온다고요? 닭 두 마리가 모이면 음메 소리가 나옵니까? 꿀꿀 소리가 나옵니까? 닭 두 마리 모이면 꼬끼오 깩깩깩하는 그런 소리 닭소리가 나겠지요. 돼지 두 마리가 모이면요? 꿀꿀 하는 소리가 나겠지요. 소 두 마리가 모이면요? 소 소리가 나겠지요. 그러니까 ‘아무 집사 아무 집사 둘이 모였으니까 그 짓 하겠지. 아무 누구누구 둘이 모여서 그랬으니까 내나 그 짓 하겠지.’ 뭘 보니까 압니까? 그 사람을 아니까 사람을 보니까 요 일은 누구에게서 나왔겠네. 십중팔구 맞는 겁니다. 요런 사건은 누가 만들었겠네. 십중팔구 아는 겁니다. 사람이 그런 사람이면 그런 일을 하게되어있고 그런 말을 하게 되어있습니다. 그런 말을 죽어도 못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 말은 자연스럽게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 일을 참 죽어도 그런 짓을 못하는 사람도 있고 그런 짓을 아무렇지 않게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러면 그 교회에서 무슨 일이 생기면 ‘이거는 그 사람이 했겠네.’ 거의 틀림없는 겁니다. 그러면 자기들끼리 모여서 누가 고자질했구만. 그런데 그 사실을 안들어도 안가봐도 안다 그말입니다. 그걸 모르면 선지자가 아니고 백목사님이 아니지요. 그래서 우리는 다 부족한 사람들이고 죄가 많은 사람들입니다.
본문에 일곱가지를 말씀을 드렸는데 이런 일곱가지가 우리에게 대개 다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면 이런 것이 우리 속에 있으면 우리 속에 간교가 있으면 언젠가는 그 사람에게서 간교한 말 간교한 행동 간교한 일을 하게 되어있고 그러면 또 문제가 생깁니다. 그사람 속에 이간성이 있으면 사람 사이를 벌어뜨리는 이간적인 요소를 가지고 있으면 그 사람은 언젠가는 사람을 이간질하는 그런 일을 하게 되어있다는 겁니다. 하나님 말씀을 가감하는 그런 인식을 가지고 있고 그런 사람이 되어있으면 나중에 가면 가감할 수 밖에 없는 그런 상황되면 말씀을 가감하는 그런 일을 한다는 겁니다. 그러기 때문에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 자신이 어떤 사람인가를 알아서 우리 자신을 고치는게 우리 구원이고 우리 목적입니다.
사람을 알면 그 사람이 할 일을 알고 행동을 어느정도 알게된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가 우리 자신을 자꾸 고쳐서 성경이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말씀대로의 사람으로 나를 고쳐 나가야 뭐가 있지 예수 믿는데 성경 아무리 보면 이러면 또 학생들이 시험들까 걱정되는데, 성경 백날 보면 뭐합니까? 성경 보고 알아서 자기를 고쳐야 효력이 있는 것이지요. 안그렇습니까? 밥을 먹고 손해되는 것 같으면 밥을 안 먹어야 되고 밥을 먹어야 건강 유지되니까 밥을 먹게 되는 것이고 그런 겁니다. 기도를 아무리 많이 하면 뭐합니까? 기도해 자기를 고쳐야 되지요. 그래서 기도 많이 하는 사람은 기도는 잘하는데 그 기도를 통해서 자기를 고치지 않으면 그 기도가 들어서 오히려 자기를 손해보게 만드는 수도 있습니다. 차라리 몰랐으면 되는데 아는 것이 들어서 자기를 더 망치는 수도 있다 그말이지요. 그러니까 이걸 하나씩 알아서 고쳐야 됩니다.
자 다시 한번 우리 구원은 자체변화입니다. 그러면 이 자체변화는 어디서 되어지는 겁니까? 자체변화는 사람이 변화되는 것은 어떻게 하면은 되는 겁니까? 말씀대로 행함으로 되는 겁니다. 말씀대로 행함으로. 사람이 행동하는데서 사람은 바꾸어지는 겁니다. 농담을 자꾸 하다보면 실없는 사람이 됩니다. 침묵은 금이다. 일부러 말을 안하고 말을 아끼면 나중에는 무게있는 사람이 됩니다. 묵직한 사람이 되고. 모든 것을 일부러 자꾸 따져들어가면 나중에는 구별성 있는 사람이 됩니다. 그냥 힘이 드니까 대충대충 두루뭉실 넘어가버리면 나중에는 흐리멍텅한 사람이 되고 마는 겁니다. 그래서 어린 자녀들 기를때 자기 주변 정리부터 신발정리, 이불정리, 옷정리, 장난감 정리 요거 어릴때부터 몸에 베도록 안 고쳐놓으면 나중에 커서는 고치기가 어렵습니다. 거기서 전부 그 사람이 그렇게 만들어진다 그말입니다. 물건 아끼는 것도 그러하고. 오늘 보니까 어떤 학생이 화장실에 가는데 휴지를 쓰는데 보니까 휴지를 막 둘둘둘 쭉 떼는데 한 이만큼 제가 보니까 저는 그거 하나 하면은 한 두 번 세 번 쓸만큼 그래 가져갑니다. 그게 예사겠지요 학생들. 손에 막 둘둘둘둘 말아가지고 쓰지요 화장실에 가면은. 그런것도 아낄줄 모르는것이 어릴적부터 몸에 안베면 그게 평생 그냥 가는 겁니다. 그게 왜그리 된다고요? 행동이 사람을 만드는 겁니다. 예배시간에 조는 생활 자꾸 하면 습성이 돼서 앉으면 저절로 잠이 옵니다 앉으면. 희안하거든요? 성경 읽을때 저절로 잠이 오지요. 수면제라 그러지요. 그런거 빨리 고쳐야 됩니다. 그래서 구원은 자체변화입니다. 그 자체변화는 말씀대로의 행동에서 되는 겁니다. 말씀대로 실행하는 것은 어떻게 해야 되는 겁니까? 말씀대로 실행하는 건 어디서 나온다고요? 알고 믿는데서 나오는 겁니다. 알고 믿어야 말씀대로 행함이 나오게 됩니다. 그러면 알고 믿으려면 어떻게 해야 된다 그랬습니까? 듣고 생각을 해야 됩니다. 읽고 생각하든지. 말씀을 듣고 생각하든지 읽고 생각하든지 들어야 되고 읽어야 이게 가장 첫 출발입니다. 그래서 전하는 자가 없으면 어찌 들으리요. 듣지 않으면 어찌 실행을 하리요. 전하는 자가 없으면 어찌 들으리요. 그래서 복음 전하는 자의 발이 아름답다 그래 말씀했습니다. 듣고 생각하는데서 알고 믿는 믿음이 나오게 되고 알고 믿음에서 행함이 나오게 되고 거기서 우리 구원이 이루어지게 되는거니까 제일 첫째가 말씀을 듣는게 가장 중요하고 그러기 때문에 가장 큰 우리 신앙생활의 대적은 말씀을 듣지 못하게 하는 그놈이 가장 큰 원수다. 우리집에 들어와서 돈을 몇백만원 훔쳐가는 그 도적놈 절도범보다, 내 몸을 헤치고 나를 막 흉기로 찔러서 상처입힌 그 강도 그놈보다 말씀을 듣지 못하게 하는 그놈이 더 큰 원수입니다. 안 그렇습니까? 성경 읽지 못하게 하는 그놈이 더 큰 원수입니다. 이걸 느끼는 것이 영감인데 우리는 참 부족하지요.
자 그래서 사람은 다 같지 않습니다. 다 다른데 우리 목적은 나라는 사람이 어떤 사람인가를 알아서 나 자신을 고쳐나가는 것 그래서 여기 일곱가지 중에서 나에게는 일곱가지 다 해당이 되는가. 첫 번째만 있는가 두 번째만 있는가 요걸 따져서 자기 자신을 냉철하게 진실하게 자기를 살펴야 됩니다. 몸이 아파서 병원에 갔습니다. 의사가 진찰해보더니 ‘엑스레이를 찍어봐야겠습니다 아니면 정밀사진 mri를 좀 찍어봐야 되겠습니다’ ‘돈이 얼마나 듭니까’ ‘백만원 듭니다.’ ‘아휴 백만원 드는데 꼭 그래 해야 됩니까? 그냥 안할랍니다.’ 귀찮고 돈 많이 들고 그래서 안한답니다. 어떤 사람은 검진 받으러 가서 ‘몸에 병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나 잘 먹고 건강하게 지내는데 뭐 병은 무슨 병. 괜찮소. 당신이 틀렸구만.’ 그러고 앉았으면 결국 몸 상하는 것은 의사를 욕할 것이 아니고 의사가 그래 말하면 자기 속에 병이 있으면 죽는 겁니다 잘못하면. 그러면 의사가 ‘큰 병 있습니다’ 그러면 ‘아 그렇습니까’ 정밀하게 살펴보고 돈이 들어가도 치료할 거는 치료하고 고칠거는 고치고 그래해야되지 의사가 하는 말이 자기 마음에 안들고 자기 생각과 다르다고 그 말을 그만 거스르고 안하면 누가 손햅니까? 결국 자기만 손해지요 뭐. 그러니까 자기 자신을 정밀하게 진실하게 살펴서 알아야 구원을 이루어 갈 수 있습니다. 당신은 속에 이런 요소가 있습니다. 다른 사람보고 직접 말하지 않아도 그래할 때 정말 그런가 나는 없는거 같은데 있다 그러는거 보니까 저도 그런게 있습니다. 저한테는 저는 절대 그런 요소가 없는 줄 알고 살아왔는데 주변에서 ‘목사님 이런게 있습니다’ 말하면 하도 그래싸면 저도 돌아봅니다. ‘정말 그런가.’ 안 돌아볼수가 없는 거지요. 자기를 돌아보면 알게 됩니다. 그런데 이걸 자기를 살펴보지 않고 대충 넘어가버리면 ‘나한테 그런게 있을 리가 있나. 그러고 넘어가버리면 자기는 못 고치는 겁니다. 못 고치면 구원은 없는 겁니다. 사람이 누구든지 칭찬은 해줄수 있어도 그 사람의 단점을 지적하는 것은 대단히 어렵습니다. 말 못해줍니다. 그러니까 저도 마찬가집니다. 우리 교회에서 제가 직접적으로 ’이런거 고치십시오.‘하고 말해줄수 있는 사람은 몇 사람 없습니다. 제가 권위가 없기 때문에. 그러니까 설교시간에 말할 때 이 말씀을 듣고 자기를 냉철하게 살펴봐야 됩니다. 내가 어떤가. 그래서 자기 자신을 바로 알아서 이 말씀은 바로 mri 촬영하는 그런 기계와 같은 겁니다. 이게 바로 엑스레이고 이게 바로 청진기고 이게 바로 잣대고 이런 겁니다.
그러니까 이 말씀에다 나 자신을 비추어보고 이 말씀에 나는 어떤 것이 해당되는가를 살펴봐야 됩니다. 또 하나는 이때는 아담하와 에덴동산이기 때문에 에덴동산에서는 마귀가 뱀을 입고 왔습니다. 뱀을 입고 와서 선악과를 두고 말한것인데 오늘날은 우리에게 마귀가 오긴 오는데 마귀가 뭘 입고 올지 모릅니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사람을 입고 올런지. 사랑하는 사람을 입고 올런지. 내가 미워하는 그 사람 입고 올런지. 일을 가져올런지. 온 세상 전부다가 마귀의 이용물이니까 무엇을 입고 나한테 올지 모르며 어떤 건수를 가지고 나한테 올지 모른다 말입니다. 이러니까 요 말씀을 하나에 그래서 이 말씀은 구원의 도리 이치기 때문에 이치는 그 이치만 갖다대면 어디든지 다 맞게 되어있으니까 요 이치를 우리가 기억을 하고 우리 자신을 한번 돌아보십시다.
여호와 하나님이 지으신 들짐승 중에 뱀이 가장 간교하더라. 같이 해보실까요? 간교. 간교. 간교라는 말은 국어사전에 찾아보면 간사하고 교활하다 그래 나옵니다. 그러면 간사가 무슨 뜻인가. 간사하고 교활하다 그말 알수가 있습니까. 그래서 간사가 무슨 뜻인가. 간사는 자기를 위해서 나쁜 짓을 잘하는 사람 이게 간사고 교활하다는 것은 나쁜 꾀가 많은 사람 그런 둘 합치니까 자기 위해서 나쁜 꾀를 잘 내는 사람 요 사람을 간교하다 그래놨는데 백목사님의 정의는 간교라는 것은 자기 중심의 사람을 만드는게 간교다. 사람을 자기 중심의 사람을 만드는게 간교다 그래놨습니다. 자기를 위해서 다른 사람을 이용하는 그 사람을 위하는 척 하면 그 사람을 자기 위해서 이용해먹는 요게 간교다 그말이지요. 다윗의 아들 중에서 압살롬이라는 아들이 유명합니다. 제일 잘생겼지요 압살롬. 그 압살롬에게 다말이라는 누구지요? 압살롬의 누이동생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 누이 동생을 압살롬의 형이 되는 압론이라는 고약한 사람이 그때는 뭐 누이동생하고 결혼도 하고 그랬으니까. 그 다말을 짝사랑을 했습니다. 그래가지고 짝사랑 하다가 그만 몸에 병이 나버렸습니다. 상사병이 나버렸습니다. 그러니까 그것을 알고 다윗의 형 시므이가 시므안가 그 아들 이름이 요나답이라는 인물인데 그가 심히 간교한자라 그래되있습니다. 다윗의 형 시므이의 아들 요나답은 심히 간교한 자더라. 그 간교한 인간이 압론에게 ‘왕자여 왜 날마다 말라가느냐’ 이렇고 이렇고 이러해서 ‘그러냐 내가 꾀를 내줄게.’ 그래가지고 꾀를 내서 압론이 다말을 범하게 만들고 그래서 압살롬이 압론을 죽이게 만들고 그래가지고 다윗 집안에 난리가 났지요. 그래 만든 그 인간중에 그 하나가 요나답이라는 그 인간이 어떠한 인간이라고요? 심히 간교한 자더라. 왕자한테 딱 들어붙어서. 왕자한테 잘 보여서 제 이득을 취하려고 꼬아가지고 나쁜 못된 꾀를 그래 내가지고 욕망을 채우게 하고 큰 살인사건 나게 만든 그 놈이 바로 요나답이다. 그놈 보나마나 성경에 안나와있어도 큰 벌을 받았을겁니다. 끝이 안봐도 비참하게 됐을 겁니다. 그러니까 그게 간교입니다. 간교라는 것은 어쨌든 궁극의 목적은 저를 위한 것이고 저를 위해서 다른 사람을 위하는척 하면서 이용해먹는 그놈이 간굔데 이게 하나님과 전부 멀어지게 만드는 그런 겁니다. 자기 중심으로 살게 하고 하나님 중심에서 떨어지게 만들고 그래서 저를 위해서 이용해먹는 요런 간교. 요런 요소가 나한테는 없는가 이걸 냉철하게 찾아봐야 됩니다. 자기 자신을.
그러기 때문에 우리 신앙에 가장 큰 적이 무엇입니까? 각도가 많아서. 우리 신앙생활에 가장 큰 적은 누구라 그럽니까? 자기라 그러지요. 자기를 어떻게 하라고요? 부인하라는 말이 자기를 부인하라 그말은 자기를 내놓고 객관으로 자기를 보라 그말입니다. 모든 사람이 전부 자기한테 갇혀 있으니까 자기를 모르는 겁니다. 자기를 보지 못하고. 그러니까 내가 나를 보는 것은 틀린 겁니다. 그런데 알고 보면 정말 진실하고 바로 알면 자기를 바로 볼 수 있는데 그래도 내가 나를 보는 것보다 다른 사람이 나를 보는 거 그것보다는 다른 사람이 나를 보는데 나를 좋아하고 내게 가까운 사람이 나를 보고 판정하는 것보다는 나에게서부터 여러 관계로 멀리 있는 사람이 나를 보는 것이 더 정확하게 봅니다. 가장 나를 정확하게 보는 거는 누굽니까? 내 원수가 나를 가장 정확하게 볼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요래 가지고 자기를 봐야 그게 객관적으로 바로 보는 것이지 다른 사람이 뭐라하든지 귀를 딱 막아버리고 자기가 자기를 보고 있으면 그게 자기 주관이고 언덕에 갇힌 것이기 때문에 자기는 보이지 아니합니다. 언덕을 떠나야 됩니다. 그래서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를 살펴서 나한테 이런 간교가 있는가. 설마 나한테. 저도 그중에 한사람입니다. 저한테는 제가 물어봤습니다. 오늘까지 살아오면서 나한테서 내가 다른 사람 사이를 벌어뜨리는 일 한적을 본 적 있느냐? 그런 말 한 걸 들은 것 있냐? 할때 옆에 사람은 ‘그거는 없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모르지요. 더 멀리 있는 사람한테 물어봐야 되겠지요. 없는 것 같은데 있을 수 있다 그말입니다. 간교라는 것은 다른 사람을 해치는, 나를 위해서 남을 이용해먹는, 그 사람을 위하는 척 하면서 나를 이용해먹는 요런 간교가 설마 나한테 이런 요소가 있겠나 싶은데 있을 수 있다 그말입니다. 없다고 생각하면 착각입니다. 간교를 찾아보십시다 자기에게서.
두 번째는 이간의 요소를 찾아보십시다. 이간의 요소. 하나님과 사람 사이를 벌어지게 만드는. 사람과 사람 사이를 벌어지게 만드는. 대개 보면은 나하고 친해야 되는데 나하고 친해야 될 그 사람이 다른 사람하고 친하면 그 사이를 벌어뜨립니다. 내 편이 되야 될 사람이 내 편이 안되고 다른 사람 편이 되면 은근히 그 앞에 가서 친한 그 사람 헐고 두 사람 사이를 벌어지게 만든다 그말입니다. 참 이것도 생각해보면 두려운 일인데 이런 이간의 요소가 나한테 없는가. 사람이 그 이간적인 그런 요소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 되면 평소에는 안 나옵니다. 우리가 좁은 길 넓은 길이 있는데 사람이 평소에는 좁은 길을 갑니다. 좁은 길 가려고 노력을 하고 그런데 그 넓은 길을 갈 수 있는 요소가 있고 그런 사람이 있으면 마지막에 좁은 길 넓은 길 있을때 넓은 길을 가지 않으면 견딜 수 없는 그런 상황이 되면 그 사람 결국 넓은 길로 가고 맙니다. 합리화를 딱 시켜서 그래 가버린다 그말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사람은 우리는 넓은 길을 아예 몰라야 되고 그거는 아예 우리 속에 없어야 됩니다. 없어서 좁은 길만 갈 수 밖에 없는 그 사람이 되면 어떤 상황이 되도 그리 갈 수 밖에 없는데 넓은 길을 알고 있으면 사람이란 것은 그래 가게 된다 그말입니다. 자기도 모르게 그리 가는 겁니다. 아브라함이 믿음의 조상인데 벧엘에서 살다가 하나님이 거기 살라 그랬는데 워낙 기근이 심하고 배가 고프니까 자기도 모르게 애굽으로 내려가버렸습니다. 거기 가서 자기도 모르게 자기 아내를 누이동생 관계로 맞으니까 자기 누이라 그래 말했습니다. 그것이 아브람이 말하자면 그때는 넓은 길을 간 것이다 그말이지요. 이런 간교나 이간이 평소에는 안나옵니다. 그런데 그런것 때문에 자기에게 직접적으로 손익관계가 생겨질때 그때는 이간적인 그런 요소가 자기도 모르게 그런 말을 그런 행동 그런 일을 하게 되는 것이 사람입니다. 그러니까 내 속에 사람과 사람 사이를 벌일 수 있는 그런 이간적인 요소가 있는가를 찾아서 이걸 평소에 자꾸 기도하고 없애버리도록 애를 써야 됩니다.
그다음 세 번째는 가감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더하고 빼는 것. 이것도 참 큰 죄지요. 먹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 죽을까 하노라 하셨느니라. 자기 주관에 따라서 자기 형편에 따라서 말씀을 더하고 빼고 그래 하는 것. 그 배추 무를 기르면서 주일 아침에도 여름에는 물을 줘야 됩니다. 물을 주는데 배추벌레가 딱 평소에 잘 안보이다가 주일날 아침에 물 주려니까 딱 보인다 그말이지요. 그놈을 집어서 죽여야 됩니까 살려놔야 됩니까? 처음에는 제가 요것 집어서 죽이는게 주일날 일하는 것이 되겠다 싶어서 놔뒀다가 그다음에 또 보니까 또 있는것 같아서 그때는 또 한번 꼭 집어서 몃 마리 죽였습니다. 그러면서 머릿속에 들어가는 거는 주일날 배추벌레 죽이는 거 농사짓는게 되니까 죄가 되겠는데 요놈을 두면은 배추입장에서는 배추벌레 죽이는 것이 생명을 해하는 것이니까 주일날 안되겠다 그래 생각되다가도 배추벌레가 배추를 갉아먹는거는 또 괜찮겠나 합리화시켜서 또 몇 마리 죽였다 그말이지요. 이제 어떻게 해야되나? 머릿속에 확정이 안되있습니다. 일부러 찾아서 죽이는거는 일하는 것이 되겠고 눈에 보이는 걸 콕 잡아서 죽이는 거는 괜찮을란가. 어떨란가. 그런것이 자기속에서 보고 합리화를 시켜서 말씀을 가감을 하는 겁니다. 돈을 손해볼때 요 정도의 말은 괜찮지 않을까 요 정도의 일은 괜찮지 않을까 그래가지고 하나님 말씀을 딱 명문되있는건 알겠는데 요걸 양심을 써서 깊이 들어가보면 알 수 있는데 들어가면은 뚜렷이 알면은 손해볼 그단계가 되고 이래되면은 그만 적당히 얼버무려가지고 안들어가고 마는 그래서 말씀을 적당히 가감하던지 더해버리든지 그래가지고 가감하고 손해안보려하는 그걸 찾는 그런 요소가 우리 속에 많이 있습니다. 그것이 말씀을 자기의 직접 물질의 손익이라든지 인간관계라든지 앞면이라든지 또 자기 수치나 이런 관계나 이런게 딱 대두가 되면 자기 속에 있는 말씀을 가감하는 그런 요소가 나와서 ‘요 정도는 괜찮지 않을까?’ 대개 보면은 그래가지고 합리화를 시켜버립니다. 그래가지고 죄를 짓는다 그말이지요.
말씀을 가감할때는 합리화 시켜서 그래가지고 죄를 짓는데 그러다보면 나중에는 성경쓸때 그렇습니다. 성경 쓰시는 분 많이 계시는데 저도 성경 시간될때마다 쓰는데 성경 쓰다가 성경이니까 성경을 기록한 옛날 그분들 생각해서 글자 한자도 안틀리게 하려고 애를 씁니다 처음에. 그러다가 쓰다보면은 글자 틀린게 나오면 이것도 지우고 새로 하면 복잡하니까 그만 한 자씩 그냥 넘어갑니다. 빠트려 넘어가고. 그게 한번 두 번 그러다보면 나중에는 그 빠트리고 넘어가는 거 틀린 것도 예사로 넘어간다 그말이지요. 그게 전부다 합리화를 시키고 말씀을 가감할 수 있는 그런 요소가 되는 것이다 그말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말씀은 절대 변할 수 없는 가감할 수 없는 정확무오한 절대 불변의 진리다. 요걸 기억을 하고 우리속에 말씀을 가감할 수 있는 그래서 일부러 어려운 길로 가고 일부러 고난의 길로 가라 그리하지 않습니까. 말씀을 일부러 좀 어렵게 그렇게 힘들게 찾아가는 그것이 오히려 자기한테 손해되는 건 없습니다. 세상은 손해볼지라도. 세 번째 가감적인 요소.
네 번째는 말씀을 가감하면 그다음 네 번째 오는 단계는 말씀을 부인해버립니다. 마귀가 그랬지요. 처음부터 하와에게 말씀을 부인하면 안 믿을거니까 간교한 마귀가 하와를 찾아와서 하와를 제일 처음에 뭐했습니까? 간교한 마귀가 두 번째 하와에게? 하와를 꼬아가지고 하나님과 멀어지게 만들었습니다. 벌어지게 만들고 이간시켰습니다. 벌어지게 되니까 그다음 하와는 어찌됐습니까? 하나님 말씀을 가감을 했습니다. 가감하니까 그다음에 마귀는 한술 더 떠서 어쨌습니까? 말씀을 아예 부인해버렸습니다.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 이미 하와 속에 하나님에 대한 의문, 말씀에 대한 가감이 그만큼 되어있기 때문에 마귀의 그 미혹의 유혹의 작업술에 끌려서 그만큼 끌려들어갔기 때문에 그때 마귀가 말하자면 톡톡 치다가 한방 먹인겁니다. 한방 먹여버리니까 아이들 말로 k.o가 되버린거죠. 뻗어버렸습니다. 그만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 거기다가 말씀을 부인한 거기다가 교묘한 반거짓말 보태고 반거짓말 보탰지요. 말씀 부인하고 반거짓말 보태버렸습니다. 그러고나니까 하와의 눈에는 어떻게 보였습니까? 간교한 마귀를 접했고 그 간교한 마귀에게 미혹받아서 하나님과 멀어졌고 멀어지고 나니까 말씀에 대해서 가감이 생겨졌고 가감이 생겨지니까 마귀는 그 틈을 타서 부인을 해버렸고 부인한 거기다가 반거짓말 교묘하게 더 정신 못차리게 만들었고 그래 홀딱 넘어가고나니까 여섯 번째로 그래 되고 난다음에 하와가 선악과를 보니까 어찌 됐습니까? 정반대로 보였습니다.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만큼 탐스럽기도 한 나무인지라. 그래 보일 리가 없는 겁니다. 믿는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면 이거는 영원한 사망이기 때문에 정상적으로 믿는 사람이 정신차리고 있으면 말씀을 어길 리가 없습니다. 그런데 그런 정신을 바짝 차리고 있는 믿는 사람에게는 마귀가 와서 말씀을 거짓말이다 이래 하면 된다 그래 말하지 않습니다. 와가지고 살살 하와를 꼬우듯이 꼬와가지고 점점 하나님과 멀어지게 만드는데 요때는 마귀가 와서 뱀이 와서 하와를 멀어지게 만들때 말씀으로 하나님이 참으로 그 하나님 말씀을 이용해서 그리했는데 오늘 우리에게 하나님과 멀어지게 만들때는 어떻게 하겠습니까? 하나님과 우리를 멀어지게 만들때는 어떤 사람에게는 학교 성적, 어떤 사람에게는 진학, 어떤 사람에게는 직장 취업, 어떤 사람은 장사하는데 계산, 어떤 사람은 자기 업무, 자기 취미, 눈에 보이는 것, 이런 것을 자꾸 그래서 눈에 보여주고 귀에 들려주고 그러기 때문에 믿는 사람은 보이는 것이 많고 들리는 것이 많고 복잡하면 마귀는 복잡하게 만듭니다. 복잡하면은 그 복잡 속에 정신을 잃어서 하나님을 잊어버립니다. 그래서 성도는 아무것도 없는 어디로 가야됩니까? 광야로 가야되고 골방으로 가야 됩니다. 골방에 가고 광야로 들어가면 눈에 보이고 들리는게 없으니까 생각을 하게 되지요. 눈을 뜨고 있으면 다 보이니까 눈을 감고 피조물은 안보고 창조주를 보는 겁니다. 그게 뭐라고요? 기돕니다. 고요하게 기도하면 무릎을 꿇고 눈을 감고 기도하면 피조물이 사라지고 기도속에서 창조주 하나님이 떠오르고 보이고 말씀이 생각이 나면 하나님과 가까워집니다. 그래되니까 마귀는 기를 쓰고 믿는 사람으로 하여금 무릎을 못 꿇게 합니다. 기도를 못하게 합니다. 기도 하지마라 말 안합니다. 기도할 수 있는 시간을 빼앗아버립니다. 기도할 수 없도록 피곤하게 만들어버립니다. 재미있는걸 자꾸 보여줍니다. 또 수입을 자꾸 줘버립니다. 그러니까 세상에 돈 버는 것 좋고 공부 많이 하는 것 좋고 직장 좋고 다 좋은데 그런 모든 것들이 하나님 앞에 기도할 시간과 성경 읽을 시간과 하나님 생각할 이런 시간을 가지고 그런걸 이용을 해야 그게 복이 되는 것이지 그런것 때문에 하나님 가까워지는 그 시간 다 뺏기면 그게 전부 우리들에게 음녀가 되고 간부가 되고 음행에 포도주 되고 그래 되고 만다 그말이지요. 그래서 마귀가 우리를 미혹할 때 이간 하나님과 멀어지게 만들고 벌어지게 만들고 그리고난다음에는 말씀을 가감하게 만들고 말씀을 가감한다는 것은 어지간히 잘 믿는 사람도 이거는 다 있습니다. 이런 요소. 자기 형편 손익에 따라서 상황에 따라서 그만 아이들이 그 ‘네가 내가 너더러 먹지말라한 선악과를 먹었느냐?’ 그럴때 아담이 얼른 순간적으로 나온 말이 본능적으로 나온 말이 여자가 줘서 먹었나이다. 뱀이 꼬와서 먹었나이다. 그게 전부다 말하자면은 핑곈데 그런 요소들이 나중에 나가면 하나님 말씀을 가감하게 만드는 그런 요소들이고 부인하게 만드는 그런 요소들입니다.
그러니까 가감하게 만들고 부인하게 만들고 그리고나면 거짓말 반거짓말 그래서 인간의 모든 지식은 전부다 반거짓말 아니면 온거짓말 요게 되고 여기까지 넘어가고나니까 그다음 단계로는 모든 것이 정반대로 보여졌다. 사는 것은 죽는 것으로 죽는 것은 사는 것으로 참 어렵습니다. 반대로 보여지고 나면 그때는 안따먹고는 못견디는 필연적으로 선악과를 따먹을 수밖에 없는 거기까지 나아가게 됐다 하는 겁니다. 요 일곱가지 순서를 하나씩 하나씩 살펴보면서 나한테는 이런게 없다 이게 자기 스스로 속는 겁니다. 일곱가지를 기억하고 우리 각자 자기 속에 나에게 어떤 요소가 이런게 있는가를 찾아서 하나씩 뽑아내는 그런 우리가 되야 됩니다. 자 첫째 뭡니까? 간교. 두 번째? 이간. 세 번째? 가감. 네 번째? 부인. 다섯 번째? 거짓. 여섯 번째? 반대. 그러고나니까 일곱 번째는 죄를 지었습니다. 범죄. 요 일곱가지를 가만히 생각을 하고 우리속에서 하나씩 뽑아내는만큼 우리라는 사람은 하나님 원하시는 사람으로 자체변화가 되는 것이고 요걸 뽑아내는 것이 말씀대로 행하는 생활입니다. 다같이 통성으로 기도드리겠습니다. 기억하기 쉽고 알기 쉬우라고 학생들에게 두글자로 일부러 좀 만들었습니다. 간교, 이간, 가감, 부인, 거짓, 반대, 범죄. 두글자로 일곱가지 딱 기억을 하고 우리 자신들 속에서 이런 요소가 과연 있는가를 찾아서 이런 걸 뽑아달라고 기도하고 힘을 쓰십시다.
제목: 뱀에게 미혹 받은 인류의 범죄
요점:
1. 구원은 자체 변화
- 사람은 같지 않고 외모도 성품도 다 다르니
- 자기를 냉정하게 살펴 바로 알아
- 고칠 것을 바로 찾아 고치는 자체 변화가 구원
- 자기를 고치지 않는 신앙은 구원과는 상관 없는 것
2. 에덴동산의 때와 지금
- 본문의 상황은 에덴동산의 때와 장소
- 그때는 마귀가 뱀을 입고 하나님 말씀을 이용하여 미혹했지만
- 지금은 마귀가 무엇을 입고 올지, 어떤 것을 이용할지 모르니
- 본문에서 생각한 7가지를 자기에게서 찾아 고칠 것
3. 뱀에게 미혹 받은 인류의 범죄
1)간교: 상대방을 위하는 척 하면서 자기 위해 이용하는 나쁜 짓
2)이간: 두 사이를 벌어지게 만드는 죄
3)가감: 하나님 말씀을 제 주관대로, 형편과 손익 따라 더하고 빼는 것
4)부인: 하나님 말씀을 아예 부인하는 죄
5)거짓: 반 거짓말로 미혹
6)반대: 하나님 말씀고 모든 것이 정반대로 보임
7)범죄: 위의 6 순서를 지나오면 범죄는 필연
4. 미혹과 범죄의 필연적 순서
1)간교한 마귀가
2)하와를 미혹하여 하나님과 이간시키고
3)뱀에게 미혹되어 하나님과 멀어지니 말씀을 가감하고
4)하와가 말씀을 가감하니 뱀은 아예 말씀을 부인하게 하고
5)미혹받은 하와에게 반거짓말로 교묘하게 미혹하여 혼돈시키고
6)마귀에게 미혹되어 선악과를 보니 하나님 말씀과는 정반대로 보이고
7)이렇게 되니 선악과 따 먹는 범죄는 필연
5. 자신에게서 7가지를 찾아 고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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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원문)
20131027 주후
창세기 3:1-19
인류시조의 범죄 그 범죄하기까지 미혹받은 그 과정을 범죄하기까지 일곱가지로 한번 생각해봤습니다. 사람이란 것은 사람은 누구나 다 꼭 같지 아니하고 사람마다 얼굴 생김새만큼이나 사람의 성품이라든지 성격이라든지 그런 모든 것들이 다 각각 다릅니다. 그래서 아주 좋은 사람도 있는 반면에 나쁜 사람도 있고 또 훌륭한 사람 있는 반면에 아주 보잘것없는 그런 사람도 있고 똑똑한 사람이 있는 반면에 아주 어리석은 사람도 있고 여러 형태 여러 종류의 사람들이 세상에는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사람을 이렇게 각각 다르게 여러 가지로 만들어 주셨는데 그 만듯니 목적은 여러 가지 뜻이 있겠지만은 우리는 자기 자신의 성격이나 성품이나 실력이나 타고난 선천적인 그런 자기 자체 신체 또 성품 이런 조건과 모든 환경적인 그런 조건이 어떠하든지간에 상관없이 우리의 힘쓸것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모습으로 우리 자신을 고쳐서 온전한 사람을 만드는 것이 우리의 노력할 것이고 우리의 목적입니다.
지난 오일밤예배 말씀을 한번 복습해보겠습니다. 지난 오일밤예배때 공부했던 말씀 우리 구원이 무엇입니까 네글자로? 우리 구원은 무엇이 구원입니까? 자체변화입니다. 이거는 영원히 변하지 않는거니까 이런것은 머릿속에 콱 박아놔서 잊지 말아야 됩니다. 많은 사람들이 오해하기를 교회를 열심히 다니면 구원이 된다 또 연보를 많이 해서 구제 많이 하면 구원이 된다 기도를 많이 하면 구원이 된다 전도 많이 하면 된다 이렇게 모두 오해를 하는데 착각입니다. 아무리 억억만금을 연보해도 그 연보하는 것이 하늘의 상급이 될지언정 자기 구원은 아니고 기도를 많이 하면 그 기도를 통해서 구원이 이루어지기 쉽고 좋은데 아무리 기도를 많이해도 그 자체가 구원되는것은 아니고 전도를 아무리 많이 해도 그 전도가 자기 구원되는 것 아닙니다.
구원은 무엇이 구원이라고요? 자체변화. 자체변화가 무슨 뜻이지요? 자기 자신이 사람이 온전한 사람이 되는 겁니다. 자기라는 사람이 변화가 되는 것이다. 백목사님께서 과거에 워낙 실력있는 분이라서 전국에 교회들이 많았습니다. 근데 서울에 어느 한 교회를 개척을 하고 파송을 해서 이제 교회가 커졌는데 목사님이 한번씩 가셔서 이제 설교하고 교회를 말하자면 간접으로 그래 목회하시는데 가끔 한번씩 가면 목사님께서 교회 상황을 딱 보시고 거기서 교회 분위기를 보시고 집사님들 불러서 책망을 하고 또 꾸중도 하고 지적도 하고 그래하십니다. 그러면 목사님께 꾸중 듣고 책망들은 집사님들이 서로 말하기를 ‘누가 이 사실을 목사님에게 고자질했느냐? 아무 집사가 그랬겠다, 아무 권찰이 그랬겠다’ 그래가지고 자기들끼리 막 그러고 있답니다. 그러면 목사님께서 그것까지 아시고 말씀하시기를 ‘꼭 말을 들어야 아느냐?’ 닭하고 닭하고 모이면 무슨 소리가 나온다고요? 닭 두 마리가 모이면 음메 소리가 나옵니까? 꿀꿀 소리가 나옵니까? 닭 두 마리 모이면 꼬끼오 깩깩깩하는 그런 소리 닭소리가 나겠지요. 돼지 두 마리가 모이면요? 꿀꿀 하는 소리가 나겠지요. 소 두 마리가 모이면요? 소 소리가 나겠지요. 그러니까 ‘아무 집사 아무 집사 둘이 모였으니까 그 짓 하겠지. 아무 누구누구 둘이 모여서 그랬으니까 내나 그 짓 하겠지.’ 뭘 보니까 압니까? 그 사람을 아니까 사람을 보니까 요 일은 누구에게서 나왔겠네. 십중팔구 맞는 겁니다. 요런 사건은 누가 만들었겠네. 십중팔구 아는 겁니다. 사람이 그런 사람이면 그런 일을 하게되어있고 그런 말을 하게 되어있습니다. 그런 말을 죽어도 못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 말은 자연스럽게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 일을 참 죽어도 그런 짓을 못하는 사람도 있고 그런 짓을 아무렇지 않게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러면 그 교회에서 무슨 일이 생기면 ‘이거는 그 사람이 했겠네.’ 거의 틀림없는 겁니다. 그러면 자기들끼리 모여서 누가 고자질했구만. 그런데 그 사실을 안들어도 안가봐도 안다 그말입니다. 그걸 모르면 선지자가 아니고 백목사님이 아니지요. 그래서 우리는 다 부족한 사람들이고 죄가 많은 사람들입니다.
본문에 일곱가지를 말씀을 드렸는데 이런 일곱가지가 우리에게 대개 다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면 이런 것이 우리 속에 있으면 우리 속에 간교가 있으면 언젠가는 그 사람에게서 간교한 말 간교한 행동 간교한 일을 하게 되어있고 그러면 또 문제가 생깁니다. 그사람 속에 이간성이 있으면 사람 사이를 벌어뜨리는 이간적인 요소를 가지고 있으면 그 사람은 언젠가는 사람을 이간질하는 그런 일을 하게 되어있다는 겁니다. 하나님 말씀을 가감하는 그런 인식을 가지고 있고 그런 사람이 되어있으면 나중에 가면 가감할 수 밖에 없는 그런 상황되면 말씀을 가감하는 그런 일을 한다는 겁니다. 그러기 때문에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 자신이 어떤 사람인가를 알아서 우리 자신을 고치는게 우리 구원이고 우리 목적입니다.
사람을 알면 그 사람이 할 일을 알고 행동을 어느정도 알게된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가 우리 자신을 자꾸 고쳐서 성경이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말씀대로의 사람으로 나를 고쳐 나가야 뭐가 있지 예수 믿는데 성경 아무리 보면 이러면 또 학생들이 시험들까 걱정되는데, 성경 백날 보면 뭐합니까? 성경 보고 알아서 자기를 고쳐야 효력이 있는 것이지요. 안그렇습니까? 밥을 먹고 손해되는 것 같으면 밥을 안 먹어야 되고 밥을 먹어야 건강 유지되니까 밥을 먹게 되는 것이고 그런 겁니다. 기도를 아무리 많이 하면 뭐합니까? 기도해 자기를 고쳐야 되지요. 그래서 기도 많이 하는 사람은 기도는 잘하는데 그 기도를 통해서 자기를 고치지 않으면 그 기도가 들어서 오히려 자기를 손해보게 만드는 수도 있습니다. 차라리 몰랐으면 되는데 아는 것이 들어서 자기를 더 망치는 수도 있다 그말이지요. 그러니까 이걸 하나씩 알아서 고쳐야 됩니다.
자 다시 한번 우리 구원은 자체변화입니다. 그러면 이 자체변화는 어디서 되어지는 겁니까? 자체변화는 사람이 변화되는 것은 어떻게 하면은 되는 겁니까? 말씀대로 행함으로 되는 겁니다. 말씀대로 행함으로. 사람이 행동하는데서 사람은 바꾸어지는 겁니다. 농담을 자꾸 하다보면 실없는 사람이 됩니다. 침묵은 금이다. 일부러 말을 안하고 말을 아끼면 나중에는 무게있는 사람이 됩니다. 묵직한 사람이 되고. 모든 것을 일부러 자꾸 따져들어가면 나중에는 구별성 있는 사람이 됩니다. 그냥 힘이 드니까 대충대충 두루뭉실 넘어가버리면 나중에는 흐리멍텅한 사람이 되고 마는 겁니다. 그래서 어린 자녀들 기를때 자기 주변 정리부터 신발정리, 이불정리, 옷정리, 장난감 정리 요거 어릴때부터 몸에 베도록 안 고쳐놓으면 나중에 커서는 고치기가 어렵습니다. 거기서 전부 그 사람이 그렇게 만들어진다 그말입니다. 물건 아끼는 것도 그러하고. 오늘 보니까 어떤 학생이 화장실에 가는데 휴지를 쓰는데 보니까 휴지를 막 둘둘둘 쭉 떼는데 한 이만큼 제가 보니까 저는 그거 하나 하면은 한 두 번 세 번 쓸만큼 그래 가져갑니다. 그게 예사겠지요 학생들. 손에 막 둘둘둘둘 말아가지고 쓰지요 화장실에 가면은. 그런것도 아낄줄 모르는것이 어릴적부터 몸에 안베면 그게 평생 그냥 가는 겁니다. 그게 왜그리 된다고요? 행동이 사람을 만드는 겁니다. 예배시간에 조는 생활 자꾸 하면 습성이 돼서 앉으면 저절로 잠이 옵니다 앉으면. 희안하거든요? 성경 읽을때 저절로 잠이 오지요. 수면제라 그러지요. 그런거 빨리 고쳐야 됩니다. 그래서 구원은 자체변화입니다. 그 자체변화는 말씀대로의 행동에서 되는 겁니다. 말씀대로 실행하는 것은 어떻게 해야 되는 겁니까? 말씀대로 실행하는 건 어디서 나온다고요? 알고 믿는데서 나오는 겁니다. 알고 믿어야 말씀대로 행함이 나오게 됩니다. 그러면 알고 믿으려면 어떻게 해야 된다 그랬습니까? 듣고 생각을 해야 됩니다. 읽고 생각하든지. 말씀을 듣고 생각하든지 읽고 생각하든지 들어야 되고 읽어야 이게 가장 첫 출발입니다. 그래서 전하는 자가 없으면 어찌 들으리요. 듣지 않으면 어찌 실행을 하리요. 전하는 자가 없으면 어찌 들으리요. 그래서 복음 전하는 자의 발이 아름답다 그래 말씀했습니다. 듣고 생각하는데서 알고 믿는 믿음이 나오게 되고 알고 믿음에서 행함이 나오게 되고 거기서 우리 구원이 이루어지게 되는거니까 제일 첫째가 말씀을 듣는게 가장 중요하고 그러기 때문에 가장 큰 우리 신앙생활의 대적은 말씀을 듣지 못하게 하는 그놈이 가장 큰 원수다. 우리집에 들어와서 돈을 몇백만원 훔쳐가는 그 도적놈 절도범보다, 내 몸을 헤치고 나를 막 흉기로 찔러서 상처입힌 그 강도 그놈보다 말씀을 듣지 못하게 하는 그놈이 더 큰 원수입니다. 안 그렇습니까? 성경 읽지 못하게 하는 그놈이 더 큰 원수입니다. 이걸 느끼는 것이 영감인데 우리는 참 부족하지요.
자 그래서 사람은 다 같지 않습니다. 다 다른데 우리 목적은 나라는 사람이 어떤 사람인가를 알아서 나 자신을 고쳐나가는 것 그래서 여기 일곱가지 중에서 나에게는 일곱가지 다 해당이 되는가. 첫 번째만 있는가 두 번째만 있는가 요걸 따져서 자기 자신을 냉철하게 진실하게 자기를 살펴야 됩니다. 몸이 아파서 병원에 갔습니다. 의사가 진찰해보더니 ‘엑스레이를 찍어봐야겠습니다 아니면 정밀사진 mri를 좀 찍어봐야 되겠습니다’ ‘돈이 얼마나 듭니까’ ‘백만원 듭니다.’ ‘아휴 백만원 드는데 꼭 그래 해야 됩니까? 그냥 안할랍니다.’ 귀찮고 돈 많이 들고 그래서 안한답니다. 어떤 사람은 검진 받으러 가서 ‘몸에 병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나 잘 먹고 건강하게 지내는데 뭐 병은 무슨 병. 괜찮소. 당신이 틀렸구만.’ 그러고 앉았으면 결국 몸 상하는 것은 의사를 욕할 것이 아니고 의사가 그래 말하면 자기 속에 병이 있으면 죽는 겁니다 잘못하면. 그러면 의사가 ‘큰 병 있습니다’ 그러면 ‘아 그렇습니까’ 정밀하게 살펴보고 돈이 들어가도 치료할 거는 치료하고 고칠거는 고치고 그래해야되지 의사가 하는 말이 자기 마음에 안들고 자기 생각과 다르다고 그 말을 그만 거스르고 안하면 누가 손햅니까? 결국 자기만 손해지요 뭐. 그러니까 자기 자신을 정밀하게 진실하게 살펴서 알아야 구원을 이루어 갈 수 있습니다. 당신은 속에 이런 요소가 있습니다. 다른 사람보고 직접 말하지 않아도 그래할 때 정말 그런가 나는 없는거 같은데 있다 그러는거 보니까 저도 그런게 있습니다. 저한테는 저는 절대 그런 요소가 없는 줄 알고 살아왔는데 주변에서 ‘목사님 이런게 있습니다’ 말하면 하도 그래싸면 저도 돌아봅니다. ‘정말 그런가.’ 안 돌아볼수가 없는 거지요. 자기를 돌아보면 알게 됩니다. 그런데 이걸 자기를 살펴보지 않고 대충 넘어가버리면 ‘나한테 그런게 있을 리가 있나. 그러고 넘어가버리면 자기는 못 고치는 겁니다. 못 고치면 구원은 없는 겁니다. 사람이 누구든지 칭찬은 해줄수 있어도 그 사람의 단점을 지적하는 것은 대단히 어렵습니다. 말 못해줍니다. 그러니까 저도 마찬가집니다. 우리 교회에서 제가 직접적으로 ’이런거 고치십시오.‘하고 말해줄수 있는 사람은 몇 사람 없습니다. 제가 권위가 없기 때문에. 그러니까 설교시간에 말할 때 이 말씀을 듣고 자기를 냉철하게 살펴봐야 됩니다. 내가 어떤가. 그래서 자기 자신을 바로 알아서 이 말씀은 바로 mri 촬영하는 그런 기계와 같은 겁니다. 이게 바로 엑스레이고 이게 바로 청진기고 이게 바로 잣대고 이런 겁니다.
그러니까 이 말씀에다 나 자신을 비추어보고 이 말씀에 나는 어떤 것이 해당되는가를 살펴봐야 됩니다. 또 하나는 이때는 아담하와 에덴동산이기 때문에 에덴동산에서는 마귀가 뱀을 입고 왔습니다. 뱀을 입고 와서 선악과를 두고 말한것인데 오늘날은 우리에게 마귀가 오긴 오는데 마귀가 뭘 입고 올지 모릅니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사람을 입고 올런지. 사랑하는 사람을 입고 올런지. 내가 미워하는 그 사람 입고 올런지. 일을 가져올런지. 온 세상 전부다가 마귀의 이용물이니까 무엇을 입고 나한테 올지 모르며 어떤 건수를 가지고 나한테 올지 모른다 말입니다. 이러니까 요 말씀을 하나에 그래서 이 말씀은 구원의 도리 이치기 때문에 이치는 그 이치만 갖다대면 어디든지 다 맞게 되어있으니까 요 이치를 우리가 기억을 하고 우리 자신을 한번 돌아보십시다.
여호와 하나님이 지으신 들짐승 중에 뱀이 가장 간교하더라. 같이 해보실까요? 간교. 간교. 간교라는 말은 국어사전에 찾아보면 간사하고 교활하다 그래 나옵니다. 그러면 간사가 무슨 뜻인가. 간사하고 교활하다 그말 알수가 있습니까. 그래서 간사가 무슨 뜻인가. 간사는 자기를 위해서 나쁜 짓을 잘하는 사람 이게 간사고 교활하다는 것은 나쁜 꾀가 많은 사람 그런 둘 합치니까 자기 위해서 나쁜 꾀를 잘 내는 사람 요 사람을 간교하다 그래놨는데 백목사님의 정의는 간교라는 것은 자기 중심의 사람을 만드는게 간교다. 사람을 자기 중심의 사람을 만드는게 간교다 그래놨습니다. 자기를 위해서 다른 사람을 이용하는 그 사람을 위하는 척 하면 그 사람을 자기 위해서 이용해먹는 요게 간교다 그말이지요. 다윗의 아들 중에서 압살롬이라는 아들이 유명합니다. 제일 잘생겼지요 압살롬. 그 압살롬에게 다말이라는 누구지요? 압살롬의 누이동생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 누이 동생을 압살롬의 형이 되는 압론이라는 고약한 사람이 그때는 뭐 누이동생하고 결혼도 하고 그랬으니까. 그 다말을 짝사랑을 했습니다. 그래가지고 짝사랑 하다가 그만 몸에 병이 나버렸습니다. 상사병이 나버렸습니다. 그러니까 그것을 알고 다윗의 형 시므이가 시므안가 그 아들 이름이 요나답이라는 인물인데 그가 심히 간교한자라 그래되있습니다. 다윗의 형 시므이의 아들 요나답은 심히 간교한 자더라. 그 간교한 인간이 압론에게 ‘왕자여 왜 날마다 말라가느냐’ 이렇고 이렇고 이러해서 ‘그러냐 내가 꾀를 내줄게.’ 그래가지고 꾀를 내서 압론이 다말을 범하게 만들고 그래서 압살롬이 압론을 죽이게 만들고 그래가지고 다윗 집안에 난리가 났지요. 그래 만든 그 인간중에 그 하나가 요나답이라는 그 인간이 어떠한 인간이라고요? 심히 간교한 자더라. 왕자한테 딱 들어붙어서. 왕자한테 잘 보여서 제 이득을 취하려고 꼬아가지고 나쁜 못된 꾀를 그래 내가지고 욕망을 채우게 하고 큰 살인사건 나게 만든 그 놈이 바로 요나답이다. 그놈 보나마나 성경에 안나와있어도 큰 벌을 받았을겁니다. 끝이 안봐도 비참하게 됐을 겁니다. 그러니까 그게 간교입니다. 간교라는 것은 어쨌든 궁극의 목적은 저를 위한 것이고 저를 위해서 다른 사람을 위하는척 하면서 이용해먹는 그놈이 간굔데 이게 하나님과 전부 멀어지게 만드는 그런 겁니다. 자기 중심으로 살게 하고 하나님 중심에서 떨어지게 만들고 그래서 저를 위해서 이용해먹는 요런 간교. 요런 요소가 나한테는 없는가 이걸 냉철하게 찾아봐야 됩니다. 자기 자신을.
그러기 때문에 우리 신앙에 가장 큰 적이 무엇입니까? 각도가 많아서. 우리 신앙생활에 가장 큰 적은 누구라 그럽니까? 자기라 그러지요. 자기를 어떻게 하라고요? 부인하라는 말이 자기를 부인하라 그말은 자기를 내놓고 객관으로 자기를 보라 그말입니다. 모든 사람이 전부 자기한테 갇혀 있으니까 자기를 모르는 겁니다. 자기를 보지 못하고. 그러니까 내가 나를 보는 것은 틀린 겁니다. 그런데 알고 보면 정말 진실하고 바로 알면 자기를 바로 볼 수 있는데 그래도 내가 나를 보는 것보다 다른 사람이 나를 보는 거 그것보다는 다른 사람이 나를 보는데 나를 좋아하고 내게 가까운 사람이 나를 보고 판정하는 것보다는 나에게서부터 여러 관계로 멀리 있는 사람이 나를 보는 것이 더 정확하게 봅니다. 가장 나를 정확하게 보는 거는 누굽니까? 내 원수가 나를 가장 정확하게 볼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요래 가지고 자기를 봐야 그게 객관적으로 바로 보는 것이지 다른 사람이 뭐라하든지 귀를 딱 막아버리고 자기가 자기를 보고 있으면 그게 자기 주관이고 언덕에 갇힌 것이기 때문에 자기는 보이지 아니합니다. 언덕을 떠나야 됩니다. 그래서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를 살펴서 나한테 이런 간교가 있는가. 설마 나한테. 저도 그중에 한사람입니다. 저한테는 제가 물어봤습니다. 오늘까지 살아오면서 나한테서 내가 다른 사람 사이를 벌어뜨리는 일 한적을 본 적 있느냐? 그런 말 한 걸 들은 것 있냐? 할때 옆에 사람은 ‘그거는 없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모르지요. 더 멀리 있는 사람한테 물어봐야 되겠지요. 없는 것 같은데 있을 수 있다 그말입니다. 간교라는 것은 다른 사람을 해치는, 나를 위해서 남을 이용해먹는, 그 사람을 위하는 척 하면서 나를 이용해먹는 요런 간교가 설마 나한테 이런 요소가 있겠나 싶은데 있을 수 있다 그말입니다. 없다고 생각하면 착각입니다. 간교를 찾아보십시다 자기에게서.
두 번째는 이간의 요소를 찾아보십시다. 이간의 요소. 하나님과 사람 사이를 벌어지게 만드는. 사람과 사람 사이를 벌어지게 만드는. 대개 보면은 나하고 친해야 되는데 나하고 친해야 될 그 사람이 다른 사람하고 친하면 그 사이를 벌어뜨립니다. 내 편이 되야 될 사람이 내 편이 안되고 다른 사람 편이 되면 은근히 그 앞에 가서 친한 그 사람 헐고 두 사람 사이를 벌어지게 만든다 그말입니다. 참 이것도 생각해보면 두려운 일인데 이런 이간의 요소가 나한테 없는가. 사람이 그 이간적인 그런 요소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 되면 평소에는 안 나옵니다. 우리가 좁은 길 넓은 길이 있는데 사람이 평소에는 좁은 길을 갑니다. 좁은 길 가려고 노력을 하고 그런데 그 넓은 길을 갈 수 있는 요소가 있고 그런 사람이 있으면 마지막에 좁은 길 넓은 길 있을때 넓은 길을 가지 않으면 견딜 수 없는 그런 상황이 되면 그 사람 결국 넓은 길로 가고 맙니다. 합리화를 딱 시켜서 그래 가버린다 그말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사람은 우리는 넓은 길을 아예 몰라야 되고 그거는 아예 우리 속에 없어야 됩니다. 없어서 좁은 길만 갈 수 밖에 없는 그 사람이 되면 어떤 상황이 되도 그리 갈 수 밖에 없는데 넓은 길을 알고 있으면 사람이란 것은 그래 가게 된다 그말입니다. 자기도 모르게 그리 가는 겁니다. 아브라함이 믿음의 조상인데 벧엘에서 살다가 하나님이 거기 살라 그랬는데 워낙 기근이 심하고 배가 고프니까 자기도 모르게 애굽으로 내려가버렸습니다. 거기 가서 자기도 모르게 자기 아내를 누이동생 관계로 맞으니까 자기 누이라 그래 말했습니다. 그것이 아브람이 말하자면 그때는 넓은 길을 간 것이다 그말이지요. 이런 간교나 이간이 평소에는 안나옵니다. 그런데 그런것 때문에 자기에게 직접적으로 손익관계가 생겨질때 그때는 이간적인 그런 요소가 자기도 모르게 그런 말을 그런 행동 그런 일을 하게 되는 것이 사람입니다. 그러니까 내 속에 사람과 사람 사이를 벌일 수 있는 그런 이간적인 요소가 있는가를 찾아서 이걸 평소에 자꾸 기도하고 없애버리도록 애를 써야 됩니다.
그다음 세 번째는 가감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더하고 빼는 것. 이것도 참 큰 죄지요. 먹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 죽을까 하노라 하셨느니라. 자기 주관에 따라서 자기 형편에 따라서 말씀을 더하고 빼고 그래 하는 것. 그 배추 무를 기르면서 주일 아침에도 여름에는 물을 줘야 됩니다. 물을 주는데 배추벌레가 딱 평소에 잘 안보이다가 주일날 아침에 물 주려니까 딱 보인다 그말이지요. 그놈을 집어서 죽여야 됩니까 살려놔야 됩니까? 처음에는 제가 요것 집어서 죽이는게 주일날 일하는 것이 되겠다 싶어서 놔뒀다가 그다음에 또 보니까 또 있는것 같아서 그때는 또 한번 꼭 집어서 몃 마리 죽였습니다. 그러면서 머릿속에 들어가는 거는 주일날 배추벌레 죽이는 거 농사짓는게 되니까 죄가 되겠는데 요놈을 두면은 배추입장에서는 배추벌레 죽이는 것이 생명을 해하는 것이니까 주일날 안되겠다 그래 생각되다가도 배추벌레가 배추를 갉아먹는거는 또 괜찮겠나 합리화시켜서 또 몇 마리 죽였다 그말이지요. 이제 어떻게 해야되나? 머릿속에 확정이 안되있습니다. 일부러 찾아서 죽이는거는 일하는 것이 되겠고 눈에 보이는 걸 콕 잡아서 죽이는 거는 괜찮을란가. 어떨란가. 그런것이 자기속에서 보고 합리화를 시켜서 말씀을 가감을 하는 겁니다. 돈을 손해볼때 요 정도의 말은 괜찮지 않을까 요 정도의 일은 괜찮지 않을까 그래가지고 하나님 말씀을 딱 명문되있는건 알겠는데 요걸 양심을 써서 깊이 들어가보면 알 수 있는데 들어가면은 뚜렷이 알면은 손해볼 그단계가 되고 이래되면은 그만 적당히 얼버무려가지고 안들어가고 마는 그래서 말씀을 적당히 가감하던지 더해버리든지 그래가지고 가감하고 손해안보려하는 그걸 찾는 그런 요소가 우리 속에 많이 있습니다. 그것이 말씀을 자기의 직접 물질의 손익이라든지 인간관계라든지 앞면이라든지 또 자기 수치나 이런 관계나 이런게 딱 대두가 되면 자기 속에 있는 말씀을 가감하는 그런 요소가 나와서 ‘요 정도는 괜찮지 않을까?’ 대개 보면은 그래가지고 합리화를 시켜버립니다. 그래가지고 죄를 짓는다 그말이지요.
말씀을 가감할때는 합리화 시켜서 그래가지고 죄를 짓는데 그러다보면 나중에는 성경쓸때 그렇습니다. 성경 쓰시는 분 많이 계시는데 저도 성경 시간될때마다 쓰는데 성경 쓰다가 성경이니까 성경을 기록한 옛날 그분들 생각해서 글자 한자도 안틀리게 하려고 애를 씁니다 처음에. 그러다가 쓰다보면은 글자 틀린게 나오면 이것도 지우고 새로 하면 복잡하니까 그만 한 자씩 그냥 넘어갑니다. 빠트려 넘어가고. 그게 한번 두 번 그러다보면 나중에는 그 빠트리고 넘어가는 거 틀린 것도 예사로 넘어간다 그말이지요. 그게 전부다 합리화를 시키고 말씀을 가감할 수 있는 그런 요소가 되는 것이다 그말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말씀은 절대 변할 수 없는 가감할 수 없는 정확무오한 절대 불변의 진리다. 요걸 기억을 하고 우리속에 말씀을 가감할 수 있는 그래서 일부러 어려운 길로 가고 일부러 고난의 길로 가라 그리하지 않습니까. 말씀을 일부러 좀 어렵게 그렇게 힘들게 찾아가는 그것이 오히려 자기한테 손해되는 건 없습니다. 세상은 손해볼지라도. 세 번째 가감적인 요소.
네 번째는 말씀을 가감하면 그다음 네 번째 오는 단계는 말씀을 부인해버립니다. 마귀가 그랬지요. 처음부터 하와에게 말씀을 부인하면 안 믿을거니까 간교한 마귀가 하와를 찾아와서 하와를 제일 처음에 뭐했습니까? 간교한 마귀가 두 번째 하와에게? 하와를 꼬아가지고 하나님과 멀어지게 만들었습니다. 벌어지게 만들고 이간시켰습니다. 벌어지게 되니까 그다음 하와는 어찌됐습니까? 하나님 말씀을 가감을 했습니다. 가감하니까 그다음에 마귀는 한술 더 떠서 어쨌습니까? 말씀을 아예 부인해버렸습니다.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 이미 하와 속에 하나님에 대한 의문, 말씀에 대한 가감이 그만큼 되어있기 때문에 마귀의 그 미혹의 유혹의 작업술에 끌려서 그만큼 끌려들어갔기 때문에 그때 마귀가 말하자면 톡톡 치다가 한방 먹인겁니다. 한방 먹여버리니까 아이들 말로 k.o가 되버린거죠. 뻗어버렸습니다. 그만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 거기다가 말씀을 부인한 거기다가 교묘한 반거짓말 보태고 반거짓말 보탰지요. 말씀 부인하고 반거짓말 보태버렸습니다. 그러고나니까 하와의 눈에는 어떻게 보였습니까? 간교한 마귀를 접했고 그 간교한 마귀에게 미혹받아서 하나님과 멀어졌고 멀어지고 나니까 말씀에 대해서 가감이 생겨졌고 가감이 생겨지니까 마귀는 그 틈을 타서 부인을 해버렸고 부인한 거기다가 반거짓말 교묘하게 더 정신 못차리게 만들었고 그래 홀딱 넘어가고나니까 여섯 번째로 그래 되고 난다음에 하와가 선악과를 보니까 어찌 됐습니까? 정반대로 보였습니다.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만큼 탐스럽기도 한 나무인지라. 그래 보일 리가 없는 겁니다. 믿는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면 이거는 영원한 사망이기 때문에 정상적으로 믿는 사람이 정신차리고 있으면 말씀을 어길 리가 없습니다. 그런데 그런 정신을 바짝 차리고 있는 믿는 사람에게는 마귀가 와서 말씀을 거짓말이다 이래 하면 된다 그래 말하지 않습니다. 와가지고 살살 하와를 꼬우듯이 꼬와가지고 점점 하나님과 멀어지게 만드는데 요때는 마귀가 와서 뱀이 와서 하와를 멀어지게 만들때 말씀으로 하나님이 참으로 그 하나님 말씀을 이용해서 그리했는데 오늘 우리에게 하나님과 멀어지게 만들때는 어떻게 하겠습니까? 하나님과 우리를 멀어지게 만들때는 어떤 사람에게는 학교 성적, 어떤 사람에게는 진학, 어떤 사람에게는 직장 취업, 어떤 사람은 장사하는데 계산, 어떤 사람은 자기 업무, 자기 취미, 눈에 보이는 것, 이런 것을 자꾸 그래서 눈에 보여주고 귀에 들려주고 그러기 때문에 믿는 사람은 보이는 것이 많고 들리는 것이 많고 복잡하면 마귀는 복잡하게 만듭니다. 복잡하면은 그 복잡 속에 정신을 잃어서 하나님을 잊어버립니다. 그래서 성도는 아무것도 없는 어디로 가야됩니까? 광야로 가야되고 골방으로 가야 됩니다. 골방에 가고 광야로 들어가면 눈에 보이고 들리는게 없으니까 생각을 하게 되지요. 눈을 뜨고 있으면 다 보이니까 눈을 감고 피조물은 안보고 창조주를 보는 겁니다. 그게 뭐라고요? 기돕니다. 고요하게 기도하면 무릎을 꿇고 눈을 감고 기도하면 피조물이 사라지고 기도속에서 창조주 하나님이 떠오르고 보이고 말씀이 생각이 나면 하나님과 가까워집니다. 그래되니까 마귀는 기를 쓰고 믿는 사람으로 하여금 무릎을 못 꿇게 합니다. 기도를 못하게 합니다. 기도 하지마라 말 안합니다. 기도할 수 있는 시간을 빼앗아버립니다. 기도할 수 없도록 피곤하게 만들어버립니다. 재미있는걸 자꾸 보여줍니다. 또 수입을 자꾸 줘버립니다. 그러니까 세상에 돈 버는 것 좋고 공부 많이 하는 것 좋고 직장 좋고 다 좋은데 그런 모든 것들이 하나님 앞에 기도할 시간과 성경 읽을 시간과 하나님 생각할 이런 시간을 가지고 그런걸 이용을 해야 그게 복이 되는 것이지 그런것 때문에 하나님 가까워지는 그 시간 다 뺏기면 그게 전부 우리들에게 음녀가 되고 간부가 되고 음행에 포도주 되고 그래 되고 만다 그말이지요. 그래서 마귀가 우리를 미혹할 때 이간 하나님과 멀어지게 만들고 벌어지게 만들고 그리고난다음에는 말씀을 가감하게 만들고 말씀을 가감한다는 것은 어지간히 잘 믿는 사람도 이거는 다 있습니다. 이런 요소. 자기 형편 손익에 따라서 상황에 따라서 그만 아이들이 그 ‘네가 내가 너더러 먹지말라한 선악과를 먹었느냐?’ 그럴때 아담이 얼른 순간적으로 나온 말이 본능적으로 나온 말이 여자가 줘서 먹었나이다. 뱀이 꼬와서 먹었나이다. 그게 전부다 말하자면은 핑곈데 그런 요소들이 나중에 나가면 하나님 말씀을 가감하게 만드는 그런 요소들이고 부인하게 만드는 그런 요소들입니다.
그러니까 가감하게 만들고 부인하게 만들고 그리고나면 거짓말 반거짓말 그래서 인간의 모든 지식은 전부다 반거짓말 아니면 온거짓말 요게 되고 여기까지 넘어가고나니까 그다음 단계로는 모든 것이 정반대로 보여졌다. 사는 것은 죽는 것으로 죽는 것은 사는 것으로 참 어렵습니다. 반대로 보여지고 나면 그때는 안따먹고는 못견디는 필연적으로 선악과를 따먹을 수밖에 없는 거기까지 나아가게 됐다 하는 겁니다. 요 일곱가지 순서를 하나씩 하나씩 살펴보면서 나한테는 이런게 없다 이게 자기 스스로 속는 겁니다. 일곱가지를 기억하고 우리 각자 자기 속에 나에게 어떤 요소가 이런게 있는가를 찾아서 하나씩 뽑아내는 그런 우리가 되야 됩니다. 자 첫째 뭡니까? 간교. 두 번째? 이간. 세 번째? 가감. 네 번째? 부인. 다섯 번째? 거짓. 여섯 번째? 반대. 그러고나니까 일곱 번째는 죄를 지었습니다. 범죄. 요 일곱가지를 가만히 생각을 하고 우리속에서 하나씩 뽑아내는만큼 우리라는 사람은 하나님 원하시는 사람으로 자체변화가 되는 것이고 요걸 뽑아내는 것이 말씀대로 행하는 생활입니다. 다같이 통성으로 기도드리겠습니다. 기억하기 쉽고 알기 쉬우라고 학생들에게 두글자로 일부러 좀 만들었습니다. 간교, 이간, 가감, 부인, 거짓, 반대, 범죄. 두글자로 일곱가지 딱 기억을 하고 우리 자신들 속에서 이런 요소가 과연 있는가를 찾아서 이런 걸 뽑아달라고 기도하고 힘을 쓰십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