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908-주후(호2:8-13)
하나님과 교회는 부부2013-09-12조회 382추천 47
본문: 호2:8-13
제목: 하나님과 교회는 부부
요점:
1. 호세아서 기록의 배경
- 성경 기록은 유기적 축자적 영감
- 호세아 선지를 통하여 부정한 여인 찾아 결혼하게 하고
- 그를 통하여 하나님 배반한 이스라엘의 종교 음행을 지적
2. 하나님과 성도는 부부
- 부부라는 관계의 특수성
- 부부는 둘이 하나 되고, 하나의 것이 둘의 것이 되는 것
- 하나님은 교회의 남편, 교회는 하나님의 아내
- 이 관계는 육체가 아닌 관계적, 위치적인 면을 말씀하신 것
3. 부정한 아내를 바라보는 남편의 심정
- 세상에도 그런 일이 가끔 있으니
- 너무도 좋은 남편 버리고 허무한 남자 따라가는 여인
- 그 여인을 바라보는 남편의 참담하고 애타는 심정
- 정상적인 가치관, 도덕관을 가졌다면 있을 수 없는 일
- 하나님 배반하고 세상 따라가는 성도에 대한 하나님의 심정
4. 부부에 가장 중요한 것은 정절
- 부모 자녀 간 중요한 것은 책임과 효성
- 사제지간 중요한 것은 역시 책임과 존경
- 친구간에 중요한 것은 의리
- 여수거래에 중요한 것은 신용
- 부부 사이에 가장 중요한 것은 그 무엇보다 정조, 정절
5. 하나님께 대한 성도의 정절은
- 인간 부부는 불완전, 따라서 쌍방이 허물이 있으나
- 하나님은 완전자, 흠이나 실수가 있을 수 없으니
- 하나님께 대한 정절은 아내 위치인 성도에게 문제
- 성도가 하나님께 정절을 지키는 것은 하나님만으로 전부 삼는 것
- 하나님만을 믿고 의지하고 바라보고 사모하고 사랑하는 것
- 모든 것은 하나님이 주신 것, 하나님 아니면 안 되는 것
- 인식이 그러하고 그로 인한 언행심사, 희로애락, 비판평가 사라판단 취사선택이 그러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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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원문)
20130908 주후
호세아 2:8-13
성경은 그 기록이 성경 기록에 영감이 두 종류가 있는데 첫째는 무슨 영감이라 그럽니까? 성경 기록 영감 하나는 무슨 영감입니까? 000샘? 또 하나는요? 하나는 유기적 영감이라 그러고 또 하나는 축자적 영감이라 그리 말합니다. 유기적 영감이라 그말은 유기적이라 말은 살아있다는 뜻입니다. 살아서 움직이는 걸 유기적이다 그런 의미로 말하는 겁니다. 말하자면 자의적이다 그뜻이지요. 자의적이라는 말이 무슨 뜻입니까? 자의적이라 말은 자기 스스로의 의지라 그말입니다. 자기 스스로.
북한에 가면 우리 나라도 옛날에는 그랬었습니다. 저희들 어릴때만해도 그런게 있었고 지금 북한은 말하자면은 무슨 날이 되면 학생들이고 모든 국민들이 동원이 돼서 나와서 환호도 하고 박수도 치고 그리 하는 그런 것들이 있습니다. 그것이 본의 아니게 자기는 그러고 싶지 아니한데 타에 의해서 웃고 타에 의해서 환호하고 박수치는 이런거는 유기적이 아니고 이거는 강제적이고 억지적이고 그런 것들입니다. 더 심하면 기계적이 되는 것이고 이거는 자의적이 아니고 타의에 의한 겁니다. 성경 기록은 이런 것과 반대라 그 뜻입니다. 자기 자신에 자의에 의해서 기록된 것이 성경기록이다. 그런데 그 속에 깊이 들어가보면 하나님의 주권이고 섭리 역사고 예정입니다. 그래서 유기적이라 말하고 축자적이라 말을 어찌 보면 둘은 서로 상반되는 그런 면을 가지고 있다 볼 수 있습니다. 축자적이라 말은 하나님이 글자 한 자 한 자를 직접 쓰셨다 그 뜻이 되고 유기적이라 말은 성경 기자가 자의로 썼다 그말이 되니까 서로 상반되는 그런 말이 될 수 있는데 그러나 그 속에 깊이 들어가면 이 둘이 합해서 하나가 되는 그런 면이 또 있습니다.
호세아서를 하나님께서 기록하실 때 호세아서는 하나님이 기록하신 겁니다. 호세아라는 선지를 통해서 기록을 하셨는데 기록하실 때 먼저 성경 기록하기 전에 호세아로 하여금 결혼을 하되 부정한 여인을 찾아서 결혼해라. 음란한 여인에게 결혼을 해라. 1장 2절에 보면 여호와께서 비로소 호세아로 말씀하시니라 여호와께서 호세아에게 이르시되 너는 가서 음란한 아내를 취하여 음란한 자식들을 낳으라 이 나라가 여호와를 떠나 크게 음행함이니라 이리 말씀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호세아 선지에게 음란한 여인을 취해서 결혼하게 하고 음란한 자식들을 낳으라 말씀을 하셨고 호세아는 그 말씀을 따라서 결혼하되 부정한 여인을 취해서 결혼을 했습니다. 그리고 난다음 자기에게 임하셨던 하나님의 모든 말씀과 자기가 결혼 생활한 그 모든 것을 유기적으로 자의적으로 자기가 느낀 그대로 기록해서 호세아서를 기록한 겁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이 호세아서를 왜 이런 성격으로 기록을 하셨는가? 호세아서를 하나님께서 요런 성격으로 기록하시게 된 배경은 말하자면 호세아서는 삼각관계 이게 참 좋은 말은 아니지만은 사람으로 말하면 삼각관계에 관계된 그 말씀입니다. 본남편이 있고 그 본남편의 아내가 있고 그 아내가 미혹받아서 따라간 간부가 있고 이 삼각관계. 이 삼각관계를 두고 말씀하신건데 그러면 요 기록이 그 당시로 말하면 하나님이 계시고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이 있는데 하나님과 이스라엘은 말하자면 하나님은 남편이고 본남편이고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아내다 그말이지요. 그러면 하나님의 아내된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본남편으로 삼아서 하나님만 전부 삼고 하나님만 믿고 의지하고 바라보고 하나님 아니면 살아갈 수 없는 하나님으로 인해서만 살 수 밖에 없는 이런 이스라엘이 되어져야 될 것인데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리 되지를 아니하고 하나님이 아닌 다른 신을 섬겼습니다. 이방신 바알신을 섬기고 아세라 목상을 섬기고 하나님을 섬기지 아니하고 다른 신들 이방신들을 섬겼으니 그 이방신들 섬긴 이스라엘을 하나님께서 음행한 부정한 여인이라 말씀하셨고 이방신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배반하고 섬기고 따라간 이방신들을 가리켜서 간부라 연애하는 자들이라 그렇게 말씀을 하셔서 그 시대에 환경을, 그 시대적 배경을 이 말씀을 통해서 알 수가 있는 겁니다. 그러면 이것이 그때 그 시대가 그리 되어졌고 하나님께서 그 시대 그래서 호세아서는 하나님께서 누구에게 하시는 말씀이냐? 하나님의 아내된 부정한 여인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께서 호세아서를 통해서 너희들이 지금 이렇게 부정하고 음행을 하고 타락을 하고 있다는 것을 가르쳐 주기 위해서 호세아 선지에게 음란한 여인을 결혼해서 음란한 자식들을 낳아라 그래놓고 2절 끝에 ‘이 나라가 여호와를 떠나 크게 음행함이니라’ 그리 말씀을 하셨습니다. 호세아서를 기록한 그때 그당시 배경이다 그래 볼 수 있습니다.
그러면 이 사실을 성경으로 기록해서 오늘 우리에게 주신 것은 오늘 이 시대를 사는 하나님을 남편으로 모신 하나님의 신부되고 아내된 교회된 성도들이 본남편 하나님을 남편으로 모셔 섬겨 남편 모신 아내로서의 정절을 지키지를 아니하고 뭘 따라 갔습니까? 뭘 따라 갔습니까? 누구 따라갔습니까? 성도가 하나님의 아내된 신부된 성도가 그 성도는 아내니까 아내는 어떤 몸입니까? 남편을 둔 몸. 결혼해서 남편 둔 여인을 뭐라 그럽니까? 유부녀라 그러지요 유부녀. 유부녀는 남편이 있다 그 뜻입니다. 유부남은 아내가 있다 그 뜻이고. 그러면 남편 있는 유부녀인 성도가 자기 본남편을 버려두고 남의 남자하고 눈이 맞아서 놀아나면 그게 음행인데 그 남의 남자가 누구냐? 그 당시로 말하면 누굽니까? 육체 이스라엘이 호세아선지 당시로 말하면 누굽니까? 남의 남자가 이방신들이고 오늘 우리 성도들에게 본남편 하나님을 모신 유부녀인 우리들이 남편을 두고 남의 남자하고 놀아난 그 남의 남자가 누굽니까? 그게 바로 세상이지요 세상. 그 세상을 따라간 이런 말세에 타락한 하나님의 아내된 교회들 성도들의 타락성을 호세아서를 통해서 지적을 하고 있는 겁니다. 야고보서 4장에 보면 간음하는 여자들이여 너희가 세상과 벗된 것이 하나님의 원수임을 알지 못하느냐. 성령이 뭐하기 까지요? 시기하기까지. 시기라는 말이 삼각관계에서 나오는 겁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심정은 말하자면은 부정한 아내를 둔 진실하고 너무나도 좋은 본남편에 안타깝고 참담한 애타는 그 심정이 이 당시 호세아서를 기록하신 하나님의 심정이고 오늘 이 시대 우리 성도들을 향한 하나님의 심정이다 그리 말할 수 있겠지요.
세상에는 사람의 종류가 굉장히 많습니다. 사람은 꼭 같은 사람인데 얼굴 모양이 각각 다른만큼 사람의 마음도 생각도 가치관도 살아가는 모습도 너무나도 달라서 수많은 종류에 사람들이 이 세상에는 존재하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우리가 참고로 상식으로 하나 알 것이 이 세상에는 나 말고 나와 같은 생각 나와 같은 가치관 나와 같은 사고방식 나와 같은 인생관 나와 같은 생활에 방식과 모습을 가진 사람도 있겠지만은 나와 정반대 전혀 다르고 그래서 내가 도무지 이해하기 어려운 그런 사고방식과 그런 생각 그런 가치관 인생관을 가지고 세상을 살아가는 그런 사람들이 도처에 굉장히 많이 있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이 세상을 살고 모든 사람을 상대를 해야 됩니다. 그런 것을 일부러 공부하고 할 것은 아니지만은 상식으로 아는 우리들이 되야 됩니다.
하나님과 우리는 부부 사이라 그랬습니다. 하나님은 교회에 남편, 이번 공과 제목이 뭐였던가요? 오늘부터 가르친 공과 제목이 하나님은 교회의 남편. 그러면 교회는 하나님의 아내. 그러면 하나님과 교회는 부부 이래 되는 거지요. 부부라는 것은 이것도 상식으로 머릿속에 꼭 담아두십시다. 부부라는 이 관계는 인간 인인관계중에 가장 특수한 관계다. 어떤 관계도 부부라는 이 관계보다 더 할 관계는 없어서 그래서 부모와 자녀간에 자녀를 사랑하는 부모의 사랑과 부모님께 효도하는 자녀의 효도와 사제지간에 정리와 친구의 의리와 또 여수거래의 신용과 또 회사 사주와 종업원간의 그런 관계. 여러 별별 그런 관계가 있고 그 관계에 필요한 것들이 많이 있는 중에 가장 특별한 관계가 부부라는 관계다. 아내와 남편의 관계다.
이 부부라는 것은 원래는 전혀 모르는 남남인데 일단 결혼하면 이게 둘인데 둘이 합해서 하나가 되는 것이다. 둘이 하나되고 둘의 모든 것이 하나가 되는 이것이 결혼이고 동시에 하나의 것은 둘의 것이 되는 결국 하나. 같은 말이지요. 둘의 것은 하나가 되고 하나의 것은 둘의 것이 되는 아주 특수한 그래서 결국 하나가 되어지는 이 관계가 가장 특수한 결혼의 그런 관계다 하는 겁니다. 그래서 세상도 그렇고 그런데 하나님과 우리 성도의 관계도 그러해서 하나님께서 우리를 아무것도 없는 벌거벗고 피투성이가 되어서 손짓 발짓 하면서 길거리에 버려져 있는 우리를 하나님이 데려다가 길러서 당신의 사랑하는 신부로 맞아서 하나님이 가지신 모든 사랑과 모든 걸 다 쏟아서 사랑하는 아내로 삼으시겠다고 약속을 하셨으니까 하나님과 우리는 부부가 되었으니 남편되신 하나님의 온갖 좋은 것 전지 전능 영원 불변 완전 무한 그분의 모든 사랑 진실 긍휼 자비 공변됨 이 전부다가 우리 것이 되는 것이고 내게 있는 우리에게 있는 모든 타락한 인간의 온갖 죄와 불의와 불목과 지저분한 모든 것들은 전부 남편되신 주님의 것이 되고 그래서 남편되신 주님이 우리와 부부가 되었기 때문에 하나가 되야 되니까 우리 모든 것이 당신의 것이 되야 되니까 우리의 모든 불의와 불목과 부족의 모든 죄를 허물을 당신이 전부 다 가져서 감당을 하시므로 대속의 공로를 베푸셨고 그리고 하나님의 가진 모든 전부는 다 우리에게 주시기로 그렇게 계약이 지금 다 되어서 있는 이것이 부부의 관계라 하는 겁니다.
그런데 앞에 말씀드린대로 사람은 참 이해 못할 그런 사람들이 많이 있다 그리 말씀을 드렸는데 그렇지요. 우리가 많은 사람이 아니라도 우리 주변만 살펴봐도 왜 그런 마음을 가질까? 왜 저런 생각을 할까? 왜 그렇게 밖에 생각지 못하고 그렇게 판단하지 못할까? 왜 그렇게 사람을 상대하며 그리 말을 하며 그렇게 할까? 이런 것을 우리가 많이 봅니다. 또 부부관계에서도 그렇고 옆에서 본인꺼는 잘 몰라도 남의 것은 잘 보인다고 부부가 살아가는데 보면은 어떤 사람은 남편이 아내가 부부다가 말을 해도 살아가도 그냥 남편으로서 남편의 역할을 잘 감당을 하면서 아내니까 자기 몸이고 하나니까 아끼고 보살피고 사랑하고 위하고 어쨌든 만들어서 길러서 보양을 해서 그래서 좀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그리하면 참 좋겠는데 왜 남편이 그렇게 하지를 못할까? 아내도 그리하면 좋겠는데 왜 아내는 그리 하지를 못할까? 사람이 하나님께 받은 그 분량이 성격이나 성향이나 지능이나 판단력이나 모든게 다 같지 않으니까 그런 별별 사람들이 있는 것을 이해하지만은 어떤 경우는 보면은 참 안타깝다 싶은 그런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사람이 다 같지 않으니까 그러기 때문에 앞선 사람은 뒤선 사람을 잘 인도하는 게 필요하고 장성한 사람은 어린 사람을 이끌어서 길러주고 가르치고 기르는 것이 필요하고 하나님께서 이것도 다 필요해서 만들어두신 그런 모습들이라 그리 볼 수 있지요.
근데 그중에서 하나 도무지 이해하기 어려운 것 하나가 바로 이겁니다. 남편은 너무도 사람 인품도 좋고 실력도 있고 재물도 있고 또 아내를 사랑하는 사랑도 있고 모든 면에 나무랄 것이 없는 그런 참 멋지고 좋고 인품있는 그런 실력있는 그런 남편이고 아내는 그냥 보통 그런 아낸데 그래서 결혼 부부가 됐는데 그런데 그 아내는 말하자면은 비교를 꼭 설명 위해서 한다면 남편은 사람으로 백점은 없으니까 99점짜리나 되는 남편입니다. 경제나 지능의 실력이나 인품이나 지위나 또 아내 사랑하는 사랑이나 가정을 챙겨아끼는 것이나 모든 면이 흠잡을데 없을만큼 99점짜리 남편이 있고 아내는 보니까 인물이나 성격이나 학벌 모든 것 다 따져봐도 평균 한 60점이나 될랑가. 그런데 결혼을 했다 그말이죠. 결혼하니까 객관적으로 볼때는 저런 남자가 어떻게 저런 여자하고 결혼했을까 싶을만큼 그런 면이 있는대도 불구하고 이 남편은 아내하고 결혼해서 자기 아내니까 자기 몸이니까 하나니까 어쨌든 그 아내를 가르치고 아끼고 사랑하고 위해주고 길러서 행복하게 가정을 잘 이끌어나가려고 무진 마음으로 물심양면으로 진정한 사랑으로 애를 쓰는데 이 아내는 이상하게도 그만 한눈을 팔고 아무것도 아닌 운전기사나 참 자기보다도 오히려 못할 수 있는 그런 사람하고 바람을 피우고 놀아나는 그런 걸 볼때 제 3자가 보면 친정부모나 시갓집에서나 주변에서 볼때 그 여인을 보면 도무지 이해를 못하는 거지요. ‘이상하다 저 여자가 정상이면, 사고방식이 정상이고 인생관이 정생이고 바로 판단이 된다면 저런 좋은 남편 두고 저럴 수가 없는 건데 어떻게 저래 할 수가 있을까?’ 도무지 이해를 못하는 그런 경우가 보면 가끔 가다 보면 있습니다. 근데 인간 부부 관계는 사람이 다 완전하지 못하니까 이제 말씀드린 것은 예를 들어 설명하니까 그런 남편이고 이런 아내지만은 대개 보면은 안 그런 경우도 있지만은 부부 사이에 어떤 문제가 있으면 대개 보면은 쌍방이 문제지 한쪽만의 문제는 별로 없습니다 거의 보면은. 없지는 거의 없지는 않은데 뭔가 한쪽에 문제가 있으니까 또 다른쪽에 문제가 생겨지고. 사람이 다 내것은 옳고 남의 것은 틀리고 내것은 바르고 남의 것은 잘못되고 팔이 안으로 굽는다고 자기 중심이 되어있으니까 자기 잘못은 보이지 않고 이것이 부부관계도 그렇습니다. 그러니까 부부관계에서 목소리 높아지고 큰소리가 나고 부부싸움이 생겨져서 그런 문제가 생길때는 십중팔구 쌍방문제지 한쪽만 일방적으로 잘못한 경우는 거의 없다 할만큼 대개 다 그러합니다. 한쪽에서 보면은 이거는 백퍼센트 아내 잘못이다 싶은데 파고들어가보면 아내 잘못도 크지만은 그 아내가 그리되게된 그 배경에 남편의 또다른 문제가 있다 그말이고 남편이 그리 될 때 보면은 이거는 백퍼센트 남편의 잘못이다 싶은데 속에 들어가보면 또 남편을 그래 만든 아내 문제도 또 있다 그말입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사람을 두고 판단할 때 항상 우리는 양쪽을 다 생각하고 다 살펴보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그런데 가끔 가다 보면 도무지 이해 못할 그런 아내 주로 아내가 좀 약자에 속하고 그러니까 아내. 그런 아내가 그런 여인들이 가끔 가다보면 있을 수 있습니다. 이해 못할 그런 여인들. 말하자면 그럴때 그 여인을 향한 말하자면은 진실하고 실력있는 남편을 둔 부정한 여인을 바라보는 그 본남편의 심정이 어떠할까. 제 3자가 바라볼때도 참 남편으로써 억장이 무너지겠고 애가 타겠고 옛날 이건희 회장이 삼성그룹 혁신할 때 뭐 빼고 다 바꾸라 그랬다던가요? 자기 아내 빼고는 모조리 다 바꿔라 그랬다 그러지요. 인식과 사고방식 전부다 기업에 대한 모든 것 완전히 다 바꿔라 그랬다 그러지요. 유명한 말이지요. 그렇다면 전부다 바꿀 수 있는데 뭐는 바꾸면 안된다 말입니까? 아내는 이거는 바꾸지를 못하니까 그러니 아내가 아무리 못나고 부족하고 부정한 짓을 저질러도 진실한 남편이고 인격있는 거기다 신앙있는 남편같으면 그 아내를 끊어버리지 못하는 겁니다. 그러니까 끊어버리지 못하니까 마음에 애가 타고 답답하고 참 어찌할바를 모르는 거지요. 사람들이 보면은 정상적인 관점에서 보면은 왜 그럴까 도무지 이해를 못하는 겁니다. 그래서 안 믿는 사람들 쓰는 말로 어찌됐다 그럽니까? 귀신이 씌였다 그러지요 귀신이. 귀신이 씌였구만 그러지 않고서야 저리 될 수가 있나. 남편도 자식도 가정도 팽개치고 여자가 저렇게 놀아나고 돌아다닐수가 있나. 귀신이 씌지 않고는 그리 될 수가 없다는 그런 여인들이 간혹 있는데 그럴때 그 여인을 그 아내를 두고 바라보는 그 본남편에 억장이 무너지고 애가 타고 안타까운 그 심정이 바로 호세아서를 기록하신 하나님의 심정이다 그말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남편이고 우리는 하나님의 아내라. 그런데 하나님은 흠과 점이 없는 완전잡니다. 전지전능잡니다. 모든 걸 다 가지신 분입니다. 사람의 언어로 형언할 수 없는 그런 탁월한 남편이신 하나님인데 그 하나님이 아무것도 아닌 우리 인생을 당신의 사랑으로 당신의 아내로 삼아서 당신 전부를 다 쏟아부어서 사랑하셨고 사랑하시고 영원히 사랑하시겠다고 그러니 아무것도 없어도 상관이 없고 괜찮고 당신에게 다 있으니까 오로지 남편되신 하나님을 남편으로 인정을 하고 남편으로 대접을 하고 섬기는 그것 하나만 원하는 것이 남편되신 하나님의 마음이고 심정이고 요구인데. 지금 설명하는 것이 우리 성도에 대한 말하자면 부정한 여인 성도에 대한 하나님의 심정을 말씀드리고 있는데 하나님은 우리 남편인데 남편이신 하나님이 당신이 전부 다 가졌습니다. 이게 실감적으로 깨닫기는 어려운데 논리적 이치적 지식적으로 일단 받아놓고 그다음에 돌아가셔서 자꾸 생각좀 해보십시다. 저도 설교하지만은 이 실상을 다 느끼는 것은 아직까지 너무도 아늑하니까. 그러면 모든 것을 다 가지신 하나님 그 하나님께서 아무것도 아닌 우리를 당신의 아내로 맞아서 아내로 맞았다는 이것이 부부라는 말이고 이 부부라는 말이 하나라는 말이죠 하나. 그러면 거기서 의문을 가져보십시다. 왜 하나님이 나를 아내로 삼아야 되는가. 무엇 때문에 하나님께서 우리를 당신의 아내로 삼아야 되는가. 우리에게 뭐가 있어서 아내로 삼아야 되는가. 하나님이 아내로 우리를 삼아야되는 그 이유가 무엇이며 목적이 뭐냐. 이런것도 좀 생각해보시고 그러면 어쨌든 우리는 하나님이 당신의 아내 삼아서 당신이 가진 전부다를 우리것이 되도록 하겠다 그리 하셨으니까 그런데 요구하시는 것은 딱 하납니다.
부부 사이에 가장 중요한 것은 부모와 자녀 사이에 부모로써 자녀에게 중요한 것은 부모의 사랑입니다. 책임이고. 자녀로써 부모에게 중요한 것은 효성입니다. 부모가 자녀에 대해서 사랑이 없고 책임감이 없으면 부모의 자격이 없는거고 부자지간이 부모와 자녀간의 사이가 제대로 되지 못합니다. 자녀가 부모님에게 대해서 효성이 없으면 그 자녀는 잘못된 자녀고 복을 받지 못합니다. 친구 관계는 뭐가 중요합니까? 친구관계 중요한 것은 의리라 그러지요 의리. 친구관계는 의리에 죽고 산다 그럽니다. 의리가 중요합니다. 여수거래에 고객과 물건 파는 업자관계는 뭐가 중요합니까? 여기는 신용이 중요합니다. 스승과 제자 사제지간에는 이것도 스승의 책임과 스승을 존경하는 제자의 마음가짐이 중요합니다. 이런게 다 중요한데 그러면 부부관계에는 의리가 중요한가 효성이 필요한가 책임감이 필요한가 아니면 존경심이 필요한가. 부부사이에 가장 중요한 것이 뭐라 그랬습니까? 여기는 가장 중요한 것이 정조라는 겁니다 정조. 정조 정절. 이거 빼놓고 이거 없으면 인물이 좋아도 성격이 좋아도 재주가 많아도 물질이 많아도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는 겁니다. 부부 사이에 생명은 정존데, 정절인데 정조라는 말은 이거는 육체를 가진 남녀관계는 육체적인 그런 정조도 필요하지만은 하나님과 우리 성도의 관계 여기에 정조라는 말은 정절이라는 말은 이거는 남편되신 하나님 한분만 아내인 우리가 전부 삼는 겁니다. 인간관계도 그렇습니다. 인간관계도 육체적이 아닐지라도 그 마음과 생각과 그 속에 깊은 속에 자기 남편만 남편으로서의 위치에 두고 전부 삼지를 아니하고 남편 아닌 남의 남자가 그 아내의 눈에 들어오고 마음에 들어와있으면 그 여인은 육체를 아닐지라도 이미 정조를 버린 겁니다. 그 여인은. 남자도 마찬가지죠. 남자도 자기 아내가 인물이 못났던지 또 애교가 없던지 성격이 괴팍하든지 사람이 모자라든지 어쨌든 결혼해서 아내로 삼았으면 그런데 결혼한 부부들이 그런 사람이 있습니다. 보면 밖에 객관에서 보면 그 남자나 그 여자나 둘이 어지간히 맞게 결혼했구만 싶은데 남자가 볼때 아내는 자기보다 한참 모자라고 아내가 볼때 남편은 자기보다 모자라다 싶으니까 남편은 아내를 무시하고 아내는 남편을 무시합니다. 그러면 그 부부는 지옥이 되는 겁니다. 아내가 남편보다 한참이 모자라서 누가 봐서 아내는 한 30점 남편은 한 70점 그래 보인다 할지라도 그 남편 눈에는 그 마음 속에는 30점 짜리 그 아내가 100점 짜리 아내로 보여야 되고 그래 마음 속에 담아놔야 남편의 인격이고 남편의 정조입니다 그게. 그게 남편의 신앙입니다. 반대로 아내는 그 남편이 아무리 돈도 못 벌고 재주도 없고 속을 썩이고 어떻게 해도 30점 짜리도 안되는 그런 남편일지라도 천하에 있는 어떤 남자보다 자기 남편만 자기에게 100점 짜리 전부가 돼서 들어앉아 있어야 그게 아내로서의 정상적인 아내고 그게 아내의 책임 의뭅니다. 인격입니다. 그게 바로 정조라는 겁니다. 그렇지 아니하고 다른 것이 그 속에 들어있으면 육체적으로 선을 나아가지 안해도 그거는 음행을 한 것이고 정조를 버린 것이다 그말입니다. 그러니까 부부라는 이 사이속에 가장 중요한 것은 남편에게는 아내만, 아내에게는 남편만 물론 그 관계는 부부라는 그 관계를 두고 말하는 겁니다. 이것이 아니면 정조를 버린 겁니다. 사람이 이런 면을 두고 본다면 이 세상에 사는 부부 중에서 모두 몇 번씩 어떤 사람들은 나쁜 사람들은 수십번씩 마음속으로 정조를 져버린 그런 사람이 얼마나 많을지 모르겠습니다. 이게 정상적인 부부고 정조며 이것이 부부 사이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겁니다. 인간관계가 그러한 것이고 이 세상 부부도 그러합니다. 이게 정상적인 성경적인 부부인데 세상은 다 변하니까 세상이 변하니까 이런 말 하면 퀘퀘묵은 호랑이 담배피던 시절적 이야기라 그렇게 말할지 모르겠지만은 그래도 이런거는 변해서는 안되는 겁니다. 모든 사람이 사람이기를 다 포기하고 사람 아닌 그런 행동을 하고 그런 짓거리를 해도 우리는 사람이니까 우리는 그런 걸 보고 틀린 거는 틀렸다 아닌 것은 아니라 하고 우리는 그런데 찬동할 수 없고 그런 것을 아니라고 비판할 수는 있는 겁니다. 아니라고 말을 해야 나와 관련된 사람들이 미혹을 받지 않을 것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이거는 인간 부부. 인간부부도 그럴뿐 아니고 모형적인 부부인 인간부부도 그러한데 하물며 부부의 원형되는 하나님과 인간관계는 더욱 더 한겁니다. 그래서 하나님도 우리가 전부여야 되고 우리도 하나님만이 전부여야 되는데 그런데 하나님은 우리가 아는대로 완전자니까 실수가 없는 분이니까 전지전능자니까 당신은 인격자니까 사람으로 말하자면. 하나님은 우리가 또 당신 스스로 우리를 택했으니까 아무리 우리가 못나도 상관없고 부족해도 상관없고 무식해도 괜찮고 바보라도 상관 없고 불구자라도 상관이 없고 모자라도 상관없고 상관이 없다는 겁니다. 우리를 당신의 아내로 삼았으니까. 그런데 남편되신 실력있는 그 하나님이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은 딱 하납니다. 아내로서의 정조만은 지켜라 그겁니다. 몰라도 상관없다 부족해도 상관없다 못나도 상관없다 아무것도 못해도 상관없으니까 아내로서의 남편을 향한 정조만은 지켜라 그걸 원하시는 것이 우리 성도에 대한 남편되신 주님의 심정이고 요굽니다.
말하자면은 그러면 하나님은 정조를 버린 일이 절대 없으니까 그럴 수도 없으니까 문제는 우리들인데 인간부부는 문제가 생기면 양쪽을 다 봐야 됩니다. 사람은 다 불완전하니까. 그러나 하나님과 인간 부부 신인 부부에는 하나님은 흠이 없으니까 인간쪽만 살펴봐야 되는데 우리 인간쪽에서 하나님께 대한 정조를 버리는 것이 문제고 하나님이 원하시는 본남편이신 하나님에 대한 아내된 우리가 정조를 지키는 것은 무엇인가. 하나님 한분만으로 전부를 삼는 겁니다. 하나님만 전부 삼는다 그게 무슨 말인가. 하나님 한분만 전부 삼아서 그래서 그 아내가 보면은 머리도 별로 좋지 못하고 고만고만하고 일도 보면은 별로고 또 속아지도 보면 별로 좋지 못하고 애교도 없고 야무지지도 아니하고 자녀 기르는 것도 별로 막 고만고만하고 그런데 그 아내가 남편에 대한 그 마음만큼은 천하에 어떤 남자도 눈에 들어오지 아니하고 오로지 자기 남자밖에 모릅니다. 자기 남편이 제일이고 최고고 남편이 전부라서 그 남편이 없으면 아무것도 못하는 그런 아내가 있습니다. 그래서 좀 떨어져있으면 그만 사모가 되고 보고싶고 목소리라도 들어보고 싶고 자꾸 생각이 나지고 그래서 모든 그의 희로애락이 남편으로 인해서 생겨지고 그의 모든 하는 것도 남편 때문에 하고 남편 위해서 하고 남편으로 인해서 하고 그리 되어지는 그 아내가 그 남편에게는 부부의 정조면에 있어서는 가장 좋은 아내가 되겠지요. 세상에서 활동을 해야되니까 여러 가지 필요한 것이 있겠지만은 기본적인 생명적인 부부의 관계에 있어서는 그 아내가 가장 좋은 아냅니다. 그런데 사람은 자기 중심이 있고 인간은 타락성이 있어서 남자들이 그런 아내가 있으면 남자들은 오히려 싫어합니다. 오히려 그만 좀 멀어지고 싶고 좀 떨어지고 싶은 그런 면이 있는데 그래서 멀어지고 떨어져서 돌아가보면 나중에는 다시 돌아오게 되있습니다. 인간은 타락성이 있으니까. 그래도 더 들어가보면 결국 그리 돌아오게 되는건데 하나님이 우리에게 원하시는 아내로서의 정절을 지키는 것이 바로 이런 면입니다. 세상에는 돈도 있고 돈의 힘이라는 것은 대단하지 않습니까. 돈도 있고 온갖 세상에 찬란하고 매력성 있는 문화들이 있고 좋은 사람도 있고 일들도 있고 또 목표를 두고 달려갈 그런 것들이 굉장히 많이 있는데 이 세상에 어떤 것이 좋은 것이 많이 있어도 아내들이 여반들이 남편없이 결혼해서 남편 둔 아내가 남편 없이 살겠습니까 그러면 못삽니다 하는 그런 대답할 여인들이 얼마나 되겠습니까? 모르기는 몰라도 제발 좀 떨어졌으면 좋겠습니다. 좀 오랫동안 따로 좀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아내들이 아마 마음이 많이 그럴 겁니다. 그것이 상황에 따라서 깊은 속은 아니지만은 그런게 있을수 있겠지만은 속속들이 그러면 문제가 되는 거지요. 남편들도 그럴 수 있고.
그런데 하나님이 원하시는게 그겁니다. 하나님이 아내된 우리들에게 원하시는 것은 세상에 온갖 좋은 것들이 많이 있지만은 그 어떤 것에도 우리의 마음을 둘 수가 없고 우리의 소망이나 기쁨을 둘 수가 없고 모든 것은 전부 하나님으로 인해서 하고 하나님 때문에 하고 하나님을 위해서 하는 하나님만으로만 살아가는 요런 성도가 되기를 주님이 우리를 원하시는 이것이 그래서 남편이 없으면 집안에 못 하나를 박아도 남편이 해주기를 바라고 해줘야 되고 무거운 물건 하나 들어도 남편 없으면 안되고 그런 거야 뭐 다른 사람 시켜도 되지만은 마음이 그런 것처럼. 믿는 성도가 먹는 것도 입는 것도 일을 하는 것도 공부하는 것도 세상 살아가는 모든 면에 있어서 하기는 하지만은 하나님이 해주지 않으면 아무것도 안된다는 요 마음 자세. 하나님이 주셔야 받을 수 있고 하나님이 주셔야 살 수 있고 하나님이 안해주시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하나님 아니면 아무것도 안되는 요런 인식과 사고방식과 요런 자세로 하나님을 상대해서 섬기기를 원하는 요것이 하나님이 우리에게 원하시는 아내된 성도의 마음자세 생활모습. 그래서 하나님이 아니면 안되니까 그것이 세상을 살아가는 모든 그의 생활과 활동과 언행심사와 모든 대외 사람들 관계 접촉에 원인되어지고 원동이 되어지는 하나님으로 인해서 살아가는 생활이 되는 요런 성도가 되기를 주님이 원하시는 것이 호세아서를 기록하신 하나님의 뜻이다 그말이지요.
그러니까 하나님이 주셨는데 다른 것이 줬다고 하니까 준 자체 본남편이 주셨는데 주신 본남편은 잊어버리고 다른 것을 따라가니까 그게 음행이 되는 것이고 부정한 그런 여인이 되는 겁니다. 그래서 오늘 오후에는 부정한 여인 본남편을 버리고 간부를 따라가는 이런 부정한 여인에 대한 진실한 실력있는 남편되신 하나님의 그 애타는 심정 이 심정을 우리가 좀 헤아려서 오늘 우리들에 대한 하나님의 심정이 이러하다 하는 것을 좀 생각해봤으면 합니다. 그래서 이것을 가지고 일단 지식적으로 요 논리적으로 알아가지고 기억을 해서 돌아가셔서 자꾸 좀 생각 좀 한번 해보십시다. 하나님은 우리의 남편이고 남편되신 하나님은 부족함이 없는 분인데 모든 면으로 우리는 아무것도 아닌데 이분이 우리를 당신의 아내로 삼으시고 전부 다 쏟아부어서 사랑하시겠다고 이런 부부로서 관계를 맺어주셨는데 왜 성도된 우리가 하나님을 버리고 배반하고 하나님이 진노하시는 간부라는 그런 세상 그런것을 따라 거기에 마음을 주고 정성을 주고 그것으로 인해서 살고 하나님 잊어버려도 없어도 그거 있으면 괜찮다는 이런 생활 우리가 하고 있는가. 몰라서 하고 있고 못 믿어서 하고 있고 여러 가지 원인 때문에 하고 있으니 우리들의 말하자면 부정한 여인된 우리의 모습을 돌아보면서 우리를 바라보는 하나님의 애타는 심정을 생각하면서 본남편 하나님에게로 돌아가는 그런 우리들이 되야되겠다 하는 것을 오후에 말씀을 드리는 겁니다. 좀 생각해보십시다. 다같이 통성으로 기도드리겠습니다.
제목: 하나님과 교회는 부부
요점:
1. 호세아서 기록의 배경
- 성경 기록은 유기적 축자적 영감
- 호세아 선지를 통하여 부정한 여인 찾아 결혼하게 하고
- 그를 통하여 하나님 배반한 이스라엘의 종교 음행을 지적
2. 하나님과 성도는 부부
- 부부라는 관계의 특수성
- 부부는 둘이 하나 되고, 하나의 것이 둘의 것이 되는 것
- 하나님은 교회의 남편, 교회는 하나님의 아내
- 이 관계는 육체가 아닌 관계적, 위치적인 면을 말씀하신 것
3. 부정한 아내를 바라보는 남편의 심정
- 세상에도 그런 일이 가끔 있으니
- 너무도 좋은 남편 버리고 허무한 남자 따라가는 여인
- 그 여인을 바라보는 남편의 참담하고 애타는 심정
- 정상적인 가치관, 도덕관을 가졌다면 있을 수 없는 일
- 하나님 배반하고 세상 따라가는 성도에 대한 하나님의 심정
4. 부부에 가장 중요한 것은 정절
- 부모 자녀 간 중요한 것은 책임과 효성
- 사제지간 중요한 것은 역시 책임과 존경
- 친구간에 중요한 것은 의리
- 여수거래에 중요한 것은 신용
- 부부 사이에 가장 중요한 것은 그 무엇보다 정조, 정절
5. 하나님께 대한 성도의 정절은
- 인간 부부는 불완전, 따라서 쌍방이 허물이 있으나
- 하나님은 완전자, 흠이나 실수가 있을 수 없으니
- 하나님께 대한 정절은 아내 위치인 성도에게 문제
- 성도가 하나님께 정절을 지키는 것은 하나님만으로 전부 삼는 것
- 하나님만을 믿고 의지하고 바라보고 사모하고 사랑하는 것
- 모든 것은 하나님이 주신 것, 하나님 아니면 안 되는 것
- 인식이 그러하고 그로 인한 언행심사, 희로애락, 비판평가 사라판단 취사선택이 그러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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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원문)
20130908 주후
호세아 2:8-13
성경은 그 기록이 성경 기록에 영감이 두 종류가 있는데 첫째는 무슨 영감이라 그럽니까? 성경 기록 영감 하나는 무슨 영감입니까? 000샘? 또 하나는요? 하나는 유기적 영감이라 그러고 또 하나는 축자적 영감이라 그리 말합니다. 유기적 영감이라 그말은 유기적이라 말은 살아있다는 뜻입니다. 살아서 움직이는 걸 유기적이다 그런 의미로 말하는 겁니다. 말하자면 자의적이다 그뜻이지요. 자의적이라는 말이 무슨 뜻입니까? 자의적이라 말은 자기 스스로의 의지라 그말입니다. 자기 스스로.
북한에 가면 우리 나라도 옛날에는 그랬었습니다. 저희들 어릴때만해도 그런게 있었고 지금 북한은 말하자면은 무슨 날이 되면 학생들이고 모든 국민들이 동원이 돼서 나와서 환호도 하고 박수도 치고 그리 하는 그런 것들이 있습니다. 그것이 본의 아니게 자기는 그러고 싶지 아니한데 타에 의해서 웃고 타에 의해서 환호하고 박수치는 이런거는 유기적이 아니고 이거는 강제적이고 억지적이고 그런 것들입니다. 더 심하면 기계적이 되는 것이고 이거는 자의적이 아니고 타의에 의한 겁니다. 성경 기록은 이런 것과 반대라 그 뜻입니다. 자기 자신에 자의에 의해서 기록된 것이 성경기록이다. 그런데 그 속에 깊이 들어가보면 하나님의 주권이고 섭리 역사고 예정입니다. 그래서 유기적이라 말하고 축자적이라 말을 어찌 보면 둘은 서로 상반되는 그런 면을 가지고 있다 볼 수 있습니다. 축자적이라 말은 하나님이 글자 한 자 한 자를 직접 쓰셨다 그 뜻이 되고 유기적이라 말은 성경 기자가 자의로 썼다 그말이 되니까 서로 상반되는 그런 말이 될 수 있는데 그러나 그 속에 깊이 들어가면 이 둘이 합해서 하나가 되는 그런 면이 또 있습니다.
호세아서를 하나님께서 기록하실 때 호세아서는 하나님이 기록하신 겁니다. 호세아라는 선지를 통해서 기록을 하셨는데 기록하실 때 먼저 성경 기록하기 전에 호세아로 하여금 결혼을 하되 부정한 여인을 찾아서 결혼해라. 음란한 여인에게 결혼을 해라. 1장 2절에 보면 여호와께서 비로소 호세아로 말씀하시니라 여호와께서 호세아에게 이르시되 너는 가서 음란한 아내를 취하여 음란한 자식들을 낳으라 이 나라가 여호와를 떠나 크게 음행함이니라 이리 말씀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호세아 선지에게 음란한 여인을 취해서 결혼하게 하고 음란한 자식들을 낳으라 말씀을 하셨고 호세아는 그 말씀을 따라서 결혼하되 부정한 여인을 취해서 결혼을 했습니다. 그리고 난다음 자기에게 임하셨던 하나님의 모든 말씀과 자기가 결혼 생활한 그 모든 것을 유기적으로 자의적으로 자기가 느낀 그대로 기록해서 호세아서를 기록한 겁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이 호세아서를 왜 이런 성격으로 기록을 하셨는가? 호세아서를 하나님께서 요런 성격으로 기록하시게 된 배경은 말하자면 호세아서는 삼각관계 이게 참 좋은 말은 아니지만은 사람으로 말하면 삼각관계에 관계된 그 말씀입니다. 본남편이 있고 그 본남편의 아내가 있고 그 아내가 미혹받아서 따라간 간부가 있고 이 삼각관계. 이 삼각관계를 두고 말씀하신건데 그러면 요 기록이 그 당시로 말하면 하나님이 계시고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이 있는데 하나님과 이스라엘은 말하자면 하나님은 남편이고 본남편이고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아내다 그말이지요. 그러면 하나님의 아내된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본남편으로 삼아서 하나님만 전부 삼고 하나님만 믿고 의지하고 바라보고 하나님 아니면 살아갈 수 없는 하나님으로 인해서만 살 수 밖에 없는 이런 이스라엘이 되어져야 될 것인데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리 되지를 아니하고 하나님이 아닌 다른 신을 섬겼습니다. 이방신 바알신을 섬기고 아세라 목상을 섬기고 하나님을 섬기지 아니하고 다른 신들 이방신들을 섬겼으니 그 이방신들 섬긴 이스라엘을 하나님께서 음행한 부정한 여인이라 말씀하셨고 이방신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배반하고 섬기고 따라간 이방신들을 가리켜서 간부라 연애하는 자들이라 그렇게 말씀을 하셔서 그 시대에 환경을, 그 시대적 배경을 이 말씀을 통해서 알 수가 있는 겁니다. 그러면 이것이 그때 그 시대가 그리 되어졌고 하나님께서 그 시대 그래서 호세아서는 하나님께서 누구에게 하시는 말씀이냐? 하나님의 아내된 부정한 여인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께서 호세아서를 통해서 너희들이 지금 이렇게 부정하고 음행을 하고 타락을 하고 있다는 것을 가르쳐 주기 위해서 호세아 선지에게 음란한 여인을 결혼해서 음란한 자식들을 낳아라 그래놓고 2절 끝에 ‘이 나라가 여호와를 떠나 크게 음행함이니라’ 그리 말씀을 하셨습니다. 호세아서를 기록한 그때 그당시 배경이다 그래 볼 수 있습니다.
그러면 이 사실을 성경으로 기록해서 오늘 우리에게 주신 것은 오늘 이 시대를 사는 하나님을 남편으로 모신 하나님의 신부되고 아내된 교회된 성도들이 본남편 하나님을 남편으로 모셔 섬겨 남편 모신 아내로서의 정절을 지키지를 아니하고 뭘 따라 갔습니까? 뭘 따라 갔습니까? 누구 따라갔습니까? 성도가 하나님의 아내된 신부된 성도가 그 성도는 아내니까 아내는 어떤 몸입니까? 남편을 둔 몸. 결혼해서 남편 둔 여인을 뭐라 그럽니까? 유부녀라 그러지요 유부녀. 유부녀는 남편이 있다 그 뜻입니다. 유부남은 아내가 있다 그 뜻이고. 그러면 남편 있는 유부녀인 성도가 자기 본남편을 버려두고 남의 남자하고 눈이 맞아서 놀아나면 그게 음행인데 그 남의 남자가 누구냐? 그 당시로 말하면 누굽니까? 육체 이스라엘이 호세아선지 당시로 말하면 누굽니까? 남의 남자가 이방신들이고 오늘 우리 성도들에게 본남편 하나님을 모신 유부녀인 우리들이 남편을 두고 남의 남자하고 놀아난 그 남의 남자가 누굽니까? 그게 바로 세상이지요 세상. 그 세상을 따라간 이런 말세에 타락한 하나님의 아내된 교회들 성도들의 타락성을 호세아서를 통해서 지적을 하고 있는 겁니다. 야고보서 4장에 보면 간음하는 여자들이여 너희가 세상과 벗된 것이 하나님의 원수임을 알지 못하느냐. 성령이 뭐하기 까지요? 시기하기까지. 시기라는 말이 삼각관계에서 나오는 겁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심정은 말하자면은 부정한 아내를 둔 진실하고 너무나도 좋은 본남편에 안타깝고 참담한 애타는 그 심정이 이 당시 호세아서를 기록하신 하나님의 심정이고 오늘 이 시대 우리 성도들을 향한 하나님의 심정이다 그리 말할 수 있겠지요.
세상에는 사람의 종류가 굉장히 많습니다. 사람은 꼭 같은 사람인데 얼굴 모양이 각각 다른만큼 사람의 마음도 생각도 가치관도 살아가는 모습도 너무나도 달라서 수많은 종류에 사람들이 이 세상에는 존재하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우리가 참고로 상식으로 하나 알 것이 이 세상에는 나 말고 나와 같은 생각 나와 같은 가치관 나와 같은 사고방식 나와 같은 인생관 나와 같은 생활에 방식과 모습을 가진 사람도 있겠지만은 나와 정반대 전혀 다르고 그래서 내가 도무지 이해하기 어려운 그런 사고방식과 그런 생각 그런 가치관 인생관을 가지고 세상을 살아가는 그런 사람들이 도처에 굉장히 많이 있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이 세상을 살고 모든 사람을 상대를 해야 됩니다. 그런 것을 일부러 공부하고 할 것은 아니지만은 상식으로 아는 우리들이 되야 됩니다.
하나님과 우리는 부부 사이라 그랬습니다. 하나님은 교회에 남편, 이번 공과 제목이 뭐였던가요? 오늘부터 가르친 공과 제목이 하나님은 교회의 남편. 그러면 교회는 하나님의 아내. 그러면 하나님과 교회는 부부 이래 되는 거지요. 부부라는 것은 이것도 상식으로 머릿속에 꼭 담아두십시다. 부부라는 이 관계는 인간 인인관계중에 가장 특수한 관계다. 어떤 관계도 부부라는 이 관계보다 더 할 관계는 없어서 그래서 부모와 자녀간에 자녀를 사랑하는 부모의 사랑과 부모님께 효도하는 자녀의 효도와 사제지간에 정리와 친구의 의리와 또 여수거래의 신용과 또 회사 사주와 종업원간의 그런 관계. 여러 별별 그런 관계가 있고 그 관계에 필요한 것들이 많이 있는 중에 가장 특별한 관계가 부부라는 관계다. 아내와 남편의 관계다.
이 부부라는 것은 원래는 전혀 모르는 남남인데 일단 결혼하면 이게 둘인데 둘이 합해서 하나가 되는 것이다. 둘이 하나되고 둘의 모든 것이 하나가 되는 이것이 결혼이고 동시에 하나의 것은 둘의 것이 되는 결국 하나. 같은 말이지요. 둘의 것은 하나가 되고 하나의 것은 둘의 것이 되는 아주 특수한 그래서 결국 하나가 되어지는 이 관계가 가장 특수한 결혼의 그런 관계다 하는 겁니다. 그래서 세상도 그렇고 그런데 하나님과 우리 성도의 관계도 그러해서 하나님께서 우리를 아무것도 없는 벌거벗고 피투성이가 되어서 손짓 발짓 하면서 길거리에 버려져 있는 우리를 하나님이 데려다가 길러서 당신의 사랑하는 신부로 맞아서 하나님이 가지신 모든 사랑과 모든 걸 다 쏟아서 사랑하는 아내로 삼으시겠다고 약속을 하셨으니까 하나님과 우리는 부부가 되었으니 남편되신 하나님의 온갖 좋은 것 전지 전능 영원 불변 완전 무한 그분의 모든 사랑 진실 긍휼 자비 공변됨 이 전부다가 우리 것이 되는 것이고 내게 있는 우리에게 있는 모든 타락한 인간의 온갖 죄와 불의와 불목과 지저분한 모든 것들은 전부 남편되신 주님의 것이 되고 그래서 남편되신 주님이 우리와 부부가 되었기 때문에 하나가 되야 되니까 우리 모든 것이 당신의 것이 되야 되니까 우리의 모든 불의와 불목과 부족의 모든 죄를 허물을 당신이 전부 다 가져서 감당을 하시므로 대속의 공로를 베푸셨고 그리고 하나님의 가진 모든 전부는 다 우리에게 주시기로 그렇게 계약이 지금 다 되어서 있는 이것이 부부의 관계라 하는 겁니다.
그런데 앞에 말씀드린대로 사람은 참 이해 못할 그런 사람들이 많이 있다 그리 말씀을 드렸는데 그렇지요. 우리가 많은 사람이 아니라도 우리 주변만 살펴봐도 왜 그런 마음을 가질까? 왜 저런 생각을 할까? 왜 그렇게 밖에 생각지 못하고 그렇게 판단하지 못할까? 왜 그렇게 사람을 상대하며 그리 말을 하며 그렇게 할까? 이런 것을 우리가 많이 봅니다. 또 부부관계에서도 그렇고 옆에서 본인꺼는 잘 몰라도 남의 것은 잘 보인다고 부부가 살아가는데 보면은 어떤 사람은 남편이 아내가 부부다가 말을 해도 살아가도 그냥 남편으로서 남편의 역할을 잘 감당을 하면서 아내니까 자기 몸이고 하나니까 아끼고 보살피고 사랑하고 위하고 어쨌든 만들어서 길러서 보양을 해서 그래서 좀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그리하면 참 좋겠는데 왜 남편이 그렇게 하지를 못할까? 아내도 그리하면 좋겠는데 왜 아내는 그리 하지를 못할까? 사람이 하나님께 받은 그 분량이 성격이나 성향이나 지능이나 판단력이나 모든게 다 같지 않으니까 그런 별별 사람들이 있는 것을 이해하지만은 어떤 경우는 보면은 참 안타깝다 싶은 그런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사람이 다 같지 않으니까 그러기 때문에 앞선 사람은 뒤선 사람을 잘 인도하는 게 필요하고 장성한 사람은 어린 사람을 이끌어서 길러주고 가르치고 기르는 것이 필요하고 하나님께서 이것도 다 필요해서 만들어두신 그런 모습들이라 그리 볼 수 있지요.
근데 그중에서 하나 도무지 이해하기 어려운 것 하나가 바로 이겁니다. 남편은 너무도 사람 인품도 좋고 실력도 있고 재물도 있고 또 아내를 사랑하는 사랑도 있고 모든 면에 나무랄 것이 없는 그런 참 멋지고 좋고 인품있는 그런 실력있는 그런 남편이고 아내는 그냥 보통 그런 아낸데 그래서 결혼 부부가 됐는데 그런데 그 아내는 말하자면은 비교를 꼭 설명 위해서 한다면 남편은 사람으로 백점은 없으니까 99점짜리나 되는 남편입니다. 경제나 지능의 실력이나 인품이나 지위나 또 아내 사랑하는 사랑이나 가정을 챙겨아끼는 것이나 모든 면이 흠잡을데 없을만큼 99점짜리 남편이 있고 아내는 보니까 인물이나 성격이나 학벌 모든 것 다 따져봐도 평균 한 60점이나 될랑가. 그런데 결혼을 했다 그말이죠. 결혼하니까 객관적으로 볼때는 저런 남자가 어떻게 저런 여자하고 결혼했을까 싶을만큼 그런 면이 있는대도 불구하고 이 남편은 아내하고 결혼해서 자기 아내니까 자기 몸이니까 하나니까 어쨌든 그 아내를 가르치고 아끼고 사랑하고 위해주고 길러서 행복하게 가정을 잘 이끌어나가려고 무진 마음으로 물심양면으로 진정한 사랑으로 애를 쓰는데 이 아내는 이상하게도 그만 한눈을 팔고 아무것도 아닌 운전기사나 참 자기보다도 오히려 못할 수 있는 그런 사람하고 바람을 피우고 놀아나는 그런 걸 볼때 제 3자가 보면 친정부모나 시갓집에서나 주변에서 볼때 그 여인을 보면 도무지 이해를 못하는 거지요. ‘이상하다 저 여자가 정상이면, 사고방식이 정상이고 인생관이 정생이고 바로 판단이 된다면 저런 좋은 남편 두고 저럴 수가 없는 건데 어떻게 저래 할 수가 있을까?’ 도무지 이해를 못하는 그런 경우가 보면 가끔 가다 보면 있습니다. 근데 인간 부부 관계는 사람이 다 완전하지 못하니까 이제 말씀드린 것은 예를 들어 설명하니까 그런 남편이고 이런 아내지만은 대개 보면은 안 그런 경우도 있지만은 부부 사이에 어떤 문제가 있으면 대개 보면은 쌍방이 문제지 한쪽만의 문제는 별로 없습니다 거의 보면은. 없지는 거의 없지는 않은데 뭔가 한쪽에 문제가 있으니까 또 다른쪽에 문제가 생겨지고. 사람이 다 내것은 옳고 남의 것은 틀리고 내것은 바르고 남의 것은 잘못되고 팔이 안으로 굽는다고 자기 중심이 되어있으니까 자기 잘못은 보이지 않고 이것이 부부관계도 그렇습니다. 그러니까 부부관계에서 목소리 높아지고 큰소리가 나고 부부싸움이 생겨져서 그런 문제가 생길때는 십중팔구 쌍방문제지 한쪽만 일방적으로 잘못한 경우는 거의 없다 할만큼 대개 다 그러합니다. 한쪽에서 보면은 이거는 백퍼센트 아내 잘못이다 싶은데 파고들어가보면 아내 잘못도 크지만은 그 아내가 그리되게된 그 배경에 남편의 또다른 문제가 있다 그말이고 남편이 그리 될 때 보면은 이거는 백퍼센트 남편의 잘못이다 싶은데 속에 들어가보면 또 남편을 그래 만든 아내 문제도 또 있다 그말입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사람을 두고 판단할 때 항상 우리는 양쪽을 다 생각하고 다 살펴보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그런데 가끔 가다 보면 도무지 이해 못할 그런 아내 주로 아내가 좀 약자에 속하고 그러니까 아내. 그런 아내가 그런 여인들이 가끔 가다보면 있을 수 있습니다. 이해 못할 그런 여인들. 말하자면 그럴때 그 여인을 향한 말하자면은 진실하고 실력있는 남편을 둔 부정한 여인을 바라보는 그 본남편의 심정이 어떠할까. 제 3자가 바라볼때도 참 남편으로써 억장이 무너지겠고 애가 타겠고 옛날 이건희 회장이 삼성그룹 혁신할 때 뭐 빼고 다 바꾸라 그랬다던가요? 자기 아내 빼고는 모조리 다 바꿔라 그랬다 그러지요. 인식과 사고방식 전부다 기업에 대한 모든 것 완전히 다 바꿔라 그랬다 그러지요. 유명한 말이지요. 그렇다면 전부다 바꿀 수 있는데 뭐는 바꾸면 안된다 말입니까? 아내는 이거는 바꾸지를 못하니까 그러니 아내가 아무리 못나고 부족하고 부정한 짓을 저질러도 진실한 남편이고 인격있는 거기다 신앙있는 남편같으면 그 아내를 끊어버리지 못하는 겁니다. 그러니까 끊어버리지 못하니까 마음에 애가 타고 답답하고 참 어찌할바를 모르는 거지요. 사람들이 보면은 정상적인 관점에서 보면은 왜 그럴까 도무지 이해를 못하는 겁니다. 그래서 안 믿는 사람들 쓰는 말로 어찌됐다 그럽니까? 귀신이 씌였다 그러지요 귀신이. 귀신이 씌였구만 그러지 않고서야 저리 될 수가 있나. 남편도 자식도 가정도 팽개치고 여자가 저렇게 놀아나고 돌아다닐수가 있나. 귀신이 씌지 않고는 그리 될 수가 없다는 그런 여인들이 간혹 있는데 그럴때 그 여인을 그 아내를 두고 바라보는 그 본남편에 억장이 무너지고 애가 타고 안타까운 그 심정이 바로 호세아서를 기록하신 하나님의 심정이다 그말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남편이고 우리는 하나님의 아내라. 그런데 하나님은 흠과 점이 없는 완전잡니다. 전지전능잡니다. 모든 걸 다 가지신 분입니다. 사람의 언어로 형언할 수 없는 그런 탁월한 남편이신 하나님인데 그 하나님이 아무것도 아닌 우리 인생을 당신의 사랑으로 당신의 아내로 삼아서 당신 전부를 다 쏟아부어서 사랑하셨고 사랑하시고 영원히 사랑하시겠다고 그러니 아무것도 없어도 상관이 없고 괜찮고 당신에게 다 있으니까 오로지 남편되신 하나님을 남편으로 인정을 하고 남편으로 대접을 하고 섬기는 그것 하나만 원하는 것이 남편되신 하나님의 마음이고 심정이고 요구인데. 지금 설명하는 것이 우리 성도에 대한 말하자면 부정한 여인 성도에 대한 하나님의 심정을 말씀드리고 있는데 하나님은 우리 남편인데 남편이신 하나님이 당신이 전부 다 가졌습니다. 이게 실감적으로 깨닫기는 어려운데 논리적 이치적 지식적으로 일단 받아놓고 그다음에 돌아가셔서 자꾸 생각좀 해보십시다. 저도 설교하지만은 이 실상을 다 느끼는 것은 아직까지 너무도 아늑하니까. 그러면 모든 것을 다 가지신 하나님 그 하나님께서 아무것도 아닌 우리를 당신의 아내로 맞아서 아내로 맞았다는 이것이 부부라는 말이고 이 부부라는 말이 하나라는 말이죠 하나. 그러면 거기서 의문을 가져보십시다. 왜 하나님이 나를 아내로 삼아야 되는가. 무엇 때문에 하나님께서 우리를 당신의 아내로 삼아야 되는가. 우리에게 뭐가 있어서 아내로 삼아야 되는가. 하나님이 아내로 우리를 삼아야되는 그 이유가 무엇이며 목적이 뭐냐. 이런것도 좀 생각해보시고 그러면 어쨌든 우리는 하나님이 당신의 아내 삼아서 당신이 가진 전부다를 우리것이 되도록 하겠다 그리 하셨으니까 그런데 요구하시는 것은 딱 하납니다.
부부 사이에 가장 중요한 것은 부모와 자녀 사이에 부모로써 자녀에게 중요한 것은 부모의 사랑입니다. 책임이고. 자녀로써 부모에게 중요한 것은 효성입니다. 부모가 자녀에 대해서 사랑이 없고 책임감이 없으면 부모의 자격이 없는거고 부자지간이 부모와 자녀간의 사이가 제대로 되지 못합니다. 자녀가 부모님에게 대해서 효성이 없으면 그 자녀는 잘못된 자녀고 복을 받지 못합니다. 친구 관계는 뭐가 중요합니까? 친구관계 중요한 것은 의리라 그러지요 의리. 친구관계는 의리에 죽고 산다 그럽니다. 의리가 중요합니다. 여수거래에 고객과 물건 파는 업자관계는 뭐가 중요합니까? 여기는 신용이 중요합니다. 스승과 제자 사제지간에는 이것도 스승의 책임과 스승을 존경하는 제자의 마음가짐이 중요합니다. 이런게 다 중요한데 그러면 부부관계에는 의리가 중요한가 효성이 필요한가 책임감이 필요한가 아니면 존경심이 필요한가. 부부사이에 가장 중요한 것이 뭐라 그랬습니까? 여기는 가장 중요한 것이 정조라는 겁니다 정조. 정조 정절. 이거 빼놓고 이거 없으면 인물이 좋아도 성격이 좋아도 재주가 많아도 물질이 많아도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는 겁니다. 부부 사이에 생명은 정존데, 정절인데 정조라는 말은 이거는 육체를 가진 남녀관계는 육체적인 그런 정조도 필요하지만은 하나님과 우리 성도의 관계 여기에 정조라는 말은 정절이라는 말은 이거는 남편되신 하나님 한분만 아내인 우리가 전부 삼는 겁니다. 인간관계도 그렇습니다. 인간관계도 육체적이 아닐지라도 그 마음과 생각과 그 속에 깊은 속에 자기 남편만 남편으로서의 위치에 두고 전부 삼지를 아니하고 남편 아닌 남의 남자가 그 아내의 눈에 들어오고 마음에 들어와있으면 그 여인은 육체를 아닐지라도 이미 정조를 버린 겁니다. 그 여인은. 남자도 마찬가지죠. 남자도 자기 아내가 인물이 못났던지 또 애교가 없던지 성격이 괴팍하든지 사람이 모자라든지 어쨌든 결혼해서 아내로 삼았으면 그런데 결혼한 부부들이 그런 사람이 있습니다. 보면 밖에 객관에서 보면 그 남자나 그 여자나 둘이 어지간히 맞게 결혼했구만 싶은데 남자가 볼때 아내는 자기보다 한참 모자라고 아내가 볼때 남편은 자기보다 모자라다 싶으니까 남편은 아내를 무시하고 아내는 남편을 무시합니다. 그러면 그 부부는 지옥이 되는 겁니다. 아내가 남편보다 한참이 모자라서 누가 봐서 아내는 한 30점 남편은 한 70점 그래 보인다 할지라도 그 남편 눈에는 그 마음 속에는 30점 짜리 그 아내가 100점 짜리 아내로 보여야 되고 그래 마음 속에 담아놔야 남편의 인격이고 남편의 정조입니다 그게. 그게 남편의 신앙입니다. 반대로 아내는 그 남편이 아무리 돈도 못 벌고 재주도 없고 속을 썩이고 어떻게 해도 30점 짜리도 안되는 그런 남편일지라도 천하에 있는 어떤 남자보다 자기 남편만 자기에게 100점 짜리 전부가 돼서 들어앉아 있어야 그게 아내로서의 정상적인 아내고 그게 아내의 책임 의뭅니다. 인격입니다. 그게 바로 정조라는 겁니다. 그렇지 아니하고 다른 것이 그 속에 들어있으면 육체적으로 선을 나아가지 안해도 그거는 음행을 한 것이고 정조를 버린 것이다 그말입니다. 그러니까 부부라는 이 사이속에 가장 중요한 것은 남편에게는 아내만, 아내에게는 남편만 물론 그 관계는 부부라는 그 관계를 두고 말하는 겁니다. 이것이 아니면 정조를 버린 겁니다. 사람이 이런 면을 두고 본다면 이 세상에 사는 부부 중에서 모두 몇 번씩 어떤 사람들은 나쁜 사람들은 수십번씩 마음속으로 정조를 져버린 그런 사람이 얼마나 많을지 모르겠습니다. 이게 정상적인 부부고 정조며 이것이 부부 사이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겁니다. 인간관계가 그러한 것이고 이 세상 부부도 그러합니다. 이게 정상적인 성경적인 부부인데 세상은 다 변하니까 세상이 변하니까 이런 말 하면 퀘퀘묵은 호랑이 담배피던 시절적 이야기라 그렇게 말할지 모르겠지만은 그래도 이런거는 변해서는 안되는 겁니다. 모든 사람이 사람이기를 다 포기하고 사람 아닌 그런 행동을 하고 그런 짓거리를 해도 우리는 사람이니까 우리는 그런 걸 보고 틀린 거는 틀렸다 아닌 것은 아니라 하고 우리는 그런데 찬동할 수 없고 그런 것을 아니라고 비판할 수는 있는 겁니다. 아니라고 말을 해야 나와 관련된 사람들이 미혹을 받지 않을 것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이거는 인간 부부. 인간부부도 그럴뿐 아니고 모형적인 부부인 인간부부도 그러한데 하물며 부부의 원형되는 하나님과 인간관계는 더욱 더 한겁니다. 그래서 하나님도 우리가 전부여야 되고 우리도 하나님만이 전부여야 되는데 그런데 하나님은 우리가 아는대로 완전자니까 실수가 없는 분이니까 전지전능자니까 당신은 인격자니까 사람으로 말하자면. 하나님은 우리가 또 당신 스스로 우리를 택했으니까 아무리 우리가 못나도 상관없고 부족해도 상관없고 무식해도 괜찮고 바보라도 상관 없고 불구자라도 상관이 없고 모자라도 상관없고 상관이 없다는 겁니다. 우리를 당신의 아내로 삼았으니까. 그런데 남편되신 실력있는 그 하나님이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은 딱 하납니다. 아내로서의 정조만은 지켜라 그겁니다. 몰라도 상관없다 부족해도 상관없다 못나도 상관없다 아무것도 못해도 상관없으니까 아내로서의 남편을 향한 정조만은 지켜라 그걸 원하시는 것이 우리 성도에 대한 남편되신 주님의 심정이고 요굽니다.
말하자면은 그러면 하나님은 정조를 버린 일이 절대 없으니까 그럴 수도 없으니까 문제는 우리들인데 인간부부는 문제가 생기면 양쪽을 다 봐야 됩니다. 사람은 다 불완전하니까. 그러나 하나님과 인간 부부 신인 부부에는 하나님은 흠이 없으니까 인간쪽만 살펴봐야 되는데 우리 인간쪽에서 하나님께 대한 정조를 버리는 것이 문제고 하나님이 원하시는 본남편이신 하나님에 대한 아내된 우리가 정조를 지키는 것은 무엇인가. 하나님 한분만으로 전부를 삼는 겁니다. 하나님만 전부 삼는다 그게 무슨 말인가. 하나님 한분만 전부 삼아서 그래서 그 아내가 보면은 머리도 별로 좋지 못하고 고만고만하고 일도 보면은 별로고 또 속아지도 보면 별로 좋지 못하고 애교도 없고 야무지지도 아니하고 자녀 기르는 것도 별로 막 고만고만하고 그런데 그 아내가 남편에 대한 그 마음만큼은 천하에 어떤 남자도 눈에 들어오지 아니하고 오로지 자기 남자밖에 모릅니다. 자기 남편이 제일이고 최고고 남편이 전부라서 그 남편이 없으면 아무것도 못하는 그런 아내가 있습니다. 그래서 좀 떨어져있으면 그만 사모가 되고 보고싶고 목소리라도 들어보고 싶고 자꾸 생각이 나지고 그래서 모든 그의 희로애락이 남편으로 인해서 생겨지고 그의 모든 하는 것도 남편 때문에 하고 남편 위해서 하고 남편으로 인해서 하고 그리 되어지는 그 아내가 그 남편에게는 부부의 정조면에 있어서는 가장 좋은 아내가 되겠지요. 세상에서 활동을 해야되니까 여러 가지 필요한 것이 있겠지만은 기본적인 생명적인 부부의 관계에 있어서는 그 아내가 가장 좋은 아냅니다. 그런데 사람은 자기 중심이 있고 인간은 타락성이 있어서 남자들이 그런 아내가 있으면 남자들은 오히려 싫어합니다. 오히려 그만 좀 멀어지고 싶고 좀 떨어지고 싶은 그런 면이 있는데 그래서 멀어지고 떨어져서 돌아가보면 나중에는 다시 돌아오게 되있습니다. 인간은 타락성이 있으니까. 그래도 더 들어가보면 결국 그리 돌아오게 되는건데 하나님이 우리에게 원하시는 아내로서의 정절을 지키는 것이 바로 이런 면입니다. 세상에는 돈도 있고 돈의 힘이라는 것은 대단하지 않습니까. 돈도 있고 온갖 세상에 찬란하고 매력성 있는 문화들이 있고 좋은 사람도 있고 일들도 있고 또 목표를 두고 달려갈 그런 것들이 굉장히 많이 있는데 이 세상에 어떤 것이 좋은 것이 많이 있어도 아내들이 여반들이 남편없이 결혼해서 남편 둔 아내가 남편 없이 살겠습니까 그러면 못삽니다 하는 그런 대답할 여인들이 얼마나 되겠습니까? 모르기는 몰라도 제발 좀 떨어졌으면 좋겠습니다. 좀 오랫동안 따로 좀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아내들이 아마 마음이 많이 그럴 겁니다. 그것이 상황에 따라서 깊은 속은 아니지만은 그런게 있을수 있겠지만은 속속들이 그러면 문제가 되는 거지요. 남편들도 그럴 수 있고.
그런데 하나님이 원하시는게 그겁니다. 하나님이 아내된 우리들에게 원하시는 것은 세상에 온갖 좋은 것들이 많이 있지만은 그 어떤 것에도 우리의 마음을 둘 수가 없고 우리의 소망이나 기쁨을 둘 수가 없고 모든 것은 전부 하나님으로 인해서 하고 하나님 때문에 하고 하나님을 위해서 하는 하나님만으로만 살아가는 요런 성도가 되기를 주님이 우리를 원하시는 이것이 그래서 남편이 없으면 집안에 못 하나를 박아도 남편이 해주기를 바라고 해줘야 되고 무거운 물건 하나 들어도 남편 없으면 안되고 그런 거야 뭐 다른 사람 시켜도 되지만은 마음이 그런 것처럼. 믿는 성도가 먹는 것도 입는 것도 일을 하는 것도 공부하는 것도 세상 살아가는 모든 면에 있어서 하기는 하지만은 하나님이 해주지 않으면 아무것도 안된다는 요 마음 자세. 하나님이 주셔야 받을 수 있고 하나님이 주셔야 살 수 있고 하나님이 안해주시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하나님 아니면 아무것도 안되는 요런 인식과 사고방식과 요런 자세로 하나님을 상대해서 섬기기를 원하는 요것이 하나님이 우리에게 원하시는 아내된 성도의 마음자세 생활모습. 그래서 하나님이 아니면 안되니까 그것이 세상을 살아가는 모든 그의 생활과 활동과 언행심사와 모든 대외 사람들 관계 접촉에 원인되어지고 원동이 되어지는 하나님으로 인해서 살아가는 생활이 되는 요런 성도가 되기를 주님이 원하시는 것이 호세아서를 기록하신 하나님의 뜻이다 그말이지요.
그러니까 하나님이 주셨는데 다른 것이 줬다고 하니까 준 자체 본남편이 주셨는데 주신 본남편은 잊어버리고 다른 것을 따라가니까 그게 음행이 되는 것이고 부정한 그런 여인이 되는 겁니다. 그래서 오늘 오후에는 부정한 여인 본남편을 버리고 간부를 따라가는 이런 부정한 여인에 대한 진실한 실력있는 남편되신 하나님의 그 애타는 심정 이 심정을 우리가 좀 헤아려서 오늘 우리들에 대한 하나님의 심정이 이러하다 하는 것을 좀 생각해봤으면 합니다. 그래서 이것을 가지고 일단 지식적으로 요 논리적으로 알아가지고 기억을 해서 돌아가셔서 자꾸 좀 생각 좀 한번 해보십시다. 하나님은 우리의 남편이고 남편되신 하나님은 부족함이 없는 분인데 모든 면으로 우리는 아무것도 아닌데 이분이 우리를 당신의 아내로 삼으시고 전부 다 쏟아부어서 사랑하시겠다고 이런 부부로서 관계를 맺어주셨는데 왜 성도된 우리가 하나님을 버리고 배반하고 하나님이 진노하시는 간부라는 그런 세상 그런것을 따라 거기에 마음을 주고 정성을 주고 그것으로 인해서 살고 하나님 잊어버려도 없어도 그거 있으면 괜찮다는 이런 생활 우리가 하고 있는가. 몰라서 하고 있고 못 믿어서 하고 있고 여러 가지 원인 때문에 하고 있으니 우리들의 말하자면 부정한 여인된 우리의 모습을 돌아보면서 우리를 바라보는 하나님의 애타는 심정을 생각하면서 본남편 하나님에게로 돌아가는 그런 우리들이 되야되겠다 하는 것을 오후에 말씀을 드리는 겁니다. 좀 생각해보십시다. 다같이 통성으로 기도드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