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901-주후(호2:1-7)
지도자의 종교음행2013-09-02조회 438추천 35
날짜: 20130901 주후
본문: 호세아 2:1-7
호세아서를 기록한 사람 이름은 누굽니까? 호세아 선지. 호세아라는 이름이 성경이 됐습니다. 그런 성경은 많이 있지요. 대선지 소선지 선지서는 대개 다 그리 되어있습니다. 이걸 기록한 시기가 언제쯤이라 그랬습니까? 호세아서를 기록한 시기가 대략 언제쯤이었던가요? 주전 785-725년 사이. 지금부터 대략 한 2천8백여년 전쯤에 기록되었다 그렇게 알려져있습니다. 호세아 이 선지가 활동한 그 시기가 언제쯤이냐하면 이스라엘 왕 1절에 보면 호세아 1장 1절입니다. ‘웃시야와 요담과 아하스와 히스기야가 이어 유다 왕이 된 시대 곧 요아스의 아들 여로보암이 이스라엘 왕이 된 시대에’ 그러면 이스라엘 나라 왕 요아스라는 사람의 아들이 여로보암인데 요로보암이 이스라엘 남북으로 갈라진 북쪽 이스라엘의 첫 번째 왕이 여로보암입니다. 사울이 나라를 세우고 나라 세웠지만은 실패했고 다윗이 나라를 재건하고 튼튼하게 만들고 그 아들 솔로몬이 이스라엘 나라를 이어받고 근데 솔로몬의 범죄함으로 인해서 그 솔로몬의 아들 르호보암 시대에 그러면 몇 대 쨉니까? 이스라엘 왕족 몇 대 쨉니까? 사울 1대, 다윗 2대, 솔로몬 3대, 그다음 4대째 가서 나라가 남과 북으로 갈라져서 남쪽에는 어느어느 지팝니까? 남쪽 유다와 베냐민 두 지파가 있고 남쪽 유다와 베냐민 지파는 다윗 지파를 쫓고 나머지 북쪽 이스라엘 열 지파는 여로보암,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을 쫓아서 나라가 갈라졌는데 그때 이름이 여로보암인데 여기 나오는 여로보암은 그 뒤에 한참 뒤에 나오는 동명이인입니다.
그 이스라엘 여로보암 그 시대에 활동한 선지자가 호세아 선집니다. 호세아 선지 아버지 이름이 무엇이라고요? 아버지 이름이? 학생들에게 묻는 겁니다. 학생들 입을 벌려서 아버지 이름이 무엇입니까? 브에리 라는 사람이고 하나님께서 호세아에게 너는 결혼하되 어떤 여인에게 결혼하라고요? 음란한 여인이라 그말은 한 남자만 바라보고 사는 정절 부인, 좋은 깨끗한 그런 부인이 아니고 여러 남자를 사귀고 놀아나는 아주 잡스런 나쁜 여자가 음란한 여잡니다. 남자치고 그런 여자와 결혼하고 싶은 남자가 있겠습니까? 아무도 없는데 하나님께서 호세아선지에게 너는 음란한 여인을 찾아서 취해서 결혼해라 그래가지고 찾아서 한 그 여인 이름이 무엇이었습니까? 이름이 고멜이죠 고멜. 호세아 선지 아내 이름은 고멜입니다. 고멜이 제일 처음에 아들을 낳았는데 이름을 이스르엘이라 그랬고 그다음에 거기는 특별히 이름을 여기 안 붙여놨는데 딸을 낳고 이름을 말하기를 뭐라 그랬습니까? 로루하마라 그랬습니다. 로루하마. 뜻이 뭐라 그랬던가요? 긍휼히 여김을 받지 못하는 자라 밑에 각주에 나와있습니다. 로루하마라는 뜻은 긍휼히 여김을 받지 못하는 자라. 그리고 그 뒤에 아들을 낳았는데 이름을 뭐라고 붙였습니까? 로암미라 그랬지요. 무슨 뜻입니까? 내 백성이 아니라 그런 뜻입니다. 그리고 난 다음에 넘어와서 2장 1절에 보니까 너희 형제에게는 암미라 하고, 그러면 로암미에서 ‘로’자를 빼니까 암미가 되고 또 루하마니까 로루하마에서 ‘로’자를 빼니까 루하마가 됐지요. 그러면 이거는 뭐 글자의 뜻이 로자가 들어가면 반대다 그런 뜻으로 생각해볼 수 있겠습니다. 암미라는 뜻은 내 백성이라는 뜻이고 루하마라는 뜻은 긍휼히 여김을 받는 자라 그리 말씀을 했습니다. 요게 이방인들에게 복음이 전파되는 그런 것 하고 다 연관이 되어있는 말씀입니다.
그러면 이 말씀을 하나님께서 호세아 선지에게 음란한 여인을 찾아서 음란한 여인과 더불어 결혼해라, 그리고 자녀를 낳게 하셨고 그 자녀에게 이름을 붙여 놨습니다. 그리고 호세아 선지는 자기가 겪은 일들, 하나님이 자기에게 지시하신 것, 지시하신 그대로 자기가 한 것, 한 그 생활에서 자기에게 깨달아지고 느껴지는 것 이런 것을 하나에 말하자면은 좀 쉽게 표현하면 일기처럼 자기 생활을 그대로 기록한 겁니다. 느껴지는 느낌을. 그게 성경이 된 겁니다. 그런데 호세아가 자기 개인의 생활을 기록한 것이 성경인데 그러면 호세아 선지의 그 모든 생활 이거는 하나님에게 붙들린 영감의 생활이었다. 그러면 음란한 여인하고 결혼한 것도 하나님이 시켜서 한 믿음으로 순종한 생활이다 그리 볼 수 있는 겁니다. 그게 성경이 된 겁니다. 그래서 성경은 전부 유기적인 영감으로 기록되서 자의적인 영감으로 기록이 됐다 그렇게 우리가 배워 알고 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이 시대에 왜 호세아 선지에게 음란한, 선지자면 누굽니까? 하나님의 종입니다. 요즘으로 말하면 목사님들입니다. 이스라엘 지파가 그 제사장들이 결혼하면 제사장들은 살아가다가 상처를 하면 처녀하고 결혼하든지 아니면 깨끗한 사람하고 결혼해야 되지 이런 깨끗지 못한 이런 여인하고 결혼하면 안되는게 성경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호세아 선지에게는 일부러 음란한 여인을, 한남자만 바라보고 오로지 그 남자에 목을 매고 그 남자에만 매달려서 남자만 한남편만 바라보고 믿고 의지하고 맡기고 순종하는 그래서 그 남자 없으면 죽고 못사는 이게 아내의 정상적인 모습이고 이게 정절 부인의 본모습입니다. 그런데 이런 아내를 찾으라 아니하고 아주 한남자만 바라보지 아니하고 뭇남자를 이 남자 좋으면 그 남자 따라가고 저 남자 좋으면 또 따라가고 남편을 하루에 열 번도 더 바꾸는 아주 음란한 여인을 찾아서 결혼을 해라 그랬으니까 이 여인은 기생이든지 창기든지 음녀같은 이런 여잡니다 말하자면.
왜 하나님께서 이 시기에 이 호세아 선지에게 그런 여자를 찾아서 결혼하라 하셨는가? 그리고 그것을 기록하셨고 그에게 아들 낳고 딸 낳고 할때 고 맞는 이름을 거기 합당한 이름을 붙여 주셨는가? 이게 전부 하나님의 뜻인데 그 호세아 선지를 통해서 그 시대에 하나님과 하나님의 백성의 관계를 지금 가르쳐주고 있는 겁니다. 무엇을 가르치고 있다고요? 하나님과 하나님의 백성의 관계를 가르치고 있는 겁니다. 그 시대 육체의 이스라엘 시대, 이미 웃시야와 요담과 아하스와 히스기야에 이어 유다 왕이 된 시대 곧 요아스의 아들 여로보암이 이스라엘 왕이 된 시대. 이때는 남쪽 유다도 북쪽 이스라엘도 전부다 타락해서 엉망진창이 된 시댑니다. 남쪽 유다는 그래도 히스기야라든지 또 그 위에 드문드문 좀 좋은 그런 왕들이 나와서 나라를 그래도 좀 유지했다가 또 말아먹었다가 살렸다가 그런 때가 더러더러 있다가 마지막에 이제 망해버리는데 이스라엘은 북쪽 이스라엘은 감정을 따라서 나라 갈라가지고 나간 감정 주의를 따라나간 이스라엘은 논리적으로 이치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신앙양심을 따라 하지 아니하고 인간 즈그 감정, 북쪽 이스라엘 열지파가 왜 나갔지요? 왜 갈라져 다윗의 자손을 르호보암을 배반하고 왜 여로보암을 두목 삼아서 나갔습니까? 이유가 뭐였습니까? 솔로몬이 살아 생전에 큰 집을 몇 개 지었던가요? 솔로몬 살아생전에 큰 집을 두 채를 지었습니다. 우리 학생들은 집 짓는게 얼마나 힘든지 잘 모르는데 집을 하나 지으려 그러면 요즘 아무리 기술이 좋아도 굉장히 어렵습니다. 더욱이 성전 짓는 건 더 어렵고. 솔로몬이 지은 큰 집 하나는 하나님의 성전을 지었고 또 하나는 솔로몬의 궁전을 지었는데 이 두 개 짓는 기간이 얼마 걸렸던가요? 성전 짓는데 7년 걸렸습니까? 그다음 궁전 짓는데 13년 걸리고 합해서 20년 동안에 궁전 지었는데 이때는 보나마나 요즘같은 포크레인이 있었겠습니까? 아니면 크레인이 있었겠습니까? 이때는 지금보다 아무리 과학이 발전해도 지금보다는 못했을 것이고 그러면 이때에 집을 지을때는 전부 장비도 어느 정도 있겠지만은 전부다 사람의 인력으로 수많은 수십만명 수백만명을 동원해서 그래 집을 짓는 겁니다. 그러니까 20년동안에 부역을 중노동을 했으니까 그 나라 백성들이 죽어나는 거지요. 그래서 이제는 궁전 다 짓고 솔로몬이 물러나고 죽고 르호보암이 왕이 되니까 그 백성들이 르호보암에게 찾아왔습니다. 찾아와서 ‘당신의 부친이 이 큰 집 두 개 짓는다고 20년 세월을 우리의 등골이 빠지도록 부역을 시켰으니까 이제는 다 안정이 되었으니까 당신은 우리를 좀 편안하게 좀 해주십시오 그러면 우리가 당신을 잘 모셔 섬기겠습니다’ 하니까 그게 합당한 요굽니다 백성들이. 그러니까 르호보암이 자기 밑에 있는 어떤 신하들에게 먼저 물었던가요? 나이 많고 경륜이 많은 경험 많은 그런 어른들 어른된 신하들에게 물었습니다. ‘이 백성들에게 어떻게 대답해야 되겠는가?’ 물으니까 ‘왕이 이 백성들의 신하가 되어서 머슴처럼 되어서 이 백성들을 위로하고 그 동안에 고생했으니까 잘 어루만져 품으면 이들이 왕의 백성이 돼서 잘 섬길겁니다 그리 하십시오’ 그러니까 이 젊은 르보호암이 늙은이들이 뭘 알까 나이 많아서 늙은이들이니까, 좀 험한 말로 퇴물들이니까 아주 나쁜 말입니다. 뭘 알겠는가 그래서 머리 잘 돌아가고 힘이 넘치고 정력이 넘치는 제 또래에 젊은 아이들 그 사람들을 불러가지고 ‘너희들은 뭐라고 대답을 해야 되겠느냐?’ 그러니까 젊은 사람들 대답이 ‘까짓것 임금님이 왜 임금님입니까? 왕이 그냥 왕입니까? 휘두르십시오 권세를’ 그래 말은 잘했지요. ‘내 새끼 손가락이 (뭐보다 굵어요?) 우리 아버지 허리보다 굵으니까’ 그만큼 자신있고 배짱있고 그래하다 그말이지요. 하룻강아지가 범 무서운줄 모른겁니다. 그래서 ‘우리 아버지는 너희들을 채찍가지고 다스렸지만은 나는 (뭘로 다스려요?) 전갈로 다스릴 것이다’ 하고 아주 막 호통을 쳐서 쫓아보냈습니다. 큰소리 쳤지요. 큰소리 칠때는 좋았지요. 그러니까 노련한 백성들이 ‘너 잘났다. 그러면 실컷 한번 다스려보지’ 하고는 몽땅 다 떠나버렸습니다. 그러면 백성들이 르호보암에게 청하는 그 청은 바로 청한겁니다. 그리 할 수 있는 겁니다. 바른 요구를 했습니다. 그런데 르호보암이 그 요구에 대해서 처리한거는 분명히 틀렸습니다. 그러니까 백성들의 요구는 옳았고 맞았고 르호보암의 처리는 틀렸으니까 그러니까 르호보암이 잘못된거는 맞는데 그런데 그렇다고 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렇다면 우리는 딴 살림 차리겠다 그래가지고 하나님의 나라를 갈라 두쪽을 내서 쪼갱이를 내서 따로 살림 차려 나가버렸다 말이지요. 그러니까 왕이 마음에 안드니까 왕이 섬기는 하나님도 마음에 안들고 예루살렘도 마음에 안들고. 며느리가 미우면 며느리 뒷꼭지가 달걀처럼 생겼다고 흉본다더니 사람이 하나 보기 싫으면 그와 관련된 것 다 보기 싫은 것처럼. 그런데 그게 전부 인간의 감정입니다, 감정. 감정은 이성보다 밑에 가야 되고 이성에게 다스림을 받아야되고 그래야 바로 되는건데 감정이 이성 위에 올라가서 이성보다 앞서면 마지막에 살인도 생길수가 있는 겁니다. 그래서 감정이 나서서 화가 나가지고 말하자면 성이 나서 가버렸습니다. 우리 요구 안들어주니까 성이 나서 그냥 왕을 배반하고 왕을 새로 세워가지고 나가버렸다 그말이지요. 그 나간 그 결과가 전부 비참하게 되가지고 여로보암이 나가자마자 나라를 아주 크게 열 지파나 떼나왔으니까 큰 나라가 됐는데 다시 나라가 솔로몬집에 돌아갈까 싶어서 그 사마리아에다가 예루살렘에 있는 단 비슷한 걸 만들고 날짜 좀 비슷하게 세우고 선지자도 비슷하게 세워가지고 가짜배기 제단 가짜배기 선지자 가짜배기 날짜를 만들어서 ‘예루살렘까지 갈 것 없다 여기서 섬기면 된다’ 그래가지고 제 왕 자리 권력 유지하려다가 열 지파를 시작부터 말아먹기 시작한 겁니다. 그게 감정대로 모든 일을 처리한 결과다 그말이지요. 그래서 이스라엘은 전부다 비참하게 내려가다 비참하게 망했습니다.
그 남쪽 유다는 그래 덜했는데 그래도 가서 계속 세월속에 가다가 타락해서 그리되어졌는데 이 시대 호세아 선지가 활동한 이 시대에는 그게 거의 절정에 달하다시피 그래가지고 나라가 엉망이 됐는데 그 엉망이 된 그 모습이 가장 중심의 모습이 뭐냐 하면은 하나님의 백성이 하나님을 배반하고 이방신을 섬기는 겁니다. 전부 그겁니다. 이방신 이름이 주로 뭡니까? 성경에 나오는 열왕기상하 역대상하에 나오는 이스라엘이 하나님 배반하고 섬긴 이방신 이름이 가장 많이 나오는 게 뭡니까? 바알신, 또 하나는요? 아세라 목상. 이런것들 주로 거의 많이 섬겼습니다. 그래가지고 이들이 하나님을 배반하고 이방 나라 신들, 바알신과 아세라 목상 섬기는 그쪽으로 다 거기다 제단 쌓고 거기 경배하고 그것에게 다 가버렸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하나님은 본남편, 이스라엘은 본남편의 아내, 그런데 이 아내를 꼬아가지고 본남편 배반하고 나가서 딴 살림 차리고 나가버린 그 아내를 꼬아가지고 나간 아내가 미혹받아 나간 그 이방신들을 가리켜서 간부, 연애하는 자들이라 그리 말씀하셨는데 그래가지고 나갔습니다. 요 삼각관계입니다. 그래서 야고보서에 말씀하신 것, 호세아에서 말씀하신 것은 하나님과 성도와 이방신 세상의 삼각관계를 두고 말씀을 하고 여기 본문에는 거기서 하나 더 나오는 어떤 인물이 있습니까? 삼각관계에서 호세아 2장에는 또 하나, 네 인물 중에 하나가 뭐가 있습니까? 자녀가 하나 더 있지요 자녀. 요래가지고 된 요겁니다. 삼각관계에 거기 또 생겨진 자녀. 근데 이것이 그때 기록이 그때는 육체 이스라엘에게 요런 삼각관계로 하나님을 배반하고 이방신을 섬겨 나간 하나님의 백성들에 대한 진노에 참담한 그 심정을 호세아 선지를 통해서 기록을 하신 것이 요 성경인데 요것이 오늘 우리에게 와서는 바로 하나님과 우리 성도와 이방신이면 오늘날 무엇입니까? 이방신이면 바알 아세라 목상이 오늘날 무엇입니까? 연애하는 자들인데 그게 무엇입니까? 석가모니 불굡니까 유굡니까 무엇입니까? 그게 바로 세상이다 그말이죠 세상. 이방신들이 바로 세상. 그래서 하나님과 하나님의 백성 신부된 성도와 그 성도가 한눈 팔고 너무너무 잘 생겨서 미혹받아서 따라나간 이 세상 간부 연애하는 자들 요래 된 요 모습을 호세아서에 삼각관계로 기록하시고 여기는 자녀까지 낳은 것을 말씀을 하신 겁니다. 그러면 요런 삼각관계를 염두해 두고 하나님께서 하나님 한분만 믿고 의지하고 바라보고 순종해야 될 하나님의 신부된 성도들, 이 성도들이 하나님을 배반하고 알고보면 전에 한번 말씀드렸는가 설교록에 나온 이야긴데, 어떤 부부가 있는데 그 남편이 사회적으로 지위도 있고 또 제법 잘 살고 아주 인격도 있는 좋은 사람이랍니다. 공부도 많이 하고. 그런 남편을 둔 아낸데 이 아내가 어찌어찌하다 보니까 어느 그 사람 직업이 운전기사 라든가, 무슨 운전기사하고 눈이 맞았는데- 운전기사라고 나쁜 사람이라는 법 없고 또 운전기사라고 다 못하라는 법은 없지만은 그런데 옆에서 보면 아무리 따져봐도 자기 남편은 백점 짜리면 운전기사는 오십점 짜리도 안되는데 그렇게 다 봐도 인격이나 실력이나 인물이나 모든게 다 봐도 그래밖에 안보이는데 이 여자가 어찌된 판인지 그 운전기사에게 눈이 맞아가꼬 그만 엉뚱한 짓하고 돌아다녔다 그말이죠. 그런데 이 남편이 그것을 알고는 표를 내지 아니하고 어쨌든 가정을 지키고 아내를 돌아오게 하려고 타이르고 타이르고 다스리고 아무리 타이르고 타이르고 말해도 도무지 안되더랍니다. 그래가지고 마지막에는 이 여자가 그만 자청해서 알아서 그만 이혼하고 나와버렸다고. 그래가지고 나갔는데 그리고 난 다음에 이 본남편은 그 아내를 아무리 붙들려고 딴 남자하고 놀아난 줄 알았습니다. 성경에 이혼할 수 있는 딱 하나가 뭡니까? 성경에 이혼할 수 있는 딱 하나는 음행한 연고라면 이혼할 수 있다. 그런데 그거는 율법적인 방법입니다. 주님 대속적인 방법은 아내가 음행을 해도 그 아내를 할 수 있으면 버리지 않는 걸 원하시는게 주님의 대속의 사랑입니다. 음행했으니까 이혼하면 법적으로 심판을 못하겠고 죄라 못하겠지만은 그러나 음행을 했다할지라도 그 남편이 믿는 사람이면 그 아내를 어쨌든 다스려 데리고 살기를 그래서 사람을 만드시기를 원하는게 하나님의 뜻입니다. 사랑이고. 이 사람이 믿는 사람인가는 모르겠는데 그리 하려고 무진 애를 썼는데 이 여편네가 기어코 기어나가버렸답니다. 그 좋은 남자 말 안듣고. 나가서 할 수 없이 갈라졌는데 그 뒤에 본남편은 누구 소개로 참 좋은 여인을 만나가지고 그 뒤에는 참 행복에 넘치도록 그렇게 잘 살고 있고 이 본남편 버리고 나간 그 기사 따라 나간 그 여자는 나중에 가서 비참하게 쫄딱 망해서 비참하게 그래 됐다는 그런 실화를 백목사님 설교록에 보면 나오는 이야깁니다. 그런 일 있다고.
보면은 사람이 제 눈에 안경이라고 그리 될 수 있는 거지요. 그런데 우리가 알고보면 하나님보다 더 좋은게 세상에 없지 않습니까? 하나님보다, 주 예수보다 더 복음 성가에 나오지요? 주 예수보다 더 귀한 것은 없네. 주님보다 더 귀하고 더 실력도 있고 더 사랑도 있고 또 모든 면에 다 어느 면을 따져도 주님보다 더 좋은 그런 신랑이 이 세상에 없는데도 불구하고 우리 성도들은 남말 할 것 없이 저 자신부터 주님 배반하고 세상에 온갖 것을 취해서 나가는 그런 일들이 허다하다 그말이죠. 근데 이걸 모르면 그냥 좋아서 나가는데 알고나면 심히 가책을 받는 그런 생활을 많이 하는 거지요. 그러니까 음행이란 거 음란이란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는 것이고 계명을 어기는 겁니다. 그게 하나님을 배반하는 것이고. 그러면 믿는 사람이 왜 하나님의 말씀을 뜻을 져버리고 계명을 어겨서 죄를 짓느냐. 그게 전부 어떤 형태로든 어떤 과정이든 이 세상이 좋아서, 세상이 무엇인가? 세상이 뭡니까? 무엇무엇 빼고 다 세상인가요? 세상이란 것은 자기 중생된 영하고 성화된 심신의 기능 빼고는 전부 세상이니까 자기 눈이 좋게 하든지 고깃덩어리 좋게 하든지 돈이 탐이 나든지 어떤 사람이 탐이나든지 어쨌든 이 세상의 온갖 것이 좋아서 거기 미혹을 받아가지고 고만 하나님의 말씀을 져버리고 하나님의 진노의 그 심정을 알면서도 기나가고 끌리면 그리 가는 겁니다. 몰라서도 나가고 별에별 그런 형태로 하나님을 배반하고 음행하는 그런 죄들을 많이 짓고 있는데 사람이 약해서 한 거는 좀 덜하지만은 육체의 이스라엘은 아주 드러내놓고 하나님 버리고 이방신들 섬겼는데 거기에 왕이 앞장서고 머리되는 지도자 되는, 그 지도자의 이름이 본문에 뭐라 그랬습니까? 그 지도자를 본문에 뭐라고 표현했습니까? 어미 되는 사람들. 어미라는 말은 자식들을 낳아서 기르는 사람을 어미라 그러지 않습니까? 어미되는 그 사람들이 앞장서서 하나님을 배반하고 이 세상으로 기어나가서 음행을 수도없이 많이 하고 있었더라. 그래서 하나님께서 참담한 그 분노의 심정을 호세아 선지를 통해서 요렇게 비유적으로 예언적으로 말씀을 하신 겁니다.
근데 이것이 요 성경을 지금부터 25년전 아니지요 84년도니까 30년전입니까? 30년전에 근데 오늘날에도 이 말씀을 가지고 딱 오늘날 교계에 갖다대보면 30년전보다도 더 많은 더 정확하게 이 말씀이 고대로 딱 드러맞아서 오늘날 한국의 모든 교계 신앙의 지도자들 교회들 교단들 신학교들 교수들 신학교 교수들 목사들 교회 안에 장로 집사들 오래 믿고 잘 믿는다는 그런 사람들, 어미 위치에 있는 그런 사람들이 하는 짓 보면은 전부 하나님만 믿고 의지하고 바라보고 순종하는 정절 부인의 본모습은 흰쌀에 늬와 같이 심히 드물고 전부 세상의 어떤 사람들은 어떤 어미들은 정치에 들어붙어서 정치노름하고 있고 돈이 좋아서 돈노름 하고 있고 사업노름하고 있고 온갖 노름들을 전부 다 하고 있는 그런 상황이 오늘 교계에 모습입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목사고 성경들고 설교하고 교회를 끌고 하고 있는데 그 속에 들어가서 깊이 들어가보면은 참 하나님을 알고 믿고 두려워하는 그런 교회들이 심히 드문때가 오늘이다. 바로 그들이 하나님 본남편을 배반하고 간부 따라간 음행하는 그런 사람들로 꽉찬 시대가 바로 오늘 이 시대다 그리 볼 수 있습니다. 이걸 좀 우리가 비록 모든 면에 부족할지라도 보는 눈을 가져야 됩니다.
예수님 당시에, 이거 스스로 위안제 마시는 것이면 큰일나는데 예수님 당시에 오신 예수님은 구주 메시얍니다. 사천년동안 이스라엘 백성들이 자자손손 고대하고 고대하던 그 구주 메시야가 왔지만은 그 구주 메시야를 알아 모시고 믿고 영접했던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인가? 예수님의 육신의 부모였던 요셉과 마리아. 요셉의 직업이 뭡니까? 요셉의 직업이 변호삽니까 판삽니까 서기관입니까 제사장입니까 뭐였습니까? 목수. 요즘은 그래도 목수하면 기능자니까 제법 일당도 쎄고 대접을 받겠지요. 그런 사람들 아주 천민들입니다 옛날로 말하면. 아주 밑에 사람들 목수. 또 예수님 영접한 사람들은 세례 요한인데 세례 요한은 선지자였지만은 워낙 권위가 있으니 그렇지만은 그는 약대 털옷을 입고 허리에 가죽띠를 띠고 메뚜기와 석청 먹는 들판에 사는 그런 사람, 아주 외골수 같은 그런 사람. 그리고 들판에서 양 먹이는 목동들. 그리고 안나 같은 사람. 80년을 그냥 혼자 산 그 세월을 혼자 산 그 사람. 또 시므온 같은 사람. 아주 이 세상 사람들이 아무도 알아주지도 못하는 파묻혀서 어느 구석에서 나서 어떻게 자랐는지 듣도 보도 못한 그런 아주 못나고 못나고 못난 그런 선민들 그런 사람들이 예수님을 구주로 모시고 알아서 영접했지 그 시대 잘난 대제사장 서기관 바리새인들 잘 믿는 사람들은 전부 예수님을 보고 다 배척을 하고 못 박아 죽이는데 앞장섰지 몰랐습니다. 그때나 지금이나 역사가 꼭 같습니다. 지금도 보면은 참 하나님을 믿는 그런 사람들이 역사에 우리 나라에 교계에 정치권에 이름 들어간 목사는 99.9퍼센트 저거 가짜 목사구나, 돌 목사구나 그래 보면 거의 맞습니다. 사업처에 이름 올라가 있는 그런 목사들은 거의 대부분 가짜 목사구나. 신문지상에 이름 자주 오르내리는 무슨 대회 장 장 무슨 장 총무 부회장 대회장 거기 이름 오르내리는 사람들은 전부다 대개 보면은 백퍼센트라 말은 안하겠는데 거의 대개는 눈 목자, 죽을 사 자, 가짜 목사구나 그래 보면 별로 틀리지 않을 겁니다. 방송에 많이 나오는 그런 목사들. 대개 별로 틀리지 않을 겁니다. 세월이 지나가면 다 압니다. 역사가 증거를 하는 거지요. 우리 시대만 봐도 다 나옵니다.
그러니까 지금이 바로 그런 시대 바로 지금같은 이런 시대. 이런 시대가 그 시대에 되어 있었기 때문에 그때는 육체적으로 지금은 신앙적으로. 그래서 여기 본문에 나오는 이 호세아 2장에 말씀 제목을 ‘지도자의 종교음행’이라 그랬습니다. 같이 한번 해보실까요? 종교 음행. 종교적으로 신앙사상적으로 신앙양심적으로 신앙사상적으로 하나님 배반하고 이 세상을 취하고 따라간 그런 것을 말하는 겁니다. 그중에 지도자들, 어미들. 그래서 말씀하시기를 너희 어미와 쟁론하고 쟁론하라. 어미라는 말은 자녀를 짐승으로 말하면 새끼를 낳아서 기르는 그게 어밉니다. 자식을 낳았고 그 낳은 자식을 먹여서 길러가는 그 사람이 어밉니다 어미. 신앙으로 말하면 전도해서 교회로 데리고와서 말씀을 전하고 가르쳐서 신앙으로 길러 나가겠다는 그 위치에 있는 그래서 이름하여 참 좋게 지도자, 말이 지도자지 지도자 되는게 쉽습니까? 신앙 지도자 그런데 위치가 그런 위치면 부득이하게 이름을 그리 붙여서 신앙 지도자 혹은 신앙 선배 바로 말하면 교회 교역자들 전도사 목사 장로 집사들 구역장들 반사 선생님들 또 이런 분들, 가정으로 말하면 부모님도 그리 될 수 있습니다. 이런 사람이 여기 말씀하신 어밉니다 어미. 그런 사람은 하나든지 둘이든지 어쨌든 자기 밑에 자기를 보고 따르는 자기 말 듣고 행동 보고 생활을 보고 먹고 따라오는 그런 자녀나 후배들이 있다 그말이지요. 아버지가 교회 집사님이고 어머니가 집사님이고 그러면 그 자녀들은 보나 안보나 자기 아버지 어머니 행동보고 말보고 그 생활 방식보고 사상보고 자녀들은 따라가니까 그 가정에 그 부모님은 신앙의 어밉니다 지도잡니다. 보자, 우리 아버지가 밥 먹을 때 기도하든가? 말안하지요. 안물어보지요. 딱 보니까 기도 안하면 자녀들도 기도 안하겠지요 뭐. 어머니가 그러면 도 그러겠지요. 우리 아버지가 예배 시간에 졸든가? 안봐도 보입니다. 또 우리 부모님이 새벽기도를 나가든가? 안봐도 알지요. 그대로 따라가는 겁니다. 십중팔구 거의 그대로 따라가는 겁니다. 그러기 때문에 핑계하지 못할 것이라.
백목사님께서 어떤 목사님인데, 어떤 목사님이 백목사님을 두고 알게 모르게 많이 헐었습니다. 목사 되기 전인가 모르겠습니다. 집에 돌아가서 오늘 설교는 이렇고 저렇고 그냥 자녀들 있는데 말이야 뭐 욕을 하겠습니까? 그 설교에 대해서 빈정거리듯 한두마디 던지겠지요? 그런것이 백목사님 귀에 들어갔습니다. ‘너가 너거 자식을 사람 만들려면 백목사를 너거 집에서 우상을 만들어야 될꺼다 안그러면 너희 눈에 피눈물이 날꺼다 아마 몇십년 지나면 알게 될거다’ 그리고 나서 몇십년 지나고 나서 그 집에 아주 난리가 났다 그러지요. 피눈물이 났답니다. 그런 예언이 딱딱 맞아 떨어지니까 모두 백목사님 말씀에 겁이 나서 절절 매는 겁니다.
그러니까 아버지 어머니 머릿속에 하나님에 대해서 하나님의 교회에 대해서 교역자에 대해서 이상한 것이 들어있으면 자녀들은 고대로 따라가는 겁니다. 그 젖을 먹고 자라는 겁니다. 그래서 그 자녀들을 내가 긍휼히 여기지 아니하리니 그 자식들도 어떤 자식이라고요? 음란한 자식들이다. 그래서 말씀하시기를 그 얼굴에서 음란을 제하고 그 유방에서 음행을 제하라. 유방이라 말은 젖통이란 뜻이고 그 젖통은 새끼를 기르는 젖입니다. 젖통. 그러니까 그 젖을 먹고 아이가 자라는 것처럼 그 부모님의 교훈을 먹고 신앙 선배의 교훈을 먹고 교역자 목사 설교 듣고 전부 교인들 학생들의 신앙이 자라게 되는 것인데 모든 면이 부족하고 못났을지라도 그래도 중심과 사상만큼은 어쨌든 하늘나라로 천국으로 주님으로 바로 잡아가지고 그래하면 못해도 부족해도 그래도 거기서 사람이 믿음의 사람이 나오는데 이거는 벌써 목사가 신앙 선배가 지도자가 부모가 인식자체가 벌써 머릿속에 세상만 가득찼고 인간만 가득찼고 천국은 없고 하나님은 없고 그래가지고 살고 있으면 그러면 그리되어 있으면 얼굴에서 음란을 그말은 얼굴이란 것은 ‘상’자가 ‘얼굴 상’잡니다. 얼굴은 그의 살아온 생애가 얼굴에 그래도 그려지는 겁니다. 나타나는 겁니다. 그러니까 항상 돈만 보고 산 사람은 얼굴에 돈의 모습이 나옵니다. 얼굴에 돈이라고 써있지 않아도 그의 하는 모든 것이 외부로 나타나는게 전부 돈을 향해서 그의 모든 비판 평가 사리 판단 일처리가 돈을 향해서 가는 것입니다. 그게 얼굴에 음란이 가득찬겁니다. 명예주의자들은 명예주의라 안써있어도 명예주의로 산 사람들의 그 사람은 가치관이 자기 이름 명예 예의 체면이니까 그의 모든 생각 비판 평가 사고 방식은 전부 명예요 자기 위신 체면으로 그리 가게 되어있는 겁니다. 그게 외부로 다 나타난다 그말이지요. 그것이 얼굴에 음란이 가득차있는 겁니다. 그것을 제해버려라. 신앙 지도자들이 이런 저런 면으로 세상에 가득차있으니까 그걸 제해버리고 또 젖통에서 음행을 제해라. 그 교훈에서 설교에서 가르침에서 머릿속에 들어있는 것이 그것밖에 안 들어있으니까 나올 것이 그것밖에 더 있겠습니까?
그러니까 백목사님께서 1970년대 중반까지는 밑에 따르는 교역자들 교인들에게 외부 서적을 아주 금서로 정할만큼 그렇게 어떤 주석이든 일반 신학 서적을 보지 말아라고 아주 엄격하게 금하다시피 그랬습니다. 아주 아는 사람 몇 사람 빼놓고는. 일반 신학 서적 신앙 서적 그것을 보면 볼수록 여러분들 속에 쓴물이 들어가서 여러분들이 그만큼 빼내기가 어려울 것이다. 그걸 가따 얼마나 많이 말씀했는지 모릅니다. 사람이라는 것은 듣고 나면 박히는 것이고 보고나면 박히는 것이고 읽고나면 들어가는 것인데 그것이 좋은 것이면 신앙에 유익된 것이면 다행인데 이 세상에는 그만큼 참 안심놓고 읽을, 차라리 신앙 위인들의 위인전을 읽어라 그랬습니다. 그런데 주석들, 성경 해석집들, 그거 보면은 전부 엉뚱한데로 다 인도하는 거니까 그거 읽으면 그만큼 손해가 될 것이다. 그런 것이 머릿속에 들어있으면, 그래서 세상의 공부를 많이 한 사람은 아무리 안하려고 애를 써도 그 배운 그 지식이 자기 신앙 생활에 그것을 하나도 안쓰기가 대단히 어렵습니다. 하나도 머릿속에 없는 사람이 아무것도 안쓰는 것 하고 있는데 안쓰는 것 하고는 참 어렵습니다. 있는데도 안쓰면 더 귀한 것인데 너무 너무 어렵고 거의 대개는 다 쓰게 되어있고 그러기 때문에 학교는 초등학교만 다니면 충분하다, 요즘은 시대가 달라 좀 학벌 자체가 다르니까 좀 다르지만은. 세상지식이 많으면 많을수록 그 세상지식을 쓴물이라 그러고 쓴물이라 그럽니다 쑨물. 먹으면 죽는다는 겁니다. 알면 아는만큼 그래 따라가게 되있으니까. 성경만 읽으면 된다. 성경읽고 성경으로 전부 삼으면 되는데 그래서 사무엘 같은 사람은 어릴때부터 성경만 봤습니다. 아무것도 안보고. 성경만 보니까 그 머릿속에 나오는 거는 전부 성경밖에 안 나옵니다. 머릿속에 들어있으면 안 나올수가 없는 겁니다. 힘이 있는데 안 쓰는게 어렵고 돈이 있는데 돈 자랑 안하기 어렵고 돈이 많은 사람들은 아무리 돈자랑 안한다 그래도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돈자랑이 나옵니다. 그게 얼굴에서 음행을 제하라는 겁니다. 자기도 모르게 거기 대한 말이 나오는데 그게 유방에서 음행을 제하라는 겁니다. 참 어렵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참 믿음으로만 바로 살면 성경만 보고 신앙생활에만 전념하고 자기 주어진 그 현실 거기만 매달리면 그만큼 복인데 너무 어려우니까 잘 못하지요. 저는 내 아내가 아니요 나는 제 남편이 아니라. 이렇게 음행하고 음란으로 가득차니까 하나님께서 그 백성에 지도자들을 버렸다는 거지요. 이제는 이혼해버렸다. 저는 내 아내가 아니고 나는 저 남편이 아니다. 하나님이 버리셨다 그말입니다. 그래서 그 음행을 얼굴에서 젖통에서 제하지 아니하면 내가 저를 벌거벗겨서 그 나던 날과 같게 할 것이다. 그러니까 말하자면은 벌거벗겨서 나던 날과 같에 했으니까 중생이 되기는 됐지만은 중생만 됐지 중생이니까 갓태어난거 아니겠습니까? 중생은 기본구원입니까 건설구원입니까? 중생은 기본구원인데 건설구원에 출발시점입니다. 말하자면은 갓태어난 나던 날입니다. 내 주의 도 첨 받은 날 참 기쁜 날이 아닌가. 그 찬송이 중생 찬송인데 일종에 한 면으로 보면 막태어난 중생된것. 그때는 건설 구원을 이루어 갈 수 있는 출발선상에 서서 갓 태어났으니까 이제는 자라가야 되는 것처럼 구원을 이루어가야되는데 벌거벗겨서 나던 날과 같게 했으니까 평생을 예수를 믿기는 믿었는데 하나님의 이름을 불렀고 성경 불렀고 교회를 다니기는 다녔는데 그의 소망이 가치관이 전부다 세상을 향하고 인간을 향하고 하나님과 천국은 없는 음행으로 음란으로 가득찼으니까 제가 그래 살았으니까 그 속에 천국이 없을 거 아니겠습니까? 구원이 없을 거 아니겠습니까?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표현은 벌거벗겨서 했지만은 벌겨벗긴 것이 하나님이 벌거벗기신게 아니고 제가 벌거벗은 겁니다. 제가 하나도 안 입었으니까. 나던 날과 같게. 그래서 이거는 구원은 완전히 실패, 건설구원은 완전 실패되는거. 그리 되게 할 것이고. 필연적으로 그리 될 수 밖에 업습니다. 나던 날과 같게 할 것이고 저로 광야같이 되게 하고. 광야는 어떤 곳입니까? 빈들판. 다시 말하면 아무것도 없는 곳이니까 빈들판 신앙으로 광야는 아무것도 없는 곳으로 가서 무의무탁에 주님 한분으로 전부 삼으면 되는데 이 광야는 그의 평생에 사는 생애가 광야가 되버렸습니다. 빈들판이 되버렸습니다.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러니까 빈들판이니까 그 사람이 건설한 건설이 하나도 없으니까 자기 인생살이 살아오면서 인생 생애에서 마련한 것이 하나도 없다 그말이지요. 그래서 마지막에 죽고 나니까 오전에 그 왕 이름 찾아보니까 여호사밧의 아들 여호람. 아버지는 참 신앙있는 신실한 좋은 왕인데 그 여호사밧의 치명적인 실수가 하나 있습니다. 뭡니까? 여호사밧이 참 하나님 앞에 그럴 수 없는 몇 안되는 유다 나라에 그런 하나님 기뻐하신 그 왕이었는데 이 왕의 치명적인 실수가 하나 있습니다. 뭐였습니까? 친구를 잘못 사겼는데 그 사귄 친구가 아합입니다. 아합. 아합을 사겨서 그래가지고 결국 많은 피해를 보게 되지요. 그래가지고 여호사밧의 아들이 여호람인데 그 여호람의 마누라가 아합의 딸입니다. 이세벨의 딸. 그러니 그 딸이 그 마누라가 됐으니까 그 남자가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래가지고 여호사밧 죽고 나서 왕이 됐는데 여호사밧이 건설해논거 모조리 전부 뒤집어 엎어서 초토화를 시켜버리고 저는 중병에 걸려서 창자가 빠져나와서 죽고 아끼는 자 없이 세상을 떠났습니다. 참 비참한. 사람이 한평생 와서 세상에 살았으면 신앙으로나 세상으로나 모든 주변에 사람이 우리가 뭐 세상을 우리가 역사에 이름을 남기겠습니까? 세계 이름을 떨치겠습니까? 그러나 내 주변에서 나와 관련된 내 주변에 사람들에게 나 한 사람이 만약에 세상을 떠난다면 참 아까운 사람이 갔다, 좀 더 살았으면 여러 가지 면으로 많은 일을 하고 유익을 끼칠 것인데 너무 너무 아깝다. 애통할 수 있는. 아끼는 사람이 많아야 되겠는데 이 인간은 죽으니까 잘 뒤졌다 하고 아끼는 자 없이 세상을 떠나서 열왕의 묘실에도 들어가지 아니하고 그렇게 비참하게 세상을 떠난 여호람이라는 인물이 있습니다. 이 사람이 말하자면은 광야 같이 그 인생을 광야같이 그렇게 되어진 겁니다. 그의 인생 건설 신앙 건설은 하나도 없는 영원을 둔 영원에 원인되고 흔적되어지는 이 세상 한토막, 세상 나그네 세상 살이를 영원의 흔적이 되고 원인 되는 그 세상 살이를 왔다가 갔는데 영원은 커녕 이 세상 조차도 아무 것도 없는 비참하고 비참한 부끄럽고 수치스러운 그런 것만 잔뜩 남겨놓고 그리 세상을 떠나는 이 사람이 바로 주님 배반하고 성도가 이 세상 향할 때 그 결과는 그리 되어질 것이다. 광야 같이 되게 하며 마른 땅 같이 되게 하여 목말라 죽게 할 것이며 마른 땅에 목마르는데 해결의 방법이 무엇입니까? 마른땅을 해결하는, 제주도가 바짝 말라서 가뭄이니까 특별재해 구역으로 선포해달라고 막 대모할 지경이 됐는데 그러자마자 며칠 안있어서 비가 확 와버리니까 그 말이 쑥 다 들어가버렸지요. 비 몇 일 오니까 그렇게 뭐 한 몇 달 까지는 모르겠지만 그래 가물었던 땅이 완전히 해갈이 다 되버리지 않습니까? 그 찬송가 107장. 후렴이 뭡니까? 가물어 메마른 땅에 단비를 부으시듯 성령의 단비를 부어- 그 목마른 메말라 죽게 하며 마른 땅같이 되게 하며 목말라 죽게 한다 그말은 생수가 없다 그말이죠. 단비가 없다는 뜻입니다. 그 단비 생수가 뭐냐? 생수가 뭡니까? 생명수는 말씀이고 그 속에는 성령의 감화감동이고 그러니까 그 하나님을 향하지 아니하고 천국 향하지 아니하고 세상만 향하니까 그 속에 세상과 세상에 있는 것 사랑치 말아라 그것을 사랑하면 하나님의 사랑이 그 속에 거하지 못한다. 하나님의 사랑이 뭡니까? 대속입니다. 주님 대속의 사랑 하나님의 역사가 그 속에 없으면 대속 없는 곳에 영감도 진리도 없지요. 이거 없는 그 사람의 말, 그의 생활, 그의 심령, 그의 설교 거기에 생수가 있을리 있겠습니까? 그러니까 아무리 설교해도 말해도 살아가도 그 속에 생명 역사가 하나도 없으니까 갈급해 죽겠고 목말라 죽겠고 요래 된다 그말입니다. 이게 성도가 평신도도 알고 보면 어미 위치에 있는데 그 성도가 주님을 배반하고 어떤 세상이든 세상을 향해 따라가서 음행을 하고 그 음행을 회개치 아니하면 결과가 요런 모습이 된다. 나던 날과 같이 하고 또 광야 같이 되게 하고 마른 땅 같이 되게 하여 목 말라 죽게 할 것이며 내가 그 자녀를 긍휼히 여기지 아니하리니 이는 저희가 음란한 자식들이니라 어미가 그런 사상과 그런 가치관을 가치고 신앙생활하면 선배가 지도자가 교역자가 구역장이 반사선생님이 부모가 앞선 사람이 그런 사상으로 신앙생활하면 그 밑에서 따르는 사람들도 전부 그와 같은 교인들이 될 수 밖에 없습니다. 어머니가 노란색깔 나는 음식을 먹고 아이에게 젖을 먹이면 그 젖 먹은 아기의 대변이 노란색으로 나온다 그러데요. 어머니가 파란색 나는 음식을 먹고 아이에게 젖을 먹이면 그 아이의 대변이 파란색이 나온답니다. 그 젖을 먹으면, 그 교훈을 들으면 그 사람이 될 수 밖에 없는 것이 교훈입니다. 그래서 삼가 바리새인들의 무엇을 주의하라고요 예수님께서? 삼가 바리새인들의 누룩을 주의해라. 쑥물이라 그럽니다 쑥물. 먹으면 쓴 것이고 먹으면 죽는 것. 그러기 때문에 옳지 않은 잘못된 그런 설교집 설교록 설교 이런 거 들으면 들을수록 그만큼 자기속에 엉뚱한 것이 들어가니까 빼내기가 참 대단히 어렵습니다. 그 자녀들도 음란한 자식들임이니라 저희의 어미는 행음하였고 저희를 배었던 자가 부끄러운 일을 행하였나니 그 뒤에 쭉 구체적으로 어떻게 음행했는지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 이 말씀에서 제목은 지도자의 종교음행인데 이 지도자를 목사만 장로만 구역장만 반사선생님만 아닙니다. 가정의 부모도 신앙 지도잡니다. 형도 신앙 지도잡니다. 친구 중에서 나보다 뒤선 친구 있으면, 우리 000가 교회 안에서 000를 보는 후배가 있겠지요? 친구도 있겠지요? 있지요? 그러면 000도 신앙 지도자 위치 선배의 위치에 서는 겁니다. 어미가 되는 겁니다. 그러면 그 학생 선배 되는 그 학생에 말, 행동 그러니까 여기 우리 000, 000, 000 이런 사람들 이 학생들의 행동 하나 생활 모습 하나가 밑에 따라가는 동생들이 어떻게 보고 따라가는 이걸 알면은 책임감 느껴서 조심을 안할 수가 없지요. 내가 어떻게 하면 동생들이 따라온다 이게 바로 내가 동생들에게 쑥물을 먹이는 것이고 동생들 후배들을 죽이는 것이 된다. 이걸 알고나면 이걸 깨달으면 생활이 바로 안될 수가 없는데 이걸 깨닫는데는 참 주변의 사람들의 많은 눈물과 기도 희생이 얼마나 들어가야 될지. 어쨌든 삼각관계에서 하나님께서 호세아 선지를 통해서 그 당시로 말하면 육체의 이스라엘 백성들의 음행을 하나님 배반하고 이방신 섬기는 것을 음행으로 말씀을 하신 겁니다. 음란한 여인으로. 그래서 그 이방신들을 연애하는 자들이라 간부로 그리 표현하셨고 이것이 오늘로 말하면 하나님 앞에 성도들, 하나님과 성도는 부부관곈데 하나님의 신부된 우리 성도가 하나님을 배반하고 하나님과 멀어지고 계명을 어기고 이 세상 무엇이든지 그것을 따라서 하나님이 금하신 그런 것을 하게 된다면 그게 바로 음행하는 것이고 간부를 따라 가는 것인데 이게 한번 두 번 실수로 그럴 수 있겠지만은 인식과 사고방식 사상까지 완전히 그래되서 안팎으로 그래 되버리면 결국 하나님께 버림을 받습니다. 저는 내 아내가 아니고 나는 제 남편이 아니다. 버리고 마는 겁니다. 우리는 어떤 입장에 있는지. 제가 아는대로 우리 교회는 아직까지 하나님 앞에 버림받을 만큼은 아니라 그래 봅니다. 위안제는 조심해야 되겠지만은. 그러나 이게 점점 심화가 되고 우리도 별수없이 사람이란 것이 별수 없이 넘어지는 겁니다. 다윗이 실수할 때도 순간이었고 솔로몬이 노년에 그리 된 것도 별수없이 그리 된겁니다. 그러기 때문에 선줄로 생각하면 넘어질까 조심을 해라. 그래서 항상 깨어살지 않으면 어느 순간 넘어질지 모르는 우리들입니다. 우리가 순간순간 토막토막으로 음행하는 그런 죄를 자꾸 짓다 보면 나중에 쌓여서 자기도 모르게 음란한 사람이 되고 말고 하나님께 버림을 받고 말기 때문에 어쨌든 힘을 써서 넘어지면 또 일어서고 또 일어서도 또 주님에게 들어붙고 또 깨고 쉬지 않고 노력하는 이것이 우리가 할 일이라 그리 말 할 수 있습니다. 다같이 통성으로 기도드리겠습니다. 돌아가셔서 호세아서 1장과 2장을 좀 많이 읽어보십시다. 삼각관계에서 본남편은 하나님, 아내는 성도, 연애하는 자들 간부는 세상과 세상에 있는 모든 것 그 자식들은 우리 믿음의 자손들 후배들 믿음과 연관된 육의 자손들 자녀들 이런 관계에 있으니까 여기서 나는 어떻게 하고 있는가 깊이 깊이 좀 많이 생각해보십시다.
본문: 호세아 2:1-7
호세아서를 기록한 사람 이름은 누굽니까? 호세아 선지. 호세아라는 이름이 성경이 됐습니다. 그런 성경은 많이 있지요. 대선지 소선지 선지서는 대개 다 그리 되어있습니다. 이걸 기록한 시기가 언제쯤이라 그랬습니까? 호세아서를 기록한 시기가 대략 언제쯤이었던가요? 주전 785-725년 사이. 지금부터 대략 한 2천8백여년 전쯤에 기록되었다 그렇게 알려져있습니다. 호세아 이 선지가 활동한 그 시기가 언제쯤이냐하면 이스라엘 왕 1절에 보면 호세아 1장 1절입니다. ‘웃시야와 요담과 아하스와 히스기야가 이어 유다 왕이 된 시대 곧 요아스의 아들 여로보암이 이스라엘 왕이 된 시대에’ 그러면 이스라엘 나라 왕 요아스라는 사람의 아들이 여로보암인데 요로보암이 이스라엘 남북으로 갈라진 북쪽 이스라엘의 첫 번째 왕이 여로보암입니다. 사울이 나라를 세우고 나라 세웠지만은 실패했고 다윗이 나라를 재건하고 튼튼하게 만들고 그 아들 솔로몬이 이스라엘 나라를 이어받고 근데 솔로몬의 범죄함으로 인해서 그 솔로몬의 아들 르호보암 시대에 그러면 몇 대 쨉니까? 이스라엘 왕족 몇 대 쨉니까? 사울 1대, 다윗 2대, 솔로몬 3대, 그다음 4대째 가서 나라가 남과 북으로 갈라져서 남쪽에는 어느어느 지팝니까? 남쪽 유다와 베냐민 두 지파가 있고 남쪽 유다와 베냐민 지파는 다윗 지파를 쫓고 나머지 북쪽 이스라엘 열 지파는 여로보암,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을 쫓아서 나라가 갈라졌는데 그때 이름이 여로보암인데 여기 나오는 여로보암은 그 뒤에 한참 뒤에 나오는 동명이인입니다.
그 이스라엘 여로보암 그 시대에 활동한 선지자가 호세아 선집니다. 호세아 선지 아버지 이름이 무엇이라고요? 아버지 이름이? 학생들에게 묻는 겁니다. 학생들 입을 벌려서 아버지 이름이 무엇입니까? 브에리 라는 사람이고 하나님께서 호세아에게 너는 결혼하되 어떤 여인에게 결혼하라고요? 음란한 여인이라 그말은 한 남자만 바라보고 사는 정절 부인, 좋은 깨끗한 그런 부인이 아니고 여러 남자를 사귀고 놀아나는 아주 잡스런 나쁜 여자가 음란한 여잡니다. 남자치고 그런 여자와 결혼하고 싶은 남자가 있겠습니까? 아무도 없는데 하나님께서 호세아선지에게 너는 음란한 여인을 찾아서 취해서 결혼해라 그래가지고 찾아서 한 그 여인 이름이 무엇이었습니까? 이름이 고멜이죠 고멜. 호세아 선지 아내 이름은 고멜입니다. 고멜이 제일 처음에 아들을 낳았는데 이름을 이스르엘이라 그랬고 그다음에 거기는 특별히 이름을 여기 안 붙여놨는데 딸을 낳고 이름을 말하기를 뭐라 그랬습니까? 로루하마라 그랬습니다. 로루하마. 뜻이 뭐라 그랬던가요? 긍휼히 여김을 받지 못하는 자라 밑에 각주에 나와있습니다. 로루하마라는 뜻은 긍휼히 여김을 받지 못하는 자라. 그리고 그 뒤에 아들을 낳았는데 이름을 뭐라고 붙였습니까? 로암미라 그랬지요. 무슨 뜻입니까? 내 백성이 아니라 그런 뜻입니다. 그리고 난 다음에 넘어와서 2장 1절에 보니까 너희 형제에게는 암미라 하고, 그러면 로암미에서 ‘로’자를 빼니까 암미가 되고 또 루하마니까 로루하마에서 ‘로’자를 빼니까 루하마가 됐지요. 그러면 이거는 뭐 글자의 뜻이 로자가 들어가면 반대다 그런 뜻으로 생각해볼 수 있겠습니다. 암미라는 뜻은 내 백성이라는 뜻이고 루하마라는 뜻은 긍휼히 여김을 받는 자라 그리 말씀을 했습니다. 요게 이방인들에게 복음이 전파되는 그런 것 하고 다 연관이 되어있는 말씀입니다.
그러면 이 말씀을 하나님께서 호세아 선지에게 음란한 여인을 찾아서 음란한 여인과 더불어 결혼해라, 그리고 자녀를 낳게 하셨고 그 자녀에게 이름을 붙여 놨습니다. 그리고 호세아 선지는 자기가 겪은 일들, 하나님이 자기에게 지시하신 것, 지시하신 그대로 자기가 한 것, 한 그 생활에서 자기에게 깨달아지고 느껴지는 것 이런 것을 하나에 말하자면은 좀 쉽게 표현하면 일기처럼 자기 생활을 그대로 기록한 겁니다. 느껴지는 느낌을. 그게 성경이 된 겁니다. 그런데 호세아가 자기 개인의 생활을 기록한 것이 성경인데 그러면 호세아 선지의 그 모든 생활 이거는 하나님에게 붙들린 영감의 생활이었다. 그러면 음란한 여인하고 결혼한 것도 하나님이 시켜서 한 믿음으로 순종한 생활이다 그리 볼 수 있는 겁니다. 그게 성경이 된 겁니다. 그래서 성경은 전부 유기적인 영감으로 기록되서 자의적인 영감으로 기록이 됐다 그렇게 우리가 배워 알고 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이 시대에 왜 호세아 선지에게 음란한, 선지자면 누굽니까? 하나님의 종입니다. 요즘으로 말하면 목사님들입니다. 이스라엘 지파가 그 제사장들이 결혼하면 제사장들은 살아가다가 상처를 하면 처녀하고 결혼하든지 아니면 깨끗한 사람하고 결혼해야 되지 이런 깨끗지 못한 이런 여인하고 결혼하면 안되는게 성경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호세아 선지에게는 일부러 음란한 여인을, 한남자만 바라보고 오로지 그 남자에 목을 매고 그 남자에만 매달려서 남자만 한남편만 바라보고 믿고 의지하고 맡기고 순종하는 그래서 그 남자 없으면 죽고 못사는 이게 아내의 정상적인 모습이고 이게 정절 부인의 본모습입니다. 그런데 이런 아내를 찾으라 아니하고 아주 한남자만 바라보지 아니하고 뭇남자를 이 남자 좋으면 그 남자 따라가고 저 남자 좋으면 또 따라가고 남편을 하루에 열 번도 더 바꾸는 아주 음란한 여인을 찾아서 결혼을 해라 그랬으니까 이 여인은 기생이든지 창기든지 음녀같은 이런 여잡니다 말하자면.
왜 하나님께서 이 시기에 이 호세아 선지에게 그런 여자를 찾아서 결혼하라 하셨는가? 그리고 그것을 기록하셨고 그에게 아들 낳고 딸 낳고 할때 고 맞는 이름을 거기 합당한 이름을 붙여 주셨는가? 이게 전부 하나님의 뜻인데 그 호세아 선지를 통해서 그 시대에 하나님과 하나님의 백성의 관계를 지금 가르쳐주고 있는 겁니다. 무엇을 가르치고 있다고요? 하나님과 하나님의 백성의 관계를 가르치고 있는 겁니다. 그 시대 육체의 이스라엘 시대, 이미 웃시야와 요담과 아하스와 히스기야에 이어 유다 왕이 된 시대 곧 요아스의 아들 여로보암이 이스라엘 왕이 된 시대. 이때는 남쪽 유다도 북쪽 이스라엘도 전부다 타락해서 엉망진창이 된 시댑니다. 남쪽 유다는 그래도 히스기야라든지 또 그 위에 드문드문 좀 좋은 그런 왕들이 나와서 나라를 그래도 좀 유지했다가 또 말아먹었다가 살렸다가 그런 때가 더러더러 있다가 마지막에 이제 망해버리는데 이스라엘은 북쪽 이스라엘은 감정을 따라서 나라 갈라가지고 나간 감정 주의를 따라나간 이스라엘은 논리적으로 이치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신앙양심을 따라 하지 아니하고 인간 즈그 감정, 북쪽 이스라엘 열지파가 왜 나갔지요? 왜 갈라져 다윗의 자손을 르호보암을 배반하고 왜 여로보암을 두목 삼아서 나갔습니까? 이유가 뭐였습니까? 솔로몬이 살아 생전에 큰 집을 몇 개 지었던가요? 솔로몬 살아생전에 큰 집을 두 채를 지었습니다. 우리 학생들은 집 짓는게 얼마나 힘든지 잘 모르는데 집을 하나 지으려 그러면 요즘 아무리 기술이 좋아도 굉장히 어렵습니다. 더욱이 성전 짓는 건 더 어렵고. 솔로몬이 지은 큰 집 하나는 하나님의 성전을 지었고 또 하나는 솔로몬의 궁전을 지었는데 이 두 개 짓는 기간이 얼마 걸렸던가요? 성전 짓는데 7년 걸렸습니까? 그다음 궁전 짓는데 13년 걸리고 합해서 20년 동안에 궁전 지었는데 이때는 보나마나 요즘같은 포크레인이 있었겠습니까? 아니면 크레인이 있었겠습니까? 이때는 지금보다 아무리 과학이 발전해도 지금보다는 못했을 것이고 그러면 이때에 집을 지을때는 전부 장비도 어느 정도 있겠지만은 전부다 사람의 인력으로 수많은 수십만명 수백만명을 동원해서 그래 집을 짓는 겁니다. 그러니까 20년동안에 부역을 중노동을 했으니까 그 나라 백성들이 죽어나는 거지요. 그래서 이제는 궁전 다 짓고 솔로몬이 물러나고 죽고 르호보암이 왕이 되니까 그 백성들이 르호보암에게 찾아왔습니다. 찾아와서 ‘당신의 부친이 이 큰 집 두 개 짓는다고 20년 세월을 우리의 등골이 빠지도록 부역을 시켰으니까 이제는 다 안정이 되었으니까 당신은 우리를 좀 편안하게 좀 해주십시오 그러면 우리가 당신을 잘 모셔 섬기겠습니다’ 하니까 그게 합당한 요굽니다 백성들이. 그러니까 르호보암이 자기 밑에 있는 어떤 신하들에게 먼저 물었던가요? 나이 많고 경륜이 많은 경험 많은 그런 어른들 어른된 신하들에게 물었습니다. ‘이 백성들에게 어떻게 대답해야 되겠는가?’ 물으니까 ‘왕이 이 백성들의 신하가 되어서 머슴처럼 되어서 이 백성들을 위로하고 그 동안에 고생했으니까 잘 어루만져 품으면 이들이 왕의 백성이 돼서 잘 섬길겁니다 그리 하십시오’ 그러니까 이 젊은 르보호암이 늙은이들이 뭘 알까 나이 많아서 늙은이들이니까, 좀 험한 말로 퇴물들이니까 아주 나쁜 말입니다. 뭘 알겠는가 그래서 머리 잘 돌아가고 힘이 넘치고 정력이 넘치는 제 또래에 젊은 아이들 그 사람들을 불러가지고 ‘너희들은 뭐라고 대답을 해야 되겠느냐?’ 그러니까 젊은 사람들 대답이 ‘까짓것 임금님이 왜 임금님입니까? 왕이 그냥 왕입니까? 휘두르십시오 권세를’ 그래 말은 잘했지요. ‘내 새끼 손가락이 (뭐보다 굵어요?) 우리 아버지 허리보다 굵으니까’ 그만큼 자신있고 배짱있고 그래하다 그말이지요. 하룻강아지가 범 무서운줄 모른겁니다. 그래서 ‘우리 아버지는 너희들을 채찍가지고 다스렸지만은 나는 (뭘로 다스려요?) 전갈로 다스릴 것이다’ 하고 아주 막 호통을 쳐서 쫓아보냈습니다. 큰소리 쳤지요. 큰소리 칠때는 좋았지요. 그러니까 노련한 백성들이 ‘너 잘났다. 그러면 실컷 한번 다스려보지’ 하고는 몽땅 다 떠나버렸습니다. 그러면 백성들이 르호보암에게 청하는 그 청은 바로 청한겁니다. 그리 할 수 있는 겁니다. 바른 요구를 했습니다. 그런데 르호보암이 그 요구에 대해서 처리한거는 분명히 틀렸습니다. 그러니까 백성들의 요구는 옳았고 맞았고 르호보암의 처리는 틀렸으니까 그러니까 르호보암이 잘못된거는 맞는데 그런데 그렇다고 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렇다면 우리는 딴 살림 차리겠다 그래가지고 하나님의 나라를 갈라 두쪽을 내서 쪼갱이를 내서 따로 살림 차려 나가버렸다 말이지요. 그러니까 왕이 마음에 안드니까 왕이 섬기는 하나님도 마음에 안들고 예루살렘도 마음에 안들고. 며느리가 미우면 며느리 뒷꼭지가 달걀처럼 생겼다고 흉본다더니 사람이 하나 보기 싫으면 그와 관련된 것 다 보기 싫은 것처럼. 그런데 그게 전부 인간의 감정입니다, 감정. 감정은 이성보다 밑에 가야 되고 이성에게 다스림을 받아야되고 그래야 바로 되는건데 감정이 이성 위에 올라가서 이성보다 앞서면 마지막에 살인도 생길수가 있는 겁니다. 그래서 감정이 나서서 화가 나가지고 말하자면 성이 나서 가버렸습니다. 우리 요구 안들어주니까 성이 나서 그냥 왕을 배반하고 왕을 새로 세워가지고 나가버렸다 그말이지요. 그 나간 그 결과가 전부 비참하게 되가지고 여로보암이 나가자마자 나라를 아주 크게 열 지파나 떼나왔으니까 큰 나라가 됐는데 다시 나라가 솔로몬집에 돌아갈까 싶어서 그 사마리아에다가 예루살렘에 있는 단 비슷한 걸 만들고 날짜 좀 비슷하게 세우고 선지자도 비슷하게 세워가지고 가짜배기 제단 가짜배기 선지자 가짜배기 날짜를 만들어서 ‘예루살렘까지 갈 것 없다 여기서 섬기면 된다’ 그래가지고 제 왕 자리 권력 유지하려다가 열 지파를 시작부터 말아먹기 시작한 겁니다. 그게 감정대로 모든 일을 처리한 결과다 그말이지요. 그래서 이스라엘은 전부다 비참하게 내려가다 비참하게 망했습니다.
그 남쪽 유다는 그래 덜했는데 그래도 가서 계속 세월속에 가다가 타락해서 그리되어졌는데 이 시대 호세아 선지가 활동한 이 시대에는 그게 거의 절정에 달하다시피 그래가지고 나라가 엉망이 됐는데 그 엉망이 된 그 모습이 가장 중심의 모습이 뭐냐 하면은 하나님의 백성이 하나님을 배반하고 이방신을 섬기는 겁니다. 전부 그겁니다. 이방신 이름이 주로 뭡니까? 성경에 나오는 열왕기상하 역대상하에 나오는 이스라엘이 하나님 배반하고 섬긴 이방신 이름이 가장 많이 나오는 게 뭡니까? 바알신, 또 하나는요? 아세라 목상. 이런것들 주로 거의 많이 섬겼습니다. 그래가지고 이들이 하나님을 배반하고 이방 나라 신들, 바알신과 아세라 목상 섬기는 그쪽으로 다 거기다 제단 쌓고 거기 경배하고 그것에게 다 가버렸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하나님은 본남편, 이스라엘은 본남편의 아내, 그런데 이 아내를 꼬아가지고 본남편 배반하고 나가서 딴 살림 차리고 나가버린 그 아내를 꼬아가지고 나간 아내가 미혹받아 나간 그 이방신들을 가리켜서 간부, 연애하는 자들이라 그리 말씀하셨는데 그래가지고 나갔습니다. 요 삼각관계입니다. 그래서 야고보서에 말씀하신 것, 호세아에서 말씀하신 것은 하나님과 성도와 이방신 세상의 삼각관계를 두고 말씀을 하고 여기 본문에는 거기서 하나 더 나오는 어떤 인물이 있습니까? 삼각관계에서 호세아 2장에는 또 하나, 네 인물 중에 하나가 뭐가 있습니까? 자녀가 하나 더 있지요 자녀. 요래가지고 된 요겁니다. 삼각관계에 거기 또 생겨진 자녀. 근데 이것이 그때 기록이 그때는 육체 이스라엘에게 요런 삼각관계로 하나님을 배반하고 이방신을 섬겨 나간 하나님의 백성들에 대한 진노에 참담한 그 심정을 호세아 선지를 통해서 기록을 하신 것이 요 성경인데 요것이 오늘 우리에게 와서는 바로 하나님과 우리 성도와 이방신이면 오늘날 무엇입니까? 이방신이면 바알 아세라 목상이 오늘날 무엇입니까? 연애하는 자들인데 그게 무엇입니까? 석가모니 불굡니까 유굡니까 무엇입니까? 그게 바로 세상이다 그말이죠 세상. 이방신들이 바로 세상. 그래서 하나님과 하나님의 백성 신부된 성도와 그 성도가 한눈 팔고 너무너무 잘 생겨서 미혹받아서 따라나간 이 세상 간부 연애하는 자들 요래 된 요 모습을 호세아서에 삼각관계로 기록하시고 여기는 자녀까지 낳은 것을 말씀을 하신 겁니다. 그러면 요런 삼각관계를 염두해 두고 하나님께서 하나님 한분만 믿고 의지하고 바라보고 순종해야 될 하나님의 신부된 성도들, 이 성도들이 하나님을 배반하고 알고보면 전에 한번 말씀드렸는가 설교록에 나온 이야긴데, 어떤 부부가 있는데 그 남편이 사회적으로 지위도 있고 또 제법 잘 살고 아주 인격도 있는 좋은 사람이랍니다. 공부도 많이 하고. 그런 남편을 둔 아낸데 이 아내가 어찌어찌하다 보니까 어느 그 사람 직업이 운전기사 라든가, 무슨 운전기사하고 눈이 맞았는데- 운전기사라고 나쁜 사람이라는 법 없고 또 운전기사라고 다 못하라는 법은 없지만은 그런데 옆에서 보면 아무리 따져봐도 자기 남편은 백점 짜리면 운전기사는 오십점 짜리도 안되는데 그렇게 다 봐도 인격이나 실력이나 인물이나 모든게 다 봐도 그래밖에 안보이는데 이 여자가 어찌된 판인지 그 운전기사에게 눈이 맞아가꼬 그만 엉뚱한 짓하고 돌아다녔다 그말이죠. 그런데 이 남편이 그것을 알고는 표를 내지 아니하고 어쨌든 가정을 지키고 아내를 돌아오게 하려고 타이르고 타이르고 다스리고 아무리 타이르고 타이르고 말해도 도무지 안되더랍니다. 그래가지고 마지막에는 이 여자가 그만 자청해서 알아서 그만 이혼하고 나와버렸다고. 그래가지고 나갔는데 그리고 난 다음에 이 본남편은 그 아내를 아무리 붙들려고 딴 남자하고 놀아난 줄 알았습니다. 성경에 이혼할 수 있는 딱 하나가 뭡니까? 성경에 이혼할 수 있는 딱 하나는 음행한 연고라면 이혼할 수 있다. 그런데 그거는 율법적인 방법입니다. 주님 대속적인 방법은 아내가 음행을 해도 그 아내를 할 수 있으면 버리지 않는 걸 원하시는게 주님의 대속의 사랑입니다. 음행했으니까 이혼하면 법적으로 심판을 못하겠고 죄라 못하겠지만은 그러나 음행을 했다할지라도 그 남편이 믿는 사람이면 그 아내를 어쨌든 다스려 데리고 살기를 그래서 사람을 만드시기를 원하는게 하나님의 뜻입니다. 사랑이고. 이 사람이 믿는 사람인가는 모르겠는데 그리 하려고 무진 애를 썼는데 이 여편네가 기어코 기어나가버렸답니다. 그 좋은 남자 말 안듣고. 나가서 할 수 없이 갈라졌는데 그 뒤에 본남편은 누구 소개로 참 좋은 여인을 만나가지고 그 뒤에는 참 행복에 넘치도록 그렇게 잘 살고 있고 이 본남편 버리고 나간 그 기사 따라 나간 그 여자는 나중에 가서 비참하게 쫄딱 망해서 비참하게 그래 됐다는 그런 실화를 백목사님 설교록에 보면 나오는 이야깁니다. 그런 일 있다고.
보면은 사람이 제 눈에 안경이라고 그리 될 수 있는 거지요. 그런데 우리가 알고보면 하나님보다 더 좋은게 세상에 없지 않습니까? 하나님보다, 주 예수보다 더 복음 성가에 나오지요? 주 예수보다 더 귀한 것은 없네. 주님보다 더 귀하고 더 실력도 있고 더 사랑도 있고 또 모든 면에 다 어느 면을 따져도 주님보다 더 좋은 그런 신랑이 이 세상에 없는데도 불구하고 우리 성도들은 남말 할 것 없이 저 자신부터 주님 배반하고 세상에 온갖 것을 취해서 나가는 그런 일들이 허다하다 그말이죠. 근데 이걸 모르면 그냥 좋아서 나가는데 알고나면 심히 가책을 받는 그런 생활을 많이 하는 거지요. 그러니까 음행이란 거 음란이란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는 것이고 계명을 어기는 겁니다. 그게 하나님을 배반하는 것이고. 그러면 믿는 사람이 왜 하나님의 말씀을 뜻을 져버리고 계명을 어겨서 죄를 짓느냐. 그게 전부 어떤 형태로든 어떤 과정이든 이 세상이 좋아서, 세상이 무엇인가? 세상이 뭡니까? 무엇무엇 빼고 다 세상인가요? 세상이란 것은 자기 중생된 영하고 성화된 심신의 기능 빼고는 전부 세상이니까 자기 눈이 좋게 하든지 고깃덩어리 좋게 하든지 돈이 탐이 나든지 어떤 사람이 탐이나든지 어쨌든 이 세상의 온갖 것이 좋아서 거기 미혹을 받아가지고 고만 하나님의 말씀을 져버리고 하나님의 진노의 그 심정을 알면서도 기나가고 끌리면 그리 가는 겁니다. 몰라서도 나가고 별에별 그런 형태로 하나님을 배반하고 음행하는 그런 죄들을 많이 짓고 있는데 사람이 약해서 한 거는 좀 덜하지만은 육체의 이스라엘은 아주 드러내놓고 하나님 버리고 이방신들 섬겼는데 거기에 왕이 앞장서고 머리되는 지도자 되는, 그 지도자의 이름이 본문에 뭐라 그랬습니까? 그 지도자를 본문에 뭐라고 표현했습니까? 어미 되는 사람들. 어미라는 말은 자식들을 낳아서 기르는 사람을 어미라 그러지 않습니까? 어미되는 그 사람들이 앞장서서 하나님을 배반하고 이 세상으로 기어나가서 음행을 수도없이 많이 하고 있었더라. 그래서 하나님께서 참담한 그 분노의 심정을 호세아 선지를 통해서 요렇게 비유적으로 예언적으로 말씀을 하신 겁니다.
근데 이것이 요 성경을 지금부터 25년전 아니지요 84년도니까 30년전입니까? 30년전에 근데 오늘날에도 이 말씀을 가지고 딱 오늘날 교계에 갖다대보면 30년전보다도 더 많은 더 정확하게 이 말씀이 고대로 딱 드러맞아서 오늘날 한국의 모든 교계 신앙의 지도자들 교회들 교단들 신학교들 교수들 신학교 교수들 목사들 교회 안에 장로 집사들 오래 믿고 잘 믿는다는 그런 사람들, 어미 위치에 있는 그런 사람들이 하는 짓 보면은 전부 하나님만 믿고 의지하고 바라보고 순종하는 정절 부인의 본모습은 흰쌀에 늬와 같이 심히 드물고 전부 세상의 어떤 사람들은 어떤 어미들은 정치에 들어붙어서 정치노름하고 있고 돈이 좋아서 돈노름 하고 있고 사업노름하고 있고 온갖 노름들을 전부 다 하고 있는 그런 상황이 오늘 교계에 모습입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목사고 성경들고 설교하고 교회를 끌고 하고 있는데 그 속에 들어가서 깊이 들어가보면은 참 하나님을 알고 믿고 두려워하는 그런 교회들이 심히 드문때가 오늘이다. 바로 그들이 하나님 본남편을 배반하고 간부 따라간 음행하는 그런 사람들로 꽉찬 시대가 바로 오늘 이 시대다 그리 볼 수 있습니다. 이걸 좀 우리가 비록 모든 면에 부족할지라도 보는 눈을 가져야 됩니다.
예수님 당시에, 이거 스스로 위안제 마시는 것이면 큰일나는데 예수님 당시에 오신 예수님은 구주 메시얍니다. 사천년동안 이스라엘 백성들이 자자손손 고대하고 고대하던 그 구주 메시야가 왔지만은 그 구주 메시야를 알아 모시고 믿고 영접했던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인가? 예수님의 육신의 부모였던 요셉과 마리아. 요셉의 직업이 뭡니까? 요셉의 직업이 변호삽니까 판삽니까 서기관입니까 제사장입니까 뭐였습니까? 목수. 요즘은 그래도 목수하면 기능자니까 제법 일당도 쎄고 대접을 받겠지요. 그런 사람들 아주 천민들입니다 옛날로 말하면. 아주 밑에 사람들 목수. 또 예수님 영접한 사람들은 세례 요한인데 세례 요한은 선지자였지만은 워낙 권위가 있으니 그렇지만은 그는 약대 털옷을 입고 허리에 가죽띠를 띠고 메뚜기와 석청 먹는 들판에 사는 그런 사람, 아주 외골수 같은 그런 사람. 그리고 들판에서 양 먹이는 목동들. 그리고 안나 같은 사람. 80년을 그냥 혼자 산 그 세월을 혼자 산 그 사람. 또 시므온 같은 사람. 아주 이 세상 사람들이 아무도 알아주지도 못하는 파묻혀서 어느 구석에서 나서 어떻게 자랐는지 듣도 보도 못한 그런 아주 못나고 못나고 못난 그런 선민들 그런 사람들이 예수님을 구주로 모시고 알아서 영접했지 그 시대 잘난 대제사장 서기관 바리새인들 잘 믿는 사람들은 전부 예수님을 보고 다 배척을 하고 못 박아 죽이는데 앞장섰지 몰랐습니다. 그때나 지금이나 역사가 꼭 같습니다. 지금도 보면은 참 하나님을 믿는 그런 사람들이 역사에 우리 나라에 교계에 정치권에 이름 들어간 목사는 99.9퍼센트 저거 가짜 목사구나, 돌 목사구나 그래 보면 거의 맞습니다. 사업처에 이름 올라가 있는 그런 목사들은 거의 대부분 가짜 목사구나. 신문지상에 이름 자주 오르내리는 무슨 대회 장 장 무슨 장 총무 부회장 대회장 거기 이름 오르내리는 사람들은 전부다 대개 보면은 백퍼센트라 말은 안하겠는데 거의 대개는 눈 목자, 죽을 사 자, 가짜 목사구나 그래 보면 별로 틀리지 않을 겁니다. 방송에 많이 나오는 그런 목사들. 대개 별로 틀리지 않을 겁니다. 세월이 지나가면 다 압니다. 역사가 증거를 하는 거지요. 우리 시대만 봐도 다 나옵니다.
그러니까 지금이 바로 그런 시대 바로 지금같은 이런 시대. 이런 시대가 그 시대에 되어 있었기 때문에 그때는 육체적으로 지금은 신앙적으로. 그래서 여기 본문에 나오는 이 호세아 2장에 말씀 제목을 ‘지도자의 종교음행’이라 그랬습니다. 같이 한번 해보실까요? 종교 음행. 종교적으로 신앙사상적으로 신앙양심적으로 신앙사상적으로 하나님 배반하고 이 세상을 취하고 따라간 그런 것을 말하는 겁니다. 그중에 지도자들, 어미들. 그래서 말씀하시기를 너희 어미와 쟁론하고 쟁론하라. 어미라는 말은 자녀를 짐승으로 말하면 새끼를 낳아서 기르는 그게 어밉니다. 자식을 낳았고 그 낳은 자식을 먹여서 길러가는 그 사람이 어밉니다 어미. 신앙으로 말하면 전도해서 교회로 데리고와서 말씀을 전하고 가르쳐서 신앙으로 길러 나가겠다는 그 위치에 있는 그래서 이름하여 참 좋게 지도자, 말이 지도자지 지도자 되는게 쉽습니까? 신앙 지도자 그런데 위치가 그런 위치면 부득이하게 이름을 그리 붙여서 신앙 지도자 혹은 신앙 선배 바로 말하면 교회 교역자들 전도사 목사 장로 집사들 구역장들 반사 선생님들 또 이런 분들, 가정으로 말하면 부모님도 그리 될 수 있습니다. 이런 사람이 여기 말씀하신 어밉니다 어미. 그런 사람은 하나든지 둘이든지 어쨌든 자기 밑에 자기를 보고 따르는 자기 말 듣고 행동 보고 생활을 보고 먹고 따라오는 그런 자녀나 후배들이 있다 그말이지요. 아버지가 교회 집사님이고 어머니가 집사님이고 그러면 그 자녀들은 보나 안보나 자기 아버지 어머니 행동보고 말보고 그 생활 방식보고 사상보고 자녀들은 따라가니까 그 가정에 그 부모님은 신앙의 어밉니다 지도잡니다. 보자, 우리 아버지가 밥 먹을 때 기도하든가? 말안하지요. 안물어보지요. 딱 보니까 기도 안하면 자녀들도 기도 안하겠지요 뭐. 어머니가 그러면 도 그러겠지요. 우리 아버지가 예배 시간에 졸든가? 안봐도 보입니다. 또 우리 부모님이 새벽기도를 나가든가? 안봐도 알지요. 그대로 따라가는 겁니다. 십중팔구 거의 그대로 따라가는 겁니다. 그러기 때문에 핑계하지 못할 것이라.
백목사님께서 어떤 목사님인데, 어떤 목사님이 백목사님을 두고 알게 모르게 많이 헐었습니다. 목사 되기 전인가 모르겠습니다. 집에 돌아가서 오늘 설교는 이렇고 저렇고 그냥 자녀들 있는데 말이야 뭐 욕을 하겠습니까? 그 설교에 대해서 빈정거리듯 한두마디 던지겠지요? 그런것이 백목사님 귀에 들어갔습니다. ‘너가 너거 자식을 사람 만들려면 백목사를 너거 집에서 우상을 만들어야 될꺼다 안그러면 너희 눈에 피눈물이 날꺼다 아마 몇십년 지나면 알게 될거다’ 그리고 나서 몇십년 지나고 나서 그 집에 아주 난리가 났다 그러지요. 피눈물이 났답니다. 그런 예언이 딱딱 맞아 떨어지니까 모두 백목사님 말씀에 겁이 나서 절절 매는 겁니다.
그러니까 아버지 어머니 머릿속에 하나님에 대해서 하나님의 교회에 대해서 교역자에 대해서 이상한 것이 들어있으면 자녀들은 고대로 따라가는 겁니다. 그 젖을 먹고 자라는 겁니다. 그래서 그 자녀들을 내가 긍휼히 여기지 아니하리니 그 자식들도 어떤 자식이라고요? 음란한 자식들이다. 그래서 말씀하시기를 그 얼굴에서 음란을 제하고 그 유방에서 음행을 제하라. 유방이라 말은 젖통이란 뜻이고 그 젖통은 새끼를 기르는 젖입니다. 젖통. 그러니까 그 젖을 먹고 아이가 자라는 것처럼 그 부모님의 교훈을 먹고 신앙 선배의 교훈을 먹고 교역자 목사 설교 듣고 전부 교인들 학생들의 신앙이 자라게 되는 것인데 모든 면이 부족하고 못났을지라도 그래도 중심과 사상만큼은 어쨌든 하늘나라로 천국으로 주님으로 바로 잡아가지고 그래하면 못해도 부족해도 그래도 거기서 사람이 믿음의 사람이 나오는데 이거는 벌써 목사가 신앙 선배가 지도자가 부모가 인식자체가 벌써 머릿속에 세상만 가득찼고 인간만 가득찼고 천국은 없고 하나님은 없고 그래가지고 살고 있으면 그러면 그리되어 있으면 얼굴에서 음란을 그말은 얼굴이란 것은 ‘상’자가 ‘얼굴 상’잡니다. 얼굴은 그의 살아온 생애가 얼굴에 그래도 그려지는 겁니다. 나타나는 겁니다. 그러니까 항상 돈만 보고 산 사람은 얼굴에 돈의 모습이 나옵니다. 얼굴에 돈이라고 써있지 않아도 그의 하는 모든 것이 외부로 나타나는게 전부 돈을 향해서 그의 모든 비판 평가 사리 판단 일처리가 돈을 향해서 가는 것입니다. 그게 얼굴에 음란이 가득찬겁니다. 명예주의자들은 명예주의라 안써있어도 명예주의로 산 사람들의 그 사람은 가치관이 자기 이름 명예 예의 체면이니까 그의 모든 생각 비판 평가 사고 방식은 전부 명예요 자기 위신 체면으로 그리 가게 되어있는 겁니다. 그게 외부로 다 나타난다 그말이지요. 그것이 얼굴에 음란이 가득차있는 겁니다. 그것을 제해버려라. 신앙 지도자들이 이런 저런 면으로 세상에 가득차있으니까 그걸 제해버리고 또 젖통에서 음행을 제해라. 그 교훈에서 설교에서 가르침에서 머릿속에 들어있는 것이 그것밖에 안 들어있으니까 나올 것이 그것밖에 더 있겠습니까?
그러니까 백목사님께서 1970년대 중반까지는 밑에 따르는 교역자들 교인들에게 외부 서적을 아주 금서로 정할만큼 그렇게 어떤 주석이든 일반 신학 서적을 보지 말아라고 아주 엄격하게 금하다시피 그랬습니다. 아주 아는 사람 몇 사람 빼놓고는. 일반 신학 서적 신앙 서적 그것을 보면 볼수록 여러분들 속에 쓴물이 들어가서 여러분들이 그만큼 빼내기가 어려울 것이다. 그걸 가따 얼마나 많이 말씀했는지 모릅니다. 사람이라는 것은 듣고 나면 박히는 것이고 보고나면 박히는 것이고 읽고나면 들어가는 것인데 그것이 좋은 것이면 신앙에 유익된 것이면 다행인데 이 세상에는 그만큼 참 안심놓고 읽을, 차라리 신앙 위인들의 위인전을 읽어라 그랬습니다. 그런데 주석들, 성경 해석집들, 그거 보면은 전부 엉뚱한데로 다 인도하는 거니까 그거 읽으면 그만큼 손해가 될 것이다. 그런 것이 머릿속에 들어있으면, 그래서 세상의 공부를 많이 한 사람은 아무리 안하려고 애를 써도 그 배운 그 지식이 자기 신앙 생활에 그것을 하나도 안쓰기가 대단히 어렵습니다. 하나도 머릿속에 없는 사람이 아무것도 안쓰는 것 하고 있는데 안쓰는 것 하고는 참 어렵습니다. 있는데도 안쓰면 더 귀한 것인데 너무 너무 어렵고 거의 대개는 다 쓰게 되어있고 그러기 때문에 학교는 초등학교만 다니면 충분하다, 요즘은 시대가 달라 좀 학벌 자체가 다르니까 좀 다르지만은. 세상지식이 많으면 많을수록 그 세상지식을 쓴물이라 그러고 쓴물이라 그럽니다 쑨물. 먹으면 죽는다는 겁니다. 알면 아는만큼 그래 따라가게 되있으니까. 성경만 읽으면 된다. 성경읽고 성경으로 전부 삼으면 되는데 그래서 사무엘 같은 사람은 어릴때부터 성경만 봤습니다. 아무것도 안보고. 성경만 보니까 그 머릿속에 나오는 거는 전부 성경밖에 안 나옵니다. 머릿속에 들어있으면 안 나올수가 없는 겁니다. 힘이 있는데 안 쓰는게 어렵고 돈이 있는데 돈 자랑 안하기 어렵고 돈이 많은 사람들은 아무리 돈자랑 안한다 그래도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돈자랑이 나옵니다. 그게 얼굴에서 음행을 제하라는 겁니다. 자기도 모르게 거기 대한 말이 나오는데 그게 유방에서 음행을 제하라는 겁니다. 참 어렵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참 믿음으로만 바로 살면 성경만 보고 신앙생활에만 전념하고 자기 주어진 그 현실 거기만 매달리면 그만큼 복인데 너무 어려우니까 잘 못하지요. 저는 내 아내가 아니요 나는 제 남편이 아니라. 이렇게 음행하고 음란으로 가득차니까 하나님께서 그 백성에 지도자들을 버렸다는 거지요. 이제는 이혼해버렸다. 저는 내 아내가 아니고 나는 저 남편이 아니다. 하나님이 버리셨다 그말입니다. 그래서 그 음행을 얼굴에서 젖통에서 제하지 아니하면 내가 저를 벌거벗겨서 그 나던 날과 같게 할 것이다. 그러니까 말하자면은 벌거벗겨서 나던 날과 같에 했으니까 중생이 되기는 됐지만은 중생만 됐지 중생이니까 갓태어난거 아니겠습니까? 중생은 기본구원입니까 건설구원입니까? 중생은 기본구원인데 건설구원에 출발시점입니다. 말하자면은 갓태어난 나던 날입니다. 내 주의 도 첨 받은 날 참 기쁜 날이 아닌가. 그 찬송이 중생 찬송인데 일종에 한 면으로 보면 막태어난 중생된것. 그때는 건설 구원을 이루어 갈 수 있는 출발선상에 서서 갓 태어났으니까 이제는 자라가야 되는 것처럼 구원을 이루어가야되는데 벌거벗겨서 나던 날과 같게 했으니까 평생을 예수를 믿기는 믿었는데 하나님의 이름을 불렀고 성경 불렀고 교회를 다니기는 다녔는데 그의 소망이 가치관이 전부다 세상을 향하고 인간을 향하고 하나님과 천국은 없는 음행으로 음란으로 가득찼으니까 제가 그래 살았으니까 그 속에 천국이 없을 거 아니겠습니까? 구원이 없을 거 아니겠습니까?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표현은 벌거벗겨서 했지만은 벌겨벗긴 것이 하나님이 벌거벗기신게 아니고 제가 벌거벗은 겁니다. 제가 하나도 안 입었으니까. 나던 날과 같게. 그래서 이거는 구원은 완전히 실패, 건설구원은 완전 실패되는거. 그리 되게 할 것이고. 필연적으로 그리 될 수 밖에 업습니다. 나던 날과 같게 할 것이고 저로 광야같이 되게 하고. 광야는 어떤 곳입니까? 빈들판. 다시 말하면 아무것도 없는 곳이니까 빈들판 신앙으로 광야는 아무것도 없는 곳으로 가서 무의무탁에 주님 한분으로 전부 삼으면 되는데 이 광야는 그의 평생에 사는 생애가 광야가 되버렸습니다. 빈들판이 되버렸습니다.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러니까 빈들판이니까 그 사람이 건설한 건설이 하나도 없으니까 자기 인생살이 살아오면서 인생 생애에서 마련한 것이 하나도 없다 그말이지요. 그래서 마지막에 죽고 나니까 오전에 그 왕 이름 찾아보니까 여호사밧의 아들 여호람. 아버지는 참 신앙있는 신실한 좋은 왕인데 그 여호사밧의 치명적인 실수가 하나 있습니다. 뭡니까? 여호사밧이 참 하나님 앞에 그럴 수 없는 몇 안되는 유다 나라에 그런 하나님 기뻐하신 그 왕이었는데 이 왕의 치명적인 실수가 하나 있습니다. 뭐였습니까? 친구를 잘못 사겼는데 그 사귄 친구가 아합입니다. 아합. 아합을 사겨서 그래가지고 결국 많은 피해를 보게 되지요. 그래가지고 여호사밧의 아들이 여호람인데 그 여호람의 마누라가 아합의 딸입니다. 이세벨의 딸. 그러니 그 딸이 그 마누라가 됐으니까 그 남자가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래가지고 여호사밧 죽고 나서 왕이 됐는데 여호사밧이 건설해논거 모조리 전부 뒤집어 엎어서 초토화를 시켜버리고 저는 중병에 걸려서 창자가 빠져나와서 죽고 아끼는 자 없이 세상을 떠났습니다. 참 비참한. 사람이 한평생 와서 세상에 살았으면 신앙으로나 세상으로나 모든 주변에 사람이 우리가 뭐 세상을 우리가 역사에 이름을 남기겠습니까? 세계 이름을 떨치겠습니까? 그러나 내 주변에서 나와 관련된 내 주변에 사람들에게 나 한 사람이 만약에 세상을 떠난다면 참 아까운 사람이 갔다, 좀 더 살았으면 여러 가지 면으로 많은 일을 하고 유익을 끼칠 것인데 너무 너무 아깝다. 애통할 수 있는. 아끼는 사람이 많아야 되겠는데 이 인간은 죽으니까 잘 뒤졌다 하고 아끼는 자 없이 세상을 떠나서 열왕의 묘실에도 들어가지 아니하고 그렇게 비참하게 세상을 떠난 여호람이라는 인물이 있습니다. 이 사람이 말하자면은 광야 같이 그 인생을 광야같이 그렇게 되어진 겁니다. 그의 인생 건설 신앙 건설은 하나도 없는 영원을 둔 영원에 원인되고 흔적되어지는 이 세상 한토막, 세상 나그네 세상 살이를 영원의 흔적이 되고 원인 되는 그 세상 살이를 왔다가 갔는데 영원은 커녕 이 세상 조차도 아무 것도 없는 비참하고 비참한 부끄럽고 수치스러운 그런 것만 잔뜩 남겨놓고 그리 세상을 떠나는 이 사람이 바로 주님 배반하고 성도가 이 세상 향할 때 그 결과는 그리 되어질 것이다. 광야 같이 되게 하며 마른 땅 같이 되게 하여 목말라 죽게 할 것이며 마른 땅에 목마르는데 해결의 방법이 무엇입니까? 마른땅을 해결하는, 제주도가 바짝 말라서 가뭄이니까 특별재해 구역으로 선포해달라고 막 대모할 지경이 됐는데 그러자마자 며칠 안있어서 비가 확 와버리니까 그 말이 쑥 다 들어가버렸지요. 비 몇 일 오니까 그렇게 뭐 한 몇 달 까지는 모르겠지만 그래 가물었던 땅이 완전히 해갈이 다 되버리지 않습니까? 그 찬송가 107장. 후렴이 뭡니까? 가물어 메마른 땅에 단비를 부으시듯 성령의 단비를 부어- 그 목마른 메말라 죽게 하며 마른 땅같이 되게 하며 목말라 죽게 한다 그말은 생수가 없다 그말이죠. 단비가 없다는 뜻입니다. 그 단비 생수가 뭐냐? 생수가 뭡니까? 생명수는 말씀이고 그 속에는 성령의 감화감동이고 그러니까 그 하나님을 향하지 아니하고 천국 향하지 아니하고 세상만 향하니까 그 속에 세상과 세상에 있는 것 사랑치 말아라 그것을 사랑하면 하나님의 사랑이 그 속에 거하지 못한다. 하나님의 사랑이 뭡니까? 대속입니다. 주님 대속의 사랑 하나님의 역사가 그 속에 없으면 대속 없는 곳에 영감도 진리도 없지요. 이거 없는 그 사람의 말, 그의 생활, 그의 심령, 그의 설교 거기에 생수가 있을리 있겠습니까? 그러니까 아무리 설교해도 말해도 살아가도 그 속에 생명 역사가 하나도 없으니까 갈급해 죽겠고 목말라 죽겠고 요래 된다 그말입니다. 이게 성도가 평신도도 알고 보면 어미 위치에 있는데 그 성도가 주님을 배반하고 어떤 세상이든 세상을 향해 따라가서 음행을 하고 그 음행을 회개치 아니하면 결과가 요런 모습이 된다. 나던 날과 같이 하고 또 광야 같이 되게 하고 마른 땅 같이 되게 하여 목 말라 죽게 할 것이며 내가 그 자녀를 긍휼히 여기지 아니하리니 이는 저희가 음란한 자식들이니라 어미가 그런 사상과 그런 가치관을 가치고 신앙생활하면 선배가 지도자가 교역자가 구역장이 반사선생님이 부모가 앞선 사람이 그런 사상으로 신앙생활하면 그 밑에서 따르는 사람들도 전부 그와 같은 교인들이 될 수 밖에 없습니다. 어머니가 노란색깔 나는 음식을 먹고 아이에게 젖을 먹이면 그 젖 먹은 아기의 대변이 노란색으로 나온다 그러데요. 어머니가 파란색 나는 음식을 먹고 아이에게 젖을 먹이면 그 아이의 대변이 파란색이 나온답니다. 그 젖을 먹으면, 그 교훈을 들으면 그 사람이 될 수 밖에 없는 것이 교훈입니다. 그래서 삼가 바리새인들의 무엇을 주의하라고요 예수님께서? 삼가 바리새인들의 누룩을 주의해라. 쑥물이라 그럽니다 쑥물. 먹으면 쓴 것이고 먹으면 죽는 것. 그러기 때문에 옳지 않은 잘못된 그런 설교집 설교록 설교 이런 거 들으면 들을수록 그만큼 자기속에 엉뚱한 것이 들어가니까 빼내기가 참 대단히 어렵습니다. 그 자녀들도 음란한 자식들임이니라 저희의 어미는 행음하였고 저희를 배었던 자가 부끄러운 일을 행하였나니 그 뒤에 쭉 구체적으로 어떻게 음행했는지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 이 말씀에서 제목은 지도자의 종교음행인데 이 지도자를 목사만 장로만 구역장만 반사선생님만 아닙니다. 가정의 부모도 신앙 지도잡니다. 형도 신앙 지도잡니다. 친구 중에서 나보다 뒤선 친구 있으면, 우리 000가 교회 안에서 000를 보는 후배가 있겠지요? 친구도 있겠지요? 있지요? 그러면 000도 신앙 지도자 위치 선배의 위치에 서는 겁니다. 어미가 되는 겁니다. 그러면 그 학생 선배 되는 그 학생에 말, 행동 그러니까 여기 우리 000, 000, 000 이런 사람들 이 학생들의 행동 하나 생활 모습 하나가 밑에 따라가는 동생들이 어떻게 보고 따라가는 이걸 알면은 책임감 느껴서 조심을 안할 수가 없지요. 내가 어떻게 하면 동생들이 따라온다 이게 바로 내가 동생들에게 쑥물을 먹이는 것이고 동생들 후배들을 죽이는 것이 된다. 이걸 알고나면 이걸 깨달으면 생활이 바로 안될 수가 없는데 이걸 깨닫는데는 참 주변의 사람들의 많은 눈물과 기도 희생이 얼마나 들어가야 될지. 어쨌든 삼각관계에서 하나님께서 호세아 선지를 통해서 그 당시로 말하면 육체의 이스라엘 백성들의 음행을 하나님 배반하고 이방신 섬기는 것을 음행으로 말씀을 하신 겁니다. 음란한 여인으로. 그래서 그 이방신들을 연애하는 자들이라 간부로 그리 표현하셨고 이것이 오늘로 말하면 하나님 앞에 성도들, 하나님과 성도는 부부관곈데 하나님의 신부된 우리 성도가 하나님을 배반하고 하나님과 멀어지고 계명을 어기고 이 세상 무엇이든지 그것을 따라서 하나님이 금하신 그런 것을 하게 된다면 그게 바로 음행하는 것이고 간부를 따라 가는 것인데 이게 한번 두 번 실수로 그럴 수 있겠지만은 인식과 사고방식 사상까지 완전히 그래되서 안팎으로 그래 되버리면 결국 하나님께 버림을 받습니다. 저는 내 아내가 아니고 나는 제 남편이 아니다. 버리고 마는 겁니다. 우리는 어떤 입장에 있는지. 제가 아는대로 우리 교회는 아직까지 하나님 앞에 버림받을 만큼은 아니라 그래 봅니다. 위안제는 조심해야 되겠지만은. 그러나 이게 점점 심화가 되고 우리도 별수없이 사람이란 것이 별수 없이 넘어지는 겁니다. 다윗이 실수할 때도 순간이었고 솔로몬이 노년에 그리 된 것도 별수없이 그리 된겁니다. 그러기 때문에 선줄로 생각하면 넘어질까 조심을 해라. 그래서 항상 깨어살지 않으면 어느 순간 넘어질지 모르는 우리들입니다. 우리가 순간순간 토막토막으로 음행하는 그런 죄를 자꾸 짓다 보면 나중에 쌓여서 자기도 모르게 음란한 사람이 되고 말고 하나님께 버림을 받고 말기 때문에 어쨌든 힘을 써서 넘어지면 또 일어서고 또 일어서도 또 주님에게 들어붙고 또 깨고 쉬지 않고 노력하는 이것이 우리가 할 일이라 그리 말 할 수 있습니다. 다같이 통성으로 기도드리겠습니다. 돌아가셔서 호세아서 1장과 2장을 좀 많이 읽어보십시다. 삼각관계에서 본남편은 하나님, 아내는 성도, 연애하는 자들 간부는 세상과 세상에 있는 모든 것 그 자식들은 우리 믿음의 자손들 후배들 믿음과 연관된 육의 자손들 자녀들 이런 관계에 있으니까 여기서 나는 어떻게 하고 있는가 깊이 깊이 좀 많이 생각해보십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