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10월 25일 주일 오후 (엡1:3~1:6)
2026년 10월 25일 주일 오후 (엡1:3~1:6)
찬송: 4장
본문: 에베소서 1장 3절 ~ 6절
기독교의 가장 핵심 교리입니다. 사도신경은 사도들의 경전이라고 말하나, 열 두 사도의 경전인지는 잘 모르겠고 사도들의 신경이라고 하니까 그게 성경은 아니고 성경을 가장 간추려놓은 게 사도신경입니다. 주기도문처럼 외우면서 13가지는 그만큼 비중을 두지 않는데 큰 차이는 없지 않을까, 서로 비교한다고 하기보다도 구체적으로 세밀하게 들어가서 발전시킨 것이라 그렇게 생각할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만큼 13가지는 중요한겁닏.k 세상의 많은 사람들은 교회도 그렇습니다. 일단 잘나야하고 키가 크고 잘나야하고 그래서 한국의 큰 교회들의 목사님은 다 훤칠하고 잘생겼습니다. 사랑의 교회 목사님 참 귀풍스럽게 외모를 가진 분이고 학벌도 인품도 다 훌륭한 분들입니다. 외모를 먼저 보기 때문에 그리고 학벌을 봅니다. 또 문물도 같이 봅니다. 그리고 사람들의 인식 인지도를 봅니다. 그래서 그런 외모나 학벌이나 인지도나 이런 게 높으면 먹고 들어가는 겁니다. 그래서 사람도 그렇고 그 사람의 주장하는 바도 그렇습니다. 그래서 미국의 명문 신학을 졸업을 하거나 박사 학위를 정통으로 받고 그런 주장도 다 받아들입니다. 틀릴 위험성이 있는 것도 이단 가능성이 있는 것도 언급하지 않습니다. 시골의 어떤 목사님이 참된 목사님 한 분이 성경을 깊이 깨닫고 주장을 하면 그때까지 나와있던 일반적인 교리에 더 깊이 들어가거나 세상이 모르는 교리를 밝히면 이단이다 말이 튀어나옵니다.
능력이 있어서 끌려간다고 해버리면 정죄를 해버렸다고 합니다. 역사성 중요하다 사회성 다 중요하다 배경도 중요하다 그러나 전부는 아닌겁니다. 그래서 사람이 전통에 메여버리면 박물관이 되어버립니다. 예수님 오셨을 때 바리새인 대제사장들이 이는 능력 있는 새 교훈이로다 라고 했습니다. 그 다음에 뭐라고 했냐면 이는 그 목수의 아들이 아니냐, 형제들이 우리와 함께 있지 아니하냐 하고 예수를 배척해버렸습니다. 간판이 좋았으면 박사학위, 바리새인 출신이면 그렇지 않았을텐데 듣도 보도 못한 사람이 나와서 말하니까 볼품없으니까 깔아뭉개는 겁니다. 행태가 이어집니다. 지금도 그렇습니다. 지금도 다 그렇게 흘러갑니다. 우리는 그런 걸 보면서 그러면 안되는 겁니다. 예수님을 못 박아죽인 대제사장들 서기관 바리새인들이 반대하면서 뭐라고 했다고 하지요. 우리 조상들이 왜 이사야를 몰랐을까, 예레미야를 몰라봤을까, 엘리야가 몰라봤을까.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배반하고 그 종들을 다 죽여버리고 혼자 남았는데 나마저 죽여버리려 하나이다라고 했습니다. 누가 죽였습니까. 택도 없는 말입니다. 백성들이 반대하면 못 죽입니다. 천하의 이세벨이라도, 그래서 왕이 어떻고 다 핑계입니다. 백성들이 반대하면 왕은 꼼짝못합니다. 교인들이 반대하면 목사는 탈선을 못합니다. 그 전체 책임은 이끄는 목사가 있으나 안에 전부 교인 책임입니다. 교회도 나라도 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을 향한 지식입니다. 대한 지식이 아니라 향한 지식, 하나님을 향해 나아가는 닮아가는 소망을 담았다고 말씀 드렸습니다. 아는 지식이라고 했습니다. 아는 것은 다 중요한 겁니다. 하나님도 성경도 사랑도 사건도 물질도 모든 것은 사람이 세상을 살아갈 때 수 많은 세상이 살아가고 접촉할 때 가장 먼저 할 것이 뭐냐, 자동차를 샀습니다. 지도도 샀습니다. 운전도 배웠습니다. 자동차를 타고 출발했습니다. 자기 가는 곳을 모르면 내가 지금 어디로 가지, 왜 그리 가지, 알아야할 걸 모르면 바보가 되는 겁니다. 뭐든지, 그래서 하나님도 성경도 사람도 사물도 가장 중요한 것이 뭐라고요, 아는 게 중요합니다. 그 사람에 대해서 존재에 대해서 사물에 대해서. 크든 작든 무슨 일이든지 일단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아는 게 가장 우선입니다. 바로 상대할 수 있고 취급할 수 있고 상대 관계가 유용하게 될 수 있고 유익이 될 수 있습니다. 모르는 만큼 해롭게 되어집니다. 무조건 위험천만한겁니다. 모르는 물건이 있으면 함부로 만지면 안되는 겁니다. 모르면 손대는 게 아닙니다. 모르는 사람, 모르는 물건 모르는 일 그런 거 없지요 시골 산골에 포탄 총알이 폭발되지 않은 곳이 있었습니다. 갖다팔면 엿을 주거든요, 깨서 부셔서 팔겠다고 돌멩이로 하는 순간 터져서 죽는 겁니다. 모르는 것 함부로 손대는 거 아닙니다. 모르는 일은 함부로 하는 게 아닙니다. 경계하고 조심하는 겁니다 알고 상대해야 지혜롭습니다. 하나님도 아는 만큼 두려워할 수 있습니다. 하룻강아지라는 말은 1년된 강아지라는 말입니다. 제법 클겁니다만은 하룻강아지가 범무서운줄 모르기 때문에 짖고 대들지만 호랑이를 아는 개들은 마루 밑에 들어가서 반 죽어버린다고 합니다.
호랑이는 송아지가 없어졌습니다. 보니까 송아지를 물고 담을 훌쩍 넘어갑니다. 그 짐승은 호랑이 뿐 밖에 안됩니다. 송아지말하면 70 80키로가 될텐데 그걸 입에 물고 훌쩍 넘어서 가버리는게 호랑이입니다. 아는 겁니다. 우리는 호랑이를 아는 겁니다. 이름만 알지, 하나님을 아는 만큼 그렇게 생각해봤습니다. 그분이 지으신 우주가 얼마나 넓은데, 그분이 지으신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 6000년 역사에 그런 역사가 얼마나 많았는데 나같은 사람을 어떤 모습으로 보고 계실까. 아는 만큼 두려워하게 되고 사랑하게 되고 금이라는 것은 안 변하니까, 주식도 우리가 할 게 아니지만 이건 그런 게 없는데, 그 회사 주식은 100년 동안은 오르기만 할거다 그러면 틈만나면 사모을겁니다. 아는 만큼 두려워합니다. 사랑합니다. 바라보고 무지하고 복종하게 됩니다. 믿는 사람이 믿는다는 것만 가져도 하나님만 사랑하지 못하고 하나님만 바라보지 못하고 순종하지 못하는 것은 모르기 때문에 그래서 아는 것과 행하는 것은 같이 같다고 하는 겁니다. 하나님을 섬기며 나아가는 제목이 향한 지식이고 첫째는 자체를 다닙니다. 일번부터 3번까지 하나님 자체, 4번부터 8번까지 하나님 역사, 역사 중에서 실질적으로 하신 하나님 역사입니다.
다섯 가지로 말씀을 드렸습니다. 과거를 말합니까 미래를 말합니까. 영원은 과거를 말합니까 미래를 말합니까, 과거를 말하지요. 하나님의 자존 시점 그게 언제인지 모른다, 영원입니다. 그래서 영원할 때 하나님의 자존시점으로 알 수 없음으로 영원 자존이라고 하는 겁니다. 자존이라는 말은 알기 쉽게 설명을 붙이면 자존은 무슨 뜻입니까, 스스로 계신 분, 많은 존재의 원인과 근본이 되시는 분, 어떤 것에 누구에 영향을 피동도 간섭을 받지 않는 분 변치않는 불변의 분 이걸 자존이라고 합니다. 스스로 계신 분 그래서 원인자가 되신 분, 간섭도 영향도 피동도 당하지 않는 분, 하나님이란 한 분 뿐이신 유일하신 유가 없는 그래서 하나님만 말씀을 아는 겁니다. 하나님만 하나님이고 참신이고 참신이 없는 겁니다. 우리라는 것은 사활의 대속과 성령과 진리, 주님 대속과 진리와 입은 나, 이걸 우리라고 합니다. 아버지는 몇 가지 뜻으로 했던가요, 낳아주시고 보양하시고 원형이 되시고 그걸 아버지라고 했습니다. 영원 자존하신 하나님 우리 아버지, 다섯 가지로 설명을 드렸습니다.
영원 자존 불변 사랑 하나님, 불변 사랑 자존이므로 불변입니다. 그런데 사랑이 자존 사랑이고 불변 사랑이다. 하나님인데 그 하나님이 사랑이신 하나님이다. 사랑 하나님이다 그 말입니다. 영원 자존 그래서 목적을 정하신 주체 하나님인데 좀 더 들어가 보니까 의지가 그 뜻이 어떤 뜻인데, 하나님의 성품 속성이 자체인데 하나님의 의지가 자존하신 의지가 뜻이 목적을 정하셨는데, 어떤 성격의 것이냐, 어떤 방편으로 이루어가느냐,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스도적인 방편으로 그래서 그리스도를 알아야합니다. 기름부음을 받았다는 뜻이고 왕의 역사를 통해서 그 방편 그 성격으로 그 제사장 선지자 왕을 만들게 되는 그 방편 그 성격으로, 목적을 정하셨습니다. 영원 자존 하나님 의지가 그리스도 안에서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그 목적 어떤 모습이 되느냐, 그리스도적인 방편으로 그리스도적인 성격으로 목적을 정하셨는데 어떤 모습을 가지는 모습이냐, 하나님을 가지는 닮은 사람.
하나님의 목적은 그리스도적인 방편, 성격으로 했는데 그 목적이 이루어지면 꼭 닮은 형상이 된다. 하나님의 시은의 역사, 길을 가다 10만원짜리 수표 하나 줘, 그건 동냥입니다. 집을 나간 둘째 탕자가 다 털어먹고 돌아옵니다. 아버지가 보고 측은히 여겨서 목을 안고 아들이 죽을 죄를 지었습니다 하니까 어깨만 돌아옵니다. 제일 좋은 옷을 내어다 입혀라. 그게 뭘까요. 집을 나간 탕자 죄인이 회개하고 돌아오는데 제일 좋은 옷이 뭐겠습니까, 주님 대속이겠지요. 손에 가락지를 끼워라, 언약의 표시입니다. 혼자 생각해봅니다. 발에 신을 신겨라, 새로 출발시켜라 회개하고 먹고 즐기자 잔치입니다. 동냥입니까 사랑입니까. 사랑의 시은입니다. 그 아버지의 베풀어주신 놈이 기어나오겠습니까. 내가 아버지 품을 안 떠날거다. 떠나지 않은 첫째보다 더 잘되었을 겁니다. 그래서 그냥 하는 사람하고 나가서 다 까먹고 돌아오는 사람이 더 커집니다. 그러나 죄를 짓는 건 안 좋습니다.
자기 어려움의 해소가 되고 만족이 되고 그럴 때 나의 어려운 문제가 해결된 것이 평안하게 된 것이 안정하게 된 것이 만족하게 된 것이 누구로 말미암은 것이냐, 그 분의 그 도움으로 그렇게 되어졌다, 참 감사하다. 그때 찬송이 되고 영향이 되는 겁니다. 어떤 시골 마을에 오래토록 둑이 터져 다 쓸어버립니다. 그런데 노력을 들여서 둑을 튼튼하게 해서 홍수라는 피가 없이 다 막아버렸습니다. 그럴 때 마을 사람들이 누가 저렇게 해놨을까 했을 때 아시는 분이 아무게 분이 다 들여서 우리 마을을 살려서 뚝을 해서 쌓으셨습니다. 그분의 은택입니다. 그게 영광입니다. 하나님의 목적된 우리를 보시고 기묘하다, 묘하다, 중심을 가질까 깨끗을 가질까 사랑을 가질 수 있을까, 자기 희생을 할 수 있을까, 참 묘하다는 겁니다. 그 사람보고 감탄하고 그렇게 만드신 하나님 앞에 영광 돌리는 걸 가르켜서 찬미라고 합니다. 하나님의 영광의 찬미입니다. 모습은 드러나는 모습은 아름답게 귀하게 아름답다 고급스러운 겁니다. 굴러다니는 게 아닙니다.
제가 몇 가지로 4번을 설명드렸을까요. 주체자가 누구냐, 성격과 방편이 무엇이냐 그리스도 적입니다. 왕족입니다. 그 모습을 어떤 모습이냐, 꼭 같은 사람입니다. 내면을 가지고 있느냐, 영광의 찬미입니다. 보이는 그 모습은 어떻냐 귀하고 아름답습니다. 이게 하나님의 목적이고 구원입니다. 이해가 되시는지요. 이게 하나님의 목적 우리의 구원입니다. 지식적으로만 가지고 실제로 나아가지 않으면 아무것도 없는 겁니다. 영원 자존 하나님 의지가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것과 꼭 같은 사람, 하나님의 영광에 찬미가 되기 까지 귀하게 아름답게 만드시기로, 네 번째로 목적을 정하신 하나님인데 주체자가 누구냐, 그리스도 안에서입니다. 하나님의 형상입니다. 그 하나님의 형상의 내면을 보니까 영광의 찬미입니다. 어떻게 그렇게 될 수 있느냐, 겉모습은 귀하게 아름답게 되는 겁니다.
제사장 선지자 왕 전부 다 십자가입니다. 그게 마지막 십자가입니다. 그 동기 발언이 사랑입니다. 섞임없는 순수한 사랑, 순애라는 말이 있는데 전부 거짓이지요. 주님의 사랑은 순애입니다. 자존 사랑, 그 사랑으로 하신 역사가 제사장 선지자 왕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게 하나님의 언약이고 걸어서 나오는 게 뭐가 나오지요. 영광의 찬미가 나오는 것이고 그래서 어두운 죄악 세상에서 알고나면 하늘에 있는 존재 예수 그리스도를 앞에 무릎을 꿇고 영광 돌리는게 영광의 찬미고 그리스도적인 겁니다. 그런 것을 가르켜 귀하다고 합니다. 이런 하나님이 우리 아버지다. 영계와 우주와 그 가운데에 있는 것은 예정하신 하나님이 우리 아버지다. 주권 능력으로 창조하신 하나님이 우리 아버지다. 승리가 나오고 대속 역사가 나옵니다.
통성으로 기도드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