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천교회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문답방(질문답변)

예배당처럼 아끼고 서로 조심하셨으면 합니다.
주로 우리 교인들이 사용하겠지만 혹 손님들이 오시더라도 깨끗한 우리의 모습을 보였으면 좋겠고, 서로의 신앙에 유익이 되도록 했으면 좋겠습니다.


22.07.06. 수새 말씀의 감동
교인  2022-07-07 06:10:01, 조회 : 173, 추천 : 12

22.07.06. 수새 말씀의 감동



누군가 홈페이지에 글을 쓴 것을 두고 남의 장점만 보고 단점은 기도하며 좋은 면만 보려 하는 것이 복되다고 하신 말씀 전적으로 동감합니다 한편으로 좀 다른 각도에서 볼 때 백목사님 설교록에서 여자와 아이는 달래 가면서 길러가야 한다는 말씀을 생각해 봅니다 물론 어제 새벽 말씀은 목회자적 입장에서 전체를 상대해야 하며 작은 누룩 하나가 들어 전체를 전염시키고 부정적인 이미지로 온 교회를 오염시킬 수 있기에 공개적인 입장에서 교인들을 경성시키시고 조심시키시려는 교훈이었으리라 생각되었습니다


여기서 여자와 아이는 성차별이나 어린이 비하 발언이 아니라 남자에 비해 여자는 멀리 보지 못하고 현미경적인 시야여서 그래서 자녀를 집에서 잘 기르는 면은 있지만 쉽게 마음이 상하고 말 한마디에 상처 받는 깨지기 쉬운 유약한 그릇이라, 토라지고 친정을 가 버리면 남편이 그래 니가 회개하나 보자 가만 있지 말고 가서 데려 오라 남편이 잘못 안해도 가서 일단 데려 와서 달래라 남편 말이 맞아도 믿음이 없어 그런 것이니 좀 유하게 돌려서 표현해 주라 아이도 떼 쓰고 고집 부릴 때가 있다


때론 야단도 쳐야겠지만 때론 달래야 한다 왜 그렇게 생각하니 시험 들어 있는 자는 설교를 할게 아니라 대화를 이어가야 한다고 하신 설교록 말씀처럼, 여기서 여자란 남자, 여자의 성별적인 그 여자가 아니라 속이 좁아 쉽게 삐지는 성격, 그러면 남자라도 여자 신앙이 될 수 있고 아이는 신앙적으로 어린 아이 신앙이어서 상식 밖의 되도 안한 말을 하는, 50넘은 어른이어도 어린 아이 신앙일 수 있고 남자여도 속좁아 쉽게 마음이 상하는 여린 신앙을 두고 신앙적으로 로마서14:1 말씀처럼 여자신앙, 어린아이 신앙을 말하는 것입니다.


저는 홈페이지 글을 읽고서 본인의 고민을 글로 표현한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이는 모르겠으나 결혼 적령기 청년일지 모르겠으나 어렵게 꺼낸 말인데 혹시나 이 청년이 동천교인이라면 이 청년을 통해 주님이 우리 교회 결혼할 사람들이나 결혼 직후 신혼 중 또는 결혼 10년차, 또 노년에 이르기까지 모든 부부관계에 있어 고칠 점을 말씀하시고자 하신 것은 아닐까?


본인은 부정적으로 말했다 할지라도 저는 우리는 잘하고 있는가, 나는 부부관계가 정상인가? 고칠 점은 없는가? 선으로 바꿔 읽었고 고민해 봤습니다 어떤 사람은 모든 것을 뛰어 넘는 장성한 사람도 있지만 어떤 이는 믿음이 연약해 의심하는 자도 있으니 그의 의심하는 바를 비판하지 말라는 말씀처럼 그의 말을 통해 주님이 우리 교회를 향하신 역사를 한번쯤 되짚어 생각해 봤습니다 우리가 다 잘하는 면이 있지만 또 잘 못하는 면도 있는 줄 압니다 실수도 하고 잘못도 합니다 헛말, 되도 안한 말, 신앙이 어릴 때일수록 말 실수, 자기가 본대로 생각난 대로 말하기 쉽습니다 그럴 때마다 어떻게 조언해 주느냐에 따라 그 사람이 말문을 계속 열 수도 있고 말문을 완전히 닫아 버릴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결혼도 리브가에게 마지막으로 물어 봤듯이 자유성을 줘 최종 본인이 선택하도록 하는 것이 자연스러운데 지난 우리 과거 결혼 추진을 보면 본인 선택의 자유성에 대한 실수가 전혀 없었다고 볼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목회자 나름, 부모 나름, 결혼 당사자 나름 결혼 추진을 두고 실수와 허물이 알게 모르게 어느 정도는 있었을 텐데 그런 모습을 보고 자란 10대들이 나중에 결혼을 할 시기가 되면 움추려 들 수 있고 나도 그런 고통을 당하지는 않을까? 걱정 내지는 나도 저 사람처럼 결혼이 잘못되면 어쩌나? 결혼했는데 고통 속에 살면 어쩌나? 내가 져야 할 십자가라면 어쩔 수 없지만 선택의 자유성이 내게도 있는가? 만약 결혼 선택을 잘못 할 수도 있는가? 하나님이 짝지어 줬다면 음행의 연고 외에 갈라서는 일은 없어야 하는데 현실은 그렇지 않지 않은가? 그냥 믿음이 없어서 어쩔 수 없었다 그러면 나도 믿음 없으면 결혼 후에 누구처럼 갈라설 수 있다는 말인가? 등등 정도로 자기고민 자기번민 진퇴양난 자기모순 등등으로 저는 읽혔습니다 부정적인 시야도 없다 할 수는 없겠지만 그런 말이 나왔을 때 혹 주님이 그 청년을 통해 내게, 우리에게, 우리 교회에 하실 말씀은 없으셨을까? 전체에 퍼지는 부정적인 누룩을 빨리 제거해야 하는 면, 전체 목회적인 면은 미처 생각지 못했고 저는 먼저 우선적으로 단지 한 개인의 고민을 통해 어떻게 하면 그의 낙망을 소망으로 바꿀 수 있을까 고민하다 글을 적는다는 것이 이렇게 두서가 없게 되었습니다


어제 설교를 듣고 느낀 점을 적었으나 제가 오판했을 수도 있음을 미리 말씀드립니다 새벽 설교를 듣고 저는 늘 목사님께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저는 저렇게 들렸습니다 설교도 사람의 말이 아니라 하나님이 전하시는 말씀이니 서로 주고 받는 화답을 통해 자라가고 싶은데 교회가 그런 분위기가 아닌 것 같으니 주저되기도 합니다 설교 질문 답변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목사님 저는 어제 이 부분에 대해서 이렇게 느껴졌습니다 제 요즘 현실에서 이런 일이 있었는데 어제 새벽 말씀과 연결되는 것 같습니다 또는 저는 그렇게 생각지 않습니다 저는 이리 생각합니다 목사님 제가 틀렸을까요? 등등


교인이 틀린 말을 본인 스스로 하게 함으로서 본인 스스로 깨닫고 고쳐가도록 하는 것이, 말 안해서 꽁하고 있다가 나중에 대학 진로나 결혼 직전에 시한폭탄이 안 되도록 평소에 안 좋은 누룩, 부정적인 압력을 빼 두는 것이 저는 평소 새벽설교나 밤예배, 주일설교를 듣고서 부단히 목회자나 구역장을 찾아가 묻고 평소 자기 고민을 털어 놓는 것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개인적으로 목사님께 찾아가 상의 드릴 수도 있는데 공개적으로 글을 적었다면 그만큼 간절하고 힘들다는 뜻은 아닐까도 짐작해 보게 됩니다 글쓴 청년의 결혼이나 기존 부부들의 부정적인 인식이 긍정적으로 복되게 바뀌기를 간절히 기도하게 됩니다 제 글이 자타 구원에 적합하지 않다면 삭제 요청드립니다.



로마서14:1-3
01. 믿음이 연약한 자를 너희가 받되 그의 의심하는 바를 비판하지 말라
02. 어떤 사람은 모든 것을 먹을 만한 믿음이 있고 연약한 자는 채소를 먹느니라
03. 먹는 자는 먹지 않는 자를 업신여기지 말고 먹지 못하는 자는 먹는 자를 판단하지 말라 이는 하나님이 저를 받으셨음이니라


교인5
굉장히 공감되는
말씀이라 생각됩니다.
2022-07-08
10:56:46



교인
제가 목사님 설교에 토를 단 것 같습니다.
죄송하지만 관리자님께 부탁드리건대 제 글은 교회에 덕이 안되는 것 같습니다
가능하다면 삭제 요청을 정중히 부탁드립니다
죄송합니다
2022-07-08
16:20:13



이치영
먼저,
다른 사람에 대한 동정과 긍휼의 마음을 가지신, 넓고 깊은 이해와 배려의 성품에 감사드립니다. 혼자만의 생각으로 그치지 않고 세밀하게 글로써 의견 주심도 감사드립니다.

어떤 내용이든지 이해가 되지 않거나 아니라고 생각되실 때, 직접 연락이 어려우면 이렇게 글로써 대화를 하면 어지간한 것은 다 해결이 됩니다. 많은 분들이 대화하지 않고, 물어보지 않고, 확인하지 않고 혼자 고민하다가 잘못된 판단을 하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말씀하신 대부분의 내용에 동감합니다. 알고 계시고 적어 주신 내용에도 들어 있듯이 설교는 전체를 대상으로 하는 것이기에 원론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옳은 것은 옳은 것이고 아닌 것은 아닌 것을 말하는 것이 설교입니다. 물론 설교도, 많은 분들의 여러 형편과 입장과 심정들을 최대한 헤아려서 조심스럽게 합니다. 그렇게 하면서도 어떨 때는 어쩔 수 없이 해야 할 말은 할 수밖에 없을 때가 있습니다. 글을 쓴 분을 개인적으로 면담했으면 설교 때와는 전혀 다른 내용으로 설명했을 것입니다.


수요일 새벽 설교의 경우는,
전체적인 면으로 설교한 것입니다. 따라서 설교 내용 자체는 잘못된 부분이 없을 것 같습니다. 다만, 지적해 주신 말씀과 같이 그 글을 적은 분의 입장과 심정을 좀 더 헤아려서 좀 더 조심스럽게 했으면 더 좋았을 것 같습니다. 그러면서도 필요한 말씀을 전할 수 있었을 것 같습니다. 그렇게 하지 못한 것은 저의 준비 부족과 함께 저의 성향이 작용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시야가 좁고 단순한 면이 있어서 평소에도 본의 아니게 실수를 자주 하는 편입니다. 좀 더 노력하고 좀 더 조심하겠습니다.


참고로,
올리신 글은 구원에 손해되는 내용도 아니고, 덕이 안 되는 내용도 전혀 아니며, 삭제할 내용도 아닙니다. 목사는 완전자가 아니며, 목사 설교 역시 완전이 아닙니다. 이것은 저뿐이 아니고 모든 목회자, 모든 설교자가 다 마찬가지입니다. 백 목사님 설교를 교정한 사람이 저입니다. 부족한 것이 많으나 이런 면만은 배워서 잘 알고 있습니다. 필요한 지적과 의견과 제안은 언제든지 환영합니다. 의논이 없으면 경영이 파하고 모사가 많으면 경영이 성립한다는 것이 성경입니다.
2022-07-08
20:32:52



교인
어머니 (서울대 박동규 명예교수님 글)

 
내가 초등학교 6학년 때 6.25 전쟁이 났다.

아버지는 내 머리를 쓰다 듬으시며 <어머니 말씀 잘 듣고 집 지키고 있어> 하시고는 한강을 건너 남쪽으로 가셨다. 그 당시 내 여동생은 다섯 살이었고 남동생은 젖먹이였다. 인민군 치하에서 한 달이 넘게 고생하며 살아도 국군은 오지 않았다.

어머니는 견디다 못해서 아버지를 따라 남쪽으로 가자고 하셨다. 우리 삼 형제와 어머니는 보따리를 들고 아무도 아는 이가 없는 남쪽으로 향해 길을 떠났다. 일주일 걸려 겨우 걸어서 닿은 곳이 평택 옆 어느 바닷가 조그마한 마을이었다.

인심이 사나워서 헛간에도 재워주지 않았다. 우리는 어느 집 흙담 옆 골목길에 가마니 두 장을 주워 펴놓고 잤다. 어머니는 밤이면 가마니 위에 누운 우리들 얼굴에 이슬이 내릴까 봐 보자기로 씌어 주셨다. 먹을 것이 없던 우리는 개천에서 작은 새우를 잡아 담장에 넝쿨을 뻗은 호박잎을 따서 죽처럼 끓여서 먹었다. 삼일 째 되는 날 담장 안집 여주인이 나와서 우리가 호박잎을 너무 따서 호박이 열리지 않는다고 다른데 가서 자라고 하였다.

그날 밤 어머니는 우리를 껴안고 슬피 우시더니 우리 힘으로는 도저히 남쪽으로 내려갈 수 없으니 다시 서울로 돌아가서 아버지를 기다리자고 하셨다. 다음날 새벽 어머니는 우리들이 신주처럼 소중하게 아끼던 재봉틀을 들고 나가 쌀로 바꾸어 오셨다. 쌀자루에는 끈을 매어 나에게 지우시고, 어머니는 어린 동생과 보따리를 들고 서울로 다시 돌아오게 되었다.

평택에서 수원으로 오는 산길로 접어 들어 한참을 가고 있을 때였다. 서른 살쯤 되어 보이는 젊은 청년이 내 곁에 붙으면서 <무겁지. 내가 좀 져 줄게 하였다. 나는 고마워서 <아저씨, 감사해요> 하고 쌀자루를 맡겼다. 쌀자루를 짊어진 청년의 발길이 빨랐다. 뒤에 따라 오는 어머니가 보이지 않았으나 외길이라서 그냥 그를 따라갔다. 한참을 가다가 갈라지는 길이 나왔다.

나는 어머니를 놓칠까봐 <아저씨, 여기 내려주세요. 어머니를 기다려야 해요>하였다. 그러나 청년은 내 말을 듣는 둥 마는 둥 <그냥 따라 와>하고는 가 버렸다. 나는 갈라지는 길목에 서서 망설였다. 청년을 따라 가면 어머니를 잃을 것 같고 그냥 앉아 있으면 쌀을 잃을 것 같았다. 당황해서 큰소리로 몇 번이나 <아저씨!> 하고 불렀지만 청년은 뒤도 돌아보지 않았다. 나는 그냥 주저앉아 있었다.

어머니를 놓칠 수는 없었다. 한 시간쯤 지났을 즈음 어머니가 동생들을 데리고 오셨다. 길가에 울고 있는 나를 보시더니 첫 마디가 <쌀자루는 어디 갔니?>하고 물으셨다. 나는 청년이 져 준다면서 쌀자루를 지고 저 길로 갔는데, 어머니를 놓칠까봐 그냥 앉아 있었다고 했다.

순간 어머니의 얼굴이 창백하게 변했다. 그리고 한참 있더니 내 머리를 껴안고 <내 아들이 영리하고 똑똑해서 애미를 잃지 않았네.> 하시며 우셨다. 그날 밤 우리는 조금 더 걸어가 어느 농가 마루에서 자게 되었다. 어머니는 어디에 가셔서 새끼 손가락만한 삶은 고구마 두 개를 얻어 오셔서 내 입에 넣어 주시고는 <내 아들이 영리하고 똑똑해서 아버지를 볼 낯이 있지>하시면서 우셨다.

그 위기에 생명줄 같았던 쌀을 바보같이 다 잃고 누워 있는 나를 영리하고 똑똑한 아들이라고 칭찬해 주시다니. 그 후 어머니에게 영리하고 똑똑한 아이가 되는 것이 내 소원이었다. 내가 공부를 하게 된 것도 결국은 어머니에게 기쁨을 드리고자 하는 소박한 욕망이 그 토양이었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어느 때는 남들에게 바보처럼 보일 수도 있었지만, 어머니의 바보처럼 보이는 나를 똑똑한 아이로 인정해 주시던 칭찬의 말 한 마디가 지금까지 내 삶을 지배하고 있는 정신적 지주였던 것이다.

 
이 글 속의 “어머니”는 시인 박목월님의 아내가 되십니다. 절박하고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도 야단이 아니라 칭찬을 해 줄 수 있는 어머니. 그런 어머니의 칭찬 한마디가 우리 아이들의 인생을 아름답게 변화시켜 주리라 믿습니다. 


칭찬과 책망. 무엇이든 좌우로 치우치지 않아야 하는데 나 자신과 또 우리네 가정안에서의 자녀 교육이나 교인 상대를 주로 하는 교회에서의 목회적 입장에서의 신앙 교육은 어떠한지 되묻게 되는 자문자답형 글이라 생각되어 소개해 봅니다. 나는 과연 윗글처럼 생사의 기로가 될 수 있는 급박한 상황 속에서 실수한 자녀나 교인이 있다면 어떻게 말했을까? 부모의 말 한마디에 자녀의 신앙이 죽기도 하고 다시 소생하기도 한다 들었습니다. 자녀의 사연을 듣기 전에 성급하게 대답하는 미련한 나 자신, 어리석은 부모가 되지 않기를, 실수를 거듭 반복하지 않기를 간절히 기도하게 되는 주일 이 아침입니다.
2022-07-10
06:3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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